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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흐트러진 진심 (9/13)

08. 흐트러진 진심

눈을 뜬 건 해가 넘어가는 오후였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석양빛 덕분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하루를 꼬박 잠들었었단 말인가. 출근, 출근을 해야 하는데. 나연은 부스스한 눈으로 허리를 일으켰다.

자신이 속옷도 없이 원피스만 걸친 상태라는 것을 안 건 이불을 젖혔을 때였다. 아래가 허전했다. 팬티가 없는 건 그때 태민에게 빼앗겨 벗겨진 거라 그렇다 치지만 브래지어를 안 입고 있는 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하나 놓인 텅 빈 공간이었다. 처음 보는 공간.

“…….”

대체 여긴 어디일까. 머리가 띵한 건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몸은 여전히 힘이 없었다.

태민이 그녀의 위로 쓰러졌고, 그녀가 동시에 기절한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나연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거실엔 커다란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침대 근처의 나무 의자에는 연석이 앉아 있었다.

나연은 주춤대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푹 잤어?”

“…이사님.”

“앉아.”

그가 맞은편에 있는 침대를 향해 턱짓했다. 나연은 잠깐 망설이다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침대가 푹신하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침대처럼.

“밤이 길 거 같은데, 차부터 한잔할까?”

“…괜찮아요.”

“앞으로 목이 많이 따가울지도 모를 텐데, 그래, 그럼.”

“근데 여기 어디예요?”

“여기가 어딘지 묻기 전에 먼저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아?”

평소의 그처럼 나긋나긋한 어조인데 나연은 전신이 굳었다. 그의 눈은 조금도 웃지 않고 있었다.

“거짓말까지 해 가며 만난 남자랑 눈물의 재회라도 했으면 그 남자라도 찾든가, 그것도 아니고.”

“…….”

“애타게도 기다렸던 거 같은데 말이야.”

언제부턴가 그는 알고 있었다. 태민이 단지 과거의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시커먼 미련이었다는 것을, 그는 어느 순간 알았을 테다.

연석이 잠시나마 흔들렸던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걸까.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 푸느라 정신이 없던데, 내가 방해한 건가?”

분명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는데 몸이 굳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민이 그녀의 위로 쓰러지던 어젯밤, 시커먼 무언가를 본 듯했다. 연석의 수족들이 분명했다.

“…이사님.”

“너 여태 그 새끼 대용으로 나랑 씹한 거야? 갖고 놀았어?”

침묵만 흐를 뿐인데도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다. 띠고 있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집어치웠다.

“말해 봐, 궁금하니까.”

어차피 거짓말 같은 거 소용도 없는 남자였다. 더 이상 그에게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과거를 말하는 거라면 자신의 의도도 완전무결하지 못했다.

“맞아요. 그 사람 잊지 못했던 상태였어요. 그 사람 지우려고 발버둥 치다 이사님 만났어요. 그래서 섹스도 한 거고, 이사님 따라나섰던 거예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감히 누구를 가지고 놀았는가 새삼 상기돼 소름이 돋았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닌데. 그 말을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총에 맞던 날에도 미동도 없던 그의 눈이 떠올랐다. 남자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겠지. 이 남자에게 그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래서 그 새끼 대신 이용한 나한텐 만족했고?”

나연은 답을 하지 않을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나연아.”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오며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뭘 그렇게 떨어.”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아무리 물려도 등 뒤에 있는 건 너른 침대뿐이었다.

“아, 그 남자, 보고 싶겠구나. 안 그래도 손님으로 초대했으니까 한번 보여 줘, 우리 나연이가 얼마나 잘 먹는지.”

“손님… 이요?”

이 공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말에 나연은 당황해 원피스 아랫단만 뜯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이 테이프로 감긴 태민이 성식의 손에 끌려 들어왔다. 성식은 연석이 앉아 있던 의자에 태민을 앉히고 손발을 의자에 묶었다. 할 일을 마친 성식이 거실을 나간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태민… 오빠.”

의자에 몸이 묶인 태민이 나연을 향해 발버둥을 쳤다. 침대에서 내려와 태민에게로 손을 뻗는데 연석이 나연을 막아섰다. 그녀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연석을 올려다보았다.

“연석….”

“뭐 해. 벗고 올라가.”

