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놈들
3권
#18
천천히, 진환은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을 검은 장막이 가리고 있는 것처럼 캄캄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좁은 공간인지 머리 위로 압박감이 들고 제 숨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머리를 짓누르는 천장을 정수리로 들쳐 올리려 했지만 곧 손이 뒤로 묶여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 서늘한 바람이 갑자기 얼굴에 불어닥쳤다. 눈꺼풀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이 찡그려진다. 그 빛을 등지고 그림자의 윤곽이 보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씹새끼.”
낄낄거리고 웃는 목소리는 분명 김종식이다.
“넌 이제 뒈졌어, 씨발 놈아. 뒈졌다고.”
머리가 깨질 듯하게 아프지만 않았어도 침이라도 뱉어줬을 텐데. 김종식이 손짓하는지 그림자가 까딱거리고, 촉수처럼 검은 팔들이 뻗어오며 단숨에 그의 어깨를 잡아 올렸다.
갇혀 있던 곳은 트렁크였나보다. 얼굴이 시멘트 바닥에 추락하자마자 시야가 빛에 적응하며 시커먼 타이어가 보였다. 차는 아직 시동이 걸려 있었다. 만약 이대로 후진해서 얼굴을 깔아뭉개고 지나간다고 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공기에서 녹슨 금속 냄새와 매캐한 악취가 풍겨온다. 악몽 속에 그대로 남은 악취다. 기억을 담은 뇌세포들에 불이 켜지며, 진환은 단번에 그가 어디로 왔는지 알아차렸다.
폐차장이다.
본능적인 공포로 이성이 마비됐다. 벗어나야 한다는, 그저 여기에서 당장 빠져나가야 한다는 충동만이 진환을 덮쳤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몸통을 들썩인다. 벌레처럼 질질 몸뚱어리를 끌며 앞으로 기어가려 애썼다. 머리 위에서 김종식 일당이 폭소를 터뜨렸지만 진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야, 어디 가냐?”
김종식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몸을 틀어 피하려 들었지만, 얼굴로 구둣발이 날아들자 그럴 수가 없었다. 등짝에 묵직한 충격이 폭격처럼 날아들었다.
“가봐. 꼴에 살겠다고, 씨발. 걸어봐, 씹새끼야. 걸어. 걸, 어, 씨발 놈아. 어?”
발길질이 처박힐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애써 앞으로 기어가려 하지만 결국은 속이 메스꺼워졌다. 몸을 둥글게 말고, 진환은 다시 주저앉았다. 카악, 퉤. 김종식이 머리 위로 침을 뱉는다.
“이진환이, 너 같은 놈한텐 포클레인도 과분해. 저민 고기 신세 되기 전에 내가, 지옥이 뭔지 보여준다. 기대 안 되냐, 씨발 놈.”
“종식 씨.”
금방이라도 눈알을 찌를 것 같던 칼날이 뒤로 물러난다. 김종식이 뒤를 돌아보았다. 경준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다. 경준을 비춘 밤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촉촉한 것도 그렇다. 곧 비가 온다.
땅바닥에 기어서 바라보는 경준은 닿을 수가 없이 높았다.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경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미 새끼를 경멸하는 인간은 없으니까.
“기계가 고장 났대요.”
들러붙었던 시선을 종잇장처럼 가볍게 떼어내고, 경준이 김종식을 돌아보았다.
얼어붙어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돌아갔다. 기계. 그 끔찍한 소리를 내던 집게발 얘기인가?
“부품이 삭아서 끊어졌나 봐요. 좀 기다려야 할 거예요.”
“그럼….”
“차 시동 걸어놓을래요? 잠깐 얘기 좀 하게.”
김종식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았지만 순순히 보스의 말에 따랐다.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사라진 탓인지, 큼지막한 가시가 뽑혔을 때처럼 온몸에 통증이 욱신욱신 올라왔다. 경준의 구두 끝이 턱 아래로 들어가, 지긋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여느 때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운이 안 좋네요. 편하게 금방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정윤 형님은.”
