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0/31)

#9

뒤의 차가 울리는 신경질적인 클랙슨 소리에 정신을 되찾는다. 타이어가 위험천만하게 옆 차선으로 기울어 있었다. 핸들을 되돌리고, 진환은 눈썹 선을 따라 누르며 날 선 정신을 꾹꾹 다스리려 애썼다. 그의 시선이 조수석에 놓인 가방으로 돌아갔다.

메스암페타민 800g. 심장을 멎게 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어제 본 팔뚝 상태로 보아, 정윤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주사기를 사용해왔다. 약물 중독으로 죽는다고 한들 수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주의를 돌리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논의하고 싶다고 입을 털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터였다.

진환은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렸다. 잠든 정윤을 눕힌다. 그의 팔뚝을 잡고, 주사기에 지문이 묻도록 연출한다. 장갑을 끼고 정맥에 주사기를 찔러 넣는다. 그러면 무뚝뚝하고 가무잡잡한 정윤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씨발.’

시야가 한 차례 휘청거렸다. 저라고, 이러고 싶진 않았다. 아는 사람을 죽이는 건 기분 더러운 짓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정윤이었다. 개처럼 엉덩이나 걷어차이는 불쌍한 인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위험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정윤은 목격자였다. 정윤이 살아 있는 한은 절대로 강 반장에게 녹음한 증거를 넘겨줄 수 없다. 사체가 숨겨진 위치,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방법, 사건 당시 진환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까지, 경찰 나으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자세히 불어버릴 테니까. 지금껏 목숨을 걸고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져 버린다.

벗어날 수 없다. 정윤이 살아 있는 한은.

‘그까짓 뽕이나 하는 양아치 하나 정도….’

정직한 척하기엔 이미 늦었다.

울컥하고 신물이 올라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불안이 한데 엉키며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전신을 집어삼킨다. 끔찍한 감정이다.

반사 작용처럼 정윤의 조그마한 모습들이 머리를 스쳤다. 커다란 손으로 조심해서 귤껍질을 벗기던 모습. 옥상에 서자 짤막한 머리카락이 바람 부는 잔디밭처럼 살랑거리던 모습. 따뜻한 손길이나 무방비하게 잠들었던 모습. 어울리지 않게 눈매가 휘어지며 웃는 모습.

진환은 주먹을 말아 쥐어, 자기 머리를 내려쳤다.

“그만하자, 이진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액셀을 밟은 발끝에 지그시 힘을 더한다.

“안 어울린다. 너하고 안 어울려.”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인 놈이 될 생각이었다. 이기적이고 지독한 놈이 되어 보이겠다. 어느 샌님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그런 놈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기 마련이다.

형을 감옥에서 꺼낼 테다.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났는지 형이 몰라줘도 상관없다. 그저 감옥에서 나온 형을 끌어안고, 고생했다고 토닥거리고, 형이 뒷일은 다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게 작은 가게 하나 내줄 것이다. 약초 냄새가 지긋지긋하다고 한 건 형이니까.

손도 씻을 것이다. 양아치 짓만 아니라면 뭐든 할 자신이 있었다. 택배를 나르든, 공부를 해서 동사무소에 들어가든. 형이 허락만 해준다면 같이 일하는 것도 좋겠다. 틈틈이 떳떳한 기술도 배우고. 차근차근 돈도 모으고. 동준이 교복 입는 것도 보고. 형수님께 새 카디건도 선물해드리고.

가끔씩 저녁 식사도 같이할 테다. 짜증 나는 언쟁이나 구질구질한 신세 한탄은 오가지 않는 식사 자리가 될 것이다. 평범하게 살 것이다. 가족이 될 것이다. 중산층이 될 것이다.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기로 했잖아.

스스로에게 되뇌며 이를 악문다. 주사기 바늘을 찌르는 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네 사람의 자리가 준비된 식탁과 겨울 하늘 아래로 펄럭이는 졸업식 현수막 따위를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렇지만 떨림은 좋아지지 않았다. 멀찍이서 신호가 바뀐다.

‘그러게.’

핸들에 이마를 댄 채로 생각한다.

‘왜 나 같은 새끼를 도와줬어.’

멍청한 개새끼 아니랄까봐.

“새끼, 지금 오는 거 봐라.”

카악, 퉤. 김종식이 가래침을 뱉는다. 사무실 안인데, 하여간 더러운 놈.

