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외전 2. 하준서
긴 하루였다.
둘은 한 플레이가 끝나면 꼭 끌어안은 채 휴식을 취하다가 자연스레 다음 플레이로 넘어갔다. 식사는 플레이 도중에 이루어졌다. 서하윤은 손을 뒤로 포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크림을 잔뜩 바른 하준서의 성기를 핥아 먹었다. 음료는 입으로 받아서야 마실 수 있었다.
플레이에 자신이 있다던 하준서의 이야기는 진짜였다. 그는 그가 했던 말대로 바닐라 수준에 맞춰서 다양한 플레이를 준비해 놓았다. 서하윤이 진짜 겁을 집어먹고 도망갈 정도는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참아 낼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하게 수위를 조절했다. 서하윤은 온갖 플레이를 겪으며 수치와 굴욕, 아픔 따위가 쾌락을 몇 배로 증폭시키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이른 오후에 들어설 즈음에야 ‘그 방’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하준서는 모처럼 상쾌하고 상큼한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욕구를 풀고 시원해하는 얼굴을 보니 방에 들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하준서는 정액과 크림, 타액과 플레이 자국 등으로 엉망이 된 서하윤은 안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가득 받아 둔 욕조 물 온도를 확인한 다음 서하윤의 몸을 조심스레 담갔다.
“아으….”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간 서하윤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패들로 맞은 엉덩이와 한껏 시달린 입구, 그리고 이런저런 모양으로 포박당했던 손목과 팔목이 살짝 쓰렸다.
“많이 아파?”
하준서가 걱정스레 물었다. 서하윤은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하준서가 서하윤의 한쪽 손목을 꺼내 들었다. 안감이 부드러운 가죽 수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몸부림친 통에 붉은 자국이 좀 남아 있었다. 하얀 팔목에 남은 붉은 포박 자국은 노골적으로 색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붉은 자국이 사랑스럽다는 듯 하준서는 그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선물, 마음에 들었어요?”
서하윤은 하준서가 한껏 만족스러워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물었다.
“응, 최고였어.”
하준서가 그렇게 말하며 서하윤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쪽쪽 눌렀다.
“해 보니까 어땠어? 할 만하지? 기분 좋아하던데.”
“네. 좀 낯설고 긴장될 때도 있었는데… 괜찮았어요.”
“설마 괜찮기만 했어? 완전 좋았던 거 아니고? 오늘 하윤이 너 얼마나 야하고 음란했는지 알아? 너 좋아서 질질 싸는 거 보면서 수위 올리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어.”
“그런 말 하지 마요.”
하준서의 말에 서하윤은 부끄러움에 못 이겨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하준서의 말은 사실이었다. 낯선 플레이는 긴장감을 유발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 좋았다. 플레이를 주도하는 것은 하준서였지만, 결국 즐기는 것은 서하윤이었다. 가벼운 스팽킹에도 성기가 바짝 섰고, 눈을 가린 채 딜도를 꽂고 하준서의 것을 빨 때는 흥분하다 못해 정액을 뚝뚝 떨구었다.
서하윤은 오늘 시간을 계기로 자신이 지금껏 생각했던 이상으로 음란한 사람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모든 걸 이해하고 함께해 주는 하준서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 너무 변태 같았죠. 그런 걸로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하윤이가 변태면 나도 똑같이 변태지. 하윤이 괴롭히면서 잔뜩 흥분했던 거 다 보지 않았어?”
하준서가 그렇게 말하니 수치심이 조금 옅어졌다. 확실히 하준서도 서하윤을 포박하고 스팽킹하고 괴롭히면서 잔뜩 흥분했다.
“근데 몸이 자국이 남아서….”
서하윤은 손목과 발목, 그리고 엉덩이에 남은 빨간 자국을 살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손으로 맞았을 때와 달리 가죽 패들로 맞은 자국은 좀 더 새빨갛고 선명했다. 아무래도 며칠은 갈 것 같았다.
“이거 자국… 며칠 정도 갈 것 같아요?”
“음. 가죽 패들로 살살만 때린 거라 이삼일이면 없어질 거야. 손목 발목은 길어도 이틀이고.”
“한 사흘 정도는 잡아야겠네요.”
서하윤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 하준서의 생일이랍시고 휴가까지 썼으니 같이 있으리라는 건 최상혁도 뻔히 알고 있을 터. 이 꼴을 해 가지고 최상혁을 만났다가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왜? 최상혁이 한 소리 할까 봐 걱정이야?”