진환이 우물거렸다.
“정윤 형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경준의 얼굴에 웃음기가 파리하게 가셨다. 이윽고, 입꼬리가 씰룩이며 위로 들린다. 누군가 실을 잡아당긴 것처럼. 발끝이 목을 걷어차고, 이내는 머리를 짓밟는다. 턱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짓누르는 발에서 벗어나려 몸을 들썩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여유롭게 허리를 숙이고, 경준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 미친 새끼가, 씨발!”
“진환 씨. 재밌는 얘기 하나 들을래요?”
“뭐?”
그때, 박경준이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진환의 두 눈이 벌어진다. 호흡이 가빠왔다. 낯빛이 질리고 표정이 뻣뻣하게 일그러졌다. 경준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진환의 몸통은 다른 이유에서 떨리고 있었다.
“재밌죠?”
“개새끼….”
“마음대로 떠들어요.”
“닥쳐, 이 개새끼야!”
“제가 왜, 진환 씨 지금까지 살려놨는지 알아요?”
머리를 짓밟던 구둣발이 살그머니 들춰진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발이 배를 걷어차 몸통을 기울이고, 복부 한가운데를 짓눌렀다. 내장이 짓이겨지는 통증이 일었다.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정윤이한테.”
숨을, 못 쉬겠어.
“‘다른 길이 없어요. 정윤 씨한텐 이것밖에 없고, 이게 제일 잘 어울려요. 인간답게 살 생각도, 기대도 하지 말아요.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어요’.”
위장이 뒤틀린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
개같은 박경준이 웃음 짓는다. 악몽 같은 구둣발이 그제야 들렸다. 김종식이 차를 몰고 돌아왔다. 경준이 허리를 세웠다.
“데려가요. 죽이진 말고, 나머진 마음대로 해요.”
***
책상 위가 말끔하다. 파일이며 오래된 커피 얼룩이 들러붙은 머그잔까지 모두 깨끗하게 사라졌다. 유일하게 보이는 거라고는 반듯한 갈색 골판지 상자 하나뿐이다. 상자 위로는 제 이름이 붙은 명판이 비죽이 빠져나와 있었다.
“그렇게 됐다.”
강 반장 옆으로 최 서장이 다가왔다. 딱히 미안해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 보이려고 노력이나마 하는 게 어디인지.
“치졸한 새끼들. 오 년 전 일을 캐다가 사람을 내쫓아? 그것도 지들이 알면서도 다, 허락해준 걸 가져다가. 내가 막아주려고 했는데, 알잖냐. 나한테 무슨 힘이 있어.”
최 서장의 손을 뿌리친다. 더 듣고 있다간 주먹이 먼저 반응할 것 같았으니. 묵묵하게 상자를 집어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나름대로 한솥밥 먹으면서 지지고 볶은 사이인데, 측은한 눈빛 하나 주려는 사람이 없다.
이제 밉보인 인간이다, 이거지. 잡고 잡은 맨 윗줄이 하루아침에 썩은 동아줄 되어서 떨어져버린.
쓰레기통을 걷어찬다. 쓰레기통이 넘어지며 우르르 오물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그에게 눈길을 주는 동료는 없었다. 아니, 그걸 왜 차. 아이고…. 절절매는 최 서장의 말소리만 들릴 뿐이다.
김 검사 비리 의혹이 주요 언론을 타고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내리며 전 국민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시점부터 각오하던 일이었다. 다만 이렇게 금방일 줄 몰랐을 뿐이다. 처음에는 뒷조사를 시작하더니, 실패한 잠입 조사 건까지 들고 와 면담에 인사고과까지 단번에 이어졌다. 결국, 바로 어제 처분이 났다. 강북구 촌구석의 파출소나 다름없는 서로 가게 된 것이다.
뒷좌석에 상자를 싣는다. 아무리 그래도 짐은 제 손으로 싸게 해 줄 것이지. 조직이라는 곳이 인정머리가 없다.
