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위험한 일탈
“아니, 애가 왜 이틀째 울고만 있냐고.”
“이거 미친 새끼 아냐. 애 접대를 네가 시켜 놓고 내가 어떻게 알아. 저 금수만도 못한 새끼는 자기 동생 팔아 놓고 저런 말이 나와? 아무리 반쪽짜리 동생이라지만 저게 사람 새끼가 할 짓이냐고.”
“그 재문 이사라는 남자 한 번 더 받아야 한다니까. 저년은 왜 질질 짜고만 있어. 장사하는 집에서 재수 없게.”
“이, 시팔, 진짜.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너 너무한 거 아니냐? 나연이한테 그 짓거리가 시키고 싶어?”
“지랄하네. 네년들이 매일 하는 짓이야. 정신 차려.”
“우리랑 같아 나연이가?”
“뭐가 다른데. 저년 손모가지는 금테를 둘렀냐? 너나 나나 쟤나 다 똑같아. 그리고 씨팔. 술 따르는 게 뭐가 어려워. 손모가지만 있으면 다 하는 거지. 재문 이사가 돈을 얼마나 쓰고 간지 네가 알아? 알고나 씨불이는 거냐고, 지금. 너희가 한 달 치 팔아도 다 못 버는 돈을 그 재문 이사라는 남자가 쓰고 갔다고.”
“저런 시팔놈도 오빠라고. 어휴.”
유리가 뒤를 힐끔거리며 대기실에 앉아 무릎 안에 고개만 파묻고 있는 나연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아니, 누가 몸을 주래, 밑을 팔래. 술이나 따르고 오면 되는 걸, 그걸 왜 못 한다고 지랄이냐고.”
“미친 새끼. 조금 있으면 몸까지 팔라 할 새끼가 말만 번지르르. 애 그만 보내 줘. 그 정도면 많이 챙겼잖아.”
유리가 나연을 감싸고돌았다.
“원래 이쪽 일 하는 애면 모를까, 이런 쪽으론 발도 안 들이던 애가 손님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것도 싫다는 애를 억지로.”
“아주 저년 대변인 납셨네.”
나연은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고 겨울잠이라도 자듯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울음은 사실 그쳤지만 그때부터 말도 안 되게 무기력해졌다.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애들과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작성하다 만 이력서를 마저 만들고 싶어졌다. 그냥 평범하게 다른 애들과 섞이고 싶어졌다.
민아랑 딸기케이크도 먹으러 가기로 했고, 교수님 자료 정리도 도와주기로 했다. 평범한 생각들을 하기로 했다. 태성만 아니었으면 그녀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궂은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사랑 아래 자랐다. 가끔 오빠의 행패가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엄마 아빠가 꼭 약사가 되라며 없는 살림에 약대까지 보냈다. 어쩌면 행복한 인생이었다. 그래. 좋은 생각만. 좋은 생각만.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오고 다니는 소리들이 소음처럼 들려왔다.
“얘. 나연아.”
나연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유리였다.
“얼른 가 봐. 태성이 지금 없어.”
“…찾으러 올 거예요.”
“미친놈 상대하다간 너도 미쳐. 그냥 가. 제정신 아냐. 그 새끼.”
어서 가라 등을 떠미는 여자가 나연의 손을 잡고 입구까지 이끌었다. 어서 가라고 밀어내는 여자는 자긴 모른 척하겠다며 문을 닫았다.
나연은 서둘러 모텔로 향했다. 유리가 쥐여 준 돈 몇 푼으로 택시를 탔다. 쑥대밭이 된 방 안은 태성이 한바탕 뒤집어 놓았던 그대로였다.
나연은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몸에 묻은 룸살롱의 냄새를 깨끗하게 씻어 냈다. 이틀째 눌어붙은 화장을 벗겨 내지 못해 얼굴이 엉망이었다. 온몸을 빠득빠득 씻고, 머리를 채 말릴 새도 없이 난장판이 된 방 가운데에서 가방만 챙겨 그대로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사실 계절 학기도 끝나 수업은 없었지만 학교로 가고 싶었다. 친구들 틈에 섞이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었다.
이젠 그녀의 편이 되어 줄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하늘 아래 남겨진 게 같은 아빠의 피를 나눠 가진 태성과 자신, 둘뿐이었다. 열람실에 몸을 숨기듯 앉아 책과 취업 관련 자료들을 폈다. 이러지 않았는데 집중력이 바닥이다.
“나연아, 학교 왔네? 넌 어째 시험 끝났는데도 공부야.”
“면접 준비도 해야 하고. 교수님 자료 정리도 도와드릴 게 있어서요.”
“너 잠 못 잤어? 퀭해 보이네.”
상윤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꿀물 병 하나를 건넸다.
“저녁이라도 같이 할래? 안 그래도 민아 여기서 만났어.”
돌아보자 열람실 안쪽에 앉아 있는 민아가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제약 회사 취업을 준비 중인 민아는 방학 이후 도서관 붙박이가 되었다. 저녁 같이 하러 가자는 제스처에 나연은 가방을 뒤적이다 말고 제 지갑을 태성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지갑 안 가져왔어? 내가 사 줄 테니까 가.”
“…아. 사 먹을 돈 있어요.”
나연은 아까 택시를 타고 남은 잔돈을 꺼냈다. 딱 학식 하나 사 먹을 돈이 남아 있었다. 공부에 찌들어 좀비처럼 숟가락을 드는 학우들 사이에 세 사람이 자리했다. 좋아하는 돈가스를 골랐는데도 몇 점 넘어가지가 않았다. 나연은 샐러드 위주로 먹으며 쓰린 속만 달랬다. 달콤한 사과 소스 샐러드만 찍어 먹고 있으니 민아가 제 몫의 샐러드를 덜어 줬다.
“송나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태성이 잡으러 올까. 해코지를 하러 오겠지. 그 사람만 안 부르면 좋겠는데. 이젠 전화를 받지도 않겠지만. 태성이라면 분명 또 모시겠다는 소리나 지껄이면서 그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몇 해를 보아 온 이복 오빠인데. 그 성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나마 태성이 망나니짓을 하면 휘어잡을 정도로 짱짱한 성격의 아빠라도 살아 계셨더라면 의지할 곳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냥 아무 생각도. 넌 준비 잘되어 가?”
“몰라. 취업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다.”
“잘될 거야. 학점도 좋고 실습 점수도 좋았잖아.”
“문제는 그런 애들이 수두룩하다는 거지. 몰라. 힘들어 죽겠어.”
이런 대화가 그리웠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현실적인 성적과 미래에 대한 대화들. 그러면 자신이 지극히 20대, 취직을 목전에 둔 딱 그 나이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은 쓸데없는 잡담들을 늘어놓으며 도서관 옆 학생 식당을 나왔다.
“아,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들어갈까?”
민아가 앓는 소리를 했다. 기지개를 쭉 켜다 말고 궁금한 게 있다는 듯 나연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너 근데 전화 왜 안 받았어? 어제부터 전화했었는데.”
“어? 아,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지갑도 잃어버리고?”
“…둘 다 소매치기한테 당했어.”
“이야. 하나 잃어버리기도 힘든데 둘 다 동시에. 너도 참. 너 그 모텔부터 팔고 나와. 이제 아버지도 안 계신데 뭐 하러 거기 있어.”
민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벤치에 앉았다. 상윤도 눈치를 보며 담뱃불을 붙인다.
