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끄아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연신 옆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그 왁자지껄한 소리들은 거실로 옮겨갔다. 아예 좀 더 넓은 곳에 터를 잡고 밤을 밝히기로 한 모양이다.
그나마 옆방일 때에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둔탁하게 전해져 오던 그 소음들은 거실로 근원지를 옮기자 얇은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적나라하게 다 전해져 온다.
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앓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래, 그 웃음은 이런 의미였구나, 정상헌.
녀석이 말했던 동아리 선배들인지 친구들인지가 들이닥친 건 오후 여덟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설령 집에 손님(인지 지금에 와서는 심각하게 의심이 가지만)이 들었다고 해도, 내 손님도 아니고 거의 불청객이나 마찬가지인 인간들이 불한당과 같은 태도로 들이닥쳤기 때문에 나로서는 인사를 하거나 예의 갖춰 맞을 생각이 요만치도 없었다.
아마 내가 방 안에 있을 때 들이닥쳤더라면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선배들인지 친구들인지는 내가 식사를 마친 후 욕실에 가서 몸을 담그고 막 나왔을 때 정상헌을 앞세워 대동하곤 문을 덜커덩 열고 들이닥쳤고, 덕분에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미처 닦아 내기도 전에 얼빠진 얼굴로 그들을 맞아야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인간들을, 바스가운 하나 달랑 걸친 모습으로 맞이하는 일의 그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난 상상할 수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는.
상상할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그 생생한 민망스러움을 고스란히 맛볼 수는 없을 거다.
어이가 없어서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멍청히 그들과 대치하고 있다가, 정상헌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서며 ‘어, 형님들, 지금 나랑 같이 사는 놈.’이라고 나를 그들에게 소개하는 바람에 결국 졸지에 나는 그 차림새를 하고서 그들과 인사를 나눠야만 했다.
척 보니, 그 선배들인지 친구들인지가 뭐하는 놈들인지는 뻔했다. 모르는 게 이상할 거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 번쩍번쩍한 구두에 위험스러운 상흔과 같은 정석 그대로의 차림은 하고 있지 않더라도, 대강의 차림새나 분위기, 말투만으로 이미 한눈에 알아차렸다.
주먹으로 먹고 살아가는 부류의 놈들이군.
그런 놈들더러 형님들, 이라고 부르는 정상헌 저놈의 앞날도 어쩐지 보이는 것만 같아서, 나는 당장 저놈의 멱살을 틀어쥐고 ‘야, 이놈아, 정신 차려! 저런 놈들이랑 어울려 다니다가 인생 종치면 나중에 후회해도 한참 늦어!’라고 소리쳐 주고 싶은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당사자들을 앞에 두고 비방할 만큼 무례하진 않다. 나중에 저 사람들 가고 나면 저놈을 불러 앉혀다가 족쳐야겠다.
적당히 가운깃을 여미며 인사를 하곤 서슬 퍼런 표정으로 상헌이 놈을 세차게 노려본 후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축축한 가운을 벗어던지고 옷을 챙겨 입은 후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았다. 꺼 놓은 컴퓨터의 시커먼 화면에 비치는 내 모습이 못마땅한 듯 찌푸려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불쾌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짙어져, 나는 천천히 왜 내 기분이 나빠져야 하는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우선 벨 한 번 울리지 않고 갑자기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 저놈의 비상식이 맘에 안 든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내가 오늘부터 다니기 시작한 요가의 연습을 한답시고 거실에서 희한망측한 포즈로 몸을 꼬고 있기라도 했다면 어떤 꼴을 보일 뻔한 건지. 아니아니, 그런 실현가능성 낮은 것보다 현실적인 예를 들면, 이를테면 샤워를 하다가 자칫 속옷이나 수건이 몽창 젖어서 알몸으로 방을 향해 뛰어가는 순간에 딱 들이닥쳤더라면, 방 안에 소금기둥 내지는 석상이 생겨날 뻔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또, 들으란 듯이 바깥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저 동아리 선배들인지 친구들인지 하는 놈들―기분이 나빠짐에 따라 입에서는 좋은 단어가 안 나온다―의 소음 역시 귀에 거슬린다.
방음 기능을 제대로 못해 주는 벽이며 문을 통해 훤하게 다 들리는 저 깡패 놈들―점점 단어가 험해지고 있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들도 가관이다.
‘야, 호리호리한 놈인데. 조금만 일찍 왔으면 괜찮은 거 볼 뻔했다?!’
‘그래봤자 사내놈이잖아.’
‘인마, 넌 빵에 안 가 봐서 그래. 구멍맛만큼은 사내놈이 더 낫다고. 야, 저거 나와서 술 좀 따르라고 해 봐라.’
척 보니 나보다 나이도 얼마 안 많아 보이는 것들이,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것 보게.
술 대신 메틸알코올을 붓고 확 불을 붙여 버릴까 생각하는데, 상헌이 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이, 안 돼요,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시키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그 목소리에 순간, 아주 조금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놈들을 집안까지 끌어들인 괘씸함을 그 말 한마디로 상쇄시켜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 새끼가 성질이 얼마나 드러운데요. 계집애처럼 입만 살아서 쨍알거리는 거, 못 들어줘요, 못 들어줘.’
……야잇, 너도 저 망할 놈들과 동급으로 전락이다, 이놈아. 그 말 그대로 녹음해서 나중에 영란 씨에게나 들려줘 버릴까 보다.
