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31)

#2

“왜 그랬어?”

정윤이 중얼거렸다. 혹사당한 성대에서 모래를 삼킨 듯한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등을 댄 시트는 구김이 가고 난잡한 얼룩이 져 있었다. 어둑해진 창 너머에서 타이어 마찰음이 들려온다. 한바탕 범해진 몸은 움직일 기운 없이 침대 위에 누워, 호흡을 할 때에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셔츠 소매의 단추를 잠그다, 경준이 그를 돌아보았다.

“뭘요?”

“도망갔잖아.”

아. 아까 그거.

경준은 대답 없이 짤막하게 친 머리카락을 지분거렸다. 머리를 만지던 경준의 손이 미끄러져 뒷덜미에 스쳤다. 죽은 듯 누웠던 몸뚱어리가 움찔한다. 이 정도의 자극으로도 반응하게 만들다니. 그 중국 놈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경준은 나직이 웃음 지었다.

“창피했어요? 새삼스럽게?”

턱 아래를 간질이다 널찍하게 그의 목을 감싸 쥔다. 감촉을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긴장해 펄떡거리는 경동맥의 진동이 손바닥 아래로 잘게 전해졌다. 정윤은 횟집 수조에 갇혀, 구석까지 닥쳐온 뜰채를 피하려는 도미처럼 턱을 젖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지도 몰라.”

“안 할걸요.”

“어떻게 알아?”

그 새끼는 너한테 반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려던 경준은 말을 집어삼켰다. 그는 정윤이 자신 안에서 괴물을 발견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거미줄일지언정 지금의 나락에서 빠져나갈 구실을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엄지를 뻗어 입술을 훑었다. 남성적인 몸집과 흉터 진 얼굴 때문에 정윤은 언뜻 보기에 불곰 같은 인상을 줬다. 그에 걸맞게 정윤의 몸은 부드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배위로 박아댈 때면 음탕하게 출렁거리는 가슴 근육도 곱지 않은 살결 때문에 매끈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자갈밭 같은 손바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몸의 몇몇 부분들은 여전히 신기할 정도로 보드랍다. 경준은 그런 곳들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눈꺼풀, 턱 아래, 머리카락 사이, 그리고 윗입술.

“말하면 또 어때요. 궁금하면 한 번씩들 해보라지.”

“뭘?”

“정윤 씨랑 빠구리 뜨는 거요.”

정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해보면 다들 이해할걸요? 정윤 씨 진짜 꼴려요. 박아도 박아도 계속 볼기짝 들이대면서 더 넣어달라고 빌잖아. 그런 거 보고 안 웃는 새끼, 이 바닥에 없어요. 처음이 어렵지, 맛 들이면 불알 두 짝 움켜쥐고 매일 와서 졸라댈걸. 그래도 배려를 해줘야겠죠? 맨정신에 창놈 새끼한테 박고 싶은 놈은 많지 않을 테니까. 정윤 씨는 얼굴에 흠집까지 있잖아요. 봉투를 씌울까요? 아니면 엉덩이만 내밀고 상반신은 못 보게 만들어야 할까?”

손바닥 안의 고동이 점점 벅차오른다. 핏줄이 펄떡이며 곤두서는 것이 느껴질 만큼.

질리질 않아. 경준은 배시시 웃으며 깨문 탓에 울혈이 맺힌 아랫입술과 턱의 볼록하게 나온 선을 따라 엄지를 쓸어내렸다. 여러 남자들에게 던져지는 건 정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었다. 주삿바늘보다도. 총구보다도. 배 위에 붉은 마커로 내장 딸 선이 죽죽 그어진 채 포크처럼 번뜩이는 은색 테이블 위에서 버둥거리는 것보다도.

그건 버려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턱뼈를 지난 손가락이 목을 감쌌다. 조이듯 힘을 싣는다. 정윤은 반항하지 않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따뜻한 물결이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기분이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미소를 머금게 되는 저릿함.

“정윤 씨.”

대답이 없다. 경준은 계속했다.

“정윤 씨.”

“…응.”

“농담이에요.”

널뛰던 박동과 꿈틀거리던 혈관이 서서히 느슨해지며 평형을 찾는다. 목을 놓은 경준은 널찍하게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정윤은 오래전에 초점이 사라진 시선으로 경준을 응시했다.

“안 돌릴 거야?”

“안 돌려요.”

“정말?”

“그럼. 그러다 헐렁해지면 어떡해.”

손을 떼어내자, 날숨과 함께 정윤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눈꺼풀이 닫힌다.

“고마워.”

귀엽긴. 웃음이 나온다.

“별말을요.”

침대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타이밍 좋게 주머니에 넣어둔 업무용 대포폰이 진동했다. 예상하던 번호다.

창문에 기대어 전화를 받으면서, 경준은 전조등 불빛이 궤적을 그리며 오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바쁘게들 산다. 사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상대의 말이 끝난다. 거울처럼 반지르르한 창문 유리가 몸을 일으킨 정윤의 모습을 비췄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경준은 손을 들어 그에게 신호했다. 경준이 말했다.

“금방 갈게요.”

***

재개발 지역. 허물어지기 직전의 주택가 앞에 검은 세단이 멈추어 선다. 먼저 와 기다리던 꼬붕이 문을 열어주었다. 경준은 유리 조각이 깔린 시멘트 길 위에 발을 디뎠다. 칠이 벗겨진 담장이 줄기가 되고 벽돌 사이를 메운 거미줄이 잎사귀가 되는 정글. 어둑한 탓에 살풍경한 주변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디선가 폐휴지 탄내가 났다.

피아노 건반이 조잡하게 그려진 간판이 무너진 도미노처럼 드러누운 걸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김 이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실핏줄이 터져 시뻘게진 눈으로. 동아줄로 의자에 묶인 팔다리가 경준을 알아보자마자 요동쳤다. 경준은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이사님. 생각보다 더 금방 뵙네요.”

인간이 입을 다물고 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발악이 대답 대신에 돌아왔다. 뒤통수까지 포장된 횟감처럼 테이프에 돌돌 말렸으니 사람 말을 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자음이 없을 뿐, 얼추 알아들을 만했다.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은데.”

경준은 고개를 까딱였다. 뒷짐을 지고 대기 중이던 꼬붕이 곧바로 그의 옆에 다가왔다. 머리를 빡빡 깎고 덩치가 집채만 한 비열하게 생긴 놈이다. 그가 검은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은빛으로 생긴 도구를 꺼내 들었다. 김부광 이사는 눈을 가늘게 떠 잘 맞지 않는 초점 사이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썼다. 나이프? 아니. 스크루다. 와인병 코르크에 찔러 박아 단번에 뽑아낼 때 사용하는.

