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1/31)

#20

봐. 저렇게 날 미워하잖아.

동이 트기 직전의 길을 걷는다. 초조하던 가슴이 해방된 것처럼 트이고, 무게가 가신다. 진환은 그를 미워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더러운 창놈이라고, 개새끼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어떻게든 들어 올리려고. 이상하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공기가 차가운 탓일까? 뺨이 얼어버린 건가?

그러자,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따뜻하고 끈적거리는 물방울이다. 이윽고, 뺨이 젖어들었다. 계단에 주저앉는다. 무릎 위에 얼굴을 대고, 달팽이처럼 몸을 웅크린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걸려버린 느낌이다. 숨이 막힌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 그것도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도망치라고? 어디로 도망쳐? 도망쳐서 뭘 해? 도망쳐서 불행해진다면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도망쳐서 행복해진다면, 불행하게 되어야만 한다. 그게 정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정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일이다. 괴로워지는 것.

“여기서 뭘 하고 있었어요?”

무릎에서, 서서히 정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준아.”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요. 산책 나왔어요?”

“그냥….”

“아직 추운데. 겉옷이라도 입지. 배고프죠?”

정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경준은 살가운 답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같이 들어가요.”

정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서 자그마한 진동이 전해졌다. 경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팬에 와인을 붓고 고기를 얹는다. 그윽한 냄새와 함께 자글거리며 소고기가 익어갔다. 그린빈으로 플레이팅한 접시를 정윤의 앞에 놓으며, 경준이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아침으로는 좀 그런가? 하지만, 정윤 씨 고기 좋아하잖아요.”

정윤은 마지못해 그러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써는 톱니 나이프를 움직이지도 않고, 핏물이 흥건하게 새어 나오는 스테이크를 바라보고만 있다. 이진환이 똥통에 들어간 이후로 내내 석상처럼 꿈쩍도 안 하던 얼굴이 오늘은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한다.

불쾌해.

“음식이 입에 안 맞아요?”

냅킨으로 입 주변을 눌러 닦으며, 경준이 물었다. 정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눈길을 내려 살펴보니, 나이프를 쥔 손등에 불룩 힘줄이 솟아 있다. 경준은 냅킨을 접시 옆에 가지런히 내려두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해요.”

“왜 아직도 안 죽였어?”

“누구요?”

“알잖아.”

“이진환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무뚝뚝한 표정 위에 짧은 당혹감이 스쳤다. 입술을 문 채, 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준이 다시 나이프를 들었다. 뾰족한 날 끝이 살점을 파고들며 붉은 기가 도는 고기의 단면을 드러낸다.

“…날 속였어.”

“그래서 벌 받는 중이잖아요.”

“충분히 받았어. 그만 죽여버려도….”

“그럼 직접 죽이지 그래요?”

정윤의 얼굴에 눈에 띄게 창백해진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시선을 피한다. 손끝이 매섭게 떨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 무릎 위로 가져가 숨긴다. 경준은 이 모든 걸 응시했다.

포크를 이리저리 돌리며 심드렁하게 고기 조각을 응시한다. 입술을 꾹 다문 채로 한참을 그러던 경준은, 이윽고 반도 먹지 않은 스테이크를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다란 덩치를 질질 끌며, 정윤이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어, 어디, 어디 가?”

“일하러요.”

“무슨, 일…?”

경준은 종잇장이라도 벨 것 같은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듯한, 걱정하는 듯한 눈빛에 속이 뒤틀렸다.

벌을 줬는데. 원하는 대로 우스운 꼴이 됐는데.

이진환이 어떤 녀석인지, 어떤 마음으로 접근했던 건지 말해준 후에도 정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종의 여진으로 간주했다. 커다란 혼란을 겪은 후 헛된 희망을 붙잡는 거라고. 중독자들이 늘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느리다. 이건, 불쾌하다.

왜 죽이지 않느냐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다. 그가 보는 앞에서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정윤을 만진 손목을 뜯어버리고 싶다. 눈을 지지고 혀는 개밥으로 던져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윤의 마음에서 이진환은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이진환은 잊혀야 한다. 정윤은 제 자리를 알아야 한다.

“…요즘, 정윤 씨한테 무심했네요.”

“어?”

“느긋하게 놀아주질 못했다고요. 미안하게도.”

들끓는 새까만 감정을 목구멍 아래로 씹어 삼킨다. 이윽고, 경준은 차분하게 웃음 지었다.

“지금 놀까요?”

***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져, 정윤은 어쩔 줄을 모르고 경준을 응시했다.

“말했죠? 새 물건을 구했다고.”

