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도르래가 그새 녹이 슬었는지, 밧줄을 위로 당길 때마다 공간 전체가 삐걱거린다. 경준은 그만하면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허벅지가 갈고리에 꿰인 도축장의 돼지처럼 거꾸로 매달린 사내가 덜덜 떨어댔다. 코피가 인중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경준은 정중한 태도로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밥 사드린다고 할 때 응해주시지 않고선. 서운하잖아요.”
사내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너지는 시점을 경준은 수도 없이 봐왔다. 사흘간에 걸친 갈증이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온몸을 갉아먹는 통증이 겹쳐지면 어느 정승이든 마른 나뭇가지만큼이나 쉽게 바스러진다. 그 지점이 가깝다.
“전요… 이제 김 검사님 밑에서 일도 안 하고요….”
“그럼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겠네요.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검사님이 저희 아버지 은인이신데….”
경준이 턱을 들어 올렸다. 도르래가 묵직한 소음을 내며 밧줄이 아래로 떨어졌다. 공포에 질려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말하겠습니다! 말할게요!”
손을 뻗자 암실 안이 정적에 잠긴다. 경준은 매달린 사내의 뺨을 감싸 두드렸다. 눈에 시퍼런 멍이 고름 고인 물집처럼 부어, 퉁퉁한 사내는 입술을 달싹이고 흐느꼈다.
“어디예요?”
“검사님 외가가 부천에 있습니다. 거기 사모님 사촌 동생이 정신에 문제가 있나 그런데, 다 그놈 앞으로 되어 있습니다.”
“돈 관리도 그쪽에서 하고요.”
“예… 예….”
고생했다는 듯, 뺨을 감싼 손이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곧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지고, 경준이 돌아섰다.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경준의 시선이 정윤에게로 향했다. 정윤은 내키지 않는 듯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욕설과 애원이 섞인 마지막 외마디 비명을 들으며, 경준은 창고에서 걸어 나왔다.
***
세면대에 찬물이 차오른다. 가장자리까지 넘실거리도록 차오른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그림자에 제 머리 그림자가 형체도 없이 흐물거리고 가라앉는다. 심호흡도 없이, 정윤은 그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죽일 필요 없었잖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경준은 이상한 광경을 봤다는 듯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았다.
‘정말 이상하네요. 정윤 씨, 요즘.’
이윽고 그렇게 속닥이고, 경준이 손을 뻗었다. 때때로 경준의 손짓에는 매서운 냉기가 깃들어, 스치기만 해도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그때가 그랬다. 다정한 손짓은 뺨을 감싸고 보드랍게 광대 위를 쓰다듬어 내렸다.
‘신경 쓰는 척하는 거, 방해 안 될 때나 귀여운 거예요.’
얼음장 같은 물에 얼굴을 담가도 사라지지 않는 그 감촉.
‘날 사랑한다고 했죠?’
물속에서 눈을 뜨면 검을 만치 가까운 세면대 바닥이 보이고, 작은 기포 방울 두어 개가 머리 위로 올라간다. 그 건너편, 티 없는 거울에는 지윤이 비친다. 그녀가 방금 손을 흔들었다.
물의 표면을 부수고 고개를 세차게 들어 올렸다. 물방울이 뺨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깊게 숨을 몰아쉬며, 정윤은 수건을 찾았다.
뼈마디가 시큰거린다. 금단 증상이 다시 찾아들었다.
***
정윤은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혀를 차고, 진환은 수화기를 집어넣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걱정했을 뿐이었는데 쫓겨나다니.
자꾸만 자신을 피하는 그가 야속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으로 본 순간 멍 자국이 가득했던 얼굴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일 끝나면 다시 전화드려야지.’
속으로 되뇌며 진환이 미간을 눌렀다. 그래. 일. 우선은 일을 끝내야 한다.
창고 안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진환은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벌거벗은 채로 봉투를 뒤집어쓴 사내가 오줌을 지린 것이다. 욕설을 중얼거리고, 진환이 그의 머리에서 봉투를 벗겼다. 앞니 하나가 부러진 채 그가 고개를 들었다.
“사, 사, 사, 살려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형. 저 못 알아보겠어요?”
