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날은 때아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원체 낙후된 동네인지라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나마도 장사를 하는 가게는 대부분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출입하지 못하는 가게였다. 그 외에는 국밥집, 미용실, 이발소, 간혹가다 옷가게, 그것이 다였다.
사실상 홍등가를 찾는 손님들이 국밥을 먹으러 가고 이발을 하러 가니 손님을 공유하는 동네인 셈이었다. 밤이 되면 성매매를 하러 오는 남자들로 북적거리긴 했으나 요새는 그마저도 잠잠했다.
겨울이 오면 골목은 침체기에 들어선다. 겨울의 끝자락, 평소보다 유난히 조용한 동네. 나연은 시린 몸을 비비며 대충 작성하던 가계부를 접었다. 프런트도 한적했다. 오늘은 일찍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이곳은 그녀가 머무는 가장 끝 방을 포함해 일곱 방이 있는 모텔이다. 사실은 여관에 가까웠지만 엄연히 모텔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두 해 전, 아버지가 직접 단 간판이었다. 모텔도 호텔이라고 입간판을 다는 판국에 왜 우리라고 안 되느냐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버지의 여관은 모텔이 되었다.
빗방울이 좀 더 굵어졌다. 조금 있으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어두운 불빛으로 걸어오는 익숙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골목 끝에 위치한 미용실에서 일하는 이 모텔의 장기 투숙객 미주였다.
“나연아.”
손님에게 받았다며 까만 봉투를 건네는 미주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봉투 안에선 상큼한 귤 냄새가 났다.
“이거 먹어. 우리 나연이.”
“언니 술 마셨어?”
“나 방세 내는 날 이틀만 미뤄 주라. 돈이 그때 나와서 그래.”
“이거 뇌물이야?”
“응.”
푸흐흐, 웃던 미주가 귤 한 알을 소매로 슥슥 닦으며 내밀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혼자 들어가다간 방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코가 깨질 거 같았다. 어디에서 넘어져도 넘어질 태세로 비틀거렸다.
나연은 미주가 내민 귤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그녀를 부축했다. 미주의 손에 들린 열쇠로 방문을 연 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대충 이불을 깔고 미주를 뉘었다.
말이 좋아 모텔이지 머무는 사람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네에서 식당 일을 하거나 술집을 나가거나 공장을 다니거나 딱히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 개중엔,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사람도 있었다. 모텔에 머무르는 장기 투숙객들 대부분이 그중 하나였다.
한때는 이 동네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홍등가가 점점 커지며 남은 가게들이 죄다 가게 명칭을 바꾸어 그렇지.
“그러게 웬 술을 이렇게 마셨어.”
“외로워서 마셨다. 왜.”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나 고백했다 차였다? 용기 내려고 술까지 잔뜩 마셨는데.”
미주가 서글프게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내일 술 깨면 다 들어 줄 테니까 어서 자.”
“우리 나연인 좋아하는 사람 없어? 얼굴도 예쁘고 가슴도 수박만 한 년이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뭐 해. 만져 줄 애인도 없는 이 청춘.”
“요즘 시대에 그게 다 웬 말이야. 술 취해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어서 자기나 해. 그리고 나 안 외로워.”
“안 외롭긴. 거울 좀 봐. 사는 데 찌들어 있는 일벌레 하나가 있으니까.”
나연은 실없이 웃기만 하는 미주를 다시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좋은 세월 다 보내지 말고 이놈, 저놈 만나 보란 소리야. 만나 봐야 나중에 좋은 놈 고르는 눈도 생기는 거지. 운명적인 사랑?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올 거 같지. 그런 거 없어. 사람은 계속 만나 봐야 하는 거야. 너 설마 아직 그 하태민 그놈 못 잊어서 그런 건 아니지? 쓰레기 같은 새끼 때문에….”
“…어서 자. 귤 맛있게 먹을게.”
웃는 미주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연은 이불을 마저 꼼꼼히 덮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열까 하다가 문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하는 수 없이 그냥 뒤돌아섰다.
문을 닫고 나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귤을 줍는데 까만 정장의 남자가 문짝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모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잖아도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유리문에 금이라도 갈 것 같았다.
“방 찾으세요?”
마뜩잖은 눈으로 모텔 안을 훑는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룻밤 묵으러 온 손님 같진 않은데.
흔히 말하는 어두운 쪽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시커먼 밤과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나연의 짐작을 증명하듯 남자는 거친 손을 불쑥 그녀의 코앞까지 내뻗었다.
“이런 사람 봤어?”
문신이 새겨진 남자의 손엔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나연은 고개를 저었다. 미심쩍은 듯 사진 끝을 조금 구긴 남자가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그럼 이 새끼는. 아는 새끼야?”
이번엔 아는 얼굴이었다. 심산코퍼레이션 성 대표, 작지 않은 금융 회사 오너로 동생 성 이사와 함께 자주 모텔에 묵었던 남자였다. 오늘도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고 방 하나를 잡은 참이었다. 모텔 앞 삼계탕집에 자주 오던 남자는 얼마 전부터 모텔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잠깐 머뭇거리자 단박에 망설임을 눈치챈 반삭 머리 남자가 거칠게 추궁을 해 왔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이 적중할 것이라는 것을 느낀 순간 시커먼 옷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모텔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행색이 낯설지 않았다.
“숨겨 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조폭이라면 본 적 있었다. 가끔 사람을 찾으러 지금처럼 사진을 들고 와 탐문을 하거나 CCTV를 요구하곤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 있고 싶어 찾는 이 낡고 작은 모텔에 보안 카메라가 있을 리가 없었다.
