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31)

#24

형수님의 말이 맞았다. 병실로 돌아가자, 눈을 뜨고 문가로 고개를 돌리는 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을 회복한 것이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진환은 최대한 천천히 형을 향해 다가갔다.

“형. 나 누군지 알겠어?”

“…….”

“미안해. 형.”

어느새 눈물이 흘러넘친다. 뺨이 눈물범벅이 된 채, 진환은 형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손을 붙잡고 고해하듯이 되뇌었다.

“미안해. 내가 씨발, 동생이라는 새끼가. 형 믿어주지도 않고. 그따위 말이나 하고….”

형수님이 동준이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끄윽,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형이 힘없이 웃음 지었다.

“야, 야. 그만해라, 그만해. 됐어. 나 같아도 안 믿지.”

“아냐.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형.”

“덩치만 커가지고.”

시트에 얼굴을 묻은 진환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그가 미소를 머금었다.

“…구질구질하게 사는 게 싫어서 그랬다.”

문득, 형이 말을 꺼냈다.

“뭐?”

“…‘그거’ 판 거.”

어깨에서 손이 떨어진다. 누군가 들을 것을 걱정했는지, 형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속삭이듯, 그가 중얼거렸다.

“우리 약방 있는 건물 주인 있잖아. 그 인간 친척인지 뭔지, 가끔 찾아오는 밥맛없는 놈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자식이 나한테 혹시 더 강한 건 없냐고 물어보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감이 확 잡히잖아. 처음에는 내쫓아 버렸는데….”

형의 시선이 내리깔렸다.

“집에 들어오니까, 좀 그렇더라. 동준이는 계속 자라는데 집은 조그맣고. 진아는 녹물 나와서 빨래도 어렵게 어렵게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엔 정말 다른 방법이 안 보이더라. 딱 한 번이면 다리 좀 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진환이 형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만 말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잘 전달되었는지, 진환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형은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환아.”

“응, 형.”

“너 혹시… 여기 오기 전에 차에 치였어?”

거즈를 댄 봉합 자국에 밴드까지 덕지덕지 붙은 꼴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얼마 만에 듣는 농담인지 모르겠다. 그게 달가워서, 진환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말았다.

***

신문실에 앉은 박경준을 마주한 강 반장은 혀를 차고 말았다. 구치소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행색이 말끔했다. 재수 없게 왁스를 발라 뒤로 넘겼던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차분한 모양이 된 것을 빼고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스산하고 사람을 어딘가 얕잡아 보는 듯한 눈빛마저도 변함이 없다.

수갑을 찬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박경준이 느긋한 웃음을 지었다.

“또 만나네요.”

“꼴좋다, 씨발 놈.”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된다. 강 반장은 일부러 여유로운 척 입꼬리를 들었다.

“내가 뭐랬냐, 인마. 너 그렇게 살다가 오래 못 간댔지?”

“반장님이 이긴 것 같아요?”

“이긴 것 같은 게 아니라 이겼어, 인마.”

강 반장이 픽 웃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검사님 앞에서 다 밝혀지게 되어 있어. 순순히 자백하는 게 좋을 거다.”

“건축 자재 들여온 게 뭐가 어때서요?”

“이 새끼가….”

말끔한 눈동자가 정면으로 강 반장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불쾌감이 치밀어, 강 반장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편하신 대로 하세요.”

“너 입국한 다음부터 이진환이 그 새끼가 빼놓질 않고 언급한 이름이 있어.”

강 반장이 파일철을 열었다. 그 안에서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멀리에서 찍은 듯한 정윤과 경준의 사진. CCTV에서 오려낸 흐릿한 스크린숏 몇 개.

“아주 그냥, 보고마다 정윤 형님, 정윤 형님. 씨발, 가끔은 그만하라고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알겠으니까 그놈의 정윤 형님 좀 그만 찾으라고. 감방에 있는 너희 형 울겠다고 말이야.”

“본론이 뭐예요?”

“그래서 조사를 더 해봤지.”

서류가 뒤로 넘어간다. 출생 신고서, 낡은 화재 기사 스크랩, 그리고 경준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관공서 서류 하나가 딸려 나왔다.

사망 신고서.

“…근데 이 새끼가, 이십 년 전에 죽은 놈이네?”

서서히, 경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럴 리가요. 여권이랑 다 있는데.”

“그거 중국 놈들이 마련해준 가짜인 거, 우리 막내도 알아차린다, 새끼야.”

