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사무실 안에 곧 두 사람의 신음과 두 육체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가끔 서하윤이 애원하는 소리가 가득 차올랐다. 섹스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두 사람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최상혁은 하는 도중에 리모컨을 잡아 에어컨을 켰다. 그런 다음 다시 미친 듯이 서하윤의 뒤를 쑤셔 박아 댔다.
“저 싸요… 나와… 나와요…!”
섹스가 절정에 오르자 서하윤은 사정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호소했다. 최상혁과 동시에 싸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하윤이 한계에 이른 것을 알게 된 최상혁이 피치를 올렸다. 그렇게 마구 허리를 흔든 최상혁도 마침내 절정이 가까워진 듯, 나직이 내뱉었다.
“읏… 싸 버려.”
최상혁의 명령을 가장한 허락에, 서하윤은 그대로 까마득한 절정에 올랐다. 최상혁도 성기를 가장 깊숙한 곳까지 푹 쑤셔 박으며 몸을 바짝 굳혔다. 둘은 그렇게 거의 동시에 절정에 올랐다. 서하윤은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 퍼지는 따뜻한 정액의 느낌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허억- 허억- 허억-
얼마나 격렬한 섹스였던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서하윤이 책상 위에 힘없이 늘어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자, 최상혁이 그를 달랑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서하윤은 그대로 최상혁의 가슴에 몸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정말이지 폭풍 같은 섹스였다. 섹스 자체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어느 때보다 짜릿하고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몰아쉬며 최상혁의 턱을 만지작거리던 서하윤은 어느 순간 흐흐-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극은 어떻게 생각한 거예요. 상혁 씨가 이런 연출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애인이 변태 기질이 있으면 거기에 좀 맞춰 줄 줄도 알아야지.”
최상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야. 지금 나보고 변태라는 거예요?”
“변태를 변태라고 하지, 그럼 다른 단어가 따로 있나?”
“너무하네. 애인보고 변태라니.”
서하윤은 입을 불퉁하게 내밀며 삐친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상혁이 코웃음을 쳤다.
“회사 상사가 시킨다고 진짜 빨면서 흥분하는 걸 보고 변태라고 하지, 뭐라고 불러?”
“그건 상혁 씨니까 그런 거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흥분은커녕 당장 주먹 먼저 날렸죠.”
“그래? 그럼 그 말 잘 기억해 놔. 엉뚱한 새끼들이랑 붙어먹을 상상도 하지 말고.”
“뭐야. 지금 내가 바람이라도 피울까 봐 그러는 거예요?”
“전적이 있으니까.”
최상혁의 말에 서하윤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준서와 바람을 피운 건 사실 아닌가.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와 만나고 있었다.
“몰라요. 나는 그런 거 기억 안 나니까 나한테 따져도 소용없어.”
서하윤은 기억 상실을 방패로 꺼내 들었다. 최상혁이 쯧, 혀를 차더니 서하윤의 툭 튀어나온 입술을 잡아 흔들었다.
“기억 상실이 자랑이지, 아주.”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이니 어쩌겠어요. …어쨌든, 그렇게 걱정 안 해도 절대 바람 안 피워요. 세상에 이렇게 잘생기고 섹시한 남자가 또 어디 있다고 바람을 피우겠어요.”
“그런 것 치고는 다른 남자들이랑 아주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아하.
서하윤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회사를 좀 다니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랑 친분을 쌓았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남자들도 있었다. 최상혁 눈에는 그것조차도 영 거슬렸던 모양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죠, 뭐. 그렇게 따지면 난 김 실장님한테 질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보다 더 오래 같이 있고 맨날맨날 붙어 있잖아. 가만히 보니 김 실장님도 제법 잘생긴 얼굴이던데. 몸매도 늘씬하고.”
“…김 실장이 마음에 들었나 보지?”
최상혁의 뜬금없는 물음에 서하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의 등짝을 짝짝 때렸다.
“아니,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아, 정말….”
거기까지 한 서하윤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들어 이 말을 안 해 줬다. 혹시 그래서 그러는 걸까?
서하윤은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해 볼 가치는 있었다. 서하윤은 최상혁의 목을 양팔로 꽉 안은 다음, 그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최상혁 씨.”
안고 있는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최상혁이 서하윤의 몸을 꽉 마주 안았다. 숨이 살짝 막힐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압박감이었다. 서하윤은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기왕지사 이렇게 사무실에서 일을 벌였으니….
“우리… 한 번만 더 할래요?”
서하윤은 최상혁의 귓가에 속삭여 물었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 뒤에 바로 이어진 뜨거운 키스가 대답이었다.
두 사람이 회사를 나섰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 퇴근하고 없는 시간이라 둘이 함께 회사를 나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회사에서 모른 척하고 지낸다고 해도, 서하윤이 최상혁의 입김을 받은 낙하산이라는 거야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였다. 단지 서로 모른 척할 뿐이었다.
