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감기
은겸은 다섯 번째로 통화를 시도했을 때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현관 벽에 어깨를 대고 비스듬히 선 채 은겸이 말했다. 커다란 마스크 아래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뺨과 이마가 발그스름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은겸의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감기 걸려서 당분간 못 볼 것 같아ㅠㅠ????
이번 주는 푹 쉬고 다음 주에 만나자
가벼운 감기니까 걱정하지 말고!
점심시간에 받은 메시지는 분명 이러했다. 은겸은 이모티콘까지 섞어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괜찮냐는 내 질문에 멀쩡하다며 몇 번이나 답을 보냈고, 굳이 올 필요 없다는 말도 계속 강조했다. 떨어져 있는 동안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미리 생각해 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 놓고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 게 수상했지만, 나는 그냥 알겠다고 넘겼다. 나 또한 감기에 걸린다면 은겸을 안심시키기 위해 똑같이 행동할 게 뻔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유난스럽게 굴기도 싫었고. 그래서 나는 다음 주에 만나자던 은겸의 제안을 따르려고 했다. 요새 독감이 유행해서 아이들이 걱정된다는 동료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퇴근길에 잠깐 들렀다 가겠다는 말에, 은겸은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답을 보냈다.
오지 마
안 옮도록 조심할게.
아냐 나 진짜 괜찮으니까 오지 마
괜찮다면서 내가 가면 왜 안 되는데.
답을 듣지 못한 채 퇴근 시간이 돌아왔다. 무작정 은겸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몇 번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사이 잠들기라도 했는지 은겸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왜 답을 하지 않았는지는 현관문이 열린 순간 알 수 있었다. 괜찮다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잠깐 상태만 보고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나는 신발을 벗었다. 현관 위로 올라서자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나던 은겸이 쿨럭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괜찮아?”
기침은 한참 만에 멈추었다. 넓은 어깨를 쓸어 주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손바닥에 닿는 은겸의 몸이 뜨끈뜨끈했다. 내장을 토해 낼 듯 격한 기침이며,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고열로 보아 가벼운 감기 정도가 아니었다. 간신히 진정된 은겸을 부축해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은겸의 집은 평소답지 않게 어수선했다. 여기저기 널린 수건이며 옷가지를 발로 치우면서 나는 은겸을 침실로 데려갔다. 계속 누워 있었는지 침대 위에도 정돈되지 않은 이불이 뭉쳐져 있었다. 대강 은겸을 눕히고 베개 근처의 수건을 집어 들었다. 수건이 풀리면서 네모난 아이스팩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원은.”
“내일 가려고.”
“약은?”
“집에 있는 거 먹었어. 해열제하고 감기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겸이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수건과 다 녹은 아이스팩을 들고 침실을 나섰다.
세탁기에 수건을 집어넣은 뒤, 핸드폰으로 가까운 내과를 검색했다. 다행히도 은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스팩을 냉동실에 넣고 나는 침실로 돌아갔다.
은겸은 아까보다 열 배는 더 지친 기색이었다.
“이제 가, 원재야.”
잠긴 목소리로 말한 은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동작마저도 힘에 겨워 보였다. 이러면서 가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병원 지금 가자. 10시까지 하는 데 찾았어.”
“그냥 감긴데 뭐. 내일 내가 갈게.”
“그냥 감기 아니잖아.”
은겸의 말을 자르고 나는 손을 내밀었다.
“가자.”
은겸은 나를 말없이 올려다보기만 할 뿐,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번만큼은 은겸의 고집을 들어줄 의향이 없었기에 팔을 뻗었다. 등 아래로 끌어안고 힘주어 일으키자 은겸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비틀비틀 침대 아래로 내려서면서 은겸이 중얼거렸다.
“……씻어야 해.”
“그냥 가.”
“머리라도 감아야지.”
“모자 쓰고 가면 돼.”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무슨. 은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거실로 향했다.
식탁 의자에 은겸을 앉혀 놓고 갈아입힐 옷과 외투를 챙겼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모자를 씌우자 은겸이 시선을 내렸다.
“이래서 오지 말라고 한 거였는데.”