“내가 유령이랑 다녔다는 거예요?”

“아, 유령이 약도 팔고 사람도 죽였다?”

서류 위로 턱 하니 강 반장의 손바닥이 얹혔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그가 날숨에 으르렁거렸다.

“…이런 건 어디에서 났냐?”

“샀어요.”

“왜. 청명파 수하에 킬러만 수두룩 빽빽하지 않아?”

“그러려고 산 거 아니에요. 심심해서 가져와 본 거지.”

“그럼, 그냥 장난감이시다….”

“강 반장님은 변함이 없네요.”

조용히, 강 반장이 눈길을 들었다. 거만하게 다리를 탁자 위에 걸쳐 올리며, 경준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래요?”

“…무슨 소리야?”

“제일 묻고 싶은 거, 그거 물어보시라고요.”

들어 올린 입꼬리 아래, 하얀 앞니가 천진하게 두드러진다.

“아버지, 왜 죽였느냐고.”

서류가 구겨진다. 경준은 차분한 시선으로, 강 반장의 이마에 튀어나오는 핏줄을 관찰했다. 제 딴에는 침착한 척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참 멀었다. 경준의 입가에 그려진 호선이 한 차례 더 깊어졌다.

“…왜 죽였냐?”

“음.”

가느다란 손가락이 제 미간을 톡톡, 짚었다. 눈동자가 먼 과거의 일을 회상하듯 흐트러졌다.

“김 회장님이 협박하셨어요. 아버지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고. 나랑 우리 불쌍한 엄마랑. 다 죽이겠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다음에 엄청 울었어요.”

“그랬냐.”

“아뇨.”

경준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구라지.”

강 반장이 그의 얼굴을 내려쳤다. 경준의 얼굴이 가볍게 돌아섰을 때, 강 반장이 벽면에 자리한 불투명한 창을 향해 말했다.

“카메라 꺼.”

뻔한 인간.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경준은 가만히 제게로 다가오는 강 반장을 응시했다. 공손한 웃음을 띤 채로.

묵직한 충격이 다시금 날아온다. 경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주먹질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머리가 자꾸 흔들려 눈앞이 보였다가 깜깜해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코 안으로 쇠 비린내가 났다.

“이 후레 씹새끼가. 어디서 장난을 쳐?! 어디서! 넌 감방에서 평생 썩을 줄 알아, 이 씹새끼!”

강 반장의 욕설이 멀게 들려온다. 경준은 눈을 감은 채로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

구치소에 돌아왔을 무렵, 면회 신청이 들어왔다. 경준은 웃는 시늉을 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행동대장 구실을 하는 김종식이다. 말문을 열 때마다 매캐한 입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눈이 풀린 데에 비해서 얼굴이 불그죽죽했다. 벌써부터 술을 마셨거나, 그게 아니면 간밤에 잠 한숨으로는 배출하지 못할 양의 알코올을 쏟아부은 모양이었다.

“김 상무님이 무슨 일이에요?”

“이진환이, 지금 있는 곳 알아냈습니다.”

“그게 왜요?”

“회장님 이렇게 된 게 다 그 새끼 때문 아닙니까. 한마디만 해주십쇼. 제가 애들 풀어서 그 새끼 다시 폐차장에-.”

“저 대신 복수한다는 거예요?”

그런 뜻이었다. 당혹스러움에 더 덧붙이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자, 경준이 웃음을 머금고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말아요. 제가 직접 할 테니까.”

“하지만 형님-.”

“가만히 있어요.”

박경준의 웃음이 가신다.

“허튼짓하지 말고.”

그러나 김종식은 만족하지 못했다. 구치소를 나오자마자 괜히 재킷이 거슬려 벗어 던지고 쾅쾅 소리가 나도록 벽을 걷어차지만 성이 풀리지 않는다. 자가용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못 참겠다. 처음부터, 이진환이 프락치라는 게 밝혀진 그 순간부터 족쳐놨어야 했다. 시멘트를 먹여서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걸 멍석말이를 한다고 오냐오냐하는 바람에 청명이 풍비박산이 나질 않았는가. 이제는 감방에 들어간 보스 말을 듣겠다고 그놈 떵떵거리는 꼴을 봐야 한다니.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렇게 봐줘서는 안 되는 거다. 박경준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어차피 저기 갇혀 있는 이상은 종이호랑이다. 박경준의 말을 들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액셀을 지그시 밟으며, 김종식이 핸드폰을 들었다.

