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벼운 XX씨-56화 (56/125)

56화

“하윤 씨.”

“헉….”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김민석은 어깨를 흠칫 움츠렸다. 뒤를 돌아보니 하준서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하준서 씨. 집에 간 거 아니었어요?”

“아, 집에 갔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하윤 씨 안색이 안 좋았던 게 신경 쓰여서 말이죠. 다시 찾아가던 길이었어요. 마침 여기서 만났네요. 어디 나갔다 오는 길이에요?”

“아, 네. 편의점에 잠시….”

김민석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린 봉지를 들어 보였다.

“맥주를 좀 사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비닐 안에는 맥주 캔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술이 당겨서 사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댈 핑계가 없었을 것이다.

‘설마 편의점 현금 지급기 쓰는 걸 봤나?’

김민석은 속으로 생각하며 하준서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들켰을까 싶어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다행히 하준서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저 무겁다며 맥주 봉지를 대신 받아 들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 안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몰랐다. 하지만 하준서가 계속 별다른 기색이 없으니 마음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음이 다소 차분해져 있었다. 일단 서창섭의 요구를 들어줬으니 당분간 조용할 거라는 기대가 주효했다.

“벌써부터 맥주 먹으려던 건 아니죠?”

하준서가 비닐 속에서 맥주 캔을 빼내 냉장고에 넣으며 물었다. 사실은 맞았다. 머리도 마음도 복잡하니 맥주를 몇 캔 까고 그냥 엎어져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준서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 바람도 쐴 겸 미리 사 두러 나간 것뿐이에요.”

김민석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하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 캔을 모두 냉장고에 넣었다.

“어디 안색 좀 봐 봐요. 아까 봤을 때는 얼굴이 얼마나 새하얗게 질려 있던지 깜짝 놀랐다니까요.”

하준서가 다가와 턱을 들어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김민석은 자신의 얼굴에서 긴장한 기색이 묻어 나올까 봐 걱정했다. 가만히 얼굴을 살피던 하준서가 갑자기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긴장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뽀뽀에 맥이 탁 풀린 김민석은 하준서를 흘겨보았다.

“뭐예요. 갑자기.”

“나한테 얼굴 맡긴 채로 얌전히 있는 건 뽀뽀해 달라는 소리 아니에요?”

“아니거든요?”

“아, 아니었구나. 내가 오해했네요. 그럼 어쩌죠? 뽀뽀한 거 다시 돌려줄까요?”

하준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당장 다시 한번 뽀뽀할 태세였다. 김민석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준서의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얼굴에서도 그게 티가 났던지 하준서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이제 본래 얼굴로 돌아왔네. 뭐 때문에 그런 얼굴이었는지 나한테 말해 주기 싫어요?”

“없어요, 그런 일.”

“흠…. 하윤이는 자기 기분 감추는 데도 능숙했는데, 민석 씨는 좀처럼 표정 감출 줄을 모르네요. 순진해 빠졌어, 아주.”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글쎄요. 어느 쪽일 것 같아요?”

하준서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김민석은 하준서와 말로 투닥거리는 이 시간이 참 편안하고 좋았다. 만약 서창섭이 협박을 이행한다면 이런 시간,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새 깨끗이 사라졌다. 하준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했다. 그의 존재 또한 욕심이 났다. 이런 편안한 애정을 주는 사람,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이런. 표정이 또 시무룩해지네. 왜요? 무슨 일인데요. 나한테 말해 주면 안 돼요?”

하준서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요.”

“좋은데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요?”

“인생이 원래 그렇잖아요. 좋은 순간이 있으면 나쁜 순간이 오고… 나쁜 순간이 있으면 좋은 순간이 오고…. 돌고 도는 거잖아요. 나는 지금이 좋으니까 곧 또 나쁜 순간이 오겠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쉽네요.”

김민석은 서창섭에게 건넨 천만 원으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중독자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던가. 손에 돈이 들어와도 금세 날려 먹는다. 그에게는 훌륭한 협박거리가 있으니 머잖아 또 서하윤에게 돈을 요구하겠지. 그때까지 며칠이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우울한 생각을 했을까?”

“그러게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김민석은 풀 죽은 목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그리고 최상혁에게만은 절대 그 수치스러운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설사 세상 사람이 다 알게 되더라도 이 두 남자만은 그 사실을 몰랐으면 싶었다.

“흠… 기분을 풀어 줘야겠는데. 뭘 해야 기분이 풀어질지 모르겠네. 우리 같이 쇼핑이라도 갈까요? 내가 예쁜 시계 사 줄게요.”

“시계 같은 거 드레스 룸에 이미 많던데요, 뭐. 게다가 그 얼굴로 백화점 같은 곳을 어떻게 돌아다녀요.”

“아, 맞다.”

하준서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멍든 얼굴을 어루만졌다. 어제만 해도 시퍼렇던 멍은 이제 더 색이 진해져서 아예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럼 뭘 한다…. 민석 씨는 평소에 뭘 하고 놀아요?”

“저요? 저는 뭐… 그냥 일 끝나면 고시원에 돌아와서 핸드폰으로 예능이나 동영상 보면서 시간 때우다 자고 그랬죠.”

“예능 프로 좋아해요?”

“보고 있으면 재밌고 시간도 잘 가니까요.”

“그럼 우리 같이 그거 보고 놀아요.”

하준서가 소파로 걸어가 털썩 앉더니 손으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TV를 켜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몇 번 돌린 끝에 요즘 한창 유행인 예능 프로가 잡혔다. 하준서가 리모컨을 내려놓고 김민석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눕게 만들었다.

“편하죠?”

