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경준은 아버지를 죽였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우선 아버지는 저보다 키가 컸고, 평생 양아치처럼 산 인간답게 힘이 셌으니까.
그래서 경준은 계획을 세웠다. 아버지 술상에 농약을 섞어서 약을 먹인 것이다.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길래 해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양이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중간에 눈을 뜨고, 경준은 그와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씨름해야만 했다.
평생을 패악질만 한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들었다. 포기할 만도 한데. 경준을 쓰러트리고 바닥을 기어 도망가더니, 이내는 부엌에서 칼을 찾아 휘둘렀다. 몸싸움이 일어나고, 경준은 가까스로 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결국, 경준은 해냈다.
침착하게 목의 동맥을 긋고, 거실 장판 위에서 그가 발버둥을 치다 서서히 식어가는 장면을 무뚝뚝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거북했던 아버지인데, 움직이지 않으니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흉기는 바다에 던져버리고 옷은 태워버렸다. 아버지의 시체는 김 회장에게 가져갔다.
그 후로 경준의 삶은 단조로웠다. 살아남고 기어오르는 것뿐이었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그러나 대체로, 그는 안개 안을 걷는 기분이었다.
막연하게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엇을 원하는지 저도 알 수 없었다.
좋은 옷을 입고 멀쑥한 인간처럼 말을 하면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그렇게 살아왔다.
정윤이 저를 바라보는 눈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건 뭐예요?’
태국에서 정윤을 처음 봤던 순간, 피투성이가 되어 걸레짝처럼 버려진 그의 몸뚱어리를 보고 물었다. 처음에는 불쾌한 호기심이었던 감정은 정윤이 눈을 뜨자 이해할 수도 없는 충동으로 뒤바뀌었다. 정윤의 새까만 눈은, 저를 온전하게 담고 있었다. 경준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살게요. 제가.’
처음으로, 경준은 무언가가 가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정윤은 어떤 명령이든 따랐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기다린다. 웃으라면 웃고, 죽으라면 죽는다. 정직한 개처럼. 제 곁에 머물렀다.
그게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정윤은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였다. 그는 명령을 내리고 벌을 주는 인간은 누구든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하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지금껏, 경준은 자신이 의미를 원한다고 생각해왔다. 의미를 원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약을 들여오고, 개를 길렀다고.
그러나 약에 전 정윤이 잠든 것을 지켜본 어느 날 밤, 경준은 깨달았다. 그는 의미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정윤을 원했다. 정윤을 만나기 오래전부터 그를 원해왔다. 정윤 안에 있는 공백을, 천진함과 허무함을, 무엇도 고쳐놓을 수 없는 망가진 내면을 원했다. 고통에 반항하지 못하는 아둔함을, 무채색의 표정을, 무기력함을 원했다. 손이 핏물에 젖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편안함을 원했다. 벌을 갈구하는 혼란을 원했다. 정윤만이 그를 안도로 이끌었다. 정윤만이 그를 평범한 인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에 앉아, 묘하게 빳빳한 죄수복을 만지작거리다가, 경준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어쩌면 삶이 감옥과 닮은 건지도 모른다. 텅 빈 공간에 철장을 두르고 감시관을 붙이는 것처럼,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에 규칙과 명분을 칠한다.
오후에는 회계사가 찾아왔다. 예상하고 있던 손님이었다. 경준은 면회실에 앉아 차분하게 그를 맞이했다. 구치소 옷차림이 아니라면 누가 감옥에 가게 생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안색은 엉망이었다.
경준이 눈짓을 하자, 이미 두둑하게 뒷돈을 받아먹은 감시관들이 자리를 비운다. 경준은 회계사가 용건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최 검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왔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말을 잇질 않고 회계사가 손수건을 꺼내어 제 목덜미의 식은땀을 훌훌 닦아냈다. 평소에도 그다지 사근사근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지금은 정말로 불편해 보였다.
“그… 방법을 알아보시겠지만….”
“못 도와주겠다, 그거네요.”
