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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01. Lust (12/13)

외전 01. Lust

민아에게서 태민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왜 어렵사리 대기업에 입사해 놓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의아해했지만 나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끝난 사이에 그런 이유까지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정말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초여름이 성큼 다가온 약국은 여느 때처럼 손님이 많았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한숨 돌린 나연은 핸드폰을 꺼냈다. 모텔에 한번 들러 두고 간 물건을 가져가라는 미주의 연락을 받았다. 오늘 퇴근하면 곧장 들르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저녁엔 연석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 전에 들렀다 갈 셈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약국 앞으로 세단이 도착했다. 연석의 수하가 늘 그녀의 출퇴근을 신경 썼다. 출퇴근 시 그녀가 조금의 상처라도 입으면 모든 책임은 세단의 기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나연은 이전에 그녀가 살던 모텔로 향해 달라 부탁했다. 차는 아주 익숙하다 못해 그녀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골목으로 진입했다.

모텔은 주인이 바뀌고 새 단장을 했는지 입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새로 간판을 단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미주의 방 문을 두드렸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커피 향이 향긋한 방 문을 활짝 열고 미주가 튀어나왔다.

“야! 이게 얼마 만이야.”

“언니. 아, 은주 언니랑 희정 언니도 있었네.”

아직 모텔에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지 나연이 있을 때부터 묵었던 투숙객들이 미주의 방 안에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얘.”

“이게 얼마 만이야.”

나연은 잔뜩 사 들고 온 영양제와 선물용 과자를 던지듯 방바닥에 내려놓고 언니들을 향해 달려갔다.

학교를 다닐 때도 밤이 늦도록 투숙객 여자들과 수다를 떨곤 했었다. 그때 생각이 난다며 은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래서 학벌, 학벌 하는구나. 약사 됐다더니 멋있어졌어, 너.”

“너 남자 만난다며. 누구야?”

“이야.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결국 우리 나연이도 연애하는구나. 뭐 하는 사람인데. 잘생겼어?”

미주가 적당히들 하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음흉한 얼굴을 했다.

“우리 나연이 은근 장난 아니더라?”

“뭐가?”

“신음 소리가 어찌나 야하던지. 나 그때 너 때문에 한 판 더 했잖아.”

지난번에 연석과 모텔에서 섹스했을 때를 말하는 듯 보였다. 얼굴이 시뻘게지자 먹잇감을 찾던 하이에나들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하는 게 아니었는데.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자 미주가 대놓고 깔깔거렸다. 이렇게 하는 짓이 예뻐서 그 사람이 널 사랑하는가 보다고 속 편한 소리를 했다.

가져온 선물용 과자도 나눠 먹고 간단하게 맥주 한 캔을 마시고서야 나연은 모텔을 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차 문을 열었다.

모텔 앞까지 마중을 나온 미주가 어서 가 보라 손을 흔들었다. 나연은 또 오겠다며 손을 흔드는 미주를 꼭 껴안아 주고선 뒤돌아섰다.

“그래서, 같이 점심을 했다고?”

“네. 알고 보니까 우리 약국 건물 건물주분이신 거 있죠? 자주 남편분이랑 같이 약국에 오셔서 약 타 가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오늘 우리 약국 약사들이랑 같이 점심 먹었는데 좋으신 분 같더라구요.”

연석이 내민 와인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나연은 자른 스테이크를 크게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물오물 씹으며 연석과 눈을 맞추자 그가 가만히 웃는다.

“왜요?”

“아냐. 먹어.”

나연은 나이프를 놓고 다시 와인을 마셨다. 오늘 호텔 레스토랑에 온 이유도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는 연석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호텔에선 한 번도 그와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잠들기 전에 샴페인 한잔하자고 할까. 아니면 거품 목욕 같이 할까.

“오늘 들떠 보이네?”

“아, 호텔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준비하라고 시켜 놓을 테니까.”

이 호텔도 재문건설에서 시공한 호텔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호텔이 참 좋네요.”

“칭찬이야?”

“…네. 안목이 좋으신 거 같아요.”

농담처럼 웃으며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녀를 따라 그의 웃음도 바람처럼 흩어졌다. 기분 좋은 저녁 식사였다.