용수철 모양으로 구부러진 스크루의 첨단이 김 이사의 눈알을 향해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곧 얼굴 가죽이 벗겨져 나가는 통증이 뺨을 할퀴었다. 붉은 자국이 길쭉하게 남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붕은 스크루 꼭지로 이미 반나절이나 그의 얼굴 가죽에 들러붙어 있던 테이프를 끊어 냈다. 테이프가 단번에 뜯겨진다.

볼썽사납게 발진이 일어난 하관이 노출되자, 김 이사는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말을 외쳤다.

“이러지 말지, 박 이사. 좋게 해결하자고, 우리. 좋게.”

경준은 김 이사를 여러 가지 이유에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런 점만큼은 보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존경했다. 일관성 있고, 순진한 면.

“그러게 뭘 그렇게 빼돌려서 처드셨어요. 콩고물 주워 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곳간 털어서 떡집 차린 수준이던데.”

“오해야, 박 이사. 다 오해라고.”

“김 이사님.”

경준은 담배를 꺼내 물고 손을 까딱였다. 내내 조용히 그를 지켜보던 정윤이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개비 끄트머리에 자작거리며 불씨가 붙는다. 한 모금을 빨아올린 후, 경준은 실실 웃으며 김 이사를 응시했다.

불이 붙은 꽁초가 김 이사의 허벅지를 짓눌렀다. 작은 불씨가 살갗을 지지는 잡음이 단말마의 비명과 뒤섞였다. 김 이사의 이마에 터질 듯이 핏줄이 섰다. 개비가 뜯어져, 담뱃잎이 장딴지를 감싼 고급 재질의 양복바지 위로 바스러졌다.

불이 꺼진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박경준은 손을 털었다. 그는 더없이 유감이라는 듯 팔자로 눈썹을 잡아 내렸다.

“정말, 이사님. 저라고 이러고 싶겠어요? 한 가족이잖아요, 우리.”

“가족은 씨펄….”

김 이사가 씩씩거렸다. 광대뼈부터 턱선까지 이어지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려 목덜미 위로 걸쭉하게 떨어진다.

“그래. 회장님이 너 예뻐하셨지. 그거 때문에 너도 대가리가 커졌을 거야. 근데 회장님 이제, 안 계셔, 이놈아. 이제 너 삐끗했다고 덮어줄 사람 없어. 이따위 식으로 날뛰면 너한테도 안 좋아. 내가 걱정이 되어서-.”

칼로 토막을 낸 듯,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주절거리던 김 이사가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경준의 섬뜩하리만치 묵직한 시선이 어느새 그에게 내리깔려 있었다.

잠깐의 침묵 후, 경준이 입을 열었다.

“이사님. 이렇게 보니까 미남이세요.”

김 이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인마?”

“훤칠하시다고요. 눈도 부리부리하고. 키도 크시고.”

옆으로 손을 뻗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꼬붕이 저편으로 걸어갔다. 갈라진 시멘트와 조각난 유리가 이불솜처럼 바닥에 깔린 구석, 이질적으로 빛나는 은색 철제 테이블 앞으로 다가간다. 그가 테이블 위에서 집어 올린 것은 펜치였다.

“그런데 약간, 부정 교합이네.”

경준이 미소 지었다.

“고쳐드릴까요?”

첫 번째에서는 김 이사도 반항을 했다. 의자가 땅에 끌리도록 몸부림을 치는 쥐뿔만 한 것이나마 반항이라면 반항이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 그는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집게가 들어차 턱이 벌어져 있어 잘 들리지 않았다.

여섯 번째에 이르자, 고요함이 되돌아왔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벌어진 입 안에 펌프질이라도 한 것처럼 검붉은 진액이 줄줄 쏟아져 고였다. 흘러내린 핏물이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때가 되어서야 경준은 펜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는 어깨를 쥐고 뻐근한 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팔 아파.”

시뻘건 흰자위만 보이는 두 눈을 피해, 정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제는 꼼짝도 하지 않게 된 김 이사의 뒤로 새까만 그림자가 쉬익 지나갔다. 들쥐구나. 태국에서도 가끔 봤어. 여기에서 뭘 먹고 살지? 돌이나 유리밖에 없을 텐데-.

“정윤 씨.”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어, 정윤이 고개를 돌렸다. 경준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재킷을 뒤졌다. 답답할 만큼 느릿한 동작으로. 오른쪽, 그다음에는 왼쪽 주머니를 번갈아 뒤적였지만 빈손만 나올 뿐이다. 포기하지 않고 오른쪽 안주머니로 손끝이 돌아간다.

숨죽여 지켜보던 꼬붕마저 속으로 한숨을 내 쉴 즈음이 되어서야 그가 물건을 찾았다. 길에서 호객용으로 나누어주는 휴대용 물티슈였다.

얼추 손을 닦아내고, 경준은 얼룩진 티슈를 김 이사의 다리 위에 던졌다.

“폐차장 어디인지 알죠?”

꼬붕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없이 다정하게, 경준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돌아서 걷기 시작하자 정윤이 자석처럼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냉동고 속 같은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밝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

씹창 낼 새끼 박경준.

잔 위가 불룩해지도록 소주를 붓는다. 찰랑거리다 못해 넘칠 지경이 되어서 병 모가지를 되돌린다. 입으로 향하는 길에 흘린 몇 방울을 제외하고, 그렇게 담긴 술은 단번에 진환의 위장 속으로 들어갔다.

엿 먹이려고 그랬어. 날 엿 먹이려고 그런 거야.

술잔을 내리쳤다. 동그란 막창집 테이블이 진동해 깍두기 접시가 뒤집어질 뻔했다.

그 비역질을 보고 언더보스의 집에서 뛰쳐나간 후, 진환은 곧바로 술을 찾았다.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껄떡거리는 정윤의 얼굴, 좆질을 당할 때마다 맥없이 들썩이던 육중한 가슴 두 짝, 그 공간에서 풍기던 괴이한 씹질 냄새. 아무리 알코올을 쏟아부어도 계속해서 그 순간의 기억이 섬광처럼 눈앞으로 지나갔다. 진환은 토기가 올라올 때처럼 억세게 입을 감싸 쥐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언더보스가 호모라고 치자. 그게 뭐? 박경준이 상또라이 새끼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21세기에 그 정도는 신기한 축에도 못 든다. 언더보스가 남자랑 떡을 치든, 좆을 빨든, 솔직하게 말해 진환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회상은 거기에서 멈추질 않는다. 거기서 목격한 것에는 그 이상의 역겨운 면이 있었다. 뒤엉킨 장면들은 모두 마지막 한순간으로 귀결된다.

