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멀찍이서 들려오는 멧비둘기 소리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숙취 때문에 사방이 멀었다. 거인이 두개골을 두 쪽으로 쪼개는 것 같다. 위장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출렁거린다. 메스꺼움을 참으며, 진환은 묵묵히 언더보스와 정윤을 기다렸다. 박성수가 무어라 떠들었지만 대꾸할 기력도 남아 있질 않았다.
문에서 나온 경준은 공손하게 느껴질 만큼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잘 잤어요?”
잘 못 잤다, 개새꺄.
속내를 꾹꾹 눌러 삼키며, 진환이 마주 웃었다.
“예, 형님.”
짓밟혀도 웃어야 한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법 아닌가. 문을 닫아주고 고개를 든 순간, 진환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정윤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이 담백한 모습이었다.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몸에 꼭 맞는 양복 재킷을 입었다.
만에 하나 말을 걸까 무서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문을 열어주자 정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환은 눈을 내리깔았다. 하필 어제 그런 꼴을 봐서,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만큼 추운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신 차리자, 이진환.’
입술을 깨문다. 정신 차려야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
일주일이 넘도록, 진환이 바라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느슨한 생김새와 다르게, 언더보스는 빈틈을 만들지 않는 인간 같았다. 영업장에서는 언제나 둘 이상의 수행원이 주변을 지키고 있고, 거래는 쥐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못할 만큼 사적으로 진행한다. 도청기는커녕 허튼 움직임 하나 보일 수가 없다.
가장 큰 장애물은 정윤이었다.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려다가도 - 언더보스가 서류를 만지던 중에 담배를 태우러 가거나, 사적인 얘기를 나누겠다며 간부와 단둘이 사라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언더보스는 언제나 자물쇠를 채우는 것처럼 정윤을 그 자리에 남겨두었다. 그러면 정윤은 오도카니 서서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얼굴로 경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구부정하게 어깨를 구부린 채로,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서. 혼자서 무슨 일을 할 틈이 생기질 않았다.
‘진짜, 무슨 개새끼도 아니고….’
껄끄럽다. 나란히 정윤과 남겨질 때마다, 진환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던 후로 정윤을 도무지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둘만 있지 않을 때라고 신경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진환은 백미러로 보이는 정윤의 모습을 살핀다. 오늘도 여지없이 넥타이 없는 셔츠 차림이다. 무표정한 얼굴이 창밖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특별히 어디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조수석에 앉은 박성수가 필요 이상으로 살가운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형님. 사업장 마저 둘러보시겠습니까?”
“잠깐만.”
언더보스가 눈썹 언저리를 두드렸다.
“한 군데만 들르고요.”
언더보스가 말한 곳은 병원이었다.
죽어가는 김 회장이 입원한 곳이다. 김 회장이 쓰러졌을 때를 떠올리자면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다. 사람 하나 손에 먼지 한 톨 안 묻히고 생매장을 해버릴 수 있던 양반이, 치졸하게 룸방에서 놀다가 심장마비로 자빠지다니. 그 좁은 복도에서 육중한 몸을 날라야 했을 구급 요원들을 떠올리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누굴 나르는지 알기는 했을까.
차에서 내린 언더보스는 따라나서려는 박성수를 향해서 까딱이듯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갈게요.”
그 ‘혼자’에 정윤은 해당되지 않았다. 따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정윤은 언더보스가 그렇게 명령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뒤에 붙었다.
곧 박성수와 단둘만 남는다.
박성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몸에 밴 동작으로 불을 붙이자, 그가 퍽 만족스럽게 뻐끔거렸다. 길게 연기를 뿜고, 박성수가 말했다.
“여기 원장 아들 새끼가 약쟁인데, 부사장님이 공짜로 물건을 대 주고 있댄다.”
“누가 그럽니까?”
“어제 민 이사님이.”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진환이 그를 돌아보았다. 눈썹이 구겨진다.
“형님, 아직도 민 이사님이랑 어울리십니까?”
민 이사는 김 이사처럼 대놓고 적대적이지 않았지만, 속내를 모를 영감이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언더보스 자리를 빼앗은 경준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공공연한 서열 2위였으니, 만에 하나 이번 계승 자리가 잘못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지금 붙어먹어서 좋아 보일 것 없는 인간이다.
“아니 뭐, 한식구인데 안 될 거 있나.”
“그렇게 두 줄 타시다가 큰일 납니다. 부사장님이 알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괜찮아. 어차피 다 계속 볼 사람들인데.”
“그래도….”
“새끼가, 근데 자꾸-.”
박성수가 손을 들어 올렸다. 곧바로 입을 다물고 시치미를 뗀다. 박성수의 퉁퉁한 손이 꽁초를 구겼다. 담뱃잎이 으스러지며 떨어진다.
“나도 다, 계획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짜식아. 내가 씨발, 조직 밥을 몇 년을 먹었는데. 너 이유식 끊었을 때부터 먹었어, 새꺄.”
