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외전 4. 오키나와
풀 빌라는 넓었기에 셋이 지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잠시의 충돌이 지나고 나자 세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같이 수영복을 입은 채 선 베드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렸다. 그러다 더워지면 풀장으로 뛰어들어 물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하준서를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었던 최상혁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더 편해하는 기색이었다. 이유인즉슨, 서하윤의 눈치를 보거나 보챔을 받는 일 없이 마음껏 핸드폰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최상혁은 본격적으로 태블릿까지 꺼내 와서 내키는 대로 일을 했다. 그사이 하준서와 서하윤은 중학교 애들처럼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그러다 지치면 선 베드에 누워 맥주를 마시다 가벼운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그조차 지겨워지면 서하윤은 최상혁의 태블릿을 빼앗고, 하준서는 최상혁을 확 일으켜 풀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휴가다운 휴가였다.
딱히 제대로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 몰랐다.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저녁이 되었다. 셋은 솜씨 좋은 주방장이 만든 게 틀림없는 푸짐한 저녁을 느긋하게 즐겼다. 음식을 조리하거나 차리거나 치울 필요도 없어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빌라에 새카만 어둠이 내리고 나니 서하윤은 슬슬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이 풀 빌라에는 침실이 두 개가 있었다. 침실마다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씩 있는데 두 사람이 자기에는 충분히 넓지만, 세 사람이 자기에는 좁았다. 물론 최상혁이나 하준서 둘 다 한 침대에서 자려고 하지도 않을 터였다.
“음… 전 좀 씻고 올게요.”
서하윤은 점차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피해 욕실로 달아났다. 그리고 욕실 문을 잠근 채 샤워기를 틀었다. 사실 물놀이가 끝나고 이미 샤워를 했기 때문에 다시 씻을 필요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자리를 피할 핑곗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물론 서하윤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기는 했다. 두 남자와 번갈아 가며 섹스도 하고 그들의 집에서 자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각자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이렇게 한 건물 안에서 침실이 두 개 있으니 상황이 난감하지 그지없었다.
멀리까지 여행을 온 참이다. 한창 싱싱한 나이의 남자들이 그냥 자려고 할 리 만무하다. 둘 중 하나와 함께 잔다면 필히 섹스까지 하게 될 터인데, 그럼 나머지 하나는 다른 방에서 둘이 섹스하는 소리를 듣고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아….”
서하윤은 느릿느릿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씻고 나가서 어찌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샤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하윤은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샤워 가운을 두르고 욕실을 나섰다.
두 남자는 거실의 긴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한명은 왼쪽 끝에, 다른 한명은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서로 가까이하기 싫다는 의사가 확연했다. 틀어 놓은 티브이에서는 일본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남자는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서하윤이 다가오자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뭘 그리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이리 와서 앉아.”
하준서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그대로 계속 서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서하윤은 느릿하게 걸어서 두 남자의 사이 정중앙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본 하준서가 피식 웃었다. 사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좀 우습기는 했다.
“음…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서하윤은 가운 끈을 손으로 배배 꼬며 입을 열었다. 양쪽에서 두 남자의 시선이 양 볼을 찔렀다.
“두 사람은… 각자 침대에 가서 자고 전 그냥 소파에서 잘게요.”
길고 푹신한 거실의 소파를 본 순간 떠올린 절호의 비책이었다.
서하윤의 말을 들은 하준서가 작게 소리 내 웃었고, 최상혁은 겨우 생각해 낸 게 그거냐는 듯 한심한 눈길을 보냈다.
“아니… 준서 형이랑 같이 자는 것도 좀 그렇고, 상혁 씨랑 같이 자는 것도 좀 그렇고….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혼자 자야 되잖아요. 그럴 바에는 셋 다 혼자 자는 게 공평하니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제 최상혁이랑 잤잖아. 오늘은 나랑 자고, 내일 다시 최상혁이랑 자면 되겠네.”
하준서가 얄짤 없다는 어투로 단언했다.
“그치만… 그러면 아무래도 좀… 같이 자면 그… 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면 소리도 다 들리고….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서하윤은 여전히 가운 끈을 꼼지락꼼지락 만지며 말했다. 하준서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그냥 손만 잡고 자자.”
“…진짜요?”
서하윤은 미심쩍다는 얼굴로 하준서를 바라보았다. 하준서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안 할게. 하윤이, 형 믿지?”
‘형 믿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서하윤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오빠 믿지?’를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역시 안 되겠어요. 그냥 각자 자죠.”
서하윤은 정색하며 잘라 말했다. 그러자 하준서가 아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혀를 찼다. 역시나…. 믿으면 안 되는 거였다.