흰 알약이 불룩하게 든 지퍼백이 경준의 주머니에서 들려 나왔다. 침대 위에 투명한 백을 기울여 알약을 쏟아낸다. 정윤에게도 낯선 모양새였다. 색이 없어 사탕보다는 의료용 같고, 깔끔하게 정제되어 있었다. 반으로 가르는 곳까지 표시되어 있다.

매트리스를 누른 손등 위, 손가락 사이로 작은 구슬처럼 몰려드는 알약이 어딘가 소름이 끼쳐, 정윤은 뒤로 몸을 젖혔다. 경준은 시계를 풀고 있었다.

“북쪽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 녀석들이 마침내 미얀마 국경을 넘어오는 법을 알아냈거든.”

“뭐, 뭐야? 이게….”

“걔네는 진실의 약이라고 부른대요.”

경준이 웃음 지었다.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나.”

불길하다.

“하, 하, 지마. 하지 마….”

“걱정 말아요. 입에 안 넣을 테니까.”

경준이 팔을 뻗어, 침대맡으로 미약하게 달아나려 한 경준의 머리를 감싸 잡았다. 손가락이 단단히 머리카락을 휘감는다.

우악스러운 힘이 정윤의 머리통을 매트리스 위에 잡아 눌렀다.

“아랫입을 쓸 거지만.”

하의를 단번에 끌어 내려 벗기고, 정윤의 어깨를 짓누른 채 애널 안으로 알약을 밀어 넣는다. 작고 단단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이물감에 소름이 끼쳐, 정윤이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이물감은 잠깐이었다. 더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벽의 열에, 집요하게 문지르는 손놀림에 알약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혈관에 바로 약물이 빨려들어 신경이 뻣뻣해진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거렸다. 얼굴에 이상할 만큼 열이 오른다.

“볼까요? 정윤 씨 진짜 모습.”

경준이 손바닥을 들어 올린다. 날 선 소리와 함께, 손이 둔부를 내리쳤다.

그리고 눈앞이 검게 물든다.

“아, 히잇…!”

정윤의 허리가 발정 난 개처럼 치켜 올라갔다. 어둑했던 시야가 돌아오며, 둔부에서 전해지는 얼얼한 감각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가 하반신에서 욱신거린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애써 부정하며 서서히 시선을 내렸다. 정윤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다. 시트는 젖어 있었다. 그 위, 단번에 성기가 서, 선액을 질질 흘려대는 제 좆대가 보였다.

“왜, 이거, 왜….”

겨우 그걸로 서버렸다고?

전에 경준이 주사한 ‘특별한’ 것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감도도 말도 되지 않을 만큼 민감해지고 두려울 정도로 쾌감이 지나쳤다. 조그마한 자극이 스칠 때마다 몸이 통제를 벗어나고, 의식이 빠르게 끊어졌다가 돌아온다. 기절하는 것처럼.

“어때요?”

경준이 발갛게 부어오른 둔부 위를 쓰다듬었다. 가뜩이나 아까의 손찌검으로 민감해진 살갗이 팽팽한 약 기운과 합쳐져, 뇌를 움켜쥐는 것처럼 간지러운 쾌감이 정윤을 휘감았다.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정윤은 꼴불견으로 시트에 머리를 비볐다. 몸의 다른 곳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트에 피부가 닿는 것마저도 자극이 된다. 경준의 손길만으로도 프리컴을 질질 싸는 지경이었다가, 둔부를 한 번 더 내려치자 기어이 가버리고 말았다.

“벌써 간 거예요?”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경준이 녹아내릴 만큼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다. 쾌감을 떨치고 싶어 몸통을 비틀어대는 것을 무시하며.

“안 되겠다. 규칙이 있어야겠어요. 정윤 씨. 이제부터 갈 때마다 한 알씩 더 넣을게요.”

“실, 싫어. 시러…. 왜? 왜….”

“변태처럼 군 벌이에요. 참으면 되잖아.”

말도 안 돼.

이런 몸이 되도록 만들었으면서, 더 민감해지도록 벌을 준다니. 누가 생각해도 불합리했다. 하지만 불만을 또박또박 말할 틈이 없었다. 경준의 손가락이 벌써부터 입구에 파고들고 있었으니까.

“잠, 그, 그만, 힉…!”

알약이 내벽에 눌리며, 스폿 주변을 스친다. 드라이로 가버리며 허리가 흔들리고, 이미 정액으로 질척해진 성기가 꼴사납게 덜렁거렸다.

“하나 더.”

“안 돼. 미안해. 잠까, 하, 으읏….”

그 후로는 그 행동의 반복이었다. 정윤을 자극해서 가버리게 만들고, 그만큼 민감해지는 약을 밀어 넣는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

물, 두고 가라고 할걸.