“예, 예.”
“새끼가 큰 그림을 볼 줄 몰라. 좁아터진 새끼.”
마음대로 하라지. 머리를 긁적거리고 넘긴다.
그사이, 박성수가 담뱃갑을 흔들었다. 소리를 들어보니 텅 비었다.
“이거, 다 떨어졌네, 이거.”
“사 오겠습니다.”
“어어. 이거 병원에 붙은 가게에서도 파나 모르겠네.”
“팔겠죠. 여기 장례식장도 같이 있는데.”
박성수의 담배 취향이라면 거실 바닥처럼 훤하게 꿰고 있다. 허공에 손을 흐느적거리면서 몸통을 돌렸을 때, 누군가 머리통에 와서 부딪혔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단단하다. 진환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씨발, 눈을 어디다가-.”
욕설을 지껄이며 고개를 들었다가, 진환은 곧바로 마른침을 삼켰다. 부딪힌 상대는 정윤이었다. 바로 아래에서 보니 커다란 덩치가 유별나게 와닿는다.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은 역광이 져 보일 정도였다.
“혀, 형님…. 제가, 그….”
좆됐다. 반사적으로 욕부터 하고 봤는데. 오도카니 응시하는 눈동자에 역시나 초점이 없다. 얼굴의 반절에 걸쳐 자리 잡은 흉터가 유독 위압적이었다. 으슥한 기운이 흘렀다.
정윤의 손이 서서히 들린다. 진환은 질끈 눈을 감았다. 머리통이나 뺨에 닿는 것은 없었다. 대신에, 정윤은 무언가를 가리켰다. 타고 온 세단이다.
“가방.”
“예…?”
“경준이가 두고 왔대.”
“아. 제가 꺼내겠습니다.”
“아냐.”
“제가 하겠습니다.”
기어이 웃으며 그의 앞에 끼어든다.
“말했잖습니까, 형님. 이런 건 막내 시키라고.”
“형님 아냐.”
“그 말씀, 왜 자꾸 하시는 겁니까?”
“…….”
정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뒤돌아섰다.
“곧 바빠져.”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기어이 제 손으로 가방을 들고, 정윤은 걸어가 버렸다. 한편에 묘한 찌꺼기가 남는다. 신발 속에 굴러 들어온 자갈처럼.
포스기 앞에 디스 한 갑을 올려놓고 난 후에야 진환은 그 찝찝함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첫 대화다. 방금 그것이, 지난 일주일 동안 정윤과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
***
바이털 사인을 알리는 신호가 병실 안에 울려 퍼진다.
수액 팩 두 개가 늦가을 감처럼 매달린 링거대와 간간이 빨간 불빛이 들어오는 생명 유지기 사이에 서, 경준은 김 회장을 내려다보았다. 산소 호흡기에 안개처럼 차오르다가 옅어지는 뿌연 입김을 제외하고 그에게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빛부터가 늙어 죽은 고목나무 같았다. 오래전에 죽었어야 마땅한 인간이니 당연하다. 경준은 특별한 유감을 느끼지 않았다. 갑갑함이라면 모를까.
뒤에서 망설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언제 목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김 회장 옆을 지키는 두 똥개 녀석이었다. 간호사가 두 번 채혈을 하고 지나가도록 아무 말도 않고 죽어가는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무슨 말을 던지면 좋을지 망설이는 듯했다. 경준은 중환자실에 들어오기 전 반강제적으로 껴야 했던 라텍스 장갑을 벗었다. 병실에는 김 회장 혼자뿐이었고, 김 회장을 죽일 수 있을 만한 요소는 세균 감염을 제외하고도 무수히 많았다.
드러난 맨손으로, 경준은 김 회장의 핏줄이 불거진 손을 감싸 잡았다.
“저 왔어요.”
마침내, 경준이 입을 열었다.
“야위셨어요. 병원 밥이 입에 안 맞나봐.”
수액이 연결된 튜브가 경준이 붙든 손바닥, 그 바로 아래의 동맥을 관통한다. 포도당이 든 액체가 좁다란 관에 차올라 일렁거리며 끊어지는 숨통과 함께 아스라이, 시선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증발한다.
주름지고 차가운, 근육의 꿈틀거림마저 느껴지지 않아 기괴할 만큼 뭉클한 손. 경준은 그 손이 명령하고, 암시하고, 거머쥐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감미로운 추억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너 하나 처리하는 데, 몇 분이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냐?’
어느 밤, 김 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항구가 끄트머리만 내다보이는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여기 이 손. 까딱하는 데 십 초. 저놈이 오는 데 이십 초. 목을 꺾어버리는 데 삼십 초.’
책상 위의 스탬프에서 흘러나오는 주황색 조명이 빛의 전부였다. 어깨에 각이 잡힌 검은 정장을 입고, 그림자를 뒤집어쓴 김 회장의 모습은 본래의 덩치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일 분이다. 난 일 분만 있으면 널 없는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어.’