“왜.”
“이런 모습 보이기 싫었어.”
“불평은 다 낫고 해.”
모자 구멍으로 귀를 빼내 주며 나는 답했다. 입을 다문 은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시각임에도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은겸처럼 마스크를 끼고 쿨럭거리는 사람들이었다.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은겸은 내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고집부릴 기운도 남지 않은 듯했다. 묵직하고 커다란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힘을 주고 나는 은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진료와 검사는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예상대로 독감이었다. 주사를 맞고 약까지 타 오니 어느덧 10시가 넘어 있었다. 은겸을 차에 앉혀 놓고 나는 병원 옆 편의점을 들렀다. 새 마스크며 이온 음료, 죽, 아이스크림 같은 걸 쓸어 담고 서둘러 차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은겸은 계속 쿨럭거렸다. 차창에 이마를 대고 기운 없이 눈을 감은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병원을 다녀와서 다행이었다. 내일이면 더 악화되어 병원에 못 갈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은겸도 그걸 느낀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은겸은 얌전히 내 손에 몸을 맡기고 옷을 갈아입었고, 식탁에 앉아 죽을 먹었다. 전복죽이 마음에 안 드는지 귀를 옆으로 눕히기는 했지만 군소리 없이 그릇을 비웠다. 약을 먹이고 침대에 눕히자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사랑만 종을 초월하는 건 아닌가 봐. 우리 회사 사람들도 독감에 걸렸거든. 코끼리, 멧돼지, 개…….”
“헛소리 그만하고 누워.”
“그래도 나까지 옮을 줄은 몰랐는데. 평소에 감기 잘 안 걸린다고 방심했어. 너는 미리 예방 주사 맞아.”
“그럴게.”
“자고 갈 거지?”
“아깐 가라더니.”
“늦었으니까 자고 가.”
단정적으로 말한 은겸이 내 손에 뺨을 비볐다. 어리광을 부리는 은겸이 낯설었다. 그만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니 좋은 의미일 터였다. 알겠다고 답하자 은겸은 내 손을 놓아주었다. 얼려 두었던 아이스팩을 이마에 얹어 두고 나는 거실로 나왔다.
그제야 넥타이를 풀 여유가 생겼다.
여태 유지하고 있었던 퇴근길 복장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목이 말랐다. 무심코 식탁 위의 컵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찬장을 열어 새 컵을 꺼내 물을 담았다. 나까지 독감에 걸려 버리면 은겸에게 면목이 없었다.
내일은 휴가를 내야 하나. 나도 아니고 애인이 아픈 건데 병가 처리를 해 줄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출근하자니 은겸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내가 아픈 척을 하는 게 나으려나.’
입사 후 처음으로 거짓말을 꾸며 낼 각오를 하고 있을 때였다.
“원재야.”
나지막한 목소리가 침실에서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왜.”
“거기 있어?”
“응.”
“안 갔구나.”
기운 없는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많이 아픈가. 잠시 수그러졌던 걱정이 커졌다. 나는 곧장 침실로 돌아갔다. 반듯하게 누운 은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도로 쓴 건지 마스크를 한 채였다.
“좀 자.”
아이스팩을 살짝 들고 이마를 짚어 보았다. 다행히도 열이 좀 내린 듯 아까보다는 덜 뜨거웠다. 쿨럭쿨럭 기침한 은겸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고마워.”
“뭐가.”
“혼자 살면 아플 때 제일 서러워.”
“그건 그렇지.”
은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도 성인이 된 이후로 쭉 혼자 살았으니까. 병구완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아픈 자신을 혼자서 돌봐야 하는 건 힘들고도 쓸쓸한 일이다. 더군다나 몸 상태도 평소와 다르니 두 배로 힘들고.
“나는 프라이드에서 막내였잖아.”
아무래도 잠을 청할 생각이 없는지 말을 이으면서 은겸이 침대 가를 툭툭 두드렸다. 시키는 대로 침대에 걸터앉자 은겸은 나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열 기운이 가시지 않은 그의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내가 아플 때는 항상 가족들이 옆에 있었어. 어머니, 아버지 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월차를 내셨고 형이랑 누나 들도 챙겨 줬어. 그래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응.”
