소설리스트

1화 (1/21)

가청주파수 1권

#01. 흉터 있는 남자

아이가 새벽부터 열이 났다. 온몸이 불덩이가 된 채 끙끙 앓으며 울더니 종내 토하기 시작했다. 희멀건 위액이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여준은 아침까지 기다리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아이의 토악질은 멈추지 않았다. 시트가 온통 묽은 토사물 범벅이 되었다.

평일 새벽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를 안고 달려 들어가는 여준의 그림자 위로 차례를 기다리던 환자들의 시선이 불안하게 달라붙었다. 아이는 늘어진 채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아이의 눈을 까뒤집어 보던 의사가 제일 먼저 침대를 내주었다. 겨드랑이에 얼음을 끼워 넣고 자그만 발등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여준이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언제부터 토했나요?”

언제부터였지. 머릿속에 시곗바늘이 돌아간다. 세 시쯤이었나, 네 시쯤이었나.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오전 여섯 시였다. 여준이 신 침을 삼켰다. 그는 열이 들끓는 아이를 최소 세 시간 이상 방치했다.

“…한, 시간쯤…. 된 것 같은데요.”

“열은요?”

“열은 어젯밤부터 조금씩…, 그런데, 아침에 병원 가면 되겠지 싶어서요. 애가 차 타는 걸 싫어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까 봐….”

물어본 적도 없는 변명을 횡설수설 늘어놓으며 천천히 되짚었다. 어제 새벽에 내가 뭘 했더라.

“수액 들어갔으니까 열은 곧 내릴 거고요. 경과 보고 하루 입원을 하든지 하죠.”

“심각…, 한가요?”

“좀 봐야 알겠죠.”

의사들은 함부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홀로 남은 후에야 한숨 돌린 여준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른용 침대와 비교해 아이는 너무 작았다. 이마를 짚어 보았다. 닿기만 해도 살이 타오를 듯 뜨겁던 열은 그새 조금 내려가 있었다.

이렇게 쉽게 편해질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망설였을까. 조악한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 새벽의 행적을 되짚어 보았다.

어제는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엉망진창인 집 안을 정리하고 간신히 숨을 돌린 찰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이마를 짚어 보니 열이 나고 있었다. 찬장을 뒤져 어린이용 해열 시럽을 찾아다 먹이고 침대에 눕혔다. 착하지, 약 먹었으니까 이제 자자.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도통 잠들지 못했다. 여준의 손길에 짜증 내며 이불을 걷어차기도 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 방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귀마개를 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눕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설핏 잠이 깼을 때는 새벽 세 시를 지난 시간이었다. 조금이나마 피로가 가시고 제정신이 돌아오자 아이가 걱정되었다. 귀마개를 뺐다.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달려가 문을 열어 보니 침대 위가 온통 토사물투성이였다.

“…….”

머리가 아파 온다.

“아빠….”

가느다란 목소리에 여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반쯤 눈을 뜬 채 손을 뻗고 있었다.

“응, 아빠 여기 있어.”

“아빠, 나 발 아파.”

“주사 맞아서 그래. 금방 괜찮아져.”

주삿바늘이 지금도 꽂혀 있다고 하면 생난리를 피울 것이 뻔하다. 여준은 대충 얼버무리고 아이가 바늘을 못 보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아이가 다시 잠든 것은 병원 운영 시간이 다가와 응급실이 다소 잠잠해졌을 무렵이었다. 여준은 피곤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옥상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라도 피워야 머리가 돌아갈 것 같았다. 회사에 전화도 해야 한다. 핸드폰을 쥔 채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팀장의 번호를 누를 수 있었다.

“…예, 저 오전 반차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수화기 너머 팀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팀은 요즘이 최고로 바쁜 시기다.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른 팀원들이 그만큼의 일을 더 떠맡게 된다.

-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애가 갑자기 열이 나고 토해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습니다. 간병인만 부르고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 성 선임 아드님은 참 자주 아프네….