“아이고,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저 얼간이처럼 헤헤 웃어 보인다. 빈정거림이라고 하기에도 살벌한 욕설을 내뱉는 김종식을 내버려 두고 진환이 사무실 주위를 훑었다. 태연한 척 얼굴을 억누르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정윤 형님은요?”

“새끼, 형님이 왜?”

“왜, 뭐…. 없어져서 난리가 났다고 하셨잖습니까.”

김종식이 건너편 의자에 앉는다.

“그러게 말이다, 씨발. 어디서 술 먹고 자다 왔는지….”

“그러니까…. 돌아오신 겁니까?”

김종식은 대답하는 대신 안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를 꺼내어 물고 내민다. 건드리지도 않는다. 무안한 기색 없이 김종식이 담뱃갑을 도로 집어넣는다. 라이터 부싯돌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간밤에 잠은 잘 잤냐? 꿈자리는 좋았고?”

“별걸 다 물어보십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렇지.”

“무슨 말씀입니까?”

사무실 안으로 뿌옇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김종식이 담배 쥔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대기하는 걸로 보였던 남자들이 달려들어 진환의 팔을 붙들고 눌렀다.

“씹…!”

곧바로 발을 휘두르며 고개를 쳐들었지만 이내 진환은 머리통마저 소파 가죽 위에 짓눌렸다. 뒤로 꺾인 손목에 플라스틱으로 된 케이블 타이가 걸렸다. 볼이 눌린 얼굴 위에 김종식이 고개를 디밀었다. 그가 매캐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창훈이 알지? 정창훈.”

기침을 몰아 하는 진환을 내버려 둔 채, 김종식이 한 번 더 담배를 깊게 빤다.

“그 새끼가 회장님 시다바리 노릇을 하더니 기가 많이 살았잖아. 엊그제는 아예 나한테 대놓고 명령질을 하더라고. 씹새끼가.”

배 위로 발길질이 들어왔다. 턱하고 숨이 막힌다. 진환이 등을 들썩거리며 호흡을 고르는 동안 김종식은 탁자에 발을 얹고 앉았다.

“근데 그 명령질이 말이야. 아주 요상했다 이거지.”

타들어 가는 꽁초에서 계속해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수 형님 따라다니면서 보고를 하라지 뭐냐. 근데, 내가 또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지 않겠냐. 어떻게 그 씨발 놈 따까리 짓을 하겠다고 형님 배신을 해? 그래서 떳떳하게 물어봤지. 떡하니. 형님, 지금 이래저래 해서 큰일이 나셨습니다. 그랬더니 형님이 뭐라고 그러셨게? 어딜 급하게 가봐야 하신대. 어딜?”

김종식이 다리를 꼰다.

“너한테.”

이윽고, 그가 느릿하게 등을 뒤로 밀어낸다.

“그런데 연락이 그만 뚝, 끊어졌네?”

진환이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갔다.”

“…오해입니다.”

“오해? 오해애?”

“선배님, 그. 냉정하게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 인간적으로. 저 족쳐서 뭐가 나오겠습니까, 예?”

“운 좋으면 건수 하나 잡는 거고. 안 좋으면 뭐.”

이윽고 김종식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앞에 걸어 다가온 그가, 담배꽁초를 수직으로 세웠다. 그대로, 그가 꽁초를 찍어 내렸다. 불씨가 붙은 꽁초가 손등 위에 안착했다.

살이 타는 내음이 난다. 진환이 비명을 질렀다.

“네 팔자만 사나운 거고.”

통증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질린다. 목구멍이 오그라든다. 단단히 잘못 걸렸다. 김종식은 처음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제가 박성수의 총애를 뺏어갔다. 어련히 눈에 거슬렸을까. 이제 제대로 된 꼬투리를 잡았으니, 박성수가 어디 있는지 불 때까지 이 새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성수가 먼저 연락해서 사지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절대로.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좀 있는데, 이제야 실습을 해보겠네.”

어슬렁거리며 박성수가 폼을 재고 앉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체리목 서랍장을 당겨 연다. 김종식이 꺼내어 든 것은 손톱깎이였다.

“그럼, 어디….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손톱깎이가 들썩거리며 묶여 있는 손가락 위를 툭툭 건드렸다. 노래를 부르듯이 리듬을 타면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사정없이 비틀었지만 단단히 붙든 탓에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현실적인 공포가 찾아온다.