침대를 향해 고갯짓한 그가 느긋하게 시계를 풀고, 커프스단추까지 풀었다. 소매를 올려 접은 그가 바지 지퍼를 내렸다. 여기서 섹스할 생각이다, 그는. 나연은 연석에게 달려가다시피 안겨 고개를 저었다.

“시, 싫어. 여기선 안 돼요.”

애원에 가까웠다. 연거푸 우는 소리로 애원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쯧, 하고 혀를 차는 목소리에 자비 따위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기어이 태민 앞에서 추태를 부리라는 눈에 나연은 온몸으로 그에게 부둥켜 안겼다. 안 돼. 이러지 말아요.

흐르는 눈물을 그의 가슴팍에 닦는데 연석의 얼굴이 귓가로 내려왔다. 나연은 고개를 들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바득 껴안았다. 몸이 들리듯 그의 가슴으로 달라붙었다. 한숨처럼 긴 그의 숨이 귓가를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날개뼈를 더듬어 안자 그가 그녀의 몸을 들어 침대 시트에 눕혔다. 태민이 보는 앞에서 하겠다는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놀라 아등바등 도망가려는데 찰나에 허리가 붙잡혔다.

옆으로 등을 돌려 돌아누운 나연이 다리를 벌리지 않으려 발목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애써 다리를 닫은 수고가 무색하게도 그의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와 부드럽게 음부 전체를 비볐다. 어젯밤 태민에게 무참히 만져지며 그녀가 그리워했던 그 손이었다. 그 촉감.

나연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면서도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래서 아무런 속옷도 입혀 놓지 않았던 거다.

“왜, 저 새끼 보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넥타이를 풀며 침대로 온 연석이 신랄하게 비꼰다. 중지로 음순 사이를 보들보들하게 쓸던 그가 위험하게 웃었다.

“너 원하는 대로 만나게 해 주겠다잖아.”

연석은 그의 아래서 아이처럼 떨고 있는 그녀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야들야들한 음순이며 질구를 손으로 쓸어 주자 그의 것이라는 듯 살결이 손 마디마디로 착 달라붙는다. 여기선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듯 나연이 몸을 말아 웅크렸다.

원피스 아랫자락을 저리 밑으로 끌어 내려 봤자 이렇게 아랫도리는 전부 그의 손에 있는데. 이 음탕한 몸으로 붙어먹었던 남자가 저 남자였다니. 연석은 그가 없던 시간을 공유했던 남자가 한낱 저딴 새끼라는 게 못마땅했다.

“흐… 안, 돼….”

“정말 안 돼? 언제까지 고자세로 나올지 궁금하네.”

그는 시트 위에 널브러져 있는 약통 하나를 가져와 열었다. 의자에 묶여 있는 하태민이 몸부림친다. 연석은 거뭇거뭇한 미약 크림을 듬뿍 퍼, 늘 그의 페니스가 짐승처럼 드나들며 외롭지 않게 박아 주던 구멍 안으로 욱여넣었다.

“하앗, 아응, 아. 이게 뭐, 뭐….”

좁은 구멍 밖으로 크림이 미어터져 밀려 나올 때까지 한 차례 더 쑤셔 넣었다.

옆으로 두 다리를 포개고 있어 구멍 속으로 빠듯하게 들어가는 조임이 배로 강해졌다. 크림을 물고 빨아들이느라 질벽이 꾸물꾸물 손가락을 조여 댔다.

“아응….”

연석은 회음을 타고 흐르는 크림까지도 훔쳐 질구로 밀어 넣었다. 생경한 크림의 촉감이 아래로 쳐들어오자 그녀가 놀라 울먹거린다.

“네 전 애인한테 물어봐. 이게 뭔지.”

그녀의 은밀한 내부로 넣어 둔 손가락을 보란 듯이 슬쩍슬쩍 흔들어 고르게 크림을 발라 주자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태민이 발버둥을 친다.

괴로워하는 하태민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그는 진한 만족을 느꼈다. 하태민의 집에서 크림이 담긴 약통을 발견했다. 여차하면 미약이라도 써서 그녀를 가질 생각이었겠지. 송나연 하나만 바라보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다른 남자와 붙어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꼭지가 돌아 버린 거다. 쯧. 저질스럽게 놀겠다는데 저질스럽게 받아쳐 줘야 하지 않겠는가.

급작스럽게 파고든 크림에 놀라 접고 있던 그녀의 두 다리가 조금 벌어진다.