이내 화제는 다른 쪽으로 돌려졌지만, 부어라 마셔라 걸판지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그놈들의 행태를 낱낱이 귀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기분이 나빠지는 결정적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정상헌 저놈, 뻔히 내가 신경이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저놈들을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서 이런 불유쾌한 환경을 조성한 거다. 아니, 설혹 어쩌다가 새로이 집을 옮겼으니 집들이 겸 왔다손 치더라도, 그랬더라면 적어도 사과 한마디는 해야 할 걸,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데에 오히려 일조하고 있었다.
그래, 그 웃음의 의미는 저거였던 거야.
어쩐지 요 며칠 순순히 내 말에 따른다 했더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짜증나게 하려고 그랬던 거로군. 망할 놈 같으니.
난 깡패가 아주 싫다.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적은 없지만, 재영이랑 어울리면서 그놈이 일하는 곳이 뒷세계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깡패 구경은 자주 했고, 그놈들이 하는 짓 중 하나도 내 맘에 드는 건 없었다. 재영이가 친하게 지내는 놈들 중 몇몇이 그 짓을 하고 있으니 대놓고 ‘깡패 싫어.’라고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 사실은 아주 싫었다.
내 생전에 내 집에 그런 족속들이 들이닥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는데, 저 망할 놈 때문에 별 꼴을 다 겪는다.
잠시라도 저놈을 귀엽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발로 걷어차는 모양, 쾅―하는 소리가 나면서, 거의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야, 틀어박혀서 뭐해?!”
고등학생 양아치 꼬맹이처럼 건들건들 중얼거리며 녀석이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손은 뒤로 돌려 일단 방문은 닫는다.
그래, 너 그것까지 안 닫고 들어왔으면 오늘, 네 선배들인지 친구들인지가 있건 말건 내 뛰쳐나가 저 자리를 깽판 놨을 거다.
“……너, 친구들 데리고 오는 것까지는 좋아. 질 나쁜 대화나 중얼거리면서 낄낄거리는 것까지도 봐준다 치자. 시끄러운 것도 백 보 양보한다 쳐. 너, ―일부러 그런 거지?”
“그러게,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얌전히 나가면 좋았잖아. 왜 집에 틀어박혀 있어, 있길? 분명히 오늘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
내가 어지간한 일 없으면 집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 철저한 인도어(in-door) 파라는 걸 뻔히 알면서 지껄이는 말이라니.
나는 입매를 찡그리며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백 번 천 번 생각해 봐야 ‘남자답구나.’라는 말 외에는 칭찬을 해 줄 수 없는 외모를 가진 저놈의 험상궂은 인상을 새삼 바라보자, 녀석 역시 차갑게 눈을 뜨고 날 마주본다.
난 시선 한 번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눈을 부릅뜨고 마주보다가, 그 순간 갑자기 이럴 때에는 절대로 생각을 떠올려선 안 되는 걸 떠올려 버려서, 차차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빌어먹을.
왜 하필 이런 타이밍으로 생각이 난 건지.
바로 얼마 전, 로터로 즐기다가 절정을 맞을 때 갑작스레 떠오른 얼굴이 저거였지, 라는 게 갑자기 생각나 버렸다.
그날은 다행히 녀석이 늦게 들어와 얼굴 마주치는 일이 없었고, 그 이후로도 시간대에 미묘하게 어긋나 얼굴 마주 대할 일이 없었으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보는(노려보는) 것은 그 이후 처음이다.
입을 다물고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저 차가운―그러나 미묘하게 장난기가 섞인―눈매가 딱 그때 떠올렸던 표정 그대로다.
제길. 제기랄.
서로 마주보며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눈을 피하는 건 마치 이유 없이 이쪽이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분하다. 어린애처럼 눈싸움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오기로라도 마주보려 하는 것도 무리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상황을 자연스레 재현해 버린 얼굴이, 목덜미가, 귓불까지도 뜨끈뜨끈했다. 안 봐도 훤하다. 지금 고개를 들면 정말로 구덩이를 파고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민망한 표정을 저놈에게 보여 주게 될 거다. 그것만큼은 죽어도 안 된다.
분하다 못해 열까지 올라 고개를 푹 숙인 채 불끈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린애도 아닌데 입술까지 부루퉁하게 튀어나와, 고개를 숙인 게 정답이다 싶었다.
하지만, 망할.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숙이고 있는 내 얼굴은 보지 못할 저놈이, 갑자기 땅에 푹 쭈그리고 앉아 날 올려다보았다. 조금 눈살을 찌푸린 채.
“야, 왜 그래? 어디 아프냐?”
딱 정통으로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 순간.
녀석이 입을 다물고 약간 눈을 크게 뜨는 것과 동시에, 나는 거의 엉겁결에―그리고 2할 정도는 고의로―녀석의 얼굴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후려갈겨 버렸다.
퍼걱, 하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놈을 못 본 척하고, 난 뜨끈거리는 얼굴을 대충 주먹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억……하고 낮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한쪽 얼굴을 감싸쥐고 있던 그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노기충천해 시뻘게진 얼굴로 내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었다.
“아프잖아, 이 새끼야! 갑자기 왜 때리고 지랄이야!”
“누구 탓이야, 누구 탓! 너 지금 일부러 나 열받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벌인 짓이잖아, 이 망할 놈아!”