“거기 위험해.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건 네가 운이 좋아서야. 그 골목도 음산하고.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나 거기서 20년 넘게 살았잖아.”
“그러니까. 여태 어디 안 상한 것만 해도 용하다.”
“그렇지 않아도 내놨어. 이번 달 말에 집 비워 주기로 했어.”
상윤이 담뱃재를 털며 힐끔 나연의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도 털어놓았던 얘기였다.
“그거 팔면 좋은 전셋집은 무리라도 너 하나 살 정도의 집은 구할 수 있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고 있어.”
“동네만 좀 좋았어도 땅값이 확 뛰었을 텐데. 아니면 묵혀 둬야 하나? 혹시 알아? 그게 땅값이 뛰어서 떼부자 될지. 지금 강남 일대도 이렇게까지 노른자 동네가 될 줄 알았겠어?”
“20년을 살았잖아. 나 이사 갈 거야. 이번에는 꼭.”
“그래. 그게 속은 편할 거다. 이제 합격자 발표 나면 학교도 안 오겠네. 발표가 곧이랬지?”
“응.”
민아가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배. 그 남자도 담배를 피웠었는데. 조금 쌉싸름한 향이 더 났던 것 같다. 생각지 말자. 딱히 엮일 사이도 아니고 태성의 말대로 자신과 엮이는 게 더 이상한 사람이다. 이젠 다신 보지 않기로 했으니까.
“나도 담배나 피워 볼까?”
“피우지 마. 고생해. 끊고 싶어도 못 끊어.”
“나 의지력 좋아. 알잖아.”
“좋은 거에 발 들여. 뭐 하러 안 좋은 거 배울래? 꼰대 같겠지만 경험자 말 들어.”
민아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안 좋은 거엔 아예 발도 들이지 말라고. 그래. 그게 맞는 답일지도 모르겠다.
“참. 너 소개팅할래? 자리가 하나 있어.”
상윤이 담배를 지져 끄다 말고 이쪽으로 시선을 홱 옮겨 두었다. 민아는 하태민이 그녀를 떠나고 갖은 욕을 다 했다. 학교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했던 하태민과 헤어지고, 여자애들이 얼마나 입방아를 찧어 댔는지 모른다며 울분을 터트리던 친구였다. 늘 괜찮은 다른 남자나 만나 보라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우리 학교 패션디자인과 꽃이란다.”
“꽃?”
“잘생겼다고, 이게.”
민아의 과장스러운 손짓에 상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상윤을 보는 것도 편치는 않았다. 나연은 그만 들어가자며 손을 털었다.
“됐어. 이만 들어가 보자.”
“어서 취업하고 싶다.”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차라리 공부하던 시절이 더 나을 거라는 꼰대 같은 조언을 하며 민아를 다독인 뒤 나연은 다시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방학 중에도 열람실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제법 차 있었다. 펜을 쥐는데 손가락이 따끔거렸다. 검지에 빨갛게 핏물이 맺혀 있다. 언제 다친 거지. 어제 새벽, 억지로 손목을 잡아끄는 술 취한 남자를 뿌리치느라 버둥거릴 때 다친 모양이었다. 유리병에 긁혔나.
밤새 몸을 웅크리고 있어 그런 건지 어깨가 아팠다. 그것도 먹은 거라고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더부룩했다. 나연은 결국 열람실을 나와 남은 동전으로 간신히 캔 음료 하나를 뽑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한참 동안 창밖만 보며 음료를 마셨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나연은 마시던 캔을 만지작거렸다.
언제까지 학교에 남아 있을 순 없었다. 몇 페이지 펴지 못하고 덮어 놓은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캠퍼스를 가만히 보던 나연이 캠퍼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도서관을 벗어나 교양관 건물 앞을 지나가던 나연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새카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보였다. 캠퍼스 주위를 에워싼 남자들의 구두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떨렸다. 나연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벗어날 곳은 많았지만 잔뜩 굳은 이 다리로는 갈 곳이 많지 않았다. 또 붙잡힐 게 뻔했다.
그녀는 바로 앞에 보이는 교양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전부 문이 닫혀 잠긴 상태였다. 교양관 유리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차피 집으로 가도 같았다. 아빠의 죽음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늘 아래 태성과 함께 있는 한 그랬다. 어쩌면 예상한 일인지도 몰랐다.
문밖을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빨라졌다. 나연은 고장 난 장난감처럼 더듬거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눈앞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교양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연은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남자의 가볍지 않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발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멈췄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튀어나갈 것처럼 뛰었다. 남자가 문 앞에 있었다.
“…….”
나연은 행여 숨소리가 새어 나갈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문 앞에 선 남자는 문을 열어 보지도, 노크를 하지도 않았다. 문 사이로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무릎을 바짝 끌어안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 열어.”
낯익은 목소리였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차분한 중저음. 낮게 가라앉은 음성.
“바쁘다. 어서 열자.”
귀찮음이 묻어난 낮은 한숨과 함께 노크를 하는 남자는 분명 그 남자였다.
왜 이 남자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걸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로 잠가 놓은 문을 천천히 열었다. 끼이익,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나연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이사님.”
남자를 처음 불러 본 것이니 적당하게 고른 호칭이었다. 이름을 멋대로 부르긴 그랬다. 남들은 그를 이렇게 부를 테니.
“그래. 맞긴 맞는데.”
그를 부르는 호칭에 남자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한다. 삐딱하게 선 남자가 피우던 담배를 구둣발로 지져 껐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여긴 어떻게….”
“안녕 못 하다. 넌 왜 숨는데?”
“…오빠인가 해서요.”
다시금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다신 보지 말자 가 버린 남자가 왜 여기 있을까. 궁금했지만 입을 뗄 수 없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왜 왔겠어. 도서관에 책 읽으러 왔겠어?”
툭툭 뱉어 내는 말에 귀찮은 기색이 가득해 눈치가 보였다.
“나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태성이 아니라 연석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안도가 해일처럼 밀려들어 와 그녀를 덮쳤다.
태성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지만 기껏해야 여자 팔아 제 입 채우는 태성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다신 보지 않겠다고 나갔을 땐 그렇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니, 이렇게 눈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깊은 안도가 드는 것일까. 태성에게 다시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때문인 걸까. 찔끔 눈물이 맺혔다. 나연은 눈가를 스윽 닦았다.
“안 나와? 안아 줘야 해?”
“가, 갈게요.”
주춤거리며 칸 안에서 나와 그를 따라 걸었다. 성큼성큼 긴 다리만큼이나 보폭이 큰 남자는 그를 따라가느라 버거워하는 나연을 보며 걸음을 늦춰 주었다.
“가지가지 한다.”
중얼거리는 남자를 따라잡은 나연은 이제 조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정말 왜 오신 거예요?”
“나도 몰라.”
나연은 힐끔 그를 올려다봤다. 단정한 머리가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셔츠도 조금 젖어 있고. 흐트러진 그 모습이 신경 쓰여 자꾸 눈이 갔다.
“하여튼 쪼끄만 게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들어.”
“네?”
“너 저기 뭐야, 까까는 사 먹었어?”
“…저 애 아니에요. 그리고 이사님이랑 나이 차 그 정도로 많이 나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나연은 언젠가 기사에서 보았던 그의 나이를 떠올려 보았다.
“애 아닌 거 알아. 애한테 호감 느끼는 미친 새끼 아니니까 염려 말고.”
“네?”