***
통통통, 도마 위로 양파 다지는 소리가 가지런히 들려온다. 넓적하고 둥그런 냄비에 담겨 달달 볶인 양파는 누르스름한 볶음밥이 되기도 하고 춘장과 돼지고기를 더해 윤기가 잘잘 흐르는 자장소스가 되어 통통한 면 위에 얹히기도 한다. 부글거리는 기름 속에서 갓 튀겨낸 탕수육이 건져져, 접시 위에 담긴다. 배달용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은색 카트 위에 실린다.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대신 주방을 타고 미끄러지며, 안쪽의 샛길로 들어간다.
그 끝에는 길게 오린 천으로 칸막이가 쳐진 단칸방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둥그렇고 인상 좋은 주방장이 천을 들추고 고개를 내밀었다.
“먹으면서들 좀 하세요.”
방 절반 이상을 차지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형사 셋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별로 쾌적하다고 볼 수는 없는 공간이었다. 원래는 창고로 쓰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듯 벽면 전체에 밀가루 상표 붙은 상자가 어수선하게 쌓였고, 그나마 남은 공간도 보도 자료며 사진이 덕지덕지 붙은 화이트보드가 침투했다. 구석에 앉은 젊은 편인 경관 하나가 얼굴을 붉혔다.
“아니, 아버지. 필요 없다니까….”
“됐다. 배고픈데 딱 좋네.”
강 반장이 말을 낚아챘다. 이 경관의 의붓아버지라는 사람이 간이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줄줄이 음식을 꺼낸다. 막 만들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중국 음식이 굉장히 먹음직스러웠다. 단무지도 넉넉했다.
“그럼. 고생들 하세요잉?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하시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얼굴이 둥그런 남자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카트를 끌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강 반장은 얼떨떨해 보이는 동료 형사들을 앞에 두고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뜯었다.
“반장님, 전에 말씀하신 건 자세히 찾아봤는데요.”
이 경관이 프린트된 종이 다발을 돌렸다. 청명파 관리 아래에 있는 대형 클럽에서 발생한 특수 폭행 사건과 관련된 정보다.
“이걸 아직도 붙잡고 있었냐.”
“압니다. 범인도 잡혔고, 수사 종결된 분위기인 사건이라 자료 빼는 것도 얼마나 힘들던지.”
“여의도에서 찾았지. 뽕하다 죽은 새끼.”
“그런데 이게, 반장님 말씀대로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경관이 툭툭, 손등으로 종이를 두드렸다.
“사건 현장인 클럽 말입니다. 한 달도 안 되어서 소유주가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김부광, 이름 좀 날린 간부니까 잘 아실 거고. 그다음이 박성수.”
“줄 좀 탄다더니 그 새끼, 횡재했네. 그다음은.”
“이진환입니다.”
“이진환?”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우리 이진환이? 따까리 이진환?”
“예…. 맞습니다.”
“그 새끼가 어떻게 웃대가리를 제치고 클럽을 받아? 그럴 짬밥이 아닌데!”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김 형사가 머리를 헝클여 넘긴다. 강 반장 역시 생각에 잠겨 등을 젖히고 천장을 응시했다.
처음부터 이진환을 영입한 건 간부급으로 넘어가기엔 턱도 없는 시퍼런 애송이였기 때문이다.
가져오는 정보의 질은 심각하게 유감스러웠지만, 상황이 삐딱해졌을 때 발 빼려면 언제든지 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수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점이었다.
그런데 클럽을 받아?
다른 것도 아니고, 강남 노른자위 땅에 떡하니 있어 귀한 집 자제들 줄줄이 받는 금쪽같은 가게를.
박경준이가 경우 없는 새끼기는 해도 사업은 칼같이 한다. 기분 전환 삼아서 이런 대형 사업체를 떡하니 던져줄 놈은 아니었다.
“원래 주인은.”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며 강 반장이 고개를 들었다.