잔뜩 미약이 발린 질구가 벌어졌다 닫힐 때마다 크림이 착실하게 빨려 들어가 질 안을 녹작지근하게 자극한다. 그러라고 만든 약이었다. 아랫배를 들썩거리며 연신 헉헉거리기 시작하는 그녀만 봐도 약효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앙, 하, 아… 여, 연석… 여기가 이상, 뜨거… 아앙.”

약 기운이 오르기 시작하는지 어느 때보다 간드러지는 교성이 터졌다. 그 와중에도 정신을 챙기려는 그녀가 태민을 의식하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연석은 손을 뻗어 꽉 틀어막고 있는 손바닥을 떼어 냈다.

“으응, 아앙, 앙.”

다시 틀어막으려는 손바닥을 저지시켰다. 나연이 흥분으로 달아오른 몸을 연신 들썩거린다.

“흥분제까지 쓰면서 재밌게 놀려고 그랬어? 나만 빼고 둘이? 아, 그간 좆은 내 거 먹으면서 사실은 저 새끼를 기다렸던 거니까. 그지?”

마음대로 몸이 따라 주지 않는 건지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자위가 촉촉했다. 얼마나 버티나 느긋하게 관망하자, 끝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간 그녀의 손가락이 음부 주위를 맴돌다 꼼지락거리며 자위를 시도한다.

“참, 우리 나연이 혼자 하는 거 좋아했었지. 자. 내 이름 부르면서 해.”

연석은 그녀가 편히 자위를 할 수 있게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질구 위로 손가락을 올려다 주었다. 침대 발치 쪽 의자에 앉아 있는 태민의 시야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다. 연석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위를 하라고 강요했다. 흡족스러웠다.

부드러운 살결 안으로 손가락이 움푹 짓쳐 들어가자 그녀가 진저리를 친다. 연석에게서 멀어지려 버둥대면서도 찾아온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토해 냈다.

“으응, 응. 연, 연석 씨, 앙.”

의지를 배반하는 몸은 좀 더 농도 짙은 쾌감을 얻기 위해 몸부림쳤다. 미약 크림이 듬뿍 발린 구멍 속으로 작은 손가락 두 개가 푹푹 자취를 감출 때마다 찌걱거리며 크림이 밀려 나왔다.

“하으, 앗, 하읏.”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태민의 앞에서 필사적인 피스톤질을 하던 그녀가 시트 자락을 잡아 뜯는다. 그새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칼이 안쓰럽게 젖어 있었다. 연석은 그녀의 곁에 앉아 벌겋게 짓무른 눈가를 쓸어 닦아 주었다. 찐득하게 들러붙었다 떨어지는 살결이, 그간 그와 얼마나 붙어먹은 몸뚱어리인지를 반증하고 있다.

송태성의 전화를 받고 술집에 갔었을 때도 그랬었다. 쳐다보는 눈도, 붙잡는 손도, 앙다물려고 애쓰는 입술도, 어딘가 처연한 여자가 자꾸만 눈길을 붙잡아 가두었다.

“계속해. 잘 하고 있어.”

손을 잡아먹으려는 구멍은 내내 벙끗거리는데,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세차게 들썩거리던 손가락의 왕복 운동이 느려졌다. 힘이 빠진 것이다.

퐁, 뽑혀 나온 손가락을 쪽쪽 빨아 먹는 나연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간 그가 가르친 대로 움직였다. 무조건 자위 후엔 손가락을 휘감은 점액을 남김없이 빨아 먹도록 가르쳤다. 이토록 차연석에게 맞춰진 몸이면서 누굴 기다렸다는 건지. 연석은 대놓고 조소했다.

결국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엉금엉금 기어와 느긋하게 앉아 있는 연석에게로 답삭 안겼다. 한계가 넘도록 홧홧해진 질 내는 어서 굵고 단단한 것이 들어오길 고대하느라 주룩주룩 정신없이 애액을 흘려 대고 있다.

“아흐으으, 제, 제발.”

도움이라도 청하는 듯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꾹꾹 바투 쥐었다. 쥐는 손가락이 이러다 무슨 사달이라도 날 것처럼 후끈거렸다. 딸꾹질을 하는 그녀의 두 눈이 반쯤 풀려 있다.

“저 새끼 앞에선 절대 싫다며, 나연아.”

