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여덟, 겨울
그날의 메뉴는 오징어 볶음과 연근 조림이었다. 이명은 된장국을 식판에 올리고서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체육 시간이었던 4교시가 끝나고서 곧바로 급식실에 오는 대신 옷을 갈아입으며 시간을 끌었다. 그가 도착했을 땐 가장 북적거리는 시간대가 지난 뒤였다. 이명은 커다란 기둥 옆자리에 앉았다. 그곳은 급식을 혼자 먹어도 반대편에서 안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혼자 밥 먹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지만, 가끔 힐끔거리는 애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곤 했다.
핸드폰 어플로 음악을 재생하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꼈다. 뿅뿅거리는 전자음이 높은 천장을 울리던 소음을 덮자 기분이 좋아졌다. 상큼하고 청량한 보컬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멎고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명은 숟가락을 들어 된장국을 한 모금 떠먹었다.
머리를 비우고 식사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기둥 건너편에서 의자 빼는 소리가 음악 소리를 뚫고 들어왔다.
“와 씨발, 오늘 밥 뭐냐?”
“이게 개밥이야 사람 밥이야?”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험한 소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암튼 거기서 골이 들어가는데 개쩔었다니까. 거의 메시였어.”
“무릎으로 한 번 띄우고 그담에 골대 왼쪽 위에 꽂는데, 캬.”
“지렸다.”
이명의 엄지가 + 버튼을 찾아 두 번 눌렀다.
“왼발 킥 아니었음? 난 그렇게 봤는데.”
“아, 무슨. 전혀 아님.”
“맞거든, 띨빡아?”
그들은 조금 전까지 축구를 하다 왔는지 단체로 흥분해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볼륨을 꽤 크게 올렸는데도 음악 소리를 뚫고 고막을 때려 댔다. 이명은 + 버튼을 연타했다. 귀가 슬슬 아파질 수준까지.
“아니라고! 내가 봤다고!”
“뭔 소리야, 쟤 오른발잡인데. 내가 초딩 때부터 봤는데 그걸 모르냐?”
“어쩌라고, 그럼 내가 본 건 뭐야?”
+, +
“네 눈이 삐었나 보지.”
+, +, +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야, 선호.”
이명의 손이 멈추었다. + 버튼을 꾹 누르고 있었던 탓에 볼륨이 한계까지 다다다다 올라갔다. 보컬들이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서둘러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자 급식실의 소음이 다시 돌아왔다.
“반장, 너 아까 왼발로 찼어, 오른발로 찼어?”
시끌시끌하던 옆 테이블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명은 입가까지 올렸던 숟가락을 물고 덩달아 숨을 죽였다.
“기억 안 나는데? 오른발이었겠지 뭐.”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운 목소리에는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는 힘이 있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탓에 밥 먹을 때 듣기 좋은 음성은 아니었지만. 이명은 음악 플레이어를 슬그머니 종료해 버렸다.
“뭐야, 네가 찼으면서 왜 기억이 안 나?”
“그럼 너는 아까 나한테 무슨 발로 패스했는지 기억나냐?”
“오, 그러네. 기억이 안 나네.”
그 애들은 계속해서 조금 전 축구 시합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명은 모든 대화를 엿들었다. 반장은 뜻밖에도 과묵했다. 친구가 많길래 정처럼 활달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일 줄 알았는데, 그는 오히려 경청하는 타입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의견을 내고 싶을 때만 한마디씩 했다.
그는 언제나 관심의 중심에 있었지만 나서서 주의를 끄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농담하거나 장난치는 모습도 보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욕이나 험한 말을 쓰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친구가 많은 게 신기했다.
“우리 이번에 운동 잘하는 애들 많아서 체육 대회 때 쩔겠다.”
“예? 지금 3월인데 벌써 체육 대회요?”
“그래 봤자 다른 반에서 축구부 애들 나오면 끝나는 거 아니냐.”
“우리 반에도 축구부 두 명 있을걸?”
