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달칵-
문이 열리고 최상혁이 나왔다. 그는 양복 상의를 다시 입은 상태였다. 김민석은 그의 손에 꽉 쥐여진 핸드폰을 보았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핸드폰을 움켜쥔 손에 힘줄과 혈관이 울퉁불퉁 도드라져 있었다.
최상혁이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가 하준서와의 일을 책망할까 봐 걱정이 들었다. 김민석은 딸기 우유가 든 유리잔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바로 옆에 와서 선 최상혁이,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까만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올렸다.
슥슥-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머리를 헝클었다. 쓰다듬는 것과 헝크는 것의 중간쯤 되는 손짓이었다.
“최상혁 씨?”
김민석은 의아한 소리로 불렀다. 최상혁이 김민석의 입술을 엄지로 잠시 어루만지다가 입을 뗐다.
“오늘 못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하준서랑 같이 있어.”
“…네?”
김민석은 뜻밖의 소리에 놀라서 물었다.
“괜히 혼자 싸돌아다니지 말고 하준서 옆에 붙어 있으라는 거야.”
“어…. 이제 밤인데…. 하준서 씨랑 같이 자라고요?”
“그래.”
최상혁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썩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네….”
김민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상혁이 김민석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 두드리더니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최상혁 씨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최상혁이 집 밖으로 나간 후, 김민석은 하준서를 향해 물었다.
“그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저 새끼는 원래 항상 이상했어요.”
“에… 최상혁 씨는 이상하거나 하지는 않은데….”
김민석이 동의 못 한다는 표정을 짓자 하준서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지금 내 앞에서 최상혁 편드는 거예요?”
“어, 그건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첩 앞에서 본처 편들면, 그 꼴 보는 첩은 얼마나 눈꼴이 시겠어요.”
“아우, 본처니 첩이니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듣기 민망해요.”
“첩 맞죠. 그러니 본처한테 순순히 얻어맞고 있었지. 내가 본처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맞고만 있었겠어요? 반대로 흠씬 패 줬겠지.”
하준서가 멍든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김민석은 난감한 기분이 딸기 우유를 꼴깍꼴깍 삼켰다.
“곤란하니까 우유 먹는 시늉 하는 거예요? 귀엽기는.”
하준서가 김민석의 입가에 묻은 우유 거품을 엄지로 닦아 주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뭔가 좀 꺼림칙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생각을 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김민석은 웃고 있는 하준서를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둘이 무슨 얘기 했어요?”
“네?”
하준서의 미소가 잠시 잠깐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 전에 컴퓨터 방에서요. 둘이 무슨 얘기 했어요? 고함도 안 들리고 서로 때린 것도 아니고… 그럼 싸운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글쎄요?”
하준서가 다시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김민석은 그의 미소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뭔가 좀… 어색했다.
“왜요? 궁금해요?”
하준서가 물었다.
“당연히 궁금하죠. 내 애인…들인데, 나만 빼놓고 이야기한 거잖아요. 솔직히 둘이 싸우면 싸웠지 조용히 이야기할 사이도 아니고.”
“흐음- 근데 어쩌죠. 무슨 이야기 했는지는 비밀이에요.”
“비밀이요?”
“네. 비밀. 원래 본처랑 첩 사이는 나쁘면서도 또 끈끈한 뭔가가 있어요. 서방님은 처첩 일에는 간섭하는 거 아니랍니다.”
“뭐야, 그거. 자꾸 본처니 첩이니 하지 말라니까요! 너무 민망해요.”
하준서 낮게 웃더니 상체를 숙여 김민석에게 짧게 뽀뽀했다. 그러고는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딸기 맛 나는 하윤 씨도 한번 먹어 보고 싶은데. 우리 침대로 갈까요? 내가 또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시, 싫어요. 아까 했잖아요.”
“몇 날 며칠을 참았는데 꼴랑 한 번으로 그게 풀리겠어요? 더구나 최상혁이가 오늘 우리 둘이 단란하게 밤 보내라고 자리까지 비켜 줬잖아요.”
“그거 하라고 비켜 준 건 아니죠!”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둘이 같이 밤을 보내면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는 거지. 우리 한 번만 더 해요, 응? 본처한테 이렇게 정식으로 허락받기가 쉬운 줄 알아요? 나는 꼭 해야겠어요.”
하준서가 고집을 부리더니 갑자기 김민석을 번쩍 안아 들었다.
“으앗! 준서 씨!”
김민석은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하지만 섬세한 미모와 달리 장신에 체격도 좋은 하준서는 그 발버둥을 손쉽게 제압했다.
털썩.