“잠깐. 아, 씨발. 형님. 선배님! 잠깐. 잠깐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손님. 모양 틀어집니다.”

“씨발 새끼야, 놔. 놔, 이 씹….!”

딸랑. 이어지는 말이 경쾌한 종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굳게 닫혀 있던 사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그 사이로 등장한 것은 박경준이었다.

“미안. 방해했어요?”

그가 정중하게 뒷짐을 진다. 그의 뒤로 언제나처럼 그림자같이 물러선 정윤이 보인다. 정윤은 그의 행색에도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성수 형 도장이 필요해서. 잠깐 빌려도 괜찮으려나.”

허락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보스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끝자락이 나풀거리도록 우아하게 걸어 들어와 김종식과 고문당하기 직전의 진환을 스쳐 지나갔다. 책상 위에 놓인 오동나무 조각 필기 보관함 위를 가느다란 손가락이 훑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그 손끝을 주시했다. 매료된 것처럼.

“여기 있네.”

박경준이 살갑게 미소 지었다. 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웃음. 이윽고 그는 그립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한때에는 김 이사의 차지였던 책장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킨 후, 김종식이 허리를 세웠다.

“회장님. 박 상무님께서 연락이 끊기셨습니다.”

“도망갔으니까 당연히 없죠.”

“예?”

“그 소식 못 들으셨어요?”

경준이 책을 뽑는다. 제목이 한자라 잘 보이지 않지만 표지가 새까맣고 가죽이다. 책장을 넘겨 몇 장을 건성으로 읽던 그는 금세 질렸는지 책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아침에 항구 쪽에 심어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뱃사람을 찾았대요. 성수 형이 현금으로 이억을 가지고 와서 태워달라고 부탁했다나.”

그럴 리가 없다.

박성수가 갔을 만한 곳은 잘해봐야 악취가 풍기는 고철 더미 산 밑바닥이다. 누군가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환의 눈길이 문가에 선 정윤을 향했다. 정윤은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바위로 조각한 듯한 울퉁불퉁한 얼굴.

“목적지가 라오스래요. 참, 판단을 잘 못 해요, 성수 형이.”

책장을 내버려 두고 경준이 돌아섰다. 그제야 나른한 그의 시선이 소파 위로 향했다.

“그런데, 뭐 하던 중이에요?”

김종식이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단번에 사라졌다. 김종식은 비틀거리는 진환을 억지로 일으켜 코피가 흐르는 그와 어깨동무를 했다. 풀떼기를 뽑을 때처럼 손이 머리 뿌리를 휘젓는다.

“별거 아닙니다. 새끼가 좀, 기어오르려고 하길래….”

박경준은 여전히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기지 못하고 김종식이 어깨동무를 푼다. 손을 묶은 케이블 타이가 톡 하니 끊어졌다.

보스의 눈빛에 암묵적인 허락이 떨어진다. 도장을 한 번 위로 던졌다가 받고,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적당히 해요. 막 퇴원한 사람인데.”

“예, 예. 형님. 예.”

걸음 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멀어진다.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김종식이 멱살을 틀어쥐었다.

“운 좋은 줄 알아, 너 이 씹새끼.”

“좆이나 까십쇼.”

그러자 주먹이 날아왔다. 눈앞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김종식은 쓰러진 진환 위에 가래침을 뱉었다.

눈을 떴을 때, 진환은 사무실 밖 복도에 혼자 쓰러져 있었다. 복도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어깨 위를 더듬으니 끈적한 가래침이 묻어 나왔다. 쏠린다. 이 더러운 새끼. 비틀거리고 일어선다.

기다시피 해서 건물 밖을 나온다. 휘청거리며 차에 올라타자 위화감이 몰려왔다. 진환은 서둘러 조수석 위를 더듬었다. 시트 위가 휑했다. 기껏 약을 담아 온 가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씨발. 씨발…. 씨발!”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혹시나 굴러떨어진 건 아닐까 싶어 좌석 아래까지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러지 말자. 제발….”

십중팔구 김종식이 패거리 짓이다. 약을 가지고 트집을 잡지 않은 걸로 보아, 자기들이 빼돌려서 거하게 판이나 벌리려는 거지. 한 번씩 빨고도 남을 양이니까.

정말이지 이보다 더 일이 잘 풀릴 수가 없다. 이제 정윤을 처치하려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빠트리는 수밖에 없었다.

“씨발….”