“누구?”
이명은 식사를 끝냈지만 일어나기 아쉬워서 괜히 젓가락으로 남은 반찬을 쿡쿡 찔렀다. 반장과 같은 반이 되어서 좋기는 했지만 접점이 전혀 없어서 목소리 들을 기회가 ‘차렷, 경례’ 때 말곤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기해.’
열 개나 되는 반 중에서 하필 그와 같은 반이 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만일 다른 반이었다면 졸업할 때까지 이름조차 모르다 기억에서 서서히 잊혔을 텐데.
아니, 어쩌면 불행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그에게 궁금한 점이 점점 많아져서, 갈수록 시선을 뗄 수 없어져서 걱정될 때가 있었다. 작년에는 운동장을 지나갈 때 오늘은 있으려나 힐끔거리는 정도였지, 이렇게 매일같이 그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축구부만 있는 줄 아냐? 우리 반에 바둑부도 있어.”
반장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명은 훅 들려온 소리에 몸을 굳혔다.
“바둑부?”
“아, 바둑부가 아니고 기사.”
“택시?”
“아니, 말길을 못 알아듣냐? 우리 반에 바둑 두는 애가 있다고.”
이명은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뭐, 근데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
“누군데?”
“김명?”
“누군지 모르겠다. 아직 이름 다 못 외웠어.”
이름이 잘못되었는데도 아무도 정정하지 않았다. 하긴, 이명도 거기 앉아 있는 다섯 명 중에 이름을 제대로 아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바둑 하는 애들 좀 이상하지 않냐?”
“왜?”
“나 초딩 때 한 명 있었는데 존나 병신이었음. 맨날 혼잣말 중얼거리고.”
“나도 한 명 봤는데 걘 잘난 척이 쩔었어.”
“맨날 바둑만 둬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래도 기사 되면 돈은 잘 벌걸? 걔 3단이라는데, 우리 아빠가 그 정도면 하버드 간 거보다 훨씬 대단한 거래.”
“근데 성격은 병신이고? 아, 누구지? 왠지 안경 썼을 것 같다.”
이명은 불안한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남들이 그를 두고 뒤에서 험담하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저 중에 소년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걔 안경 안 써.”
그때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꽂혔다.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주목할 수밖에 없게 하는 소리가.
“그리고 착해 보이던데. 아직 잘은 모르지만.”
침착한 목소리는 이명에게 따스하고도 단단한 방어막을 쳐놓고 소음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이명은 싸늘하게 식은 국을 앞에 두고 눈을 깜빡거렸다. 누가 뒤에서 자신을 욕하는 걸 들은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변호해 준 적은 처음이었다.
“천재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도 하루만 돼 보고 싶다.”
이명은 마치 저쪽 일행처럼, 웃음을 터뜨린 다른 애들과 같은 타이밍에 키득거렸다. 누가 봐도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렇지만 어깨가 들썩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닥쳐, 반장. 니도 천재잖아.”
“내 말이……. 존나 재수 없어. 공부도 잘하면서.”
다른 애들이 핀잔을 주자 소년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순수하고 청량하게.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기둥이 없었다면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미소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척 아쉬웠다.
“난 저 얼굴이 제일 재수 없다.”
“동감. 잘생긴 놈들 다 죽었으면…….”
“윽! 나 방금 사망함.”
“……네, 영생을 누리실 분.”
“에휴.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의자 끌리는 소리가 차례차례 나고 아이들이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이명은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주 멀어진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지키며 대화를 곱씹었다.
‘착해 보이던데.’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되고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니. 두 귀로 똑똑히 듣고서도 믿기 어려웠다.
‘나도 하루만 돼 보고 싶다.’
‘내가 되어 보고 싶다니, 말도 안 돼.’
그의 음성을 다시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명의 입술 사이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런 건 얼마든지 바꿔 줄 수 있으니까, 자신이야말로 하루만 한선호로 살아 보고 싶었다. 뭐든지 잘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완벽한 소년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