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알파, 그 베타의 사정 2권
#저에겐 당신이 처음이라서.
여름은 뜨겁고 진득해서 몇 번을 씻고 씻어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더운 여름에 할 일은 왜 그리 많은지 도윤은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계획을 세웠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그런 도윤에게 어느덧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찼다. 그건 당사자인 도윤과 새로움을 가지게 해 준 사람만 모를 뿐, 그 주위 사람들(친구나 동생)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윤은 하민을 마음에 두고 있다. 잔뜩 겁을 먹어 느릿하게 발을 떼었더니 저 먼발치에서 윤하민이라는 존재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꽃받침을 하며 왜 이제야 왔어요? 하고 웃어 줄 것만 같은 얼굴로 도윤을 홀려 버린 하민은 한 가지만 바라보느라고 본인이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실없이 웃기만 했다.
그의 알파 페로몬은 과연 누구를 향해서 반응하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 그토록 꽁꽁 숨기고 있다가 한 번에 빵 터트려 망가진 걸까?
하민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겨를이 없는 도윤은 오늘도 묵묵부답인 핸드폰을 바라보며 신중하게 다 건너 버린 돌다리 끝에서 하민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미련하게도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자신의 심장이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채로. 그렇게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렸다.
도윤은 밤늦게 하민에게 톡을 보냈다. 아침에는 그에 대한 답장이 왔을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건 단잠에 깨어 곧장 화장실을 들리고 하민이 만들어 준 향낭의 냄새를 맡기까지 몰랐던 사실이다.
향낭이 주는 향기로움을 흡입하고 있다가 문득 이 향이 하민의 알파 페로몬과 똑같은 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메가였던 동생의 말로는 거칠지 않은 향이었다는 말도 떠올랐다. 그냥 윤하민이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답장을 빠르게 주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1이라는 숫자를 지워 내는 윤하민이라는 그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앉은 하민이라는 존재는 도윤에게도 상당한 기쁨 내지는 침묵이라는 단어처럼 푹 가라앉은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곤 했다.
생기. 고작 이러한 단어 하나로 어제 새벽녘부터 지금까지 조용한 핸드폰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별일 아니겠지. 늦잠이라도 자는 걸 수도 있고. 그런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살면서 이런 적이 있었던가…?
“꽃집에 직접 가 봐야겠어.”
요즘 들어 소셜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는 아망떼는 상당수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애정 어린 시선에 하민이라는 존재 또한 포함이 되었다. 그래서 아망떼의 주인은 항상 바쁘고 꽃을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둘러싸여 도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걸 알면서도 도윤은 뻔질나게 먼발치에서 아망떼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윤하민을 바라봤다.
꽃들에 싸인 하민. 바라보고 있어도 알아봐 주지 않던 하민….
그것이 도윤은 익숙했고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민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으면 한다고 여기는 때가 생겼다. 이러한 마음이 왜 생겼는지 도윤은 의아하게 여기고 괜한 기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괜한 기우가 또 찾아왔다. 도윤은 고작 하루 정도 하민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온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점심이 되자 도윤은 아망떼로 갈 준비를 마쳤다. 톡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연락이 없으니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답이 없다. 후줄근한 차림을 최대한 깔끔하게 바꾸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오늘도 기온은 높고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흐를 것만 같은 날씨였다. 건널목 근처까지 깔린 자갈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아망떼를 사이에 둔 신호등이 보였다. 그리고 밖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꽃들의 형상들이 보이질 않았다. 아망떼의 문은 닫혀 있었다.
꽃집이 닫힌 걸 확인했으면서도 도윤은 기어이 건널목을 건넜다. 바로 눈앞에 있는 아망떼의 외관을 좇으며 하민의 행방을 찾으려고 했으나 허탕이었다. 도윤은 끝내 하민을 만날 수가 없었다.
몇 분을 허망하게 기다리며 얼빠진 상태로 있다가 도윤은 발걸음을 떼었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도윤은 터덜터덜 빌라로 향한 길을 걸으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며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보낸 톡에 1이라는 숫자가 여전했다. 이상하게도 입가에 씁쓸한 내음이 몰렸다.
도윤은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잠을 청했다. 몇 시간을 잔지도 모를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날이 바뀌어 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이틀 전과 다를 바 없는 화면에 머뭇대기만 했다.
됐다. 언젠가는 연락하시겠지.
도윤은 그리 어물쩡 넘기며 하민의 연락을 받지 못한 두 번째 날은 친구인 재우와 전화 통화를 하고 동생인 재윤과 카톡도 했다. 그러다가 재윤과 카톡을 하다가 하민에게 힘내라고 했던 말을 잘 전해졌냐는 물음에 애써 놓아두었던 의문을 끄집어내었던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 같은 것이었다.
도윤이 재윤에게 물었다. 형이 잘못한 것도 없음에도 무시를 당했고 답장도 그 무엇의 사소한 행동도 얻질 못했노라고.
재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형을 나무랐다.
내동생
형이 너무 무뚝뚝하게 대해서 질린 거 아냐?;; 형 좀 성격이 그렇잖아. 둔하고 무뚝뚝하고 남한테 특별히 관심도 안 가지고ㅋㅋㅋ 나였으면 진작에 손절했어... 오후 20:05
오후 20:06 아냐. 그래도 잘 대해 준 것 같았는데; 너가 말하는 그 정도는 아니야.
내동생
그건 형 생각이지; 내가 만난 알파중에는 집착이 과한 경우도 있었어. 러트라도 오면 그게 더 심해질걸? 그 사람도 알파라며. 그럼 러트 때 어땠는지 봤을 거 아냐? 오후 20:07
“러트?”
동생의 물음에 도윤은 곰곰이 지난날을 되짚어 봤다. 하민이 러트를 했었나? 싶었지만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러트가 와서 행동이 달라지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매번 똑같았고 다를 바가 없는 일상이었는데.
오후 20:10 재윤아. 알파 러트도 오메가랑 비슷한 시기에 와?
내동생
아마도 그럴걸? 왜? 그 분은 좀 달랐어?ㅋㅋ 오후 20:11
“아…….”
도윤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동생
??????형?????? 왜???? 뭔일인데 그래? 오후 20:15
여지껏 하민한테선 러트의 낌새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동생과 톡을 끝낸 뒤, 도윤은 생각이 많아졌다. 하민이 여태껏 러트를 겪지 않았다면 알파라고 했던 그 사실은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따져 보면 그럴 만한 이유는 특별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럼 하민의 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걸까? 베타인 도윤은 아무것도 알 겨를이 없었다. 형질자에 대한 부분은 자신이 깊게 관여할 문제도 아니었다.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걱정이 되지?
도윤은 딱 하루만 기다려 보기로 다짐했다. 추측으로 생각한 모든 일이 다 엇나간 허상일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3일 째가 되던 때에.
“하민 씨. 저예요, 우도윤. 문 좀 열어 주세요.”
도윤은 하민의 집 앞에 서서 그가 있을 곳을 향해 문을 두들겼다.
하민의 집까지 오기 전 도윤은 동생과 한 번 더 전화 통화를 했다. 저번 톡에서 나눈 대화를 재차 전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부분은 동생에게는 두리뭉실하게 전했다. 도윤은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은 없었다. 그랬던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재우 정도였고, 돌아가신 아버지뿐이었다. 특히나 동생인 재윤에게는 늘 든든하고 믿음직한 형으로 남고 싶었기에 더욱이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를 다지며 자신도 깨닫지 못한 마음에 흠뻑 빠져서는 여지껏 보여 왔던 형의 모습을 지워 버린 참이었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알파분이 연락이 안 돼? 왜? 정말로 형이 싫어진 건 아니고…?’
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윤은 고개를 내저었다. 보일 리가 없는데도 그랬다. 정말로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동반하면서.
그러면서도 도윤은 자신이 무언가 실수라도 했는지 한참을 상념에 빠졌다. 허구한 날 톡을 여러 번 하고 몇 초 만에 답을 꼬박꼬박 주었던 사람이 어째서 며칠째 묵묵부답일까? 하는 그런 고민이었다. 잡념이 늘어 가던 차에 재윤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럼 직접 집으로 찾아가 보든가. 바로 아랫집이라며? 뭘 고민해, 나라면 진작 찾아갔을걸. 이럴 때마다 형 진짜 둔하고 답답한거 알아 몰라? 가 봐. 가서 시원하게 물어보면 되지.’
어쩌면 도윤은 이미 답을 정해 놓았었나 보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머릿속에 꽉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걸 보니.
그리고 결과가 지금처럼 늦은 시각 아랫층까지 내려와 하민의 현관문을 두들기고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하민 씨. 집에 안 계세요?”
쾅쾅쾅
문을 두들기다가 크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핸드폰을 두들겼다. 굵은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 글자들은 하민을 향한 집에 알아서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겠노라는 선전포고였다.
‘언제든지 치고 들어오라고 했었잖아.’
꿀꺽 침을 삼킨 도윤이 도어락을 눌렀다. 하민의 집 비밀번호는 도윤의 생일이었고,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민이 지겹도록 톡으로 형의 생일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그리 떠벌렸으니 어련했을까.
삑삑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철컥 문이 열렸다. 한 번쯤 망설이던 도윤이 마음을 다잡고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마찰음과 동시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약병과 주사기, 그리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알약 무리였다. 중간에 뚜껑이 반쯤 닫힌 무언가 익숙한 핫핑크색 상자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도윤은 한차례 경험해 본 기억이 있다. 동생이 병원에서 처방을 잘못받아 히트사이클을 죽도록 겪었던 때가 떠올랐다.
