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6)

11. 행복의 조건

서은겸 대표님을 처음 만난 건 면접 자리였다.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평범한 면접관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눈에 확 띄었다. 누가 봐도 헉 소리 나게 잘생긴 사자가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왜 저렇게 저 사자만 눈에 들어오지?’

유난히 잘 보이길래 조명을 따로 비춘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었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착시 효과가 든 탓이었다.

면접 내내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안 보고 싶어도 계속 시선이 사자 쪽으로 향했다. 그는 타고난 외모를 정성 들여 가꾼 듯했다. 몸에 맞는 옷은 물론이고,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귀도 잘 관리한 티가 났다. 게다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상냥하게 눈웃음을 지어 주는데, 심장이 쿵쿵거려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면접을 보러 오기 전, 급하게 찾아본 면접 후기에 ‘대표의 미모가 제일 큰 고비’ 같은 표현이 적혀 있더라니. 소문보다 사실이 더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손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끝자리에 계신 면접관님, 이쪽을 안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자유로운 분위기의 면접장이었지만 이런 말이 오갈 정도는 아니었다. 당황한 듯 누군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떨어질 걸 각오하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너무 잘생기셔서 면접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폭소하는 면접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자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농담으로 듣지 않은 것 같았다. 곧 사자가 내게 물었다.

“지금 말씀하신 분, 원정연 씨 맞죠?”

“네.”

“만약 합격한다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나랑 같이 점심 먹어야 하는데 그건 괜찮겠어요?”

“네?”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 하자 사자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에 팀이나 직급이 아니라 식성에 따라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화사한 웃음은 덤이었다.

“그리고 미어캣인 원정연 씨처럼 나도 육식을 주로 하는 사자고요.”

지원자를 위한 친절인 걸 아는데도 심장이 거세게 뛰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못 버틸 것 같으면 도시락을 싸 오겠습니다.”

싱긋 웃은 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접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편안하게 진행하세요.”

사람들을 쭉 둘러보며 사과한 사자는 면접실을 나갔다. 긴 꼬리가 문밖으로 사라지자마자 여기저기서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간신히 사라진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자가 나간 이후 면접은 순조롭게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 취업 카페를 둘러보니 면접 후기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 각자 감상은 달랐지만, 사자의 이야기는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앤드밀 면접 후기:

사내 복지=대표 얼굴

이게 사실이었습니다...

살면서 본 고양잇과 중에 제일 미남인 듯

앤드밀 후기:

저 바로 앞에서 사장님 나가셨어요 ㅠㅠ

솔직히 안 붙어도 되니까 사장님 얼굴 보러 간 건데ㅠㅠㅎ

내가 바로 모두가 기대했던 대표를 내보낸 사람임을 깨닫자 양심에 찔려서 글을 더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페이지를 닫았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무슨 우여곡절인지 나는 앤드밀에 최종 합격했다. 첫 출근을 하는 날, 긴장해서 대표실로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대표님은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면접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표님은 말했다.

“합격 축하합니다. 이제 우리 밥 같이 먹어야겠네요.”

“네…….”

“도시락 먹을 거예요?”

“아뇨…….”

“부담스러우면 말해요. 차근차근 익숙해지면 되니까.”

직접 탄 커피를 내밀면서 대표님은 나와 마주 앉았다. 대충 잘 부탁한다는 형식적인 이야기가 오가자 할 말이 떨어졌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안 보는 척 대표님을 바라보았다. 눈길을 뗄 수 없는 미모는 여전했다.

‘밥 먹다 얹히지 않을까.’

걱정에 잠긴 나를 파악한 듯 대표님이 화제를 바꾸었다.

“그때 면접 자리에서 이야기해 준 게 인상 깊었어요.”

“네?”

“절차를 간소화하려고 대표 면접과 합친 거였는데, 그게 지원자들에게 부담이었을 줄은 몰랐거든요.”

보통은 이야기하기 힘든데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덕분에 앞으로는 대표 면접을 따로 빼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대표님 앞에서 나는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그렇게 대표님을 보기 위해 입사 지원을 해 온 이들의 공공의 적으로 자리 잡으며 나는 앤드밀에 입사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대표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대표랑 같이 점심을 먹는다는 말에 주위 친구들은 부담돼서 밥이 넘어가냐고, 그 대표도 참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욕을 했지만 얼마 지나니 그건 적응되어 괜찮아졌다. 대표님은 여러모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회식 자리에선 결제만 하고 적당히 빠지는 편이었고, 커피는 본인이 직접 타서 마셨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친근하게 굴지는 않았다. 존댓말을 고수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상사에게 존댓말을 듣는 게 부담스러워서 나는 먼저 반말을 요청했다.

“대표님이시잖아요. 말 편하게 하세요.”

대표님의 답은 의외로 단호했다.