“밥은 먹었냐고.”
“네. 돈가스 먹었어요.”
걸어오는 연석을 발견한 성식이 부랴부랴 허리를 굽혔다. 형님께서 여자를 찾았다는 성식의 무전에 흩어져 있던 남자들이 돌아왔다.
성식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연석을 위한 것이었다.
“타.”
연석의 짧은 명령에 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석이 차에 오르길 기다리는 남자들이 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차에 타야 그도 오른다는 말이었다. 나연은 재빨리 허리를 숙여 뒷좌석에 탔다. 그녀의 옆에 연석이 몸을 묻자 그제야 차 문이 닫혔다.
차는 부드럽게 캠퍼스를 빠져나갔다.
안락한 시트와 편안한 승차감에 나연은 조용히 등을 기댔다. 그가 어딘가 모르게 심란해 보이는 기색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의 왼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 어렴풋이 피가 묻어 있었다.
저번처럼 또 싸우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남자가 입은 셔츠는 조금 젖어 보이긴 해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손가락에만 피가 묻어 있다. 일방적으로 누구 하나를 손봤다는 얘기였다.
“혹시… 어제 그 룸살롱에 가셨었어요?”
혹시 그가 손본 사람이 태성인 건….
“그 술집 갔다 오시는 거예요?”
묻는 말에 그의 시선이 돌아왔다. 그의 눈동자는 무섭도록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룸살롱에서의 그 밤처럼 화가 나 냉랭한 기세는 아니었다. 명백히. 그래서 안도했다. 바보 같았다. 이유 모를 안도였다.
“묻지 말고 조용히 가자.”
“혹시… 안 물어볼게요.”
남자는 또 습관처럼 담배를 꺼냈다. 나연은 라이터를 찾는 남자 앞에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열어 붙인 불을 내밀었다. 룸살롱에 두고 갔던 그의 라이터였다. 그녀가 내민 것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빼앗아 가듯 라이터를 가져갔다.
“이런 거 다시는 하지 마.”
“어떤 거 말씀하시는….”
“불붙이고, 술 따르고, 말을 해 줘야 알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성식이 룸 미러로 힐끔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나연은 거울을 통해 성식과 눈이 마주쳤다. 그거 하나 바로바로 못 알아먹고 형님을 귀찮게 만드냐는 노골적인 부라림에 주눅이 들었다.
그날도 지배인이 시키니 마지못해 하긴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회생활 하면 그래야 한다던데. 상사들한테 그렇게 해야 승진도 금방 한다고 하고.”
“농담이 나오냐?”
“반가워서요.”
“뭐가.”
“그냥 얼굴 본 게요.”
시선이 오랫동안 허공에서 부딪쳤다. 한참 만에야 나연은 시트에 허리를 기대고 정면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차 안 가득 남자의 향수 냄새가 밴 기분이었다. 아, 실제로 밴 건가.
다신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를 다시 만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마음 한구석이 뭉글거렸다. 저답지 않은 농담까지 나왔다.
그래도 결국 그의 말이 맞았다. 동아줄. 남자가 건넨 명함은 그녀에게 동아줄이었다.
차는 익숙한 골목으로 진입했다.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이상한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다. 차 시트가 편해서? 이 향수 냄새가 좋아서? 아니면 무심히 눈을 감고 있는 저 남자가…. 그래, 마지막 건 말도 안 된다.
“착해 빠져서. 남자가 하태민 하나뿐인 줄 아는 불쌍한 중생. 도저히 안 돼? 그 새끼가 아니면? 자기 살 길 찾아서 떠난 놈 못 잊으면 너만 천하의 상등신이야. 아니면 차라리 몸 정이라도 쌓든가. 몸 정이 들면 원래 맘 정도 들고 다 그러는 거야.”
미주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너 좋아하는 거 가볍게 생각한 거 아냐. 어쨌든 태민이 놈 내 친구였고. 근데 걘 너 버리고 간 애야. 그런 놈 때문에 네가 힘들어한다는 게 난 가슴 아프다.”
상윤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던 말이 하필이면 지금 생각날 건 뭐람.
차가 골목 끝자락에 다다랐다. 점멸하는 모텔 간판이 보였다.
“내려.”
감고 있던 눈을 뜨는 남자가 특유의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고리를 잡는 나연의 앞으로 연석의 긴 팔이 건너왔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는 팔을 바라봤다.
“너 말고 너.”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뜻을 알아듣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연석이 앞자리에 앉은 성식에게 눈짓을 했다. 룸 미러를 쳐다보던 성식이 가지고 있던 그녀의 지갑과 핸드폰을 건넸다. 걸걸한 목소리가 그때와 같았다.
“받아. 하여튼 넌 우리 형님께 감사해라. 돌콩만 한 게 감히 우리 형님을 귀찮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뺑이까지 치게 만들고. 확 그냥.”
“허튼소리 하지 말고 너도 내려.”
“저도 말입니까?”
“네가 제일 내려야 해. 너 무서워서 쟤가 입이라도 열겠어?”
두 번 묻지 않고 차에서 내린 성식이 제 형님이 탄 차를 지키고 섰다. 나연은 성식이 건넨 지갑과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둘만 남은 차 안에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았다.
“…고마워요.”
“뭐가.”
“…그냥 전부 다요.”
“전부 다 뭐. 성식이 내보낸 거?”
농담이 나오느냐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그를 힐긋 돌아보자 그제야 그가 픽 웃었다. 새삼 나긋하게 휘어지는 눈이 참 잘도 생겼다. 그가 대놓고 그녀를 관찰하듯 차 시트에 느른하게 몸을 기댔다.
나연은 돌려받은 지갑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남자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좁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뿐인데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새로운 공간이라 그런 것일까. 늘 살던 모텔방도 아니고, 1년을 꼬박 다녔던 아빠 병실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
분명 눈앞의 남자는 무서운 남자다. 제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잔인한 일도 하는 남자다. 남자 하나 소리 소문 없이 없애는 건 그저 행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뿐인.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성식이 하늘처럼 모시는 남자.
그와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향수 냄새에 마음이 놓일 줄은, 그녀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일이 틀림없었다.
“향수 냄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많이 역하냐?”
여전히 지갑을 뜯으며 고개를 저었다.
“참아. 너 향수 냄새 싫어하는지 몰랐다.”
역해도 참으라는 게 딱 그다웠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라면 하태민을 잊을 수 있을까? 그 남자를 지울 수 있을까. 문득 미친 생각이 들었다.
“뭐, 할 말 없어?”
“네, 네?”
“됐다. 들어가.”
지갑과 핸드폰을 꼭 쥐고 문고리를 밀었다. 다시 그의 명함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은 건지 물어볼까. 치열하게 갈등을 하던 나연은 차 밖으로 발 한 짝을 내디디다 말고 남자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하기 싫은 걸 시키면 콧대를 찍어. 상대적으로 부러지기가 쉬워. 그것도 힘들면 눈을 쑤시든가. 너한텐 그게 더 쉽겠네.”
그의 눈이 건성건성 그녀의 손목으로 향했다.
“…….”
남자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멀뚱히 보고만 있으니 그의 잇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너 약대 학생 맞아?”
“…우리 오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다시 찾아오게 되면, 말인 거죠?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오빠가 저한테….”
“너 이리 와 봐.”
