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왜 웃어요?”
하준서가 입술을 쪽쪽 빨며 물었다.
“으음. 음… 하준서 씨한테 좋은 냄새가 나서요.”
김민석은 취한 와중이라 그냥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내 냄새가 좋아요?”
하준서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네. 좋아요. 부드러운 섬유 유연제 향이 나요. 그게 하준서 씨 다정한 성격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애써 참고 있는 사람을 이렇게 꼬시기예요?”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기는. 꼬시는 거지. 김민석이 돼도 본능적으로 남자 홀려 대는 건 똑같네. 맹해졌으면서 남자까지 홀리고 다니면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요?”
“아니에요… 나는 모태 솔로예요. 그런 거 모른다고요.”
“모태 솔로는 무슨. 나랑 최상혁이랑 이런저런 짓 다 했으니 이제 모태 솔로라고는 절대 말 못 하죠. 안 그래요?”
하준서가 장난스레 타박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김민석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서 씨가 맞아요. 난 이제 모태 솔로가 아니에요.”
취기가 깃든 어눌한 말투로 말하자, 하준서가 또 소리 내 웃었다.
“아, 귀여워. 너무 귀여워서 확 잡아먹고 싶어요. 진짜 잡아먹고 싶다. 오늘 좀 잡아먹으면 안 돼요? 이것 봐요. 나 벌써 이렇게 돼 버렸잖아요. 하윤 씨 때문이니까 책임져 줘야지.”
하준서가 조르듯 말하며 자신의 하체를 은근슬쩍 비벼 왔다. 그의 하반신은 닿기만 해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게 발기되어 있었다.
“안 돼요. 안 해.”
김민석은 퉁명스레 잘라 말했다.
“왜요? 왜 안 해요? 최상혁한테 혼날까 봐 그래요?”
“아니에요. 그런 거. 최상혁 씨는….”
거기까지 말한 김민석은 서하윤과 최상혁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서하윤은 최상혁에게 자신을 구속하지 말라고 조건을 걸었고, 최상혁은 그걸 수락했다. 어쩌면 최상혁이 하준서의 존재를 내버려 두는 것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기 위함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안 돼요.”
“거짓말. 이것 봐요. 몸은 거짓말 안 하고 있잖아요.”
하준서가 손을 내려 김민석의 아랫도리를 살짝 잡았다. 그의 말대로 김민석의 성기는 살짝 발기해 있었다.
“이건…. 이건 그냥 키스가 기분 좋아서 선 거예요.”
“그게 그거죠, 뭐.”
하준서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다시 입술을 부딪쳤다.
“으음… 음….”
진하고 야한 키스가 이어졌다. 둘은 소파 위에 들러붙어 누운 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몸싸움 아닌 몸싸움을 했다. 하지만 하준서의 힘을 당할 수가 없어서, 어느새 바지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지익- 하고 울렸다.
“으음… 안 돼요….”
김민석은 버둥거리며 속옷 속에 들어간 손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성기를 붙잡혀 있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삑삑삑삑-
철컥-
전자음과 함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놀랐던지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김민석은 하준서에게 깔려 누운 채로 고개를 틀어 현관을 보았다. 집 안으로 들어선 최상혁이 시커먼 눈으로 엉겨 있는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최, 최상혁 씨. 그게 아니라….”
김민석은 급히 하준서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다 그만 소파에서 굴러떨어졌다.
쿠당-
“아야….”
바닥에 엉덩이를 호되게 박은 김민석은 아픈 부위를 문지르며 상체를 비틀거렸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취기가 한꺼번에 확 올라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자꾸 버둥거리기만 했다.
“약 먹인 거 아니다.”
하준서가 선수를 쳤다. 김민석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니에요. 그냥 취해서 그래요. 취해서.”
취기 때문에 어눌한 말투로 말하자, 최상혁이 하-! 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김민석의 팔뚝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선 하준서에게 일갈했다.
“반대쪽 얼굴까지 얻어맞고 싶은 거 아니면 꺼져.”
“말하는 본새하고는…. 하윤 씨 심심할까 봐 이 꼴을 하고도 놀러 와 준 거야. 혼자 집에 있으면 얼마나 심심하겠어. 그렇다고 네가 일 때려치우고 같이 있어 줄 거야, 어쩔 거야.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하준서가 그답지 않게 투덜거렸다. 그러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며 김민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일 또 놀러 올게요. 잘 자요.”
인사를 한 하준서가 문밖으로 사라졌다. 김민석은 최상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오늘은 일찍 왔네요?”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최상혁의 목소리는 의외로 거칠지 않았다. 부드럽다기에는 모자랐지만, 어쨌든 평소 그의 말투에 비하면 부드럽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갑자기 맥주 생각이 나서요. 맥주 마시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렇다고 저 새끼랑 같이 술을 마셔? 바로 어제 그런 일을 당해 놓고 겁도 없이.”
“으음… 그건….”
김민석이 우물쭈물거리자, 눈을 가늘게 뜬 최상혁이 키스 때문에 아직 젖어 있는 입술을 매만졌다.
“키스까지 한 모양이고.”
그렇게 말한 최상혁의 눈이 아래로 내려갔다. 시선이 벌어져 있는 바지 앞섶에 꽂혔다.