‘형. 나 죽을 것 같아. 형 살려 줘.’
고통에 몸서리치며 저를 잡고 놓지 않던 동생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지는 듯했다. 죽어 갈 것처럼 꺽꺽대던 그 목소리가.
‘위험해.’
그때 상황과 비슷한 광경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자 목 뒤로 소름이 확 끼쳤다. 도윤의 얼굴이 급격히 딱딱하게 굳었다. 침착함을 유지한 채로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는 주사기 하나를 집어 든 그가 짙게 인상을 썼다. 불안한 기분이 엄슴하며 숨이 목젖 끝까지 차올랐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큰일 났다. 하는 말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끔찍한 때가 떠올랐고 깊은 트라우마가 도윤을 덮쳤다.
그는 그렇게 인상을 굳혔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뗄 때마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 가는 게 두려웠다. 두근거림이 점점 잦아들면서 명치가 채한 것처럼 저릿하게 막혔다.
퀸사이즈로 보이는 침대가 한가운데 자리했고 그곳에 텐트처럼 불룩 튀어나온 작은 언덕이 보였다.
자신을 꽁꽁 숨기며 죽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던 하민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페로몬을 느낄 수 없는 베타는 자욱하게 깔린 알파의 페로몬에서 자유로웠다. 도윤은 이러한 상황이 행운이라고 여기며 침대 옆에 폭탄 맞은 듯 정돈되지 않은 구급함을 뒤졌다. 그 안에 그나마 멀쩡하게 남아 있는 작은 병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주사기를 찾아 헤맸다. 바로 그 순간.
“……하아-.”
묵직한 하민의 숨소리에 침착하게 주사기에 약을 빨아올리던 도윤의 손이 멈췄다.
일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이 흘렀고 알파와 베타의 눈이 마주쳤다. 뜨거운 여름밤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혼란스러운 날씨였다.
숨을 쉴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공기가 들썩거리는 듯했다. 쥐어 짜내며 천천히 내뱉는 숨소리에 도윤이 손에 들고 있던 액체를 채운 주사기를 꽉 틀어쥐었다.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니 볼록하게 드러난 목젖이 꿀렁이며 움직였다.
“하민 씨.”
가늘게 떨리는 입술이 들썩이며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고 곱씹고 곱씹었던 이름이다. 윤하민. 여름을 연상시키는 글자와는 달리 하민의 숨은 여름의 열기보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그 열기가 무엇인지 도윤은 잘 안다.
러트사이클. 알파라면 꼭 겪는 형질자만의 특권 내지는 저주 같은 것.
동생의 일을 주마등이 스쳐 가듯 떠올린 도윤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처음 보는 하민의 얼굴을 살폈다. 러트가 진행된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아마도 톡의 숫자가 사라지지 않은 시점부터 러트를 겪고 있었겠지.
도윤은 그리 여기며 발치에 툭 걸리는 찢겨 나간 약 봉투를 살폈다. 인상이 찌푸려지고 한숨이 새어 나오고, 나아가서는 러트의 낌새가 있었던 시점이 자신과 함께 있었을 때라는 걸 깨달았기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약 봉투에는 자신이 깁스를 풀었던 병원명이 쓰여 있다. 그때구나. 그때였어. 내가 깁스를 풀던 날 뒷짐을 지며 숨겼던 약 봉투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어.
“하민 씨, 괜찮아요?”
도윤은 주사기를 손에 든 채로 천천히 낯선 하민에게 다가갔다. 강한 억제제를 써도 러트가 뿜어내는 기운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인지 하민의 양 볼은 한껏 상기된 채였다.
천천히 놀라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도윤과 하민의 거리는 불과 한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만 남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하민이 어른거리니 도윤은 단숨에 정신이 몽롱한 그의 팔을 붙들어 주사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많이 힘들죠? 조금만 참아요. 금방 끝나요.”
마지막 말을 끝으로 하민을 향해 도윤이 손을 뻗었다. 팔을 잡았나 싶었던 순간 동공이 멍하게 풀린 하민이 역으로 도윤을 낚아채어 침대 위로 찍어 눌렀다.
털썩.
“아…….”
“…….”
서로 마주친 눈에선 교감은 찾아볼 수 없다. 도윤은 노랗게 변해 가늘게 뜬 하민의 눈동자를 좇을 뿐이었다. 거기서 하민의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헛수고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꾸우욱.
손목이 잡힌 채, 옥죄는 힘 때문에 피부가 눌리는 감각이 선명했다. 그리고 점점 힘이 세져 자신을 놓아줄 생각조차 없다는 사실까지도 선명하게 알게 됐다.
“형.”
“네, 하민 씨.”
“…….”
도윤의 대답에 하민은 무방비로 널브러진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깊게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자극에 도윤의 잇새로 신음이 흘렀고 그 신음에 하민은 더더욱 선명하게 눈을 빛냈다.
도윤의 목덜미를 향해 점점 이성을 잃은 하민이 향기를 맡으려는 듯 다가갔다. 익숙한 자신만의 냄새가 먹고 싶은 형한테서 흘렀다. 미칠 듯이 목이 말랐고 미칠 듯이 배가 고팠다. 그리고 미칠 듯이 감정이 치솟았다. 두려우면서도 진하고 뜨거운 여름밤의 열기를 담은 감정 같은 것이.
“형한테서 제 페로몬 냄새가 나요.”
“……그래요.”
“그래서 형이 내 거 같다는 착각이 생겨요.”
“저기, 하민 씨.”
낯간지러운 말 한마디에 귀 끝을 물들인 도윤이 자유로운 팔 한쪽으로 방어하는 것처럼 하민 앞에 가드를 세웠다. 하지만 이 또한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하민의 의해서 서서히 내려가더니 침대 위로 박혔다.
양팔이 모두 결박되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알파와 베타가 대치했다.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갈구하는 알파와,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모르고 갈구할지도 모르는 베타의 신경전이었다.
“형. 도윤… 우도윤.”
“네, 말해요.”
“왜 멋대로 내 집에 들어왔어요?”
“……들어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내가?”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하민에게로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맺힌 채로 조심스레 대답한 그 짧은 말엔 본능만 남아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과 흡사했다.
“하민 씨가 놀러 오라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전 잘못한 것 없어요.”
“잘못. 잘못이라……. 그러게. 형이 잘못한 건 아니지. 근데, 있잖아요 형.”
순식간에 하민의 눈빛이 바뀌었다. 발광하듯 더 희번뜩하게 변한 눈동자가 참으로 희었다.
“내가 잘못할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형을 어떻게 할까 봐 걱정되거든요? 형은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어. 알아요?”
“어떻게 그래요. 하루에도 여러 번 연락하던 사람한테 며칠째 아무런 답도 없으면 누구라도 걱정해요.”
도윤이 내뱉는 말에, 숨결에, 그 따스함에 스며 하민은 환각이라도 빠진 것처럼 몽환적인 표정을 지었다. 러트를 이겨 내지 못한 쓸모없는 우성 알파는 베타를 보며 욕정을 했고 식은땀을 후둑후둑 떨구며 참지 못해 갈구했다.
하민은 도윤을 향해서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그 어느 때보다 진하고 싸한 페퍼민트 향이 주위를 독하게 에워쌌지만 도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저 더욱이 조여 오는 속박된 양손에 힘이 더 세졌다는 사실만 인지했다.
“형 정말 여우네요.”
“그건 난생처음 듣는 말인데요.”
“곰인 줄 알았는데 여우였어. 커다랗고-.”
예쁜 얼굴이 조심스레 도윤의 가슴팍으로 향하더니 그 사이에 묻혔다. 흡사 푹신한 이불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대로 얼굴을 떼어 낼 기미조차 없이 하민이 큰 가슴에 파묻혀 웅얼댔다.
“따뜻해. 형 가슴 정말 큰 거 알아요? 하- 미치겠네. 푹신하기까지 해.”
“저기요, 잠깐만요 하민 씨. 간지러워요.”
“잠시만요. 잠시만. 딱 5분만이면 돼. 아니면 1분만.”
투정이 섞인 응석에 도윤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하민의 얼굴은 더 깊숙이 도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행복을 만끽하며 예민한 페로몬을 뿜던 하민은 그제야 결심이 섰다. 여태껏 꿈꿔 왔지만 기회조차 없어서 시도도 못해 본, 꿈같은 결심이 섰다.
“형.”
하민이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 내며 도윤을 불렀다. 이름이 불린 쪽은 대답 없이 눈만 마주했다. 매끈하게 드러난 목젖이 위아래로 꿀렁댔다. 계속해서 입 안 가득 한 움큼 침이 맴돌았다.
하민은 천천히 말했다. 자신이 도윤에게, 베타에게 하고자 하는 결심을 전해야만 했으니까.
“싫으면 당장 도망가요.”
“뭘요?”
“내가 형을 어떻게 할지도 몰라. 형, 알파는 처음일 거 아냐. 뒤로 하는 거 처음일 거 아냐. 그냥 나라는 존재가 처음일 거 아냐. 그러니까 난 못 멈춰. 멈출 수 없으니까 싫다고 하면 바로 놓아줄게요. 지금 고개만 저으면 돼. 응?”
“…….”