비아냥을 거르지 않고 내뱉은 팀장이 들으란 듯 혀를 찼다. 울컥했지만 뭐라 받아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에 조용히 있었다. 팀장이 그의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다 알고도 순간적으로 치미는 짜증을 참아 낼 수 없을 만큼 몰려 있는 것이다. 그런 시기였다.

“죄송합니다….”

- 간병인이 그렇게 금방 구해지나? 주변에 누구 도와줄 만한 사람 없어요?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가겠습니다.”

- 싫은 소리 한 건 미안해요. 그런데 성 선임, 아니 여준 씨. 우리 지금 3주째 전시 체제인데 지금 여준 씨 아들 아픈 게 벌써 세 번째예요. 알죠?

“예….”

- 애들 원래 자주 아프지. 내가 모르는 게 아니야. 애가 아프다는 걸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다만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면, 팀에 피해를 안 줄 수 있는 대책을 여준 씨가 미리 강구해 놨어야 맞는 거잖아요?

“예, 죄송합니다.”

- 아픈 것도 눈치 보고 아파야 하는 애는 무슨 죄야? 여준 씨 일 떠맡고 점심도 못 먹을 팀원들은 또 무슨 죄고? 내가 지금 너무 심한 말 하는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참을 더 굽실거린 후에야 통화는 끊어졌다. 담배는 이미 필터까지 타들어 가 있었다. 끊긴 화면을 빤히 바라보던 여준이 핸드폰을 부술 듯 강하게 쥐었다. 팀장 앞으로 잘 있으라는 문자 하나 보내 놓고 옥상 밖으로 몸을 던지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

심호흡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떠올릴수록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결혼 1년 만에 얻은 아들 하나쯤은 먹고 싶은 것 먹이고 입고 싶은 것 입히면서 키울 자신이 있었다. 아내는 사랑스러웠고, 아이는 귀여웠고, 대단히 행복하진 않았지만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여준의 아내, 은아는 아이를 친정에 맡겨 놓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도중 중앙선을 침범한 역주행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향년 27세였다.

“간병인 좀 부르고 싶은데요.”

급한 대로 병원에서 인력 회사 연락처를 받았다. 빨리 집에 돌아가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다 놓고 출근해야 한다. 아이의 방은 지금도 토사물 냄새에 절어 있을 것이다.

- 적어도 하루 전엔 연락하셔야….

- 한국말 못 하는 아줌마라도 괜찮으시면 바로 보내드릴 수 있는데.

- 거긴 너무 머네요. 오전 내로는 못 가요. 오후부터 시작해도 이동 시간 생각하면 종일 요금 주셔야 하고….

시간은 어느새 오전 아홉 시를 지나고 있었다. 병원에서 회사까지는 못 해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다. 초조함에 손끝을 물어뜯다 이를 악물었다. 빨리, 빨리….

“…아빠.”

“응, 지오야. 아빠 잠깐만.”

아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여준을 불렀다. 돌아보지도 않고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누구 와 줄 만한 사람 없나? 잠깐만 아이 봐주면서 간병인만 불러 줄 사람. 그런 사람….

“아빠….”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화면을 훑어 내리던 여준의 손끝에 가린의 번호가 잡혔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입사 동기였던 그녀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가 죽은 뒤 혼자 지오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동안 가장 큰 도움을 준 것도 그녀다.

얼른 걸어 보았지만 아직 자는지 연결되지 않았다. 비통한 마음으로 끊고 다음 후보를 찾았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올 수 있는 사람, 기꺼이 도와줄 사람….

“…….”

손이 우뚝 멈췄다. ‘장모님’ 세 글자에 가슴이 턱 막힌 듯 답답해졌다. 입을 꾹 다문 채 긴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걸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그래, 성 서방.

장모는 여준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차분한 어조였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지오가 한 번 더 아빠, 하는 소리에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장모님. 잘 지내셨….”

