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외전 1. 최상혁
처음 서하윤을 집에 들인 건 어디까지나 옛 인연 때문이었다. 잔뜩 움츠린 채 무기력해져 있던 자신의 껍데기를 깨워 준 것에 대한 보답 정도였다. 물론, 성인이 된 서하윤에게 눈길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그건 명백한 거짓이다. 다만, 어린 시절의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라 최상혁은 서하윤에게 손을 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막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한참 어린아이였다. 세상 더러운 꼴을 다 보고 겪은 자신이 손댈 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옆에 안전하게 데리고 있다가 언젠가 떠나고 싶어 하면 훨훨 날려 보내 줄 생각이었다. 하여서 가끔 치밀어 오르는 욕심을 속으로 삭였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서하윤이 그리 놔두질 않았다.
“야, 최상혁.”
서하윤이 다짜고짜 불렀다. 나이가 차이가 얼만데, 게다가 고용주에게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찍찍 하는 것이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어 큰일이었다. 자신이야 오냐오냐 받아 준다지만 사회가 어디 그런 곳인가. 언젠가 하루 날을 잡아서 저 버릇을 고쳐 주는 게 좋지 않을까.
“말해.”
속으로만 생각하던 최상혁은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서하윤이 갑자기 그런 최상혁 손에서 태블릿을 획 빼앗아 들었다.
“뭐 하는 짓이야?”
“내 이름 불러 봐.”
“뭐?”
“내 이름 불러 보라고.”
“뭐 하자는 거야, 서하윤.”
최상혁이 나지막한 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서하윤은 겁이 없었다.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알기는 아네. 나는 벌써 몇 달째 이름 한 번 안 부르고 쳐다도 안 보길래, 내 존재를 까맣게 잊은 줄 알았지.”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눈앞에서 알짱대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먹을 생각이 없으니 아예 눈길을 안 준 것뿐이다.
“까불지 말고 그거나 이리 내.”
“싫은데?”
서하윤이 태블릿을 든 손을 등 뒤로 감추며 최상혁을 약 올렸다. 최상혁은 눈매를 찌푸리며 손을 서하윤의 등 뒤로 넣었다. 그리고 태블릿을 빼앗아 들려는 순간, 서하윤이 최상혁의 목을 감싸 안으며 입술을 맞댔다.
“뭐 하는 짓이야?”
최상혁은 마치 불에 덴 사람처럼 서하윤을 밀쳐 냈다. 잠시 닿았던 입술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다. 아니, 몸속에 애써 다스리고 있던 열기가 화악 피어올랐다. 씨발. 최상혁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뭐긴 뭐야. 키스지. 싫어?”
“서하윤. 까불지 마.”
애써 참아 낸 최상혁은 경고를 던졌다. 하지만 서하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당신 나한테 꼴린다며. 근데 왜 쳐다도 안 보는데?”
“쳐다봐 줬으면 했나 보지?”
“나 정도 되는 인물을 집에 들어앉혀 놨으면 마르고 닳도록 보고 또 보는 게 당연하단 얘기지.”
서하윤이 당돌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시건방지기로는 이겨 먹을 사람이 없었다.
애써 참아 넘기던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저 알아서 아가리에 머리를 디밀고 있다. 최상혁은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입맛만 다시던 먹이를 삼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빨간 희열을 느꼈다.
“집, 사 줄 수 있어?”
서하윤이 대뜸 물었다.
“뭐?”
“좋은 집 말이야. 새집에다가 크고 한강 보이는 그런 거.”
“서하윤.”
“용돈 말고, 생활비도 줄 수 있어? 많이.”
“까불지 말라 그랬지.”
“그렇게 해 주면 당신이랑 자 줄게.”
자 준다는 말 한마디에 머리에 열이 올랐다. 어린애가 자기 몸을 함부로 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까짓 집이며 돈 따위가 뭐라고, 저 하얗고 예쁜 몸으로 자 주네 마네 떠든단 말인가.
쬐끄만 게 겁도 없이.
최상혁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대로 잡아먹고 싶은 마음이 반, 그래도 아이를 건들 수는 없다는 마음이 반이었다. 하지만 거절했다가는 그대로 곁을 떠나 버릴까 봐 섣불리 거절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서하윤이 최상혁이 딱 한 번 빨아들인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비벼 꺼 버렸다.
“그리고 내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마. 냄새 질색이니까.”
“몇 달간 얌전히 잘 지내다가 갑자기 왜 이래?”