문을 닫고 이리 와 보라는 그가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며 불렀다. 나연은 문을 닫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좀 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붙어 앉았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에서 보였다. 조금 땀에 젖은 듯한 머리칼과 옷깃, 남자의 스킨 향이 섞인 향수 냄새, 그 가운데 미묘하게 나는 담배 냄새까지. 위험스러운 냄새가 났다. 그에게선.
차가운 남자의 동공이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눈을 맞추고 있는 것조차 위태로운 긴장감이 들었다. 슬쩍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피했다. 몸을 뒤로 슬금슬금 물릴 때마다 그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스윽 고개를 돌리던 나연은 그제야 제 스커트가 다리 위로 올라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서둘러 더듬거리는 손으로 스커트를 내리는데 남자의 커다란 손이 겹쳐졌다. 놀라 고개를 들었다. 스커트 안으로 들어온 그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휙 끌어와 당겼다.
순식간에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탔다. 나연은 깜짝 놀라 그의 어깨, 셔츠 솔기를 콱 움켜잡았다. 보통의 것 이상으로 높은 체온이 셔츠 위로 느껴졌다.
“사람을, 씨발, 어지간히 괴롭혀야지.”
“그게 무슨, 무슨 말이에요?”
“조용히 하자. 혼란스러우니까.”
엉덩이를 당겨 안는 손가락이 홧홧했다. 그녀는 스커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단단하고 묵직한 남자의 팔이었다. 저와는 태생부터가 다르게 타고난 몸이다. 태성 같은 몸뚱어리는 단박에 꿇어 눕히는 탄탄한 몸.
그는 정말 혼란스러운 듯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힐끔, 뒤를 돌아보던 성식이 엉킨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몸을 바로 한다.
나연은 그에게서 엉덩이를 떼고 문 쪽으로 향하려 몸을 틀었다. 그렇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챈 남자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왜….”
“모텔 내놓은 돈도 다 뺏긴 거 아냐? 이제 어디 가서 잘 건데.”
쑥대밭이 되었던 방 안에서 통장도 카드도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당연히 모텔 계약금도 사라졌다. 수중에 남은 돈이라고는 이번 달에 들어오는 투숙객들 방값, 그래 봤자 30만 원 안팎. 일단 그 돈으로 모텔 장기 투숙이라도 끊어야 하나. 나연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래도 태성과 한 지붕 아래에 사는 것보단 백배 천배는 나은 것이라고 자위했다.
“…어디든 몸 눕힐 곳은 있겠죠.”
“뭘 믿고 그렇게 태연해.”
“…안 그런다고 딱히 해결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좀 도와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 봐. 혹시 알아? 돈 많은 노친네들이 네 스폰서라도 해 줄지.”
“…스폰서, 해 줄 거예요?”
“아니. 그런 거 안 좋아해.”
하여튼 정말 이상한 남자다. 그냥 던져 본 말에도 남자는 여지를 두지 않았다. 칼 같은 거절, 이 남자를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다웠다. 어차피 저도 그런 거 관심 없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선수를 쳤다.
“그러니까 애처롭게 울면서 매달려 보라니까? 질질 울면서 혀라도 빨아 봐.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응? 입꼬리를 늘이며 웃는 남자가 느긋하게 손을 움직였다. 스커트 안에 있던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올 듯 말 듯 툭툭, 미묘하게 엉덩이를 문지른다. 파르르, 하고 눈꺼풀이 떨렸다.
“변태.”
“변태 플레이, 좋지. 그런 거 좋아해?”
“…좋아했으면 그 룸살롱 안에 있었겠죠.”
“하여튼 한마디를 안 지지.”
큭큭거리며 웃는 남자가 나연의 아랫입술을 보며 고개를 슬며시 꺾었다. 새어 나오는 낮은 웃음소리가 자극적이다.
“봐줬다. 키스부터 해 봐. 보고 결정하게.”
“…네?”
“자꾸 되묻지 마.”
그는 이후 말문을 걸어 잠갔다. 더 묻는다 해도 그의 성정에 답해 주지 않으리라는 건 명백했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그의 시선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나연은 스커트 안을 아슬아슬 맴도는 그의 손목을 맥박이라도 세듯 지그시 붙잡았다. 쏟아지는 시선과 위험한 숨소리에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너 그거 그냥 나온 속담이 아니다.”
그렇게 조언하던 미주. 그 브랜드 차는 아니지만 못해도 그보다 더 좋은 외제 세단을 타고 나타났다.
미주가 몸 정이라도 들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지금 이때.
제가 지금 하려는 일이 미친 짓인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한 번쯤 일탈이 필요하다면 그러고 싶었다. 여태 하태민 하나만 보고 살았다. 그 남자 하나만이 인생에 있는 줄 알았다. 애인 사이가 아닌 남자와의 키스 그리고… 섹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라면 일탈의 대상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유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지금만큼은 이 마음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즐기자는 유희가 아닌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연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찬찬히 짚었다. 이 남자에게 풍기는 위험한 페로몬을 헤치고 입술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떨리는 입을 그의 붉은 입술로 갖다 댔다. 숨이 얽혔다. 분명 그녀가 먼저 가져다 댄 입술인데 꼭 강제로 범해지기라도 하는 듯 강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끌어당기는 중력을 벗어나지 못해 그의 궤도에 접어든 소행성이 된 기분이 들었다.
감질나게 그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입술이 벌어질 듯 벌어지지 않아 애가 탔다. 그에게로 조금 더 바짝 당겨 앉았다. 어느새 아랫입술을 핥던 혀가 잇새로 올라왔다. 부드러운 점막을 춥, 추읍, 쉴 새 없이 핥고 열렬히 훑었다. 쌉싸름한 담배 냄새보다도 묵직하고 퇴폐적이기 짝이 없는 향이 진동한다.
“아음, 흐, 음.”
어느샌가 허겁지겁 핥고 있었나 보다. 그녀의 입술 아래로 침이 반쯤 샜다. 턱 끝에 매달린 침 한 방울을 닦을 새도 없었다. 단지 입술을 핥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기가 막히게 알아챈 그의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 든다.
“잘하네. 제대로 빨아 봐. 반은 섰으니까.”
그가 혀를 내어 턱 아래 매달린 타액을 훔치며 읊조렸다. 끝이 탁하게 갈라진 음성은 그녀처럼 흥분을 꾹 눌러 참고 있었다. 그도 흥분했다. 그녀가 던진 자극제에 명백하게 성감이 발현된 거다. 그의 바지춤 안으로 딱딱하게 일어선 성기가 그녀의 사타구니로도 느껴졌다. 조금씩 던져 주는 그의 칭찬은 달콤한 당근과 같았다. 나연은 눈을 내리깐 채로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 틈을 열어 주는 남자의 잇새로 열에 들뜬 혀를 찔러 넣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설단에 금세 그의 혀가 마주 닿았다. 그의 목을 감싸 안은 나연은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돌기를 뭉개 비비고 물컹한 혀를 얽어 엮었다. 만나기가 무섭게 서로의 타액이 거미줄처럼 칭칭 엉켰다. 경계가 모호한 입 안에 미적지근한 침이 고였다. 나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척척하게 감기는 것을 꿀떡꿀떡 받아 마셨다.