피멍이 올라 퉁퉁 부은 눈덩이가 흘긋 위로 향했다. 진환을 본 남자의 얼굴에 일말의 희망이 스쳤다.
“지, 진환이…! 주환이 동생 이진환! 맞지?!”
“알아보시니까 기쁘네, 그래.”
“진환아. 나 좀 살려줘. 내가 지금 급전이 없어서 그래. 진짜 돈 갚을 수 있어. 진환아…!”
껄끄럽게 한숨을 내쉬고 뒷머리를 긁적인다. 최윤석. 형의 불알친구 되겠다. 저 못지않은 양아치였는데, 껌 씹고 애들 삥이나 뜯기보다는 머리를 써서 남의 등쳐먹는 데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결국 학교 때려치우고 사채업에 발을 담갔다고 들은 게 마지막 소식이다. 이 자리에서 만난 걸 보니, 사업이 썩 잘 풀리진 않았나보다.
“형. 그러게 약은 왜 훔쳤어. 위에서 뿔이 엄청 났어, 엄청.”
“훔친 게 아니라 빌린 거야, 진환아.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해서 돈을 갚든 뭘 하든 하지. 안 그러냐? 너도 이제, 사업 좀 하는데. 알 거 아냐? 그렇지?”
“당장 가진 돈은. 뭐… 숨겨둔 돈 같은 건 없고?”
“없어. 씨발…. 강 박사 그 개같은 새끼 때문에….”
다시 한숨이 튀어나왔다. 썩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는 사이라지만 솔직히 친한 것도 아니었고, 상태를 보아하니 풀어줘도 도박장으로 돌아가면 돌아갔지 절대 돈을 갚진 못한다. 원양어선에라도 팔아넘기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그 미묘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그가 두 팔이 묶인 채로 진환에게로 달려들었다. 구두까지 핥을 기세로 몸을 비빈다.
“아, 씨발! 옷 더러워지게!”
“제발, 진환아…. 주환이 얼굴 봐서라도. 어?”
“미쳤어? 뻔뻔하게 우리 형은 여기에서 왜 찾아, 왜.”
“주환이가 보내서 온 거 아냐?”
진환이 멈칫했다.
“…뭐?”
상대는 이제 통곡을 하며 빌어대고 있었다. 진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짓이었다. 발길질로 그를 밀쳐낸다. 자벌레처럼 그가 굴러떨어지자, 진환이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형이 날 여기 왜 보내?”
“그거야, 내, 내가 잡히면, 너네 형도 걸리니까….”
“걸려? 뭐에 걸려?”
이제는 윤석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부르튼 입술이 벌어지고, 잘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던 얼굴이 찡그려졌다.
“너 정말 몰라?”
교도소 면회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형이 앉는다. 일 년에 가까운 수감 생활 사이, 형은 날이 갈수록 말라 갔다. 다른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진환아. 오랜만이다.”
“변호사 다시 구했어.”
“뭐…?”
형을 앞에 두고, 진환은 거침없이 본론을 꺼냈다. 달짝지근한 안부 인사를 곁들일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자이언트 로펌 출신이야. 경북 모자 살인 사건 들어봤지? 그 개보다 못한 새끼도 이놈 입담으로 삼 년 받았대.”
“지금 무슨 소리야?”
“반성하는 모습 착실히 보이고. 범행 인정하면 가능성 있다더라.”
“그러니까, 지금 무슨 소리냐고, 너!”
“형도 금방 나오고 싶잖아.”
형의 주먹이 허공에서 짓눌렸다. 투명한 벽에 틀어막힌 맨손을 보며, 진환은 묵묵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형의 절규가 들려왔다.
“이러면 안 돼. 진환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삼 년이면 나올 수 있어. 형. 사람 둘 죽이고. 삼 년이라니까?”
“내가 안 했다고 했잖아. 내가 안 죽였는데, 어떻게 그걸 했다고 그래? 어?!”
“진짜 형이 안 죽였어?”
“몇 번을 말해. 내가 왜 그러겠어, 진환아. 어? 내가 뭐 하자고 그 사람들을 죽이겠어!”
꽉 물었던 담배를 뱉고, 진환이 어금니를 갈았다.