“박성수. 그 새끼는 어떻게 됐고.”
“따로 잡혀간 건 아닌 것 같고, 기록 자체가 남아 있질 않던데요.”
“신원 조회 다시 해봐. 나도 구역 한번 돌아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슬슬 면이 불기 직전이다. 자장면을 끌어 거무스름하니 윤기 나는 면발을 후루룩 먹는다. 김 형사의 시선이 빤하니 이쪽을 향했다.
“그만 봐. 밥 안 넘어간다.”
“반장님. 이거, 이진환이 그 새끼가….”
“그 새끼가 뭐.”
대답을 않고 어물쩍거리던 끝에, 김 형사가 말을 이었다.
“그 새끼, 건물 받아먹고 입 씻은 거 아닙니까?”
젓가락질이 멈춘다. 탁자에 모여 앉은 경찰 공무원 네 명이 한순간에 목석처럼 조용해졌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불기 전에 먹어라.”
“아니,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김 형사는 끈질겼다.
“걔 연락 안 된 지 얼마나 됐습니까. 한 달은 됐습니다. 이젠 뭐 형 면회하러 오지도 않는다던데.”
“조용히 먹으라고.”
“그럼 우리, 완전 좆된 거 아닙니까? 화진이고 뭐고-.”
“씨발, 그냥 처먹으라니까!”
자장소스가 묻은 젓가락이 김 형사를 향해 날아갔다.
“그깟 프락치 하나 없이 수사 못 해?! 이진환이 안 한다고 하면 관둘 생각이었어?! 말해봐, 인마. 너 우는소리 하려고 형사 됐어?”
“저, 반장님. 김 형사님 말뜻은….”
“넌 끼어들지 마!”
윽박지르자 이 경관이 입을 다물고 군만두를 집어 먹는다. 옷에 묻은 소스를 털어내고, 김 형사가 벌컥 자리에서 일어섰다.
“씨발, 형! 그럼 어쩔 건데? 이제 영장도 못 받게 생겼지. 허가 안 내주는 수사를 바득바득하겠다고 여기 쥐 떼처럼 숨어서 일하고 있잖아!”
“싫으면 나가, 새꺄!”
“소리만 지르지 말고!”
김 형사가 의자를 걷어찼다. 그릇이 들썩이면서 탁자 위로 자장소스가 튄다.
“현실적으로 보자는 거야, 형. 현실적으로! 내가 그 양아치 새끼는 안 된댔잖아! 이게 뭐야. 우리만 존나 물 먹고! 이럴 거면 ○○구 그 사건은 왜 묻었-.”
칸막이가 펄럭인다. 이 경관의 아버지가 어설프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 자장면만 드시면 퍽퍽할 것 같아서….”
양손에 짬뽕 국물이 들려왔다. 얼큰한 냄새가 시원하게 풍겨온다. 그릇을 탁자 위에 두고, 그는 고개를 까딱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편하게들 식사하세요.”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강 반장이 의자를 끌고 앉았다.
“불겠다. 먹자.”
젓가락은 괜히 던져가지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새 나무젓가락을 찾아 손을 뻗는다.
“박성수 먼저 찾아.”
게걸스럽게 면발을 씹으며 강 반장이 말했다.
“이진환은 그다음이고.”
침묵이 일었다. 강 반장은 아무렇지 않게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입가를 닦았지만, 배 속에 구렁이가 앉는 것처럼 불편했다. 상부에서 폐기를 명령한 작전이니, 이렇게 모여 있는 것 자체가 반란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이 미친 짓에 동료가 동조해줬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고맙다고 해줘야 하나.
젓가락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리며 김 형사와 그 건너의 이 경관을 바라본다. 두 사람 모두 군만두를 씹느라 여념이 없었다.
***
운이 나빴다고 박경준이 그랬다. 죽지 않아서 운이 나빴다고.
그 말이 얼마나, 지랄 맞게 사실인지.
