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뭐 하려는 것처럼 보여?”
최상혁이 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은 채였다. 최상혁이 항상 무표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진짜 무표정은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였다.
최상혁이 서창섭의 뒤로 가서 섰다. 그리고 니퍼를 벌린 채 엄지손가락 하나를 끼웠다. 니퍼를 살짝 조이자 녹이 슨 날이 엄지손가락을 자를 것처럼 조였다. 김민석은 자신의 손가락이 니퍼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머리끝이 쭈뼛 곤두섰다. 손가락이 아릿한 느낌이었다.
“잠깐! 잠깐! 말해 주면 되잖아. 말해 주면!”
서창섭이 다급하게 외쳤다.
“말해.”
최상혁은 니퍼로 손가락을 살짝 죈 채 요구했다. 말하기 전에는 떼어 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할게! 말한다고! 그전에 하나만 좀 들어줘! 1억! 1억만 주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 줄게. 영영 서하윤 인생에서 없어져 준다고!”
“틀렸어.”
최상혁이 짧게 말하더니 거침없이 니퍼를 꽉 조여 잡았다.
“크아아아아악-!!!”
텅 빈 지하 창고에 끔찍한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김민석은 바닥에 떨어진 엄지손가락과 철철 흘러내리는 붉은 피,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서창섭을 멍하게 응시했다.
“으아아악-!!”
연신 내지르는 비명이 얼마나 처절한지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하지만 몸이 꼼짝도 하질 않았다. 최상혁은 바로 옆에서 울리는 비명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서늘한 무표정을 유지한 채 니퍼로 다음 손가락을 살짝 죄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그걸로도 모자라면 손모가지, 발모가지도 남아 있어. 마약반 형사로 있었으면 별의별 험한 꼴로 뒈진 놈들 꼴을 다 봤겠지. 시간은 넉넉하니 계속해 보자고. 이제 두 번째 손가락인가? 말해.”
“흐으으… 흐으으….”
서창섭이 침을 줄줄 흘리며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잇새로 고통에 찬 신음이 연신 흘러나왔다. 최상혁이 니퍼로 손가락을 꽉 죄었다. 그러자 서창섭이 입에서 침을 튀기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말할게! 말한다고!”
“해.”
최상혁이 짧게 재촉했다. 그사이에도 서창섭의 눈은 부지런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별수가 없어 보였는지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이디는 ******. 비밀번호는 *******.”
서창섭이 침이 질질 흐르는 입으로 씹듯이 내뱉었다.
“말했으니 살려 줄 거지? 돈은 됐으니까 그냥 보내만 줘. 다시는 하윤이한테 연락 안 할게. 정말이야! 이 꼴을 당하고도 내가 연락을 하겠어? 살려만 줘. 어? 살려만 주면 돼!”
서창섭이 다급하게 외쳤다. 김민석은 그가 뭐라고 하든 귀에 담지 않고 그가 불러 준 아이디와 비번을 화면에 입력했다. 거짓이 아니었는지 바로 클라우드 계정에 접속이 되었다. 클라우드 안에는 이전 보았던 클라우드보다 훨씬 많은 사진과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 씨발 놈이….”
김민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진이나 영상을 클릭해 확인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김민석은 클라우드 속에 있는 모든 자료를 깨끗이 삭제했다. 나머지 클라우드 앱들도 같은 아이디와 비밀번호였다. 모든 클라우드에 접속해 자료를 삭제한 김민석은 마지막으로 바닥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발로 퍽퍽 짓밟아 뭉개 버렸다.
“하윤아…. 하윤아! 기억 안 나니. 이 아빠가 너 어릴 때부터 널 얼마나 귀여워해 줬니. 네 엄마가 너 구박할 때도 항상 지켜 줬던 거 기억하지? 네 엄마 죽고 나서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너를 고아원에 갖다 버리기는커녕 내 친아들처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기억하지?”
서창섭이 몸을 버둥거리며 간절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애절한지, 모르는 사람이면 바로 껌뻑 넘어갔을 것이다.
“무, 물론 네가 너무 예뻐서…. 이 아빠가 순간 눈이 돌아가서 널 그렇게 한 건 잘못했다. 하지만 하윤아. 나 네 아빠다. 하나밖에 없는 네 아빠야!”
“차라리 고아원에 갖다 버렸어야죠.”
김민석은 차가운 얼굴로 내뱉었다. 그리고 곧장 최상혁에게 눈을 돌려 말했다.