“형, 부업했더라?”
투명한 벽 너머, 하나뿐인 가족의 표정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게….”
“다 알아봤어. ○○동 뽕 창고 자물쇠. 형 친구 최윤석이. 그 새끼가 우리한테 빚을 엄청 졌어. 어쩌자고 설탕 가루를 그렇게 빼돌렸더라고. 근데 그걸, 지 친구들 시켜서 팔아먹었다는 거야. 현금 번다고.”
“…난 몰라.”
“모르긴, 씨발. 방금 다 듣고 오는 길인데! 그 새끼, 어제 우리가 다 잡아 족쳤어. 형, 전셋값도 그걸로 마련했다며? 빼돌린 약 팔아서. 씨발, 약방이 체질에 맞니 할망구들 입담이 어쩌니 그렇게 이빨을 까놓고선-.”
“이진환. 닥쳐.”
“뭐 씨발, 좋았냐? 청명파에 있는 동생 믿고 장물 장사, 그것도 뽕 장사를 하면서, 앞에서는 존나 번듯한 척, 선량한 척 형 노릇 하니까 좋았냐고!”
“네가 뭘 알아!!”
천둥이 친 후에 유독 고요하게 들리는 빗소리처럼, 공간 안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질겅거리던 담뱃잎을 퉤, 뱉고, 진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먼저 알아냈기에 망정이지. 짜바리들이 찾아냈으면 형 평생 빵에서 썩었어.”
“…….”
“그냥, 좀…. 쉽게 끝내자, 형. 형수님이랑 동준이 생각해서.”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형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약 빼돌려서 팔다가 일 틀어지니까 사람 찔러 죽인 거라고.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형….”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니고?”
백열등 전구 조명이 내려앉은 형의 얼굴은 미라나 고목나무처럼 울퉁불퉁했다.
“너, 요즘 이상해. 옷도 안 어울리게 좋은 거 입고. 눈빛도 변하고. 지금도 봐. 날 무슨 벌레 새끼 보듯이, 못 죽여서 가둬둔 바퀴벌레 보듯이 하잖아.”
“말을 또 왜 그렇게….”
“나한테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진환아.”
갈라진 목소리에 어엿한 분노가 서렸다.
“넌 나한테 그러면 안 돼. 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널 어떻게 뒷바라지했는데. 씨발, 엄마 집 나가고부터 내가 너 어떻게 보살폈는데. 너 경찰서 들어가서 빨간 줄 그어질 뻔한 거, 내가 대가리 팔아가면서, 쪽 팔아가면서-.”
“씨발, 그 얘기를 얼마나 우려먹을 건데!”
형이 뒷걸음질을 쳤다. 의자를 걷어차며, 진환은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그래서, 난 노력 안 한 줄 알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는 해? 나도 목숨 다 걸었어. 할 만큼 했다고!”
“이진환.”
“변호사 대주겠다고. 형 금방 나오게 해주겠다잖아. 뭐가 더 부족한데!”
“그걸 몰라서 물어?”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다!”
비명처럼, 아니면 욕지기를 올리는 것처럼, 비참한 울음소리가 배 속에서 끓어 넘쳤다. 심장이 북소리처럼 둥둥거리고 귓가까지 울려왔다. 어질거린다. 탁자를 붙들고, 진환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좀, 그냥…. 더 안 캐물을게. 잘잘못 따지지 말자.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묻어가자, 형. 묻어가. 얌전히 살다가 나와서, 형 나오면, 내가 가게 하나 내줄게. 나 돈 존나 많아, 형. 형수님이랑, 동준이랑 데리고 다른 동네 가서 새 시작 하자. 삼 년이면 돼. 사람 둘 죽이고 삼 년이라니까?”
그가 입술을 물었다. 파리해진 얼굴에 경련이 일며 주름진 골 사이사이가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형이 말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
타이밍 한번 좋게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는 전화기다. 이런 걸 생명줄처럼 요 몇 달간 들고 있던 게 믿기지 않았다. 발신인을 확인할 생각도 않고, 진환은 구식 폴더폰을 두 동강 냈다.