- 안부는 됐네. 자네가 뭐 용건 없이 전화할 사람인가.

“…….”

- 무슨 일인데?

“아빠아….”

지오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든다. 아, 제발, 제발 울지 마. 여준은 눈을 꽉 감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빠, 아빠아…!”

그러나 그의 마음속 소리가 고작 세 살짜리 어린애에게 들릴 리 없다. 아이는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서러움을 펑 터뜨렸다. 좁고 빡빡한 응급실 안이 금방 찢어지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 이게 무슨 소리야? 지오가 우나? 왜 그러는 건데?

“아빠! 아빠! 아빠아!”

왼쪽 귀에서는 장모가 소리를 지르고 오른쪽 귀에서는 아이가 운다. 미치지 않으려면 통증이 필요했다. 여준은 이로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천천히 돌아보았다.

“…….”

아이는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 온 힘을 다해 발악하고 있었다. 발등에 꽂아 놓은 링거 관을 타고 피가 오르는 게 보였다. 잠옷 바지며 시트는 아이가 지린 오줌으로 온통 축축했다. 여준이 한 손으로 침대 프레임을 짚었다. 눈앞이 허옇게 뜨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핸드폰을 내린 채 아이를 끌어안았다.

“지오야, 괜찮아.”

“흐어, 흐어엉, 아빠, 피. 피…!”

“괜찮아. 착하지? 아빠 여기 있잖아.”

여준 씨 애는 왜 그렇게 자주 아파? 귀를 쑤시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뱃속에서 피가 솟는 듯했다. 그거야말로 내가 묻고 싶다. 내가 뭘 잘못했고 뭐가 모자랐기에. 나쁜 걸 먹인 적도, 큰소리 내거나 손 올린 적도 없는데. 36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돌아온 날에도 아이가 칭얼대면 잠들 때까지 안아 줬는데. 다달이 나가는 어린이집과 등원 도우미와 오후 베이비시터 비용을 합하면 월급의 반이 사라지는데. 그런데도 뭘 더 어떻게 해 달라고 나한테 대체 왜.

“바늘! 바늘 빼! 바늘 안 해! 안 해!”

내 일상은 빠짐없이 지옥인데, 이 애는 대체 왜 치료를 위해 꽂아 놓은 바늘 하나 참지 못하는 거지? 여준의 눈동자가 멍하니 가라앉았다. 길어지는 발악에 다른 이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한마디씩 섞여들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애 엄마는 뭐 하는 거야? 애들은 좀 따로 두면 안 되나…. 여준은 차라리 웃고 싶었다. 살의가 끓어올랐다. 당장 이 병원 옥상으로 운석이라도 떨어졌으면 싶었다.

“…지오야, 아빠가 괜찮다고 하잖아.”

“바늘 안 해, 바늘 뺄 거야. 아빠 미워! 아빠 제일 미워!”

“아빠가 괜찮…, 괜찮다고 말했잖아. 지오야. 응?”

가끔은 아이가 자신을 미치게 만들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빠 미워! 아빠 가! 빨리 가!”

품에 안은 얼굴이 온통 뜨거웠다. 울부짖으며 여준의 어깨를 마구 때리고 밀어내던 아이가 일순 잠잠해졌다. 여준이 의아함에 내려다보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웩, 하며 그의 가슴팍에 속을 쏟아 놓았다.

“…….”

아랫배까지 흘러내린 척척한 토사물에서 지독한 비린내가 났다. 여준의 눈동자가 차차 크게 뜨였다. 머릿속에서 뭔가 뚝 끊어진 것 같다.

“…토할 것 같으면 말을 해야지!”

아이가 토끼 눈을 한 채 여준을 올려다보았다. 허옇게 튼 입술을 꾹 다물더니 그대로 딸꾹질을 한다. 열이 끓고, 속이 뒤집어지고, 발등에 꽂힌 주삿바늘에 놀라 오줌을 지린 채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여준은 끝없이 묻고 있었다. 왜 내 아이는 이토록 유약하고 겁이 많은 걸까. 내가 뭐 그리 모자랐기에.