길고 장황한 말뿐이었다. 말과는 다른 행동이 이를 바로 알게 해 줬다.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리고 빠져나갈 생각은 없다.
지금으로썬 무엇이 되었든지 하민의 곁에 있고 싶다.
도윤이 이러한 사태에서 내린 결론은 그의 성격처럼 우직하고 꼬이지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않고 노랗게 타오르는 하민의 눈만 응시했다.
“하- 씨발, 이 형이 진짜 겁도 없게.”
하민은 그저 실소만 곁들였다. 이 모든 것은 다 알면서도 뒷걸음질 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서려고 하는 도윤 때문이었다.
결국 하민은 이를 드러냈다. 우습게도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 맞는 러트였다.
침대 시트에 파묻듯 찍어 누르는 힘이 강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 적도 없건만 침대에 놓인 몸이 불편해서 조금이라도 뒤척이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더 거센 힘이 가해졌다. 그럴 때마다 도윤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뜨겁게 몰아쉬는 하민의 숨을 느끼게 되면 이래도 될 것만 같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도와주고 있는 거다. 혼자서 러트사이클로 힘들어하는 알파를. 애정에 갈구하는 이 사람을. 자신을 노리고 원하는 하민 씨를.
잘 포장된 생각들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도윤에게 하민은 노골적인 말과 행동으로 본능만을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수치스러움은 생각지도 않는, 강압적으로 보일 만큼 거친 행동이었다. 배려하는 듯 손끝과 행동은 머뭇거리면서도 눈은 집어삼킬 듯이 타올랐다. 러트를 겪고 있는 하민은 누가 봐도 알파의 형상을 띠었다.
도윤의 다리 사이에 찔러진 허벅지가 단단히 고정한 상태로 지지대를 만들 듯 세워졌다. 하민과 도윤의 거리가 더더욱 가까워져 갔고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는 큰 가슴으로 꽂혔다. 그 시선을 곧이곧대로 좆던 도윤은 피하지 않고 하민의 행동에 최대한 맞춰 나가려 노력했다.
하민이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한번 도윤에게 물었다.
“형 가슴 정말 큰 거 알아요?”
“…….”
도윤은 대꾸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그 말은 아까도 했잖아요. 하민 씨.”
부끄러운 말인 줄을 알면서도 도윤은 이 순간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하민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였다. 순간적으로 다리 사이로 찔러 넣은 허벅지에 힘이 풀렸다. 안도의 숨을 도윤이 내쉬려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들이 도윤의 행동을 멈칫대게 만들었다.
“제대로 만져 봐도 돼요?”
“어…… 네? 방금 뭐라고-.”
“만져 보고 싶다고. 형 가슴.”
“아……. 가슴을요?”
“네.”
확고해 보이는 그 눈빛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윤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내내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봤지만 알게 된 건 결국 어차피 끝까지 도와줄 의도로 이곳에 남았다는 부분이었다. 다른 누구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 아닌 자의로 남은 것임을, 그랬기에 더 확고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임을.
도윤이 슬쩍 몸을 비틀자 결박된 한쪽 손이 풀렸다. 손끝으로 찡한 저릿거리는 감각이 몰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하민의 손을 맞잡았다. 하민은 그런 도윤의 행동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무표정하고 딱딱한 얼굴이 잘 빚은 인형 같아 보일 정도로 하민은 러트사이클을 겪는 입장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
도윤이 느낀 현재의 하민은 그랬다. 자신을 잘 다룰 줄 알면서도 냉정해 보이는 우성 알파의 그 자체 같노라며. 베타인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것 같노라며. 하지만 한편으론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니 위험 요소는 특별히 없을 것이라는 씁쓸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도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귀 끝을 빨갛게 물들인 채 맞잡은 하민의 손을 허공에 들었다. 엉겅퀴처럼 얽힌 손들이 둘이 마주한 시야 중간을 가로막았다. 커다란 손가락 사이로 서로가 보였다. 날카로운 하민의 동공과 무뚝뚝한 도윤의 동공이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훔쳐봤다.
도윤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빠르게 뛴 하민은 입이 바짝 탔다. 몸 안 깊숙이 유영하듯 흐르던 페로몬은 죽은 것처럼 멈춰 버렸고 숨은 딸렸지만 시야는 더 또렷해졌다.
“형 지금 뭐 하시려고-.”
하민은 더운 공기에 입을 축이듯 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쓸었다. 눈을 한번 깜빡이니 놀랍게도 자신의 손은 도윤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도윤이 입가를 부드럽게 끌어 올리며 웃었다. 무뚝뚝했던 입매도 미세하게 휘였다. 그러고선 달콤한 말을 원했던 내용으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런 건 묻지 말고…….”
말을 하다 만 도윤이 뒤늦게 쑥스러운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하민 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도윤의 몸짓과 말투, 여름밤 열기 때문인지도 모를 달아오른 체온 때문에 하민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멈췄던 페로몬이 다시금 흘렀다. 이번에는 쓰나미처럼 크게 일렁이며 움켜쥐듯 빼곡하게 도윤의 몸을 감쌌다. 이를 도윤은 알 리가 없었다.
“형도 쑥스러움 타는구나. 정말 귀엽다, 우리 도윤 형.”
눈동자를 더욱 짙은 황금색으로 물들인 채로 눈웃음을 치던 하민이 고른 치아를 넓게 드러냈다. 얼굴을 돌렸음에도 그가 어떠한 표정으로 저런 말을 내뱉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아마도 하민은 예쁘장한 얼굴로 만족스럽게 웃고 있을 듯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진지할 테고 결단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함도 보일 것이다.
이 모든 걸 떠올리자 도윤은 부끄럽더라도 하민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고개를 돌린 도윤이 말을 건네던 찰나…….
“하민 씨, 그런 말은 저한테-, 으윽!”
부정을 하던 입가가 일그러졌다. 이윽코 짧은 신음이 터졌다. 살면서 처음 내 본 소리에 놀란 도윤이 동그랗게 두 눈을 떴다. 시선은 곧장 자신의 가슴 쪽으로 향했고 살이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올 지경까지 움켜져 있는 자신의 가슴 형태를 보았다.
이번에는 시선이 하민을 향했다. 하민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이 립스틱이라도 바른 것처럼 더더욱 혈색을 띠었다. 쑥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색은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야한 짓을 하는 여느 성인들이 내보일 법한 말을 입에 담았다.
“형은 젖꼭지가 민감하네요. 벌써 섰는데요? 귀엽다, 빨아 봐도 되죠?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 한마디에 무뚝뚝하게 굴던 도윤이 무너졌다. 얼굴 전체가 터질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도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탄 한 방에 하민이 깊게 몸을 숙였다. 움켜쥔 가슴에 그대로 혀를 묻었다. 얼마 못 가 뒤틀리는 인영이 달빛에 가려 검은 실루엣처럼 드러났다. 바깥에선 찌르르한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혼이 나간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을 무렵, 그의 가슴은 이미 번들거릴 정도로 몇 번이고 빨린 상태였다. 처음으로 하민의 혀가 유두에 닿았을 때의 감각은 잊을 수 없이 선명했지만 그 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윤은 까마득했다.
구릿빛 가슴팍엔 검붉은 꽃잎 같은 자국이 새겨졌다. 처음에는 셀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언제쯤 새겼는지 모르도록 상당수 늘어나 버렸다.
방금도 하민은 도윤의 가슴에다 혀를 둥글리듯 굴렸고 도윤은 허리를 들썩이며 침대 시트 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다소 격정적인 쾌감에 귀 안이 뜨거워져 저리도록 아팠다.
아니, 아니다. 이것이 아픈 게 맞는 걸까…?
“으윽- 아!”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소리가 도윤의 입에서 터졌다. 하민은 그런 신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다급하게 도윤이 입은 바지의 버클을 풀렀다. 휑한 살결 위로 뜨거운 입김과 뜨거운 여름밤의 공기가 닿았고 언제 드러났는지도 모를 상대방의 굵다란 살덩이가 꺼떡이며 도윤의 허벅지 안쪽을 간질였다.
노팅을 한 적도 없다. 더군다나 어딘가에 쓸리거나 비비거나 자극을 주거나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하민의 살덩이는 귀두 끝을 꺼떡거리며 번들거리는 쿠퍼액을 진득하게 흘려 댔다. 꿀이라도 되는 것처럼 몇 번이고 도윤의 허벅지 안쪽에 질질 흘렸다. 그러고는 억눌린 숨이라도 뱉어질 무렵에는 이 모든 걸 몸으로,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고 있던 도윤조차도 흥분이라는 감각에 사로잡혀 다리 사이에 달린 자신의 성기를 묵직이 세웠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행위가 도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멈추기는 싫은 마음에 성심껏 하민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덩치도 크고, 숙맥이고, 연애라는 감정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빠르게 터득하기에도 어려운 성격인 데다가 모든 것 하나하나가 서툴고 느렸다.
도윤은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은 고작 그 정도라고 생각하며 처연하고 담담하게 하민을 바라봤다.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맞췄더니 취기가 오르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졌다. 입 안도 바짝바짝 말라서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훔쳤다. 도망갈 구석을 찾으며 시선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마지막쯤 정신이 나가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감각에 화들짝 놀랐다.
다리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계속해서 허벅지 안쪽을 턱턱 소리가 나게 때리고 비비적거렸다. 눈이 저절로 하체로 향했고 도윤은 간간이 쉬던 숨마저도 집어삼켰다.
