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벼운 XX씨-108화 (외전) (108/125)

108화

외전 1. 최상혁

“첩년 자식 주제에 대들긴 어딜 대들어. 피가 섞였다고 내가 진짜 네 형으로 보이냐?”

싸늘하고 경멸 어린 눈길이 가슴을 할퀴었다. 하지만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가슴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적당히 손 좀 봐 줘.”

형제라 부르기도 구역질 나는 녀석이 비웃음을 남기고 돌아섰다. 동시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이 거리를 좁혔다.

퍽-. 퍽-. 퍽-. 퍽-.

폭력으로 먹고사는 남자들은 목숨 줄을 남겨 둔 채 고통만 주는 폭력의 수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온몸이 타격의 대상이었다. 주먹과 발, 각종 둔기가 온몸을 고루고루 두들겼다. 육체에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고통뿐이었다. 무딘 가슴은 여전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반항 없이 얌전히 두들겨 맞고 있으니 남자들의 흥미가 곧 떨어졌다. 남자들은 넝마가 된 최상혁을 향해 침을 뱉고 우르르 사라졌다. 최상혁은 그 자리에 누운 채 한참이나 몸이 움직여지길 기다렸다. 더러운 시멘트 바닥은 매우 차갑고 딱딱했다.

한참 만에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최상혁은 온몸을 휘감는 고통을 버티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호화로운 집은 첩년의 자식에게는 안식처가 아닌 호랑이굴이었다.

최상혁은 비틀비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최상혁은 이미 가슴을 할퀴는 혐오와 경멸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따뜻한 온기라 할 만한 것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 그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아주 어리던 때, 생모와 함께 살던 때는 모든 것이 좋았다. 생모는 아들밖에 모르는, 정이 참 많은 여자였다.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그때와 비슷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터질 것처럼 아팠고, 온몸이 삐걱거렸다. 최상혁은 절뚝거리며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곳을 찾았다. 그러다 곧 주택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벽에 등을 대고 주르륵 내려앉았다.

골목 안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최상혁은 쓰레기 더미 옆에 있는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골고루 얻어맞은 얼굴은 온통 얼룩덜룩하고 부풀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아마 생모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코피며 온몸에 난 상처 탓에 옷도 몸도 갈색 얼룩투성이였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행여나 부딪칠까 봐 기겁을 하며 피한 것이 당연했다. 최상혁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좁은 골목 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조차 몇 개 보이지 않는 좁은 하늘 아래 최상혁은 오롯이 혼자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추위에 온몸이 움츠러들어 얕게 떨리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자박. 자박.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최상혁은 눈만 돌려 발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어둠 속, 그림자 하나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으앗! 씨발. 놀래라.”

쓰레기 더미 옆에 널브러진 최상혁을 발견한 그림자가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주춤주춤 다가와 최상혁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매달린 가로등 불빛이 그림자의 얼굴을 비췄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하얀 얼굴이 보였다. 순간 잠시 놀랄 정도로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 찍힌 눈물점이 인상적이었다. 놀란 눈으로 최상혁을 이리저리 살피던 녀석은 쓰레기를 쓰레기 더미에 휙 던지더니 타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 사라졌다.

최상혁은 다시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리고 이 비참하고 비루한 인생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 첩년의 자식 따위, 고아원에나 내던져 줬으면 고마웠을 것을. 왜 굳이 그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곳에 끌어들여 이런 꼴로 지내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왜인지는 알고 있다. 철저히 실력 본위로 돌아가는 집안이다. 새끼 호랑이끼리 모아 놓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길 바라서겠지. 그렇게 마지막 남은 새끼를 다음 후계자로 삼으려는 거다. 물론 그 와중에 다른 새끼들이 물어뜯겨 죽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 때문이다. 배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못 잡아 죽여 안달인 것은. 첩년의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가장 약한 개체가 돼 버린 최상혁을 한시라도 쳐 내려는 거다. 물론 최상혁은 그들에게 목숨 줄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웅크리고 또 웅크린 채 모든 굴욕과 모욕을 견디며 그들의 목줄기를 물어뜯을 기회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견디고 견디다 기회를 잡아 그들을 다 짓밟은들, 그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그 위에 올라서면 이 무딘 가슴에 다시 온기가 돌아올까. 어쩌면 자신은 이미 망가져 버려서 고칠 도리가 없어진 건 아닐까.

자박. 자박. 자박.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조급한 발소리였다.

눈을 돌리자 조금 전의 그 하얀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플라스틱 약통이 들려 있었다.

“아우, 존나게 얻어맞았나 보네. 얼굴이 완전 프랑켄슈타인인데?”

예쁘장한 얼굴답지 않은 말투가 쏟아져 나왔다. 최상혁은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은 눈을 깜빡였다. 그것조차 아파 보였던지 하얀 얼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플라스틱 약병 뚜껑을 열어 빨간 약을 최상혁의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나도 얻어맞아서 피 터져 본 적이 존나 많아서 아는데, 그럴 때는 빨간 약이 최고야. 아저씨는 근데 조폭이야?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로 얻어터지면 경찰서 가는데 왜 이런 구석에 쪼그리고 숨어 있어? 혹시 도망치는 중이야? 괜히 나까지 이상한 일에 엮이면 안 되는데.”

“…….”

하얀 얼굴은 말이 많았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것이 분명한 최상혁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툭툭 내뱉었다. 예쁘장한 외모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껄렁하고 싸가지 없는 말투였는데, 묘하게 그게 또 어울렸다.

“아저씨 돈 있어? 돈 있으면 근처에 있는 모텔까지라도 데려다줄까?”

“…….”

“뭐야, 돈 없어? 말 못 해? 벙어리야? 아니면 말하기 싫어?”

하얀 얼굴이 조잘조잘 물었다. 그래도 대답이 없자 곧 한숨을 폭 내쉬었다.

“추워서 그대로 계속 있다가는 얼어 죽을걸? 진짜 돈 없어? 갈 데는?”

급기야 소년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사람이 무섭거나 징그럽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우 씨발. 보고 그냥 냅둘 수도 없고….”

소년이 거칠게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골치 아픈 일을 떠맡았다는 얼굴이었다. 잠시 최상혁을 빤히 보며 고민하던 소년이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최상혁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일어나. 오늘만 우리 집에서 재워 줄게. 아…빠는 오늘 안 들어올 테니까 집에 아무도 없어.”

최상혁은 소년을 조금 어이없단 눈으로 보았다. 쬐끄만 게 자신이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집에 들여 재운단 말인가. 방금 자신의 입으로 조폭이네 귀찮은 일에 휩쓸리네 해 놓고는 행동은 아주 달랐다.

“아, 나 아저씨 같은 등빨 일으켜 세울 힘 없어. 혼자 좀 일어나 봐.”

소년이 짜증을 부렸다. 최상혁은 벽을 손으로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소년은 부축을 해 주는 대신 최상혁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작고 하얀 손이 피 얼룩으로 더러워진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눈에 깊게 박혔다.

최상혁은 자신이 대체 왜 딸려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소년을 따라 절뚝절뚝 걸었다. 사실 주머니 속 지갑에는 돈이 두둑이 있었다. 그 호랑이굴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장점 중 하나였다. 소년은 최상혁의 느린 걸음이 답답한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손목을 당겼다. 걸음을 빨리하는 것이 조금 고통스러웠지만, 최상혁은 절뚝거리면서도 최대한 빨리 걸어 소년의 집으로 향했다.

소년의 집은 골목 바로 옆집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소년이 최상혁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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