자존심을 세우려 내뱉은 말을 후회하기까지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갈증 탓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목구멍이 들러붙는 것 같은 갈증. 피가 나올 것 같은 갈증. 눈을 감을 때마다 물 한 컵이 둥둥 떠오른다. 당장이라도 온몸의 피가 끈적하게 말라 죽을 것만 같다. 어차피 죽일 거라면 생맥 한 잔만 마시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사형수도 씨발, 죽기 전에 소원 다 들어준다던데.

의자에 늘어져 정신이 가물거릴 즈음, 발소리가 들렸다. 눈길을 들어 상대를 훑었다가, 진환이 헛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죽이시게?”

박경준이 걸어 들어온다. 소매를 걷어 올린 셔츠 차림에, 더없이 말끔한 표정을 하고서.

“허세 부리지 말아요. 안 어울려.”

“나만 잡으면 해결될 것 같지?”

힘없이, 진환이 콧등을 찡그렸다.

“지쳤어, 박경준. 그 사람 지쳤다고. 씨발, 나도 개 취급 받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정윤 그 새끼 팔자는 진짜 더럽더라. 너 때문에, 씨팔 놈아.”

“정윤 씨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나봐요.”

“눈깔이 달렸으면 좀 보라고, 씨발!”

목이 갈라진다. 피를 토할 것처럼 기침을 뱉다가, 진환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게. 살아 있는 사람 같아 보이냐? 그 사람, 가끔은 눈에 초점이 없어. 죽은 사람 같아. 나 그 사람, 안쓰러워서 사랑했어. 씨발… 그 사람 그러는 거 안타까워서, 누구라도 안아줘야 할 것 같아서-.”

구둣발이 진환의 배를 내리찍었다.

“더 떠들어봐요.”

“이, 씹-.”

진환이 입을 열자, 주먹이 다시 날아들었다.

“더 떠들어 보라니까?”

주먹이 명치를 강타했다. 거세게. 그리고 또 한 번. 기침과 함께 역한 욕지기가 올라왔다. 콜록거리기를 반복하던 진환이 지쳐 대답하지 못하게 되자, 경준이 고개를 들었다.

“진환 씨 지루할 것 같아서, 재밌는 걸 데려왔어요.”

아까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경준이 말한다. 무슨 헛짓거리를 하려고.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을 때, 문가에 서성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한 걸음도 딛지 못해 머뭇거리는 그를, 경준이 목덜미를 붙잡아 끌어당긴다. 불그죽죽한 조명 아래에 드디어 그림자가 벗겨진다.

“오는 길에 약을 좀 했는데. 상관없죠? 정윤이 버릇 어떤지, 진환 씨도 잘 알잖아요.”

“정윤 형님….”

“말을 잘 들어요. 볼래요?”

정윤은 한눈에 보기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혼자서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색색거린다. 휘청거리며 넘어지려고 할 때, 경준의 팔이 그를 붙들었다. 움찔, 눈을 감으며 그가 입술을 물었다. 인형처럼 정윤을 안아 든 채, 경준은 그를 진환의 앞으로 안내했다. 얌전하게 경준의 손에 이끌린 정윤이 이윽고 다리를 벌려 진환의 허벅지에 앉는다.

정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진환의 심장에 서리 같은 냉기가 끼쳤다. 새까만 눈에 아무것도 비치질 않았다. 구리 동전 표면 같다. 정윤은,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뒤로 묶인 손이 분노로 떨려온다. 정수리까지 열이 치고 올라왔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새로 나온 약을 스무 알 정도인가, 넣었어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 미친 새끼….”

“풀어요. 정윤 씨.”

“형님. 하지 마세요. 저 새끼 말 들을 필요 없습니다, 형님…!”

경준이 허리를 기울여, 정윤의 드러난 덜미를 만지작거린다. 귓바퀴에 입술을 대어 나직하게 속삭인다.

“풀어.”

다리에 얹힌 무게가 사라진다. 정윤은 바들거리는 허벅지로 제 몸을 지탱해, 둔부를 뒤로 빼 들썩인다. 하의가 떨어진다. 멍한 눈으로, 정윤이 제 손가락을 핥는다. 두 손가락이 허리 뒤로 향해, 골을 타고 미끄러진다.

찔꺽. 손가락이 입구를 벌리며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은밀하게 들려온다. 제 행동에 젖어, 정윤의 눈이 몽롱하게 다른 열을 띤다. 느끼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처럼.

“변태 새끼가… 무슨 수작이야!”

“정윤 씨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안다면서요.”

