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라르고 때로는 비바체
“대표님, 요새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참치 초밥과 장어 초밥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를 도운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코끼리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경영지원팀 홍 팀장이었다. 나는 짐짓 턱을 문질렀다.
“티 많이 나요?”
“네. 직원들 사이에 소문 다 났어요. 대표님 연애하느라 신나셨다고.”
코끼리답게 홍 팀장은 초밥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락교만 접시에 담았다. 숨길 수 없는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싱글거리면서 나는 답했다.
“다른 건 아니고. 애인한테 생일 선물을 받아서요.”
“벌써요? 대표님 생일 다음 주잖아요.”
“일찍 받았어요.”
무슨 선물인지는 밝힐 수 없었다. 원재가 내게 준 생일 선물은 가슴 자유이용권이었다. 8월 한 달 동안 내가 원하는 만큼 원재의 가슴을 마음껏 만지게 해 준다는, 조금 웃기는 조건이 붙었다. 솔직히 허락해 줄 줄은 몰랐는데 원재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정작 며칠 지나지 않아서부터 한숨만 푹푹 쉬었지만. 원재를 떠올리며 나는 장어 초밥을 집었다.
“동거는 안 하세요?”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왜요, 다시 합친 김에 진도 나가시지. 예전에 한창 준비하셨었잖아요.”
“그게 좀. 사정이 있어서요.”
나는 에둘러 답했다. 원재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동거를 시작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두려움은 아직 지울 수 없었다. 원재도 이런 나를 이해했기에 여태 동거 제안을 꺼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고 맞춰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되겠죠.”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함께 일상을 보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원재도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괜찮았다.
입을 다문 홍 팀장이 먼저 몸을 돌렸다. 나도 접시를 대강 채우고 그의 뒤를 따랐다.
테이블 여러 개를 점령한 직원들은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무실 직원 전원이 참석하는 점심 회식인지라 사람들끼리 나누는 소리로 북적북적했다. 모든 식성을 아우를 수 있도록 뷔페식 식당을 예약하길 잘한 듯했다.
의자에 앉자 옆자리 직원이 내게 말했다.
“대표님, 아까부터 전화 오던데요.”
음식을 담아 오느라 핸드폰을 놓고 갔었는데, 그사이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다보니 화면에 원재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그쪽도 점심시간일 텐데 무슨 일이지. 일단 통화를 수락했다.
“원재야.”
―통화 가능해?
“응. 괜찮아.”
―바쁜 거 아니야?
“아니야. 나한테 너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
어우. 주위 직원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무시하고 원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원재가 전화한 이유는 데이트 약속 때문이었다. 회사 교육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듯해서 내 퇴근까지 시간이 어중간하게 빈다는 것이었다.
―오늘 차를 안 가지고 와서. 집에 들렀다 가기도 애매해. 네 회사 근처에서 기다릴게.
날도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미안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차라리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기다릴래?”
―그래도 돼?
“응. 나 혼자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와.”
직원들이야 일찍 보내 버리면 되니까. 여름휴가 시즌이라 요새 한가한 편이니 일찍 보내 준다면 다들 좋아할 거다. 다행히 원재는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회사의 위치가 어딘지는 아느냐고 묻자 원재가 느릿느릿 답했다.
―대충. 한 번 갔었으니까.
“언제 왔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원재가 내 회사로 찾아온 적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원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갔던 적 있어.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나는 대충 통화를 마무리했다. 이따 원재를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핸드폰을 내려놓자 해치워야 할 다른 일이 눈앞에 보였다. 호기심이 잔뜩 어린 얼굴로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까지 내게 보내는 시선이 따끔따끔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여기 잠깐 주목해 주실래요?”
직원들이 당장 소리를 죽였다. 한 명씩 돌아보며 나는 그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떡밥을 던졌다.
“오늘은 한 시간 일찍 퇴근하세요. 내가 남아 있을 테니까 전화 걱정하지 마시고요.”
와아, 환호성이 터졌다. 음료수가 든 컵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홍 팀장을 위해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이따 애인이 회사로 올 것 같아요. 부담 주기 싫으니 사무실 비워 주세요.”
“저 야근하겠습니다!”
“남은 일이 많아서 못 가겠는데요, 대표님.”
