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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XX씨-74화 (74/125)

74화

머리를 벅벅 문질러 감는 손길이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샴푸를 끝내고 샤워기 물살 아래 고개를 집어넣은 모습은 괜스레 섹시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근육질 몸을 훑으며 아래로 쏟아지는 모습은 대단히 야성적으로 느껴졌다.

“엇…!”

최상혁이 머리를 다 헹구고 샤워 타월을 잡고자 몸을 돌리는 순간, 김민석은 놀란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은 최상혁이 등을 보인 채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김민석은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상혁의 근육질 등과 어깨가… 무슨 짐승한테 마구잡이로 긁힌 것처럼 손톱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

“설마, 그거 내가 그런 거예요?”

김민석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상혁이 피식 웃었다. 상처에 뜨거운 물이 닿아 아플 만도 하건만, 그는 아픈 기색은커녕 가렵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어떡해. 미안해요. 너무 아프겠다….”

김민석은 얼마나 벅벅 긁어 댔는지 성한 구석이 없는 등짝을 보며 사과했다.

“됐어.”

최상혁은 쿨하게 사과를 받아넘겼다. 그러고는 상처 위로 아무렇지 않게 샤워 타월을 문질렀다. 문질러진 상처에서 피가 좀 비쳤다. 김민석은 속으로 히익, 하며 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보았다. 너무 미안했다.

샤워를 마친 최상혁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물에 젖은 근육질 나체는 황홀할 만큼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남자와 짐승 같은 섹스를 했다니,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리 사이의 울창한 숲속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커다란 물건에도 괜히 눈길이 슬쩍슬쩍 가닿았다.

“왜? 또 먹고 싶어?”

타월로 몸을 닦던 최상혁이 김민석의 눈길을 느끼고는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거든요!”

김민석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버럭 외쳤다. 하지만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 괜히 몸속 깊은 곳이 찡해졌다. 정말이지 도리 없이 음란한 몸이었다.

보디로션까지 바른 최상혁이 김민석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나란히 누웠다. 방금 샤워를 마쳤기 때문인지 최상혁의 몸이 매우 따끈따끈했다. 그 감촉이 기분 좋아서 김민석은 최상혁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근육질 몸과 온도를 즐겼다. 최상혁이 구석에 엉망이 되어 처박혀 있던 이불을 끌어 올려 김민석의 몸을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무거운 탈력감이 몸을 덮쳤다. 아마도 약 기운이 빠지며 반동이 오는 것 같았다. 괜스레 밑도 끝도 없는 낙하감과 두려움이 덮쳐들었다가도, 딱 달라붙어 있는 최상혁의 존재감을 자각하는 순간 사라지길 반복했다. 김민석은 최상혁에게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 이 사람의 묵직한 존재감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는 기분이었다.

“눈 감고 한숨 자.”

최상혁이 나직이 말했다. 김민석은 그의 말대로 눈을 감았으나 금세 다시 뜨고 말았다.

“무서워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였지만 최상혁은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김민석의 몸을 번쩍 들더니 자신의 가슴 위에 엎드려 눕게 했다. 둘의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겹쳤다. 남의 몸 위에 누우면 불편하기라도 하련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넓고 탄탄한 가슴 위는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좀 낫나?”

최상혁이 물었다. 닿은 몸을 통해 그의 울림이 전해졌다. 괜스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김민석은 눈을 감아 보았다. 최상혁에게 온몸 가득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무섭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있어 줄 거죠?”

김민석은 자신의 몸이 최상혁에게 무거울 수도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지금 이 편안함을 잃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앞섰다.

“그래. 이제 한숨 자. 일어나도 그대로일 거야.”

최상혁의 말에 굉장히 안심이 되었다. 김민석은 눈을 감은 채 손으로 최상혁의 목과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단단한 골격과 근육이 만족스러웠다. 갑자기 깊은 욕심이 치밀었다. 이 남자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서하윤 말고 날 사랑해 줄 순 없어요?’

김민석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최상혁의 대답이 두려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은 이 정도만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몰랐다. 멍청한 사람도 아닌데 서하윤에게 굳이 호구를 잡혀 주었다. 그만큼 서하윤에 대한 마음이 깊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더 욕심을 부려 봐야 얻는 건 차가운 거절뿐일 수도 있었다. 그런 건, 견딜 자신이 없었다.

“……서창섭은….”

김민석은 머리한 구석에서 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작게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단 자.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최상혁이 큰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석은 최상혁의 몸 위에 누운 채,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잠 속으로 뛰어들었다.