재개발 지대 어딘가에 위치한 콘크리트 밀실. 마감이 덜 된 천장에서 비닐이 내려와 있고, 그 사이로는 내걸린 쇠고리가 덜렁거린다. 유일하게 빛을 내는 곳은 천장의 백열전구뿐인데,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내내 한 번도 꺼지질 않아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시야는 반절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서도.
두 무릎과 손목을 압박하는 노끈이 살가죽 사이로 파고들면서 피부뿐만 아니라 관절 마디까지 시큰거린다. 금이 간 게 분명한 갈비뼈는 숨을 쉴 때마다 미치도록 아프고, 손가락은 움직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볼에 닿은 콘크리트 바닥은 차갑고 거칠다. 뻗은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까진 상처가 표면이 문질러져 쓰라렸다.
정말 지독하게도, 온몸이 이렇게 아픈 와중에 갈증은 사그라지지 않고 생생했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도 물이라고는 기절하기 직전 끼얹는 걸레 빤 물밖에 입에 대질 못했다.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목구멍이 타올랐다. 이대로 죽는다면 맞아 죽는 건지, 목이 말라 죽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이마가 찢어진 곳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땀이며 찰과상에서 흐른 피로 끈적하게 뒤덮인 몸에서 악취가 났다. 특히 어제인가 오늘인가, 김종식 그 개자식이 걷어찬 곳이 피멍이 들었는지 곪았는지 부어서 계속 욱신거리는 게, 몸을 어떻게 뒤틀어도 쥐어짜는 것처럼 아프기만 하고 편해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다구리로 끝나나 했더니, 이제는 골프채며 야구 방망이 같은 걸 들고 와 후려친다. 이날까지 어깻죽지를 맞을 때와 허벅지를 맞을 때 중 어느 게 더 아픈지 구별해야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허벅지가 더 아프다.
눈부셔. 고개를 튼다. 차라리 정신이라도 잃어버리면 좋을 텐데. 체력이 다해 잠이 들라치면 여지없이 통증이 찌르고 들어와 깨게 되는 통에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아마 다음으로 의식이 끊어지는 건 죽음이 닥쳐와서일 터였다. 진환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왜 이렇게 됐지?
대답을 알면서도 묻는다. 멍청해서. 멍청해서 이렇게 된 거다. 박성수에게 들키는 게 아니었다. 아니, 폼 잡는답시고 프락치 역할을 넙죽 받는 게 아니었다. 핸드폰 간수는 똑바로 했어야 했다. 실수로 죽여버리는 게 아니었다. 들키는 게 아니었다. 정윤. 그 새끼를, 아는 체하는 게 아니었다.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 실수, 결정적인 실수는 그거다. 그날 바로 배를 탔으면 지금쯤 말도 모르는 나라에서 벌벌 떨고 있을지언정, 재떨이처럼 침 맞으면서 곤죽이 되도록 처맞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 새끼만 모르는 척했어도. 그 새끼만 버리고 갔어도.
“씨발….”
개같은 약쟁이 새끼. 이렇게 뒤통수를 쳐? 이렇게 사람을 엿 먹여? 순진한 척. 멍청한 척은 다 해놓고서, 불쌍하고 가여워서 예쁘다고 해줬더니, 결국 박경준이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 가? 허리는 그렇게 흔들어놓고. 내 아래에서 좋다고 울어놓고….
온갖 치졸한 욕설과 함께 저주가 끓어오른다.
느껴지는 거라곤 금이 간 뼈와 제 피에서 나는 고린내밖에 없는 상황에서, 붙잡을 만한 감정이라고는 분노밖에 없었다. 놓을 수도 없는 끈질긴 의식을 모래 늪 같은 증오를 만드는 데에 퍼붓는다. 누가 되었든 욕을 하고 미워해야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대는 정윤이었다.
도와주려고 했다. 정말로 같이 행복해질 생각밖에 없었다. 버라이어티 쇼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그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걸 정윤과 함께해보려고 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정윤은 그걸 거부했다.