“아차차, 거래처에서 7시쯤 연락이 온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발언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짓궂었다. 홍 팀장이 사람들의 농담을 막아 세웠다.
“뭐, 그렇다고 하시니까. 오늘은 일찍들 집에 가서 금요일을 즐깁시다.”
“치사해요.”
“홍 팀장님은 저번에 그분이랑 만나셨으니까 그렇죠.”
“네? 홍 팀장님이 원재를 언제 만났어요?”
사람들의 대화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도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인 듯했다. 의아해서 홍 팀장을 돌아보자 그가 커다란 귀를 펄럭거렸다.
“작년에 대표님 한동안 연락 안 되셨을 때요. 애인분께서 한 번 회사로 찾아오셨어요.”
“……아.”
“좋은 분이셨죠.”
홍 팀장이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원재가 언제 회사에 왔었나 했더니 그때였구나. 머쓱해져서 나는 홍 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내가 면목이 없네요.”
“그러니까 저희도 애인분 만나게 해 주세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소문이 났다면 더더욱 원재를 보여 줄 수는 없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꼭 퇴근하세요. 안 가고 남는 사람은 인사 고과에 반영합니다.”
갑의 횡포네, 권력 남용이네 하며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잡담에 빠져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심으로 사장 애인이 궁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들 장난치느라 그러는 거겠지. 오후에 처리할 일을 세어 보며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농담이 아니었는지 직원들은 끝까지 미적거리며 사무실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억지로 쫓아 보낸 뒤 원재를 불렀다.
정작 원재는 복도에 서서 한참 망설였다.
“밖에서 기다릴게.”
“들어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 사적인 공간이 아닌데.”
“내 회사야. 사장이 정식으로 초대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런가.”
“견학한다고 생각해. 정 걱정되면 대표실에만 앉아 있든가.”
고개를 끄덕인 원재가 커다란 몸을 움츠리곤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실로 가는 동안에도 원재는 다른 곳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남의 회사라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문을 열어 대표실 안을 보여 주자 원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일해?”
“출장 안 갈 때는.”
“진짜 사장님이네.”
큰 회사에 비하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인데도 원재는 감탄한 눈치였다. 하긴, 지금까지 사장으로서의 내 모습을 원재에게 보여 줄 일이 별로 없기는 했다. 내 취향대로 깔끔하게 꾸며 놓은 공간을 나도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며 구경하던 원재가 데스크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원재가 가리킨 건 모니터 옆에 놓인 메모꽂이였다. 잘 보이게 꽂아 둔 명함이 흔들거렸다. 작년 연말, 원재가 대리로 진급하면서 새로 만든 명함이었다.
“네 진급 기념으로 꽂아 놨지. 내 애인 이렇게 멋있다고 사람들한테 자랑하려고.”
“고작 대리인데 뭐가.”
민망한지 원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뭐 어때서. 내 눈에는 원재의 이름 옆에 적힌 새로운 직함이 멋지기만 했다. 나는 슬그머니 원재의 옆으로 다가갔다. 허리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기자 묵직한 몸이 품 안으로 딸려 왔다.
“사실은 사진을 놓고 싶은데, 그건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네 회사 직원들이 욕하지 않을까.”
“이미 욕하고 있을 거야. 팔불출이라고.”
피식 웃은 원재가 눈을 감았다. 내리감긴 눈꺼풀은 다시 열릴 줄을 몰랐다. 기대에 부응해 입을 포갰다. 도톰한 입술을 빨아들이자 질척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은근슬쩍 혀를 밀어 넣어도 원재는 거부하지 않았다. 도리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이했다.
가볍게 시작한 키스는 점점 깊어졌다. 가빠지는 호흡처럼 흥분이 차올랐다. 익숙한 공간에 원재를 들인 것도 모자라 이런 행위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극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 불쑥 치솟는 욕망을 참기 어려웠다. 원재의 탄탄한 엉덩이를 쥐면서 가까스로 나 자신을 타일렀다.
원재는 한참 만에 나를 떠밀었다.
“퇴사해도 네 회사로는 안 와.”
“왜?”
“수시로 호출해서 이럴 거 같아서.”
“아니라곤 말 못 하겠다.”