“집요한 사람이에요. 핸드폰, 클라우드 말고 집에 있는 컴퓨터, USB, 외장 하드 같은 데도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집을 통째로 태워 버리지.”
최상혁이 미리 생각해 뒀다는 듯 말했다.
“…이웃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요?”
“걱정 마. 그 정도로 어수룩한 놈들 아니야.”
자신을 따돌린 채 둘이 대화를 나누자, 그 모습을 다급한 눈으로 지켜보던 서창섭이 별안간 외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어어-!!”
목청이 얼마나 큰지, 귀가 아팠다. 김민석은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최상혁이 저벅저벅 다가가 서창섭의 배에 주먹을 한 대 박아 넣었다.
“커억-!!”
그 주먹 한 대에 서창섭은 고함은커녕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최상혁은 자신의 주먹이 서창섭에게 닿은 것조차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김민석은 다시 자신에게 다가온 최상혁이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해요?”
서창섭에게 용건은 끝났다. 하지만 손가락이 하나 잘려 버린 서창섭이 과연 이 일을 조용히 묻고 넘어갈지가 걱정이었다. 서하윤을 협박할 거리는 없어졌지만 대신 앙심이 남았을 것이다. 특히나 최상혁에게 앙심을 품고 뒤에서 일을 꾸미거나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걱정하지 마. 다시는 널 귀찮게 못 할 테니까.”
최상혁이 잘라 말했다. 김민석은 이걸 물어도 될지 말지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죽일 건가요?”
“언젠가는 죽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최상혁의 대답에 김민석은 깊이 안도했다. 서창섭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최상혁이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진 데 대한 안도감이었다.
“고맙다! 고마워, 하윤아! 이 아빠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정말이다!”
숨죽인 채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대화를 듣고 있던 서창섭이 연신 외쳤다. 최상혁이 상체를 숙이더니 김민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오래 굴러먹은 약쟁이야. 나 말고도 쫓는 놈이 있었으니 적당히 던져두면 도망치든지 잡히든지 알아서 하겠지. 약쟁이들 뒈지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내버려 둬도 알아서 죽어 나갈 거야.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이상할 정도니까.”
김민석은 조용히 바닥으로 눈을 깔았다. 결국 최상혁이 안 죽여도 서창섭은 죽음이 예약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판 구멍에 빠지는 것을 굳이 구해 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죽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깊은 안도감마저 들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거기에 안도감을 느껴서 될 일일까?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김민석은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 양아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그걸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협박거리로 쓴 인간쓰레기다. 그런 쓰레기가 죽음에 이르든 말든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 자신이 죄책감을 가질 일은 절대 아니었다.
“이만 가지.”
최상혁이 김민석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나, 나는 어쩌고?!”
서창섭이 외쳤다.
“내일쯤 풀어 주라고 할 거야.”
최상혁이 귀찮다는 듯 말하고는 김민석을 지하 창고 입구로 인도했다.
“하…. 하윤아! 아빠는, 아빠는! 널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
등 뒤에서 서창섭이 외쳤다. 순간 눈이 획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김민석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서창섭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서창섭 앞에 다다르는 순간 온몸의 반동을 이용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 더러운 새끼야!!!”
퍼억-!!
주먹이 제대로 박혀 들어갔다. 순간 주먹이 부서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김민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의자째로 옆으로 넘어진 서창섭의 얼굴을 발로 마구 짓밟았다.
“다시는, 서하윤, 이름, 입에, 담지, 마. 토 나오니까!”
발로 퍽퍽 짓밟으며 씹듯이 내뱉은 김민석은 마지막으로 서창섭의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숨을 씩씩거리며 뒤돌아서자, 본래 서 있던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최상혁이 보였다. 김민석은 자신의 모습이 추해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최상혁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어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뭐 해. 빨리 와.”
김민석이 망설이자, 최상혁이 손짓하며 불렀다.
그의 손짓 하나에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김민석은 최상혁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와락 끌어안았다. 왜인지 이제야 눈물이 찔끔 솟았다. 최상혁이 그런 김민석을 끌어안은 채 지하 창고를 나섰다.
지하 창고 밖 공터에서, 김민석은 최상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고 말았다. 자신은 서하윤이 아닌데, 마치 서하윤이 된 것처럼 과거의 수치와 절망, 고통과 미움, 외로움과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에 과거의 어두운 편린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김민석은 울음을 참지 않고 있는 대로 엉엉 통곡했다. 최상혁은 말없이 그런 김민석을 꽉 끌어안은 채 등을 도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