콰직. 튀어나온 전선과 함께 부르르 떨리던 진동이 멎는다. 그대로 두 동강이 난 휴대폰을 다리 너머, 한강 물에 던져넣는다. 어두운 밤 중, 검은 물 위로 떨어진 부품 쪼가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난 할 만큼 했어.’
속이 쓰라리다. 교도소에서 걸어 나온 이후로 신물이 계속해서 차올랐다.
‘목숨 걸고. 더러운 꼴 봐가면서. 씨발, 사람까지 죽였는데. 뭘 더 어쩌란 거야?’
해가 저물자마자 바람이 무섭도록 차가워진다. 양복 재킷 사이로 아릿한 냉기가 스며들어 몸 전체에 턱하고 힘이 들어갔다. 뺨이 따가울 지경이었지만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강물에서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달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감이 무뎌질 만큼 허무함이 밀려왔다. 몸의 반절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 살가죽과 세포 사이사이가 벌어져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공허가. 사람을 시켜 먼지 없이 닦아놓은 오피스텔도, 눈이 아프고 혼이 나갈 만큼 번쩍거리는 클럽도 다시는 갈 수 없을 곳처럼 멀게만 여겨졌다.
손등이 근질거렸다. 무심결에 살갗을 긁적거리다, 진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
정윤은 놀란 기색이었다. 제 행동에 놀란 건 진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박경준이 집에 있을 시간이다. 눈앞에 나타난 게 정윤이 아니라 그였으면 어쩔 뻔했는지. 얼어붙은 정윤의 팔을 잡아당겨,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삼십 분 후에 복도 계단으로 내려오세요.”
“경준이가-.”
“부탁입니다.”
손목을 놓자마자 얼굴 앞에서 문이 닫혔다.
진환은 복도에서 사십오 분을 기다렸다. 밤을 새울 각오도 되어 있었다. 달리 희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외에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손끝이 저리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계단 위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진환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보스에게 뭐라고 둘러댄 건지, 정윤은 집 안에서 입는 얇은 옷차림 그대로였다. 차에 올라탄 다음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지, 정윤은 느릿하게 제 팔을 쓰다듬었다. 말없이, 진환은 그에게 커피 냄새가 가시지 않은 고급 정장 재킷을 내밀었다. 정윤의 덩치에 비하자니 크기가 한없이 초라해, 담요라기보단 거적때기 축에나 들 법해 보였다.
“금방 돌아가야 돼.”
“알겠습니다.”
“왜 왔어?”
대답 대신, 진환은 입을 맞췄다. 머뭇거리는 듯하던 것도 잠시, 정윤은 금세 달게 입을 벌리고 그를 맞이했다. 너른 정윤의 손이 아찔하게 등골을 간질이며 내려왔다.
혀가 뒤엉키고 달큼한 애무가 이어진다. 메마른 입술이 타액에 절 때까지 빨아올리고, 근질거리면서 말랑말랑한 혓바닥을 휘감아 얽는다. 온기와 온기가 맞닿아 젖으며 끈적하게 입 안을 채운다. 입천장을, 볼 안을, 혀 아래를, 말초적인 간지러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입술이 떨어졌다. 진환은 정윤의 다부진 뺨을 손바닥 안에 감쌌다. 입술이 음란하게 번들거리고, 벌어진 입 안은 삼켜달라는 듯이 붉다. 금욕적이기만 한 두 눈 저편에 어울리지 않는 욕망이 일렁거렸다.
“사랑합니다.”
입을 벌린 그대로 정윤이 얼어붙었다.
진환은 그대로 다시금 아랫입술을 입 안에 머금었다. 조그마한 틈이라도 더 침범해 들어가고 싶었다. 뺨 위로, 목덜미 위로 애타는 입맞춤이 이어졌다.
“사랑합니다. 정윤 형님. 저, 요즘 형님 생각만 합니다. 눈 뜨면 형님 얼굴이 떠오르고, 눈 감아도 형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막, 뽀뽀하고, 이상한 짓 하고 싶은 생각만 나는 게 아니라, 형님 웃는 거. 형님이랑 맛있는 거 먹는 거. 장난치는 거. 그런 생각이 제일 많이 납니다. 저, 이제 형님 못 보면 무슨 낙으로 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못 살겠습니다. 형님 없으면 못 삽니다, 저.”