“원정연 씨는 나보다 세 살 연상이고, 다른 직원들한테도 전부 존댓말을 쓰고 있어요. 정연 씨만 특별 대우를 하면서 편하게 대할 수는 없는데. 이해해 줄래요?”

말이 ‘이해해 줄래요?’지, 그냥 일방적인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표님은 내 상사니까. 하지만 눈웃음을 치는 대표님과 얼굴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자가 아니라 여우 같을 때가 있다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도 거부할 수 없었다.

대표님에게 홀리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닌 듯했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 준다거나, 생일을 챙겨 준다거나, 드나들 때 문을 잡아 준다거나. 그럴 때마다 다른 직원들도 실없는 웃음을 흘리곤 했다.

물론 대표님에게는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호의일 뿐, 사적인 감정이라곤 전혀 담기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도 대표님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사자가 그러면 남녀노소, 결혼 여부를 불문하고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연예인처럼 생긴 사람이 성격까지 좋은데 어느 누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작 그런 대표님을 설레게 하는 조건은 꽤 까다로운 듯했다.

“대표님요? 곰성애자시잖아요.”

회사를 제일 오래 다닌 코끼리 팀장님의 말에 의하면 대표님은 곰만 사랑할 수 있는 취향이었다. 특이한 취향이 일상생활에서 티가 나는 건 아니었다. 곰 관련 물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식당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곰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아니고. 솔로로 지낸 지 몇 년 되었다는데도 딱히 상대를 찾는 것 같지 않았다.

전 부인이 있었다고 했으니 무성애자나 비혼주의자도 아니라는 소리인데. 일과 결혼한 워커홀릭도 아니면서 이제 고작 서른 살인 사람이 왜 혼자 지내려 할까.

대표님과 먹는 점심이 익숙해졌을 즈음, 나는 조심스럽게 대표님에게 물어보았다.

“대표님. 저 아는 곰이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대표님의 답은 즉각 돌아왔다. 항상 보이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대표님은 거절을 표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다시 물었다.

“으음. 대표님. 아시다시피 미어캣은 무리를 지어 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저도 남편 데리고 친정 식구들이랑 다 같이 살고 있고요.”

“그렇다고 했었죠.”

“사자도 그렇게 살잖아요.”

“그렇죠, 보통은.”

“근데 왜 대표님은 혼자 지내세요?”

대표님 정도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하고도 연애할 수 있을 텐데. 외모도, 성격도, 재력도 뭐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사람인데. 왜 계속 솔로를 자처하고 있을까?

대표님은 그저 웃었다.

“혼자 지내는 게 이상한 건 아니죠.”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요.”

“세상에는 자의로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꼭 누군가와 함께해야 행복할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럼 대표님의 행복은 뭔데요?

궁금했지만 그 이상 묻는 것도 무례한 짓 같았다. 혼자 지내건 누구를 만나건 그건 대표님의 사생활이고 선택이었다. 더 참견하길 포기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흘러도 대표님은 여전히 솔로였다. 사람들이 넌지시 건네는 소개팅 제안도 모조리 거절했다. 워낙 태도가 굳건했기에 나는 대표님이 계속 혼자 지낼 줄 알았다.

그런 대표님이 언제부턴가 좀 이상해졌다.

“혹시 괜찮은 잡식종 식당 아는 사람 있어요?”

사람들에게 데이트 코스가 분명한 장소를 묻는가 하면, 평소보다 출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점심시간에는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지 핸드폰만 주시하고 있다가 환히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급기야 해외 출장을 갔다가 일정을 앞당겨서 귀국하는 일까지 생겼다.

누군가 만나냐는 질문에 대표님은 답변을 거부했다.

“아직 알아 가는 단계라서 말하기가 좀 그런데.”

“어떤 분인데요?”

“그것도 밝히기가 어렵네요.”

나중에 연인이 되면 말해 주겠다면서 대표님은 어물쩍 답을 넘겼다.

모두가 기대한 그날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날이 추워지면서 점점 더 딴생각이 많아지던 대표님은 어느 날 전날 입고 갔던 옷을 그대로 입고 왔다.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대표님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애인 집에서 자고 왔어요.”

“진짜요?”

“이제 사귀기로 하신 거예요?”

“언제부터요?”

“오늘 새벽부터.”

그렇게 말하는 대표님의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에, 누구 한 사람도 장난스럽게 대하거나 놀릴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모두 진심을 담아 대표님을 축하해 주었다.

어렵게 만난 인연이니 순탄하게 연애하다가 결혼하라고 빌고 또 빌어 주었건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듬해가 되자 대표님은 회사 업무도 내팽개치고 계속 바깥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동안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

소문의 곰이 회사에 다녀간 날, 아쉽게도 나는 외근을 도는 중이었기에 그를 보지 못했다. 며칠 뒤 대표님은 회사로 복귀했고, 다시는 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헤어졌겠거니 짐작했기에 누구도 대표님의 연애에 관해 묻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흘러 늦가을이 되었을 때.