“무슨 일이시죠?”

지친 얼굴을 한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 여준이 멍하니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왜 진작 자기를 부르지 않았느냐는 타박이 돌아왔다.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아이를 생각해 주는 말이었음에도 여지없이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성 서방. 지금 어디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지오가 왜 그래?

아직까지 끊어지지 않은 전화 너머에서 장모가 쏘아붙였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여준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손 하나를 붙든 채로 힘겨운 말을 꺼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지오가 새벽부터 열이 오르고 토해서…. 병원에 와 있습니다.”

- 뭐? 어디가 아픈 건데? 많이 안 좋은 거야?

“수액 맞고 많이 안정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회사에 가 봐야 하는데, 오전에 아이 봐줄 사람을 당장 구할 수가 없어서요….”

- …….

장모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숨이 막힌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도 장모는 늘 불편한 존재였다. 입버릇처럼 내가 자네 정도 사람으로 만족할 건 아닌데…, 라고 말했다. 아내는 엄마, 하며 핀잔을 주면서도 매끄럽고 예쁜 입술에 미소를 매단 채 오래도록 친정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 자네는 도대체 뭐가 문젠가?

장모의 또 다른 말버릇이었다.

- 은아가 늘 나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아나? 지오는 꼭 외할아버지의 환생 같다고 했어. 갓난애가 어쩌면 그렇게 울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는 것이…. 자기 예뻐해 주던 외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서 편하게 해 주는 거 같다고. 그런 애가 아파서 자지러지게 우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회사에 가 봐야겠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린가?

아내가 생전에 늘 하던 말이다. 지오는 꼭 우리 외할아버지의 환생 같아. 무대는 언제나 화기애애한 처가 식탁이었다. 우리 아이가 당신 할아버지의 환생이라니. 여준은 미묘한 역겨움을 느꼈지만 눈썹 한 번 찡그릴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오가 작년부터 살짝 아토피 증세를 보였는데 그 이후로 좀 자주….”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고, 아름다운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했다. 손에 넣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 그야 애가 하루 종일 남의 손만 타는데 없던 병도 생기겠지. 안 그런가?

은아를 소개해 준 것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다. 야, 엄청 예뻐, 게다가 엄청 부잣집이고…. 귀가 솔깃해 덥석 쥐었지만 자신에게 과분한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준은 늘 인생의 승리자였다. 교사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어떤 경쟁에서든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또래보다 키가 컸으며 반듯하고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모자라고 눈에 차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실감해 볼 기회가 없었다. 은아를, 정확히는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

- 성 서방, 듣고 있나?

장모를 대할 때면 언제나 숨이 막혔다. 그녀는 여준의 매끈한 콧대나 붉은빛 도는 입술이나 기다란 속눈썹 따위에 일일이 꼬투리를 잡곤 했다. 목이 길어서 보기 싫다거나 손가락이 꼭 거미줄 같아 징그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장모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욕실에 있는 거울마저 깨 버리고 싶었다.

“…사람을, 좀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잠깐 아이랑 있어 주면 됩니다. 제가 회사 들어가면서 오후에 와 줄 수 있는 사람 구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 됐네, 내가 가겠네. 어디라고?

“…….”

- 자네더러 기다리라고 안 할 테니 굳을 거 없어. 그럴 만한 사람 아닌 거 나도 아니까. 하여간 어찌나 매일 혼자 바쁜지….

“…죄송합니다.”

- 됐네. 안사람 장례식도 박차고 나갔던 대단하신 양반한테 내가 더 말해 뭐 하겠나.

전화가 뚝 끊어졌다. 핸드폰을 뺨에서 떼어 놓는 여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이는 어느새 까무룩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온통 울긋불긋하게 부어오른 작은 얼굴이 뒤늦게 안쓰러웠다.

‘자네는 뭐 그렇게 혼자 대단한가?’

