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투는 사자도 수영하게 한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원재와 나는 더욱 더 자주,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9월 초면 끝나는 원재의 발정기 때문이었다.
“발정기 끝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해야지.”
원재는 1년 전 우리가 재회했을 때의 기적을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나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물론 비발정기에도 촉진제를 복용하면 잠자리가 가능하긴 하지만, 원재를 무리시키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나 원재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몰라도.
그래서 우리는 평일에도 서로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함께 저녁을 먹고 밤을 보내곤 했다. 주말에만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초여름부터 깨진 지 오래였다.
그날도 원재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필요한 걸 사기 위해 잠깐 집 근처 마트에 들렀다.
원재가 시리얼을 고르는 사이 나는 샴푸와 치약을 샀다. 다른 게 더 필요할까 싶어 생활용품 코너를 훑어보는데 콘돔 매대가 보였다. 무심코 지나치려던 발길이 멈추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잊고 콘돔 매대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매번 쓰는 거 말고 다른 걸 사 볼까.
일단 손가락 콘돔을 하나 카트에 집어넣고 다른 상품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는 엑스라지 사이즈 중에서 제일 얇고 부드러운 제품만 쓰고 있었다. 재회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으니 슬슬 새로운 자극에 도전해 봐도 좋을 시기였다.
‘속궁합이 워낙 좋아서 기능성 콘돔은 쓸 생각을 못 해 봤네.’
엑스라지 사이즈 매대를 둘러보며 고민했다. 지금도 사정까지 오래 걸리는데 사정 지연 콘돔까지 쓰면 원재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고. 향기 나는 거나 돌기형 쓰면 좋아하려나.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다른 사이즈 콘돔이 보였다. 말이나 고래 수인 등을 위한 특대 사이즈 매대였다. 이쪽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었다. 뭐가 좋을지 끝내 선택하지 못하고 나는 카트를 밀었다. 원재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듯했다.
원재를 찾아 시리얼 매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처음 보는 사람이 원재의 앞에 서 있었다. 곤란한 표정으로 원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머리칼에 원재와 비슷한 키의 남자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검은 피부와 눈가의 하얀 무늬를 보자 남자의 종이 대강 감잡혔다. 범고래였다.
범고래가 원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요새는 수영하러 안 오시네요.”
“네, 좀 바빠져서…….”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든 오세요, 김원재 씨.”
“시간 되면 가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될까요?”
귀를 세운 탓일까, 둘의 대화가 내게도 잘 들렸다. 원재가 다녔던 수영장 친구인가 했더니 점점 수상한 말이 들려왔다. 범고래는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게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꼬시는 거잖아?
걸음을 더욱 빨리해서 원재에게 다가갔다. 팔을 뻗어 원재의 허리를 안으며 목덜미에 짧게 입술을 댔다가 떼었다. 그러곤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아는 분이야?”
범고래가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나를 돌아본 원재가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답했다.
“아. 전에 다녔던 수영장 강사님.”
“그러시구나.”
“이 근처에 사시는 줄은 몰랐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원재가 카트를 넘겨다보았다.
“살 거 다 골랐어?”
“두 분 형제이신가 봐요?”
눈치 없게도 범고래가 불쑥 끼어들었다. 누가 봐도 사자인 나와 곰인 원재를 형제라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질문이었다. 원재가 고개를 저었다.
“애인입니다.”
“어. 남자 친구 있으셨구나. 수영 다니실 때는 없다고 하셨으면서.”
“그사이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영을 안 나오신 거였어요? 아쉽네요.”
너무 대놓고 말하는 거 아냐? 불쾌함 때문에 자꾸만 옆으로 누우려는 귀를 억지로 세웠다. 범고래가 나를 훑어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애인분은 고양이신가요?”
“사자입니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나를 고양이로 착각할 리 만무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범고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쩐지 고양이치고는 좀 크시더라. 특이하시네.”