아…… 저렇게 큰 게 몸에 들어간다고?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도윤은 하민에게 깔려 꼼지락댔다. 큰 덩치가 움직일 때마다 침대는 얕은 물가에 발을 담구듯 일렁였고 하민은 그 느낌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다.
“보채는 거예요? 보채지 말아요, 형.”
벌겋게 달아오른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유혹하며 속삭였다. 묵직하게 솟은 성기가 하체에 닿는 게 여실해 어지간히 신경을 쓰이게 했다. 하민이 이토록 흥분을 하는 건 자신 때문이 아니고 러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기며 무드에 빠지지 않도록 애를 썼지만….
“하아… 좁아.”
하민은 분홍빛으로 물들여진 귀두 끝을 움찔대고 있는 도윤의 애널 사이로 여러 번 문지르며 여의치 않다고 투덜댔다. 여러 차례 도윤의 몸 안으로 넣으려고 시도해 봤지만 흥분해서 새어 나온 액만 발라질 뿐 이미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성기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튕겨졌다.
여름밤의 열기로, 도윤의 보채는 듯한 행동으로 참지 못할 지경까지 이른 하민이 다급하게 자신의 성기를 큰 소리가 날 지경까지 문질렀다.
“저 너무 급한데… 힘 좀 빼 줄래요, 형?”
얼굴을 마주 보고 하민이 도윤에게 할 부탁이라곤 이런 것뿐이 없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음에도 발끝을 파르르 떠는 도윤을 바라보며 하민은 매서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꼬리를 휘었다.
큰 가슴이 들썩거리며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발끝을 떨고 있는 도윤은 알 수 없는 뜨거움 속에서 피해 보려고 팔로 눈가를 가렸다. 하민의 얼굴이 시야에서 벗어나니 살 것만 같다. 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숨을 부풀려 뱉었다. 긴장으로 하체에 뭉쳐 있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도윤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기회를 엿보던 하민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깁스를 했던 그의 다리를 만지작댔다. 아팠었던 다리가 힘없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하곤 만족스러운 웃음까지 흘렸다.
하민은 도윤의 단단한 엉덩이 사이를 검지와 중지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이 행위를 혼자서만 즐기고 싶지 않았기에 더 도윤을 몰아붙이고 싶었다. 하민은 끊임없이 상상을 했고 그 상상 속에 도윤이 보여 주는 야한 몸짓들을 상기시켰다.
구릿빛으로 잘 익은 곳에 들어찬 근육들이 안을 찔러 줄 때마다 움찔거리는 상상을. 자신의 이름을 불러 대며 두 뺨을 붉히는 상상을. 마지막으로 함께 사정하고 쓰러지는 상상들을 했다.
무수한 상상속에 애가 타 버린 하민이 조금 더 도윤의 애널 사이를 집요하게 문질렀다. 팔로 가린 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서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손으론 자신의 것만큼이나 큰 도윤의 성기를 문지르고 또 다른 손으론 먹음직스러운 그의 몸 안에 손가락을 넣어 보려고 부단히 움직였다.
볼멘소리로 하민이 말했다.
“형. 넣고 싶어요. 넣고 싶은데… 하아- 미치겠네.”
“하민… 읏- 천천히, 천천히 해요.”
“후우- 넣어 볼게요.”
억눌린 신음과 함께 터져 나온 소리는 보채는 알파의 마음을 다독이는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분명히 진정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음에도 하민은 더 짙어진 페로몬으로 도윤에게 압박을 가했다. 그가 베타라서 모를 텐데도 그랬고 알아주기를 바라서 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삽입 전부터 이미 흥분해 버린 하민은 멈출 줄 모르게 흐르는 액을 도윤의 엉덩이 사이로 문질렀다. 자꾸만 미끄러져 화가 날 지경이었다.
“아, 계속 미끄러지네.”
“흐윽- 기분이….”
“형, 우는 건 아니죠? 싫어요? 넣지 말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하민이 도윤의 팔꿈치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달랬다. 간지러워서 얼굴을 가린 팔을 내리고 눈은 여전히 꾹 감은 상태로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자극이 너무 세서….”
“아아- 자극이 세다고?”
“……네.”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구멍에 문질러 주면 형이 신음을 흘리더라고.”
“아! 흑.”
신음에 맞춰 하민이 거칠게 도윤의 애널로 성기를 길게 문질렀다. 그때마다 참지 못한 야한 소리가 끊기듯 터졌고 하민은 어김없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더 집요한 입맞춤이 이번에는 꾹 감은 눈가와 꾹 다물린 입가로 퍼부어졌다. 쪽쪽거리는, 입맞춤 소리가 찌르르거리는 풀벌레 소리와 맞물려서 도윤의 귓가를 간질였다.
미치겠다. 자극이 너무 세. 이대로 열기 때문에 기절해 버리면 어쩌지?
혼란스럽고 약해진 마음을 틈타 하민은 더더욱 야한 농담을 도윤에게 퍼부었다.
“좋아요? 이렇게 문질러 주는 건 좋나 보네. 형, 야해요.”
피식거리는 소리가 도윤의 바짝 선 솜털을 간질였다. 터질듯한 뜨거움에 살아야겠다 싶었는지 자신의 허벅지를 옥죄고 있는 하민의 무릎을 잡으며 도윤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말은 좀….”
“괜찮아요. 사실이니까.”
“그치만… 아무래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오가는 순간에도 하민은 좁은 내벽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으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다가 문뜩 하민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꺼번에 몰려온 러트사이클로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만약 이것이 다 꿈이라면 몽땅 질러 버리면 그만이고, 도윤에게 미움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라고.
그래, 질러 버리자. 이 깨기 싫은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것을 누려 보고 싶으니까.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하민은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해 나갔다. 말하는 매 순간마다 가슴이 벅차서 숨이 찼다.
“형이 좋아요. 형이 다른 누군가와 뒹군다면 화날 것 같아요. 이런 건 저랑만 해요. 저랑만요.”
“하민… 씨?”
“버텨요. 그냥 넣을 거니까. 형이 여기 남았으니까 다 해도 된단 말이잖아요? 형도 원하니까 움찔대는 거 맞잖아. 그렇죠?”
“자, 잠깐. 하민! 아!!”
허공에 달랑이던 도윤의 두 다리가 일순 멈추더니 바들바들 떨렸다. 뭔가 안으로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너무 아파서 눈가에 물기가 맺혔고 안정을 찾기 위해 도윤은 하민의 팔을 붙들고 그의 얼굴을 찾았다.
“후… 드디어 들어갔다.”
매끈하게 입매를 올리고 두 눈을 더욱더 황금빛으로 빛내는 하민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또 다르게 외설적으로 보였다. 불안함을 감지한 도윤이 이를 악물고 버티며 하민을 부르고 찾았다.
“흐윽… 하민… 하민 씨….”
도윤은 처음 느껴 보는 이질감에 맞서 이겨 내려고 했으나 자꾸만 밀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허리를 떨며 힘을 줬다. 숨이 막혀 의도치 않게 고개가 수시로 뒤로 꺽이며 휘청거렸다. 더 들어올 공간이 없음에도 하민은 성기를 끊임없이 힘주어 밀어 넣으려고 했다. 찢어질 듯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도윤이 손바닥으로 하민의 가슴팍을 밀었다.
“잠깐, 더는 으윽- 아, 안 들어가… 너무 커서- 윽!”
“형 안 엄청 좁다. 반도 안 들어갔는데 벌써 아파요?”
도윤이 고개를 다급하게 끄덕이자 하민은 자신의 가슴팍을 밀고 있는 손을 깍지 껴 잡고선 손가락 사이를 꼼꼼히 핥았다. 유혹하듯 시선은 도윤의 눈으로 고정한 채 하민이 물었다.
“뒤는 정말로 처음인가?”
도윤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서 힘겨운 숨이 터졌지만 대답하는 것을 잊진 않았다.
“처음… 처음 맞아요. 베타… 베타니까.”
“아. 맞다. 형 베타였죠?”
하민은 뒤늦게 깨닫곤 탄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슬아슬 입술이 목덜미에 닿을 거리까지 좁혀졌고 도윤은 질끈 눈을 감았다. 예상대로 피에 쏠린 붉은 입술이 긴장으로 핏줄이 솟은 구릿빛 목덜미에 묻히더니 숨을 깊게 빨았다. 앓는 소리와 더불어 검붉은 흔적들이 벌레에 물린 것처럼 피부 위로 새겨졌다.
방금 남긴 키스마크를 혀로 한 번, 엄지손가락으로 두 번 꾹 지분대던 하민은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도윤을 현혹했다.
“향이 좋아서 순간 저도 모르게 오메간 줄 착각했어요. 미안.”
사과를 받게 된 도윤은 무뚝뚝하게 표정을 굳힘과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메가가 아니라 베타… 베타인데, 어? 잠깐만요. 기다려요, 하민 씨!”
말하던 말을 멈춘 도윤이 다급히 다시 몸 안으로 성기를 더 밀어 넣으려는 하민을 제지했다. 욱신거리는 감각이 또다시 하체로 몰리는 걸 느끼며 필사적으로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 꽉 힘을 주었다. 어느새 목이 다 쉬어 버린 도윤이 헐떡거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안 돼, 하민 씨. 더 넣지 말아요. 잠깐만요 잠깐-, 찢어져요.”
“후우-.”