기어이 팬티 안으로 기어들어 온 남자의 손이 말캉한 엉덩이를 쥐어 주물렀다. 어서 더 해 보라는 재촉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신호탄 삼아 나연은 혼신의 힘을 다해 혓바닥을 휘저어 돌렸다. 그의 혀를 붙잡아 옭아매려 바둥거릴 때마다 좀 더 거칠게 빨아 줬으면 하는 그곳으로 두툼한 혀가 착 감겨 왔다. 그때마다 허리까지 찌릿한 기분에 하체를 부르르 떨었다. 발정이 나 허릿짓을 하는 개처럼 음란하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응, 음. 흐으….”
진창에서 뒹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엉킨 두 혀가 한데 뒤섞였다. 쩌억, 쩍, 입 안에서 게걸스럽게 침이 엉클어지는 소리가 듣기 민망할 정도로 우렁우렁 울렸다.
그녀를 통째로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시작은 나연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그는 집 안으로 들이닥친 무법자처럼 굴었다. 격동하는 혀는 그의 성정만큼이나 난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흣, 이, 이사님.”
간신히 떨어진 잇새로 터진 것은 애원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아서. 섹스 한번 한다 해서 달라질 건 없는데, 그와의 섹스는 그 관념을 뒤집어엎어 버릴 것만 같아서.
“이제 그, 그만.”
“보지 다 젖어서 하는 말치곤 양심 없는 거 같은데. 약대생.”
확신에 찬 그의 말에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미 팬티는 꿉꿉해질 만큼 젖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확연하게 발기한 그의 성기가 앞뒤로 비벼졌다. 나연이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건지, 그가 골반을 튕기고 있는 건지 경계가 불분명했다. 나연의 팬티를 찢어 발길듯한 기세로 서로의 성기가 천 조각을 사이에 둔 채 연신 껄떡댄다. 그저 젖은 팬티 위로 그의 페니스를 눌러 비비는 것뿐인데도 무게감과 크기는 확연했다.
“아응, 음, 응.”
이대로 절정이라도 맞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그녀도 모르게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발목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절로 다리가 저렸다. 어찌 알았는지 힘을 풀라는 듯 그의 두 손이 나연의 가느다란 두 다리를 문지른다. 커다란 손은 예상과 달리 꽤나 정성스럽고 세심했다.
20년을 넘도록 지나다녔던 골목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걸었던 그 골목. 달아나고 싶어 발버둥을 쳤던 동네 한복판에서 애인도 아닌 남자와 음탕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은근한 배덕감이 아랫배를 간질거렸다.
남자의 노곤한 손가락이 종아리, 허벅지까지 권태롭게 타고 올라왔다. 사타구니 그리고 좀 더 안으로….
“다리 좀 옆으로 벌려 봐. 그래, 더.”
날 것 같은 수컷의 진득한 음성이 그녀만큼이나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그… 할 거예요?”
“그게 뭔데.”
“이사님께서 하려는 거….”
“뭐. 섹스, 교접. 아니면 떡?”
나지막이 웃으면서 대답하는 그의 목표는 이 은밀한 음부를 가리고 있는 팬티였다. 두 사람을 막아선 유일한 방해물이기도 했고, 나연이 필사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얇은 팬티를 성마르게 밀어젖히고 들어온 굵은 손가락 두 개가 후덥지근한 질구를 문질러 댔다. 안으로 들어올 듯 말 듯 입구를 문대는 손가락이 크고 단단하다. 남자의 너른 가슴과도 비례했다.
“하응, 너무 문지르지… 아앙.”
부드러운 속살과는 이질적인 남자의 살결에 녹녹한 음순이 밀리자 질구가 게걸스럽게 벌렁거렸다.
멀어져 버린 첫사랑과 함께 그간 몸도 꽉 닫혀 있었다.
그것을 파헤쳐 여는 것이 재문건설 전무이사의 손가락이라니. 이 손가락이 빠져나가면 육중한 그의 성기가 닫힌 곳을 활짝 열고 들이닥칠 것이다. 아랫도리를 맞닿고 있는 것으로도… 그는 너무 커. 아냐. 생각 말자. 머릿속에 폭풍우가 내려친 것처럼 뒤죽박죽이다.
“흐응, 하아….”
한껏 고조된 흥분에 절로 콧소리가 났다.
“많이도 젖었네.”
“벼, 변태야.”
“밑구멍은 변태가 좋은가 본데.”
단침을 질질 흘려 대며 그의 손가락을 잡아먹을 기회만 엿보는 질구 안으로 손가락 두 개가 쑤욱 밀고 들어왔다.
“아, 잠깐!”
이제 와 머뭇거리는 그녀를 비웃는 손가락은 어디까지 들어가나 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거리낌 없이 길목을 열었다.
“아아!”
그것만으로도 황홀한 포만감에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오랫동안 자위조차 없어, 어떠한 것도 넣어 주지 않았던 통로였다. 나연은 허리를 들썩이며 그의 손마디를 더욱 깊숙이 삼켜 먹고, 보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더듬어 보았다.
“하아, 응….”
흥분으로 풀어졌다 해도 좁디좁은 구멍이었다. 그곳으로 깊이 박힌 손가락이 침이라도 뱉어 놓은 것처럼 애액으로 젖어 있었다. 그가 넣어 둔 손마디를 크게 올려붙였다. 곧 이 내부를 훨씬 커다란 것으로 채워 주겠다는 암시 같은 애무에 음핵이 쩌릿했다. 나연은 이끌린 듯 도톰하게 올라선 돌기를 찾아 음모를 파헤쳤다.
툭 튀어나온 클리토리스가 손에 닿자마자 그녀는 제 음핵을 문지르며 스리슬쩍 허리를 흔들었다. 연석의 손가락을 딜도 삼아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자 그의 손가락 끝이 깊고 어두운 지점을 만지며 긁어 준다. 상하로 쳐올리면서 손가락을 흔드는 그가 기꺼이 나연의 자위를 도왔다.
“표정 좋은데. 허리 더 돌려 봐. 옳지. 구멍 벌어진다.”
스스로 클리토리스를 만지며 자위하는 모양새가 더없이 남부끄러울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성감이라, 아니,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라…. 나연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떨치려 아래쪽에 집중했다. 연석이 스커트 자락을 바짝 올려 손에 쥐여 주었다. 자위 중인 그곳으로 향해 있는 그의 시선이 한층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빠르게 클리토리스를 비볐다. 그때마다 야살스러운 비음이 터졌다. 덮쳐온 쾌감을 떨치기엔 그녀를 후비는 손놀림이 악독하리만치 끈질겼다.
“아응, 흐응, 음.”
그가 박아 놓은 손가락 사이를 벌려 더욱 쾌감을 돋워 준다. 손가락만으로도 아래가 녹는데 그의 성기라면 필시 이 가려움을 다 긁어 주고도 남을 거란 짐작까지 도달했다.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멍멍해졌다.
이 남자와 이런 짓을 할 사이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나연은 아랫입술을 꾹 사리물고서 골반으로 원을 그리며 구멍을 빙빙 휘돌렸다. 음탕한 모양새로 허리를 연신 돌리며 그의 손가락을 물어뜯고 맛보았다. 클리토리스를 문대며 쾌감에 흥을 보태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황홀해진 구멍이 빠끔거리며 그의 손가락을 빨아 댔다.
“앙… 응….”
“평소에도 이렇게 자위했어?”
“아앙… 아, 하음. 아, 아니….”
“보지 만져 주는 게 침까지 흘릴 만큼 좋아? 의외네.”