창밖으로 흘러들어 오던 흐리멍덩한 햇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돌리자 멀뚱히 선 사내의 몸통이 보였다. 진환은 차 창문을 내렸다. 머리를 내밀어 보니, 거기에 선 것은 정윤이었다. 그가 낯이 익은 가방을 내밀었다.

“이거 찾아?”

정황을 따져볼 생각도 않고 진환이 가방을 낚아챘다. 약은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경준이는 물건 훔치는 거 싫어해. 잘 감춰.”

“…….”

“차 문 연 건 미안해.”

정윤이 말했지만 귀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널뛰던 가슴이 가라앉으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약이 담긴 통에 고정되었던 시선이 서서히 정윤에게로 향했다. 딱딱하게 굳은 채 진환이 입을 달싹였다.

“…항구 얘기는.”

그러자, 정윤의 입가가 들썩거렸다.

“다행이지?”

확실해졌다. 정윤이 손을 쓴 것이다.

가방을 쥐던 손이 움찔하며 우그러든다. 그사이, 정윤은 허리를 숙이며 창문 너머의 진환을 응시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쳤어?”

두꺼운 손이 눈에 난 멍 위에 얹히기 전, 진환이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무슨 꿍꿍이야?”

정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만 깜빡였다.

“바라는 게 뭐냐고!”

“없…는데.”

“지랄하지 마!”

까만 눈동자가 얼핏 떨린다.

“뭔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랬을 거 아냐. 말해. 씨발, 한번 당당하게 털고 끝장을 보자고!”

“원하는 거?”

“그래, 이 씨발 놈아!”

그 말에 정윤의 안색에 변화가 일었다. 미세하지만 충분히 포착 가능한 변화. 다물린 입이 뻐끔거린다.

“정말, 말해도 돼?”

속으로 은근한 경멸을 내비치며, 진환이 코웃음을 쳤다.

“말해.”

꾸물거리며 눈길을 내리깔다가 정윤이 입을 열었다.

“…물고기.”

“뭐?”

“물고기가 보고 싶어.”

***

아쿠아리움은 매표소 입구부터 줄이 길었다. 예약을 하고 올걸. 평일이라 괜찮을 줄 알았던 게 실수였다. 연인부터 가족까지, 뚱뚱한 패딩을 겹쳐 입은 사람들이 상어며 열대어가 조잡하게 그려진 벽을 따라서 죽 줄을 섰다. 방학을 맞아 부모님 손을 잡고 모인 아이들도 태반이다.

허리 아래까지 오는 어린이들이 재잘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동준이가 떠올랐다. 조카를 데리고 온 사람도 여기에 있으려나? 동준이가 유치원 다닐 때 상어 참 좋아했는데.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뛰어가던 어린애 하나가 다리에 부딪힌다. 미안하다고 말하려던 차, 아이의 얼굴에 새까만 그림자가 몰려왔다.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표정.

‘내가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나?’

“꼭 붙어 있으라니까. 어서 이리로 와!”

미처 사과하기도 전에 인파를 헤치고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눈물이 글썽한 아이를 팔 안에 가두려다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굳어간다. 당황해서 말을 더듬던 그가 재빠르게 사라졌다.

두 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멍하니 머리를 긁적이던 진환은 곧 주변에서 경계하는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시선이 향한 곳에서, 진환은 이상 현상의 원인이 자신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은 바로 제 옆을 향했다.

그러니까, 정윤을.

눈에 띄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멀쩡한 사람들 사이에 던져두니 그렇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표정이 무던해 어둡고, 어깨가 구부정한 주제에 덩치는 커서 툭 튀어나온 못 같다. 커다란 흉터도 썩 발랄하진 않았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수족관에 왔으니….’

자기만 해도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한 대 맞을 것 같다며 경계하지 않았던가. 일반인들 눈에 안 띌 리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정윤을 주변으로 동그랗게 빈 공간이 떠 있었다. 바로 앞에 선 부모가 아이 등을 안고 바짝 몸으로 끌어당긴다. 모르긴 몰라도 존재만으로 상당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건 분명하다.

“다들 날 보네.”

신기한 사실을 알아냈다는 듯이 정윤이 중얼거렸다. 매표소 직원이 다음을 부른다.

손에 넣은 티켓을 구겨버리고 진환은 앞서 들어간 정윤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으로 한 시간 전에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리면서.

‘물고기?’