혼잣말이라기엔 큰 목소리였다. 일부러 비꼬는 게 분명했다. 아까 봤던 특대 사이즈 매대가 퍼뜩 떠올랐다. 짜증을 억누르며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쪽도 범고래치고는 특이하신 편이네요.”
“예?”
“처음에는 돌고래인 줄 알았거든요. 하도 작으셔서.”
범고래의 휘파람이 멎었다.
이상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원재가 내 손을 허리에서 떼어 냈다. 내 눈을 들여다본 원재가 눈짓으로 범고래를 가리켰다. 사과해.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하는 원재를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범고래를 돌아보았다.
“아. 제가 실언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사회생활 모드로 정중하게 사과하자 범고래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 사과를 받지 않고 범고래는 원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중에 따로 봐요, 김원재 씨.”
원재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범고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범고래를 보며 나는 꽉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원재가 한숨을 쉬었다.
“수영장 옮겨야겠다.”
“미안.”
“네가 왜 미안해. 저 사람이 먼저 무례하게 굴었는데.”
멀어져 가는 범고래를 보던 원재가 내 손을 잡았다.
“애인 있다고 하는데도 계속 치근덕대는 것도 불편한데. 널 무시하기까지 했어.”
“어? 그 남자가 너 꼬시는 거 알고 있었어?”
“수영 다닐 때부터 계속 저랬거든.”
뭐? 귀를 의심하고 있자, 원재가 내 손을 놓고 카트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 사람이랑 다르게 넌 사과했잖아. 그럼 된 거야.”
“아니, 안 된 것 같은데. 원재야.”
“잊어버려. 가자.”
단호한 말과 함께 원재가 계산대로 향했다. 카트를 미는 원재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생각해 보면 원재도 인기가 많은 타입이다. 키 크고 몸도 좋고 무뚝뚝한 인상이라도 잘생긴 편이고 성격도 진중하고 성실하고. 결혼 상대로는 최고 아닌가. 나야 외모 때문에 호감을 느끼고 가볍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원재는 오래 알고 지낼수록 빛을 발하는 사람이니 진지하게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너무 방심하는 건 아닐까.
계산을 마치고 차로 함께 돌아온 뒤에도 범고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복잡한 머릿속은 운전대를 잡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수영하러 다니면 강사랑 샤워실도 같이 써?”
“시간 맞으면 그렇지.”
“…….”
저절로 이가 갈렸다. 한심한 질투임을 알면서도 찌푸려진 미간을 펼 수가 없었다. 결국 돌려 묻는 걸 포기하고 직구를 던졌다.
“아까 그 범고래도 수영 폼이 좋았어?”
“뭐, 잘하시긴 했어. 아무래도 타고난 게 육지 종이랑은 다르잖아.”
“안 되겠네.”
“뭐가?”
“나도 수영을 배워야겠어.”
그런 놈에게 내 귀여운 곰을 뺏길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또 들러붙는다면 막아야 하니 수영장도 따라다녀야겠다. 내 사심을 깨닫지 못했는지 원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 싫어하잖아.”
“앞으로 좋아해 보려고.”
“진심이야?”
원재에겐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거짓말이 필요했다. 나는 자신 있게 답했다.
“너랑 같이 수영하고 싶어.”
“뭐, 그럼 좋지.”
위기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니 수영 정도는 배워 두는 게 좋다며 원재가 수영 찬양을 늘어놨지만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치를 살피며 원재가 물었다.
“그럼 내일 가 볼까?”
정말 싫었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재가 미소 지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에 가는 수영장에다, 생각지도 못한 나와의 동행이 기뻤는지 원재는 들뜬 목소리였다. 하아. 이렇게 된 이상 무를 수도 없으니 완벽하게 수영을 배워 주리라. 이를 악물고 나는 운전을 계속했다.
큰 기대도 안 했지만 수영장 나들이는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다.