“뭐 해, 뒤져.”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남자들의 발길질에 문이 엉망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름한 모텔은 무지막지한 남자들의 공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반강제로 열리는 문 안에서 투숙객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 대표를 찾던 반삭 머리가 미주가 누워 있는 방 문을 걷어찼다. 나연은 놀라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채 다가서기도 전에 저지당했다. 미주가 누워 있는 방 안을 거칠게 살핀 남자는 성 대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가늘게 눈을 떴다. 당장이라도 나연의 목을 잡아 죌 태세였다.
“형님! 여깁니다!”
성 대표가 있는 방 문을 연 조폭 중 하나가 소리치자 가늘게 눈을 뜨던 반삭 머리가 곧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성 대표가 반나체 상태로 머리채가 붙잡힌 채 질질 밖으로 끌려 나왔다.
“우리 성 대표님께서 여기 숨어 계셨네.”
반삭 머리 남자는 이죽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성 대표가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았다.
“사, 살려 주게. 내가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난, 나, 난.”
“다 믿고 하자는 건데 이렇게 우리 뒤통수를 치면 쓰시나, 응? 성 대표님 계약서에 서명하셨잖아. 안 그래? 동생분은 우리가 잘 모시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풍채 좋은 성 대표가 반삭 머리에게 그대로 머리채가 잡힌 채 모텔 문밖으로 끌려 나갔다. 심장이 펄떡거렸다. 귤이 바닥에 짓뭉개져 으스러져 있었다. 놀란 가슴을 다독일 새도 없이 모텔 문 너머를 바라보던 나연은 까만 세단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갈색 머리 아래 차가운 눈, 그 짧은 눈 맞춤에 등줄기가 시큰거렸다.
남자는 성 대표를 끌고 나간 시커먼 사내보다 높은 위치에 있음이 틀림없었다. 풍기는 분위기는 잔혹했지만 시시껄렁하게 두리번거리던 다른 남자들과 달리 껄렁대지도 않았고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시답지 않게 으스대며 힘들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남자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남자의 옆에 서서 그에게 우산을 받쳐 주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재봉선이 깔끔하게 떨어진 바지 옆단.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선 흰 담배가 벌겋게 몸을 태우고 있었다. 다른 한 손 안엔 벗은 가죽 장갑이 쥐어 잡혀 있었다. 까딱하다간 저도 저렇게 되는 걸까. 마른침이 꿀꺽, 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단말마의 신음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성 대표의 목소리가 언뜻언뜻 들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내 담배를 피우며 안을 말없이 주시하고만 있던 남자가 담배를 구둣발로 지르밟았다. 그러고는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걸음을 뒤로 물렸지만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여기서 장사해?”
“네?”
저에게 묻는 말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차분하고 나긋한 중저음이었다.
키가 커 한참을 올려다봤다. 그의 날카로운 턱이 삐뚜름히 그녀를 향했다. 내려다보는 눈이 느리게 나연의 눈을 훑고 있었다.
몸이 잘게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실과 거짓을 판가름하는 것일까. 대답을 한 후에도 남자는 한참 나연의 눈을 뜯어내 들여다볼 것처럼 응시할 뿐이었다. 날카롭게 뻗은 눈매지만 나른하게 눈이 내려 감기는 남자의 분위기가 묘했다.
“앞으로 저 새끼 받지 마.”
“왜… 요?”
정말 궁금해서 한 반문이었다. 힘이 있는 저런 조폭들이야 원치 않으면 손님을 받지 않겠다 하면 그만이겠지만 저 같은 힘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다. 방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면 없는 것도 만들어서라도 내놔야 하는 판이었다.
이유 불문, 무조건 그러하겠다 돌아오는 답만이 익숙해 보이는 남자는 나연의 반문에 잠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장사가 안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연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바닥으로 눈을 돌려 으깨진 귤만 끔뻑끔뻑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저도 즙이 난 귤 신세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럼 또 문 고쳐 달든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펼친 남자는 수표 몇 장을 성의 없이 휙 내밀었다. 받기도 전에 종이들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애초에 남자는 그녀의 손안에 곱게 쥐여 줄 마음이 없었다.
문을 다 때려 부순 값인가. 모르긴 몰라도 문짝을 싹 다 갈아 달고도 한참 남을 돈이었다. 나연은 그 수표에 공이 몇 개나 붙었는지, 전부 몇 장인지 세는 것도 잊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은 건 까까 사 먹고.”
남자의 입꼬리가 나긋하게 올라갔다. 나른하게 휜 눈꼬리가 꼭 픽 웃는 것만 같았다. 그의 구둣발이 나연을 스쳐 걸었다. 묵직하고 은은한 남자의 향수 냄새가 풍겼다.
“형님, 저 여자한테 왜….”
그의 수하로 보이는 반삭 머리 남자는 큰돈을 나연에게 준 것이 의아한 눈치였다.
“놔둬, 놀라서 눈 더 커진 것 봐라. 너 때문이잖아. 무식하게 생겨 가지고.”
“예?”
“뭘 멍청히 섰어. 출발해.”
이마를 바닥에 찧을 것처럼 고개를 숙인 그의 수하가 세단 뒷좌석 문을 열었다. 차에 올라탄 남자는 방금 사람 하나를 작살낸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태연하다 못해 평온한 얼굴이었다.
턱밑까지 밀려들었던 두려움은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렸다. 쑥대밭이 된 모텔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막했다.
나연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수표를 내려다보았다. 차마 손이 떨려 줍기도 힘들었다. 문을 빠끔히 열고 얼굴을 내민 투숙객 은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연을 힐끔거렸다. 아까 그 사달이 났을 때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는지 액정이 나간 핸드폰만 달달 떨며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나연아, 괜찮아?”
“…별로 안 괜찮은 거 같아.”
나연은 다독이지 못해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심장 박동만 느끼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