죽여버릴 거야.
배 속이 끓어올랐다.
목을 조르건 배를 찔러서건 죽여버릴 거야. 내 앞에서 비는 꼴을 봐야겠어. 빌면서 좆을 빨아대는 꼴을 보고 말 거야. 빌어, 개자식아. 나한테 빌라고. 살려달라고 빌어. 그럴 생각 없었다고 빌어. 미안하다고 빌어. 나 좋아했다고…. 날 정말 좋아했을까? 그것까지 거짓말이었을까?
차라리 이마를 내리칠까 생각해본다. 머리통이 깨지도록 고개를 처박자. 그럼 더 더러운 꼴 안 당하고, 깔끔하게 갈 수 있다. 더 추해지지 않아도 된다. 가늘게 눈을 뜨고, 진환은 차분히 백열등 조명을 받아 우둘투둘하게 보이는 콘크리트 표면을 응시했다. 제 피가 얼룩진 게, 제법 아늑하다.
허리를 비틀어 세운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려 한다.
그때 문틈에서 빛이 쏟아졌다. 진환의 고개가 돌아간다. 사람 한 명의 그림자다. 그는 들이닥치지 않고 문가에 서, 유심히 진환을 관찰하고 있었다.
정윤일 거라는 확신이 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저건 정윤이어야만 했다.
“형님.”
조용하게, 입이 달싹인다.
그림자가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다가오지 않는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기도에서 피가 나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정윤 형님. 맞습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저 보려고 오신 겁니까?”
그림자는 여전히 떠나질 않고 있었다. 이제는 기대감으로 심장이 뛰어, 목구멍으로 내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말만, 말만 좀 해주세요. 형님. 왜 이러셨는지, 제발, 저 설명이라도 해주세요. 제발…. 형님.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형님….”
피가 흘러 흐릿한 시야에 그림자가 움직이려는 게 보였다. 손을 뻗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진환은 인내심 깊게 대답을 기다렸다.
그림자가 얼굴을 세웠다. 역광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눈이 희미하게나마 이목구비를 알아본다. 왼편에 자리 잡은 흉터의 윤곽이 미세하게 드러났다.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림자는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산만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가 문가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발을 딛는다. 달아나려는 것이다.
“대답해보시죠.”
그림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대답해, 배신자 새끼야!”
그림자는 놀란 동물처럼 돌아서더니, 재빠르게 어둠과 하나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를 부를 틈도 없었다. 문이 닫히고, 진환에게 남은 건 누리끼리한 백열등 조명뿐이었다.
기운이 빠진다. 애써 일으켰던 몸통이 다시 주저앉았다.
“아… 존나 아프네, 씨발….”
허탈한 목소리가 인다.
금이 간 갈비뼈가 부대끼는 모양이다. 짓이겨지는 것처럼 아프다. 숨을 헐떡이는 사이사이마다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진환은 사포 같은 바닥에 미친 듯 이마를 문대며, 죽어가는 동물처럼 울고 있었다. 화살촉이 파묻히고 파묻혀 괴물의 가시처럼 곤두선 사냥감처럼.
의식이 멀어진다.
“…개새끼.”
곤두박질치는 것 같다. 차라리 그렇다면 편할 텐데. 아무리 어지럽다 한들 콘크리트는 무너지지 않는다. 단단하다. 지금 진환은, 단단한 세계 안에 두 손이 묶인 채 갇혀 있다. 오로지 고통을 주기 위해 고안된 세계 속에.
***
벽에 기댄 정윤은 숨을 골랐다.
‘진환이가….’
피로 물든 처참한 모습. 동물처럼 묶여 숨만 붙어 있는 모습. 석양이나 길고양이만큼이나 흔하게 봐온 것인데도. 자꾸만 눈꺼풀 아래를 엄습한다.
손이 떨려왔다.
주먹을 움켜쥔 채, 그는 태아처럼 웅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