한 템포 쉬어 나가던 하민은 숨을 열기에 억눌린 페로몬을 힘껏 뱉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묵혀 온 러트사이클이 이다지도 고통스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성 알파 주제에 열성처럼 어설프게 페로몬도 조절하지 못한 본인을 자책하며 하민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짜증도 짜증이었지만 지금 순간마저도 눈앞에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조급했다.
“하아… 형. 지금 미치겠으니까 제발 더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
재차 숨을 뱉으면서 머리를 쓸어 올린 하민이 창문 너머로 새어 오는 밤하늘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길고 긴 하얀 목선을 따라 언제 흘렸는지도 모를 땀이 쉴 새 없이 흐르는 게 보였다. 눈앞을 살짝 가린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른한 표정을 짓는 하민의 모습을 도윤은 말없이 감상했다. 절로 침이 고여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혹여라도 그 소리가 상대방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떨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성이 난 알파의 이름을 작게 입에다 담았다.
“하민 씨.”
여름밤에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 따위도 없이 뜨거운 행위를 지속하던 하민이 여러 번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열기에 취한 채로 나른한 표정을 흘렸다. 하민은 언뜻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형을 쫓아 살짝 눈웃음을 치며 답했다.
“네, 왜요?”
도윤은 하민이 측은해 보였다. 아니, 측은하다는 감정이 맞는 걸까? 그냥 도와주고 싶었고 고통을 덜어 주고 싶은데 스스로가 너무 미숙한 티가 나니 그것이 묵직하게 체증이 얹은 듯 속이 쓰렸다. 나오려는 한숨을 최대한으로 억누른 도윤의 목소리가 무거운 하민의 페로몬과 뒤섞이듯 울렸다.
“그렇게 다 넣고 싶어요?”
“어…? 네? 뭘….”
“이거요.”
“윽.”
도윤은 손을 뻗어 제 몸 안으로 채 덜 들어찼음에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그의 성기에 손을 댔다. 이윽고 하민의 숨이 흘렀고 페퍼민트 향은 더더욱 짙은 농도로 변했다.
현재 하민은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우성 알파의 강박과 이대로 덮치고 싶다는 본능이 충돌했다. 숨을 몇 번이고 고루 쉬다가 살짝 정신을 차린 하민이 고개를 도리질 치며 애널에 반쯤 넣었던 성기를 빼내었다. 갑작스레 품고 있던 뜨거운 감각이 사라지자 도윤은 미간을 짙게 찡그렸다.
하민이 당황하며 도윤을 살피려고 손을 뻗었다. 자신을 억지로인지 원해서인지 받아 내고 있던 도윤의 귀를 만지작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분 좋게도 도윤의 귀 끝은 뜨겁고 말랑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민은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도윤에게 물었다.
“아… 그게, 아팠죠? 미안해요. 미안. 제가 너무 조급했어요.”
이에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미안합니다. 하민 씨는 잘못한 게 없고, 오히려 이쪽이 내가 베타라서… 그래서 뒤로 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래요.”
진심 어린 말에 하민은 입을 삐죽거리며 침대에 누워 도윤을 뒤에서 힘주어 끌어안았다. 한순간에 하민의 품에 갇혀 버린 도윤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귓가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투덜거리는 하민의 목소리는 화가 난 말투는 결코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로 높고 밝았다.
“그럼 앞은 써 본 적 있고요?”
“네?”
손끝으로 툭툭 자신의 성기를 건드리는 손길에 도윤이 당혹감을 내비쳤다. 겨우 참고 있었는데 희멀건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지자 당황스러운 나머지 도윤은 허리를 꽉 잡고 있는 하민의 손을 풀려고 했다.
‘안 풀려.’
운동을 했던 만큼 힘으로나 체구로나 도윤은 남들에게 꿀릴 거라는 생각은 살면서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하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자신을 꽉 옥죄어 왔다. 힘을 더 강하게 주면 풀릴 것도 같은데 그러면 하민이 다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민의 손끝이 곧게 선 음경을 슬슬 쓸어내렸고 도윤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귀가 터질 듯이 뜨겁고도 아렸다.
고개를 푹 숙인 도윤이 가까스로 하민을 향해 말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윽-.”
강하게 빨아 당기는 압력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도윤이 무릎과 무릎 사이를 붙여 허벅지 안쪽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뒷목에 키스마크를 남기며 하민은 도윤의 성기를 잡고 쿠퍼액을 질질 흘리는 귀두를 엄지로 둥글리듯 문질렀다. 도윤은 집요한 손놀림에 고환부터 음경까지 저릿하게 피가 쏠리며 엉덩이 안쪽이 간질간질거려 미칠것만 같았다.
표피가 팽팽해질 만큼 아래로 당기다가 주름지게 위로 쓸어 올리는 행위를 반복하던 하민이 도윤의 귓불을 고른 치아로 잘근 씹어 대며 물었다.
“그러니까 앞은요? 써 봤어요? 베타한테? 아님, 오메가?”
“하…윽… 잠깐… 잠깐만요 하민 씨….”
“왜 말을 못해요, 응? 형 대답해야죠. 아님 멋대로 생각할까요?”
집요한 물음에 도윤이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고 흐느꼈다. 손아귀에 잡혀 빠져나오지 못한 성기가 터질 것만 같아 고통스러웠다.
“흐윽… 써, 써 본 적… 읏, 없어… 없…큽!”
탁탁 소리가 창밖에서 울리는 찌르르한 소리에 맞춰 하민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하민의 시야에 붉어진 도윤의 단단한 등이 보였다. 그의 꿈틀대는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열 때문에 붉어져 뜨거워짐을 느꼈다. 하민도 더는 한계였고 빨리 이 끝날 것 같지도 않은 러트사이클을 해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허벅지에 바짝 힘을 주고 사정하지 않으려 버티는 도윤을 끝까지 괴롭히던 하민은 오기가 생겼는지 더 빠르고 둔탁하게 자신만큼이나 굵고 큰 성기를 흔들었다. 끅끅거리는 신음에 꼴려 하민은 참지 못하고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
형, 내 쪽 봐요. 빨리.
그러고선 도윤의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걸 기어이 돌리게 해 깊은 딥키스를 이어 갔다. 숨이 모자랄 만큼 거칠게 혀가 섞이다가 쪽 하고 떨어지고 이어서 치아를 고르게 쓸었다. 파르르 떠는 도윤의 혀를 하민이 깊게 빨아 속박하고 장악해 나갔다.
숨이 막혀 목구멍에 가득찬 타액이 미처 삼켜지지 못하고 입꼬리를 타고 턱을 타고 무게에 짓눌려 골이 팬 도윤의 가슴으로 뚝뚝 떨어졌다. 하민은 여전히 도윤의 사정을 유도하며 남은 한 손으론 힘을 주어 단단해진 도윤의 가슴을 손톱으로 꽉 움켜쥐었다.
고통에 도윤이 꼼지락댈 때쯤, 힘을 풀지 않고 조이던 구릿빛 허벅지 사이로 뜨겁고 단단하고 큰 무언가가 불쑥 들어왔다. 노팅 직전까지 이른 하민의 성기였다.
“하악-, 하민 씨?”
몇 초 전까지 키스하던 도윤의 입술엔 격정을 치른 타액의 흔적들로 번들거렸다. 하민도 숨이 모자랐는지 헐떡거리며 큰 숨을 뱉더니 도윤에게 배시시 치아를 갈라 웃었다.
“후우- 저랑 같이 가요.”
“아, 잠시-!”
도윤이 제 성기에서 하민의 체온이 떨어져 나간 것에 안도하기도 전에, 이번엔 그에게 엉덩이가 잡혀 버렸다. 몇 번을 주물럭거리며 엉덩이를 농락하던 하민이 이번에는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도윤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따갑고 쓰린 충격에 도윤이 습관처럼 하체에 온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철썩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도윤의 고개가 벌벌 떨며 뒤로 넘어갔다.
“하윽!”
“지금 딱 좋아요 형. 그냥 삽입은 안 할 테니까 대신 이렇게 허벅지에 힘주고 버텨요.”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넘어온 길고 하얀 손가락이 구릿빛 허벅지를 꽉 움켜쥐며 채근했다.
그쯤이었다. 하민이 허리에 힘을 주고 단단히 조인 허벅지를 드나들며 움직임을 늘려 갔던 건. 서서히 템포를 맞추는 듯싶더니 불과 몇 초 만에 하민의 허릿짓은 격정에 치달은 사람처럼 더더욱 빨라졌다. 그때마다 도윤의 고환과 하민의 음경이 맞부딪혀 소리를 내고 마찰이 일어났다. 터질 듯한 아픔과 쾌감이 동반될 때까지 하민은 도윤과 계속해서 밀착하며 갈구했다.
“아아! 윽, 아, 자극이 너무… 너무, 강한데- 하민, 하민 씨- 하윽!”
“하아, 하아- 같이 싸요, 응?”
허벅지 안쪽이 다 쓸려 나갈 것처럼 홧홧한 고통이 도윤의 뇌를 멍하게 만든다. 귓가에 속삭이며 절정에 치달은 소리로 숨을 불어넣는 행위가 몸을 무섭게 만든다.
그럼에도 싫지 않아서 도윤은 혼란스럽다가도 더한 것을 바랐다.
“하악, 아! 하민, 하민 씨…, 저 더는…!”
“형… 도윤 형, 큭!”