“열이니 뭐니 뻘소리하지 말고, 무서우면 솔직히 무섭다고 말해! 얼굴색까지 뻐얼겋게 하고, 봐,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으면서 왜 너라는 새끼는 이럴 때까지 허세야, 허세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정신없이 사람의 몸을 뒤흔드는 그놈의 말마따나, 확실히 나는 얼굴을 뻐얼겋게 하고도 있었고, 덜덜 떨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나는 화를 내려다가, 잠깐 멈칫, 해 버렸다.
무섭다, 무섭다라. 누가 뭣 때문에……?
가끔 이 녀석과 대화 비슷한 것을 할 때면 종종 느끼곤 하는 일이지만, 핀트가 안 맞는다고나 할까, 녀석의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다고나 할까, 하여간 뭔가 묘하게 빗나가는 구석이 있다. 이런 경우 갑자기 ‘무섭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도 그렇다.
아마 나는 퍽이나 희한한 얼굴을 했었던 것 같다.
고개를 외로 약간 꼬며 녀석을 지그시 쳐다보자, 녀석이 뭣 씹은 표정을 하더니 내 멱살에서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목 부근을 가볍게 털면서 여전히 녀석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녀석이 체, 하고 혀를 차더니 웅얼거린다.
“……형님들, 주먹 쪽에 있긴 해도 좋은 분들이야. 네놈이 싸가지없이만 안 굴면 괜히 허약해빠진 생원 하나 물어다가 족칠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인마. 폭력단이라고 빌빌 겁이나 먹고, 바보 새끼.”
그러니까, 이렇게 삐끗하고 빗나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주요 흐름을 잡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거다. 그렇다고 외계인을 대하는 기분 정도는 아니지만.
“……겁을 먹……?”
얼핏 이해가 될 듯 말 듯해 중얼거리자, 녀석이 언제 머쓱한 얼굴을 했냐는 듯 흥, 하고 쌀쌀맞게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네놈 하나 정도 쥐도 새도 모르게 병신 만드는 것쯤은 굳이 내 손 쓰지 않아도 쉬우니까, 잘 알아두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외로 꼬는 저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내심 아하, 하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주요 목적이 뭐였는지 이제야 보였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무서우니까, 저들과 친분이 있는 네 앞에선 벌벌 떨면서 고분고분 굴라구……?”
“글쎄, 뭐, 그야 네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녀석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꼬면서 입매도 한쪽만 비틀어 올린다.
어이가 없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이해는 간다고 치자. 아마도 보통은, 폭력 조직과 관련이 있는 인간이라고 하면 저어하면서 가까이 가지 않고 공손하게 대해 주겠지. 이놈도 반쯤은 그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놈인 모양이고, 아마 주위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그런 대접을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처럼 눈앞에 오똑 서서 눈엣가시처럼 설치는 인간 하나가 맘에 안 들어 그 위세를 부리려고 했던 것도 그렇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만.
왜 이렇게 어린애냐, 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래도 요 근래 조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갈기다니, 좀 괘씸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아니, 사실은 많이 괘씸하다.
“……뭐 그래도, 앞으로 좀 얌전하게 굴면 네놈한테 손대는 일은 없을 거니까 그렇게 무서워하진 말…….”
이놈도 저놈들과 한통속이니, 역시나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말이란 게 저렇다.
이상하게 묘한 눈치로 날 흘끔거리면서 중얼거리는 그놈을, 얼굴을 덮은 손가락 사이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놈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불만스레, 다소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왜.”
그 말이 녀석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되레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라고는 해도 다소의 신장 차 때문에 그리 박력이 있지는 못했지만).
“무서운 거 좋아하네……. 그래도 동생이라고 있는 게 형 코앞에 폭력배 데려다놓고 협박이나 하고 있다는 거 정희 씨가 알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자식아! 나이가 몇이냐? 나이가 몇이야?!”
최근 내가 화내는 걸 제대로 못 본 탓인지, 녀석은 간만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늘어지는 내 모습을 희한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비슷한 내용의 말을 몇십 초 가량 더 소리를 치다가, 녀석이 하도 얌전하고 조용하게 내 손아귀에 붙잡혀 나를 쳐다만 보고 있기에 점차 소리를 줄이고 말았다.
이윽고 내 입까지 일자로 닫혀 버렸을 때, 방 안에는 부자연스런 정적이 흘렀다.
문 밖에서는 여전히 사내놈들이 술에 취해 겔겔거리며 떠들고 있었지만 얇은 벽과 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조용하다.
그 와중에 나는 그 부자연스러운 정적 속에 머리를 굴렸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조용할까. 남에게(그것도 나에게) 멱살을 잡히고 가만히 있을 놈은 절대 아닌데.
서로 얼굴이 뚫어질 때까지 보고 있을 작정은 없었지만, 그 뭐라고 할 수 없는 묘한 대치 상태 속에 멱살을 쥐고 있는 동안 난 천천히 이놈의 외모와 머릿속의 갭에 대해 생각했다.
희한맞은 얼굴을 하고 약간 눈살을 찌푸린 채 날 마치 외계생물이라도 되는 양 내려다보고 있는 표정만 보면, 그리 어린애 같지는 않다. 하기야 물론 나이도 어린애라고는 할 수 없다. 군 제대하고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이라면 적다고는 못한다.