정윤의 뒤에 들러붙어, 경준의 손이 그의 셔츠 단추를 지분거렸다. 손놀림 몇 번에 단추가 풀어지고, 셔츠로도 가려지지 않았던 상스럽게 큰 가슴이 드러난다. 널찍한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어 올리며, 경준이 그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가?”

***

손이 멀쩡했다면 귀를 막았을 것이다. 진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몸통 위, 억지로 엎드려 올라탄 정윤이 계속해서 교성을 질렀다.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 덜렁거리는 성기가 진환의 아랫배 바로 위에서 껄떡거렸다. 아무리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외설적으로 아랫배 위를 문지르는 성기가, 힘을 거의 주지 못해 제 위로 속절없이 흔들리는 몸뚱어리가 상황을 생생하게 말해왔다.

“죽은 사람처럼 보여요?”

박경준의 좆대가 벌어진 밀부를 뚫고 들어간다. 단번에 뿌리까지 처박히는 순간, 정윤의 목이 젖혀졌다.

“힉…!”

“잘만 소리 지르는데.”

“씹새끼.”

“보세요. 건강하네.”

“씹새끼. 씹새끼…!”

“눈 떠요. 이렇게 재밌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떨리는 정윤의 배 아래에 팔을 두르고, 경준이 속삭였다.

“정윤 씨. 저한테 박히는 거. 좋아요?”

“조아. 너무우, 조아아….”

“정윤 씨는 뭐죠?”

“개, 나는, 개, 히… 으흣…!”

둔부가 벌겋게 올라올 때까지 쑤셔 박힌다. 자지가 흉물스럽게 흔들거리고 프리컴이 바닥에 튀면서. 수치를 모르고 봉긋하게 세운 둔부 사이로 꿰뚫듯이 새까만 성기가 처박혔다. 목 아래까지 눌리는 듯, 박혀 올릴 때마다 컥 소리가 난다. 배 위가 미세하게 튀어나오고, 상스럽게 눈알이 위로 올라온다.

“헤… 으히… 히익…!”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해 혓바닥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팔로 몸을 지탱하지도 못해 쓰러진다. 스폿이 눌릴 때마다 정윤의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박아달라는 듯이 허리를 흔들며 탐욕스럽게 들썩거린다. 좆대가 박힐 때마다 달콤한 소리로 울어댔다. 황홀하게 돌아간 눈이 훌륭하게 조련된 변기를 연상시킨다.

“가…! 흐, 흐히…! 가. 가고… 싶어. 가, 하흐, 으아…!”

“안 돼요.”

“시러…! 가… 가읏…!”

진환의 바지 위에 정액이 쏟아졌다. 뜨겁게 축축해지는 감각에, 애써 감고 있던 눈이 반사적으로 떠졌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진환은 묶인 채 제 위에서 들썩거리는 그를 응시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천박하다. 박히고 싶어 하는 짐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가, 손님 먼저 가랬어요?”

경준의 손이 유두에 박힌 피어싱 위를 문질렀다. 옅은 통증과 함께 전해지는 날카로운 쾌감에 정윤의 몸통이 비틀렸다. 턱을 젖히며 외설적으로 울다가, 정윤은 가슴을 문지르는 손바닥에 제 몸통을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더 만져달라는 듯이.

“벌 줘. 더… 더 벌… 줘.”

“질질 싸기나 하는 변태한테?”

“미안. 미아, 히익…!”

경준이 골반을 붙잡아, 회음부를 들어 억지로 벌렸다. 지금껏 다 들어가지 않았던 뿌리가 장 안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갔다. 박아넣은 채로 허리를 돌린다. 결장이 뭉개지며 머릿속을 휘젓는 것 같은 감각에 뇌리까지 붕 떠올랐다.

“깊, 어…! 너무, 깊….”

“쌀 기운이 있으면, 진환 씨나 도와주지 그래요?”

“지, 진환, 진환이…?”

“손님이요.”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려 아랫입술을 물고 있던 진환이 움찔, 고개를 들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는 진환과 다르게, 정윤의 표정에서는 어떤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진환은 진심으로 기도했다. 정윤이 당장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 뺨을 내려치길 바랐다. 경준을 밀치고 이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나가길 바랐다. 그러나 진환의 기대는 이번에도 산산조각이 난다.

정윤의 얇은 입술이 사타구니 위를 문지른다. 손을 버둥버둥 움직이면서 지퍼를 풀어 내린다. 혐오스럽게도 벌써 반 정도 발기해버린 성기가 끌어낸 속옷 위로 튀어 올라, 정윤의 콧등과 뺨 위를 뭉갰다.

“…하지 마세요.”

정윤이 입을 벌린다.

“하지 마세요, 형님….!”

그리고 귀두 끝을 문다.