‘미안해.’

왜 사과를 해? 뭘 잘못했는데?

병 모가지를 잡는다. 콸콸 쏟아지도록 병을 기울이려는 순간, 누군가 손목을 붙들었다.

“야, 야, 이 봐라. 걸작이네, 이 아래위 없는 새끼가….”

박성수였다. 동백꽃 프린트까지 된 시뻘건 셔츠를 걸치고 바지를 배까지 올려 입은. 할 일이 없을 때면 술집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잦은 놈인데, 하필이면 오늘이 그 할 일이 없는 날인가 보다. 하기야, 저 새끼는 거의 매일이 그렇지.

상황 한번 예술적으로 돌아가네. 진환이 한 손으로 감각이 없는 얼굴을 문질러대는 동안, 박성수는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디 짱박혀 있나 했더니, 혼자 술을 처먹고 있어? 이거, 빠졌다 빠졌다 했더니 아주 쓸개까지 다 빼놓고 다니네, 이제?”

“아, 진짜!”

알코올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객기를 불렀다. 손을 뿌리치고, 진환은 박성수를 향해 악을 썼다.

“전 뭐 술도 혼자 못 먹습니까?!”

“뭐, 이, 이 미친놈이….”

박성수의 눈이 튀어나올 듯 둥그레졌다. 허깨비를 보는 것처럼 아래위로 훑어보는 시선에 좋지 않은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곧바로 응징이 이어졌다.

“너 이 새끼야,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말을 해. 새끼야. 소원이냐? 어? 소원이야?”

주먹이 머리를 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네 대를 연이어 때리자 진환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항복 선언을 했다. 박성수는 콧김을 뿜으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혼자 세 병을 깠어? 허, 진짜 죽고 싶었나 보네, 이 새끼.”

“복잡한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형님. 복잡한 일이 있어서.”

“니미, 핑계 없는 무덤에서 제삿밥 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어. 이모님! 여기 알탕 하나!”

인두겁이 도깨비 빤스보다 질긴 박성수가 겹겹이 쌓인 빈 소주잔 더미 위에서 하나를 집어 올렸다.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던 빈 병의 개수는 착실하게 불어갔다. 알탕에 들어간 것이 무인지 청포묵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취하고 나자, 진환은 어느새 박성수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새꺄.”

박성수가 술잔을 꺾었다.

“요즘 단속 만만치 않은 거 알지.”

“예, 뭐. 근데 늘 안 그렇겠습니까.”

“이번엔 진짜 이상해. 알 수가 없는 것까지 짜바리 놈들이 알아 가지고 온단 말이야. 이거, 누가 안에서 부는 건 아닌지, 이거….”

말이 이어지기 전, 진환이 그의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쇼, 좀. 부회장님도 오신 마당에 누가 감히 그럽니까?”

“그거야 뭐, 그렇지.”

달게 차오른 술을 들이켠다. 두개골에 바위가 든 것처럼 고개가 까딱거려, 진환은 비스듬하게 턱을 괴었다. 박성수의 헛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무튼, 회까닥하면 훅 가는 수가 있어.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 돌아버리면 안 돼, 어?”

말은 존나 많아, 꼰대 새끼가. 교훈도 스토리도 없는 말을 한 시간이 넘게 듣자 속이 다 메슥거렸다. 덕분에 멍하니 머리가 비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으니, 고맙다면 고마운 일이다. 진환은 이마를 짚은 채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예, 형님.”

“부르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속 터져 죽겠다, 가끔.”

“예, 형님.”

“그리고 술 먹을 땐 성수 형이라고 불러, 새꺄.”

“예, 형님.”

박성수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하도 취한 나머지 이제는 아프지도 않다. 진환은 휘청이며 박성수의 빈 술잔을 채웠다. 단번에 털어 넣고, 크, 소리를 낸 후 서비스로 나온 계란프라이를 젓가락으로 쭉쭉 찢는다. 진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냐.”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야, 야, 야.”

박성수가 그를 불러 세웠다. 볼까지 불그스레해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그가 손을 저으며 입을 비죽거렸다.

“문 반대쪽이야, 이 띨띨한 새끼야.”

***

화장실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오줌 묻은 휴지가 돌돌 뭉쳐 흘러넘치는 휴지통에서 한 발 비켜 볼일을 본다. 하마터면 벽을 보고 잘못 조준할 뻔했지만, 하느님의 가호가 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어디에서인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뺨을 몇 차례 찰싹 때리고 들으니 고양이 소리라는 걸 알겠다. 발정기인가? 가깝다. 저기 저 아반떼 밑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떡이 될 만큼 취했으면서 고양이는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진환은 무릎까지 숙이고 앉아 승용차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바닥에 우둘투둘한 아스팔트 바닥이 박힌다.

과연, 무언가 아른거리면서 움직인다. 시커먼 길고양이 하나가 흉흉하게 눈알을 빛내며 울어대고 있었다. 입을 쭉 찢어 울 때마다 벌건 혓바닥이 입천장까지 뻗쳤다.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 아무래도 어미가 집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불쌍한 자식.”

진환이 말했다.

“나도 알아, 새끼야. 울 엄마도 그랬어.”

고양이가 울음을 멈췄다.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자꾸만 졸음이 와 내려앉는 눈꺼풀과 싸우며, 진환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근데, 네가 더 안됐다. 집도 없고, 형도 없어서.”

형.

자기가 내뱉은 그 단어에 진환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형님 아닌데.’

바로 오늘 아침, 차에 타면서 중얼거리던 정윤의 모습. 두드러지는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맹한 그 얼굴. 언더보스 위에 올라타 허리를 흔들어댈 때마다 큼직하게 볼록 나온 가슴이 따라서 들썩이며 움직였었다. 유두에 박힌 피어싱과 함께.

자위 도구처럼 마구잡이로 박히고 있는 주제에, 짐승처럼 울어대면서 더 해달라는 듯이 매달렸다. 즐기고 있는 것처럼.

식도가 울컥한다. 뒤늦게 쏟아부은 알코올이 위장에서 소용돌이를 치며 구역질을 일으켰다.

저항할 수 있을 만한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어이, 눈 위에 토사물이 쏟아졌다. 안주랍시고 입에 구겨 넣었던 깍두기가 끔찍한 곤죽이 되어 쏟아졌다. 역하고 시큼한 악취가 입 안에 맴돌았다.

