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시야가 이상했다. 한쪽 눈은 무언가 때문에 잘 떠지지 않고, 나머지 한쪽 눈은 눈물이 흠뻑 고인 듯 시야가 흐렸다.
그때 작은 손이 눈물이 고인 눈을 문질렀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며 시야가 개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 목소리였다.
어린아이는 양손을 모은 채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손 너머로는 예전에 보았던 서하윤의 엄마가 있었다.
‘시끄러워! 입 닥쳐! 네 목소리도 듣기 싫으니까!’
히스테릭하게 외치는 서하윤의 엄마는 이전에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고 있던 몸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눈이며 볼은 퀭하게 패었고, 피부도 퍼석퍼석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머리에는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항암 치료 따위 때문에 머리를 민 것 같았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밥을 질질 흘리면서 먹어! 네 그 더러운 건 다 네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거야! 내가 밥 먹을 때 흘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엄마가 손에 든 회초리를 위협적으로 흔들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서하윤은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양손을 모아 싹싹 빌 뿐이었다.
잔인한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던 엄마가 회초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따악-! 따악-!
그야말로 무식한 회초리질이었다. 아이의 온몸에 마구잡이로 휘둘러 댔다.
‘아악! 악!’
서하윤은 어린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 가며 온몸을 웅크렸다. 나름의 방어 자세일 터였다. 하지만 회초리질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비명을 질러?! 뭐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엄마가 나쁜 년이라고 광고라도 하려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입 다물어! 입 다물라고!’
엄마가 윽박질렀다. 서하윤은 그 후로 입술을 꽉 깨문 채 터져 나오는 신음조차 참았다. 회초리질에서는 조금씩 힘이 빠졌으나, 아픈 것은 여전했다.
머리를 감싸 쥔 손에 축축한 게 만져졌다. 눈앞에 가져다 대자 벌건 피가 보였다. 회초리질에 머리가 터진 것이다. 아마 엄마도 보았을 터인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하윤의 시야가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전신 거울이 있었다. 콩 벌레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서하윤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한쪽 눈은 피가 흘러내려 제대로 뜨이질 않았다. 나머지 한쪽 눈은 자신을 때리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맞는 자신의 거울 속 모습을 보며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철컥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서창섭이 두 사람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보, 또 왜 이래?!’
서창섭이 달려와 얼른 엄마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서하윤의 앞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다친 부위를 살펴 주었다.
‘괜찮아. 하윤아. 이제 괜찮아.’
서창섭이 웅크린 서하윤을 안아 등을 토닥였다. 서하윤이 그제야 와락 울음을 터트렸다. 서창섭에게서는 진한 담배 냄새가 났다. 김민석은 어쩐지 그것이 너무나 역하게 느껴졌다.
“허억…!”
김민석은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깨었다. 진짜 두드려 맞은 것이 아닌데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한 직후처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하윤 씨? 왜 그래요. 악몽 꿨어요?”
김민석에게 허벅지를 내어 준 채 소파에 기대 TV를 보던 하준서가 깜짝 놀라 물었다. 김민석은 숨만 헉헉대며 대답하지 못했다.
“괜히 무서운 영화 봤나 보다. 식은땀 좀 봐. 대체 무슨 악몽을 꾼 거예요?”
하준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냥… 좀 안 좋은 꿈이었어요.”
김민석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과거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서하윤의 약점이랄 수도 있는 일을 함부로 떠들 수는 없었다.
“일단 물 좀 마셔 봐요.”
하준서가 생수병을 따서 건네었다. 김민석은 그것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찬물로 목을 적시고 나자 나지막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표정이 안 좋아요. 많이 안 좋은 꿈이었나 보네.”
하준서가 김민석의 눈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좀… 안 좋은 꿈이었어요.”
김민석은 하준서의 허벅지에서 일어나 소파에 쪼그리고 앉았다. 전에 꾼 꿈으로 서하윤이 엄마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학대를 받았을 줄은 몰랐다.
고아로 자란 김민석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올 만큼 부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서하윤에게 가족은… 어쩌면 도망치고 싶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그렇게 심하게 맞으면서도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하고 웅크리고 앉아 있던 서하윤. 거울 속에 비친 서하윤의 눈은 까맣게 죽어 있었다. 그 눈을 생각하니 어린 서하윤이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서창섭이 의외였다. 아들 등골 빼먹는 아비로만 생각했는데 양아들을 저렇게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니…. 어쩌면 그래서 서하윤이 서창섭에게 순순히 돈을 내어 줬던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해요?”
옆에서 던져진 물음에, 김민석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서하윤 생각이요.”
“또 하윤이 꿈꿨어요?”
하준서가 대번에 알아맞혔다.
“…네.”
“무슨 꿈이었는데요?”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별로 안 좋은 꿈이었어요.”
“흐음….”
“서하윤이 참 부러웠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쩌면 서하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김민석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서하윤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반복된 학대는 사람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당했던 학대는 더더욱 큰 대미지를 준다. 서하윤이 성격이 나빴던 건 아마도 어린 시절 받은 학대 영향이었을까?
“민석 씨는 어때요?”
하준서가 문득 물었다.
“네?”
“민석 씨는 그럼 행복한 인생을 살았나요?”
“어…. 아뇨. 하지만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요?”
“네.”
김민석은 그렇게 대답하며 김민석으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가진 것은 없었다. 하루하루 외롭긴 했다. 하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갈 뿐이었다.
“뭐, 물론… 보육원에서 같은 방 형들에게 얻어맞기도 했고, 고아라고 놀림받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보육원에서 자라면 다들 겪는 거라서요. 보육원에서 나온 후로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서 불행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어요. …아, 가끔 행복한 것 같다고 느낄 때는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때요?”
“아르바이트 월급 받아 퇴근해서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마실 때요. 그땐 괜히 행복하더라고요.”
“겨우 그걸로요?”
“네, 겨우 그걸로요.”
김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서가 옅게 웃었다.
“그럼 우리 같이 맥주 한잔할까요? 어때요?”
“음….”
김민석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 마셔 본 지도 제법 된 것 같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상쾌함과 시원함이 그리웠다.
“그럼 편의점에 다녀와야겠네요.”
하준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석은 그런 하준서를 붙잡아 잡아당겼다.
“잠시만요. 하준서 씨가 가려는 건 아니죠?”
“왜요? 얼른 다녀올게요. 아니면 같이 갈래요?”
“아뇨, 하준서 씨는 그냥 집에 있어요. 나 혼자 다녀올게요. 하준서 씨, 여기….”
김민석은 하준서의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가리켰다.
“그 얼굴로 돌아다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큰일이잖아요.”
“아차…. 그렇지.”
하준서가 혀를 찼다.
“흠. 혼자 보내기는 좀 그런데.”
“아파트 입구 바로 옆에 편의점 있는 거 봤어요. 다녀오는 데 5분도 안 걸릴걸요?”
하준서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와요.”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보내는 눈이었다. 그런 하준서를 향해 작게 웃어 보인 김민석은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파트 입구를 나설 때였다.
“하윤아!”
굵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팔뚝이 붙잡혔다.
“서창섭 씨…?”
“서창섭 씨라니. 아빠 이름을 부르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니?”
작게 화를 내는 서창섭은 며칠 전보다 더욱 퀭한 모습이었다.
“뭐, 그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고…. 하윤아, 이 아빠 죽는 꼴 보고 싶니? 정말 돈 안 보내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