……응. 선도 굵직하고 남자답고, 나쁘게 말하면 험상궂지만 좋게 말하면 남성적인 매력은 넘치고 있는 얼굴이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여느 중년 못지않은 냉철하고 성숙된 이성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앗, 안 돼. 안 돼. 이 이상 생각하면 분명 아주 위험스러운 기억까지 떠올려 버릴 거다. 안 돼, 안…….
“너, …….”
그놈이 문득 한마디 중얼거렸다.
난 저도 모르게 몸을 약간 움츠리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어딘가 당혹스레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치를 보는 그놈을,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빤히 쳐다보았다. 녀석이 다시 한 번 시선만 흘끔 올려 날 노려본다. 뭐라고 말하려고 하던 입술이 한 번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무심결인 듯 이를 핥는 붉은 혀가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보여서, 등골이 오싹했다. 기분 탓인지 무표정한 광기마저 서려 보이는 서늘한 눈매에는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녀석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지려고 하는 걸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한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은 내 목을 어렵잖게 감아쥐고, 턱 아래 와 닿은 엄지손가락이 턱을 들어올렸다.
어쩌면 그때 내 표정은 핏기가 가셔 있었을지도 모른다. 등줄기에 차가운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그 느낌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무섭다는 감정이 가장 가까우리라.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친 것은, 이놈이 위협하려고 데려온 저 바깥의 주먹패들이 오히려 이 미친 맹수와 겹쳐 보이는 놈에게서 날 지켜 줄 수 있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이었다. 우습게도, 난 날 겁주려고 데려온 자들 덕에 그나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혹시라도 이놈이 날 죽이려고 한다면, 그래도 바깥의 저자들이 살인까지는 가지 않도록 막아 주겠지, 하고(설마 멱살 쥔 정도로 죽이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 순간은 솔직히 말해, 정말 무서웠다).
그 정도로 섬뜩했다.
그때.
철퍼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녀석의 입에서 윽,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내 목을 감싸쥐고 있던 손도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일시에 얼이 빠져 저도 모르는 사이에 놈의 멱살을 스르륵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이놈이 난데없이 미치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그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철푸덕 후려쳐 버렸던 것이다.
난데없이 눈앞에서 벌어진 자학행위에 나는 벙 찐 채 눈만 깜빡이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미 조금 전에 느꼈던 그 선득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으으윽, 하고 중얼거리며 한참 그대로 있던 녀석이 얼굴에서 손을 떼자, 얼굴에 벌건 손바닥 자국이 선연히 남은 게 보였다.
제길, 너무 힘을 많이 줬어……,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놈에게, 난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상헌?”
“왜.”
착각이었던 걸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조금 전에는 그렇게 가슴 속이 서늘해졌던 걸까.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의문에 빠져 있는데, 녀석은 평소와 같은 부루퉁한 얼굴로 날 흘끔 보며 왜 불렀냐고 눈으로 물어왔다.
난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니. 그 손바닥이 내 얼굴이 아닌 네 얼굴로 날아갔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똑똑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더 바보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잠시 고민스러워서. 갑자기 자학은 왜 하는 건데?”
짐짓, 다소 비꼬인 어조로 묻자 녀석이 인상을 팍 찌푸린다. 그리고는 제대로 된 대답을 않고 뭐라고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나는 조금 전 그렇게 서늘한 느낌에 움츠러들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기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가슴을 펴고 평소보다 차가운 어투로 덧붙였다.
“머리는 멀쩡한 거 맞지? 자학 취미를 가진 마조히스트랑 한집에 살기는 싫어, 난.”
“이놈 새끼가 누굴 변태 취급을 하고 있는 거야!”
정곡을 찔리기라도 했는지 녀석은 벌컥 화를 내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금세라도 날 후려칠 듯한 녀석의 동작을 말린 것은 그 녀석의 자제심도 아니고 내 방어력도 아니었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힌, 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동호회 친구인가 선배인가였다.
“야, 사람 불러다 놓고 좁은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뭐하는 거야? 사내놈 둘이서 뭔 비밀 얘기가 그리 많다고.”
술냄새를 풍풍 풍기면서 방문을 연 그 큼지막한 사내는 이쪽을 향해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나와서 놀아, 나와서. 거기 잘생긴 형님도 같이 놀고, 어?”
문고리에 거의 매달려 있는 걸 보니, 취하기도 어지간히 취했다.
상헌이 놈은 얼굴을 찌푸린 채 다소 불만스레 그를 보다가 머쓱하게 주먹을 풀었고, 나는 불쾌감으로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흘긋 상헌이 놈을 올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바보 놈, 착각도 할 걸 해라. 폭력배랑 어울리는 게 세상에 네놈 혼자뿐인 줄 알아?”
실제로 내가 어울려 다닌 건 아니지만, 어쨌건 한손으로 꼽고도 남을 만큼 두고 있는 친구 중 하나가 그쪽에 거의 머리를 들이밀다시피 하고 있다.
나는 울컥 부아가 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놈과 같이 있기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홱하니 방 밖으로 나갔다. 미친 맹수 앞에서 떠나 똑같은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간다는 이상한 안도감조차 있었다.
그러나 안도감이고 뭐고, 그런 느낌들은 거실에 발을 딛자마자 사라졌다.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묵묵히 입을 다문 채 멈춰 선 내 뒤로 놈이 와 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평화로운 내 집이 풍비박산 난 광경을 넋을 잃고 보고 있다가, 나는 뒤에 붙어선 놈에게만 들리도록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너 이 자식, 네가 다 치워……! 말끔하게 안 치웠단 봐라.”