부드러운 어조로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턱을 만지자 그 가벼운 접촉에도 신음을 흘린다.

“하응아앗.”

울컥울컥, 아직 페니스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질구는 정액이라도 토한 듯 엉망이었다. 나연이 두 손을 뻗어 연석의 목을 끌어안았다. 단단한 가슴에 매달려 그의 사타구니 위로 가랑이를 맞추고 육감적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자지러지듯 벌렁거리는 구멍 새로 녹은 크림이며 애액이 흘러 바지가 더러워졌지만 연석은 상관하지 않았다. 정신을 옳게 챙기지도 못하면서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나연의 감은 눈 아래로 눈물이 방울방울 흐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내내 울음이다.

“뭘 잘했다고 울어. 저 새끼 앞에선 울지 마.”

거의 엎어지듯 그의 가슴팍에 눌어붙어 시키지 않았는데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의 자지를 이용해 압박 자위를 시작했다. 녹아 버린 솜사탕처럼 그의 가슴팍에 달라붙은 나연이 본능적으로 좆을 중앙에 놓고 삽입 섹스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흔들었다. 연석은 손을 뒤로 짚어 그녀의 무게를 가뿐하게 지탱했다.

“아흥, 앙!”

“보지를 더 눌러야 압박이 되지, 그래.”

행여 딱딱하고 굵직한 이 성기를 놓칠까 그녀가 바지런히 질 입구를 누르며 자위했다. 골반을 앞으로 미당겨 탱탱하게 올라붙은 클리토리스까지 놓치지 않고 압박하는 나연의 허리선이 춤을 추듯 요동친다. 연석은 자지만 대 주고서 철저히 그녀를 방관했다.

“하응, 응, 아음….”

쫓기듯 들썩거리는 허리가 부드럽게 꺾였다. 연석은 그녀의 원피스를 올려 벗겼다. 동그란 가슴이 애처롭게 흔들리기도 잠시, 다시금 약에 취해 흐물흐물 풀어진 밑을 자극해 줄 성기를 찾는다.

“아흐윽, 하, 너, 넣어 주, 주세.”

달달달, 떠는 손으로 연석의 바지 지퍼를 내리는 그녀의 손을 붙잡자 도리질을 하며 보챈다.

“네 애인 좆도 아닌데?”

“안에 넣어서… 흐, 흔들어… 하응.”

“전 애인이 저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해도 되겠어? 응?”

연석은 팔이 묶인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태민을 휙 턱짓하며 물었다. 제대로 답도 하지 못하고 희끅희끅 그녀가 울며 넘어갔다. 이미 발가락이 있는 대로 접혀 있었다.

“응, 아앗!”

흥분이 극에 달한 불구덩이 새로 흐르는 묽은 액체가 그녀의 허벅지를 적신다. 볼록하게 살이 오른 음핵을 만져 주자 기다렸다는 듯 줄줄 흐르는 물이 그녀의 상태를 가늠케 했다.

“어서, 어, 어서. 빨리 안에….”

연석은 느긋하게 쿠션에 등허리를 기댄 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곧장 그녀의 몸을 끌어와 침대 밑에 있는 태민과 마주 보도록 그의 허벅지 위로 앉혔다.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등이 보였다. 연석의 구두를 울먹이며 쳐다보는 나연이 두 손으로 눈가를 닦는다.

태민과 마주 보며 하는 섹스, 그녀에겐 더없이 가혹한 벌일 걸 알면서도 그는 자비 없이 굴었다.

“어쩔 수 없지. 자, 해. 대 줄 테니까.”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과 치열하게 싸우는 나연이 그의 지퍼를 붙잡고 찰나 고민한다. 그녀가 엉덩이를 슬쩍 들자 그새를 못 참고 물이 흐른다.

구멍 안 사정은 지랄이 났으면서 하태민 앞이라고 고민이라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싫으면 나오든가. 딜도라도 줄 테니 해.”

“아, 아니야. 아니.”

몸을 가누지 못해 달달 떨기까지 하던 나연이 결국 연석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페니스를 꺼낸 그녀가 늘 하던 대로 앞서 귀두를 쭙 빨았다.