“알아요.”
경준의 대답이 허공에 흩어졌다.
“알아요. 김 이사님 아끼신 거. 아들처럼 오냐오냐해주시고. 사업 뒤도 많이 봐주시고. 저보다 훨씬 먼저 식구로 받아주셨죠? 굴러들어 온 돌은 이쪽이지.”
다친 동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경준은 검버섯이 돋아난 손등을 문질러 내려갔다.
“저라고 이러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가족끼리 싸우고 싶어서 싸울 때가 얼마나 되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
툭 튀어나오고, 움푹 꺼지고.
“-김 이사님이, 말썽을 부리시잖아요. 다들 참… 마음을 몰라줘요. 그러니까.”
한때에는 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던 인간이었다. 죽어도 닿지 않을 권력을 지닌 것처럼. 일 분 안에 한 사람을 없는 존재로 만들 수 있던 손이, 파리 새끼 하나 못 죽이게 말라비틀어져서는.
“와, 계셨네.”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 이사다. 일주일 전 이사 회의에서 보고 처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취향이 고약한 블레이저를 입었다. 구두는 병실 천장에 진 얼룩이 보일 만큼 반짝거린다.
“참, 사람 앞길 모를 일이지.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그러게요.”
바이털 사인이 배경에 울린다. 잠든 김 회장은 나무 같다. 대나무 숲에 들어온 듯이 평화롭다.
“김 이사님 얘기 들었지?”
하지만 민 이사는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땅문서만 남기고 튀었다던데.”
“헛소문이에요. 은퇴하신댔어요. 본인이 편지도 남기고 갔던걸.”
“은퇴든, 야반도주든 간에, 그, 안 쫓아가 봐도 되겠나?”
“앞가림 알아서 잘하시겠죠. 원하실 때 보내드리는 것도 예의예요.”
“혹시, 어디로 가셨는지….”
경준이 눈을 흘겼다. 민 이사가 웃는다. 코 옆에 난 사마귀가 보기 싫게 씰룩거렸다.
“그래. 우리 부사장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려고.”
민 이사가 어깨를 두드린다. 미세하게, 경준의 눈썹이 찡그려졌을 때였다.
예리한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던 바이털 사인이 어느새 신경을 거스를 만큼 가쁘게 울리고 있었다. 눈길을 돌리니 허옇게 치켜뜬 김 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눈꺼풀이 칼로 벤 것처럼 또렷하게 올라가 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경준은 고개를 치켜들어 자리를 지키던 두 조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사 불러오고, 연락 돌려. 어서!”
두 장정이 병실을 나섰지만,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무어라 중얼거리던 민 이사가 기어이 병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러자, 고목나무 같은 손가락이 경준의 팔목을 붙잡았다.
산소 호흡기 너머로 김 회장의 입술이 뻐끔거렸다. 애써 말하려는 것 같았다.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경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한다는 듯.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처음 만났을 때,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세요?”
경준이 물었다. 김 회장의 입은 멈출 줄을 모르고 달싹거렸다. 의식이 있는 것인지, 살겠다고 가슴은 껄떡거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팔다리가 비틀린다. 바이털 사인이 점점 가빠지며 정신머리 없는 전자 음악의 선율처럼 어지럽게 울리고, 튀어 오르고, 고조되어 발작하다가, 평정을 찾는다. 이명 같은 기계음이 병실을 메웠다.
김 회장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다. 눈동자는 뒤로 돌아가,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흰자위만 보인다. 온화하게 그를 마주 보며, 경준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이 맞으셨어요.”
뛰어 들어오는 의사들 저편으로 정윤의 얼굴이 보였다. 웃음을 머금고, 경준은 정윤의 손에서 가방을 가져왔다. 복도를 걷다가 세 번째 빨간 문, 청소 카트로 위장한 손수레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가방을 내민다. 가방을 받은 남자는 아는 체도 않고, 더러운 이불보 아래에 회색의 조그마한 슈트케이스를 집어넣었다.
한 달 치 병원비, 그리고 약간의 안정제 값은 충당하고도 남을 양이다.
돌아오는 차에서, 정윤이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치 경준이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해서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었을 것처럼. 잠시의 고민 끝에, 경준은 손을 뿌리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어떻게 그를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정윤은 버림받은 개새끼를 연상시켰다. 그것도 피부병이 생기고 다리를 저는 못생긴 개. 흰자위 없는 짐승의 눈처럼 정윤의 눈동자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경준은, 정윤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기분에 종종 사로잡혔다. 로르샤흐 테스트의 의미 없는 얼룩처럼, 저 멍청한 머릿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본질에 대한 답. 규칙에 대한 답, 이기는 것에 대한 답, 치졸함에 대한 답, 우리가 답을 찾기를 거부하는 바닥 없는 질문에 대한 답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