얼굴은 기생오라비상, 손은 거미줄 같고, 몸은 말라빠져 볼품없고, 연봉도 대단치 않고, 부모 재산이랄 것 없고…. 장모가 조각조각 깎아내린 말들이 가슴에 박히는 동안 여준은 차차 그녀에게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게, 내가 뭐 잘난 게 있다고 그렇게 자신감만 넘쳤던 걸까.

‘선배는 대단해요.’

그리고 같은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이면.

‘선배 손가락이…. 정말 좋아요.’

반드시 따라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쏴아아,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아이의 토사물을 대충 닦아 냈다. 고개를 들자 시커멓게 죽은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빛 없는 눈동자, 창백한 입술, 가칠한 뺨. 이 얼굴 어디에서 ‘잘나가던’ 과거를 찾아야 할까. 젖은 셔츠 앞섶을 툭툭 털며 복도로 나섰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복도로 나와 벽에 등을 기대자마자 주르륵 주저앉았다.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점심시간 전에는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 그 간단한 사실 하나가 죽도록 버거웠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꽂혀 들 날카로운 시선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토할 것 같았다.

전염성 강하고 목숨에 지장 없되 기절하도록 아픈 그런 병 없을까. 누구라도 옮겨 주면 안 될까. 일주일이라도 입원해서 잠만 잤으면 좋겠다…. 그러나 부질없는 망상에 허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여준은 곧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에 선배 같은 사람은 없어요.’

목소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준은 귀를 막는 대신 제 옆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뱃속이 울렁거렸다.

‘…선배.’

아내가 죽어서다. 젖먹이를 남겨 두고 혼자 죽어 버려서다. 장모는 당연하게도 당신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여준은 필사적으로 아이를 막아서고 버텼다. 아이가 장모의 집으로 가는 순간 남은 평생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던 탓이다.

부정(父情) 같은 건 아직도 잘 모른다. 아이가 대단히 예쁘다고 느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당시 여준에게 남은 유일한 존재였다.

또다시 속이 울렁였다. 차라리 시원하게 토하고 싶지만 어제 오후부터 먹은 게 없었다. 역류하는 신물에 목이 쓰렸다. 명치에 손을 댄 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전 열 시 반을 막 지나고 있었다.

‘선배, 선배는….’

그만 좀 해. 이제 사라져. 아픈 위를 좀 더 꽉 눌렀다.

‘꼭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굴어요.’

아이가 깼을지도 모른다. 장모가 오기 전에 병원을 떠나야 한다. 먼저 아이에게 인사하고, 곧 외할머니가 오실 거라 설명을 해 주고, 장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그때….

“…….”

그때….

‘혹시 정말로 안 들려요?’

긴 이명이 울렸다.

고막을 찢고 들어온 얼음송곳이 눈알 사이를 후비고 지난 듯했다. 코끝까지 찡해지는 두통에 눈을 꽉 감았다 뜬 여준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자는 것이 소원인 생활. 전화기를 들면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뒷골이 당겨 오는 이 끔찍한 일상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비틀려 온 것일까?

여준의 회상은 주로 은아가 죽던 날에서 멈추었다. 그날도 야근 중이었다. 은아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여준에게 전화로 잔뜩 화를 내고 친정에 가 있는 상태였다. 아이를 장모에게 맡기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회사 수면실에서 짧은 잠을 취하고 있던 여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장인이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야겠네.’

은아가 죽었다. 중앙선을 침범한 역주행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여준은 은아를 잘 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운전을 시작한 그녀는 웬만한 프로 운전기사보다도 실력이 좋았다. 그런 은아가 속수무책 죽음에 이르도록 큰 사고가 난 것이다.