입가를 문지르며 승용차에 몸통을 기댄다. 그냥 걸었다가는 고꾸라질 것 같았다.

“씨발. 좆같은 걸 봐가지고.”

차 아래에서 날 선 울음소리가 났다. 맞아. 고양이.

허리를 숙여 살펴보니 고양이는 이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중이다. 타이어가 있는 구석까지 가더니, 둥글게 등을 말고 하악대며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털이 곤두서면서 멍게처럼 삐죽하다. 갑자기 오물이 쏟아져 놀란 것 같았다.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뛰쳐나가 버린다.

그래, 가라, 가. 네 앞가림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휘청거리며, 진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등 뒤로 인기척이 스쳤다.

검은 팔이 진환의 입을 틀어막았다. 옆에서는 팔뚝을 붙든다. 팔다리를 움직일 사이도 없이, 그의 몸이 들려 올려졌다. 진환은 발작이 온 사람처럼 고개를 비틀었다. 문이 열린 봉고차가 그를 기다렸다. 그는 가죽 시트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차 문에 뒷머리를 부딪쳐 반사적으로 욕설이 나온다. 차 문이 닫혔다.

“출발해.”

알고 있는 목소리. 동시에 봉고차가 앞으로 움직여 나간다.

술이 확 깬다. 찧은 뒤통수를 붙들고 끙끙거리던 진환은, 악을 쓰며 조수석에 앉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강 반장을 향해서.

“내가 먼저 연락한댔잖아!”

진환이 소리쳤다.

***

진환이 마지막으로 형을 본 건 작년 여름이었다.

반팔 와이셔츠를 입을 시기였다. 버스 정거장 담배 가게만 한 크기의 창구.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형을 본 기억이 난다. 강화 유리 너머의 형은 전에 봤을 때보다도 야위었다. 광대뼈 위에는 못 보던 멍 자국이 생겼다. 진환은 차마 어쩌다 생긴 상처냐고 묻지 못했다.

“이순자야, 진환아.”

형이 말했다.

“이순자 할머니. 나 그 할머니랑 있었다니까. 이름이 이 자, 순 자, 자 자랬어. 똑똑하게 기억해. 내가, 내가 머리는 좀 달려도, 사람 이름은 기억 잘하잖아. 너도 알지? 어?”

“알아, 형.”

“늘푸른 요양원 다닌댔어. 그 교회 건너편 건물 있는 데 있잖아. 큰손주가 미국에 있는 대학 다닌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시고…. 진환아, 제발 거기 좀 찾아가서 물어봐. 명단이나 씨발, 뭐,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이나 찾아가 보았다. 그 요양원에 형이 말하는 이순자 할머니는 없다. 동명이인의 노친네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형이 범행을 저지르던 시각 서울에 사는 손주네 집에 있었다. 형이 일하던 야매 한방 병원에는 발도 디딘 적 없다.

설령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지난달 형에게 내려진 징역 25년형이 쉽게 뒤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물증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취객에 의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

장정 두 명이 뒷골목에서 칼빵을 맞아 죽었다. 선량한 양반들이었다. 한 명은 주차 단속 경찰, 다른 한 명은 무슨 벤처 기업 사장. 경찰은 CCTV를 추적해 같은 인상착의를 가진 용의자를 추려냈다.

그렇게 찾아낸 게 형이었다. 비슷한 체격과 옷차림에,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도 일치한다. 기소하기에는 충분했다.

형은 계속해서 주장했다. 어르신이 거동이 불편하시다기에 집까지 가서 시술을 하고 있었다고. 약주를 권하시기에 몇 잔 마셨는데, 그게 독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고. 하지만 분명히 같이 있었다고. 새벽까지 함께 있었다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았지만, 형은 아직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입에 담는 대신, 진환은 이렇게 말했다.

“알아볼게.”

형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진짜 내가 안 죽였어, 진환아.”

유치장에서 가진 것까지 합하면 이제 열한 번째 면회였지만, 모두 마무리는 같았다.

“나 억울해서 안 돼. 내가, 씨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나….”

형이 울먹였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 진환은 또 오겠다는 인사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치소 주차장 뒤편에 서, 진환은 담뱃갑을 찾았다. 옆의 가로수에서 매미가 울고 배 한 척만 한 구름이 지나간다. 볕이 따갑다.

‘내가 안 죽였어, 진환아.’

진환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진환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다. 술만 처먹던 빌어먹을 놈의 아버지는 트럭에 치여서 개죽음을 당하고, 뼈 빠지게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형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이부터 일곱 살 어린 진환의 보호자 노릇을 했다. 머리를 감겨주고 밥을 차렸다. 옷이 작아지는 것 같으면 새 옷을 구해줬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형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화를 낼지언정 진환의 앞에서 욕설 한 번 뱉지 않았다.

되먹지 않은 놈으로 자란 그와 달리, 형은 꿋꿋하게 직업을 얻었다. 결혼을 하고 살림까지 차렸다. 일이 이 지경이 되기 직전까지, 진환은 종종 조카를 부러워했다. 좋겠다, 넌. 우리 형 같은 아빠가 있어서.

그런데 지금 철창에 갇힌 건 생양아치 새끼인 그가 아니라 형이다.

“좆같다, 인생.”

볼이 들어갈 만큼 깊숙하게 담배를 빨아 마신다. 세 개비를 한번에 해치우고, 하나를 새로 꺼내려는 참이었다.

남자 하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퉁퉁한 체격에, 한 달은 머리를 안 감은 듯 초췌한 인간이었다. 담배를 문 채, 라이터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가 시선을 돌렸다.

“불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무심하게 그를 쳐다보다가, 진환은 사용하던 일회용 라이터를 그를 향해 던졌다.

“가지시든가.”

“고맙습니다. 그, 이진환 씨 맞으시죠.”

따가운 늦여름 볕 아래, 배 속에서부터 냉기가 퍼진다. 남자는 허옇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청명파 따까리.”

진환은 망설임 한 점 없이 그의 멱살을 붙들었다. 남자는 양손을 내밀며 말고삐를 당기는 것처럼 ‘워’ 소리를 냈다.

“뭐 그렇게 놀라고 그래. 양아치라고 써놓은 것처럼 생긴 새끼가.”

“당신 짭새야?”

“서울지방경찰청 특수수사본부 소속 강민수.”

“지랄하네.”

그를 밀친다. 진환은 담뱃갑을 쥔 채로 걸어갔다. 멀어지려는 낌새를 보면서도 강 반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등에 대고 그가 말했다.

“그 참, 형 일은 안됐다. 사람 착해 보이던데. 술 한번 잘못 먹었다가 저게….”

