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외전 4. 오키나와
그러니까… 그것은 정말이지 “어…? 어? 어? 어?” 하는 사이였다.
자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끌려내려 오면서 “어?”
씻기고 옷이 입혀지면서 “어?”
옷만 달랑 입은 채 핸드폰이고 뭐고 없이 맨몸으로 차에 태워지면서 “어?”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어??”
비행기에서 내려서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을 보면서 “어…?”
서하윤은 그렇게 침대에서 다이렉트로 오키나와까지 운반되었다.
“상혁 씨. 우리 어디가요?”
“오키나와 가자며. 왔잖아.”
렌트한 오픈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최상혁이 짧게 말했다. 그런 그는 평소에는 거의 입지 않던 반바지에 반팔 셔츠,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항상 잘 정리되어 있던 최상혁의 머리칼이 후덥지근한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평소와는 영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쪽에 있는데도 최상혁은 운전하는데 망설임이나 거리낌이라고는 없었다. 도리어 옆자리에 앉은 서하윤이야말로 옆에 차가 스쳐 지나거나 코너를 돌 때마다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는 했다. 단지 운전석 위치가 다를 뿐인데도 운전 감각이 완전히 제로에 가깝게 퇴보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 어, 어, 어? 하던 타임이 끝나고 나니 조금씩 가슴속 깊은 곳에서 유쾌함이 치밀어 올랐다. 회사에 휴가를 낸 것도 아니지만 최상혁이 모두 알아서 처리해 놨을 것이다. 말만 가자, 가자 하던 오키나와에 드디어 왔다는 쾌감이 휘몰아쳤다. 서하윤은 문득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차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오키나와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손바닥이며 손목을 거세게 긁으며 지나갔다.
운전하던 최상혁이 그런 서하윤을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오픈카를 처음 타 보는 서하윤은 자신이 너무 촌티를 냈나 싶어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괜스레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툴툴댔다.
“왜 하필 오픈카를 렌트했어요? 덥게스리. 이런 더운 데서는 에어컨 빵빵한 고급 차가 최고라고요.”
서하윤이 툴툴거렸지만 최상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짐이고 뭣이고 아무것도 없이 두 사람만 실은 오픈카는 끊임없이 뻗은 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렸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볼 수 없는데다, 양쪽 길가는 간혹 보이는 작은 시골 마을 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뿐이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높은 건물이 없으니 그저 보이는 건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하게 펼쳐진 새파란 하늘이었다.
“바다가 안 보이네. 바다가.”
조수석에 앉아 손으로 바람을 느꼈다가 운전하는 최상혁의 잘생긴 옆얼굴을 구경하기를 반복하던 서하윤은 결국 다시 툴툴거렸다. 차에 가만히 앉아서 보낸 한 시간은, 함께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왔다는 설렘이 옅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하윤은 결국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다행히 목적지까지는 겨우 십여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목적지 위치는 내비게이션으로 아는데, 그곳에 대관절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 빼앗긴 핸드폰은 서울에 남겨져 있는지라 검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최상혁에게 물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마침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낮고 넓게 지어진 건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보네.”
서하윤은 바다를 보기 무섭게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애써 태연한 척 중얼거렸다. 최상혁이 그런 서하윤을 힐끗 보더니 다시 입꼬리를 미세하게 끌어 올렸다.
차는 서슴없이 입구로 들어섰다. 정문에 들어선 차가 멈추자 서 있던 제복 차림 안내인이 다가와 차량 번호와 이름을 확인했다. 입구에서부터 보안이 철저한 걸 보니 상당히 고급스러운 호텔인 듯했다.
차에서 내린 서하윤은 자기도 모르게 최상혁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국내도 아닌 해외, 그것도 도시에서 한창 떨어진 낯선 어딘가라는 사실에 뭐라 말하기 힘든 희미한 감정이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최상혁과 착 달라붙어 그의 손을 깍지 껴 잡으니 금세 깨끗이 사그라들었다.
성인 남자 둘이 나란히 선 채 손을 깍지 껴 잡는다니! 서울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전혀 마주칠 일 없는 타인들 앞이라는 사실은 없던 용기도 만들어 냈다. 최상혁도 잡은 손이 싫지 않은 듯 손가락을 마주 얽었다.
단정한 차림의 직원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도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기색 없이 웃으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 체크인을 하고 골프 카트 같은 것에 탄 채 안내된 곳은 새파란 풀장을 중앙에 두고 침실과 거실, 욕실이 빙 둘러 있는 완전히 독립된 풀 빌라였다.
서하윤은 풀장을 보는 순간 이미 승천하기 시작한 광대를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이런 곳에 많이 와 본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고수하려 애썼다. 물론 그런 표정 관리는 직원이 사라지면서 완전히 무색해졌다.