그러곤 그 난장판의 한가운데에서, 그나마 제정신인 것처럼 조용히 술만 들이켜고 있는 ‘형님’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서걱서걱 다가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순 주위가 조용해지며 시선이 쏠렸다.
아무래도 이 친구들인지 선배들인지 중 제일 윗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남자가, 실제로도 제일 위에 있긴 하나 보다.
옆 테이블에 굴러다니고 있는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잔을 하나 들고 남자에게 내밀었더니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쳐다본다. 그제야 나도 제대로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더니,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었다.
나보다 그 남자의 기억력이 좋았다.
“……뭐야, 재영이 녀석 친구라는 놈이잖아. 왜 이놈이 여깄어?”
아, 기억났다. 민재 형이란 작자다. 예전에 재영이 가게에서 딱 한 번 본 적 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어도, 이 작자나 나나 서로 멀뚱히 바라보기는 했었다(아마 서로 내심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재영이랑 아는 사이라면, 이놈도 게이인 건가, 라고. 나중에 듣고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의아한 눈치로 그렇게 물으면서도 내민 잔에 술을 한손으로 따라 주더니, 이번엔 술병을 내게 건네고 자기도 잔을 내민다. 나도 졸졸졸 따라 주었다. 그래도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아 보이니, 예의상 두 손으로.
이 남자도 꽤 취한 모양이다. 눈가가 붉어져서 허허 웃는다.
“너 상헌이랑도 아는 사이였냐? 이거 인연이 깊은데. 재영이도 그렇고 상헌이도 내가 아끼는 후배지. 넌 뭐하는 놈이야?”
“저놈 형입…….”
스스로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냥 같이 삽니다’ 했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재영이랑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해 게이 의혹을 품고 있을 이 남자에게 완벽하게 게이로 찍힐 것 같았다(더욱이 그 경우 상대는 상헌이 놈이 되겠지. 절대 사양이다). 그래서 일단 호적상으로나마 남아 있는 관계로 말하려고 하자, 당장 커다란 손이 뒤에서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그냥, 같이 사는 놈입니다, 형님.”
뒤에서 어색한 목소리로 얼른 저놈이, 뭣도 모르고 헛소리를 해 버렸다.
난 희미하게 뒤통수가 뻐근해져 오는 걸 느끼며 눈을 감고 말았다.
이 바보 놈아, 너 지금 네가 무슨 실수했는지도 모르지. 봐, 네 잘난 형님 눈빛 바뀌는 거. 이제 너도 게이로 찍힌 거라구, 바보야.
입속으로 욕설을 있는 대로 중얼거리는데, 녀석이 지금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고 되레 화난 듯 귓가에 중얼거린다.
“뭐야, 너, 민재 형님이랑 아는 사이였어? 어떻게 된 거야?”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 바닥인지 몰랐어? 바보 놈, 그러니까 왜 이런 놈들을 끌고 와서 헛수작을 부려! 이거 놔!”
그놈에게만 들릴 목소리로나마 사납게 소리치며 녀석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는 와중에 저 ‘형님’의 혼잣말소리가 들려온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형님’이, 놀랍다는 듯 저놈과 나를 번갈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렇긴 뭐가 그래!
그야 물론 두 번째 만나는(그것도 게이를 친구로 둔) 인간이 게이라는 거―물론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야 그리 놀라울 거 없겠지만 여태껏 옆에 두고 아끼고 있었던 후배놈, 그것도 여자를 후려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싸움꾼이 그쪽 취미가 있었다는 거―물론 이것 역시 절대절대 사실이 아니겠지만―야 놀랍기도 할 거다.
하지만 당신의 그 판단에는 근원적인 오판이 들어 있단 말이다.
저 작자의 멱살을 쥐고 그 잘못된 판단을 뜯어고쳐 주고 싶었지만, 저 상헌이 놈 앞에서 재영이 이야기까지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재영이야 워낙 그 성벽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얼토당토않은 욕을 먹어 왔지만, 적어도 저놈이 섣부르게 재영이에 대해 험담을 하는 건 듣고 싶지 않았다. 재영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저놈을 위해서도.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차마 입을 열지는 못하고 주먹만 쥐고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던 나는, 에이, 하고 욕설을 중얼거리며 손에 들었던 잔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홧김에 들이켜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거 맥주나 소주 따위가 아니었다.
당장 식도에서 위까지 불길이 치솟아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끅, 하고 입안으로 비명을 삼켰다.
입을 다물고 눈만 굴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멋모르고 있는 저 바보 놈이 당황한 빛으로 소리쳤다.
“이 바보가! 그게 몇 도짜리인지나 알고 그렇게 들이켜?!”
어차피 도수 낮은 술은 갖다 두지도 않은 주제에.
그러나 내가 뭐라고 쏘아붙이기도 전에 ‘형님’이 크게 웃었다.
“좋아, 좋아. 술 잘 마시는 놈이라면 상대할 만하지.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역시 재영이 친구로군. 아니다, 역시 상헌이 애…….”
“형님!!!”
저 뒤에 무슨 단어가 따라붙을지 불 보듯 뻔해 난 재빨리 소리쳤다.
얼마나 크게 소리쳤는지 일시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내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거 오해야, 오해라고. 나중에 재영이 통해서 오해는 풀 테니, 제발 이 자리에서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 줘.