“좆 까, 씨부럴 새끼야.”

“내가 검사 몇 명이랑 좀 아는 사이거든.”

진환이 멈칫했다. 뒤를 돌아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하, 좆이나.”

“어허? 어제도 같이 술 먹었다. 네 형 얘기 좀 하면서.”

“술값 날렸어, 그래. 나 프락치 짓 안 해, 짭새 새끼야. 쪽팔려서 안 한다고. 쪽팔려서.”

“징역 5년. 아니, 2년 반으로.”

“누굴 호구로 아나.”

“못 할 것 같니? 뭐. 그 양반들 이력서 한번 쫙 뽑아다 보여줘?”

마른침이 넘어갔다. 빈틈을 보이려 하지 않았지만,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의 그 간극이 강 반장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강 반장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진환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 대단한 짓 하라는 거 아니다, 이진환.”

뻣뻣하게 굳은 진환의 주머니에, 그가 모서리가 둥글고 단단한 물건을 밀어 넣었다. 검은색 대포폰이었다.

“형 감방부터 당장 옮겨줄게. 3성 호텔급으로다가.”

“…꺼지시지.”

“그래, 뭐. 그럼 네 형 형량 채울 때까지 빵에서 썩으라고 하든가. 그, 참.”

강 반장이 검지를 들었다. 수를 세듯 머리 옆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그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조카가 몇 살이라고 했던가.”

***

그렇게 이진환은 프락치가 되었다.

운전이나 하고 술주정 들어주는 게 일의 전부였던 진환으로서는, 조직이 굴러가는 정보를 담은 문서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박성수에게 접근했다.

원래 진환은 행동대장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대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가리를 숙이고 있는 게 현명한 시기였다. 특히 박성수 옆에는 김종식이라는 성질머리 더러운 말종 새끼가 붙어 다니는데, 이 새끼가 새 둥지 어슬렁거리는 뱀처럼 텃세를 부렸다.

‘눈 깔아, 이 새꺄.’

김종식이 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했다. 생긴 게 어리바리하다나, 눈깔이 마음에 안 든다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주먹질 하나로 꽤 일찍 행동대원이 된 진환을 경계하는 게 뻔히 보였다. 툭하면 새벽에 진환을 불러 터무니없는 심부름을 시키고, 조그마한 일로도 트집을 잡곤 했다.

아래굴림이 컬처인 조직 생활에 찍혀서 좋을 게 없는 법이다. 온갖 부조리한 상황에도 진환은 말 그대로 알아서 기었다. 고분고분하고, 존재감 없이, 하라는 대로 다 굴렀다.

그렇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고개만 숙이고 있어서는 알짜배기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형의 재심까지 일 년 반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경찰이 살살 녹을 정보를 가져오려면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박성수와 단둘이 차를 탄 시점, 진환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실은 저, 형님 전설 듣고 청명파 들어왔지 말입니다.”

과거의 명성이 흐릿해지고, 조직 안에서의 위치까지 흔들거려서 이 새끼 저 새끼 돌아가며 붙어먹게 된 박성수였다. 아부 좀 떨어서 눈에 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다음부터는, 술이었다.

포섭 기술? 탐문 기술? 그런 건 개나 주라지.

무조건 술이다.

술을 먹이고, 먹이고, 빼는 것 같으면 똥꼬를 핥아주면서 존나게 처먹였다.

잔이 비우면 채워주고, 비우면 채워주고, 마시는 게 뜸해지는 것 같으면 알량한 자존심을 추켜세워 주면서 비우도록 만들었다.

계속 먹였다. 정말 많이 먹였다. 죽도록 먹였다.

이러다 이 새끼 아니면 나 둘 중 하나는 급성 간경화로 쓰러지겠다 싶을 만큼 술을 먹인 어느 날, 꽐라가 된 박성수가 베를린 장벽처럼 드라마틱하게 무너졌다. 작업에 들어가고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일수 가방에 손을 댈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안에는 예상 그대로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날 막 결재를 받아 온 불법 도박장 운영 서류.

손자국이라도 남을까, 땀이 난 손을 꼭꼭 닦은 다음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불법 도박장 운영 현황과 청명파에서 떼어먹은 사천만 원가량의 세금에 관한 정보가 팔 인치짜리 액정에 고스란히 담긴다.

강 반장은 늘 그때 전달한 구식 대포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장소와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다. 통화는 길어도 오 분을 넘지 않았다. 수집한 정보는 그 자리에서 전달하는 게 원칙이었다.

첫 번째 정식 랑데부는 어린이집 뒷마당 놀이터, 그네에서 이루어졌다. 새벽 세 시였다. 존나게 쫄았다.

진환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강 반장의 반응은 예상과 딴판이었다.

“이게 다냐?”

“뭐…?”

“그렇게 기고만장하더니. 겨우 이거 보여주겠다고 날 불렀어?”

“겨우 이거? 겨우 이거어?!!”

억울함이 북받쳐 삿대질을 했다.

“씨발, 내가 그거 가져오겠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기는 해? 나 황달 온 거 안 보여?!”

“황달이고 황태고, 이걸로는 씨알도 안 먹혀, 애새끼야.”

강 반장이 허공에 폰을 던졌다. 시멘트 바닥에 팔 개월짜리 약정이 박살 나기 직전, 진환이 폰을 낚아챘다.

욕을 뱉으며 액정을 열정적으로 문질러 닦는 동안, 강 반장은 옷 안쪽을 뒤적였다.

“우리가 괜히 귀하신 검사님까지 들먹이면서 너 구워삶은 줄 알아?”

강 반장의 손에 끌려 나온 건 증거품 딱지가 떡하니 붙은 지퍼락이었다. 투명한 봉투 안에 알약이 차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품 사탕처럼 보이지만, 진환은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이거 알지. 너희 물건이다. 뭐 클립인가 어쩌군가….”

“…그게 왜.”

“태국으로 튄 너네 언더보스가 무슨 수를 썼는지 이게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어. 이 잡듯이 뒤지는데 입국 루트를 알아낼 수가 없단 말이야.”

“뭐. 약 파는 곳이라도 알려줘?”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네, 새끼가. 인마. 너 일부러 그러냐?”

“아니 그러니까, 바라는 게 뭐냐고, 진짜!”

“너네 업장 운영하는 거, 클럽에서 약 파는 거, 우리도 그 정도는 다 파악하고 있어. 근데 그거 가지고 김 회장 명성에 스크래치 하나 나겠냐, 어? 청명파 간판이 그 정도로 떨어지겠어?”

“…….”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그 대답이야, 강 반장도 진환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니까.