그러면 회사 다닐 맛이 날 텐데. 아쉽지만 그러다 폐업할 것 같으니까 원재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흐트러진 옷을 매만진 원재가 소파에 앉았다.
“이제 일해.”
“심심하지 않겠어?”
“일하는 거 구경할게.”
내 애인이 그러겠다는데 마음껏 구경할 수 있도록 해 줘야지. 나는 데스크로 돌아갔다.
내가 남은 업무를 마칠 때까지 원재는 대표실 내의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일하는 내 모습이 신기한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시선을 돌려 대표실을 둘러보는 척했다. 하는 짓이 하나하나 귀여워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결재가 끝난 서류까지 뒤적이면서 나는 원재의 눈길을 즐겼다.
원재가 지루하지 않을 만큼만 버티다가 대충 데스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원재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끝났어?”
“응.”
“수고했어.”
“말로만?”
장난스럽게 말하며 볼을 내밀자 눈을 깜빡인 원재가 순순히 입술을 댔다. 원재가 가끔 이를 세워 깨물곤 하는, 점이 있는 부근이었다.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간지러웠다. 앞으로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오르겠지. 상상만으로도 흐뭇했다.
색다른 데이트 장소에 만족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원재는 계속 기분이 좋아 보였다. 멀어지는 빌딩을 힐끗 올려다보더니 혼자 피식 웃기까지 했다. 신호를 확인하면서 나는 물었다.
“왜?”
“이젠 저기가 다르게 기억될 것 같아서.”
담담한 말투인데도 가슴이 울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전 방문은 원재에게 껄끄러운 추억으로만 남았을 테니까. 원재가 내 회사에 선뜻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이유도, 단순히 낯선 공간이어서가 아니었을지 몰랐다.
그럼에도 내 초대에 응해 준 원재가 고마웠다. 차가 신호에 걸린 틈을 타 나는 원재의 허벅다리에 손을 얹고 토닥였다. 나를 물끄러미 응시한 원재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집에 들어서자마자 원재는 욕실로 향했다. 곧이어 물소리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저녁 재료를 사러 간 마트에서도 시큰둥하더니, 씻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많이 더웠나. 에어컨 세게 틀어 놨었는데. 식재료를 정리하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냉장고 정리를 마치고 저녁 준비를 할 때쯤 욕실 문이 열렸다.
“서은겸.”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잠시 숨을 멈췄다. 무슨 생각인지 원재는 젖은 몸에 셔츠 한 장만 걸친 채였다. 원재가 탄탄한 다리를 움직여 내게 걸어오자 셔츠의 아랫단이 나풀나풀 흔들렸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원재가 내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주저 없이 팔을 뻗어 원재를 끌어안았다.
줄곧 태연해 보이던 것과 달리 원재의 몸은 뜨거웠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도 열기가 묻어났다.
“아무도 없길래.”
“응?”
“아까 거기서 할 줄 알았는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원재가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회사에서 키스했을 때부터 기다렸던 건가.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양심상 참았다고 변명하려 했지만, 듣지 않겠다는 듯 원재가 입술을 겹쳤다. 순식간에 짙은 체향이 코를 찔렀다.
피가 몰리는 아래를 느끼며 원재를 벽으로 밀쳤다. 두툼한 가슴을 움켜쥐자 원재가 숨을 내뱉었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동시에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밀어 넣었다. 원재는 자신의 흥분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단단해진 성기를 내게 문지르며 들썩거렸다. 맞물린 입술처럼 빈틈없이 달라붙은 하반신이 뜨거웠다.
키스를 이어 갈수록 더 목이 말랐다. 혀뿌리부터 감싸 올리며 몇 번이고 입천장을 훑는 사이 비릿한 맛이 맴돌았다. 혀 돌기 때문에 원재의 입 안 점막에 상처가 난 듯했다. 입을 떼자 나를 따라온 원재가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핥았다. 자꾸만 조르는 그가 귀여웠다. 하지만 더 키스하는 건 위험했다. 대신 나는 원재의 가슴을 쥔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흣……!”
작은 젖꼭지는 셔츠 위로 빠는데도 곧장 솟아올랐다. 이를 세워 잘근거릴 필요도 없었다. 수없이 희롱한 보람이 있는 반응이었다. 빳빳이 선 돌기를 혀끝으로 툭툭 건드리자 원재가 허리를 떨었다. 젖은 천 밑으로 비치는 살갗이 더할 나위 없이 섹시했다.