자세가 여의치 않아 납작하게 상체를 붙이고 엎드리더니 다급하게 자지에 침을 묻혀 올라온다. 툭 튀어나온 힘줄을 따라 손대지 않아도 힘 좋게 꺼덕거리는 기둥까지.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간 함께 즐겼던 섹스의 패턴을 정신을 놓고 있는 와중에도 기억하고 있는 그녀가 기특했다. 그간 밤낮없이 붙어먹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벌겋게 달아 익은 구멍 안쪽이 고스란히 그를 향해 드러난다. 밤마다 예뻐해 준 구멍이었다. 그대로 기둥을 꽂아 주면 정신없이 먹어 해치우던 그곳이었다. 그의 흔적들로 범람하는 몸이었다.

“내 자지 빠는 거 네 전 애인이 쳐다본다.”

툭 입 안에서 페니스를 뱉어 낸 나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제가 무의식중에 무엇을 했는지 인지하는 자태가 황홀하다. 그러면서도 떠나가 버린 이성을 끝내 잡지 못해 미끄러지는 페니스를 꽉 움켜쥔다. 그는 그 모습에 거리낌 없이 웃어 댔다.

“자, 너 좋아하는 저 새끼 보면서 넣어.”

가까스로 허리를 일으키고 페니스를 세운 나연이 음부 주위를 가쁘게 문질러 입구를 찾았다. 눈을 들면 하태민이 보여 고개를 들지 않으려는 그녀의 목덜미가 자꾸만 아래로 떨어진다.

“고개 들어. 저 새끼 눈 보면서 다시 넣어.”

애써 반쯤 삽입해 놓은 기둥을 훅 거칠게 잡아 빼자 나연이 아쉬움에 앙앙거렸다.

“쟤 볼 때까지 다시 할 거니까 똑바로 해.”

흐느낌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에게 우악스레 페니스를 다시 쥐여 주었다. 뜨거운 입김이 서린 귀두가 빳빳하게 섰다. 하태민과 두 눈을 맞추며 선단을 질 구멍 안으로 더듬어 끼우는 그녀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잔뜩 예민해진 귀두 끝이 질구 안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그는 하체를 살짝 틀어 하태민의 정면으로 각도를 조정했다. 연석은 희열을 곱씹으며 무릎을 좀 더 세워 그녀의 지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아아!”

“움직여.”

연석은 땀이 흥건한 나연의 등을 보며 포악하게 지껄였다.

“약 더 넣어?”

하지 않으면 조치를 더 취하겠다는 말에, 그의 두 무릎을 잡고서 정신없이 페니스를 안으로 찔러 넣기 시작한 나연이 혀까지 빠끔 낸 채 입을 벌리고 교성을 터트렸다. 그녀의 아랫입술에 고인 침이 뚝뚝 떨어졌다.

“아앙! 하앙, 앙!”

쑤걱쑤걱, 돌기가 안을 헤집고 보드라운 점막을 마구 짓눌러 지스폿을 비빌 때마다 흥분액이 그의 바지를 적실 만큼 흐른다.

평소보다 안이 배로 뜨거웠다. 페니스를 꽉 조이는 내벽도 경련하다시피 물어 댄다. 좁은 구멍을 넓히며 힘껏 올려 꽂힌 성기가 그녀의 안에서 쾌락에 떨었다. 연석은 미약 크림이 한데 뒤섞여 뜨거워진 그녀의 점막을 있는 대로 만끽했다. 어느 때보다 격한 교합에 같이 취하기라도 한 건가, 그는 흐트러진 호흡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아아앙! 아, 하읏, 흐응!”

아아, 지금쯤 쾌감이 최고조에 오른 그녀의 표정이 끝내줄 텐데, 그걸 하태민에게 뺏긴 것이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지. 송나연과 그의 섹스를 감상하는 하태민의 얼굴도 볼만했다. 송나연만큼이나 울고 있었다. 울음의 종류는 달랐지만.

“나연아, 어때, 말해 줘야 알지.”

말뚝 박듯 깊이 박혔다, 얼기설기 애액을 휘감은 채 쑥 뽑혀 나오는 페니스가 하태민의 시야 안으로 또렷하게 보인다. 보기 딱할 정도로 쑥대밭이 된 하태민의 얼굴만 봐도 짐작 가능했다. 그러라고 마련해 놓은 상석이었다.

“네 전 애인 거보다 맛있어?”