“김 회장 떡고물 받아먹은 놈이 경찰에만 몇 명인지 모른다. 웬만한 걸로는 영장 못 받아. 아니, 입건도 안 돼.”

“그럼 난 왜 끌어들인 건데?”

“화진이라고 들어봤냐?”

진환의 눈썹이 꿈틀, 일그러졌다.

말단이긴 하지만 청명파에서 일 년 가까이 굴렀다. 그런데도 낯선 이름이다.

“…그게 뭔데?”

“태국발 지하 범죄 집단. 삼합회 수족 같은 놈들인데, 이건 알 거 없고. 그 자식들이 하필이면 미국 본토까지 가서 밀수하느라 FBI 수배 명단에 떡하니 걸렸단 말이야. 아무래도 너네 언더보스가 창의적으로 약을 구해 오는 게, 그 자식들이랑 사이가 각별한 것 같은데, 심증만 있지 지금까지 뭐 확실한 게 없다고.”

강 반장이 말을 이었다.

“이것만 잘 엮으면 다른 거 필요 없어. 단번에 낙찰이야. 국제 수사인데 어떡할 거야? 영장, 압수수색, 구속까지. 하이패스로 쫘악.”

신이 났던 강 반장의 연설이 뚝 끊겼다. 진환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하품을 했기 때문이다. 살벌하게 저를 보는 것을 무시하고, 진환은 조소 지은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놀고 있네. 그래서, 태국 간 언더보스 사정을 내가 무슨 수로 알아내는데?”

강 반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약이 든 지퍼백을 안주머니에 도로 넣더니, 빠져나온 손이 우아하게 진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 씨발! 왜 때려!”

“싸가지가 없어서 때렸다, 인마.”

그네에서 후줄근한 바지가 걸쳐진 엉덩이를 떼어내고, 강 반장이 옷을 털었다.

“그 정도는 네가 알아내. 석방 명령장, 그거 안 싸다.”

얼얼한 뒤통수도 뒤통수지만, 그때 본 얼굴이 더 울화가 치밀었다. 사람을 벌레 새끼 보는 것처럼 깔보는 저 눈빛이라니.

게다가 말이 쉽지. 태국 쪽 일은 이진환이 몸담은 행동 부대와는 완전히 다른 부서 얘기였다.

제 전문은 빚 안 갚는 놈들 찾아가 꼬장 부리고, 구역에서 물 흐리는 놈 있으면 쥐어패는 정도다.

그러나 언더보스 박경준은, 문자 그대로 급이 다른 비즈니스에 속한 인물이었다.

저 같은 말단은 털끝 하나도 못 건드릴 구름 위의 인간.

그러니 당연하게도 지금까지는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김 회장이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박경준이 제 발로 입국하기 전까지는.

***

“이 짭새 새끼가 드디어 미쳤나!”

조수석 등받이를 뻥뻥 걷어찬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지만,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팔짱을 낀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이를 갈며 멱살을 붙든다. 뒤에서 등빨 좋은 사내 하나가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진환은 계속해서 윽박질렀다.

“나 물 먹이려고 이래요? 누가 봤으면 어쩌려고?!”

“그러게 왜 전화를 안 받니, 쪼다 새끼야.”

“어디에서. 언더보스 앞에서? ‘예, 예, 반장님. 지금 한창 염탐하는 중입니다. 안 그러셔도 프락치 노릇 자알, 하고 있습니다, 예.’ 그래? 씨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언더보스?”

무심하던 강 반장의 표정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너 박경준이랑 있었냐?”

“저녁 내내 같이 있었습니다.”

강민수 반장이 손을 저었다. 믿지 못하는 눈치로 형사가 진환을 놓았다. 아 씨, 팔을 뒤로 젖히며 성질을 부리고, 진환은 옷 터는 시늉을 했다. 그가 등받이에 대고 몸을 젖혔다.

“알아서 잘하겠다고 했잖아요. 씨팔, 어떻게 된 게 공권력이라는 새끼들이 양아치보다 신의가 없어, 양아치보다.”

“허, 기특한 새끼.”

강 반장이 머리를 움켜쥐고 관자놀이에 주먹을 비벼댔다. 씨팔. 욕설을 울컥 뱉으며, 진환이 그를 밀어냈다.

“그래서. 뭐 건진 건 없고?”

“그 새끼 호모던데.”

“무슨 헛소리야, 그게?”

“호모라고.”

말하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진다. 진환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태국에서 갑빠 있는 호구 새끼 하나를 데려왔는데, 그 자식이랑 떡치더라.”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 새끼가 보여줬어.”

“빠구리 뜨는 걸?”

고개를 끄덕인다. 봉고차 내에 탄식이 돌았다. 옆에 앉은 험악한 인상의 형사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듣던 대로 변태 새끼네, 그거.”

“잠깐.”

강 반장이 끼어들었다. 그가 신중하게 진환을 응시했다.

“태국에서 데려왔다고?”

“어.”

“거기서 만났대?”

진환은 오늘 오전, 정윤과 짤막하게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겼다.

“그런 것 같던데.”

“허.”

강 반장이 웃음 지었다. 불쾌한 조소로 시작한 웃음이 곧 만면으로 번져나갔다. 저 미친 새끼 또 왜 저래. 인상을 쓰고 쳐다봤지만, 강 반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까슬까슬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야, 이게. 또 이렇게 풀리네.”

“왜, 뭐. 두 분 소개시켜줘? 오붓한 만남 가지시게?”

“닥쳐, 이 쪼다 새끼야.”

담배를 빼 물은 채, 강 반장이 고갯짓을 했다. 흙감자 같은 떡대 형사가 그에게 지퍼백을 던졌다. 이어폰처럼 생긴 동그란 장치가 들어 있었다.

“최신형 송신기 되시겠다. 배터리도 존나 오래가, 그거.”

“이걸 어떻게 해?”

“어쩌긴 뭘 어째. 떡치는 사이라며. 둘이 다정하게 뭐. 추억도 나누고, 일 얘기도 하고, 그럴 거 아냐.”

“그러니까, 녹음을 하라고?”

“넌 설치만 해. 듣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불법 도청 아냐?”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쪼다 새끼가. 다 법원에서 허락받고 하는 짓이다.”

저 깡패 새끼나 진배없는 짭새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진환은 노골적으로 불만 어린 표정을 하고 봉투를 점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말은 존나 쉽게 해. 언더보스 편집증 있는 거 몰라? 사무실에는 발도 못 들이게 할 텐데, 씨발….”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호모라며. 딸이나 한번 쳐주든가.”

“씨발.”