하준서가 물었다. 김민석은 자세를 이리저리 뒤척여 편한 자세를 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고 누운 하준서의 허벅지는 의외로 근육이 탄탄했다. 도무지 뭐 하나 단점을 찾아볼 수 없는 남자였다. 아, 물론 성적인 취향 빼고 말이다.

예능 프로가 그렇듯 TV 화면 안에서는 웃음꽃이 넘쳐흘렀다. 잠시 집중을 못 하던 김민석도 이내 따라서 작게 웃기 시작했다. 하준서도 때맞춰 웃고는 했는데,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웃으며 TV 보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김민석은 처음 알았다.

서창섭 때문에 한껏 들어갔던 몸과 마음의 긴장이 완전히 풀리자 슬그머니 졸음이 밀려왔다. 김민석은 TV에 시선을 집중하려 애썼지만, 눈꺼풀이 끔뻑끔뻑 감기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하준서가 간간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베고 누워 있는 허벅지의 감촉과 그의 부드러운 향기,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에 점점 더 평온해졌다. 김민석은 결국 편안한 마음으로 졸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리 안 저려요?’

하준서가 간식거리와 음료를 내오며 물었다. 서하윤은 자신의 무릎 위에 억지로 낑겨 누워 있는 철이와 순이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다리는 저릿저릿한 상태였지만 굳이 좁은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와 그릉그릉대는 귀여운 녀석들을 쫓아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밥 주고 간식 주고 화장실 치워 주는 것도 전부 내 담당인데 둘 다 하윤이만 좋아한다니까. 나 질투 나 죽겠는데, 어떡할 거예요?’

‘고양이한테 질투씩이나 하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 이리 와. 키스해 줄 테니까.’

서하윤이 하준서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하준서는 순순히 끌려와 입술을 맞대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그르렁거리는 가운데, 두 사람의 감미로운 키스가 이어졌다.

한참의 키스 끝에 입술이 떨어졌다. 하준서가 문득 서하윤의 손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내가 선물한 시계, 안 하고 왔네요?’

‘아, 그거. 몇 번 찼더니 질려서 팔아 버렸어.’

서하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그냥 새로 하나 사 주면 안 될까? 사고 싶은 거 봐 둔 거 있는데.’

하준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하준서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니 서하윤이 그의 가슴을 툭 쳐서 밀쳤다.

‘싫으면 말고. 다른 사람한테 사 달라고 하면 되니까. 나한테 선물 갖다 바치고 싶어 하는 사람, 널리고 널렸어.’

퉁명스런 말에 하준서가 금세 다시 가까이 붙어 서하윤의 볼을 쓰다듬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요. 언제 안 사 준대. 하윤이가 갖고 싶다면 뭐든 다 사 줘야지.’

‘정말이지?’

‘그럼요. 쇼핑 언제 갈까? 지금 갈까?’

하준서가 상냥하게 말했다. 서하윤은 아직도 자신의 무릎에서 버티고 있는 철이와 순이를 번갈아 가며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오늘 말고 나중에.’

‘그래요. 그나저나 하윤아.’

부르는 하준서의 목소리가 은근했다. 그가 고양이를 쓰다듬던 서하윤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아랫도리에 갖다 댔다. 그곳은 명백하게 잔뜩 부풀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놀까? 오늘도 잔뜩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흐음….’

하준서의 유혹에 서하윤이 망설이는 소리를 냈다. 시선은 여전히 무릎 위 고양이들에게 꽂혀 있는 것이, 녀석들을 깨우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하준서가 슬쩍 손을 뻗어 그르렁대는 고양이들을 서하윤의 무릎에서 밀어냈다. 밀려 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고양이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왜 잘 자는 애들을 건드려.’

서하윤이 퉁명스레 말하며 바닥에서 빤히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옹- 철이가 눈을 댕그랗게 뜨고 애교 부리듯 울었다. 그 모습을 보는 서하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 얼른 들어가요. 응?’

하준서가 서하윤의 손을 잡아 한쪽 방으로 이끌었다. 서하윤은 못 이긴 척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준서가 서하윤의 몸을 잡아당겨 입술을 맞추며 방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하윤의 팔이 곧 하준서의 목에 감겼고, 둘은 키스하는 채로 방문을 열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풍경이 바뀌었다.

그곳은 낡고 초라한 방이었다. 벽지 색은 누렇게 변해 있고, 바닥에 깔린 침구는 알록달록 촌스러운 무늬였다. 그마저 때를 타서 매우 지저분해 보였다. 서하윤은 그 이불 위에 늘어져 누워 있었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서하윤이 흐릿한 눈으로 들자 서창섭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나체였고, 성기는 잔뜩 발기한 채였다.

몇 번이나 사진을 찍은 그가 구식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고 음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서하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착한 하윤이. 아빠 좆 한 번 더 받아 줄 거지?’

‘…싫…어….’

목구멍을 긁으며 나오는 소리가 어눌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축축 늘어지는 것이 무언가 약을 먹은 게 분명했다.

‘우리 하윤이. 내 창년.’

서창섭이 서하윤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그리고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다리 사이에 들이밀고는 꾹 밀어 넣었다.

‘으으….’

서하윤이 고통스러운 듯 몸을 바르작거렸다. 하지만 서창섭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 짓을 하며 헉헉대기 시작했다.

‘씨발, 우리 하윤이 구멍은 얼마나 쫄깃쫄깃한지. 네가 네 어미보다 훨씬 더 창녀다워. 아빠는 우리 하윤이만큼 맛있는 구멍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아빠가 우리 하윤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서창섭이 몸 위에서 끊임없이 헉헉대며 속삭였다. 서하윤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 옆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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