하민이 몇 번 더 허리를 퍽퍽 치대더니 깊숙이 성기를 찌르며 부르르 떨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쾌감에 동시에 도윤 또한 참고 있던 사정액을 뿌렸다.
하민의 바람대로 두 사람이 함께 사정을 마쳤다. 신기하게도 여전히 긴장 때문에 힘이 들어간 허벅지 안쪽에선 방금 전 부풀어 오른 살덩이의 감각이 선연했다.
그건 도윤으로선 처음 느껴 본 알파의 노팅이었으며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는 마침표 같은 감각을 선사했다.
도윤의 허벅지 사이에서 허공에다 대고 노팅을 끝낸 하민이 서로 함께 베고 있던 베개 머리맡으로 풀썩 쓰러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숨소리 내지는 짧게 한숨 쉬는 소리가 도윤의 귓전을 간지럽게 때렸다.
“하아… 하아….”
아직도 도윤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하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둥근 어깨를 들썩거리며 쌕쌕 숨을 쉬는 도윤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아 본다. 빨개진 귓가와 동그란 뒷통수. 그리고 곱게 나 있는 가르마를 따라서 움직이는 머리카락이 꿈같은 현실이 끝났음을 만끽하게 해 주는 듯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걸까.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인 걸까. 지금 내가 누구랑 뭘 한 거지?
아. 정말로 꿈만 같았다.
체온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꿈은 아닐 것이다. 같이 숨을 몰아쉬며 끈적한 흔적이 묻은 걸 보아하면 현실일 것이다. 모든 걸 자각해 버린 하민은 그제야 긴장으로 힘을 준 페로몬을 느슨하게 풀었다. 몽롱하게 풀린 두 눈꺼풀이 꿈뻑꿈뻑 무거워졌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름밤의 열기를 중화시킬 만한 시원한 페퍼민트 향이 공간에 배회하다가 연기처럼 걷혔다. 마치 한낱 여름밤의 꿈이라도 꿨던 것처럼. 꿈이 아니었음에도 꿈인 것처럼.
하민은 가슴이 벅차서 도윤을 여러 번이고 불렀다. 사라지지 말고 있어 달라는 듯 계속해서 불렀다.
“도윤 형. 형….”
자꾸만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통에 하민은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익숙하고 기분 좋은 도윤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따스한 말을 건네는데도 선뜻 무어라 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민 씨, 좀 괜찮아요?”
“형… 형….”
“네.”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이젠 편히 놓고 싶다고 생각한 하민이 도윤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이 순간 가슴 벅찬 마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줄곧 영영 걷힐 것 같지 않던 러트사이클에 시달린 하민이 나긋하게 지금의 마음을 내보였다. 오로지 도윤을 향한 마음이었고, 처음과는 달리 그리 가벼운 것도 아닌 마음이었다.
하민은 도윤의 목을 끌어당겼고 눈을 감고 읊조렸다.
“형. 사랑해요. 아주 많이 사랑해.”
“……그래요.”
누가 봐도 본인을 향한 사랑 고백에 차마 ‘저도요.’라고 말하지 못한 도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목에 감긴 팔에 손을 얹는 것이 고작이다.
무섭게도 한참 격정적으로 치달았을 때와는 다르게 공기가 제법 찼다. 더운 여름밤인데도 한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쓰라림, 혹은 묘한 기류에 도윤은 맞잡은 하민의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어느덧 입매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고 마음속에서나마 뱉을 말을 지금으로썬 듣지 못할 것 같은 이에게 전했다.
“오늘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요, 하민 씨.”
당신은 깨어나서도 나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될까?
도윤의 감정은 오늘 밤 나눴던 뜨거움이 무색하게 복잡하기만 했다.
맴맴맴-
아침부터 우는 매미는 오늘도 어김없이 열띤 구애를 펼치는 중이었다. 매미들은 마치 연인들에게 자기들처럼 사랑이라도 나누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목청 좋게 울어 댔다. 맴맴 우는 그 소리는 희한하게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시끄럽게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운 아침을 선사하는 듯했다. 물론 뜨거운 아침 햇살만 빼고.
햇볕 때문인지 뭔지는 모를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이 요람에 갇힌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살결인지도 모를 곳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하민은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땀으로 찐덕이는 피부와 불쾌한 아침을 피하고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았다.
“아… 씨.”
손을 쭉 뻗어 더듬더듬해 보아도 무언가 손끝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직도 잠에 취한 눈을 비비고 일어난 하민은 두 번째 하품을 했다. 그 후로 넓고도 먼 창밖을 바라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문득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일순 숨을 멈췄다.
평소보다 침대가 좁았기에 하민은 바로 옆으로 시선을 돌려 눈앞에 놓인 자태를 바라봤다.
나체로 얇은 이불만 배에 덮고 잠든 사람. 구릿빛 피부가 여름과 잘 어울리는 사람. 짧은 머리가 어느새 길어져서 눈썹을 아슬아슬 가리고 있는 사람….
어? 도윤 형이잖아?
“형이 왜… 여기에 있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막 잠에서 깬 나머지 꿈에서 덜 빠져나온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비벼 보았으나 눈앞에 자리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분 좋고 뜨거운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던 걸까…?
“미친… 나 또 뭔 짓 한 거야?”
“으음….”
“헉!”
꿈이라고 착각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고 나니 절로 큰 소리가 나왔고 그 소리가 너무 컸던지 곤히 잠들어 있는 도윤이 뒤척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민은 아주 조용히 짙게 팬 도윤의 눈가로 길게 그어진 여름 아침의 햇살이 강하게 쏟아지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으응…….”
눈이 부셨는지 도윤은 짜증스럽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여전히 햇살은 도윤의 눈가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를 곤히 지켜본 하민은 참지 못하고 픽 웃음을 터트렸다.
‘꼭 어린애 같아.’
하민은 도윤이 깨지 않게 손을 들어 그를 괴롭히는 머리맡에 놓인 햇빛을 가렸다. 금세 그늘이 만들어졌고 그제야 도윤의 표정이 평화롭게 바뀌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광경인지 하민은 흡사 아픈 강아지처럼 끙끙대며 혼자서 행복을 삭혔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구릿빛 피부 위에 목덜미부터 허벅지까지 붉은 키스마크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에 놀란 하민은 사색이 되어 뒤로 나자빠졌다.
쿵! 큰 소리가 굉음처럼 울렸다. 아차 싶어 숨을 멈췄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으응…… 하민… 씨?”
맴맴맴-
소란스러운 소리에 도윤마저도 아침 잠에서 깼다. 부스스한 앞머리가 뻗쳐 하민을 향해 삿대질을 했고 이를 전혀 알지 못한 도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부드럽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하민 씨 일찍 깼네요. 이제 좀 괜찮아요?”
“아, 네. 괜찮- 쿨럭!”
괜찮냐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걸까? 마른 목구멍에서 여러 번이고 기침이 나왔다. 몇 번 더 기침을 한 하민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그를 도윤은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하민이 왜 그런지 도윤은 알 것도 같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부지런히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함께 겪은 러트사이클 때문인지 아침 밥을 딱히 챙겨 먹지 않는 두 사람 모두 이른 시간부터 허기를 느꼈다.
하는 수 없이 둘은 함께 아침밥을 먹기로 했다. 밥은 도윤이 했고, 하민은 조용히 옆에서 거들기만 했다.
달그락거리며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전기 밥솥에서 삐이- 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릴 무렵, 어느덧 집 안은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가동시킨 덕분에 공기가 사뭇 시원해져 있었다.
“하민 씨, 앉아요.”
“어? 아니에요, 형. 더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그냥 앉아 있어요.”
“넵.”
도윤은 어젯밤 정신없이 하민만 생각하느라 아무렇게나 벗겨진 옷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가 마지못해 입은 티는 볼썽사납게 구겨져 있었고 바지 버클은 언제 뜯겼는지도 모르게 너덜너덜했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버클이 덜렁거리며 도윤이 움직이는 곳곳마다 쓸리고 지나갔고 그때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하민은 깜짝깜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완벽하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도윤을 보며 하민은 어금니를 깨물며 홀로 또 다른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도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참으로 허술하고 무감각했다.
손을 곱게 무릎 위에 모은 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흘렀을 때쯤, 어느새 하민이 앉은 식탁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채워졌다.
“먹어요.”
무뚝뚝한 도윤의 배려에 하민이 고개를 저으며 도윤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형부터 들어요.”
“하민 씨, 전 신경 쓰지 말고 식기 전에-.”
“넵! 자,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도윤이 건네는 말을 도중에 끊은 하민이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음식들을 입에 구겨 넣었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짠해서 도윤은 물까지 가져다 바치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잔소리를 해 댔다.
그렇게 음식을 몇 번이나 꾸역꾸역 입에 넣고 눈치를 보던 하민은 시간이 차츰 흐르자 평소대로 먹기 시작했다. 급하게 먹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다채로운 맛이 입 안에 들어찼다. 집에서 누군가와 아침밥을 먹어 본 지도 몇 개월 만이어서 그런지 기분 좋아질 정도로 행복한 아침이었다.
밥 한 공기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하민은 여태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도윤을 바라봤다.
목덜미부터 둥근 어깨, 어제에 흔적이 남은 다 늘어난 티셔츠 안으로 아슬아슬 보이는 구릿빛 가슴골에도 자신이 남긴 짙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하민은 그런 도윤의 모습을 감상하다가 마음 한 켠이 평소답지 않게 차분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뜨는 것도 없이 오히려 온전히 길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형.”