진환의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다.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조수석 등받이를 걷어찬다.

“세워, 씨발 놈들아. 그만 세워!”

블록을 돌아 봉고차가 원래의 골목으로 되돌아왔다. 차가 멈추고 덩치가 공수부대 훈련관 같은 자세로 차 문을 열었다. 진환은 옷깃을 털고 차 밖으로 뛰어내릴 채비를 했다.

“다음부터 이따위 식으로 접촉하기만 해봐. 언더보스가 아니라 심장마비 때문에 뒈지겠네, 씨발.”

“이진환.”

“왜, 또 왜.”

“이진환.”

진환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 반장을 돌아본다. 강 반장의 표정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장승 같은 기분 나쁜 웃음은 없어지고, 곧은 시선이 흔들림 없이 이곳을 응시했다.

“나 약속 꼭 지킨다. 그거 알아둬.”

차 문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짭새 새끼가 폼 재기는. 열린 문 사이로 얼음장 같은 바람이 들어온다.

“그래야지.”

진환은 문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난 씨발, 목숨 걸고 하는 짓인데.”

***

술집에 돌아오니, 아주머니 한 명이 절절매며 테이블 주변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잘 보니 박성수가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말만 많고 한심한 새끼. 아주머니를 죄송하다는 말로 타일러 보내고, 진환은 테이블 위에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려놓았다. 박성수의 어깨를 들었다. 몸이 들춰지자 정신이 돌아오는지, 박성수가 입을 열었다. 술내가 풍긴다.

“진환이냐?”

“예. 저 왔습니다, 형님.”

“너, 이 새꺄…. 똥줄이 길어, 씹새가….”

“죄송합니다, 형님. 여기 계산이요.”

“그, 내가 산다, 진환아.”

“아닙니다, 형님.”

“진짜야, 새꺄. 형님을 물로 알아, 좆만 한 놈이….”

개하고는 말하는 게 아니랬다. 묵직한 한숨을 삼키고, 진환은 발끝이 질질 끌리는 박성수를 업다시피 하며 걸었다. 무겁다, 새끼. 찌든 담배 냄새도 지독하다.

초승달을 위로 하고, 전구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가로등이 줄지어 선 골목길을 반 이상 걸어갔을 무렵, 박성수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익숙해질 만하면 딸꾹. 견딜 만해지면 딸꾹. 확 어디 버려두고 갈까.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였다.

“진환아.”

한숨을 삼킨다.

“예, 형님.”

“너 괜찮은 놈이야.”

진환은 조용히 그를 돌아보았다. 박성수는 여느 때보다도 볼품없게 취해 있었다. 눈도 추스르지 못하고, 고개는 힘없이 꺾였다.

“…너 괜찮은 놈이라고, 인마. 그러니까, 마. 청승 떨지 말고 똑바로 살아. 시키야….”

고개를 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주머니 속에서 지퍼백이 덜렁거렸다. 수신기를 담고 있는 지퍼백이.

한 번 더 그를 고쳐 들고, 진환이 중얼거렸다.

“예. 형님.”

“허, 말에 영혼이 없어, 새끼가.”

술에 취한 박성수의 주먹은 간단히 제칠 수 있다. 고개 위로 흐느적거리는 주먹질이 지나갔다. 박성수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어쭈, 시키가 피해?”

“안 피했습니다.”

“안 피하긴 뭘 안 피해, 이게 따악….”

박성수가 다시 주먹을 들었다. 아까보다 세게 때릴 심상인지 높게도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크게 휘둘릴 뿐이었다. 박성수의 몸뚱어리가 우스꽝스럽게 앞으로 기울다가 고꾸라진다. 넘어지며 길 가장자리에 쌓아둔 더러운 눈 더미에 얼굴이 파묻힌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속으로 혀를 차면서 박성수 앞으로 다가간다.

“괜찮으십니까, 형님.”

“잠깐. 나 반지. 반지 빠졌는갑다.”

“반지 멀쩡하게 잘 있습니다. 일어나세요.”

손목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은색의 두꺼운 실버링이 박성수의 손등에서 번뜩였다. 전에 사귀던 여자랑 맞춘 반지던가, 그랬다. 손가락이 두꺼워서 억지로 빼도 안 빠질 것 같은데. 취할 때마다 청승이야, 이 새끼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

한 시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예고도 없이 눈이 내려 길이 얼어붙은 탓이었다.

“이거, 비상등 켜놓고 한숨 자도 되겠네.”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앞차를 응시하다가 홧김에 글로브박스를 걷어찬다. 강 반장이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클래식 연주회가 시작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할 때처럼 도로 곳곳에서 경적이 메아리쳤다.

다리를 건들거리던 강 반장은 라디오를 틀었다. 한물간 가요가 흘러나온다. 아는 노래였다. 눈을 감고 흥얼거린다. 달밤에 개 우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창법에 봉고차에 탄 두 명의 형사들은 똥 씹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뒷좌석의 형사가 창문을 열었다. 담배 찌든 내가 진동하는 내부에 찬 바람이 끼쳤다. 숨통은 트였지만 갑갑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눈발이 몰아치는 걸 바라보다가, 형사가 물었다.

“왜 꼬드겼습니까? 그 양아치 새끼.”

강 반장의 끔찍한 콧노래가 잦아들었다. 그가 까치집이 진 머리를 긁적였다.

“절박하잖냐.”

“잘못하면 반장님도 불리해집니다.”

“그거야 뭐, 안 걸리면 그만이지.”

“선배님.”

형사의 시선이 강 반장에게 돌아섰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잡아야겠습니까?”

“…위에서 잡으라잖냐.”

“김 회장 오늘내일하는 거 죽고 나면, 지들끼리 치고받고 한 대거리할 게 뻔한데. 그러고 나서 빡세게 단속 한번 들어가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살아남은 놈들이 만만할 때 얘기고.”

“청명파 위상, 그거 옛말입니다.”

“지금까진 박경준이가 없었으니까.”

형사가 말문을 멈춘다. 강 반장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거운 눈빛이 전조등으로 어스름히 드러난 꽉 막힌 도로를 응시했다.

“넌 몰라. 그 후레자식이 어떤 새끼인지.”

“어, 어, 움직인다!”

운전석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문 채 강 반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드디어 움직이는가 싶었던 앞차는, 30cm도 더 가지 않아 도로 멈추어 섰다. 그럼 그렇지. 머리를 긁적거리던 강 반장은 아예 창틀에 팔을 턱 하니 걸치고 고개를 틀었다.