황당해서 입이 다 벌어진다. 정윤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혼란스럽다. 혹시 태국에서 사용하는 은어인가? 새로 매매되는 약물 이름? 눈살이 찌푸려지는 와중, 정윤이 덧붙였다.

‘잡지에서 봤어. 비행기에서.’

‘뭐…?’

‘물고기 많고. 파랗고. 터널도 있는데….’

멱살이 잡힌 상태로도 태연하게 손가락을 꼽으며 나열한다. 아무리 들어도 정윤이 묘사하는 건 은어나 협박의 일종 같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수족관이다. 관광 안내 잡지에 나오는 퍼렇고 아기자기한 수족관. 작은 흉터가 난 약지 손가락이 차례를 맞아 구부러졌다.

‘가오리도 있어.’

‘가오리.’

‘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멱살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이가 없어 얼굴을 마주 본다. 정윤은 동요 없는 까만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돼?’

그래서 왔다.

수족관에.

어린애를 울리는 행색의 남정네와 함께.

입구에서부터 벽 하나를 가득 채운 탱크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풍경에 행인들의 표정이 들뜨기 시작한다. 진환 역시 잠시 동안 넋을 잃고 수족관 유리 너머를 응시했다. 아득히 높은 유리 벽 너머에서 은색 고기 떼가 무리를 지어 헤엄친다. 무심결에 손을 가져다 대자, 수조를 통과해 물결무늬로 휘어진 빛이 손등을 물들였다.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숨을 못 쉰대.”

정윤이 검은 줄이 나고 주둥이 부분을 죽 늘어놓은 것처럼 생긴 열대어 하나를 가리켰다. 가만히 바라보니, 정윤의 얼굴에도 같은 물결무늬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게 어쨌단 겁니까?”

“예쁘잖아.”

헛소리.

분명히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접선하는 장소거나, 물고기 밥에 코카인을 섞어 들여왔을지도 모르지. 진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힘을 풀지 않고 정윤을 관찰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새 진환은 투명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간을 채운 새파란 세계에 매료되어 버렸다. 물속의 세상은 고요한 동시에 동적이었다. 물고기는 끊임없이 헤엄치지만 저마다의 리듬에 맞춰 선다. 작은 고기 떼 너머로 다소 밋밋한 무늬의 물고기가, 그 아래로 깔린 수초에 조그마한 열대어 무리가, 걸음을 뗄 때마다 병풍처럼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걸 본 게 언제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윤은 저 앞, 어린이들 사이에 서서 해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저기까지….”

한숨이 흘러나온다. 잠자코 보고 있자니, 정윤의 눈동자 표면이 반짝였다. 물그림자가 동공에 부딪히며 찰랑이듯 빛난 것이다. 언제나 비할 바 없이 흐리멍덩했는데.

정말로 물고기가 보고 싶은 것뿐이었나?

그러고 보면 약에 취해 있을 때도 바다 얘기를 꺼냈었다. 그냥 물을 좋아하는 건가? 그렇다고 고작 이 정도를 요구해? 그런 일까지 도와 놓고서?

이대로 두면 뒤처질 것 같아, 걸음을 떼어 고루한 회색 기둥을 지난다. 의문이 이어졌다.

정윤은 대체.

어떤 인간이지?

시선이 무심결에 이어지는 수조 위에 닿았다. 수조 안에 희멀건 형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물고기가 아니었다. 사람이다.

숨골이 눌려 구겨진 얼굴, 마지막까지 돼지처럼 끌려간 퉁퉁 부은 몸통. 눈덩이가 큼직하게 떠졌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저건 박성수다. 제 손으로 죽여버린 박성수가 물 안에 잠겨 있다.

몸서리가 쳐졌다. 식은땀이 난 손을 움켜쥐며 숨을 들이켰다. 다시 살펴보니, 그건 덩치가 작고 흰무늬가 난 상어였다. 상어는 수조 벽 바로 앞에서 꼬리를 흔들다가 탄성 있게 휘어져 반대편으로 헤엄쳐 갔다.

팔에 돋은 소름이 돌아오질 않았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진환은 몸을 틀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로 걸음을 재촉한다. 걸어오던 커플과 부딪혔지만 후들거리는 다리가 멈추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달음박질친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저기. 가오리.”

수중 터널 위로 날개 넓은 새처럼 지나가던 가오리를 가리키며 정윤이 고개를 돌렸다. 푸른빛으로 물든 통로를 빽빽하게 채운 사람 사이, 진환의 얼굴은 없었다.