상스러운 말을 아주 나긋하게 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이 남자는. 나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새 문밖을 성식과 연석의 수하들이 지키고 서 있다는 것도 잊혀져 갔다. 손가락만으로 이토록 흥분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민과는… 그와 한 것은 마음을 교감하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섹스였다. 섹스라는 행위는 성스러운 것이라 여겼었다. 이렇게 저질스러운 말 따위는….
태민과는 달랐다. 그녀를 향하는 눈웃음마저 야만적이다.
슬쩍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울컥울컥 흐른 물줄기가 그의 손바닥 안에 흥건히 고여 있는 게 보였다. 음모 아래에도 물기가 맺혀 있다. 흥분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건 명백했지만 입 밖으론 부정부터 나왔다.
“아니….”
“아니야? 그럼 오줌이라도 쌌어?”
“후… 응.”
손으로 음부를 막아 보려 했지만 그녀의 의지 따위는 상관없이 쫄쫄 물기가 새어 나온다.
“뭘 그렇게 당황해. 전 애인이랑은 이렇게 안 놀았어?”
찰박할 정도로 고인 물기를 다시 음부 전체에 펴 바르는 그가 기껍게 웃었다.
미쳤어.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억눌린 신음만 쏟아졌다.
구멍 속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그의 손이 빠르게 나연의 등 쪽으로 넘어왔다. 시트 위로 몸이 넘어간 건 순식간이었다. 어정쩡히 세운 다리 사이로 그의 머리가 쳐들어오다시피 했다.
“빨게 다리 힘주고 세워.”
“…네, 네?”
“대물 걘 어떻게 빨아 줬는데. 오럴은 했을 거 아냐.”
부끄러운 질문에 대답을 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골적인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의 눈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사실 그도 여유 따윈 한 줌도 남아 있지 않는 거다.
“존나 야해, 너.”
그의 잇새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에 두 손으로 괜히 눈을 비볐다.
“진짜 부끄러운 건지, 부끄러운 척하는 건지. 둘 다 귀엽다만.”
아무리 너른 세단이라고는 하지만 침대에 비해 차 뒷좌석은 협소했다. 허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그녀가 차체에 비스듬히 기댈 수 있게 연석이 자리를 바로잡아 주었다. 생각보다 남자는 섬세하고 자상했다. 하지만 나연은 그것이 제 착각이라는 것을 곧장 깨달았다.
“네 눈으로 보라고. 내가 네 보지 빠는 거.”
“…꼭 그래야 하는 거예요?”
“원래 시각적인 자극이 배로 흥분되는 법이거든.”
입가에 웃음을 띤 그가 가만히 눈을 맞춘다. 선뜩하리만치 잔혹하게 올라간 입술로 천박한 말을 사근사근히 하는 이상한 남자.
나연의 눈이 그녀의 두 다리를 잡고 있는 연석의 손으로 향했다. 단정하게 채워진 커프스단추, 그 아래 깔끔한 시계, 칼같이 날이 선 셔츠 깃, 모든 것이 반듯해 보이지만 잠자리에선 그렇지 못한 언행, 이미 눈앞에 있는 남자로 시각적인 자극은 충분했다. 저 잘 빚어진 입술로 음탕한 속어라니.
“뭐, 나도 그렇고.”
그가 그녀의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벗겨 앞좌석으로 던졌다.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젖가슴이 춤을 추듯 요동쳤다. 빳빳하게 발기한 유두가 그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필요 이상으로 크다며 미주가 매번 농담 삼아 놀리던 가슴이었다.
딱딱해진 돌기로 득달같이 시선을 주던 그의 두 눈이 뜻밖에도 나연의 말간 눈동자로 옮겨왔다. 눈이 마주쳤다.
“너.”
대뜸 그가 나연을 불렀다. 그 진중한 한마디에 심장이라도 주무른 것처럼 가슴이 널뛰었다.
“내가 그 방 나간 이후로 다른 새끼 만났었어?”
“…아뇨. 싫다고 그랬어요.”
나연은 용기를 내어 이리 오래도록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래.”
젖가슴부터 주무르며 희롱할 줄 알았던 그의 손이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어 귓가로 불어오는 숨결에 오싹, 전율이 돋았다. 한참을 귓가에서 혀를 지분거리며 머물던 그가 젖가슴을 손아귀에 넣은 건 그다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일단 밑부터 먹자. 꼭지는 이따 해 줄 테니까. 아니다, 어디가 급해. 꼭지? 보지? 뭐부터 해 줄까.”
“…그런 거 좀 묻지 말아요.”
피식피식 웃는 그가 얄미웠지만 차마 때릴 수 없었다. 이 남자가 아무리 헤실거려도 조직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남자다. 저 같은 건…. 나연은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자 오금이 저렸다. 답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진지하게 버티고 눈을 맞췄다.
“그… 일단… 밑에….”
“좋은 선택이야. 너 지금 싸고 난리 났으니까 밑구멍부터 해결하자.”
그가 엉덩이 아래로 손을 넣어 팬티를 한 번에 끌어 내렸다. 아랫도리가 휑하게 드러나는 허전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가 외음부를 덮고 있는 스커트를 완전히 걷어 내고 뚫어져라 밑구멍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미 아래쪽은 애액이 엉덩이 골까지 늘어질 만큼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다. 막상 그의 두 눈 앞에 숨김없이 내놓자니 뺨이 화끈거렸다. 웃음기 따위가 걷힌 진지한 그의 눈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몰랐다.
“자위 잘했네. 많이 풀어진 거 같은데.”
“…변태.”
“자, 변태가 볼 수 있게 만지고 있어. 아까 허리 돌려 가며 혼자서 잘 하더만.”
그가 나연의 손을 가져와 퉁퉁 발기한 클리토리스 위로 얹어 주었다. 잡힌 손에 힘을 주자 그가 겹쳐 잡은 손가락으로 직접 음핵을 퉁겨 준다. 찌르르한 압각에 화들짝 놀라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제, 제가 할게요. 할 테니까….”
기어들어 가는 어조로 수긍하자 그의 입매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착하네. 잘 만져 봐. 이제 와 괜한 내숭 말고.”
나연이 음핵을 문지르기 시작하는 것을 직접 확인한 후에야 그가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조직의 핵심 인물이 한낱 제 아래를 빨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감히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못할 그의 머리칼을 스윽 만져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오롯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한참을 탐미하듯 음부를 들여다보기만 하던 그가 질구에 입을 대고 쭈웁, 하고 흐르는 애액을 훔친 것은 그때였다. 그것만으로 클리토리스가 움찔거리는 것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하응, 읏.”
그는 곧장 애액이 엉킨 질구를 혀로 진득하게 쓸었다. 가로등 불빛에 그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잘난 눈매가 살짝 좁혀 들었다. 곧 그것이 흡족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내 잘 뻗은 콧날이 음란하게 갈라진 틈으로 움푹 박혔다. 그 적나라한 광경이 고스란히 보였다. 다리를 수치스러울 정도로 벌린 채 그에게 아래를 내어 주고 있는 자신 또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생각이 파고들 틈도 없이 그는 긴 혀로 씹어 빨듯 음순을 핥고 구멍까지 맛본다. 녹작지근하게 풀어진 질벽으로 더욱 뜨거운 것이 문지르고 지나갔다. 페니스 대신 삽입된 연석의 혀였다.
“앙, 아! 이, 이사님. 흐윽.”
나연은 짐승처럼 성기를 핥으며 미친 듯이 혀를 놀려 대는 그의 머리칼을 꾹 붙잡았다. 이젠 클리토리스를 비벼 대는 자위도 무의미했다.