“…….”
차마 대놓고 대답할 수가 없는지, 상대는 눈을 내리깐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경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었지만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최 검사. 제까짓 것 검사장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얼마나 귀찮은 짓을 해야 했는데. 사람을 이렇게 내팽개치다니.
별수 없다. 소란스러운 건 질색이었지만, 남은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메모할 거,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던 회계사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잉크가 얼마 남지 않은 볼펜을 찾아냈다. 경준은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받아 적어요.”
경준이 말한 것은 열한 자리의 전화번호였다. 회계사는 얇은 냅킨 위에 적혀 있는, 기억에 없는 번호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뭡니까?”
“전화 걸어보면 알 거예요.”
“예?”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경준이 등받이 쪽으로 몸을 젖혔다.
“여기 평생 있을 순 없잖아.”
***
“참고인으로 사람을 이렇게 오래 잡아둡니까, 그래? 그것도 전치 8주 나온 사람을 말이야.”
강 반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진환은 종이로 된 잡지를 넘겼다. 명품 시계 컬렉션 따위가 광고로 실린 구닥다리 패션 잡지였다. 뻣뻣한 종이가 속 시원하게 쓸린다.
“그거 요즘 잡범들도 안 읽는다, 등신아.”
“왜. 아주 유익한데. 겨우 사 년밖에 안 되었구만.”
“여기서 보내주면. 뭐, 갈 곳은 있고?”
“아, 씨. 진짜.”
사람 아픈 곳을 저렇게 찌르냐?
진환은 지금 무일푼 그 자체였다. 박경준이 저를 잡아갈 때 재산이란 재산은 모조리 긁어간 탓에 집도 남아 있질 않았다. 제 원룸은 경찰들이 조사한다고 출입이 금지됐다. 입원할 돈도 아까운 처지였다. 그러니 이틀간 서에서 자다시피 하는 신세가 되어서도 찍소리를 못 하는 것이다.
강 반장이 의자를 끌어 제 책상에 앉았다. 오래되기는 진환이 읽는 잡지나 마찬가지인 가구라, 요란하게 삐걱대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진환은 태연하게 다음 장을 넘겼다.
“형편이 못 본 사이에 어째, 좀 안 좋아지셨어.”
한밤중. 사무실에는 숙직 당번도 아닌 강 반장과 그의 책상 앞에 앉은 진환밖에 없었다. 서 자체가 콩알만 한 탓이었다. 강 반장의 자리는 누가 봐도 구석,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다. 얼마나 깡촌인지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누구 때문인데.”
“그러게 라인을 잘 서든가. 아니, 그 김 검사인가, 그 새끼 아주 나쁜 놈이더만. 마누라 시켜서 탈세를 하고 말이야.”
“그 나쁜 새끼가 네 형 꺼낼 마지막 카드였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네, 그러시겠죠.”
얇은 종이가 잎새 위 바람처럼 사각거린다. 진환의 눈꺼풀이 무감각하게 흘러내렸다.
“가둔 것도 마음대로였는데, 꺼내는 건 왜 못 하려고.”
덜컹. 의자가 끌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 반장은 입을 벌린 채, 귀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진환을 내려다보았다. 진환이 잡지를 넘겼다.
“앉으시죠. 민망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인마. 누가 누굴 마음대로 잡아넣어?”
“다아, 들었습니다, 형사님.”
잡지가 덮인다. 진환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박경준이 그 새끼가 다 말해줬다고.”
폐차장. 개처럼 김종식에게 얻어맞고, 벌레처럼 박경준이 구둣발에 짓밟혔던 바로 그때.
박경준이 귓가에 속삭였던 그 말.
‘김 검사님 파일에서 봤어요. 진환 씨네 형, 징역 안 살아도 되겠던걸요? 경찰 측에서 알리바이 증명해줄 증인을 확보했어요. 이름이 뭐더라? 노친네였는데. 미국 산다던.’
김옥자 할머니야, 진환아.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한댔어.