“빨리…….”
가쁜 숨과 원재가 말을 뱉었을 때는 나도 바지가 갑갑하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다. 벨트를 풀고 속옷과 함께 끌어 내리자 팽팽해진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욕실에서 챙겨 왔는지 콘돔을 꺼낸 원재가 내 페니스를 더듬었다. 기둥을 훑어 내리며 콘돔을 씌우는 손길이 빠르고도 정확했다.
그사이 나는 셔츠의 단추를 풀고 양옆으로 젖혔다. 발기한 원재의 성기가 잘 짜인 복근을 찌를 듯 곤두서 있었다. 요도구에 고인 투명한 액체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돌았다. 어서 원재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침실로 자리를 옮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원재의 한쪽 오금을 붙들고 끌어 올렸다. 무거운 다리를 팔에 걸치자 원재가 내 어깨를 짚었다.
“읏.”
“힘들어?”
한 다리로만 서야 해서 불편한 듯했다. 넘어지면 곤란하니 내게 기대게 하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 원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뒤로…….”
“뒤로 하는 건 싫어. 얼굴이 안 보이잖아.”
“힘들면 바로 말할게.”
달뜬 숨을 내뱉으면서도 원재는 또렷하게 말했다.
“너랑 하는 거 좋아해.”
“…….”
“절대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
나를 보는 원재의 시선이 곧았다. 검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 믿음이 생겼다. 나는 원재의 다리를 내려놓았다. 곧 원재가 몸을 돌려 벽을 짚었다. 흰 셔츠가 올라가면서 원재의 하반신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원재도 나도 오래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양옆이 움푹 팬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벌렸다. 벌름거리는 구멍이 아찔하게 드러났다.
욕실에서 미리 준비한 건지 원재의 안은 젖어 있었다. 손가락을 넣어 움직여 보니 매끄럽게 오갔다. 이대로 삽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붉게 달아오른 원재의 귓불을 매만지곤 나는 성기를 고쳐 쥐었다.
굵은 선단이 입구를 벌리며 천천히 안으로 파고들었다. 버거웠는지 원재가 어깨를 젖히자 날개뼈 사이로 깊은 골이 생겨났다.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눈을 옮겼다. 뭉뚝한 검은 꼬리 아래로 내 것을 단단히 물고 있는 엉덩이에 시선이 닿았을 때, 나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시험 삼아 페니스를 빼내자 젖은 틈이 벌어지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아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기둥을 다시 밀어 넣었다.
“흐으…….”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원재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좁은 틈으로 내 성기를 뿌리까지 집어삼켰다. 한계까지 벌어진 입구 부근을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안쪽이 가늘게 경련했다.
원재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고 움직였다. 안쪽을 가를 때마다 뜨거운 내벽이 감겨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쾌감이 치밀었다. 어느새 나는 속도를 높여 깊은 곳까지 박아 넣기 시작했다.
“읏, 흐, 아!”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원재의 자세는 점점 무너졌다. 아래로 내려가는 몸을 붙들었지만 허사였다. 꼿꼿했던 상체가 계속 미끄러져 내렸다. 허리를 굽힌 원재가 주먹을 쥐었다.
땀이 맺힌 등을 내려다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원재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철썩거리며 살이 부딪히는 소리에 억눌린 소리가 섞였다. 원재가 팔뚝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잊었던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원재야.”
끝까지 박아 넣었던 성기를 빼내고 황급히 원재의 몸을 뒤집었다. 눈을 꾹 감은 원재를 본 순간 심장이 덜컥거렸다. 역시 힘들었던 거였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서 참고 있었겠지. 나는 원재를 끌어안았다. 넋이 나간 듯한 원재에게 뺨을 비비며 정신없이 사과했다.
“미안해. 미안해. 다시는 안 할게.”
가슴을 크게 들썩이던 원재는 한참 만에 눈을 떴다. 벌게진 눈시울을 핥아 주자 작게 신음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책망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리어 원재는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왜 멈춰.”
“응?”
“한창 좋았는데.”
“…….”
“다시 해.”
“진짜로 괜찮아?”