둘은 바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가끔 이렇게 주말에 서로 시간이 비면 함께 영화를 보고 술 한잔 하는 것이 데이트 코스였다. 이전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서하윤이 끈질기게 조르니 최상혁도 차차 맞춰 주게 되었다. 서하윤은 둘이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술 한잔 하고, 이런 소박하고 평범한 데이트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영화관은 항상 제일 뒷자리의 중앙이었다. 모든 걸 내려다보고 뒤에서 누군가 보는 느낌이 없어서 딱 좋았다. 같은 줄에 앉은 사람이 없는 날이면 눈치를 보다 가볍게 키스하기도 했는데, 그게 그렇게나 좋았다. 영화관 불이 꺼지고 컴컴해지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둘이 손을 꼭 깍지 껴 잡고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완전 재밌었다. 그죠?”
서하윤은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말했다. 발음이 살짝 꼬이려고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단둘이 데이트할 때면 이걸 해도 기분 좋고, 저걸 해도 기분 좋아서 항상 과음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든든한 최상혁이 함께 있는데 문제 될 게 뭐란 말인가.
“넌 영화 취향이 나빠.”
최상혁이 서하윤의 술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나쁘긴 뭐가요. 자고로 영화관에서 보려면 할리우드 액션 정도는 되어야 돈이 안 아깝죠.”
서하윤은 투덜거리며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서하윤의 영화관 취향은 무조건 딱 한 가지였다. 돈을 마구 퍼부어 만든 할리우드 액션 영화. 비싼 차와 총과 폭탄과 스릴이 난무하는 화면을 봐 줘야 영화 티켓 가격이 안 아깝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반면, 최상혁은 할리우드 액션에는 별반 감흥이 없는 눈치였다. 그냥 서하윤이 보자고 하니 가서 앉아 있어 준다는 느낌이랄까.
“그럼 상혁 씨는 대체 어떤 영화가 재밌는데요. 다음에는 상혁 씨 취향에 맞춰서 보러 가요!”
서하윤이 술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영화 같은 거에 취미 없어. 그 시간에 일이나 하면 모를까.”
역시나. 예상대로의 대답이었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니까. 이것도 흥미 없다, 저것도 흥미 없다. 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 살아요? 이 워커홀릭.”
“네 말대로 일해서 너 먹여 살리는 재미로 살지. 그리고 너랑 섹스하는 재미로 살고.”
“아우, 진짜. 그런 말을 막 하면 어떡해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서하윤은 둘만 있는 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동정을 살폈다. 옆방에 들릴까 봐 겁났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내 생활비 정도는 내가 번다고요. 내 월급이 얼만 줄 알아요? 오늘 영화비도 내가 내고 팝콘도 내가 샀잖아요. 그리고 이것도 내가 쏠 거라고요!”
서하윤은 턱을 치켜든 채 말했다. 그래 봐야 최상혁이 버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어쨌든 자신도 이제 어엿이 월급을 받아먹고 사는 사회인이었다.
“훗-”
최상혁이 귀여운 재롱 잔치라도 본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이제 제법 어엿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최상혁의 눈에 서하윤은 그저 햇병아리로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 적금도 들기 시작했어요!”
“오-”
최상혁이 대충 대단하다는 듯한 소리를 내주며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서하윤은 최상혁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대단한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닥거렸다.
“적금 만기 되면요, 그걸로 우리 같이 하와이에 가요. 같이 선 베드에 누워서 칵테일도 마시고, 서핑도 배우고….”
“해 지는 한적한 해변 찾아서 섹스도 하면 딱 좋겠군.”
최상혁이 또 그쪽으로 말을 뺐다.
“아, 진짜. 그 생각밖에 안 해.”
서하윤은 손을 뻗어 최상혁의 팔뚝을 가볍게 때렸다. 최상혁이 그 손을 낚아채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었다.
“거기까지 갔는데, 그럼 안 할 거야?”
최상혁이 손가락을 깨물깨물하며 물었다.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 서하윤은 붉게 해가 지는 해변가에서 두 사람이 나체로 뒹구는 장면을 상상했다. 민망하면서도 제법 당기기는 했다.
“안 한다는 말은 아니고….”
서하윤이 입술을 툭 내밀며 웅얼거리자 최상혁이 낮게 웃었다.
“아, 또 웃는다.”
서하윤은 탁자에 턱을 괸 채 최상혁의 웃음을 감상했다. 그의 웃음은 늘 그렇듯 짧게 스몄다가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대신 여운이 오래 남았다.
“상혁 씨 웃는 게 제일 보기 좋아요. 가끔 웃어서 더 그런가?”
“허구한 날 바보처럼 웃고 다니는 누구랑은 다르니까 말이야.”
허구한 날 바보처럼 웃고 다니는 누구란 바로 하준서를 말할 터였다. 하지만 서하윤은 못 알아들은 체하며 술잔을 들어 최상혁의 술잔에 짠 하고 부딪혔다. 그리고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적당히 마셔. 또 갑자기 엎어져 자지 말고.”
“그 정도로는 안 마셨어요.”
“슬슬 발음이 꼬이는데?”
“아닌뒈…. 아니… 맞네에….”
서하윤은 자신의 발음이 약간 꼬이고 있음을 인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