“나다. 전에 거기 알지.”

계기판의 숫자가 점점 올라간다.

“사람 하나 보내.”

***

피의자 박경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송차 밖으로 발을 딛는 순간부터 경준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강남을 주름잡는 조직 폭력배 오야붕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긴 일부 매스컴에 온 탓이었다. 저를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인파를 옆에 두고, 경찰에게 팔이 붙들려 걸어가면서도, 경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루함이라면 모를까.

팔을 잡아당기는 경호 요원에게 이끌려 걸어 들어가자, 저편에서 아는 얼굴이 들어온다.

“김 검사님. 안녕하세요.”

오랜 악연인 김 검사다. 각진 사각턱에 힘을 준 주름까지. 사 년 전에 봤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흰머리는 조금 늘었지만.

그가 눈에 불을 켠다. 금방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제 심복을 죽이고 신세를 개판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준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나쳐 걸으려 할 때, 김 검사가 말했다.

“그렇게 웃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줄 알아라.”

그러면 좋겠네. 이거 정말 피곤한데.

문득 고개를 돌리자, 인파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우뚝 선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경호원과 같은 복장이었지만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둡고, 경준과 눈을 마주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경준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또 뵈어요. 그럼.”

경준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인파 속의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형이 정신을 차린 후, 형수님의 안색은 확연하게 밝아졌다. 형에게 말을 자주 걸지는 않았지만 형과 동준이가 함께 노는 것을 막지 않았고, 형이 추워하는 것 같아하면 창문을 닫아주기도 했다. 죽을 뻔했던 반려자에게 보여주는 약간의 동정심일 뿐이겠지만, 진환은 그래도 두 사람이 그러는 게 은근하게 기뻤다.

“어떻게 된 게 음식이 감방보다 별로냐?”

음식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형 앞에도 죽이 아닌 병원식이 제공됐다. 숟가락을 들고 건더기가 많지 않은 국을 휘휘 저으며 형이 말한다. 팔자 좋은 냉소적인 농담에 진환은 저도 모르게 푸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밥이 별로야?”

“아니, 거긴 반찬에 소금이라도 넉넉하게 쳐주지.”

말은 그렇게 하고선,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긁어먹는다. 식판을 앞으로 내밀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던 형을 보다가, 진환이 입을 열었다.

“…입소는 언제야?”

“모레. 안 그래도 교도관이 오늘 보러 온다더라.”

“…….”

어두워진 제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형이 잠깐의 침묵 후에 말을 덧붙였다.

“진환아.”

“왜.”

“전에 그 변호사, 그거 어떻게 됐냐?”

진환이 고개를 들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지? 지금은 개털인데. 로펌은커녕 파마도 못 하게 생겼는데. 그러게 붙여준다고 할 때 사람 말을 듣든가! 당황한 그의 얼굴을 보고, 형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짜식아. 됐어. 방법이 생기겠지.”

긴장이 풀려, 진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와, 씹… 존나 놀랐네.”

“너도 나한테 이기려면 멀었다, 멀었어.”

혼자 만화책을 보며 놀던 동준이가 두 어른이 웃는 소리에 마음이 끌렸는지 고개를 든다. 만화책을 든 그대로 꼼지락거리며 다가오더니, 형의 옆에 앉는다. 부자 관계라지만, 나란히 두고 보니 참 닮았다. 동그란 얼굴선에 성실해 보이는 또랑또랑한 눈빛까지. 야릇한 기분에 진환이 두 사람을 응시하자, 창가에 혼자 앉아 있던 형수가 어쩐 일로 말을 걸어왔다.

“닮았네.”

“예?”

“둘이. 형제가 아주 똑같이 생겼어.”

형수가 짓궂은 웃음을 띠었다. 진환은 정신이 벙벙해졌다. 형이랑 내가 닮았다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하지만 형은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다. 진환을 잡아당겨, 형이 토닥이듯 어깨를 문질렀다.

“둘 다 잘생겼지. 그렇지?”

“말을 말자.”

“왜, 이만하면 잘생겼잖아.”

“이주환 씨?”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갈 때 문가에서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을 알아듣고, 형이 몸을 일으켰다.

“피 뽑나보다. 다녀올게.”

“같이 가.”