“그랬는데 혼자 살게 되니까 그게 아닌 거야. 너무 아픈데, 나는 너무 힘든데 누구도 나를 챙겨 주지 않더라. 내가 스스로 챙겨야 했어.”
나는 마스크 아래로 달싹이는 입술의 움직임을 좇았다. 열 때문에 바싹 말랐을 입술은 느릿느릿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했다. 많이 말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은겸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결혼을 했을 때도, 분가를 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는데.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었어.”
“…….”
“어른은 뭐든 혼자서 버텨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어.”
기침이 쏟아지면서 은겸의 말이 끊겼다.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컵을 집어 들고 나는 초조하게 기침이 멎기를 기다렸다. 들썩이던 가슴이 진정되자 은겸이 내게서 컵을 받아 들었다. 한 모금 물을 마신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지금은 네가 있어서 좋다.”
“……서은겸.”
“약이랑 죽 잘 챙겨 먹을게. 고맙다.”
말을 마친 은겸이 눈꺼풀을 닫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은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돌봐 준 건 고마운데 이제는 알아서 잘할 테니까 내일부터 오지 말라는 거겠지. 잠깐 내비쳤던 어리광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만약 아픈 게 나라면 너는 나를 내버려 둘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가 다시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뭐든 혼자 감당하려는 건 약속 위반 아니냐고 지적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은겸을 내려다보았다. 은겸이 이러는 게 자존심 때문이라면, 또는 단순히 내게 기대하는 게 없어서라면 화를 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은겸은 그저 나를 배려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아픈 상황에서도.
나는 가만히 은겸의 손등을 쓸었다.
“서은겸.”
이 정도는 힘들지 않아. 괜찮아. 내게 기대도 돼. 오히려 네가 아픈 걸 모르고 넘어갔다면 속상했을 거야.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 말해도 말해도 모자랐다. 언제나 나를 걱정하는 은겸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었다.
그 모든 말 대신, 나는 오래 기다렸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만 듣고 자.”
“뭔데.”
“크리스마스 선물. 생각해 두라며.”
졸린 듯이 눈을 감았지만, 선물이라는 말에 은겸의 귀가 곧바로 쫑긋거렸다. 내가 어떤 선물을 원하더라도 그대로 들어주려고 할 은겸을 알기에, 다음 말은 더 없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살자.”
은겸은 답이 없었다. 움직임을 잃은 입술을 바라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살면 지금처럼 네가 힘들 때 옆에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은겸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하필 아플 때 예민한 문제를 꺼내서 미안하긴 했지만. 한 번은 짚어야 할 문제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고. 물론 이전에 한 번 제안했던 것처럼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꺼낸 말은 아니었다. 편의성 때문도 아니고, 은겸을 안심시키기 위해 충동적으로 떠올린 임시방편도 아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건 더더욱 아니고.
“네가 주고 싶을 때 줘. 올해가 아니어도 돼. 싫으면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마음 편히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저 내가 은겸과의 동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였다.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 주자 은겸이 희미하게 웃었다.
“네 선물인 건 맞아? 내가 선물 받는 기분인데.”
“내 선물 맞아.”
새 수건을 가져다 놓는 게 나으려나. 한 번 더 이마를 짚어 보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네가 나한테 해 줬던 만큼, 나도 돌려줄 기회를 달라는 거니까.”
언제나 다정한 너에게 다정함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나를 위해 너를 바꾸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너를 걱정하게 해 줘. 돌보게 해 줘. 배려하게 해 줘. 지금까지 네게 받아 온 사랑을 똑같이 건네게 해 줘. 모든 게 공허하게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표현하게 해 줘.
네가 건네는 다정함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지 너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
“이제 자자. 잘 자.”
허리를 굽혀 은겸의 눈꺼풀 위에 입을 맞추었다. 붉게 물든 눈가는 젖어 있었다. 수건을 가지러 가야 하는데. 잠시 방 밖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열이 오른 뺨을 오랫동안 쓸어 주었다.
은겸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