“응. 하읏, 아아!”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나연의 모든 신경은 성기를 끼워 맞추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게 또 귀여웠다. 조금이라도 추삽질이 느려진다 싶으면 손으로 박힌 곳을 만지며 성기의 존재를 연거푸 확인하고서야 안심한다. 우둘투둘한 성기의 핏줄이 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손가락으로 비벼 보고서 기분 좋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약효가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그녀의 이성적 사고를 옥죄고 들었다. 눈앞의 옛 연인 따위보다 그와의 섹스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걱정 말고 만져. 너한테 늘 싸 주던 거잖아. 내가 언제 너한테 아낀 적 있었어.”

“빼, 빼지 마. 흐읏.”

눈물 젖은 얼굴로 힐끔 뒤를 돌아보는 그녀가 예뻐 흔쾌히 그러겠다, 웃었다. 연석은 허리를 일으켜 그녀의 고개를 돌리고 정신없이 혀를 섞었다. 하태민이 보란 듯이. 쪽쪽, 입술이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가슴 안쪽이 찌릿거린다. 맨몸을 맞대고만 있어도 환장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송나연은 이미 제 여자였다.

성기를 먹겠다고 색스럽게 흔들거리는 엉덩이 두 쪽을 짝, 때렸다. 그는 더없이 달콤하게 물었다.

“어디다 싸야 하는지 말해야지. 잘하잖아, 우리 나연이.”

“하읏, 응! 아아! 흑, 아, 안에.”

“안 들려. 저 남자 듣고 있잖아. 크게 말해 줘야지.”

“어, 얼른, 정액. 안에 싸 주, 흐응, 아! 정액….”

대답마저 힘에 겨운지 탈진하다시피 풀썩 뒤로 기대어 넘어오는 그녀의 허리를 바투 잡고 골반을 미친 듯이 쳐올렸다. 그녀의 등이 연석의 가슴 위로 완전히 붙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질구 사이로 미칠 듯한 속도로 드나드는 페니스를 숨김없이 하태민 앞으로 들이밀어 보였다. 연석은 더욱 그 난잡한 광경을 감상하라고 나연의 두 다리까지 벌려 주었다.

“알았어, 네가 만족할 때까지 싸 줄게.”

모든 것이 하태민의 눈 안에 담긴다. 그의 성기를 빨아 먹을 때마다 음란한 소리를 내는 구멍, 페니스를 크기대로 받아먹느라 연신 넓어지는 입구,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애액, 그것과 함께 뒤섞인 남자의 음액, 그 모든 것이.

“아아아!”

탁탁 무릎을 세워 골반을 튕길 때마다 황홀한 교성이 사정없이 터졌다.

송나연, 정염에 겨운 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지만 나연은 답할 수 없었다. 머릿속까지 진탕 헤집어 놓는 어찔함에 숨 쉬는 법도 잊고 페니스를 달라 울었다. 더, 더 갈구하고 싶은 배덕한 오르가슴, 태민의 앞에서 달아나고 싶은 수치스러움. 모든 것이 난장판이 되어 그녀를 뒤흔들었다. 한 가닥 끈처럼 붙잡고 버티던 정신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것처럼 눈앞이 희뿌옜다. 그를 향한 본능만이 남은 몸은 요부처럼 울었다.

태민과 눈을 마주하고 있지만 난잡하게 쑤셔지는 구멍 전체가 눈물이 날 만큼 황홀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의 교접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 흥분의 불씨가 일었다. 다잡으려던 마음이 넝마처럼 풀어져 입 밖으로는 더, 더 넣어 달라는 상스러운 애원만이 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미 의지를 잃은 몸뚱어리는 연석의 성기만을 열망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나연은 제발 싸 달라고 울부짖었다.

약 효과가 떨어지기 전까진 이 집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연 역시 직감했다.

희끗거리는 시야로 눈물로 얼룩진 태민의 얼굴이 보였다. 어쩌면 연석이 내민 손을 잡은 순간, 지금 이 사달은 정해진 수순일지도 몰랐다.

약은 남아 있던 한 줌의 의지마저 앗아 갔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머릿속 어딘가가 증발해버린 기분이었다.

연석은 나연이 원하는 대로, 아니, 그가 원하는 대로 그녀의 가장 깊은 안쪽에서 정액을 있는 대로 내보냈다. 하태민이 버둥거리며 무너진다. 연석은 일부러 박아 둔 페니스를 빼내 구멍에서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정액까지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하태민의 괴로워하는 신음을 들으며 연석은 허공으로 남은 정액을 내보냈다. 약 기운이 가시기는커녕 더욱 달아오른 나연의 몸 전체가 후끈거렸다.