“다리까지 벌려 줄 참이었던 모양인데. 방해였나?”
“아, 아니에요. 그냥 하준서 씨가 멋대로….”
“그 새끼가 멋대로 굴면 앙탈 부리지 말고 주먹으로 제대로 한 대 갈겨. 진짜 싫으면 말이야.”
최상혁이 조금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민석은 괜히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김민석이 고분고분 대답하자, 최상혁이 양복 상의를 벗어 소파 위로 던졌다. 그러고는 말했다.
“벗어.”
“네?”
“벗으라고. 아직 안 씻은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같이 씻게 벗어.”
김민석은 최상혁의 말에 기겁했다.
“혼자 씻을 수 있어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혼자 씻기는 뭘 씻어. 빨리 벗기나 해.”
최상혁은 강경했다. 김민석은 아무렇지 않게 옷을 훌훌 벗어젖히는 최상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도 옷을 벗기 시작했다.
최상혁이 마지막으로 브리프를 벗었다. 발기되지 않았음에도 위용이 당당한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김민석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신도 브리프를 벗었다. 그 와중에 비틀거리는 바람에 넘어질 뻔한 것을 최상혁이 잡아 주었다.
최상혁이 김민석의 팔뚝을 붙잡고 욕실로 들어섰다. 샤워기 물을 튼 그가 김민석을 붙잡아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살폈다. 이제 붉은 기가 완전히 가신 엉덩이를 한번 주물러 보고, 성기도 붙잡아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래도 어제 일의 후유증이 남았는지 검사하는 것 같았다.
“이제 괜찮아요. 엉덩이도 하나도 안 빨갛고, 소변도 잘 나오고. 아프지도 않아요.”
김민석이 말하자, 최상혁이 그제야 손을 뗐다. 그 와중에 뜨거워진 물줄기 온도를 가늠하더니 김민석을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샴푸를 푹푹 짜서 김민석의 머리를 감겨 주기 시작했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크고 단단한 손으로 샴푸를 받으니 두피가 얼마나 시원한지 몰랐다. 뜨거운 물줄기에 술기운이 한층 더 올라왔는지 김민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렸다.
“기대 있어.”
최상혁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게 김민석을 이끌었다.
“고마워요.”
작게 인사한 김민석은 속으로 이 남자도 의외로 대단히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아니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행동이 그랬다. 하준서와는 결이 다른 다정함이었다. 단단하고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대고 있으려니 굉장히 안정감이 느껴졌다. 괜스레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도 들었다.
“오늘 낮잠 자다가 또 서하윤 꿈을 꿨어요.”
하준서에게는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던 이야기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무슨 꿈?”
“서하윤이… 엄마한테 많이 맞고 있었어요. 아직 한참 어린아이인데 너무 심하게 때리더라고요.”
“…….”
“가족이 있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형들한테 맞으면서 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맞거나 한 적은 없었고…. 또 엄마가 때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고아인 편이 나았나?”
“꿈속 내용만 봐서는… 서하윤에게는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김민석은 서하윤에 대한 연민을 듬뿍 담아 말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에 덧붙였다.
“혹시 그래서 서하윤이 이 몸에 돌아오기 싫어하는 걸 수도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최상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란히 나가 머리를 말렸다.
당연하다는 듯 함께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근육질 몸에 익숙하게 안긴 채 눈을 감자 술기운 탓인지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최상혁 씨.”
“말해.”
“왜 하준서 씨랑 만나는 거, 화 안 내요?”
“지금 너한테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왜요?”
김민석은 감았던 눈을 뜨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인이 바람 상대와 그만 만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하준서는, 그 새끼는 함부로 떨궈 내려고 들었다가는 같이 죽자고 달려들 새끼야. 어릴 때부터 그랬지. 한번 마음에 담은 건 죽으면 죽었지 포기할 줄을 몰라. 너한테 단단히 빠진 모양이니까, 나한테 완전히 빼앗기느니 아예 망가뜨리려고 들지도 모르지.”
최상혁의 말만 들어서는 하준서가 완전 무서운 사람 같았다. 도무지 평소 보던 하준서와 매치가 되질 않았다.
“하준서 씨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뒤처리가 간단한 놈이었으면 애초에 떨궈 냈겠지.”
“최상혁 씨가 뒤처리를 감당 못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는 거네요?”
“그렇다고 그 새끼랑 놀아나라는 소리가 아니야. 엉덩이 간수 잘해.”
최상혁이 그렇게 말하며 김민석의 엉덩이를 강하게 주물렀다.
“에… 얘기가 또 왜 그쪽으로 빠져요.”
김민석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자.”
최상혁이 말했다. 김민석은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최상혁을 빤히 살폈다. 선이 굵은 미남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감탄이 솟았다.
“눈 감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고 있으려니 최상혁이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김민석은 얼른 눈을 감았다.
문득 아까 서창섭을 만나 연락처를 주고 만 일이 생각났다. 그것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번 감은 눈은 쉽게 뜨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고, 그걸 말했다가는 엄청 혼이 날 것 같았다.
‘뭐… 연락이야 와도 안 받으면 되는 거니까.’
김민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