***

좆같아. 다 좆같아.

허리까지 오는 옥상 난간을 붙잡고 숨을 들이마셨다. 저만치 아래로 보이는 길목은 실외기며 내놓은 쓰레기봉투에 빽빽하게 틀어 막혔다.

손등에서 살을 후벼 파는 통증이 일었다. 담뱃불로 지져진 곳은 시뻘건 자국과 함께 피부 거죽이 벗겨지고 있었다. 손등을 움켜쥐고 주저앉는다. 고막까지 쿵쿵거리며 심장이 요동친다. 당장이라도 멈춰버릴 것처럼.

좆같아. 좆같아. 좆같….

“여기 있었어?”

앞 코가 다 해진 구두가 옆에 와 섰다. 고개를 들지 않고 버티니 상대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굳은살투성이의 손이 어린애처럼 제 무릎을 감쌌다.

“왜 먼저 갔어?”

“…….”

진환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작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다가, 정윤이 그를 따라서 일어났다.

“기억났어.”

배를 기대고 육중한 몸통을 성큼 앞으로 기울이자 낡은 난간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술 사달라고 했지. 퇴원하면.”

“…….”

“마시러 갈래?”

진환의 눈길이 돌아갔다. 정윤은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고, 있으나 마나 한 난간에 완전히 기대었다. 아치처럼 구부정한 어깨 탓에 덩치 좋은 등은 이상하리만치 초라하다.

그 위로, 진환의 손바닥이 자리 잡았다.

육 층은 족히 되는 높이다. 아래는 콘크리트 바닥이고, 완충이 될 만한 나무 하나 없었다. 손짓 하나면 끝이었다. 조금이면 된다.

조금만, 균형이 흐트러지도록 힘을 주어서 밀면.

그러면 모든 게 끝이 난다. 이 악몽이.

손끝이 시큰거린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손에 힘을 더한다. 조금이면 돼. 끝내버려. 제발. 제발. 제발.

손가락이 구부러진다.

“왜 그래?”

정윤이 돌아섰다. 주먹을 움켜쥐고, 진환은 눈꼬리가 올라가도록 눈가를 문질렀다. 참으려고 애써도 등신처럼 눈물이 치밀었다. 결국은 정윤이 눈치를 챘다. 그가 손을 뻗었다.

“어디 아파?”

짜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진환이 손을 내쳤다. 울분이 뒤집혀 숨을 들이마신다.

“내버려 두세요, 제발!”

왜 밀 수가 없었지?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난 건가? 살겠다고 벌써 멀쩡한 사람 하나 묻어놓은 주제에, 약에 취한 사람 구슬려서 녹음하고, 그 박경준이 밑에서 버젓이 프락치 짓 해가면서, 저 불쌍한 인간한테 거짓말을 한 주제에. 저 새끼 신세가 가여워서? 그따위 짓이라도 눈감아준 게 고마워서?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알량한 입맞춤 한 번 했다고?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제가 불쌍합니까? 가지고 노는 겁니까?!”

“…화났어?”

“아니면 도와주겠다고, 그런 소리를 지껄여서 이러는 겁니까? 그거 헛소리입니다. 개소리였다고! 나 당신 어떻게 되든, 좆도 신경 안 써. 나 하나 살기도 좆 빠지게 힘들어 죽겠어! 그런데 왜 형님은 이러십니까? 왜 자꾸 신경 쓰일 짓을 합니까? 내가, 사람을 죽여놨는데…!”

고막이 울린다. 뺨에 얼얼한 충격이 일었다.

“크게 말하지 마. 안 좋아.”

정윤은 차분했다. 감정이 아니라, 절제된 필요에 의해서 그랬다는 듯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가 진심을 다해 내리쳤다면 똑바로 서지도 못했을 테니까.

난간이 다시 삐걱거렸다. 느긋하게 몸을 기대어, 그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뭘 가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냐.”

“…그럼?”

“네가 도와달라며.”

“형님은 도와달라는 사람은 다 도와줍니까?”

느릿하게 고개가 돌아간다. 그의 뒤 저편, 매연처럼 뽀얀 대기가 공전하는 지구와 함께 개발 지대 너머로 흘러들어 갔다. 잠시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정윤이 입을 열었다.

“아니.”