“……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적당히 말을 이어 붙이자, 잠시 벙 찐 것처럼 굳어져 있던 ‘형님’이 허허, 하고 웃음을 띠었다.
“배짱하곤. 그래, 사귀는 놈을 보면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안다고, 괜찮은 놈들과 엮여 있으니 네놈에 대한 판단도 거기에 걸어 보자. 자, 한 잔 더 받아라.”
졸지에 원치 않은 ‘형님’이 생겨 버린 것에 대해 가슴 속 자욱이 치미는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옙, 하고 대답하며 잔을 내밀었다. 더 이상 이 지독한 독약은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상 불가피하다.
뒤에서, 이 작자들로 나를 위협하려고 했던 계획이 깡그리 망가지는 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본 정상헌이 체, 하고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때만큼 이놈의 목을 따 버리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
집이 엉망이 되고 내 하룻밤의 숙면이 방해받은 것까지야 예전에 곧잘 당했던 짓이니 그렇다 치고, 네놈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말을 한 덕분에 쓸데없는 인간관계가 생긴 건 물론 끔찍스런 오해까지 받아 버렸잖아! 그런데도 네놈은 여전히 어벙하게 고개나 흔들고 있다니, 이런 빌어먹을!
나는 얼른 대충 이 상황을 수습하고 재영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독약을 눈 딱 감고 다시 마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원샷 따위를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지만.
재영이에게 전화가 안 된다.
무슨 영문인지, 아까부터 계속 1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는데도 도무지 받질 않았다.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니면 일하는 도중에라도 잠깐이나마 전화는 받는 놈인데 이상하다.
뭐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으니 어떤 급한 상황이 닥쳐와서 전화를 안 받는 건지는 알 수 없어도, 하필 이렇게 필요할 때에 전화를 안 받을 건 없잖아. 잘못 얽힌 오해 따위는 얼른 풀어 두고 싶은데.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려니, 부엌 쪽에서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이랑 캔이랑, 분리수거 어떻게 하는 거야?”
저 화상 같으니.
난 매섭게 녀석을 노려보며 말없이 그리로 갔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녀석의 발치에 뒹구는 캔들을 모아 빈 사과박스 안에 댕강댕강 던져 넣었다.
사실 나는 멀쩡히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30분 전 그 친구들인지 선배들인지가 우르륵 쏟아져나가다시피 해서 돌아갈 때까지 난데없이 새로 생긴 형님이랑 같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당한 양의 술병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는 술기운에 크게 잠식당하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야 물론 술에 취해서 앞뒤 분간을 못하는 술주정뱅이의 대부분 역시 늘상 난 안 취했어, 난 멀쩡하다니깐……?! 하는 소리를 지껄인다지만, 내가 말하는 ‘멀쩡한 이성을 챙기고 있는’ 상황은 말마따나 제대로 된 사고능력이 돌아가는 상태다.
실제로 나는 그닥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먼저 마시는 일은 없고, 다른 사람과 대작할 경우라도 거의 입에 대지 않긴 하지만 술은 꽤 센 편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 한 번, 선배라는 놈과 신경전이 붙어 오기로 술을 맞퍼마신 적이 있었다. 술독이라고 부르는 그 선배를 굳건히 물리치고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말짱했던 나는 그 후 한동안 암암리에 밑 빠진 독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졸업할 즈음에야 알게 되었지만).
단, 그래도 숙취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술로 인해 필름이 끊기거나 이성이 날아가는 일이 없는 만큼 숙취는 더욱 지독하게 엄습해 오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술은 독약으로 여기고 입에 대질 않았거늘.
벌써 이렇다. 술을 삼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 온다. 몸도 나른하다.
사실 몸이 조금만 더 괜찮았더라도 이렇게 폐허가 되어 버린 집안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신세에 부아가 나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일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사라질 정도로 몸이 늘어진다. 더욱이 엎친 데 덮쳤다고, 늘 전화를 잘만 받던 재영이는 이럴 때를 골라서 전화를 안 받고(머리가 아파 오는 건 단순히 술 탓만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길, 술과 스트레스와 피로의 트리플 어택으로, 지끈거리던 머리는 아니나 다를까 열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내일은 하루 꼬박 앓아눕겠다.
녀석의 발치에서 묵묵히 병이며 캔을 주워 모아 빈 상자에 담다가, 잠시 그대로 쭈그려 앉은 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아, 역시 나이가 드니 몸이 안 좋아지긴 하는 것 같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한바탕 구토라도 하고 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괜찮아?”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고무장갑을 벗지도 않고 가만히 날 내려다보고 있던 저놈이, 문득 허리를 굽히고 내게로 고개를 들이미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목소리는 무뚝뚝하다.
속이 울렁거려 하얗게 질려 가는 얼굴을 조금 들자 녀석이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토할 것 같아.”
토기를 억누르며 겨우 그렇게 중얼거렸더니, 녀석이 뭐? 라고 하며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내 등에다 토하면 죽을 줄 알아, 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갑자기 내 무릎 뒤로 팔을 두르더니, 그대로 들어올렸다.
“우왁!!”
엉겁결에 경악성이 터져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안 좋아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그 몸이 허공에 붕 떠올라 180도에 가까운 회전을 하면 놀라는 게 당연하다.