쯔읏, 츳. 침과 애액이 섞이고 고이다 못해 회음을 타고 지저분하게 흘렀다.
“아아! 아흐으, 흣.”
나연은 온몸이 흐물흐물 풀려 갔다. 연석의 머리칼만 동아줄처럼 붙잡은 채 한껏 신음하는데 힐끔 뒤를 돌아본 성식과 눈이 마주쳤다. 입술을 굳게 닫으려 애썼지만 입 밖으로 흐르는 교성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연석이 얼굴을 파묻고 있다. 성식이 하늘처럼 받드는 남자는 지금 속살이 흐물거릴 정도로 보지를 빨고 있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젖가슴이 보일지도 몰랐다. 선팅을 해 놓았다 해도, 유리창에 습기가 찼는데도 밖에 서 있는 그가 보일 정도로 성식이 너무도 가까이 있다.
홱 몸을 다시 돌리는 성식의 등이 굳어 있었다.
오르가슴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정은 유독 길고 강렬했다. 기어이 끝을 보고 나서야 그가 혀를 뽑아냈다. 혀를 따라 실처럼 딸려 오는 애액을 갈무리할 생각도 않고 그가 다소 성급하게 바지 버클을 풀었다.
“아흐으… 이사님.”
흐느끼다시피 쌕쌕대고만 있는데 뒤돌아보고 선 성식의 등으로 시선이 갔다. 간신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성식 씨가 밖에 있는….”
“신경 쓰지 마. 쟤는 그냥 우리 지키는 개라고 생각해.”
그는 밖에 선 수하들 따위는 조금도 상관 않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드로어즈 밖으로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페니스는 상대를 압도할 만큼 장대하고 굵었다. 고삐라도 잡아당긴 것처럼 살가죽이 빳빳하게 팽창해 있었다. 가장 위로 자리 잡아 검붉게 번들거리는 귀두는 이미 쿠퍼액 탓에 흉할 만큼 젖어 번질거렸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보려고 본 게 아니라… 근데 이사님도 제 거 보셨잖아요.”
딱히 꼭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는 마음껏 눈으로 희롱해 놓고 그녀의 시선엔 의문을 가지는 게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얼룩덜룩한 뺨으로 소심하게 항변하자 남자가 페니스를 만져 세우다 말고 기가 찬다는 듯 큭큭거렸다.
“실컷 봐. 만져 보든가.”
어디 한번 해 보라며 자리를 잡고 걸터앉은 모양새마저 묘하게 섹시하다.
그녀를 일으켜 성기를 직접 쥐여 주는 그는 심히 즐거워 보였다. 불거진 핏대로 우툴두툴 표면이 거칠어진 페니스가 손바닥에 감겼다.
지금껏 본 남자의 성기라고는 태민의 것 하나뿐인지라 한 손엔 다 잡히지도 않는 크기가 낯설었다. 그의 사타구니 한가운데서 기세 좋게 솟아난 성기는 음흉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야릇한 모양새에, 이끌린 듯 기둥을 아래위로 쓸자 그의 잇새에서 탁한 침음이 터진다.
그가 땀에 조금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느긋하게 그녀의 촉감을 음미했다. 열에 들떴지만 살짝씩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는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아 보여요.”
“…말이라고.”
나긋한 그의 목소리가 깊게 신음하며 나왔다.
“좋아 죽어. 좆 선 거 보면 몰라?”
이미 그의 이성은 무너졌다. 우뚝 솟아 엉망으로 쿠퍼액을 흘려 대는 페니스는 비비지 않아도 손안에서 꿀렁거리며 상하 운동을 시작했다. 좁고 깊은 질 안에 정액을 뿌리고 싶어 안달이 난 페니스가 울근불근 근육을 세운다.
“왜, 너무 맛있어 보여서 할 말을 잃었어?”
피식거리는 짧은 웃음에 나연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머릿속이 나부댔다.
“답을 좀 해라.”
“…맛있어 보여요.”
홀린 듯 뱉어 낸 진심에 그가 웃었다. 올라가는 입술이 잘생겨 멍하니 그곳을 쳐다봤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딴 맘 드는데.”
“네?”
“누워. 넣어야 싸지.”
할 거 안 할 거 다 해 놓고 막상 이 큰 것과 결합을 하려니 두려워졌다. 가슴 한편이 뻐근해진다. 그의 성기가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질구가 화끈거렸다.
“뭐 해. 다리 벌리고 누워.”
뭉그적거리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미 결심을 하지 않았는가. 어기적어기적 시트로 등을 눕히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가 발목을 홱 잡아 와 허벅지를 벌린다. 벌어진 음부 사이로 축축한 페니스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드르륵, 드르륵.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귀두를 쥐고 입구를 비비며 삽입을 준비하던 그가 시트 구석에 처박힌 핸드폰을 가져왔다. 그의 손바닥 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설마 하고 눈을 깜빡이는데 그가 전화를 받았다.
“예. 회장님.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직급을 입에 담으면서도 그는 뭉툭한 것을 들이밀었다.
꾸역꾸역, 귀두가 갈라진 곳을 파고 들어오는 압박감에 놀라 그를 밀어내자 탁, 하고 나연의 손을 쳐 낸다.
“으응, 아.”
나연은 혹여 신음 소리를 낼까 입을 굳게 걸어 잠갔다.
“아닙니다. 잊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우락부락한 자지가 기어이 좁은 길을 뚫으며 질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말 그대로 길을 내어 놓지 않은 통로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페니스 굵기대로 보지가 음탕하게 벌어진다.
“흐읏, 읍.”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등이 밀려 올라갈 만큼 억센 삽입이었다. 속살이 잔뜩 갈라지는 기분에 정신이 아뜩아뜩 멀어져 간다. 핏발이 설 대로 선 페니스 힘줄이 점막을 벌려 댔다.
“아앙, 아, 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가오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치 안까지 다 들어갔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 그가 골반을 돌려 고환을 아래에다 부대껴 준다. 매끄러운 거죽이 회음에 닿아 문질러지는 느낌이 선뜩했다. 너무 커 분명 반 정도만 삽입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 커다란 것이 제 안에 다 들어가 있다니 미친 짓이었다.
“제… 발. 전화….”
“수고는요. 애들이 하는 거지 제가 뭐 하는 게 있습니까. 우리 회장님, 이렇게 저 예뻐하다가 큰일 나시려고.”
아래를 꽉 맞물린 채 천천히 빠져나갔다, 무소처럼 거세게 뚫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굵은 것이 비좁은 입구를 뚫을 때마다 동반되는 얼얼함에 턱이 덜덜거렸다.
나연은 저도 모르게 제 구멍을 양쪽으로 벌려 수월한 추삽질을 도왔다. 애액 사이에 파묻혔다 다시 빠져나간 성기의 뿌리를 쥐고서 직접 불알 직전까지 안으로 잡아넣었다. 스스로 넣으면서도 황홀한 삽입에 두 다리가 채신머리없이 달달 떨렸다.
“아아… 흐.”
회음부가 축축해질 정도로 흘러내리는 물은 이제 단속조차 어려웠다. 생전 처음 맛보는 크기에, 삽입만으로 이 작은 구멍은 오르가슴에 울부짖는 거다.