처음 박경준을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눈이 내리는 통에 장례식장 복도가 지저분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안색 하나 안 변하고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섰더랬지. 그놈 아버지는 죽어서 발견됐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갈 만큼 목에 깊은 흉터를 지고서.

청명파 놈들 짓이다. 장부를 건네받기로 한 것을 알아차리고 먼저 수를 쓴 것이다. 불 보듯이 뻔한 상황이었건만, 이를 법정에 증명할 증거는 없었다. 수사팀은 흉기조차 찾아내질 못했다. 송아지 눈처럼 맑은 눈동자가 울지도 않고 문상객들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뜨끔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작전은 실패하고, 저 어린 것은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책임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행동을 한 건. 몇 달간, 그는 최선을 다해서 경준의 뒤를 돌봤다. 살갑게 굴지는 않았지만 몇 번인가 불러서 고기를 사주고, 연말이 다가오면 종종 용돈이라고 몇만 원씩 쥐여주기도 했다. 대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냐고 어른다운 얘기를 하기도 했다. 붙임성이 있는 꼬맹이는 아니었지만, 예의가 깍듯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한 것이 영 싹수가 노랗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 반대다. 그는 단박에 이 꼬맹이가 웬만한 경찰서 꼴통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연락이 끊어졌다.

아마도 삼 년 정도였던 것 같다. 적어도 강 반장의 기억에서 영정 사진과 맑은 두 눈깔이 흐려지기 직전이 되었을 시점이었다. 경준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인천 출신 조폭 한 명 뒤를 캐던 중이었다. 주소지를 알아내 집 안을 뒤지는데, 백화점에서 나눠주는 종이봉투를 든 곱상한 청년이 문가에 서 있었다. 어린 티는 벗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박경준이었다.

“이렇게 삐뚤어지면 안 돼.”

강 반장은 그 애의 앞에 담배를 내밀었다. 항구 근처. 하수구 물처럼 탁한 바다가 일렁거리고 테트라포드 사이로 짭짤한 해조류 악취가 올라왔다.

“인간 말종들이랑 어울려서 좋을 거 없어.”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인마.”

그러자 소년이 미소 지었다.

“형사님. 그때, 흉기 못 찾으셨죠?”

소년의 손가락이 일렁이는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잘해라, 이진환.’

강민수 반장은 생각했다.

들켜서 좆되지 말고.

***

원룸에 들어가기 전, 진환은 담배를 피우며 몸을 녹일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새벽, 어디서 바락바락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러다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닌지 몰라. 빌라 담벼락에 등을 대고 깊게 빨아 마신다.

하여간 멍청한 새끼. 사람 볼 줄도 모르고.

처음 강 반장을 만났을 때 매미가 울어댔으니, 프락치 짓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솔직히 말해 쫄려서 뒈지는 줄 알았다. 강 반장과 접선이라도 한 날에는 누구랑 눈 마주치는 것도 무서웠다. 웃대가리가 부르는 날에는 똥꼬가 찌릿찌릿하고 손마디가 시릿했다. ‘새끼발가락 하나’ 얘기를 전해 듣고 난 후에는 더 그랬다.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지는 멀쩡하게 관짝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진환은 점차 비밀을 안고 뻔뻔해지는 법을 터득해 갔다. 원래 배신을 밥 먹듯이 때리는 게 양아치다. 다른 양아치 새끼들 몇 명 짭새한테 팔아넘기는 게 뭐 대수인가?

이 정도 일은 할 수 있다.

한두 번 더러운 것도 아니고.

콧등 위로 차가운 솜털이 내려앉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이 내린다.

핸드폰이 울렸다. 달력 앱으로 설정해 놓은 알림이 작동한 것이었다. 화면을 보던 진환의 얼굴이 배시시 휘어졌다.

「동준이 생일」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슬슬 선물로 뭘 받고 싶으냐고 한번 톡이나 넣어봐야겠다. 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겠지만, 꿋꿋하게 캐물어서 알아내야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한 개비가 금방 다 타들어간다. 이것만 피우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하나만 더 태울까. 약간 아쉬운 마음에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부스럭거리며 비닐 팩이 만져진다.

“…씨.”

피우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담배를 던지고,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침대에 엎드려 누워 그 ‘최신형 송신기’라는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서, 형태는 단순함을 넘어 조잡하기까지 했다. 동그랗고 까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카메라 렌즈 덮개 같아 보이기도 하고 페트병 뚜껑 같기도 했다. 가운데에 작동 스위치가 있다. 달칵, 시험 삼아 눌러보자 붉은빛이 조용하게 들어왔다. 이렇게 전원을 틀면 되는 모양이다.

강 반장 그 새끼, 말은 존나게 쉽게 해. 사실상 고양이 목에 방울 거는 역할을 맡은 거나 다름없다. 김 회장은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다. 대한민국에서 양아치 짓 하면서 이 정도로 성공하려면 가차 없이 철저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김 회장 밑에서 양아들처럼 일을 배운 박경준은, 그의 갑절로 예민했다.

사무실에는 언제나 최측근들이 대기 중이고, 모르긴 몰라도 감시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접근할 수가 없었다. 행동대장 정도 되면 모를까. 저 같은 말단은 호출을 받지 않는 이상 발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영업장은 관리가 덜 철저하지만, 강 반장이 원하는 정보를 얼마나 가져다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전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은….

‘씨발. 그만.’

눈을 감고 떨쳐보려고 하지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입 안을 휘감던 감촉. 열기를 담아 올려다보던 눈빛이.

가슴 두 짝은 달리고 가랑이는 텅 빈 인간이 아니면 침대에 들이지 않았던 인생이다. 남자하고 잘 생각은 죽어도 없다. 만에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이 꼴린다고 해도 뼈도 얇고 흰 녀석이 상대겠지, 정윤 같이 덩치가 곰만 한 사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허리를 움켜잡고 좋을 대로 유린당하던 몸통이. 새카만 좆이 들락거리던 부어오른 밀부가. 감정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쾌락에 울먹거리던 모습이.

‘좆같아.’

발기가, 가라앉질 않는다.

취해서 그래.

상상 속에서 제 위에 올라탄 정윤이 허리를 들썩인다. 박아댈 때마다 암캐 같은 목소리로 울어댄다. 음부를 움켜잡고 흔들어대며, 진환은 자신에게 되뇌었다. 좆같은 양주는 맛도 못 보고, 등신처럼 소주만 퍼부어댔어. 그 바람에 이 짝이 났잖아. 좆같은 언더보스. 좆같은 형. 좆같은 고양이. 좆같은 강 반장. 좆같은 정윤 그 새끼. 좆같은 박성수. 좆같은 술. 좆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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