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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XX씨-73화 (73/125)

73화

김민석은 정말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물었다. 최상혁이 커튼이 쳐져 있는 창 쪽으로 힐끗 시선을 보냈다. 커튼이 쳐져 있었지만 밖이 환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붙어먹었어. 잠시만 쉬려고 해도 죽자 사자 매달리는 누구누구 씨 때문에.”

“어어….”

김민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부터 환한 지금까지라면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섹스만 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최상혁은 별반 지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몸은 달랐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고 기를 쪽쪽 빨린 것처럼 숨쉬기도 힘들었다.

“서창섭이 새끼가 너한테 약을 놨어. 취한 동안의 기억은 거의 없을 거야. 이제 약 기운도 어느 정도 빠진 모양이니 한숨 자 둬.”

그렇게 말한 최상혁이 김민석의 땀으로 젖은 볼을 쓸었다.

“서창섭이….”

김민석은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서창섭에게 성공적으로 약을 먹였다. 그런데 핸드폰을 빼앗으려다 도리어 주사기 공격을 받고 말았다. 빠르게 약이 돌아서 바닥으로 무너졌고…. 서창섭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가지고 있던 칼을 휘두른 것까지는 기억났다. 하지만 그 뒤는 완전히 깜깜했다.

“칼을…. 서창섭한테 칼을 휘둘렀는데….”

최상혁은 김민석이 잠을 청하는 대신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김민석이 다시 흥분할까 걱정하는 것처럼 이마와 볼을 연신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설마 서창섭이 죽은 건 아니죠?”

김민석이 굳은 얼굴로 묻자, 최상혁이 코웃음을 흘렸다.

“죽여 버릴 거면 회칼 정도는 사서 갔어야지. 손가락만 한 과도로 사람 죽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그것도 너처럼 비리비리한 몸으로.”

안 죽었다는 얘기였다. 김민석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살인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잠이나 자. 생각은 자고 일어나서 해도 되니까.”

최상혁이 재촉했다. 김민석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또 뭐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듯, 최상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무뚝뚝하고 사람 상냥하게 대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였다. 그러면서 서하윤에게는 제대로 호구 잡히질 않나….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 김민석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요.”

최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석은 상체를 일으키려고 손으로 침대를 짚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반나절 동안 미친 듯이 섹스하며 온몸의 에너지를 다 가져다 쓴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낑낑대고 있으니 최상혁이 혀를 찼다. 그가 김민석을 공주님 안기로 번쩍 안아 들었다.

“아… 부축만 해 줘도 되는데.”

“상체도 못 일으키는 주제에 부축으로 되겠어? 화장실까지 기어서 가려고?”

최상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최상혁 씨는 서하윤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몽땅 해 주면서 그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해 준 걸 다 깎아 먹는 것 같아요.”

김민석은 최상혁의 가슴에 머리를 댄 채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최상혁은 콧방귀를 뀌었다.

변기 앞에 도착하자 최상혁이 조심스레 김민석은 내려 세우고는 몸과 성기를 잡아 조준 자세를 잡아 주었다. 부끄러울 만도 하건만, 이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라 그런지 오줌도 쉽게 나왔다. 그러고 보니 최상혁이 소변 시중을 들어주는 것도 벌써 이번이 두 번째였다.

김민석은 소변 줄기를 보면서 생각했다. 최상혁 이 남자, 그냥 겉이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서 그렇지 참 괜찮은 남자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서하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씻고 싶은데….”

소변을 다 본 김민석은 정액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최상혁이 곧장 김민석은 욕조 안에다 들어 앉혔다. 그리고 샤워기를 켜서 물 온도를 맞춘 다음, 물줄기가 얼굴에 닿지 않게 조심해 가며 머리와 얼굴을 적셔 주기 시작했다.

“춥지 않게 몸에 대고 있어.”

최상혁이 샤워기를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김민석은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를 몸으로 받아 내며 최상혁이 벅벅 긁어 주는 샴푸질을 즐겼다. 손이 크고 힘이 좋아서 그런지 그냥 샴푸를 하는 것뿐인데도 비싼 두피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는지, 최상혁이 피식 웃으며 샴푸 거품이 묻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톡 두드렸다. 코끝에 거품이 뿔처럼 뿅 솟아났다. 김민석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샴푸질을 다 한 최상혁이 샤워기를 가져가 머리를 헹궈 주기 시작했다. 몸이 추울 것을 염려했는지 중간중간 샤워기로 몸을 적셔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욕조에 가만히 기대앉은 채 샤워 시중을 받고 있자니 몸이 노골노골 녹아내렸다.