가슴에 담겨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이 둑이 터진 듯 쏟아져 내려왔다. 목구멍 안쪽을 저릿하게 죄여오는 감각에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그와 동시에 형을 만나고 나온 뒤 내내 흩어져 있던 세포들이 조금씩 가장자리를 맞추며 되돌아온다. 몇 번이고 뺨 위에 입을 맞추며, 진환은 계속해서 쉬어버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망가죠, 형님. 확, 튀어버리는 겁니다. 대한민국 그거 버리고. 형님 아프게 하는, 좆같은 나라 버리고. 박성수 그 새끼 그런 것처럼….”
“…그 사람은 도망간 거 아니야.”
“말이 그렇단 겁니다. 제가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형님, 물고기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바다 있는 곳 어떻습니까. 괌 말씀하셨잖습니까. 물질도 하고. 고기도 잡고. 형님이랑 저랑. 둘만 있는 겁니다. 둘만….”
“나 사랑해?”
“예. 형님.”
정윤이 그의 뺨을 붙잡았다. 입술이 닿았다. 진환이 뭐라 말하려 입을 벌리는 사이 혀가 들어왔다. 농밀하게 미지근한 열기를 담은 매끄러운 살덩이가 입 안으로 파고들며, 오밀조밀 난 돌기가 생생하게 문질러졌다. 입 안 점막의 얇은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는 감각에 뇌리가 안개에 둘러싸인 듯이 점령됐다. 온기가 가깝고, 숨결이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진환은 휩쓸려 눈을 감으려다, 가까스로 그의 어깨를 잡아 밀었다.
“잠깐만….”
진환이 헐떡였다.
“아닙니다. 이러려고 온 게-.”
“거짓말.”
진환의 볼이 달아올랐다. 그는 정윤을 마주 보고 반발하려고 했지만, 그의 머리는 이미 저만치 아래에 있었다. 정윤의 손이 덜그럭거리며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진환이 저지하려 했을 때는 이미 바지가 내려간 후였다.
“형님. 잠깐만….”
팔을 뻗어 그를 밀치려는 사이, 정윤은 성급히 들춘 머리를 차 천장에 찧었다. 씁. 잇새로 소리를 내고 있자 정윤의 입술이 귀두 끄트머리를 물었다.
이를 세우지 않고 입술로 감싸 오물거리듯 움직이자, 진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곳이 단단하게 섰다. 검지와 엄지로 동그랗게 밑동을 감싸 흔들며, 정윤이 널찍한 혓바닥 위에 성기를 머금었다. 능숙하고 농밀했다. 혀끝이 갈라진 틈까지 거부감 하나 없이 건들거리며, 입술이 위로 향할 때마다 귀두 끝을 깔짝였다.
꿀 속에 빠진 듯이 황홀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진환은 행위에 완전히 젖어들었다. 밀어내기 위해 어깨를 잡았던 손은 목덜미 위로 가, 까끌하게 민 정윤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좁은 운전석에 몸을 끼워 맞춘 채로, 정윤은 그의 요구에 모두 응했다. 원하는 곳을 핥아 달라는 듯 손의 방향을 틀어 살며시 힘을 주면, 정윤은 정확하게 고개를 틀고 입술을 오므려 그곳 위를 문질렀다. 진환이 손등으로 뺨 위를 가렸다. 열이 올라 얼굴 전체가 붉어진 것 같았다.
정윤은 젖은 눈으로 그런 그를 응시하더니, 턱을 크게 벌렸다. 끝에서만 자극하던 정윤의 입술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구역질 한번 하지 않고 목구멍 안으로 뿌리까지 성기를 밀어 넣었다. 혀가 밑동을 마찰하고, 목구멍 안의 연한 살이 경련하며 조여왔다. 진환은 숨을 재빠르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갈 것 같았다.
“형님. 저….”
그가 중얼거리며 아래를 보았을 때였다. 등줄기에 차가운 공포심이 흘러내렸다.
정윤은 즐기는 게 아니었다.