부드러운 입술이 귀두를 감싸면서, 말랑하고 뜨거운 혀가 요도구 주변을 깔짝이고 부드럽게 애무한다. 고문과 구타에 시달리던 진환의 몸은 기꺼운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했다. 금세 좆대가 단단해지고, 정윤의 얼굴을 완전히 더럽히도록 꼿꼿하게 선다.

거기에 역겨움을 보이기는커녕, 정윤은 황홀한 표정으로 뿌리에 코를 문지르며 냄새를 맡았다. 혀를 내밀고 음탕하게 좆대를 핥아 올리다가, 이윽고 탐닉하는 것처럼 아래위로 좆대를 빨아댄다. 허리가 치켜 올라가 박히면서 눈알이 위로 올라가도록 넋을 잃고 목구멍에 좆기둥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

“형님. 멈추세요. 정신 차리시란 말입니다. 형님, 제발!”

느껴선 안 돼. 이런 더러운 짓거리에 넘어가선 안 돼. 자신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고, 김종식이 걷어찬 부분에 체중을 실었지만, 발기가 풀리는 일은 없었다. 정윤의 혀가 귀두를 감쌀 때마다, 한계까지 좆대를 삼킨 목구멍이 아랫입처럼 조여올 때마다 펄떡이며 사정감이 몰려왔다. 눈을 뜰 때마다 보이는 망가진 정윤의 모습에 뇌리 어딘가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기어이, 진환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 그만, 형님. 형님…!”

쌀 것 같아. 눈가에 열기가 모인다. 기어이 아랫입술이 뭉개져 멍이 든다.

“씨발, 씹…!”

허리가 떨린다. 정윤이 입을 떼어내자, 비참함에 가슴이 짓눌렸다. 개처럼 내민 혓바닥 위에 자신이 더럽힌 흰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흘러내렸다.

“어때요? 진환 씨 자지는 맛있어요?”

“으, 흐응. 응….”

“그럴 땐 뭐라고 하랬죠?”

할짝거리며 사정액이 묻은 귀두를 훑다가, 정윤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뿌연 눈빛의 그가 웃음을 머금었다.

“고, 으흐… 고맙… 습니다하….”

뭉개진 발음. 열에 취해서 초점이 사라져버린 눈에 침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다르다.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려울 만큼.

“죽여버릴 거야. 박경준, 이 씨발 새끼…. 죽여버릴 거야. 넌, 내가. 반드시….”

“정윤이가 안쓰럽댔죠?”

박경준이 다시 그의 허리를 붙들어 좆대를 쑤셔 넣는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지 정윤의 허벅지가 허물어진다. 그 바람에 박경준의 팔이 이끄는 대로 내벽이 들쑤셔지는 꼴이 되었다. 정윤은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결장을 비벼대는 좆대가리에 흔들리는 처지였다.

그 꼴을 지켜보며, 경준이 정윤의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전 진환 씨가 더 안됐어요. 이런 놈 박자고 죽을 신세가 됐으니까.”

“씹새끼…. 씹창 낼 새끼….”

“정윤 씨. 좆 좋아하죠?”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정윤의 입꼬리가 달게 올라갔다. 그가 개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조, 조아. 좆, 조아해….”

“그럼 좋아하는 만큼 넣어볼래요?”

“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정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응시한다. 경준이 그의 턱을 쓰다듬었다.

“저하고. 진환 씨 좆. 동시에 넣어보겠냐고요.”

박경준의 말을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진환은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

“특별히 빌려주는 거예요. 고맙죠?”

“그만…둬. 그만둬, 이 씹새끼야!”

“왜요? 진환 씨. 정윤이 박고 싶어 했잖아요.”

“닥쳐!”

“끝까지 성가시네요. 진환 씨는.”

경준이 말고삐를 당기는 것처럼 정윤의 양팔을 잡아당겼다. 억지로 허리가 젖혀지며, 지금껏 출렁거리는 가슴만 보이던 상체가 드러났다. 주물러지고 꼬집어져 붉은 손자국이 난 가슴팍과 두 번이나 가고 나서도 음란하게 펄떡거리는 자지가, 그 아래로 좆을 집어삼킨 음부가 고스란히 보인다. 두꺼운 박경준의 자지 탓에 다리를 오므리지 못할 만큼, 벌어질 만큼 벌어진 상태였다.

“봐요. 이렇게 좋아하잖아요.”

경준의 눈매가 휘어졌다.

“정윤이가 좋아하는 일도 못 해줘요? 사랑했다면서.”

진환은 직감했다. 저놈은 부수고 싶을 뿐이다. 흔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정윤을 망가뜨리고 싶을 뿐이다. 그러자 분노보다도 공포가 밀려왔다. 박경준이 이겼을 때에 대한 공포가.