기초는 강사에게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원재는 나를 데리고 동네 문화센터로 갔다. 어차피 여름이 지나 야외 수영장은 못 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수영장에 가면 원재와 같이 수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는 들어갈 수 있는 공간부터 달랐다. 내가 기초반 풀장에서 아기 리트리버들과 같이 킥보드를 잡고 발차기를 하는 동안 원재는 자유 수영 레인에서 물살을 갈랐다. 원재의 멋진 모습을 남들이 구경한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 좋으라고 여길 왔는지 싶어졌다.
“사자 회원님! 정신 차리고 집중하세요!”
처음에는 호랑이를 제외하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양잇과 회원이라며 나를 반기던 강사도 내 실력이 전혀 늘지 않자 지쳐 갔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꼬마 리트리버들은 금방 감을 잡고 물 위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데, 나는 계속 물속으로 꼬로록 잠겨 들었다.
몇 번이고 물을 먹으면서 간신히 몸을 띄우게 되었을 때도 성취감보다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지 의문부터 들었다. 두 번 다시 수영장에 오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만 반복하다 시간이 끝났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수영을 마음껏 해서인지 원재는 평소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수영장에서 막 올라온 원재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젖어서 빛나는 상반신과 팔다리를 남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원재를 내 몸으로 가리고 샤워실로 이동했다.
“이제 수영할 수 있어?”
“아니. 할 수 있어도 안 할 거야.”
“날 따뜻해지면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자. 내가 가르쳐 줄게.”
“안 한다니까.”
무섭게 덮쳐 오던 수영장의 물을 떠올리며 나는 털을 바짝 세우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원재가 내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수영복 차림 멋있어서 그러는데.”
“자고 갈 때마다 보는 차림이잖아.”
“수영복이랑 속옷은 다르다니까.”
아무튼 수영은 사양이었다. 한심한 꼴을 또 보이긴 싫었다. 원재도 그 이상 권하지 않았다.
“고맙다.”
“응?”
“물 싫어하면서도 같이 와 줘서.”
“…….”
“다음에는 같이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아보자.”
아니, 이건 전부 질투 때문이었는데. 감동한 듯한 원재에게 사실을 밝히자니 미안했다. 나는 물 때문에 차가워진 원재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입술에 짧게 입 맞추자 원재의 뺨이 불그스름해졌다.
잘생기고 귀여운 내 곰. 역시 원재의 사적인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수영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데. 훤히 드러난 원재의 가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건 나뿐이 아닐 거다. 분명하다.
‘전신 수영복 사 줄 테니까 그거 입고 다니라고 해야지.’
적당한 타협안으로 만족하고 나는 수영장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사자인 나를 수영하게 만든 원흉은 일주일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퇴근한 원재를 픽업해서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주말에 집에서 해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라 오기로 하고 우리는 잠시 헤어졌다. 내 선택은 구이용 칠면조였다. 와인과 함께 즐기면 특별한 느낌도 나고 좋을 듯했다. 고기를 포장해서 원재를 찾아갔다.
익숙한 등은 생선 코너 앞에 서 있었다. 아직 메뉴를 선택하지 못한 듯 원재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걸음을 서두르는데, 반대편에서 누군가 원재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김원재 씨.”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만났던 그 범고래가 반색하며 원재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 만나네요.”
“안녕하세요.”
가볍게 대꾸한 원재가 옆으로 비켜서려 했다. 하지만 범고래는 원재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 보러 오셨어요?”
“네.”
“오늘은 혼자 오셨나 봐요. 아, 카트 제가 밀어 드릴까요?”
저 자식이 또. 서둘러 범고래를 떼어 놓기 위해 다가갈 때였다. 원재가 냉정한 목소리를 냈다.
“적당히 하시죠.”
“뭘요?”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칼로 자르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등밖에 보이지 않는 원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저한테는 애인이 있고 그 사람과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아뇨. 안 헤어질 겁니다. 평생.”
“김원재 씨.”