눈은 산소 부족으로 충혈되고, 셔츠 자락을 쥔 손이며 등허리가 발버둥 치듯 들썩였다. 눈썹이 절규하는 사람처럼 휘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질식해 정신을 잃을 사람 같았다. 이 행위가 고통스럽지 않은 게 아니다.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형님.”
진환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님, 그만하세요.”
정윤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만하라니까!”
진환이 소리쳤다.
진환은 억지로 정윤을 떼어내려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정윤은 아랑곳 않고 음모 위에 코를 처박았지만, 힘이 빠진 탓인지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그가 떨어지자마자 진환이 그를 밀쳤다.
정윤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비킨다. 팔꿈치가 핸들의 클랙슨을 눌렀다. 요란한 소음이 한밤의 주차장을 메웠다.
진환이 바지를 추슬렀다. 벨트를 풀어헤친 채 버클만 간신히 잠근 후, 그는 등받이를 붙잡아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귓전에 울렸다.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입을 막았다가, 정윤을 돌아봤다. 턱을 오래 다물지 않아 질질 침을 흘리는, 멍한 그의 얼굴은 이유를 모르고 혼나게 된 영리하지 못한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왜 그랬습니까?”
정윤은 시선을 틀지 않았다. 대답하지도 않았다. 진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겁니까?”
“섰었잖아.”
“그게 무슨…!”
소리를 지르려다 집어삼킨다. 억센 숨을 고르고, 정윤의 양 뺨을 감쌌다.
“저, 형님 좋아합니다. 씨발, 사랑한다고! 저, 정윤 형님이 많이 궁금합니다. 더 알고 싶습니다. 더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고요. 그런데, 형님은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까, 아까 힘들지 않았습니까? 지금 눈도 빨개지고, 숨도 못 쉬고! 억지로 참아가면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정윤은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뿌옇게 그를 보다가, 복화술사 손에 걸린 인형처럼 턱을 달싹였다.
“계속 안 할 거야?”
진환은 손바닥 안에 얼굴을 묻었다. 뼛속이 납에 절여진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끝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정윤은 나른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무릎으로 기어 다가왔다. 그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환이 고개를 들자, 정윤이 입 맞춰왔다.
“미안해.”
흐느낌이 튀어나올까 두려워, 진환이 어금니를 물었다. 정윤은 한 번 더 헝클이듯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뗐다.
졍윤이 제 셔츠의 맨 위의 단추를 만지고, 천천히 아래로 풀어 내려갔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누리끼리한 자동차 실내등을 받아 맨살이 드러난다. 흠집투성이였다. 배를 가로질러 칼로 그어진 자국이 보였다. 갈비뼈 아래로 동그란 화상 자국이 보기에 두려울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마지막 단추가 풀어졌다. 진환은 그의 아랫배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사타구니 바로 위에 불그죽죽하게 튀어나온 상스러운 단어가 읽혔다. 역겨운 성적 조롱이 담긴 욕설이었다. 글자는 뚜렷하고 반듯했다. 문신이다.
“그 새끼….”
“경준이는 아냐.”
“누구입니까? 누가 이런 짓을….”
“너하곤 상관없어.”
정윤은 진환의 손을 끌어, 제 맨몸 위에 잡아당겼다.
“만질래?”
진환은 메스꺼워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래가 묵직해진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범하는 것은 진환이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를 사랑해줄 셈이었다. 다정하게 대해줄 셈이었다. 욕정을 푸는 살덩어리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처럼 대할 셈이었다.
“역시, 지금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환은 정윤을 밀치려 팔을 뻗었다. 정윤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정윤은 눈꼬리가 처져 인상이 온화할 뿐, 여전히 근육이 잡힌 거구였다. 진환을 찍어 눌러 올라타자 반항이 소용없었다. 정윤이 지퍼를 끌어 내렸다. 고개를 젓기가 무색하게, 진환의 성기는 적나라하게 발기해 있었다. 정윤은 제 하의를 내려, 단번에 맨살로 드러난 둔부를 치켜들었다. 그가 손가락을 빨더니,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위치에서 애널에 손가락을 문질렀다. 그는 스스로 둔부의 살집을 벌리고, 거죽과 함께 벌름거리는 입구를 귀두에 맞대었다. 진환이 숨을 집어삼켰다.