“됐으니까 동준이나 잘 보고 있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동준이가 제 허리를 끌어안았다. 얼핏 미소를 띠고, 진환은 조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채혈 검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가 검사실 밖으로 나간다. 주환은 바늘이 들어갔다 나간 자리에 붙은 밴드를 멀겋게 바라보았다. 붉은 핏자국이 점점 번져 나간다.

다시 고개를 들자, 문가에 남자가 서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딘가 표정이 없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마중을 온다던 교도관인가, 생각했을 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진환이냐?”

대답을 하려다 말고, 주환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남자는 날씨가 따뜻한데도 주머니가 커다란 밀리터리 점퍼를 입었다. 주머니에 들어간 손이 보인다. 주머니는 불룩했다.

잠시의 생각 후, 그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남자가 손을 꺼낸다. 주환이 예상한 대로였다. 아래로 내려간 남자의 입꼬리가 그림자와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주환은 눈을 감고 후회에 잠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마디씩 더 하고 올걸. 동준이한테는 사랑한다고. 진아한테는 미안하다고. 진환이한테는 몸조심하라고.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주환은 그에게로 날아오는 칼날을 묵묵하게 받아냈다.

***

강 반장은 계단에 주저앉아 담배를 꺼냈다. 지나가던 기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리며 눈치를 줬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 아닌가. 언제부터 끽연도 마음대로 못 하는 공산당이 되었는지.

담배 개비 끄트머리에 불씨를 붙이는데, 강 반장의 시선에 누군가 들어왔다. 보안 요원 같았는데, 혼자 떨어져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행색이 영 거슬린다. 신참이라고 보기에는 표정이 어둡고 휴식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바짝 긴장한 게 눈에 띈다. 결국, 그는 빨지도 않은 담배를 담뱃갑 안에 돌려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 앉아 있던 이 경관이 파릇파릇한 얼굴을 들었다.

“반장님, 어디 가십니까?”

“잠깐, 뭐 좀 확인하러 다녀오마. 여기 있어.”

남자는 건물을 모서리를 돌아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뒤편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가 안주머니를 뒤적인다. 역시나 하는 짓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강 반장이 손을 뻗었을 때였다.

“이봐, 거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 그리고 발밑으로 와닿는 충격파에 어깨가 떨린다. 강 반장은 고개를 돌렸다. 연기와 함께, 검찰청에서 치솟는 불길이 그의 동공에 비쳤다.

건물 전체에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짧은 순간 고막이 막히며 주변이 정적에 접어들었다가, 비명 소리와 승용차 방범 알람과 몸싸움이 일어나는 듯한 요란한 소리에 전복당했다. 문을 박차고 복면을 쓴 사내들이 들어온다. 열린 문틈으로는 내려앉은 천장과 덜렁거리는 전선, 그리고 콘크리트가 부서져 날리는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머리가 빙글 돈다. 보안 요원이 그들에게 대응하기도 전, 괴한이 든 야구 방망이가 그를 내리쳤다.

무력하게 충격으로 멀어지려는 정신을 붙들며, 김 검사는 경준에게 다가가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경준의 손목에 감긴 수갑이 간단하게 풀린다. 벗겨진 수갑을 정중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경준이 일어섰다. 손목을 만지작거리더니, 그가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할 것까진 없었는데. 미안해요. 애들이 성격이 좀, 급해서.”

삼합회 애들 어떤지 알잖아요. 경준이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거기… 멈춰. 씹새끼야. 멈…춰.”

“걱정 마세요. 때 되면 수리비 보내드릴 테니까.”

아비규환이 된 현장을 뒤로하고, 경준은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확보해둔 루트를 따라 건물을 빠져나와서 건물 뒤편에 멈춘 차량을 향해 간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차 문을 연다. 박경준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릿하게 아래를 향했다. 걸음이 예상만큼 가볍지 않았다. 거머리 같은 것이 발목에 들러붙은 탓이었다.

경준의 발목에 매달려, 강 반장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놓으세요, 반장님.”

“어딜, 가려고. 쓰레기 새끼야. 어딜 가려고….”

“사람 참, 미련하시네요.”

강 반장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간다. 권총을 빼내기 전, 경준이 그의 손목을 짓밟았다.

“어차피 첫 발은 공포탄이잖아요.”

“이 씨발 놈의 새끼. 쓰레기 같은 개새끼가…!”

“그러네요.”

차분한 시선이 강 반장 위를 훑는다. 그의 팔을 짓밟았던 발이 들려, 허리를 걷어찬다. 강 반장이 몸을 마는 사이 경준이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절 개새끼 보듯 하셨어요. 늘.”