***

‘최상혁. …최상혁!’

서하윤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며 최상혁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무슨 짓이야. 빨리 내놔.’

한창 통화 중이었던 최상혁이 인상을 쓰며 손을 내밀었다. 서하윤은 그러든 말든 핸드폰을 꺼서 소파 옆쪽으로 던져 버린 후 최상혁의 무릎 위에 달랑 올라앉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최상혁의 목을 휘어 감아 자신을 밀어내지 못하게 버텼다.

‘서하윤. 방금 통화가 얼마나 중요한 거였는지 알아?’

‘알지. 왜 몰라. 최상혁 이사님께서 하는 통화는 전부 엄청나게 중요한 거잖아. 그래서 절대 방해하면 안 되지.’

서하윤이 한껏 빈정거렸다. 최상혁이 그런 서하윤을 향해 잠시 눈으로 욕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몰아쉬며 날씬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물었다.

‘또 뭐야. 뭐가 필요한데?’

최상혁의 물음에 서하윤이 벌컥 화를 냈다.

‘뭐야. 내가 뭐 필요할 때만 너한테 들러붙는 놈이야?!’

‘그럼 또 뭐.’

최상혁이 빨리 말하라는 표정을 짓자, 서하윤이 최상혁의 잘 정리된 머리를 심술궂게 마구 흐트러뜨렸다.

‘일만 하지 말고 나랑도 좀 놀아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나 이렇게 방치 플레이 할 거냐고.’

‘내가 너처럼 집에서 놀고먹는 사람으로 보여? 돈은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 어리광 적당히 부려, 서하윤.’

‘싫은데. 자꾸 나 이렇게 방치해 두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나 같은 인물을 집에만 처박아 놓고 내내 일만 하면 불안하지도 않아?’

‘불안해야 하나?’

최상혁이 경고하는 눈빛을 보냈다.

‘당연히 불안해해야지. 나 같은 애인을 두고 안 불안해할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 있을 것 같아?’

서하윤이 오만하게 턱을 치들며 말했다.

‘그럼 처음에 했던 말은 취소할 건가? 구속하지 말라며. 네 요구대로 해 주고 있는 거잖아.’

‘구속하지 말라 그랬지 방치하란 말이 아니었잖아! 애초에 넌 일을 너무 많이 해. 무슨 조폭 나부랭이 주제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느냐고!’

‘조폭 나부랭이 아니랬지.’

‘사채업자가 조폭 나부랭이지. 네가 뭐 진짜 금융업자라도 되는 줄 알아?’

서하윤이 투덜거리자 최상혁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순간 말이 좀 심했다 싶었던지 서하윤이 애교 섞인 몸짓으로 최상혁의 목에 건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오늘은 일하지 말고 나랑 좀 놀자. 쇼핑 가자.’

‘바빠. 카드 줬잖아. 혼자 좀 다녀와. 아니면 김 실장이라도 붙여 줘?’

‘필요 없어. 너랑 쇼핑 가고 싶댔지, 내가 언제 김 실장이랑 놀고 싶댔어? …그럼 조만간 휴가 좀 빼서 나랑 놀러 가. 나 해외 나가고 싶어. 너 돈 많잖아. 하와이 가서 고급 리조트에 누워서 칵테일도 마시고 바다에서 서핑도 하자. 응?’

‘후우….’

최상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본 서하윤이 입술을 씹었다.

‘입술 씹지 마. 터질라.’

최상혁이 서하윤의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했다.

‘당장은 닥친 일이 많아서 힘들어. 길게 자리 비울 틈도 없고. 대신 사나흘 정도는 시간 내 볼게. 멀리 다녀올 기간은 못 되니까…. 가까운 오키나와 정도면 어때?’

‘…정말?! 진짜?!’

서하윤이 반색하며 외쳤다. 목소리에서 신남이 느껴졌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 핸드폰 이리 갖다 줘.’

서하윤이 재빨리 던져둔 핸드폰을 가져다 최상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최상혁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에게 짧고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역시 최상혁이 최고야.’

최상혁의 귓불을 의미심장하게 깨문 서하윤이 속삭였다. 최상혁은 피식 웃으며 서하윤의 볼을 한번 꼬집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하윤은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통화를 시작한 최상혁을 잠시 보다가, 빨리 여행 가방을 챙겨야 되겠다고 중얼거리며 드레스 룸으로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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