“네?”
국을 퍼서 입에 넣던 도윤이 숟가락을 든 채로 하민을 응시했다. 하민은 그런 도윤을 향해 덤덤히 말했다.
“어젠 고마웠어요. 이렇게 멀쩡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다 형 덕분이에요. 제가 미울 수도 있을 텐데 손수 아침밥까지 차려 주시고… 하아- 정말 고마워요 고마운데.”
“…….”
“형은… 형만큼은 저 미워하지 말아요.”
“아… 네.”
도윤의 대답을 들은 하민은 만족한 듯 웃으며 다시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마저 했다.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릇을 싱크대에 들고 가 치울 때까지 도윤은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왜 그는 형만큼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했을까?
왜 자신이 미움받을 거라는 가설을 세운 걸까?
묘한 말을 들어 버린 도윤은 그날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민과 도윤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두 사람이 함께 러트사이클을 보낸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늘 그랬듯 하민은 아망떼를 보살폈고 꽃을 보살폈으며 도윤을 보살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잊지 않고 톡을 보내면서 안부를 묻고 도윤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꽃집 문을 닫을 때, 골목 앞에 자리한 약국에 들러 약을 사 와 건넸다.
하민은 늘 상냥했고, 도윤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하민에겐 곧잘 웃어 주는 정도는 되었다.
여름이었던 날씨가 제법 선선해질 무렵, 어김없이 하민은 아망떼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도윤은 경찰이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껴 복직할 시기가 다가옴에도 마음은 어지럽고 복잡한 심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울함이 최고조를 찍었을 시기가 되어서야 우울함의 원흉이었던 재우가 연락을 해 왔다. 오랜만에 듣는 재우의 목소리는 도윤에게 반가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다 줬다.
바람이 선선해진 틈을 타 도윤이 베란다 밖으로 의자를 들고 나가 앉았다. 여유로운 바람처럼 여유로운 재우의 목소리가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야, 너 잘 지냈어?
“나야 늘 똑같지. 그럼 넌 잘 지냈고?”
-응. 나도 뭐… 이제 슬슬 그만두려고 준비 중이야. 근데 너 정말로 복직 안 할 거야?
“그냥. 아직은 모르겠어.”
-복직 안 할 거면 경호 일이나 해 보든가. 어때?
“갑자기 경호는 왜?”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되묻자 재우가 한참을 뜸 들이더니 답했다.
-우리 학과 선배들 기억하지? 요즘 경호 업체 세운다고 바빠 보인다는 소식이 좀 들려와서. 넌 그쪽으론 생각 없어?
“잘 모르겠어. 넌 우선 너부터 챙겨. 나도 슬슬 결정할 거야.”
띄엄띄엄 소식을 전하는 도윤에게 재우는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냐.’며 핀찬을 늘어놨다. 친구인 재우 입장에서도 도윤을 혼자 두고 가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여태껏 잘해 내던 경찰 일에 질려 버린 태도를 취하는 도윤의 행동을 보자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가 없는데… 여지껏 도윤 곁에서 그를 충분히 봐 왔던 재우는 그것마저도 이해가 가서 씁쓸했다.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람과 각자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저조차도 회의감이 들 테니까.
도윤도 이런 재우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재우는 자신의 친구였고 그랬기에 혼자서 경찰직을 내려놓고 떠나려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래서 재우 앞에선 밀어닥치는 감정 기복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너 목소리 들으니까 좋긴 좋다.”
-어우 야. 됐다, 됐어. 애인도 아니고 시커먼 거 달린 사내놈 목소리가 뭐가 좋냐? 그러지 말고 도윤이 너도 이참에 애인 좀 만들어.
“애인?”
-어. 아 맞다. 너 기억하려나? 우리 대학교 때 너 좋다고 따라다니다가 결국 사귀던 알파. 왜 너한테 먼저 헤어지자고 차고 달아났잖아.”
“아… 갑자기 걘 왜?”
-내가 이번에 걜 좀 만났거든. 들어 봐 봐.
재우가 말하는 알파는 다름 아닌 도윤의 전 애인이었다. 평범한 베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열성 알파도 아니었던, 누구보다도 특출 난 우성 알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여성형 알파였던 사람.
도윤 입장에서는 알파인 그 전 애인과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다. 다시금 떠올려 보자면 무례하기 짝이 없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말로 상처를 주고 떠났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도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알파와 사귀긴 했지만 깊게 빠져들 관계는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괜찮다는 착각을 했었다.
오메가와는 달리 알파와는 늘 경쟁 대상이었던 그에게는 지난 인연에게 더 깊게 빠져들지 못했다. 야구를 했을 때도, 대학교 시절 때 체력 시험을 치를 때도 매번 알파와는 끝이 안 좋았으니까. 몇 배는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자연스레 마음을 내보이지 않게 되어 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 시점에 찾아온 여성형 알파는 유독 눈에 띄었었다. 한 부모 가정에 자꾸만 주위에서 겉도는 사람이었다. 괜히 마음이 쓰여 몇 번 더 챙겨 줬던 것이 사실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연애 중이었고 얼마 후 이미 서로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도윤아. 난 말야, 내 아이를 가지고 싶어. 내가 낳는 것 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아이를 낳아 주었으면 좋겠어.’
비수를 꽂는 말에 도윤은 마주 앉은 카페 탁자 아래에서 슬쩍 주먹을 쥔 것이 다였던 순간. 도윤은 그날을 아직도 기억에서 지우지 못했다. 말을 들었을 당시만 해도 덤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몇 번이나 그가 했던 말을 곱씹는 나날이 늘어 갔다.
진심으로 좋아한 적도 없었는데도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상대방의 소식을 듣긴 했으나 그럴 때마다 도윤은 왜 자신이 이런 말을 들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그냥 빨리 불편한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도윤은 다시금 그때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베타라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그 말을.
‘네가 싫은 건 아냐. 근데… 넌 오메가가 아니라 베타잖아. 아무리 해도 내 아이를 가질 수가 없잖아. 이런 말해서 미안해 도윤아. 네가 베타인 걸 아는데도 사귀자고 한 건 나였는데… 하아-, 그냥 앞으로 나보다 널 더 아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해.’
-우도윤! 너 내 말 듣고 있어?
“어. 듣고 있어 말해.”
그냥 같이 있으면 편했고 딱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이런 기억이 그리 오래 남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자부했었다. 실상은 다시 앞을 보고 걷고 있더라도 자꾸만 뒤를 돌아봤음에도 그랬다. 남모르게 상처를 받았구나 직시한 것도 몇 개월이 지난 후였고 그때야 자신이 힘들단 걸 깨달았다.
그와의 기억은 ‘형질자’라는 말을 들으면 민감하게 구는 모습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계기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전 애인을 좋아하던 아니, 좋아했었는지도 모를 마음을 도윤은 홀로 남아 정리했다. 진심으로 이젠 다 아물었기에 재우가 전 애인에 대해서 입에 담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그냥 추억으로 묻어 둔 사람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되니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다. 그 씁쓸함 너머로 재우가 하던 말을 마저 했다.
-걔 이번에 결혼한다더라. 뭔 낯짝인지 나한테 청첩장도 주던데. 근데 청첩장을 두 개나 주더라고. 왜냐고 물어보니까 너한테 전해 달라고 하더라니까? 걘 지가 먼저 차 놓고 뭔 염치로 네 걸 챙겼는지 몰라. 그래서 내가 왜 대신 전해 주냐고 싫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걔가 너한테 따로 연락한다고 하더라.
“그랬어? 나 때문에 괜히 귀찮게 됐네. 미안해 재우야.”
울화통 터지는 소식에 대해 무덤덤하게 말하는 도윤을 재우는 코웃음을 치며 요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얘가 뭐래냐. 너 뭐 잘못 먹은 건 아니지? 네가 왜 미안해? 미안해할 건 걔지.
“됐어. 이미 좋게 잘 정리했는데 나쁜 감정 가져 봤자 뭐 해.”
-아니, 야. 와, 잠깐만, 우도윤. 설마 너 걔 결혼식에 갈 건 아니지?
“음… 글쎄.”
-아오, 글쎄는 뭔 글쎄야! 야 너 절대 가지 마. 너가 거길 왜 가? 만에 하나 연락 오면 무조건 씹어. 알았어?
숨도 안 쉬고 성내는 재우에게 도윤은 알겠다며 얼레벌레 대답했다. 재우는 탐탁지 않아 하는 느낌이었으나 하는 수 없었는지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을까? 평소대로 느즈막한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하며 하민이 보낸 톡에 답을 하던 때였다.
도윤에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알수없음
도윤아 잘 지냈어? 나야 서하리. 있잖아. 이번에 나 결혼해. 그래서 네가 꼭 와줬으면 해서 모바일 청첩장이라도 보내봤어. 오전 10:10
“아.”
망했다. 도윤은 톡을 읽지 않으려 했으나 하민에게 답장을 하려고 핸드폰을 살피다가 습관적으로 새로운 알람에 손을 댔다. 사라진 숫자 1 너머로 이어지는 짜증스러운 생각들. 어찌 보면 이러한 순간은 애초에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알수없음
숫자 사라진 거 보니까 읽었구나? 너한텐 진짜 염치 없긴 하지만 제발 내 결혼식 꼭 보러 와줘. 도윤아 정말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오전 10:12
“하아-.”