“…정신 차리세요.”

진환은 다시, 정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형님. 제발! 저 새끼 말 들을 필요 없습니다.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진환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정윤이 망가질 것이 두려웠다. 그를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윤에게 그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팔뚝을 뒤로 젖혀 억지로 정윤의 상체를 세운 채, 경준이 서서히 정윤의 둔부를 아래로 안내했다.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진 밀부가 아직도 꼿꼿하게 선 진환의 귀두에 닿았다. 진환은 눈을 감으려고 했지만, 좆같게도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정윤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이미 배가 불룩하도록 좆이 박힌 정윤은 녹아내릴 것처럼 열에 취한 얼굴로 웃음 짓고 있었다.

“자. 넣어봐요. 혼자서.”

경준이 속삭인다. 멍한 눈을 하고, 정윤이 서서히 허벅지를 아래로 내렸다. 빡빡한 입구가, 억지로 벌어지며 귀두를 집어삼킨다.

“……!!”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정윤이 턱을 들어 올렸다. 흰자위가 드러나며 눈알이 위로 올라갔다. 상스럽게 혀를 내밀며 침을 흘려댄다.

끄트머리만 삼켰을 뿐인데, 벌써부터 정윤은 좆물을 뿜기 시작했다. 파르르 허리를 떨면서, 좆대 두 개가 밀려 들어오는 대로 가고 있다.

이게, 뭐야.

진환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존나게, 좋았다. 존나게. 입으로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조여든다. 압박감에 내벽에 제 좆이 짓눌러져, 내장을 좆 모양이 되도록 눌러버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윤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다는 죄책감 역시 은근한 흥분을 부추겼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렸다면 이성을 잃고 박아댔을 것이다. 내벽이 엉망으로 들쑤시고, 좆대 모양으로 배가 불룩불룩 나오도록.

“어때요? 좋아요?”

“……! ……!!”

“안에서 조이는 것 좀 봐. 이러다가 중독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약 중독에 좆 중독까지. 엉망이잖아.”

“힉… 으응…. 흐….”

말과는 다르게, 경준은 착실하게 정윤의 몸뚱이를 짓눌렀다. 더는 벌어질 수 없을 만큼 팽팽해진 정윤의 구멍이, 버겁게 진환의 좆 끝을 받아들였다. 압박감에 스폿이 눌리다 못해 뭉개어지고, 이미 결장까지 닿도록 박아 올린 좆대 탓에 가만히만 있어도 가슴까지 꿰뚫린 듯 머리가 어질거렸다. 팽팽한 통증과 그보다 더 숨 막히는 쾌감에 깨어 있는 것도 버거웠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열에 젖은 비음이 섞여들었다. 탐욕스럽게 쾌감을 갈구하는 몸이 제 의지와는 다르게 벌름거리고 들썩이며 좆대를 내벽에 비빈다. 열이 뇌에 가득 차, 무엇 하나 제대로 들리거나 보이질 않았다.

“정윤 씨? 제 말 들려요?”

“조아… 흐, 좆이, 잔뜨윽…. 조아아….”

“정윤 씨. 정윤 씨?”

“조, 흐….”

허리를 꿈틀거리다가, 결장 입구에 좆대가 기어이 파고든다. 이제는 제대로 갈 기운도 없어, 정윤은 팔다리를 늘어뜨리며 생리적인 눈물을 흘렸다. 성기 끝에서 정액이 아닌 투명한 액체가 꿀렁꿀렁 뿜어져 나온다. 이미 사정액으로 지저분해진 제 배 위가 음란한 액체에 젖어 끈적해진다.

정윤의 눈동자가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열락과 통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눈동자가 서서히 제 빛을 되찾는 것이 진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약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늦게. 진환의 얼굴을, 그리고 제 상태를 알아차리고, 정윤의 얼굴에 옅은 경악이 어렸다. 벗어나고자 허리를 비틀지만 단단하게 조여 문 애널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진환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달래주는 말이든. 괜찮다는 말이든. 해야만 했다. 정윤이 정말로 부서져버리기 전에. 해야만 했는데.

“못 쓰겠네.”

그때, 경준이 몸통에 두른 팔을 놓았다.

경준은 이미 제 몸을 지탱할 힘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던 정윤을 잡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고정할 곳을 잃고, 정윤의 다리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빡빡하게 끄트머리만 삼켰던 진환의 좆대를 절반까지 단번에 넣어버린다. 절반이라지만 여전히 깊었다. 더군다나 좆대 두 개가 겹쳐지며 한계까지 압박되던 전립선이 더는 자극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짓눌렸다. 숨이 틀어막힌다. 폭력적인 쾌감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벌어진 입을 뻐끔거린다.