그 모습에 생긋 웃는 남자의 눈웃음이 더없이 관능적이다. 음순까지 더듬어 양옆으로 활짝 여니 아까보단 드나듦이 용이했지만 그래도 버거웠다. 페니스가 까마득한 안쪽까지 전부 들어찬 것만으로도 정신이 몽롱해지고 요의가 몰려올 정도로 짜릿했다.
통화를 하면서도 그는 턱턱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하응…. 아앙.”
흉악한 크기도 마다 않고 질구가 난입하다시피 하는 페니스를 우물우물 씹어 맞이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의 두 눈은 나연에게 붙박여 있었다. 그의 성기를 욕심껏 삼키고서 전율에 버둥질치는 그녀에게로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더욱 짙어졌다. 그 진한 눈빛은 또 다른 자극제나 다름없었다.
“그 건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아직 통화 중인데… 입단속을 해야 하는데….
안으로 들이칠수록 아랫배까지 바들거리는 희열에 나연의 다리가 저절로 헤벌어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 구멍으로 극악무도하게 큰 기둥이 쑥 들어와 한껏 자리를 잡고 영역을 넓힌다. 그녀가 들인 공이 무색하게도 그의 허릿짓 한 번에 가장 깊은 곳까지 교합했다.
“앗, 응… 좀 더….”
수화기 너머론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연석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 그를 감히 이름 석 자로 부를 수 있는 그의 보스였다.
“예, 곧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을 것처럼 끝맺음을 하던 그가 돌연 예고 없이 속도를 높였다.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타던 박자가 정도를 잃었다. 그는 아직 통화를 끊지 않았다. 찌걱찌걱, 쩍쩍, 교접점에서 쉴 새 없이 나는 색스러운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릴지도 몰랐다.
아아, 절로 등이 휘고 고개가 꺾여 넘어갔다. 큰 음경이 가랑이 사이를 들락거리는 쾌감에 눈꺼풀이 아물아물 내려앉았다.
뒤이어 끊은 핸드폰을 툭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사, 이사님!”
“하도 흔들려서 꼭지 떨어지겠는데.”
“하으응, 읏, 하아.”
‘하긴 그거 신경 쓸 새가 어딨어, 씨발, 좋아 죽겠는데 그지.’ 하고 중얼거리는 남자가 목을 끌어안으라며 상체를 낮춰 준다.
“자지가 커서 좋아? 끝내주게 물어 대네.”
귓가에 대고 묻는 말이 달콤하다. 저런 천박한 말을 입에 담는데도 울리는 중저음이 그리 들리게 만든다.
“말해 봐. 이왕 노는 거 재밌게 놀면 좋잖아.”
이게 재미있는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금의 정사가, 지나치게 커 받아 내는 것도 벅찬 그의 성기가, 외로운 안을 가득 채워 주다 못해 구멍 밖으로 삐져나오는 그의 살덩이도, 꼬챙이 같은 페니스가 뜨거워진 질구를 엉망으로 쑤셔 주는 것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좋았다. 그 어느 누구도 생각나지 않게 해 줘서, 까맣게 잊게 만들어 줘서 좋았다.
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뭐가 좋은데, 힘 좀 풀어. 너무 조인다. 한번 박았다 하면 귀두가 떨어지지도 않잖아.”
퍽, 퍽 잘도 뽑았다 욕심껏 처박으면서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흐, 그, 그냥.”
“그냥 뭐. 성식이도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해.”
반협박에 가까웠다.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이던 그가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잔혹한 맹수.
“커, 서요.”
주어가 빠졌다. 알고 있었다. 그가 귓가에 바짝 입술을 대고 나른한 숨을 뱉어 낸다. 시원찮은 대답에 역시 그는 불만족한 게 분명했다.
귀두만 물린 채 모조리 빠져나간 기둥이 입구를 긁었다.
풍선에 바람이라도 빠진 기분이었다.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격렬하게 그녀를 덮쳤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잔경련은 곧 그의 페니스를 원한다는 증거였다.
“뭐가 커서 좋다고?”
꼭 발정이 날 대로 난 것 같아 눈물이 찔끔 샜다. 그렇지만 이 환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서 마저 성기를 추켜올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페니스 밑동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제 애액이 뒤범벅된 페니스가 더없이 맹렬하게 서 있었다.
“이거, 자, 자지가 크고 단단해서. 흐윽.”
“또 하나 가르쳐 줬잖아. 말해야지. 후….”
“자지가… 맛있어서. 흐읍. 먹게 해, 주세요.”
“거봐. 답 잘하면서.”
입 밖으로 한 번도 내뱉어 보지 못했던 단어들이었지만 수치스러움도 잠깐이었다. 그가 상이라도 주듯 텅 비어 버린 공간으로 대번에 성기를 넣어 준다. 되찾은 희열에 앙앙거릴 새도 없이 그가 나연의 허리를 일으켜 그의 허벅지 위로 올려 앉혔다. 순식간에 자세가 뒤바뀌었다.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리곤 그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지탱했다.
“자, 맛있다니까 많이 줘야지. 너 먹고 싶은 대로 따먹어.”
나연이 기다렸다는 듯 학학거리며 엉덩이를 앞뒤로 비비자 그가 둔부 두 쪽을 감싸 쥐고 좀 더 그에게로 당겨 준다. 먹고 있는 이 커다란 자지는 어쨌든 지금 제 것이었다. 정액을 내보내려 기둥이 안을 휘저으며 속살을 찍어 올릴 때마다 기어이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 냈다. 나연은 페니스를 꽉 물고서 최대한 당겨 뺐다 다시 깊숙한 구멍으로 욱여넣었다. 최대한 빠르게, 가장 깊은 곳으로, 보지가 가득 채워지도록.
“응, 아앙! 앙! 하읏, 흣.”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돌리며 천박한 몸짓으로 정액을 쥐어 짜내려 발버둥 쳤다. 맛있어. 이 남자의 이 음란하고 난폭한 기둥이 맛있어. 입 밖으론 뱉지 못할 배덕한 오르가슴. 나연은 불알마저 안으로 넣고 싶은 듯 그의 고환을 만져 댔다.
“으응, 아아! 하응!”
“표정이 죽여주게 야한데.”
철퍽철퍽 주저앉으면서 더욱 오르가슴을 보채자 그가 아예 골반을 튕겨 쳐올렸다.
“이렇게 내 좆 맛을 들여서 이제 자위가 가당키나 하겠어?”
그가 미친 듯이 페니스를 박아 올리면서도 고개를 숙여 흔들거리는 그녀의 젖꼭지를 잇새에 끼워 물었다. 정성을 다해 유두를 쪽쪽대는 그가 젖이라도 터진 것처럼 뺨까지 홀쭉해질 정도로 흡입했다.
아까 박으면서 입으로 해 준다는 말이 이 말이었던 모양이다. 침을 묻혀 가며 한참을 고집스레 젖을 쭙쭙대던 그가 채찍질이라도 하듯이 질끈 꼭지를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나연은 절정에 올랐다. 정액을 뿜어내느라 페니스 뿌리가 꿈틀거리는 것 또한 느껴졌다. 아랫배가 바짝 수축했다. 그 와중에도 젖을 먹겠다 조르는 아이처럼 아랫입이 정액을 먹어 댔다. 피스톤질은 그가 정액을 모조리 뱉어 낼 때까지 계속됐다.
추접스러울 정도로 은밀한 곳을 찧어 대고 나서야 행위가 끝이 났다. 격한 행위들로 속이 울렁거렸다. 나연은 뒤늦게야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