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렇게 좋은 가슴
연애 상담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효영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알아서 해. 잘 지내는 것 같던데.”
“고민이 있어서.”
“고민? 무슨 고민? 네 애인이 밤마다 안 놔줘서 힘들어?”
“……밤마다 안 놔주는 건 맞는데 힘들진 않아.”
입을 떡 벌린 효영이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말없이 볼을 긁적였다. 그야 효영의 말대로 은겸과 잘 지내고 있기는 했다. 재회한 뒤로 처음 맞이한 내 발정기를 놓치지 않고 만날 때마다 몸을 섞는 것도 사실이었고.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랄 시간이었기에, 그래서 작게라도 고민이 생기는 게 싫었다.
“그냥 별일 아닌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해서. 애인한테 직접 물어보기 전에 남의 의견도 듣고 싶어.”
“그 의견이 꼭 내 거일 필요는 없잖아.”
“내 주위에선 네가 제일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 같아서 그래.”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효영도 그 이상은 발을 빼지 않았다. 하지만 무료로는 상담해 주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효영의 장단에 맞추어 비싼 밥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나온 자리에서도 나는 고민이라곤 서론도 꺼내지 못했다.
그릇을 다 비운 효영이 나를 채근했다.
“야. 김원재. 점심시간 다 지나간다. 빨리 말 안 해?”
이러다가는 밥만 사고 상담이 끝날지도 몰랐다.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효영아.”
“오냐.”
“애인이 말이야.”
“그래. 네 사자 애인이 뭐. 대체 뭐가 문제야. 바람이라도 피워?”
“……가슴에 집착하거든.”
허. 짧게 숨을 내뱉은 효영이 대놓고 얼굴을 구겼다.
“사이좋다고 자랑해?”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셔츠 밑의 가슴을 떠올리자 입맛이 썼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은겸은 유난히 내 가슴을 아꼈다. 온갖 찬양을 늘어놓으며 그가 애무해 줄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거울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가 보기에 내 가슴은 하얀 달 무늬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 사람 전 배우자들이 다 여자였으니까. 남자인 내 가슴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해서.”
물론 은겸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은겸이 ‘내 가슴’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원래 가슴을 좋아하는 취향인 거라면. 어쩌면 지금의 나로는 만족하기 어렵지 않을까. 내가 지닌 반달가슴곰 특유의 무늬에 흥미를 느끼는 것뿐이고.
스스로 생각해도 하찮은 고민이었기에 은겸에게는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짜증스레 이마를 긁적인 효영이 눈을 치켜떴다.
“원재야.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런데.”
효영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 가슴이 나보다 커.”
“…….”
“내 거 보지 마라.”
“어, 미안.”
나는 허둥지둥 시선을 돌렸다. 그대로 손을 내린 효영은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뭐, 그렇다곤 해도 네 가슴이 봉긋하게 솟지는 않잖아. 근육이니까. 진짜 그게 불만이면 진작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런가.”
“정 걱정되면 네 애인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근데 내 생각엔 걱정할 일 아닌 것 같다.”
“그래?”
“너 그냥 질투하는 거 아냐?”
“……뭐?”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나는 퍼뜩 눈을 들어 효영을 바라보았다. 그새 핸드폰을 챙겨 들고 일어선 효영이 혀를 찼다.
“밥 잘 먹었다.”
“잠깐만. 무슨 질투?”
“상담 끝났어. 먼저 갑니다, 김 대리님.”
잡을 틈도 주지 않고 효영은 재빠르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서둘러 계산을 하면서도 나는 효영이 남겨 주고 간 말을 계속 떠올렸다.
내가 질투를 한다고?
금요일 퇴근과 함께 찾아온 주말은 여느 때처럼 은겸과의 키스로 시작되었다.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은겸은 나를 끌어안았다. 정신없이 입술을 겹치는 은겸을 받아들이며 나는 한 손으로 문을 더듬어 잠갔다. 그 뒤부터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키스했다. 흐트러진 옷을 벗으면서 우리는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떠밀려 눕혀지자 푹신한 매트리스가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흔들렸다. 아랫입술을 핥으며 은겸이 다리 위로 올라탔다. 언제부터 흥분했던 것인지 그의 중심은 이미 불룩해져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살벌한 부피에 기가 꺾였다.
덤벼드는 은겸을 손으로 저지했다.
“일단 진정해.”
“왜?”
“너 너무 흥분했어.”
발정이 찾아온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우선은 은겸을 설득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무릎을 세워 은겸의 성기를 꾹 눌렀다.
“이거 한 번 빼고 넣자.”
“원재야.”
“지금 이대로는 안 들어갈 것 같아.”
“내가 잘 풀어 줄게.”
“그럴 여유 없잖아. 한 번 빼고 천천히 푼 다음에 넣어.”
은겸이 귀를 뒤로 젖혔다. 불만스럽게 휙휙 휘두르는 꼬리가 시트를 스치며 소음을 만들었다. 나는 무릎에 닿는 딱딱한 중심을 문질렀다.
“너 너무 커.”
은겸은 억지로 덤벼들지 않았다. 가빠진 숨을 고른 그가 실망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럼.”