어렵잖게 날 한쪽 어깨에 둘러멘 녀석은 당장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갑자기 몸이 빙글 돌아간 덕에 더더욱 치밀어오르는 토기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녀석의 등자락을 꼭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얏……, 내려놧……, 정말 토할 것 같, 다구.”
“다 왔어. ―야, 인마! 내 등에 토하지 마!”
으으윽, 하고 낮은 신음을 흘리자, 녀석이 다급히 소리 지르며 날 얼른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정말로 그렇게 급박하게 토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신음을 낸 게 주효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난 정희 씨 말마따나 힘 하나는 무식할 정도로 센 놈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웅크리고 있는 성인 남자를 그렇게 쉽게 들어올리다니, 힘만큼은 무서운 놈.
속이 울렁거려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 변기를 잡고 앉은 나는 토기와 같이 솟아오르는 현기증에 그냥 변기를 잡은 손등에 이마를 대고 괴로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술을 퍼마셔, 퍼마시길.”
여전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하며, 녀석이 조금 망설이다가 내 등을 쓸어 주었다. 식은땀이 솟는 등에 옷 너머로 전해지는 크고 두툼한 손의 온기가 아주 조금,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거기에 면해, 이놈에게 잔뜩 매섭게 내쏘아 주려던 마음 0.1% 감소.
“네놈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위협을 하려는 생각만 안 했더라면 이럴 일도 없었어, 자식아.”
힘없는 목소리에나마 얼핏 독기를 담아 대답하자 녀석이 혀를 찬다.
“너랑 민재 형님이 아는 사이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한 줄 아냐. 제길, 이상한 데서 발이 넓어 가지곤.”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손 쳐도 깡패한테는 겁 안 먹어. 깡패 따위에 겁먹을 정도였다면 애초부터 너같이 험상궂게 생겨먹은 포악한 놈이랑 살지도 않았지.”
“사람을 코앞에 두고 험상궂으니 포악하니 하는 말이 나오냐, 네놈은?!”
“집 안의 문짝이란 문짝은 보이는 족족 때려 부순 놈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래.”
녀석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부아가 치미는 듯 갑자기 내 셔츠 목자락을 움켜쥐더니 부욱 잡아당겼다. 그 탓에 제일 윗단추와 그 아랫단추 두어 개가 튿어져 나갔다.
“뭐하는 거야.”
갑자기 왜 옷은 또 망가뜨리고 그래, 이놈이!
울렁거리는 속이 분노로 더 울렁거린다.
그러나 더 말할 틈도 안 주고, 녀석은 혀를 차며 욕실 안이 울리도록 내뱉었다.
“시퍼런 낯짝을 하고도 그놈의 혀는 정말이지 잘도 움직인다! 목덜미를 느슨하게 하면 좀 나아질 것 아냐! 좀 얌전히 있어 봐! ……주는 대로 넙죽넙죽 그 술을 다 받아 마시는 놈이 어딨어. 입 벌려.”
우악스럽게 사람 머리를 변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무식하게도, 벌어진 입안에 그 굵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뜨끈한 온기를 가지고 입안을 헤집으며 들어오는 손가락의 느낌에 거의 본능적인 혐오감이 들어 당장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머리카락을 단단히 쥐고 있는 다른 손이 그렇게 두지 않는다.
얌전히 있으라니깐, 하고 호통을 치더니 그 손가락을 밀어내려 움직이는 혀를 꾹 누르고 입안 더욱 깊숙이 집어넣는다.
더럽게, 씻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라고 화를 내기도 전에, 굵직한 뼈마디가 생생히 느껴지는 손가락이 혀뿌리를 누르며 목구멍까지 들어와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딱 잘라 말해, 괴로웠다.
입을 마구 벌리려 들어 턱이 아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숨이 턱 막혀 제대로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 해도 무식한 힘이 머리를 단단히 잡고 있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초리에 배어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질식사라도 시킬 작정인가, 라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쳐 반쯤 눈을 떠 흐릿한 시야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번거로운 듯 혀를 차며 남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놈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몸에서 힘이 빠져, 더 이상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려고 시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그저 눈으로, 이것 좀 놓아 달라고 호소할 뿐.
멈칫, 입안 깊이 꾹꾹 밀고 들어오던 손가락이 잠시 멈추는가 싶었다.
그래도 죽이지는 않으려는지 멈춰 주려나 싶어 겨우 신음을 죽이며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얼른 빼라는 뜻을 가득 담아.
그러나 기묘한 얼굴로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놈은, 잠시 멈추었던 손가락이 약간 움츠러드는 듯하더니, 이내 손끝으로 혀를 쓸어올렸다.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긁어올리는 듯한 그 미묘한 터치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사납게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 섬뜩하다. 섬뜩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입가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내려가는가 싶더니 느슨하게 풀어 놓은 목덜미 근처에서 맴돈다. 쇄골 근처인지도 모르겠다.
검지와 중지만 들어와 있던 좁은 입안으로 엄지까지 한 마디 파고들었다. 그리고 느린 터치로 혀를 가볍게 쥐어 쓸어내렸다. 알 수 없는 긴장이 갑자기 팽팽하게 몸속을 채우며 솟아올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으욱, 하고 신음하면서 반사적으로 온힘을 다해 녀석을 뿌리쳤다. 목젖을 건드릴 정도로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이 입천장을 쓸며 나가자마자 당장 변기에 매달리고 말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래에서 위쪽으로 위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울렁울렁하던 속이, 일시에 터진 수도꼭지처럼 터져 버렸다.