“……요새 유행하는 잡식종 맛집 아는 사람 있어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묻는 대표님에게, 나와 동료들은 두 번째 축하를 건넸다.

“저, 잠시만요.”

남편이 태워 먹은 앞치마를 사러 쇼핑몰에 들른 날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커다란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을 더듬으며 나는 물러섰다.

“네, 네?”

“죄송하지만 그거 어디서 구입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뭐가요?”

“그 에이프런요.”

남자가 고개를 까딱 숙였다.

“사러 왔는데 못 찾았습니다.”

“아, 이거요.”

남자가 말한 앞치마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브랜드였다. 종별로 특징적인 무늬를 수놓은 제품을 내놓아 커플 아이템이나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았다. 특히 다양한 체격에 맞추어 제작해서 나처럼 몸이 작은 미어캣도 맞는 사이즈를 쉽게 살 수 있었다. 광활하고 두툼한 남자의 가슴을 보아하니 남자도 사이즈 때문에 그 브랜드를 찾는 듯했다.

“저쪽 코너 돌면 나와요.”

“감사합니다.”

남자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그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머리칼 사이에 튀어나온 동그란 귀를 보니 곰 같았다. 무뚝뚝한 인상에 건장한 체구와 큰 키가 위압적이긴 해도 사납거나 신경질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남자도 자기 키를 신경 쓰는지 내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원래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사장님의 곰 사랑에 물든 걸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어느 종이세요?”

“반달가슴곰입니다.”

“아하. 반달가슴곰도 은근히 종 관련 제품 찾기 힘들죠? 저도 그래요. 미어캣이라서요. 수요가 있을 텐데도 잘 안 만들더라고요.”

“아, 네.”

“저기에 아마 반달가슴곰 에이프런도 있을 거예요.”

웃으며 말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것도 제 건데 애인이 앙골라 사자라서요. 그걸 찾고 있습니다.”

“앙골라 사자는 더 없겠네요.”

“네. 마사이 사자가 대부분이라…….”

“신기하네요. 저희 회사 대표님도 앙골라 사자신데.”

“그러시군요.”

놀란 듯 조금 눈을 크게 뜬 남자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단순한 공통점을 발견한 것뿐인데도 기쁜 듯했다. 얼마나 애인을 아끼는지 느껴져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더 남자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매장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원하는 거 찾으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 남자가 매장 쪽으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듬직한 등을 바라보다가 나도 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나는 동종성애자라서 나처럼 아담한 미어캣들하고 사는 게 제일 마음 편하지만. 왜 남들이 몸 좋고 키 큰 종에게 설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장님을 보면서 두근거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혼자 쇼핑을 나온 김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구경할 때였다.

“세 개씩 사자니까.”

“두 개면 충분해.”

“하다가 찢어질 수도 있잖아.”

“……대체 이거 입고 뭘 할 생각인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걸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나는 주위를 살폈다. 멀리서도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어디서나 후광이 비치는 듯 반짝이는 사람이니까.

‘대표님?’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대표님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대표님의 옆에는 대표님만큼 커다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머리 위로 튀어나온 둥근 귀를 보자마자 나는 입을 가렸다. 아까 만난 곰이었다.

‘왜 두 사람이 같이 있지?’

문득 떠오른 질문의 답은 곧장 튀어나왔다. 곰성애자인 대표님. 애인의 앞치마를 고른다던 남자.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분명했다.

내 가설은 대표님의 얼굴을 본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뭐든 다 하고 싶어.”

남자를 바라보는 대표님의 미소는 행복 그 자체였다. 나나 직원들에게 부드럽게 지어 주었던 웃음과는 달랐다.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입 맞추고 싶다는 표정으로 대표님은 남자를 응시했다.

대표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며 뭔가 고민하던 남자가 시선을 들었다.

“……왜.”

“그냥 좋아서. 지금 이 순간 전부.”

“…….”

“사랑해.”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달콤한 말에 나는 숨을 죽였다. 민망할 법한 말에도 남자는 태연했다. 주위를 살핀 남자가 대표님의 턱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나머지는 차에 가서 해 줄게.”

부끄러운 건 나 혼자인 듯싶었다.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태연히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황급히 전신 거울 뒤로 숨었다. 다행히 대표님도, 남자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곰과 사자의 옆얼굴은 누구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몇 년 전, 대표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묻지 않았던 질문의 답이 비로소 보이는 것 같았다. 대표님의 행복은 뭐였을까. 대표님의 말대로 타인과 함께 지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성향상 그쪽에 더 어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행복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하지만 대표님은 혼자였던 때보다 곰과 함께 걷는 지금이 더 행복해 보였다.

‘대표님이 행복해져서 다행이에요.’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겠다는 예감이 일었다.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나는 옷가게를 둘러보았다. 식장에 입고 갈 옷을 미리 봐 두는 것도 좋겠지. 기왕이면 화사한 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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