원재는 대답 없이 내 성기를 쥐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아래로 직접 가져다 댔다. 축축하게 젖은 구멍 사이로 팽팽한 성기가 미끄러져 들어가자 원재가 숨을 토해 냈다.
“더 박아 줘. 네 걸로 가고 싶어.”
순식간에 아랫도리에 피가 쏠렸다. 원재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나는 거칠게 페니스를 박아 넣었다. 온몸으로 등을 누르자 원재가 주먹을 꽉 쥐고 벽을 짚었다.
“응, 아! 흐윽……!”
힘줄이 솟은 팔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원재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면서 재차 몸을 움직였다. 이성이 끊긴 건 한순간이었다. 정신없이 원재를 몰아붙이며 나는 허리를 놀렸다. 사정에 이를 때쯤에는 원재가 흐느끼고 있었다. 고통이 아닌 쾌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임을 알기에 멈추지 않았다. 원재 또한 섹스가 끝날 때까지 한 차례도 나를 놓지 않았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품 안의 온기를 끌어안으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깼으면 일어나.”
“더 잘래.”
팔에 힘을 주며 끌어안자 원재가 한숨을 쉬었다.
“불편해.”
원재가 불편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지막 사정 이후 원재에게 삽입한 채로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원재의 이마에 키스하며 천천히 성기를 빼내자 원재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침 뭐 먹을래.”
몸을 일으킨 원재가 침대 바깥으로 내려섰다. 밤새 무게를 실어 찍어 누른 탓인지 엉덩이가 뻘겋게 부어 있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라 감상하는데 원재의 다리 사이로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굵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건 내 정액이었다.
그랬지, 참. 콘돔이 모자라서 나중에는 그냥 막 했지.
뒤쪽의 상태를 느꼈는지 원재가 허리를 틀었다. 그러더니 인상을 찡그리곤 침대 옆의 티슈를 뽑아서 뒤를 대충 닦아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새벽까지 날뛰다 간신히 잠들었던 중심이 양심도 없이 불끈거렸다.
나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켰다. 다가가서 원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땀 냄새가 섞인 원재의 체향이 밀려오자 콧속이 아릿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원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원재야.”
“응?”
“나 너 먹고 싶어.”
잠시 침묵을 지키던 원재가 손을 뒤로 돌렸다. 밀어낼 줄 알고 힘주어 버텼는데, 뜻밖에도 원재의 손은 내 다리 사이로 향했다.
“팔팔하네.”
중얼거리며 기둥을 만지작거린 원재가 엉덩이 사이로 이끌었다. 본능적으로 꾹 밀어 넣자 밤새 적신 구멍이 나를 매끄럽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버겁기는 한 듯 원재가 어깨를 움츠렸다.
“말은 바로 해.”
“응?”
“네가 날 먹는 게 아니라, 나한테 널 먹이는 거잖아.”
“…….”
“새벽까지 배가 터지게 먹였으면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원재는 내가 잘 들어올 수 있도록 다리를 벌려 주었다. 참지 못하고 나는 곧장 원재를 밀어붙였다.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원재가 허리를 굽혔다.
그대로 아침도 잊고 몸을 섞었다. 원재의 양팔을 붙들고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페니스가 구멍을 드나들 때마다 하얗게 거품이 인 정액이 꿀렁꿀렁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원재의 다리를 타고 흐른 탁액이 바닥을 더럽혔다.
“좋, 아, 응!”
원재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직하게 내뱉는 원재의 목소리와, 꼿꼿이 선 채 흔들리는 원재의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시야를 메운 울긋불긋한 등허리마저 보기 좋았다.
더는 이 체위가 두렵지 않았다.
어제 원재에게 내 회사가 다른 의미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처럼, 우리 사이에 남은 작은 엇갈림을 하나하나 극복하다 보면. 힘들었던 과거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덮어쓰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평범하게 시작한 연인들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원재가 나와 함께해 줄 테고.
남들이 뭐라 하건 우리는 우리만의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면 된다. 느릿하게, 그러다 내킬 때는 빠른 속도로.
어떤 박자건 서로를 붙잡은 손만 놓치지 않으면 괜찮으니까.
원재의 넓은 등에 입을 맞추고 나는 다시 섹스에 집중했다. 지금은 속도를 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