“제 애인은 세상에서 가장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서요. 저는 제 애인과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편안합니다. 누구도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만하시란 말입니다. 저는 당신한테 관심 없습니다.”
기세에 눌렸는지 범고래는 입을 다물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입술을 잘근거리던 범고래가 원재의 어깨 너머로 나를 발견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범고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빙긋 웃었다.
분한 듯 몸을 돌린 범고래가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팔짱을 지르고 매대를 훑어보던 원재가 움찔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아.”
“왜 놀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원재한테 범고래와의 만남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나도 못 본 걸로 해 줘야지. 나는 카트에 고기를 넣었다.
“뭐 먹을지 골랐어?”
“연어 사려고 했는데 왕새우가 세일이래.”
“그럼 둘 다 사자.”
거침없이 새우와 연어를 집자 원재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왜?”
“기분 좋아 보여.”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겠지. 나는 심각한 척 미간을 좁혔다.
“왕새우가 맛있어 보여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원재는 새우를 한 팩 더 카트에 집어넣었다.
“소금구이 해 먹자.”
원재는 그새 범고래와의 만남을 잊어버린 듯했다. 원재의 안에서 범고래가 새우만도 못한 존재라면, 나도 더 견제할 필요가 없었다. 더 없이 들뜬 기분으로 나는 카트를 밀었다.
계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갔다. 트렁크에 짐을 밀어 넣은 뒤 원재가 빈 카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너는 시동 걸고 있어.”
운전석에 앉아 원재가 카트를 반납하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수석의 문이 열리고 원재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서늘한 바깥공기도 함께였다. 자리에 앉은 원재를 확인하곤 나는 몸을 틀었다. 팔을 뻗어 조수석 안전벨트를 끌어당기자 원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오늘따라 해 주고 싶어서.”
달칵 소리와 함께 벨트가 채워졌다. 과한 친절이 수상했는지 원재는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잘 뻗은 콧잔등에 입술을 댔다.
“사랑해.”
“……갑자기 왜.”
“갑자기는 아니야. 언제나 사랑하니까.”
“…….”
“원재야.”
조금 더 밀착해서 원재를 팔 안에 가두었다. 품에 가득 차는 커다란 곰이 사랑스러웠다. 흔들리는 까만 귀에 볼을 비비곤 가만히 속삭였다.
“돌기형 콘돔 좋아해?”
“…….”
“우리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써 봤잖아. 다음에 써 볼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지난번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범고래의 등장 때문에 원재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미리 알아 두면 다음에 마트에 올 때는 잊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원재가 내 어깨를 살짝 밀어냈다.
“지금까지 안 썼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
“내가 누구한테 안긴 건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변화를 모르는 듯 원재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너랑 하는 섹스는 다 좋았으니까.”
“…….”
“별로더라도 네가 기분 좋게 해 줄 거잖아.”
“원재야.”
더 들었다가는 이 자리에서 발기할 것 같았다. 나는 원재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혀를 내밀어 손가락 사이를 핥자 원재가 흠칫 몸을 떨었다.
“5분만 기다릴래?”
“왜.”
“콘돔 사 올게.”
“…….”
“종류별로 다 사 올게. 하나씩 쓰면서 네가 가장 기분 좋은 걸 찾아보자.”
“……그럴 필요 없는데.”
원재가 시선을 돌려 나를 외면했다. 보기 드물게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냥 넣는 게 제일 좋아.”
미치겠네, 진짜.
나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놀란 원재가 창밖을 가리켰다.
“여기 주차장이야. 밖에서 다 보여.”
“알아. 나도 여기서 할 생각은 없어.”
“그럼 왜.”
“운전 좀 대신 해 줘.”
힐끗 시선을 내려 내 하반신을 살핀 원재가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콘돔이고 뭐고 정신없이 섹스해야지. 굳게 다짐하며 나는 운전석에서 내렸다. 즐거운 주말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