‘그런데 검찰에서 그걸 묻어버렸더라고요. 멀쩡한 어르신 치매 환자 취급하면서. 영수증도 있고 둘이 사이좋게 사진까지 찍었던데. 그거 한 장 법원에 들고 가면, 그 억울한 사람도 풀어주고. 진짜 범인도 잡았을 텐데. 그걸 왜 그랬을까? 왜 굳이 억울한 사람을 그냥, 감방에 처박아 버렸을까?’
형이 말했다. 내가 죽였다고, 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거잖아.
‘강 반장이 나타난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단 생각, 해본 적 없어요?’
“…이진환.”
“우리 형, 당신들이 그렇게 한 거나 다름없어.”
텅 비어버린 시선을 마주하며, 강 반장은 남모르게 긴장에 압도당했다. 서서히, 진환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둥그렇게 만 잡지 끝이 강 반장의 가슴께를 톡, 찔렀다.
“나랑, 당신이.”
“박성수가 마지막으로 간 곳이 어딘지, 안다.”
강 반장은 끝까지 판을 놓아주지 않았다.
진환이 미세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 인생 하나 통으로 망쳐놓고, 그걸 협박으로 막으시겠다?”
“지나간 일은 캐묻지 말자는 거다. 너나, 나나.”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강 반장이 진환의 옆으로 비켜섰다. 멀어지려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진환이 소리를 질렀다.
“나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있을 거라고, 이 씹새끼야! 갚아줄 거야. 우리 형 억울하게 당한 만큼, 너한테도 갚아줄 거라고!”
“이 양아치 새끼가, 오냐오냐 장단에 맞춰줬더니, 씨발!”
강 반장이 바로 의자를 걷어차고 뒤돌아섰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네까짓 게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너 박성수 묻은 거, 양념 좀 입혀서 매스컴에 터뜨리면 몇 년 형 나올 것 같니? 너네 형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어. 인생 망치는 게 진짜 어떤 건지 느끼게 해줘?”
진환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이내, 그가 강 반장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내가, 내가 누구 때문에 그 짓을 했는데!”
“사람 죽이라고는 한마디도 안 했다. 아니, 했더래도 증명 못 해. 공식적으로 우린 너 알지도 못하니까.”
“씨발….”
“그러니까 놔. 이 새끼야. 놔!”
진환을 밀치고, 강 반장이 제 옷깃을 추슬렀다.
“공익을 생각해라. 공익을. 박경준이 잡아 가둔 덕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깨끗해졌을지 좀 생각해보라고.”
“하! 셔츠나 빨아 입으시죠, 예? 칼라에 때 다 탔네. 쉰내 납니다. 더러워서, 진짜.”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근데.”
한 대 칠 것처럼 주먹을 들어 올리지만, 강 반장은 이내 팔을 제자리에 돌려두었다. 진환은 어느새 피로에 찌든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젊은 놈의 새끼가, 세상 다 산 것처럼 지치고 너덜너덜하다. 저렇게 죽은 거나 다름없는 놈은 쥐어패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제 얼굴을 문지르고, 강 반장이 말했다.
“…저기, 화장실 들어가서 세수도 좀 하고 그러고 와라.”
“…….”
“잘 곳도 좀 알아보고. 친척이나, 뭐….”
“정윤 형님은.”
강 반장이 멈춰 섰다. 눈길을 들어 올리며, 진환이 말을 이었다.
“…정윤 형님은. 찾으셨습니까?”
긴 한숨을 내쉬고, 강 반장은 제 책상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직이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망감이 그에게 스쳤다. 이진환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보는 눈빛이었다.
“세수하고 오겠습니다.”
진환이 돌아섰다. 뭘 잘못 본 건가? 눈을 벅벅 문지르던 강 반장은 이윽고, 제 셔츠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진환은 고개를 들었다. 거울 저편의 인간은 기억 속의 이진환과 딴판이었다. 이제 누리끼리해진 멍 자국이 광대뼈며 눈 주위를 물들인다. 원래 색소가 옅은 편이라 눈에 잘 안 띄지만, 염색한 머리 물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눈은 탁하다. 약이라도 빤 인간처럼.