“꼭 그래야겠어?”
하준서가 다시 물었다.
“상황이 좀 그렇잖아요. 둘 중 하나한테 미안한 일 하기 싫어요.”
“그렇다고 여기까지 놀러 왔는데 각자 독수공방을 하자는 얘기야?”
“어쩔 수 없죠, 뭐.”
서하윤은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 그러자 하준서가 눈을 돌려 최상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서하윤은 두 남자가 무슨 눈짓을 주고받나 싶어,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연신 휙휙 돌렸다. 그러다 하준서 쪽을 획 돌아보았을 때, 그는 이미 서하윤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주, 준서 형.”
놀라서 상체를 뒤로 젖혀 피하는 서하윤을, 하준서가 붙잡았다. 하준서의 섬세한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걸 보는 순간, 불길한 느낌에 머리 뒤가 저릿해졌다.
“그럼 우리 오랜만에, 셋이 같이 한판 할까? 어때?”
셋이 같이 한판 하자는 말까지는 서하윤을 바라보며 말했고, 어떠냐는 물음은 최상혁을 응시하며 던졌다. 서하윤은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획 돌려 최상혁을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독수공방하는 것보다 셋이 질펀하게 노는 게 훨씬 재밌지 않겠어? 모처럼 우리 하윤이 두 사람한테 따먹히는 재미도 느끼게 해 주고.”
하준서가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 일부러 상스러운 말을 썼다.
“사, 상혁 씨?”
서하윤은 설마 싶은 얼굴로 최상혁을 불렀다. 최상혁은 소파에 기대앉은 채 그 특유의 새카만 눈으로 서하윤을 빤히 응시하더니,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서하윤의 귓전에 최상혁의 허락이 마치 종소리처럼 댕댕거리며 울렸다. 잠시 멍하니 최상혁을 응시하던 서하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가운 자락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싫은데요?!”
버럭 외치자, 갑자기 가운 아래쪽으로 들어온 손이 뱀처럼 성기에 휘감겼다. 안타깝게도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음란한 서하윤의 몸은, 두 사람과 동시에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반쯤 발기해 있었다.
“하윤이 여기는 생각이 전혀 다른 모양인데? 벌써 좋다고 빳빳하게 서 있잖아.”
“그건….”
서하윤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우물쭈물하다가 저도 모르게 하준서의 손을 뿌리치며 후다닥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가까이 있는 침실이었다.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마치 서하윤이 도망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하준서가 바로 따라 달려와 서하윤의 몸을 낚아채 올린 것이다!
“우왓-?!”
서하윤은 하준서에게 단단히 붙들리자 저도 모르게 몸부림을 쳤다. 딱히 해를 끼치려는 것도 아니건만, 억지로 붙잡으니 괜스레 더 반항하게 되었다.
“오키나와에 와서 그런가. 우리 하윤이가 더 싱싱하게 팔딱거리네.”
섬세한 외모와 달리, 힘이 장난 아니게 센 하준서는 버둥거리는 서하윤을 손쉽게 제압하고는 달랑달랑 들어 안아 침대에 휙 하니 던져 버렸다.
풀썩-.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 던져진 서하윤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겨우 몸을 바로 했을 때는, 이미 하준서가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와 있었다.
“준서 혀엉….”
서하윤은 울상을 지으며 하준서를 불렀다. 하지만 이미 하준서는 단단히 흥이 오른 얼굴이었다.
“빨리 와, 최상혁. 문 잠그고 나 혼자 따먹기 전에.”
하준서가 서하윤의 가운 자락을 잡아 벌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최상혁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으앗…. 안 돼…. 시, 싫어요….”
서하윤은 벗겨지는 가운 자락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웅얼거렸다.
“오, 오늘은 반항하는 하윤이를 억지로 따먹는 놀이야? 좋은데?”
하준서가 벗긴 가운을 바닥으로 던지며 말했다. 서하윤은 시트를 당겨 몸을 가리려 했지만 하준서가 그리 놔두지 않았다. 서하윤은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되어 버리니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미세한 반항을 했다. 그사이 최상혁 또한 침대 위로 올라왔다.
“준서 형…. 상혁 씨….”
서하윤은 부끄럽게도 이미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를 양손으로 가린 채 울상을 지으며 두 사람을 불렀다. 두 남자가 가운을 벗어 던지고 근사한 나체를 드러낸 채 욕망이 실린 손길을 뻗었다. 반항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서하윤은 이미 이 상황만으로도 정신적인 오르가슴을 느꼈다.
“싫어어….”
서하윤은 작게 버둥거리며 두 남자에게 덮쳐졌다. 너무 짜릿하고 흥분되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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