경준이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주먹을 들어 강 반장을 내리쳤다. 곱상한 외견과 다르게 매서운 주먹이었다. 강 반장의 얼굴이 휘어지고,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고개를 되돌리기 직전 주먹이 다시 그를 가격했다.

“아버지가 우리 불쌍한 엄마 개처럼 팰 때, 형사님은 뭐 하셨어요? 관심이나 가졌나?”

계속해서, 계속해서.

“한번은 그 새끼가 날 솥에 넣고 삶아버리려고 했어요. 그땐 뭐 하셨어요?”

코뼈가 휘어지고 피멍이 부풀어 오른다. 금세 의식을 잃어, 멱살에 매달린 채로 강 반장의 고개가 꺾였다. 손을 놓자, 그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경준이 그의 위에 침을 뱉었다.

“쪽팔리게, 나대질 말든가.”

기절한 채로도 강 반장은 끝끝내 바짓가랑이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을 걷어차며, 경준이 고개를 젖혔다.

“다신 보지 말죠.”

경준이 차에 올라탄다. 끝까지 앞으로 기어가려던 강 반장을 뒤로, 차가 출발한다.

피가 흘러 붉어진 시야에 의지해, 강 반장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반장님.”

누군가 그를 부른다. 강 반장의 눈이 커진다. 울먹이는 이 경관이다. 날아오는 돌을 잘못 맞았는지, 뒤통수가 피떡이 되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반장님. …반장님, 저, 저희….”

“말하지 마, 이 경관. 가만히 있어.”

“저희, 아버지한테, 꼭-.”

울먹이며 이 경관이 헐떡거린다. 강 반장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펄떡이던 이 경관의 맥박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어쩔 줄을 모르며 강 반장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가 고성을 지른다.

“119 어딨어.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딨냐고, 씨발!”

“저희 아버지한테, 통장에 든 돈, 그걸로 빚 갚으라고-.”

“말 그만하라니까, 이 새꺄!”

이 경관이 뻣뻣하게 눈을 든다. 웃으려는 건지 입술이 꿈틀거린다. 스르르, 잠이 들듯이 눈꺼풀이 감겨든다.

“이 경관. 이 경관… 눈 떠. 눈 뜨라고, 씨발…!”

강 반장의 입이 벌어진다. 쏟아지는 절규와 함께,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

“저 담배 좀 사러 다녀오겠습니다, 형수님.”

병원에 달린 매점에서 담배 한 갑을 주문하는 사이 가판대에 놓인 색색의 사탕에 눈길이 끌린다. 공중전화처럼 생긴 모양의 플라스틱 통 안에 콩알만 한 사탕이 들어 있는 제품이었다. 계산을 마친 점원이 지겹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집어 들어 이리저리 바라본다.

동준이 하나 가져다주면 좋아하려나? 그럴 나이는 지났나?

망설인 끝에 진환은 결국 사탕을 샀다. 싫어하면 내가 먹지 뭐.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병원 복도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몸이 움츠러드는, 저절로 비명이 튀어나오는 소음이 고막을 찢었다. 비명 소리다. 이어서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려가는 병원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 칼, CCTV, 경찰 같은 단어가 들리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닐 거야.

아주 빠른 한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서 억누른다.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달리면서도, 문가에 서 입을 틀어막는 형수님을 보면서도, 간호사 한 명이 동준이의 눈을 가리는 것을 보면서도, 진환은 계속해서 제 생각을 부정했다. 하지만 채혈실 안에 발을 디뎠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 형을 봤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

“형.”

형은 눈을 감고 있었다. 힘없이 의자에 기대어 고개가 꺾어지고, 축 늘어진 팔이 바닥을 향해 대롱거린다. 환자복은 붉다. 빨갛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붉게 물들었다. 배에 넝마 조각처럼 찢어진 곳들이, 그 너머로 붉게 벌어진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형….”

의사가 형의 맥박을 잰다. 들것을 가져온 간호사를 앞에 두고,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형…!”

형수님이 자리에 쓰러진다. 억눌린 흐느낌이 멀리에서 들려왔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애써 생각하려 되뇐다. 꿈이야. 좆같은 꿈. 일어나. 일어나, 씨발. 일어나.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잘 쉬어지지 않는 호흡을 억지로 끌어 올리며,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형의 눈이 떠지는 일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