“음….”
서하윤은 대답은 못 하고 빨개진 손목만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오늘 내 생일이라 거하게 놀 거 예상하고 있을 텐데, 뭐. 그리고 하윤이 엉덩이 후려 맞은 걸 보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도 그건 손으로 때린 거였는데… 이건 어떻게 봐도 도구로 때린 거잖아요…. 최상혁 씨 엄청 화낼 것 같은데.”
손바닥으로 몇 대 때린 거면 몰라도 도구까지 동원한 자국을 봤다가는 최상혁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잘못했다가는 두 남자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한 사흘간만 슬슬 피해 다녀.”
“정말 그래야겠어요.”
서하윤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준서의 눈매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노린 거 아니에요?”
서하윤은 하준서를 살짝 노려보며 물었다. 일부러 자국을 남겨 최상혁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든 거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준서가 놀리듯 말했다.
“아, 진짜.”
서하윤은 욕조 물을 한 줌 떠서 하준서의 얼굴에 뿌렸다. 하준서가 얼굴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훑어 내더니 씩 웃으며 욕조 안으로 텀벙텀벙 들어와 앉았다. 두 성인 남자가 욕조 안에 마주 앉자, 가득 찼던 물이 욕조 밖으로 촤아악 소리를 내며 넘쳐흘렀다.
하준서가 먼저 샴푸를 짜서 서하윤의 머리를 박박 씻기기 시작했다. 서하윤은 질세라 자신도 샴푸를 짜서 하준서의 머리를 박박 감겼다. 그렇게 서로 머리에 하얀 거품을 만들던 둘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다음 순서는 자연스럽게 키스가 되었다.
박박박-.
욕실 문 긁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처음에는 모른 척하고 거품을 서로 몸에 문지르며 키스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욕조 문 껍데기가 벗겨질 정도로 박박 긁어 대는 통에 길게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준서가 혀를 차며 욕조에서 일어나 욕실 문을 열었다.
애옹-.
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짧게 울며 욕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그 뒤로 순이가 나타났다. 욕실에 들어올 엄두는 못 내고 고개만 빼꼼 밀어 넣어 두 사람을 응시했다.
철이와 순이는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나면 가만히 있질 못했다. 문 앞에서 우렁차게 울어 대고 열심히 문을 긁어서라도 기어코 문을 열게 만들었다. 그렇게 들어와서도 따로 하는 건 없었다. 그냥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씻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얼른 씻어야겠네요.”
아무리 고양이라고 해도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야한 짓을 하기는 그랬다. 서하윤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켜 샤워기를 틀었다. 둘은 서로의 머리와 몸을 문질러 거품을 씻어 내렸다.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니 몸이 상쾌하다 못해 나른했다. 눈물도 빼고 욕망도 실컷 분출한 후라 온몸이 흐물흐물해진 기분이었다.
“지금 자면 딱 꿀잠이겠네. 낮잠이나 한숨 자자.”
하준서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말했다. 서하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말리는 것도 귀찮았다. 둘은 아예 베개 위에 마른 수건을 깔아 놓고 그대로 침대 위로 점프했다. 실컷 즐겼던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서하윤은 하준서의 품속으로 파고든 채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하준서가 짓궂게 물었다.
“이제는 준서 형이라고 불러 주는 거야?”
서하윤은 플레이 도중에 몇 번이나 준서 형을 외쳤던 것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준서 형이라고 불리는 것이 하준서의 로망이라기에 일부러 용기 내어 끄집어낸 말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아요?”
서하윤은 빤히 알면서도 되물었다.
“당연하지. 친근감 들잖아.”
“그럼 앞으로 되도록 그렇게 부를게요.”
서하윤이 순순히 대답하자, 하준서가 서하윤의 몸을 한층 더 꽉 끌어안았다.
“오늘 내 생일이라고 선물이 너무 두둑한데? 인심 너무 크게 쓰는 거 아니야? 다음 생일이 벌써 기대되네.”
하준서가 말하는 다음 생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하준서는 다음 생일에도 둘이 함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둘의 관계가 단단하다는 걸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서하윤은 고개를 들어 하준서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뭐야, 꼬시는 거야? 소프트하게 한 번 더 하고 잘까?”
하준서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말했다.
“저 잘 거예요.”
서하윤은 얼른 말하며 눈을 감았다. 하준서가 작게 웃더니 서하윤의 정수리에 입술을 눌렀다. 방 안은 곧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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