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31)

#11

“네. 저예요.”

경준의 전화 상대는 사무실로부터 승용차로 다섯 시간 거리에 떨어진 항구에 있었다.

진환에게 쥐여준 서류는 단순한 미끼였다. 자료를 보고 증거를 파고들어 가도 경준 본인에게는 아무런 흠집도 남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위치만 발각되도록 만들어둔, 그런 자료. 특히 중요한 거래가 오늘 중에 일어날 것처럼 자료를 조작해두었으니, 슬슬 입질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요. 아무도 안 왔어요?”

하지만 낚싯바늘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고사하고 배편을 물어보는 이도, 도시에서 왔다는 이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조금 더 관찰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으며, 경준은 강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사라진 박성수도, 이번 건도 그렇다. 이진환은 신기할 정도로 위험을 피해갔다.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한 것처럼.

경준의 시선이 소파 위로 향했다.

“정윤 씨.”

이름이 불리자, 정윤이 잘게 몸을 떨었다.

김 회장이 손님들을 앉혔던 소파다.

국회의원, 사업가, 삼합회 간부까지. 눈빛만으로 사람 한 명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바로 그 자리에 개가 누워 있다.

약에 취한 멍청한 개 한 마리가.

손길이 지긋하게 복부 위를 쓸어 올린다. 허억, 숨을 들이켜며 정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부드럽게 복부를 쓸어 올린다. 살살 위를 문지르자, 정윤이 허리를 들썩였다. 입술을 덮치며 혓바닥이 파고든다. 힘없이 혀를 내민 채, 정윤은 문질러오는 자극에 몸을 떠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음탕한지 알아요? 정윤 씨 가슴.”

조곤조곤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이질감이 들도록 저급한 말을 내뱉었다. 고운 손가락이 가슴을 움켜잡는다. 손바닥에도 다 들어오지 않는 가슴이 더 만져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므라든 손바닥 위로 삐져나왔다.

반대편 손바닥이 허벅지 안쪽으로 향한다. 손가락이 살갗을 눌러, 정맥을 찾는다. 이내 주삿바늘이 그 위를 찌른다. 혈관으로 액체가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에, 정윤의 몸통이 튀어 올랐다.

“못 해. 더는… 못 해.”

“다치니까, 가만히 있어요.”

“못… 읏… 흐읏…!”

약 기운은 빠르게 돌았다. 머리가 멍해지는 와중, 어느새 뜨거운 좆대가 회음부에 맞닿았다. 겁이 날 정도의 부피감을 지닌 좆대가 앞뒤로 서서히 움직였다. 몽롱한 쾌락에 젖어든 몸은 기쁘게 연한 피부에 닿는 자극을 받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빨아들이려는 듯 애널이 반응한다. 그런 제 몸에 익숙하질 않아 얼굴을 가리려 하지만 경준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바닥은 맥없이 치워지고, 경준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마주한다.

“벌름거리는 주제에.”

단단한 성기가 파고들었다. 조련당한 몸뚱이는 밀어 넣는 매 순간 긴장으로 떨린다. 날개뼈 근처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몸이 휘청거리며 가슴이 흔들린다.

“왜, 계속, 왜….”

“불쌍해라. 그 질문이 통한 적이 있어요?”

마치 괴롭혀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정윤의 눈가가 달아올랐다. 경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탐욕스럽게 성기를 집어삼킨 붉은빛이 도는 구멍으로. 둔부를 치켜들 만큼 치든 자세가 압권이다.

“꼴리니까 그러지.”

뚝뚝 쿠퍼액이 쏟아진다. 창놈처럼.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인지, 얼굴이 흥건해져서 엉망이었다. 다시 머리를 잡아당겨 혀끝을 나른하게 얽는다.

경준이 허리를 붙들어 뒤집는다. 개처럼 엎드려진 채 박히며, 정윤은 제 팔뚝을 깨물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미약한 수치심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잇자국이 난 팔뚝은 퍼렇고 붉은 얼룩으로 물들어 있었다.

***

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불러다 술을 마신 진환은 알싸하게 취해 개천 앞을 걸었다. 갑부 됐다고 고래고래 자랑을 했더니, 썩을 놈의 자식들이 소주를 세 병이나 먹였다. 벌써부터 쏠릴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하지만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밤바람은 개운했다.

코를 훌쩍이고 벤치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궁전처럼 커다란 아파트 창문에서 나온 불빛이 개울 표면에 살랑거렸다.

‘저런 데 사는 새끼들은 모르겠지.’

치졸하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대가리를 맞아도 실실 웃으면서, 다리 저는 사람 동냥밥 삥 뜯어가며 사는 게 뭔지. 가난이 가져오는 불안함, 쪽팔림, 갈 곳 없는 분노와 막연한 체념. 그중 어느 것도 모르겠지.

그 무지가 부럽다. 무지야말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설령 진환 본인이 돈벼락을 맞아 저런 곳에 들어간다고 해도, 체득한 것을 모르게 될 수는 없었다. 아는 이상 진환은 저치들과 같이는 살 수 없었다.

눈썹을 문지른다. 눈을 감을 때마다 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역시 전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강 반장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당장에 박경준이 감옥에 가면 모처럼 한탕 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형수님 옷도 사드리고, 동준이 장난감도 마음껏 사주고, 미래에 사람답게 살 밑천이 되어줄 수도 있는 돈이었다.

어차피 형 소송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당장에 형량 조절이 들어간다고 해도 징역을 받는 시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한구석으로, 진환은 이런 얘기가 시답잖은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돈에 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에 강 반장과 대화하지 않은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진환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돈 때문이었다’는 것보다도, 더.

‘거절해.’

‘예감이 안 좋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표정. 겁에 질린 듯, 애원하는 듯한 그 맹한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둔한 손가락이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뿌리치고 무시하려고 해봐도 자꾸만 들러붙는 것이었다.

머리를 긁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까만 눈을 하고선. 계속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 자식은.

“윽.”

쏠린다. 이마를 문지르고 고개를 숙였다. 이래서야 멀쩡하게 걸을 수나 있기를 바라야겠다. 이러다 방구석에 토하면 안 되는데. 안 그래도 전에 정윤이 남긴 자국이….

눈길이 내리깔렸다.

집무실에서 얼핏 본 정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만 뜨고 있었지 의식 없는 껍데기나 다름없던 모습. 바로 사흘 전에 약 때문에 얼어 죽을 뻔해 놓고 또 손을 대고 싶을까. 하여간 약쟁이 놈들 정신머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이러니 처음부터 상종 않는 게 좋은 인간이다. 박성수를 처리할 때에는 어떻고. 시체를 짐짝처럼 가져다 버리지 않았나. 그는, 무언가 단단히 어긋나 있었다. 고장 났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애당초 남처럼 지내자고 쐐기를 박은 건 이쪽이다. 알아서 모르는 척해준다면 오히려 땡큐다. 그대로 똑같이 해주면 된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상관없다. 관심 없다. 그 자식이 팔뚝에 뭘 찔러 넣든, 누구 좆을 빨든, 누굴 죽였든, 혼자서 뭘 하든.

‘떠올리지 마.’

누구와 키스하든.

‘떠올리지 마.’

누구를 만지고 있든.

‘씨발. 씨발. 씨발….’

누구에게 웃어주든.

머리카락 뿌리를 움켜쥐고 당긴다. 알싸한 통증이 생각까지 뽑아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얼한 겨울 공기도 멍한 두뇌까지는 스며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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