멀어지는 체온을 무의식중에 따라가다가 나는 퍼뜩 상체를 젖혔다. 다행히도 은겸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던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들처럼 작게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무슨 자랑이야.”
“자랑 아니야. 사자는 원래 체구에 비해서 성기가 작은 편이거든.”
굵은 기둥을 한 손으로 쥐며 은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클까.”
자기 자랑 맞는 것 같은데.
은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래로 내리깔린 호박색 눈이 우수에 젖었다. 삽입을 거절당했다고 시무룩해져서는 자기 성기를 쥐고 불평하는 사람답지 않게, 쓸데없이 멋있는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상대한테 넣지도 못하는데 무슨 소용…….”
“그만 좀 해.”
점차 심해지는 넋두리를 막아 세웠다. 말은 중단시켰지만 우울해진 표정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래로 늘어진 넓은 어깨가 눈에 밟혔다. 핀잔을 주려다 말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대놓고 상심했다고 표현하는데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없었다.
“알았어. 넣어.”
“싫다면서.”
“마음 바뀌기 전에 해.”
나는 한숨을 삼키며 그의 손을 붙들었다.
“대신 같이 풀어.”
돌연 은겸이 귀를 쫑긋 세웠다. 언제 실망했냐는 듯 눈을 빛내며 그가 손깍지를 꼈다. 은겸의 등 뒤에서 긴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렸다. 어쩐지 속은 느낌이었다.
정사가 끝난 뒤에도 은겸은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목덜미며 어깨에 입을 맞추며 허리께를 지분거렸다. 한가롭게 흔들리는 은겸의 꼬리가 다리를 간지럽혔다. 느른하게 누워 은겸의 애무를 즐기다가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응?”
차마 ‘내 가슴이 그렇게 좋아?’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은겸의 손을 끌어 가슴팍 위에 얹자 노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한 번 더 하자고?”
“그게 아니라.”
답도 듣지 않고 은겸은 당장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꽉꽉 힘을 주어 움켜쥐는 손가락이 아프면서도 묘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낮게 목을 울리자 은겸이 아랫입술을 핥았다.
“언제 봐도 완벽해.”
“…….”
“촉감. 무게감. 탄력. 크기. 모양. 색…….”
그래 봐야 네가 안았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완벽할까.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문장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비뚤어진 사람이었나? 은겸의 칭찬도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더구나 은겸은 단 한 번도 나를 과거의 연인들과 비교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먼저 남들과 나를 놓고 저울질하다니.
‘……내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가.’
그제야 효영이 말했던 ‘질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은겸이 나한테 만족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게 아니었다. 과거의 연인들에게도 비슷한 찬사를 늘어놓지는 않았을지,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집착했을지 상상하면서 질투하고 있었다.
흘러가 버렸기에 바꿀 수 없는 문제를 두고 질투하긴 싫은데. 이런 찜찜한 기분으로 은겸과 함께 누워 있는 건 더 싫었다. 나는 은겸의 손목을 붙들었다.
헛소리임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1위야?”
“응?”
“네가 본 가슴 중에서 내가 1위냐고.”
멍하니 나를 내려다보던 은겸이 폭소를 터뜨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
“가슴에 이렇게까지 진심이 된 건 김원재 씨가 처음인데요.”
“…….”
“좀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어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좋아한다고 표현하는데.”
고개를 숙인 은겸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코를 비비는 그를 내버려 두고 나는 중얼거렸다.
“……반달가슴곰하고 만나는 건 내가 처음이라며.”
“그게 왜?”
“그래서 그냥 무늬 때문에 신기해하는 거 아닐까 했어.”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김원재 씨 가슴을 좋아합니다.”
장난스럽게 말한 은겸이 이를 세워 살갗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살짝 아플 정도로 유두를 빠는 그의 머리통을 밀어내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속은 시원했다. 이래서 조금 한심하더라도 솔직하게 대화해야 하는 거구나.
키득키득 웃던 은겸이 돌연 눈빛을 바꾸었다.
“이제 내가 질투하면 돼?”
“응?”
“나는 너한테 사랑받은 모든 사람이 부러운데.”
“……장난치지 마.”
“이 사람의 애정은 전부 내 거니까 탐내지 말라고 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픈 심정이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은겸이 내 팔을 끌어당겼다. 아래로 내리누르는 힘이 강해짐과 동시에 아래쪽으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보여 주고 싶어.”
“흐읏…….”
“원재야.”
“잠깐, 거기 아직, 읏.”
“자국 남겨도 돼?”
대답도 듣지 않고 은겸은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자세를 갖춰 주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고 질투했다니. 내가 바보였다.
“올해 생일 선물로 가슴 자유이용권 주면 안 돼?”
“……그게 대체 뭔데.”
“8월 한 달 동안 만지고 싶을 때 마음껏 만지게 허락해 주는 거.”
“어차피 지금도 만지잖아.”
“지금은 참는 건데?”
아니, 어쩌면 내 가슴에 대한 은겸의 진심을 지금껏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허락해 주면 대체 얼마나 더 물고 빨고 할 생각일까. 오싹 소름이 돋으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호기심의 대가로 많은 것을 잃고 난 뒤, 나는 두 번 다시 은겸에게 그런 선물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