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이불로 돌돌 감은 김민석을 품에 안은 채 집으로 가는 길. 최상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살핀 최상혁의 턱 근육에 힘이 빡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하준서가 자신의 애인이랑 놀아난 걸 알면서도 한 대 때리지도 않았던 최상혁이 아닌가. 그런 최상혁이 하준서를 때리고 걷어찰 정도였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게 분명했다.
바로 옆 동이었으므로 집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안방으로 걸어 들어간 최상혁은, 그대로 침대로 던져 버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김민석을 내려놓았다.
최상혁이 정장 윗도리를 벗어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소매 단추를 풀어 접어 올리더니 돌돌 말린 이불을 열어젖혔다.
“앗….”
갑자기 활짝 펼쳐진 이불 때문에 하얀 나신이 온전히 드러났다. 눈가는 발개졌고 후려 맞은 엉덩이도 빨갛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아래는 사정한 정액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김민석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최상혁이 그 손을 잡아 치우며 성기를 붙잡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최, 최상혁 씨!”
김민석은 대경실색해서 외쳤다. 하지만 최상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도 구멍까지 꼼꼼히 확인하고서야 성기를 놓아주었다. 다친 게 아닌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돌아누워 봐.”
최상혁이 말했다. 이미 잔뜩 주눅이 든 김민석은 느릿하게 몸을 돌려 누웠다. 신나게 후려 맞아 빨갛게 익어 있을 엉덩이를 내보이고 있다 생각하니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이 양쪽 엉덩이를 조심스레 쓰다듬더니 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 변태 새끼가….”
김민석은 최상혁의 말에 흠칫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변태 새끼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솔직히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엉덩이를 맞으면서 잔뜩 세우고 싸는 데다, 요도에 그런 짓을 당하고도 완전히 가 버리지 않았던가. 하준서에게 뭐라 할 게 아니라, 이 몸도 변태 중의 상변태였다.
“서하윤.”
최상혁이 불렀다.
“네….”
김민석은 얼굴만 가리면 온몸이 가려지는 줄 아는 타조처럼 이불에 얼굴을 감춘 채 작게 대답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해 준 거로는 부족했나 보지?”
뜬금없는 말에 김민석은 고개를 틀어 최상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침대 옆에 팔짱을 낀 채 시커먼 눈을 뜨고 서 있었다.
“네?”
“새벽까지 실컷 박아 줬잖아. 그걸로는 부족했느냐고 묻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닌데 왜 그 새끼한테 맞아 가면서까지 다리를 벌리는 건데?”
“다리, 안 벌렸….”
“아직도 축축할 정도로 잔뜩 싸 놓고 안 벌렸다?”
최상혁이 빈정거렸다. 그가 그렇게 나오니 갑자기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치솟았다.
“나는, 나는… 그런 게….”
더듬더듬 해명하려던 김민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희미하게 흐느끼며 말하기 시작했다.
“다, 다리… 안 벌렸… 흐읍…. 최상혁 씨가 검사, 한다고 해서… 싫다고 했는데… 하준서 씨가 약을… 흐읍…. 그래서 나는…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좋아서…. 흐읍… 흡….”
김민석은 자기가 뭐라고 떠드는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나는 원래, 흐읍, 변태 같은 거 아닌데…. 그런 거, 흐읍, 아닌데…. 이 몸에 들어오고부터 갑자기, 흐읍, 변태가 돼 버려서, 그런 게, 흐읍… 기분 좋아서…. 나도 너무 이상하고…. 흐읍, 싫은데 좋고…. 나는… 나는… 흐으윽….”
뭔가 크게 잘못하고 선생님 앞에서 울며불며 해명하는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자신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잘 파악되지 않았다. 이게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울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나도 이런 건 싫다고요…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흐으으….”
김민석은 결국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시뻘건 엉덩이를 내놓고 우는 꼬락서니가 웃길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 생각도 곧 잊혔다. 병원에서 눈을 뜬 이후로 지금까지의 혼란을 어떻게든 침착하게 받아넘기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상황에 대한 걱정과 혼란, 서러움 따위가 한꺼번에 터져 버린 기분이었다.
“하아… 서하윤….”