다리에 힘이 풀린다. 진환은 비틀거리던 끝에 난간을 등에 대고 앉았다. 궁둥짝이 냉기 탓에 시큰시큰하다. 코끝이 함께 저리다. 빠질 듯한 눈알도. 흐늘거리는 어금니도. 이윽고 진환은 제 다리 사이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소라게처럼. 짠물이 밀려오며 바지 위로 방울져 떨어졌다. 끈끈한 소금물이 얼굴을 흠뻑 적셨다.

그리고 머리카락 위에 햇살이 닿았다.

따뜻하고 두꺼운 손이. 이상하게 부드러운 손길이 두피를 간질였다. 뿌리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아, 진환은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널 도와주고 싶었어.”

정윤이 속삭였다.

“그랬을 뿐이야.”

입이 벌어지며 갓난아기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윤의 팔이 단단히 어깨를 감싸 끌어안았다. 거기에 고개를 묻고, 하염없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끝까지, 정윤은 토닥임을 멈추지 않았다.

***

진환이 울음을 그쳤을 즈음, 정윤은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야 하는 곳이 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입씨름을 하기에 진환은 제법 지쳐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채 정윤이 말하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해가 저물어가는 석양을 뒤로하고 차가 외딴 길로 향한다.

어느새 차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창문 너머로 무질서한 빌딩 정글이 아닌 어둑어둑한 달빛에 젖어 반짝이는 지평선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니 인천 근처의 처음 이름을 듣는 동네로 향하는 길이었다.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겁니까?”

정윤은 묵묵하게 창밖을 보고만 있었다. 여러 번 읽은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그는 차분하게 스쳐 가는 까만 풍경을 응시했다.

“여기에서 왼쪽이야.”

도착한 곳은 야산의 다 허물어져 가는 절간이었다.

“…뭡니까?”

“절이야.”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아, 형님!”

석탑을 옆으로 하고 정윤이 걸어 들어간다. 곧 문을 닫을 시간이니 짧게 해달라는 스님에게 고개를 주억인 그는 스스럼없이 절간에 올라섰다. 절절매며 진환이 그의 뒤를 따랐다.

뭘 하면 좋은지 확실히 아는 사람 같았다. 향을 찾아 쥐고 촛불에 기울여 불을 붙인다. 정윤이 움직인 길을 따라 향에서 연기가 따라 피어오르다가 흩어졌다. 허물어진 재가 쌓인 쌀알 사이에 향을 꽂아 넣고, 정윤이 돌아본다. 그의 시선이 멀겋게 돌아와 꽂혔다. 아직도 절간 밖에 서서 바라만 보던 진환은 어이가 없어져 고개를 주욱, 뒤로 뺐다.

“뭐, 지금 절하란 겁니까? 거기에 대고?”

“아빠가 가끔 이랬어.”

“아버님이 말입니까?”

“잘못했을 때. 여기 와서 혼자 빌었어.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그런다고 상대가 고맙다고 하겠습니까, 괜찮다고 하겠습니까.”

“못 해. 죽었잖아.”

정윤이 향대 뒤로 앉은 불상을 올려다보았다. 썩 오래되지 않은 게 분명한, 도금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불상은 미소를 지으며 먼지 덮이고 낡은 절간을 내려다본다. 어둑한 절 안, 촛불을 받아서 간간이 일렁거리는 불상은 안도감이 들기보단 기괴했다. 그 얼굴을, 정윤은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럼, 왜 절을 하란 겁니까?”

“편해지니까.”

이윽고, 정윤이 무릎을 꿇었다. 가만히 나무 마루에 이마를 대고 있더니,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선다.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지독하게도 느리게.

슬슬 가만히 서 있기에도 추워진다. 팔을 문지르다가, 한숨을 내쉬고 진환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정윤이 그런 것처럼 향을 집어 꽂는다. 깜빡거리며 불씨가 향 끝을 태우고 내려간다.

절을 하기 전, 이미 엎드린 정윤에게로 느긋하게 시선을 돌린다.

“…뭐라고… 빕니까?”

“몰라.”

정윤이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형님은 지금 무슨 생각 하시는데요?”

“슬프단 생각. 약간 미안하기도 해. 그런데, 상관없어. 아마. 어차피 못 들어.”

결국, 진환은 정윤의 말에 따랐다. 퀴퀴한 향 내음은 조금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지만, 향이 모두 타들어 가고 무릎이 쉰 번이 넘도록 구부러졌다가 펴졌을 때 즈음 진환은 더 이상 시퍼레진 박성수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