이윽고, 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진환의 위로 넘어지기 전, 경준의 팔이 그를 낚아챘다.

“기절했네요.”

즐겁다는 듯, 경준이 속삭였다.

정윤의 안에서 서서히 성기를 빼내자, 뒤섞인 정액이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경준은 그대로 정윤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허벅지 사이에 동굴처럼 벌어진 애널이 보인다. 다 삼키지 못한 정액이 흘러넘치는 채로, 다물지를 못하고 벌름거린다.

더러워진 그의 몸을 끌어안고, 경준은 연거푸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카락 위에 입을 맞췄다. 아니, 그러는 것 같다. 눈물 탓에 눈앞이 뿌옇게 되어, 진환은 제대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죽어버려.”

경준은 그저, 따스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바라는 말이라곤 그것 하나였다는 듯이.

***

L사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걸린 천이 재개발 부지 울타리마다 드리워진다. 건물만큼이나 높은 울타리 너머 철로 만든 성당 같은 구조물이 얽히고설켜 부피를 키워간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을 태연하게 제 등 뒤에 대동하고, 경준은 그 성벽을 향해 다가갔다. 울타리에 다가갈 때마다 자연재해를 연상시키는 거중기의 소음이 가까워졌다.

“아이고, 우리 회장님께서 이런 곳까지 다 오시고.”

머리숱이 부숭부숭하고 선글라스를 쓴 정 이사가 손을 비비며 마중을 나왔다.

“당연히 봐야죠. 최 회장님이 그렇게 공을 들인 사업인데.”

“하여간 속이 깊으시다니까, 그래.”

아부를 떠는 건지 빈정거리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말투다. 느긋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 경준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걱정 다 붙들어 매. 공사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 아니 어떻게, 천운이 도우셨는지 공구리 붓는데 비 한 번이 안 왔어. 이 계절에.”

“어려운 점은 없고요.”

“뭐, 그, 거주권 보장이네 철거민 탄압이네 시답잖은 시비가 걸려서 쪼까 시끄러워질 뻔했는데. 내 선에서 잘 처리했지. 이젠 뭐, 깨끗해, 아주.”

“건축 자재 문제는요?”

“그래, 그 얘길 해야지.”

건설부지 옆에 드리운 임시 천막 안으로 정 이사가 향한다. 천막 안은 보기보다 넓었다. 아직 땅이 더워지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선풍기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서류는 간이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인천 쪽 애들하고 얘기가 다 끝났다고. 이제 거추장스럽게 서너 다리 안 건너도 돼. 김 회장님이 맨날 하시던 말씀 있잖아. 그 뭐냐….”

“중간 공정 세 번이면 건물 한 채 올린다.”

“그래. 완전 그 짝이야. 원가가 반으로 줄었어. 수수료는 없다시피 하고.”

가볍게 파일을 넘겨 읽는다. 원하던 그대로의 조건이었다.

“아니, 박 회장. 도대체 어떻게 그 거지 같은 놈들을 구워삶은 거야? 근 반년을 씨름하던 새끼들인데.”

“좋게좋게 부탁했죠. 직접 찾아뵙고. 선물도 보내드리고. 사업 다 그렇게 하잖아요.”

강 이사가 껄껄 웃어댄다. 평소처럼 웃음을 띤 채, 경준은 반 정도 훑은 서류를 뒤의 떡대에게 넘겼다.

건설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재개발 부지, 다 낡은 건물 지하실에 들어선 경준은 붉은 조명이 켜진 방을 지나쳤다. 거기엔 귀 한쪽이 없는 사내가 매달려 있었다.

인천지부 수뇌부인 용두파 고급 간부다. 온몸에서 선물을 마련해 인천에 자리 잡은 자잘한 수족들에게 보냈다. 그 후로는 얘기가 빠르게 진전됐다.

사업은 사업이니까.

***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다. 두통 탓에 눈을 뜬 정윤은, 이윽고 욱신거리는 근육통과 싸워야 했다. 항문이 쉽게 오므라들지 않고, 찢어질 만큼 벌어졌던 입구가 아직도 데인 것처럼 욱신거렸다. 똑바로 앉기도 힘들 만큼.

“정신 들어요?”

문이 열리고, 쟁반을 든 경준이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두통약과 흰 쌀죽이 보인다. 침대 위에 쟁반을 내려두고, 경준의 손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열이 조금 났었는데. 다 내렸나봐요. 다행이다.”

“…….”

“죽 끓여왔어요. 먹어요.”