은아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에 박힌 상태로 사고 발생 삼십 분 만에 죽었다.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고통이 동반된 죽음이었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여준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말끔히 닦인 은아의 시신뿐이었다.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은아는 한 사람이지만, 은아의 죽음은 은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귀애하던 외동딸을 잃어버린 장인장모, 엄마를 잃은 젖먹이 아이, 아내를 잃고 편부가 된 여준 모두의 문제였다. 그때부터였을까? 그토록 불행하고 갑작스러운 사고가 우리 모두를….

“…….”

또다시 이명이 울린다. 선배,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머릿속 깊은 곳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이 감각을 안다. 애써 머리를 흔들어 털어 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감각은 선명해질 뿐이었다.

고목처럼 우뚝 선 채 손을 뻗는 남자가 있었다. 그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처럼 꿋꿋해 보였다. 여준은 얼굴이 홧홧해지도록 마구 쓸어 올렸다.

“아니야.”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러나 또한 알고 있었다. 열여덟 나이에 저질렀던 실수, 상상 이상의 지독한 업보로 돌아온 어린 날의 치기가 아직까지도 견디기에 버거워 외면했을 뿐이다.

“…….”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지만 두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대는 기색이 느껴졌으나 그뿐이다. 응급실 복도에서 아픈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불행을 곱씹고 있는 사람은 여준 외에도 많았다.

“…괜찮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굳이 말을 거는 쪽이 오지랖이라고 봐야 한다.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여준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 참견하지 말고 꺼져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머리가 아픕니까? 의사를 부를까요.”

여준은 그가 아마 입원 중인 환자일 거라 생각했다. 말을 맺을 때마다 금속성의 물체끼리 비비는 듯한 쉰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듣기 좋을 만큼 낮고 허스키하지만 분명 아픈 사람의 목소리였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말….”

간신히 대답하는 여준의 눈앞으로 커다란 손이 쑥 드리워졌다. 척 봐도 단단하고 마디가 굵은 손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환자복도 아니다. 깨끗하게 다려진 셔츠 소매, 고급스러운 커프스 버튼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준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귀를 찢는 이명. 이어 끈끈하게 달라붙는 목소리.

‘선배.’

여준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온몸의 맥박이 날뛰기 시작했다. 등줄기가 흥건히 젖도록 식은땀이 흐른다. 덜덜 떨리는 손끝을 꾹 말아 쥔 채 그는 애써 되뇌었다. 어쩌면 이건 꿈이 아닐까, 그것도 아주 지독한….

깨어나고 나서도 한참을 시달리는 악몽.

“…너.”

여준은 교복을 입고 서 있던 그를 기억한다. 부스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새까만 눈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어린 그를.

‘선배.’

부르며 손을 내밀 뿐 그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던….

“너…, 너 왜…, 여기에….”

말을 쥐어짜던 여준의 어금니가 딱 부딪쳤다. 남자는 그런 여준을 보고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거칠고 단단해졌지만 그 눈동자만은 그대로였다. 검은자위가 크고 유난히 맑았다. 덕분에 얼핏 험악한 인상임에도 눈을 마주치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윽.”

주춤, 일어서려던 여준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남자는 한쪽 무릎을 대고 앉은 그대로 미동조차 없었다. 허억, 거친 숨이 차올랐다. 여준은 갑갑한 목 아래를 움켜쥔 채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네가…. 네가 왜.”

커다란 개처럼 순한 눈동자 사이로 긴 흉터가 그어져 있었다. 아직은 상처에 가까운 흔적이었다. 이마에서부터 미간을 지나 오른쪽 뺨까지 선명하게 팬 자국이 섬뜩한 위압감을 풍겼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힘껏 이를 악문 여준이 죽을힘을 다해 외쳤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이 새끼야!”

그러자 남자가 설핏 미소 지었다.

여준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눈앞의 남자에 대한 모든 것을 순서대로 떠올리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의 이름은 사현, 임사현. 눈물이 왈칵 솟는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호흡이 가빠진다. 지긋지긋한 스토커, 지우고 싶은 기억의 제일 안쪽…. 그리고.

“…오랜만이네요, 선배.”

2년 전, 여준의 아내를 죽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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