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진환이 다시금 각목을 들어 올렸다. 각목이 경준의 머리를 강타하려는 순간, 정윤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 마…!”
몸통이 흔들려, 진환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경준에게 달려가려는 정윤을 밀치고, 진환이 그의 위에 올라탄다. 멱살을 움켜쥐고 바닥을 향해 흔든다.
“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진환이 고함을 질렀다. 정윤의 주먹이 날아든다. 고개가 꺾어지고, 몸이 휘청거리는 충격이 진환에게 닿았다. 제 코에서 나는 피를 확인하는 그를 뒤로하고, 정윤은 경준에게 달려갔다.
“경준아. 눈 떠. 경준-.”
각목이 턱 아래에 걸쳐진다. 턱 하니 숨이 막혀와 발버둥 치는 사이, 진환의 팔뚝이 정윤을 뒤로 젖힌다. 옆으로 그를 내팽개치고, 진환이 그에게 윽박질렀다.
“저 새끼가. 우리 형을 어떻게 했는지 알기는 해? 이 새끼가-!”
각목이 치들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경준이 팔을 들어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야구 방망이가 공을 치는 것처럼 각목이 머리를 내려친다. 눈꺼풀이 찢어지며, 경준의 흰 얼굴에 피가 흘렀다.
각목을 내던지고, 진환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죽어. 씨발 놈아. 죽어. 죽어!”
경준이 반항하려 하지만, 진환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박경준의 눈가에 서서히 힘이 풀리고, 이윽고는 두 눈이 감긴다. 주먹이 다시 한번 그를 강타했다. 피가 튀어, 진환의 뺨 위에 방울져 묻는다.
정윤은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아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진환의 뒤로 걸어갔다. 진환은 이제 움직이지도 않는 경준을 걷어차고 있었다.
“죽으라고, 씨발!”
목에 굵은 팔뚝이 턱 걸렸다. 희번덕 눈을 떠, 진환의 눈알이 뒤쪽으로 굴러간다. 기절시킬 셈인지, 정윤은 팔뚝에 건 힘을 풀지 않았다.
“그만해. 경준이 놔줘…!”
“씹….”
순식간에 눈앞이 노래진다. 눈에 힘이 풀리기 직전, 진환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정윤의 손등을 찔렀다.
“……!”
완전히 힘이 풀리진 않았지만, 빈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제 목을 문지르며 풀러나, 진환은 정윤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목소리가 갈라진다.
“저 지금 형님 도와준 겁니다. 저 새끼한테서 살려준 거라고요!”
“죽이지 마. 경준이 죽이지 마!”
정윤은 경준에게로 달려갔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두 팔로 그를 감싸 안고서, 쉰 목소리로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경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움직임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정윤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정윤은 그를 붙들고 흔들었다. 고통스러운 울음이 뒤를 이었다.
“경준아. 경준아…! 정신, 차려. 경준아….”
“형님.”
“일어나. 일어나, 경준아….”
“정신 좀 차리세요, 형님. 보세요. 저 진환이입니다. 형님이 구해준 이진환!”
“경준아…. 경준아!”
“형님, 제발!”
정윤을 떼어놓으려, 진환이 그의 어깨 아래에 팔을 걸어 당겼다.
몸이 뒤로 젖혀지는 그 순간에도, 정윤의 시야에는 피를 흘리는 경준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준이 죽어간다. 사 년간 그의 세상의 전부였던 인간이 죽어간다. 대장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 항구에 불이 붙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절망이 켜켜이 쌓여 정신을 점령했다.
여태껏 이성으로 눌러두었던 두려움이 터져 나와 정윤을 점령한다. 본능적인 절박함이 닥쳐왔다. 경준이를 살려야 한다고. 도와줘야 한다고. 진환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전 안 보이십니까? 왜, 왜 항상 이럴 때! 절 안 보시는 겁니까? 왜!”
“경준아…. 경….”
“도망치신 거 아닙니까!”
진환이 소리쳤다.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저 새끼한테서 도망가려고! 여기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네?!”
본능적으로 새하얗게 질렸던 정윤의 머릿속이, 아주 짧은 순간 진정을 되찾았다. 정윤이 숨을 집어삼켰다. 그 말이 맞았다. 도망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경준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나 눈알이 내려가고, 피를 흘리는 경준의 모습을 보자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머릿속과는 다르게 몸은 계속해서 떨린다. 견딜 수가 없어 한다. 정윤의 입이 조그맣게 벌어졌다.
“나…사랑한댔어.”
진환이 그의 팔뚝을 낚아챘다. 진환의 손이 그의 손목을 눌러 잡아, 흘러내린 소맷자락을 끌어 올렸다. 팔뚝을 따라 남은 불그죽죽한 주사 자국이 드러난다. 똑똑히 보라는 듯, 진환이 정윤의 눈을 마주했다.
“보세요. 이 새끼가 형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떻게 형님 인생을 족쳐놨는지. 기억하라고!”
“벌…이었어. 내가 말을, 안 들어서….”
“형님을 학대한 겁니다.”
“구해줬어. 경준이가, 날….”
“씨발, 좀!”
정윤의 양어깨를 붙잡아, 진환이 억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정윤의 몸이 잘게 떨렸다. 진환의 눈에는 시뻘건 핏발이 서 있었다. 순수한 살의밖에 남지 않은 얼굴이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뜨려 죽여버릴 것처럼 어깨를 잡은 손아귀가 우악스럽다. 그런 진환의 모습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감은 경준의 모습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그의 기억에 남은 진환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서늘하고 무섭지 않았다.