나연은 룸으로 들어와 고급스럽게 꾸며 놓은 인테리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멋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뷰에 정신이 팔려 등 뒤로 그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나연은 연석을 두고 욕실로 가 보았다. 그의 집만큼이나 넓은 욕실이 근사했다. 역시 샤워부터 먼저 하자고 하는 게 낫겠지.

“연석 씨, 우리 샤워….”

뒤를 홱 도는데 그의 가슴이 맞닿았다. 룸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그의 눈은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샤워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있지 않아?”

빤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거? 은근하게 그녀의 아랫입술을 문지르는 그의 손끝에서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뺨에 핀 옅은 열꽃을 그의 가슴팍에 푹 묻었다.

가만히 연석의 가슴을 끌어안고 있던 나연이 침대로 가 바지와 팬티까지 벗고 시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힐끔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쳐들었다. 늘 그가 원했던 것처럼 다리를 벌리고 좀 더 구멍이 잘 드러나도록 자세를 잡았다.

부끄러워 시트에 얼굴을 파묻었지만 나연은 원하는 것을 말했다.

“…밑에 혀 넣어 주세요.”

그의 구두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으로 침이 넘어갔다. 가까이 다가와 쪽 그곳에 입을 맞춘 그가 나연의 엉덩이에 잔 키스를 뿌렸다.

“나연아.”

그가 나연의 허리를 감싸고 추켜 올라간 엉덩이를 내렸다. 그리고 그와 마주 보도록 앉혔다.

벌게진 뺨으로 그와 눈을 맞추었다.

“네?”

“이제 곧 생일이잖아.”

생일? 나연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상치 못한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 생일. 맞다. 여름이 오기 전에 생일이 왔었다. 딱히 신경 쓰고 살아온 적이 없어서 생일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이 18일이니까 내일이었구나. 잊고 있었다.

“갖고 싶은 거 없어? 이 호텔이 마음에 들어?”

“네, 네?”

갖고 싶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안겨 줄 태세였다. 물론 그는 일적인 사안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해 끌어들일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로 보자면 그러고도 남을 눈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어도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나연은 스스로 앞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도 분명 알고 있을 테지.

나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너르고 단단한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말해 봐.”

그의 셔츠 단추를 툭, 툭 풀던 나연이 은근슬쩍 그의 바지 앞섶 위를 짚었다.

“이사님의 진심이 듣고 싶어요.”

굵직하고 두툼한 것이 만져졌다. 늘 그녀에게 최고의 희열을 안겨 주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리고 손을 그의 가슴 위로 올렸다. 심장이 뛴다. 나연에게는 아낌없이 열어 주던 품이었다.

“사랑하니까 다 준 거야. 네가 좋아하는 내 건 뭐든 다 줬잖아. 안 그래?”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나연의 마음을 단번에 눈치챈 그가 웃음을 띤다.

“내 품도 네가 물고 빨고 못 사는 자지도, 내가 사랑하는 너니까 준 거잖아.”

“연석 씨.”

사랑한다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뭐, 변태 플레이 하자고?”

나연은 감출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바지 버클을 풀고 드로어즈를 내렸다.

“그 전에.”

그가 솟아올라 꺼덕거리는 페니스를 두고 반짝거리는 반지를 그녀의 왼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쇄골께로 그의 거친 숨이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음탕한 모습으로 반지를 끼워 주는 남자라니. 사랑한다는 말로 이미 생일 선물은 다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생일을 챙겨 준 감격에 울먹이며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아, 그가 너무 좋아.

그렇지만 나연은 가슴이 울컥거려 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항생젠데요, 약효가 센 편이라 식사 전에 드시면 속이 쓰릴 수도 있고, 어지럼증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꼭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드세요.”

나연은 주름진 할머니 손에 약 봉투를 꼭 쥐여 주었다. 약사 선생이 친절하게 잘 설명해 줘서 알아들었다고 대답한 할머니가 약국을 나갔다.

나연은 처방전을 정리하다 말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생일이라고 애인한테 선물받은 거예요?”

약국장이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아, 네.”

“나연 씨, 생일 축하해요. 크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퇴근 시간을 좀 앞당겨 줄 순 있지.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요. 그래 봤자 30분밖에 안 남았지만.”

나연은 약국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곧바로 약국을 나왔다. 오늘 퇴근 시간에 맞춰 직접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벌써 그의 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연을 발견한 성식이 조수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나연은 연석이 있는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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