침대에 던져진 김민석은 뒤로 슬금슬금 기어 도망을 시도했다. 하준서가 침대 옆에 서서 셔츠와 바지, 속옷을 몽땅 벗어 던졌다. 김민석은 꿀꺽 침을 삼켰다. 나체로 서 있는 하준서의 몸은 남자다우면서도 무척 아름다웠다. 타고난 골격 자체가 아름다운 것 같았다.
“어때요? 내 몸 마음에 들어요?”
하준서가 물었다.
“…네. 예뻐요.”
김민석은 조금 수줍은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하준서의 얼굴에 화사한 꽃이 피었다.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김민석의 셔츠를 훌렁 벗겼다. 어쩐지 반항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준서의 상냥함에 취한 것 같았다.
“키스, 해도 돼요?”
하준서가 물었다.
“그걸 왜 새삼스레 물어요.”
김민석은 부끄러움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냥요. 그냥. 허락받고 키스해 보고 싶어서…. 어때요? 키스해도 돼요?”
“…네.”
김민석은 묘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서가 사르륵 눈웃음을 치더니 입술을 부드럽게 맞대었다.
쵸옵- 춉-
상냥하고 감미로운 키스가 이어졌다. 김민석은 어느새 하준서의 목에 팔을 두른 채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바지와 속옷이 벗겨져 나갔다. 두 사람의 나체가 어지럽게 뒤엉켰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맞닿는 살갗이 못내 기분 좋았다.
“내가 잔뜩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속삭인 하준서가 김민석의 몸을 돌려 눕혔다. 그대로 침대 위에 엎드리도록 인도했다. 김민석은 그 자세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입구를 뚫고 들어왔다. 뒤는 한차례 치른 정사로 이미 녹진녹진하게 풀려 있었다.
“아까 내 자지 잘도 받아먹더니 아직도 부드럽게 풀려 있어요. 이 안쪽 완전 따뜻해요.”
하준서가 손가락으로 내벽을 더듬으며 말하더니 손가락을 빼냈다. 입구에 뭉툭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것은 그사이 무언가로 적신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
하준서의 것이 꾸욱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잔뜩 받아들였던 성기가 다시 배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하아- 하윤 씨 구멍. 너무 맛있어요. 넣기만 해도 좋아서 쌀 것 같아.”
하준서가 쾌감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이며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뿌리까지 박힌 성기를, 김민석의 뒤는 너무나도 쉽게 받아먹었다.
둘의 몸이 완전히 겹쳐졌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하준서가 베개 껍데기를 벗겼다. 김민석은 당황한 눈으로 베개 껍데기를 착착 접는 손을 보았다. 하준서가 길게 접힌 천을 김민석의 눈앞에 대더니 속삭였다.
“세이프 워드. 기억하죠?”
“네?”
“우리 아직 그거 안 정했잖아요. 내가 정할게요. 우리 세이프 워드는 ‘사랑해요’예요.”
“그건 갑자기 왜…. 앗? 준서 씨?”
김민석은 갑자기 천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하준서를 불렀다. 하준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을 그의 눈가에 두르고 머리 뒤에서 꽉 매듭을 지었다. 김민석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준서 씨.”
김민석의 목소리가 살짝 굳어졌다. 하준서가 달래듯 귓불을 문질렀다.
“기억해요. 세이프 워드. 그거 한마디면 난 언제든지 멈출 거고, 지금 이건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거예요.”
“하, 하지만…. 아앗…!”
하준서가 깊이 박혀 있던 성기를 뒤로 살짝 빼더니 퍽, 하며 처박았다.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가기 무섭게 하준서가 허리를 요란하게 놀리기 시작했다.
퍽퍽퍽퍽- 아까와 다르게 몸을 들이박는 강도가 강했다.
“아앗. 앗. 앗! 읏! 앗!”
김민석은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정신없이 흔들렸다. 푹푹 쑤셔 박히는 성기가 기분 좋은 곳을 본격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하준서가 허리를 놀릴 때마다 몸속에서 쾌감이 펑펑 터졌다.
“아흑! 흣! 흣! 읏! 아흑, 준서, 씨. 아읏!”
“어때요? 좋아요? 죽을 것 같아요?”
하준서가 가쁜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네. 좋아요, 앗! 읏! 너무 좋아요!”
김민석은 솔직하게 대답하며 신음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몸은 자신의 깊은 곳을 들쑤시는 성기를 타이밍 좋게 오물오물 물어뜯었다.
“하, 씨발. 이런 요망한 구멍, 최상혁 그 새끼도 먹는다고 생각하면 죽여 버리고 싶다.”
하준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최상혁의 이름이 나오자 김민석의 몸이 저도 모르게 더 예민해졌다. 김민석은 최상혁의 새카만 눈을 떠올렸다. 그가 언제 집에 돌아와 둘이 이러고 있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전에 없던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