턱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훑어 닦았다가, 진환은 거울을 내리쳤다.
영화에서처럼 금이 가고 파편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손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이 팔목까지 올라왔을 뿐이다. 몰려오는 숨을 내뱉고, 진환이 고개를 숙였다. 욕설이 밀려온다.
경찰이란 놈들이 사람 하나 못 찾아?
손뼈가 욱신거린다. 거울에 반사되는 화장실 조명에 눈이 아프다.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진환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어디 계십니까, 형님.”
병원에 돌아가자, 형의 침대 옆에서 잠이 든 형수님과 동준이가 보였다. 동준이를 보호자용 간이침대 위에 눕히고, 형수님 어깨 위에 담요를 덮어드린다. 눈을 감은 형을 빤하게 바라보던 진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 미안해.”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하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저 바로잡을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형수님. 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눈을 감은 형수님께 속삭이듯 말을 걸고, 진환은 병실 밖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진환이 향한 곳은 병원 바로 건너편의 PC방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눈이 벌게진 게임 중독자나 모텔 대신 하룻밤을 때울 용도로 이곳을 찾은 머리가 부스스한 인간들뿐이었다. 진환은 최대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만한 구석 자리를 골랐다.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검색 브라우저를 켜, 정윤의 이름을 입력했다.
엄청난 양의 무분별한 데이터가 쏟아졌다. 동명이인들의 SNS 게시글, 같은 이름을 가진 어느 가수의 데뷔 앨범 얘기, ‘정윤’이라는 기자가 쓴 뉴스까지.
세 시간이 넘도록 그 짓을 하자 눈알이 뻑뻑하게 아파 왔다. 배도 고프다. 짜장라면이나 먹을까?
쟁반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약간 분 감이 있는 짜장라면을 들고 돌아온다. 후루룩 먹으면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형수님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요금도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현금이 얼마나 남았더라?
“씹….”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정윤은 SNS를 할 것 같은 사람도, 인터넷에 흔적을 남길 것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이건 정말 아냐. 다시 생각하자, 이진환.’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조용히 한국을 떠났거나, 구치소에 들어간 박경준이 입김으로 청명파 놈들이 데려갔거나. 정윤 형님 형편을 생각했을 때, 한국을 떠나려고 마음먹었다면 인천을 골랐을 가능성이 컸다. 박경준이 사업 구역을 확장하려고 돌아다닌 곳인 만큼, 정윤 형님도 익숙한 곳일 터였다.
‘박성수 일만 해도….’
정윤은 그때 분명, 박경준이 모르게 뱃사람 하나를 매수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맥이 있단 뜻이었다.
단서가 있다면, 이쪽이다.
진환은 ‘인천 항구’, ‘사건’, ‘몸싸움’ 같은 키워드를 넣어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제 일어난 화재가 가장 상단에 올라온다. 트레일러 박스 안에 화재가 일어나, 건설업 종사자로 보이는 사람 열둘이 타죽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기사였다. 진환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나 이 중에 정윤 형님이 섞여 있다면, 하는 걱정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스쳤다.
‘신상 정보. 신상 정보….’
그러나 아무리 기사를 뒤져 보아도 사망자의 이름을 발표한 명단이나 자세한 사건 정황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이나 주민 인터뷰만 이어질 뿐이었다.
‘시민의 알 권리는 어디 있냐, 어?!’
초조함에 불만을 곱씹으며, 진환은 새로운 검색창을 열었다. 이번에는 대놓고 ‘인천항 화재 사건’을 검색한다. 황급히 스크롤을 내리던 그의 눈에 달가운 제목이 들어왔다.
「인천 항구 대형 화재 사건. 사망자 명단 공개.」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클릭한다. 영원히 빙글거릴 것 같은 로딩 화면이 끝나고 페이지가 열린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자마자, 진환은 곧바로 맥이 풀리고 말았다.