“저… 저 보세요. 제 눈 보시라고요. 저 새끼. 죽어도 싼 놈입니다. 죽어도 싼 개새끼라고! 우리 형도, 형님도, 저도! 다 저 새끼 때문에 불행해진 겁니다. 모르겠습니까? 저 새끼만 죽으면, 우리 다 행복해집니다. 다 해결되는 겁니다.”
“너. 무서워.”
“무서워?”
“난, 난, 너….”
목소리 끝이 갈라진다. 도망갈 곳도 없이, 정윤은 눈물이 맺히려는 고개를 숙였다. 진환을 풀어주던 그때, 정윤은 그저 그가 살아남기를 바랐다. 감사하고 싶었다. 다정한 말을 해줘서, 고마웠다. 기분 좋게 키스를 해줘서, 고마웠다. 아프지 않게 해줘서, 고마웠다. 잠깐이라도, 잠깐이라도 상상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웠다. 그뿐이다.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 바에는 영원히 보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
진환의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제가, 뭡니까.”
“…….”
“낯설다, 뭐 이런 겁니까? 다른 사람 같다고? 변했다고?”
정윤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베일 듯 날카로운 냉소가 진환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서운합니다, 형님. 전 형님 도와드리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비난이나 하시고.”
정윤이 아찔하게 고개를 들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진환의 손이, 목덜미를 타고 정윤의 뺨으로 올라왔다. 비에 젖어 차가워진 손이 얇은 피부에 닿자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진환의 입술이 귓바퀴 위에서 자근거렸다.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습니까?”
저릿하게, 간질간질한 전류가 목 뒤로 흘러내린다. 진환의 손끝이 어느새 허리를 감싸, 은근하게 문지르고 있었다.
“이러면 기억하시겠습니까?”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가려 하자, 진환의 주먹이 얼굴을 내리쳤다. 그것도 먹히지 않자 머리채를 쥐어 바닥에 내리친다. 정윤의 무릎이 그의 배를 걷어찼다. 진환이 복부를 감싸고 쓰러지자 몸을 일으켜 일어서려 한다.
“가만히 있어!”
진환이 그의 목에 팔을 걸어 잡아당겼다. 균형이 기울며, 정윤이 제자리에 쓰러졌다. 그 위로 진환이 올라탄다.
갈라지는 시야 사이, 차가운 물체가 번뜩였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던 정윤도 그것만큼은 단숨에 알아보았다. 수십 년에 걸쳐, 신경 한 가닥 한 가닥,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물건이니까. 주삿바늘이다. 진환은,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얌전히 계세요.”
“…하, 지마.”
“걱정 마세요. 형님이 늘 쓰시는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네. 분명히.”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진환의 입이 달싹거렸다. 멍한 눈동자가 방파제 사이의 틈처럼 위태롭고 검다.
“구해드리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형님….”
진환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다른 사람처럼 가시가 돋아나고 일그러졌던 표정에 쩌적, 금이 간다. 정윤은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눈동자에 서로의 얼굴이 거울상처럼 비쳤다.
정윤이 본 진환은 비참했다.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몸에 성한 곳이 없고, 광인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매 위로는 너덜너덜해진 거즈가 붙어 있다. 땀과 피와 빗물에 한데 엉켜 지저분했다.
진환이 본 정윤은 한심했다. 똑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두 눈에, 피로에 찌든 낯빛은 거무죽죽하고,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은 그와 어울리지 않고 너저분했다.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온몸이 뻣뻣했다.
둘 중 누구도 성하지 않았다. 둘 중 누구도, 명백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널 따라가면.”
정윤이 속삭였다.
“경준이는 살려줄 거야?”
진환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입술이 뒤틀려 올라가며 발작을 일으키듯이 꿈틀거린다. 입꼬리가 기괴하게 휘어지고, 진동이 번지며 얼굴 근육 곳곳이 꿈틀거린다. 이내는 얼굴을 찌푸린다. 이내는 웃음을 짓는다. 입술이 벌어지고, 끔찍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번 시작된 웃음은 쉽게 멈추질 않았다.
잔인한 깨달음이 닥쳐왔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진환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정윤도, 박경준도, 강 반장도, 심지어 죽어버린 형조차도 아니었다. 잘못은 진환 자신에게 있었다. 띨띨한 자전거 도둑 출신 건달 이진환에게.
이진환은 도둑질을 들켰다. 이진환은 주제를 몰랐다. 이진환은 힘이 약했다. 이진환은 자존심만 앞섰고, 이진환은 재수가 없었다. 이진환은 짝퉁 옷을 입는다. 이진환은 골초다. 이진환은 주먹질을 좋아한다. 이진환은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이진환은 거짓말쟁이다. 이진환은 남의 등골을 빨아 먹었다. 이진환은 빌어먹을 프락치 새끼다. 배신자다. 이진환은 살인자다. 가장 나쁘게도 이진환은, 이 개같은 인간은, 자기가 누굴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가족이니까, 동생이고 삼촌이니까, 사랑하니까, 난 다르니까. 그래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 뭔가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형은 죽었다. 죽어버렸다. 형수는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이고, 동준이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바늘 아래에는 정윤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다. 항구를 뒤덮은 불길이나, 저를 향해 짖어대는 투견을 보듯이.
거짓말처럼 웃음이 멈췄다. 마취 가스를 마신 듯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이제,
이제 난 뭐지?
주사기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져 굴러간다. 서서히, 진환의 고개가 무너져 내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됐다, 씨발.”
천둥 사이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커튼콜을 알리는 박수갈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