최상혁은 심란한 마음으로 물었다. 차라리 서하윤이 조금 전 말을 철회한다면 지금까지처럼 곁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몇 달간 당신 지켜봤으니까 그러는 거야. 난 어차피 평생 남자든 여자든 파리처럼 꼬일 팔자야. 더럽게 못생긴 변태 새끼들한테 시달리며 사느니 차라리 당신을 선택해 주겠다고.”
서하윤이 마치 대단한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오만한 얼굴을 한 녀석을 당장 소파에 엎어 놓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키스를 퍼부으면 놀라서 도망가겠지. 그럼 저딴 말은 다신 안 할 거다.
“어차피 당신도 월 천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액수 줘 가며 집에 들어앉혀 둘 정도로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었어? 당신, 나한테 꼴린다며. 나 좋아하잖아.”
말을 마친 서하윤이 대답을 기다리며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할 건지 말 건지 빨리 대답해. 싫다면 나도 다른 사람 찾으러 여기 뜰 거니까.”
서하윤이 대답을 재촉했다. 최상혁은 다른 사람을 찾아 뜨겠다는 말에 열이 확 치솟았다.
“서하윤. 너한테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당신이 아는 거지. 최상혁 당신은 어떤데. 당신한테 내가 그 정도 가치가 있어?”
최상혁은 눈빛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정말일까. 진심으로 하는 소릴까. 정말 잡아먹어 버린대도 겁먹거나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품속에 떨어져 줄까?
최상혁은 시험하듯 서하윤의 허리를 휘감아 바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당장 키스를 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놀라서 뒤로 물러나거나 밀어낼 거라 생각했는데 서하윤의 반응은 짐작과 전혀 달랐다. 얼굴을 가까이한 상태로 서하윤이 속삭였다.
“말해 봐. 최상혁. 나한테 그 정도 가치가 있어?”
서하윤은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도발하듯 응시하는 눈빛에 애써 꺼뜨리려던 가슴속 불꽃이 화악 치솟아 올랐다.
최상혁이 말없이 잡아먹을 것 같은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서하윤이 양손을 뻗어 최상혁의 목을 휘감은 채 그 키스에 열렬히 응했다. 풀썩-.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밀착한 채 소파 위에 쓰러졌다.
그렇게 한참이나 뜨겁고 열정적인 키스를 하던 중, 서하윤이 문득 속삭였다.
“그리고 나 구속하려고 하지 마. 난 당신이랑 섹스하는 거지, 당신 노예가 되는 게 아니니까.”
최상혁이 대답 없이 다시 서하윤의 입술을 삼켰다. 마치 소년을 탐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일었지만 욕망에 짓눌려 사라졌다. 최상혁은 생각했다. 그래, 지금은 이 아이가 원하니까. 그러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언젠가 떠나고 싶어 하면 언제든 날려 보내 주자고. 적어도 그러려고 애는 써 보자고 말이다.
***
똑똑-.
노크가 울리더니 문이 열렸다. 최상혁은 당연히 김 실장인 줄 알고 성의 없는 눈길을 힐끗 던졌다. 하지만 문 사이로 슬쩍 들어오는 것은 김 실장이 아니라 서하윤이었다.
“너….”
최상혁이 입을 열자, 서하윤이 쉿-. 하며 입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닫고 잠그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최상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말투에 어리광이 묻어났다. 벌써 스물넷이나 먹은 어른 주제에 이런 어리광이라니. 하지만 동안인 외모 때문인지 그 어리광조차 잘 어울렸다.
“어떻게 온 거야. 귀국은 내일모레 아니었어?”
최상혁은 자신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서하윤을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서하윤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더욱 단단히 매달렸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최상혁은 속으로 혀를 차며 서하윤을 마주 안았다.
“상혁 씨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먼저 귀국했어요. 보름은 너무 긴 거 있죠.”
거기까지 말한 서하윤이 최상혁이 목덜미에 코를 박더니 냄새를 흠뻑 들이켰다. 자신의 체향을 음미하는 행동에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안 그래도 근 보름이나 보지 못해 그립던 아이다. 이런 깜짝 등장을 해 주니 그간 홀로 묵혔던 욕망이 솟구쳤다.
“하준서는 어쩌고?”
하준서는 해외 투어 중이었다. 투어가 길어서인지 그는 서하윤에게 보고 싶다고 매일 조르고 졸랐다. 덕분에 서하윤이 보름이란 일정을 잡아 하준서를 만나러 출국해 투어 일정에 동행했다. 내일모레가 귀국 예정일이었는데, 자신이 보고 싶다고 달랑 와 버리다니….
“걱정 마세요. 준서 씨한테는 말하고 왔어요.”
서하윤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최상혁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담뿍 들이켰다. 가뜩이나 솟구치던 욕망이 대번에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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