‘뭐야, 이거.’
사진은 흑백에, 기사에는 한문이 잔뜩 섞여 있었다. 인터넷 기사조차 아닌, 옛날 신문을 스크랩해서 아카이빙한 화면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이나 된 기사였다.
‘되는 일이 없네, 정말.’
한숨이 나왔다. 정윤 형님이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쓸데없는 기사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진환은 망설임 없이 마우스 포인터를 뒤로가기 버튼 위로 옮겼다.
“…….”
마우스 포인터가 그 자리에 맴돌았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때문이었다. 몇몇 부분은 다르지만, 이상할 정도로 눈에 익은 풍경이다. 가만히 사진 속 풍경을 응시하던 때, 진환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무언가가 떠올랐다.
박성수를 묻은 다음 날. 정윤이 데려갔던 절간. 그 절간이 있었던 그 촌 동네.
‘아빠가 자주 왔었어.’
스크롤을 내린다. 제목에서 약속한 대로, 기사에서는 친족들이 확인할 용도의 사망자 명단을 별개로 공개하고 있었다. 천천히 명단을 읽어 내려간다.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 마우스를 쥔 손은 식은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한지윤. 6세.
한정윤. 6세.
의자를 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럴 리가 없어. 화면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어서 이상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야. 자신에게 타이르지만, 등골을 타고 냉기가 올라온다. 손마디가 갑자기 시큰거려 주먹을 움켜쥔다.
주머니 안쪽이 바르르 떨렸다. 진동을 느끼고 깜짝 놀라 요란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가, 점퍼를 덮어쓰고 자고 있던 어느 중년 남자의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가슴을 애써 쓸어내리고, 진환이 전화를 받았다.
“예. 이진환입니다.”
- 진환 씨. 저예요.
“아, 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 어서 병원으로 오세요. 주환 씨가-.
형수님의 말이 이어진다. 침착함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어느새 진환의 목소리는 떨려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그가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
누군가가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틀리지 않았나보다.
담벼락을 옆으로 계단 길을 오르던 정윤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내렸다. 큼지막한 그의 발 옆에 노란 털 뭉치가 보인다. 이어 고양이가 동그란 얼굴을 들었다. 눈이라도 마주 보듯이.
정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거부감 없이 머리와 등을 내준다. 털이 지저분하지만 길이 잘 들었다. 어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다가, 정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안 보이나봐.”
어느덧 담벼락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지윤이 턱을 괴었다.
“근데?”
“좀, 이상해서.”
“너 이상한 게 하루 이틀이야?”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린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귀엽다. 고양이.”
“병균투성이야.”
“그래도 귀여워.”
“하긴. 더 지저분한 것도 만져봤지.”
지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의 그녀는 평소보다 키가 작았다. 멜빵이 달린 바지를 입고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 평균대 위를 걷듯이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열 살짜리 아이의 작은 발이 담벼락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걸어간다.
“바다 근처에서 불이 나는 거, 봤지?”
“…응.”
“확실해? 정말 거기로 갈 거야?”
고양이가 잘게 운다. 정윤은 누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깡마른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작은 털 뭉치는 길고양이답지 않게 순순히 안겨 올려져, 품 안에 머리를 비비기까지 한다.
“배가 고픈가봐.”
정윤이 중얼거렸다.
지윤의 두 발이 담벼락에서 뛰어내린다. 땅에 돌아온 그녀는 경준과 비슷한 키로 자라 있었다.
“뭐라도 먹여. 떠나기 전에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응.”
지윤이 담벼락 위로 돌아간다. 조그마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나풀거리는 발걸음으로 균형을 맞춰 걷는다.
털북숭이 이마 사이를 살살 문지르며, 정윤은 옛 생각에 잠겼다.
개처럼, 날 사랑해줄래요?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경준이 물었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준은 지금보다 덜 불안해졌을지도 모르고, 진환은 피투성이가 되지 않았을 거고, 정윤은 여기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정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