‘부탁’이라는 단어 한마디가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도윤의 입에선 짙은 한숨만 머물렀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자신의 성격이 이토록 싫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톡을 보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도윤은 이 순간 하민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아망떼를 오픈한 지 불과 4개월이 지난 시점에 드디어 하민이 대형 의뢰를 맡게 됐다.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던 이 손님은 결혼식에 쓸 꽃 장식을 흰색과 분홍색을 적절히 조합해서 꾸며 달라는 말을 전해 왔다. 이후 하민은 아망떼를 운영하면서 처음 받아 보는 큰 작업 의뢰에 조언을 구하고자 플로리스트인 어머니께 부랴부랴 연락을 넣었다.
‘우리 아들 걱정하지 마, 엄마만 믿어.’
어머니께선 결혼식에 주로 장식하는 꽃들을 소개하며 하민에게 일하면서 주로 거래하던 거래처를 알선해 줬다. 힘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로 꽃에게 더 진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는 진지한 말도 함께였다.
“음… 역시 플라스틱 화분은 그냥 포장해서 장식하는 게 더 부피가 크게 보이네. 이 편이 더 금액적으로도 괜찮을 것 같고.”
장식할 꽃에 대해 빠짐없이 기록하던 하민은 별표와 동그라미를 크게 치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거면 되겠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결혼식을 진행할 대관처와 연락을 통해 기존 신부 대기실에 있던 조화 사이에 적절히 생화 장식을 넣고, 하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될 홀과 포토테이블 쪽엔 화분에다 심은 생화를 적절히 포장해서 데코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 외에도 행진을 하게 될 본식장 양옆에는 흰 붓꽃과 분홍 장미를 적당히 섞어 꾸밀 생각이었다.
행복한 날이긴 해도 본인이 결혼하는 것도 아니건만 하민은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려 애가 탔다. 두근두근 울리는 심장을 진정시켜 준 건 다름 아닌 도윤에게서 당도한 톡 때문이었다.
상냥한 문장으로 ‘오늘도 많이 바쁘죠?’라며 보내온 도윤의 모습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지금은 손가락으로 대화하기보단, 목소리를 들으며 말로 대화하고 싶었다.
하민은 참지 못하고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귓가에선 도윤의 ‘여보세요?’ 하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언제 들어도 무덤덤한 목소리였지만 그 울림이 좋았고 황홀했다. 도윤의 목소리를 듣자니 괜히 신이 나서 기분은 한층 더 들떠 버렸다. 행복한 소식은 도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에 하민은 세세한 부분까지 조잘대며 다 말하기로 했다.
“형! 오늘은 뭐 했어요?”
-저요? 전 그냥 집안일하고… 친구랑 전화 통화도 하고. 그냥저냥 지냈어요.
“아아, 그렇구나!”
맞장구를 치며 하민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서 웃음이 샐 것만 같아 입술을 말아 꾹 다물었으나 비음은 숨기지 못했다.
큭큭거리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던지 도윤도 픽 웃으며 하민에게 물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오늘따라 유난히 목소리가 밝네요.
“그래 보여요?!”
-네. 엄청 들떠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 저 있잖아요…!”
-네.
말을 하다 말고 하민이 또 큭큭거리며 웃으니 평소라면 우직하게 기다려 주던 도윤도 재차 물으며 하민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몇 초간을 그렇게 웃던 하민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하도 높아서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들렸다.
“저 실은 예식장 꽃장식 의뢰 받았어요. 꽃집 열고선 가장 큰 일감인데 이런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제 결혼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는 거 있죠? 아, 저 좋아하는 거 많이 티 나요?”
- 아뇨. 제가 요즘 하민 씨랑 자주 통화하니까 바로 알아차렸던 거죠. 그래서 예식이 언젠데요?
“어…….”
하민은 아까 전 작업 내용을 정리해 둔 노트로 시선을 두었다. 휘갈겨서 쓴 글자들 사이로 예식 날짜가 보였다. 너무 흩날리듯 써서 그런지 날아갈 것만 같은 글자들 사이로 숫자는 제법 또박또박했고 그 숫자를 하민은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답했다.
“정확히 9월 30일이네요. 보니까 예식 올리실 예비부부 두 분이 모두 여성형 알파 오메가였는데 두 분 다 인상도 좋아 보이고 괜찮았어요. 이날 예식이…… 1시쯤? 이 시간대는 딱 이분들뿐인 거 같더라고요?”
-……잠깐만요 하민 씨. 지금 9월 30일이라고 했어요?
“네. 왜요?”
-혹시 예식장 이름은요?
“그랜드 실버 웨딩홀, 크리스탈 홀이라고 되어 있어요. 근데 왜요? 설마 형이 아는 분도 여기서 뭐 결혼하셨어요? 여기가 원주에서 가장 크고 인기 많은 예식장이라던데.
-아… 그게…….
전화 너머로 하던 말을 멈춘 도윤의 숨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하민은 도윤을 재촉해 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묘하게 언짢았고 불편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젠 도윤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기분이 어떤지 어렴풋이 때려 맞힐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하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품었다.
설마… 9월 30일이 형한테 중요한 날인가?
“형? 왜 말을 하다가 말아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저기… 하민 씨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잠깐 뭐 좀 물어볼게요. 혹시 예비부부 이름이 서하리, 김채민 씨가 맞아요?
“어, 잠시만요. 찾아볼게요.”
기다리라는 말을 더 덧붙인 하민이 의뢰 사항을 정리해 둔 노트를 꼼꼼히 살폈다. 가장 맨 위에 예식을 올릴 예비부부의 이름이 보였다.
서하리, 김채민 씨.
“아, 맞아요. 서하리 씨랑 김채민 씨. 어? 근데 형이 이분들을 어떻게 알아요? 설마 아는 사이예요?”
-…….
“……형?”
-하아….
대답 없이 한숨만이 짙게 흘렀다. 하민은 노트 끝을 잡고 있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줬다. 바스락거리며 종이가 균열이 가듯 구겨졌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1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머뭇대며 숨만 쉬던 도윤의 목소리가 사뭇 묵직했다.
-서하리라는 사람, 제가 전에 말했던 그 알파예요.
“전에 말했던 그… 알파요?”
-네. 제 전 애인이었다는 그 사람이요.
“아… 네에?!”
너무 놀란 하민의 목소리가 한산한 아망떼 안을 가득 매웠다. 하민은 그대로 꽃을 정리하느라 바닥에 깔아 둔 김장 비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온 힘이 바닥에 쭉 딸려 내려간 듯 저릿저릿했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아니, 저번에 도윤과 톡을 하며 시시콜콜 대화를 나눌 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떠오른 기억들이 왜곡된 것일까 봐 하민은 도윤과 했던 지난날의 톡을 뒤적거렸다. 그 속에서 특정한 메시지들을 발견했다.
하민을 만나기 전, 자신에게는 또 다른 우성 알파를 만날 계기가 있었고 그 사람이 여성형 알파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인연이고 더는 하민에게 대입해서 전 애인을 떠올리지 않겠노라는 이야기 등등.
“와… 세상 참 좁다.”
이 절묘한 상황을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까? 세상이 좁다고는 하나 이런 경우를 수치로 환산해 본다면 결코 쉬이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혹여라도 판단함에 있어 도윤에게 피해가 가거나 상처를 주는 경우가 생길까 봐 고민이 줄지어 꼬리를 물었다. 그게 너무나도 방대해지다 보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하민은 도윤에게 받은 의뢰를 철회할까요? 물었지만 도리어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라는 간략한 부정을 내보이는 마음뿐이다.
그러면서 도윤은 짧게나마 축복 속에 결혼하게 될 옛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과 자신이 어떠한 관계인지,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등등등….
마지막으로 서하리라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청접장을 주었다는 말까지 몽땅 다 쏟아 냈다. 하민은 미친 사람 아니냐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도 생각했다.
하민은 예식장에 가서 도윤의 곁에 선 채로 예비부부보다 더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싶었다.
형은 내 거니까, 당신보다 더 잘난 윤하민이라는 내가 잘 아껴 주고 사랑을 넘치게 주고 있으니 가는 마당에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하면서.
어쩌면 좋을까 싶던 그 속에서 고안해 낸 방법이 도윤과 함께 예식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각은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았으며 직진하며 대범하게 의견으로 내뱉었다.
“형, 나랑 예식장 같이 갈래요?”
-네? 하민 씨랑요?
“네. 절대 형이 주눅 들지 않게 제가 지켜 줄게요.”
-아뇨, 하민 씨. 저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전 괜찮아요.
딱 잘라 거절하는 그 마음이 상냥했다. 우도윤이라는 사람의 인성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하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변명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저 의뢰받은 일 끝나고 나면 혼자서 심심할 것 같아요. 저한텐 나름 뜻깊은 날인데 형이랑 함께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음.”
-그리고 뭔데요?
“…….”
-하민 씨?
“그냥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민이 피식 웃었다.
형이 내 거라는 걸 그 사람한테 꼭 보여 주고 싶어요.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랬다.
하민은 재차 같이 갈 거냐며 채근하며 투정을 부렸다.
그가 투정을 부릴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근래에 가장 가깝게 지내는 도윤이 그걸 모를 리는 없다. 하민은 반드시 도윤이 자신의 의견을 따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건….
-그래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는 당연한 절차 같은 것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