나연이 흐느적거리며 페니스를 빨기 위해 그의 다리 사이로 엎어지듯 코를 처박는다. 더 박아 달라는 둘만의 신호였다. 쭙추읍, 사정을 하고도 멀건 액을 질질 싸 대는 요도를 다급히 머금고, 남은 정액까지 삭삭 뽑아 먹는다. 풀린 눈은 약효에 잠식당해 초점을 잃었다. 아니, 질투에 눈이 멀어, 나연을 온전히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을 놓은 건 그 일지도 몰랐다.

“아흐으, 음.”

“잘했어, 이제 모로 돌아누워 봐. 옆에서 박아 줄 테니까.”

연석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연을 가슴에 안았다.

***

나연이 깨어나 마주한 곳은 익숙한 배경이었다. 모노톤 벽지에 깔끔한 콘솔이 보였다. 눈을 깜빡였다.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 왔다. 전화가 왔다. 진동 소리. 핸드폰?

핸드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하태민의 차에 두고 온 기억이 나는데.

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콘솔 위, 잃어버렸던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연석이 가져다 놓은 거겠지. 복잡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가져왔다. 끙, 상체를 숙이는데도 입에서 아픈 소리가 나왔다.

약국이었다. 나연은 짧은 한숨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네. 약국장님.”

- 나연 씨,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긴 들었어.

“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문안도 못 오게 하고. 목소리도 다 쉬었네. 출근 걱정은 말고 당분간은 푹 쉬어요.

이 또한 연석이 손써 놓은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나연은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자, 침묵만이 느껴졌다. 집 안엔 아무도 없는 걸까. 침대 아래로 발을 디디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가운을 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섶이 벌어진 가운을 여미고 방을 나왔다. 고요한 침묵이 돌았다. 방이 아니면 거실과 서재, 주로 그곳에 있는 연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선 출근을 한 듯했다.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빈집만 내려다보고 있던 나연이 소파에 앉았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태민과 깔끔하게 끝내자 했던 다짐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바보 같았다. 바보 등신 같은 미련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연석에게도 태민에게도 상처만 줬다. 결국 보고 싶지 않았던 끝을 보고서야 모든 것이 끝이 났다.

“…….”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나연은 힘없이 핸드폰을 올렸다. 미주였다.

“응, 언니.”

- 잘 지내? 왜 요즘 연락이 이렇게 없어. 이사 갔다고 이제 끝이야?

“미안. 요새 정신이 좀 없었어.”

- 그래. 그런 거 같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야, 참! 이틀 전인가 그 새끼 전화 왔었어. 너 아직도 여기 사냐고. 내가 욕 한 사발 퍼부어 줬다.

“…그랬어? 이제 그럴 거 없어, 언니. 그 남자 다신 전화 안 할 거야.”

- 뭐야. 벌써 만났어? 너 설마 그 새끼 다시 만나는 거 아니지? 야, 뺨이나 한 대 때리고 오지. 아니면 거시기를 그냥 확!

“응. 그래 줬어.”

가운 하나 걸친 채 맨다리 그대로인 발을 내려다봤다.

마음이 공허했다. 눈을 감으면 어제의 일이 생각나고 눈을 뜨면 텅 빈 집이다.

약에 취해 채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그에게 손을 뻗어 앙앙대고, 쉴 새 없이 태민과 눈을 마주쳤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마를 짚으니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가 핑핑 돌고 어지럽다. 약 기운은 벌써 떨어졌는데, 어젯밤 혹사하다시피 한 섹스 때문인 건가.

일도 사랑도 모든 것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자괴감, 죄책감,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상처. 모든 것을 털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제가 못나서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 심지어 스스로에게까지 상처를 준 것이다.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건너온 강이다. 돌이킬 수 없으니 피하기라도 하고 싶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나연은 문밖을 지키고 선 연석의 수하에게 다가갔다.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집을 나섰다. 이젠 그의 수하들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경호를 서는 남자들은 더는 숨기려 들지도 않았다. 나연은 피로 회복제를 사러 가는 듯이 눈앞의 약국으로 들어간 후 뒷문으로 급히 빠져나가 다가오는 택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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