김민석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씻기는 것에 전념한 최상혁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목을 잡아당겨 가볍게 키스했다.

“좀 더 해야겠어?”

최상혁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 바로 한 판 더 해 주겠다는 얼굴이었다.

이 사람 뭔가 참… 생긴 것하고 달리 대단히 우직하달까…. 그걸 넘어서 조금 무식…. 아니, 그건 아닌가. 아무튼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서하윤에게 굳이 호구 잡혀 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게 웃겼다.

“아뇨. 그냥 갑자기 키스가 하고 싶었어요.”

“키스할 힘은 남아 있으니 다행이군.”

“고마워요, 상혁 씨.”

김민석이 인사하자, 최상혁의 표정이 살짝 느슨해졌다. 되게 무뚝뚝한 인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니 나름대로 표정 변화가 제법 있었다. 그걸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나한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요. 난 거기 보답할 방법도 없는데.”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정 보답하고 싶으면 하준서 그 새끼랑 연락을 끊는 게 어때.”

뜻밖의 말에 김민석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 최상혁을 생각하면 하준서와는 인연을 끊는 게 맞았다. 무엇보다 그는 서하윤의 바람 상대가 아니었던가. 상식적으로든, 순서상으로든, 최상혁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자신은 서하윤이 아니었다. 한쪽을 선택하는 건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앞으로 서하윤으로 살게 된다고 해도, 아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만큼의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김민석이 선뜻 대답을 못 하자 최상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또 눈으로 욕을 했다. 뭐, 입으로 욕을 안 하는 게 어딘가. 김민석은 괜히 거품이 묻은 몸을 손으로 문지르며 씻는 시늉을 했다.

쏴아아---

최상혁이 거품칠 된 몸을 따뜻한 물로 헹궈 주었다. 그리고 다 씻긴 김민석을 달랑 들어 변기 뚜껑 위에 앉히더니, 타월로 발끝에서부터 물기를 제거해 주었다.

“음… 로션은 내가 발라도 되는데….”

김민석은 물기를 다 제거한 다음, 보디로션까지 살뜰히 발라 주는 최상혁을 보며 머뭇머뭇 손을 들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최상혁이 잘라 말했다.

둘 다 나체였기에, 최상혁의 번들거리는 성기가 다리 가운데서 이리저리 덜렁거리는 것이 고스란히 눈에 보였다. 김민석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눈은 저도 모르게 자꾸 거기로 향했고, 왜인지 모르게 입 안에는 침이 고여서 꼴깍꼴깍 삼켜 댈 수밖에 없었다.

로션을 다 바른 최상혁이 김민석을 안아서 침대로 가 그 위에 조심스레 눕혔다.

“좀 씻고 올 테니까 자고 있어.”

최상혁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도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김민석은 반나절에 달하는 긴 정사로 온통 엉망진창이 된 침대 위를 보며 괜히 얼굴을 붉혔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거의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억나는 것은 하늘 까마득한 곳으로 날아가는 듯한 어마어마한 쾌감의 실루엣뿐이었다.

“…….”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횅한 침대와 호텔 방의 풍경이 눈에 꽂힐 뿐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둡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김민석은 가슴을 덥석덥석 베어 무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욕실로 들어갔다.

“뭐야? 왜 그래?”

한참 샤워 중이던 최상혁이 욕실로 들어오는 김민석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김민석은 비틀비틀 걸어 최상혁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꽉 끌어안았다. 넓은 가슴을 끌어안은 팔이 파들파들 경련했다.

“서하윤? 왜 그래?”

최상혁이 샤워기 물을 끄고 김민석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김민석은 물에 젖은 근육질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웅얼거렸다.

“혼자 있기 무서워요….”

“…그럼 그냥 부르지 그랬어. 내가 가면 되는데.”

최상혁이 나직이 말했다. 그는 잠시 김민석을 꽉 끌어안은 채 젖은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를 번쩍 들어 안아 변기 뚜껑에 앉혔다. 그리고 춥지 않도록 큰 타월로 몸을 덮어 준 후, 김민석이 보는 가운데 다시 샤워하기 시작했다.

최상혁과 같은 공간에 있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이제 전혀 불안하거나 하지 않았다. 김민석은 변기 뚜껑 위에 얌전히 앉은 채 최상혁이 샤워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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