“와! 대박!”
서하윤은 직원이 사라지기 무섭게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그리고 풀장을 빙 둘러 침실과 거실, 욕실 문을 하나씩 신나게 열어젖히며 구경했다. 애초에 사는 곳이 최고급 아파트인지라 어지간한 고급 시설이 아니고서야 감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여긴 놀이 장소라는 것이 중요했다.
“헐. 대박. 대박. 여기 완전히 우리만 놀 수 있게 돼 있네요? 상혁 씨 이리 와서 침대 좀 봐 봐요. 엄청 크고 푹신하다! 침실이 두 개나 있네? 욕조 봤어요? 수도꼭지 진짜 황금같이 생겼네. 그리고 저거, 저거….”
빌라를 빙글빙글 돌며 하나하나 훑던 서하윤은 문득 옷장을 열어젖혔다가 멈칫했다. 텅 비어 있어야 마땅할 옷장 속에는 휴가지에 어울리는 반바지며 반팔 셔츠, 수영복으로 보이는 작은 천 쪼가리 따위가 백화점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듯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아래로는 슬리퍼와 운동화도 두 사람 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최상혁과 서하윤의 사이즈였다.
“어… 이거… 우리 거예요?”
서하윤은 놀란 눈으로 옷이며 신발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처음 보는 옷이며 신발이었지만 확실히 두 사람의 사이즈가 맞았다.
“이거… 미리 쇼핑해서 준비해 둔 거예요?”
서하윤은 동그란 눈으로 최상혁에게 다시 물었다.
“당연하지. 벗고 지낼 순 없잖아.”
최상혁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서하윤의 눈이 한층 더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저번 주말, 최상혁은 분명 회사에 따로 일이 없는데도 혼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왔다. 종일 어디 갔었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저번 주말에 이거 쇼핑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서하윤이 설마설마하는 얼굴로 묻자, 최상혁이 말없이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서 옆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렇다는 의미였다.
“헐….”
서하윤은 감탄인지 놀람인지 모를 묘한 소리를 흘렸다.
최상혁이 자신과의 여행을 미리 준비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미리 준비해 뒀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단순히 시간을 내서 자신과 여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만이 아니었다. 며칠간의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훨씬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해 줬다는 게 감동이었다.
“상혁 씨….”
서하윤은 치솟은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최상혁의 목에 팔을 휘감으며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감동이 넘치다 보니 몸도 절로 주체가 안 되었다. 둘은 진한 키스를 이어 나가며 주춤주춤 침대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곧 침대 위로 몸을 겹친 채 털썩 쓰러졌다.
“으음… 음….”
직원이 다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서하윤의 몸은 이미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빨리 이 빌어먹게 멋진 남자와 질펀하게 몸을 겹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의 것으로 몸 속 깊은 곳까지 쑤셔 박힌 채 맘껏 신음하고 싶었다. 벌써 배 속이 찡하니 울렸다.
“상혁 씨, 빨리 해 줘….”
서하윤은 최상혁의 입술을 빨고 핥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보챘다. 그 보챔은 서하윤 자신이 듣기에도 무척이나 음탕했다.
“남자 없이는 하루도 못 살지. 서하윤.”
최상혁이 서하윤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잔뜩 발기한 아랫도리를 그러쥐며 속삭였다.
“으응….”
서하윤은 몸을 파르르 떨며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대답이 실린 신음을 흘렸다. 어젯밤에 최상혁을 잔뜩 품었던 뒤는 여태까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최상혁은 서하윤의 성기 끝에 고인 쿠퍼액으로 적신 손가락을 뒷구멍으로 꾸욱 눌러 밀어 넣었다.
“아흐윽…!”
뒤로 긴 손가락 하나가 꾸물거리며 밀고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온몸이 저릿해졌다. 서하윤은 허리를 휘며 최상혁의 손가락을 꽉 죄어 물었다.
“손가락 하나 넣었을 뿐인데 좋아 죽기는….”
놀리는 듯한 말과는 달리, 최상혁의 눈은 잔뜩 뜨거워져 있었다.
“상혁 씨. 나 못 참아. 빨리… 응?”
느긋한 섹스도 좋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당장 최상혁의 성기에 박히고 싶었다. 서하윤은 안달이 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졸랐다. 그리고 손을 내려 이미 발기해 있는 최상혁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비비며 졸랐다.
“그렇게 박히고 싶어?”
최상혁이 물었다. 말만 들어서는 느긋해 보였지만 행동은 조금 달랐다. 그의 손은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속옷을 끌어 내리자, 잔뜩 발기한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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