“제발, 제발…. 싫습니다. 이렇게는 싫어요.”
“미안해.”
“사랑한다고. 그런 소리 해서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함부로 말해서 죄송합니다. 주제가 넘었어요, 예! 그런데, 형님 좋아한다는 건 진심입니다. 믿어주세요. 그건, 제발….”
“알아. 믿어.”
정윤이 입꼬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자는 거야.”
허리가 들썩였다. 정윤은 열에 젖은 듯 허리를 쳐대다가, 스스로 스폿을 자극했는지 숨김없이 교성을 질렀다. 짐승 소리 같았다. 진환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아까의 강압적인 펠라티오로 민감해져 있었다.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사정하고 말았다. 진환은 눈물로 뿌옇게 된 시야 사이로 정윤을 살폈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판단이 흐려지고, 악마 같은 충동이 진환을 덮쳤다.
진환은 허리를 밀어 올리며 움직임에 버거워하는 정윤을 몰아세웠다. 제 배 위에서 흔들리는 정윤의 물건을 우악스럽게 쥐고 폭군처럼 굴었다. 절정에 이른 그가 허리를 올려 떨어지자마자, 허벅지를 짓누르며 제 것을 몰아붙인다.
거친 움직임에 차체가 덜컹거렸다. 정윤의 등이 몇 번이나 천장에 부딪힐 뻔했다. 정윤은 반항하지 않았다. 좆이 들락거릴 때마다 앙앙거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울 뿐이었다.
“왜.”
어느새, 진환은 억눌린 목소리로 읊조리고 있었다.
“왜, 씨발. 왜….”
정윤이 턱을 젖히며 울었다. 그는 익숙해질 틈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박혀오는 좆 때문에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씨발, 씨발….”
진환이 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안쪽을 깊게 찌른 채로 몸을 떨었다. 정윤이 아찔하게 소리 질렀다. 성기는 축 처져 있었다. 뒤만으로 가버린 듯했다.
음란해.
오싹해졌다. 무슨 짓을 당해도 이렇게 느끼는 건가? 구둣발로 성기를 짓밟아도? 입 안에 침을 뱉어도? 기절할 때까지 머리를 붙잡고 박아도?
진환이 그를 놓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윤이 입을 벌렸다. 자극만을 갈구하며, 붉은 혀를 내밀고 애타게 조른다. 입가를 찢어버릴 듯, 진환이 그의 볼에 검지를 밀어 넣었다. 혓바닥을 움켜쥐고 당기자 옅은 교성이 들려왔다. 젖은 손가락을 꺼낸다. 입술 아래로 타액이 늘어지며, 단정하지 못해진 정윤의 얼굴이 진환의 가슴팍 위에 가라앉았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
정윤이 중얼거렸다.
“너도 그중 하나야.”
“…형님께는 그것뿐입니까?”
건조하게, 진환은 그를 응시했다. 정윤은 엉망이었다. 반 정도 벗겨진 맨등에, 벌겋게 달아오른 눈가와 체액으로 더러워진 얼굴까지.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박히고 벌 받고 다치는 거. 그거 말곤, 이해를 못 하시는 겁니까?”
“뭐가 더 필요해?”
뺨을 때린다. 정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직접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걸. 진환은 한 차례 더 뺨을 내리쳤다. 미동도, 조금의 동요도 없다. 죽은 사람을 치는 것처럼. 손에 남은 얼얼함 외에는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다.
손을 들 기력조차 생기질 않았다.
“끝났어?”
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전해진다. 무슨 뜻인지. 셔츠를 가다듬고, 정윤이 차 문을 열었다.
“그래.”
***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정윤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들고 나왔으면 좋았을걸.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갈증에 목이 메었다.
입 안이 까칠까칠하다. 둔부가 얼얼하고, 억지로 쥐어진 허벅지가 아프다. 우악스럽게 쑤셔박힌 내벽은 아직까지도 욱신거렸다. 골 사이로 정액이 흘러 내려온다.
괜찮아.
스스로에게 되뇌며, 정윤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진환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그가 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엉망으로 만드는 자신의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