식도까지도 저릿하게 아파 오는 와중에서도 나는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던 조금 전을 떠올리며 곁눈으로 그놈을 보았다.
밀치는 통에 욕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버린 그놈은 얼떨떨한 얼굴로 부루퉁하게 입을 다문 채 주먹으로 자기 뺨을 가볍게 치고 있었다. 치명적이라고는 못하지만, 제법 아플 만한 힘을 실어.
그러나 이내 한숨을 쉬며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일어나 내 옆으로 와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토하면 좀 편해질 거야.”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턱턱 두드리는 그 손이 여전히 따끈해서 이내 기분이 좀 나아졌다. 두어 번 지독하게 치솟던 구역질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확실히 토한 보람이 있어 속은 많이 편해졌다.
기진맥진해 그대로 변기를 잡고 늘어져 있는 내 등을, 숫제 뒷덜미부터 쓸어내리는 손의 감촉이 의외로 좋았다. 따끈하고 커다란 손이 안정감을 준다.
이래서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건가. 하긴, 이런 손으로 약간 거칠게 애무를 해 준다면 기분이 좋을지도.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머릿속에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공연한 술기운이 돌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얼굴이 확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슬쩍 녀석의 손을 치우고 일어섰다.
변기 물을 내리고 세면대에서 얼굴과 손을 씻고 있으려니 녀석이 문가에 가 섰다.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 속에서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
“너.”
“……?”
자학 취미라도 있는 거냐? 라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었지만, 관뒀다.
그런 것보다 지금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둬야 할 것이나 말하는 게 낫지 싶다.
“빚이 많아. 이제껏 네가 나한테 해 온 수많은 행패들을 일일이 편지에 적어 정희 씨에게 보내려고 하면 보통우표 한 장으로는 모자랄걸. 집안 기물 파손이야 그렇다 쳐도, 여자 돈 뜯어서 부자노릇 하는 것도 그렇다 쳐도, 이젠 깡패들을 불러들여 위협하려고 들어? 더 이상 밥 먹기도 싫은가 보지?”
“야…….”
녀석이 뭐라고 하고 싶은 듯 입을 열었지만 이내 다시 닫았다. 하긴, 저 녀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그 빚들을 돈으로 따지면, 넌 파산이야, 파산.”
녀석은 입매를 일그러뜨린 채 날 노려보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겁먹을 나도 아니다.
한참 눈싸움이라도 하듯 서로 쏘아보다가 나온 결론은, 저 녀석의 항복이었다.
녀석은 한숨을 쉬고 두 손을 들어올리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알았어, 새끼야. 내가 졌다, 졌어. 제기랄, 어쩌다 저 새끼한테 걸려 가지곤.”
툴툴거리며 혼잣말로 푸념을 하는 녀석을 거울 안으로 보며, 난 픽 웃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 웃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많이 봐줬다. 어쩌면 고난을 거듭하면서 내 인간성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저 커다란 손이 등을 쓸어내리는 감각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던 탓이 컸다.
“수건.”
웃음기를 숨기며 짐짓 쌀쌀맞게 한마디 하자,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을 하던 녀석이 이내 아니꼬워 죽겠다는 얼굴로 수건걸이에서 낚아챈 수건을 내밀었다. 예, 예, 도련님, 하고 중얼거리며.
난 그것을 받아들어 얼굴을 닦으며 지그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늘 그렇듯 시선을 피하지 않고 약간 삐딱하게 고개를 외로 꼬며 불량스레 마주본다.
……두근.
갑자기 가슴이 지끈해, 저도 모르게 왼쪽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뚜렷한 빛으로 보였다.
화장실 불빛이 반사되어 그런 건지, 혹은 술기운이 나 모르게 머릿속까지 침식한 건지는 몰라도,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눈썹을 찡그리며 살풋 고개를 기울이는 그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 ……으음, 이런 말 하려면 좀 분하긴 하지만, 멋져 보였다.
아, 저런 것 때문에 저놈에게 여자가 따르는 건가, 라고 새삼 생각하도록.
난 얼른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코올이 뇌까지 파고든 게 틀림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그때, 갑자기 놈이 다가오더니 거침없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당황스러워 꼼짝 않고 있는데 녀석이 혀를 찼다.
“뭐야, 조금 전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더니, 열이 있잖아. 바보 새끼, 제 몸 간수도 못하냐. 하긴 어릴 적부터 골골거리는 놈이긴 했지.”
“스트레스가 없으면 열도 안 나.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녀석의 손을 탁 쳐 뿌리치곤 욕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확실히 열이 있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트레스 만빵에 술까지 마셨으니 멀쩡하라면 그게 무리다. 오늘은 침대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낼 수밖에.
“자려고?”
방으로 향하는 내 뒤에서 녀석이 말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난 그래도 그럭저럭 대략적인 정리는 되어 있지만 아직 낮의 집 상태로 만들어 놓으려면 멀고도 먼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응. 아마 오늘은 못 일어날 것 같다. 너도 좀 쉬든가 하고, 그래도 정리는 확실하게 해 놔.”
그러자 녀석은 입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싫다는 소리는 않았다. 하지만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왔다.
“일단은 좀 쉬고. ……나도 술이 좀 도는 것 같으니까.”
좋을 대로.
난 내심 한숨을 쉬며, 그제야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 조용한 방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재영이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열과 피로가 온몸을 덮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