경준이 이불을 들치자, 시트가 스치는 감각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약 기운이 남아 피부가 민감해진 모양이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정윤을 앞에 두고, 경준은 태연하게 수저에 뜬 쌀죽을 후우, 입으로 불었다. 수증기가 가시고, 윤기 도는 쌀 알갱이가 뭉친다.

“꼭꼭 씹어서.”

정윤의 입이 벌어진다. 느릿하게,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쟁반이 뒤집어지고 도자기 그릇이 엎어져 이불이 어질러졌다. 경준의 손에 들린 숟가락이 벽에 튕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경준은 놀랍도록 침착하게, 정윤을 마주 보았다.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날 보내줘.”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진환에게 약에 취한 모습뿐만 아니라, 개처럼 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작은 부분까지 부서져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을 떠올리고, 무엇을 느끼며 살아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돈. 나 산 돈. 그거 갚을게. 그러니까 보내줘.”

“재미없어요.”

“이젠 싫어.”

정윤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싫어. 더는 이러는 거, 싫어. 제발….”

“정윤 씨.”

“만지지 마!”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정윤이 그의 손바닥을 내리쳤다.

“…돈을 갚겠다고요.”

“…….”

“좋아요. 갚아봐요. 그 배, 한 달에 육천만 원씩 가져다줬어요. 삼 년 동안이니까 이십 억 정도 되겠네요. 돈 있어요?”

“버, 벌 수 있어.”

“뒷구멍으로? 일자리 찾아줄까요?”

아랫입술을 물며, 정윤이 팔뚝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경준아.”

그가 속삭였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따귀가 뺨을 내리친다.

경준의 손에 가죽 벨트가 들렸다. 벨트가 목을 감는다.

“무서워?”

목소리에 미묘한 흥분이 일었다.

“전 무서운 게 아니에요. 불쾌한 거지.”

가죽이 목을 파고들어 간다. 쓰라린 통증이 일어, 정윤은 꾹 눈을 감았다.

“요코하마까지 가는 상권을 중국 놈들한테 통째로 넘겨줬어요. 지저분한 남창 하나 사겠다고 지불한 거예요. 모르겠어요? 제 거예요. 정윤 씨, 제 거라고. 제 거 하나 마음대로 못 해요? 그거야말로 너무하지 않아요?”

벨트가 풀어진다.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경준이 그의 머리를 매트리스 위에 짓눌렀다. 하의가 힘없이 벗겨져 내리고 무방비한 맨살이 공기 중에 드러났다.

그대로, 좆대가 살점을 가르고 들어간다. 풀어지지 않아 생생히 찢어지는 통증이 일었다.

“아파. 아파…!”

“그럼 왜 섰어요?”

얼얼한데도, 안에서 들쑤시며 찔러대는 것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헐떡거리며 콧물이 흘렀다. 턱 아래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 같다. 억지로 둔부를 세워, 경준은 수치심을 되새겨주듯 반쯤 부풀어버린 성기를 움켜잡았다.

“변태 새끼 주제에.”

“흐, 힉…!”

“좋아요. 보내줄게요. 정윤 씨가 원하는 대로.”

경준이 들려진 턱 아래를, 목덜미를 죄며 그를 자리에 짓눌렀다. 무릎이 정윤의 음부를 지긋하게 누른다.

“안 가면.”

“시러…. 흐, 읏….”

“창놈처럼 굴지만 않으면 돼요. 참아봐요.”

참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정윤은 느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가능할 리가 없었다. 평소에도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몸이었다. 더욱이 약 기운이 남아 조그마한 자극에도 전율이 일 정도로 몸이 떨린다. 무릎이 문질러질 때마다 그곳이 무방비하게 부푼다. 음낭을 누를 때에는 미칠 것처럼 허리가 뒤틀렸다.

무릎이 떨어진다. 경준의 차가운 시선이 그에게로 내리깔렸다.

“모르겠어요? 정윤 씨, 정상 아니에요. 정윤 씨도 미쳤어요. 저랑 똑같이.”

부드러운 손길이 뺨을 감싼다. 입술이 눈꺼풀 위에서 조곤조곤 움직이고, 가슴팍이 맞닿는다.

“…그러니까 저랑 같이 있어요.”

다정하기 짝이 없는 속삭임이 귓가에 일었다.

“고장 난 사람끼리.”

정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준은 얼핏 웃음을 띤 채로 정윤에게 입을 맞췄다.

체온이 낮은 편인 경준이었기 때문에, 살갗이 닿아도 잠시간은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이상하게 달가워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까맣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시선에 들어왔다. 나신의 누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달싹인다.

―방법이 있어. 도망칠 방법.

정말이야?

―듣고 싶어?

이윽고, 정윤은 넋을 놓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나가 속삭여주는 계획에 마음을 온통 빼앗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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