엉엉 울고 있으니 최상혁이 옅은 한숨을 몰아쉬며 이름을 불렀다. 이윽고 침대 옆이 살짝 꺼지는 게 느껴졌다. 그가 손을 뻗어 김민석의 몸을 이불로 다시 가리고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 들였다. 최상혁의 무릎 위에 아기처럼 얼싸안긴 자세가 된 김민석은,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단단한 최상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어 댔다.
“흐읍… 흐윽… 흑….”
연신 눈물을 쏟는 김민석의 등을 최상혁이 어색하게 토닥토닥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평소 무뚝뚝하기만 한 남자가 익숙지 않을 텐데도 애써 달래 주려는 모습에, 김민석은 우는 와중에도 조금 감동해 버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새 울음이 잦아들었다. 김민석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불이 있어 줄줄 흐르는 코를 거기에 닦아 낼 수 있었다. 최상혁은 그때까지도 김민석의 등을 어색하게 토닥거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김민석은 잠긴 목소리로 작게 사과했다.
“뭐가?”
최상혁이 물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아까 그런 모습을 보여서요. 하준서 씨 집에 놀러 가는 거 별로 내키지 않았을 텐데도 허락해 줬던 거잖아요. 근데 그런 모습이나 보이고….”
“알기는 아는군.”
최상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김민석은 안긴 자세에서 그대로 최상혁의 얼굴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턱 근육이 꿈틀거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고마워요.”
“뭐가?”
“구하러 와 준 거요.”
“방해한 게 아니고?”
최상혁이 살짝 빈정거리듯 말했다.
“아니에요!”
김민석은 대번에 반박했다.
“물론 그런 거 하면서 기분 엄청 좋고 완전히 가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낯설고 무섭고… 아무튼 무서웠어요. 최상혁 씨가 왔을 때 너무 쪽팔렸지만 그래도 또 얼마나 안심했는데요.”
“…어쨌든 좋긴 좋았다?”
“그…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서하윤 몸이 너무 야한 탓이지.”
“몸이 야한 탓이라니, 어이없는 핑계군.”
“하지만 사실인걸요. 내 원래 몸은 그런 거 해 본 적도 없고, 해 보겠다고 상상해 본 적도 없단 말이에요. 애초에 모태 솔로였단 말이에요, 저는!”
“순결한 몸이셨다?”
최상혁의 말에 김민석은 아차 싶었다. 사나이 나이 스물둘이 되도록 모태 솔로였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엉덩이를 맞으면서도 좋다고 싸는 그런 변태는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사나이 김민석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맞아요. 나는 순결한 몸이었다고요.”
김민석은 올라오는 쪽팔림을 애써 감추며 당당한 척 외쳤다.
“훗-”
최상혁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손으로는 김민석 눈 아래 있는 눈물점을 비비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순결한 몸이라…. 그래, 네가 바라는 게 그런 거였군.”
“네?”
김민석은 최상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하지만 최상혁은 다시 말해 주지 않았다. 그는 대답 대신 이불을 살짝 젖혀 김민석의 하반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미처 말리기도 전에 손으로 말랑말랑 늘어져 있는 성기를 붙잡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그 새끼가 감히 다치게 하진 않았을 거고, 아픈 건?”
“아프진… 않은데 살짝 얼얼하고 입구가 쓰라린 것 같아요.”
김민석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환자처럼 솔직하게 말했다.
“그 씹새끼가….”
최상혁이 욕설을 중얼거렸다. 김민석은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서하윤에게 세컨드가 있다는 걸 알고서도 크게 화내지 않았던 최상혁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일로는 그를 때리고 걷어차고 욕할 정도로 화를 내다니, 대체 무슨 차이인 걸까.
“최상혁 씨.”
“왜.”
“혹시… 내가 울어서 그렇게 화낸 거예요?”
“뭐라는 거야.”
최상혁이 살짝 인상을 썼다. 하지만 어쩐지 쫄리거나 무섭지 않았다.
“서하윤이 바람피우는 거 알았을 때도 그렇게 화내진 않았잖아요. 하준서 씨를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며칠 전에 제가 하준서 씨랑 그…런 일을 하는 걸 봤을 때도 그냥 넘어갔고. 근데 오늘은 엄청 화냈잖아요. 하준서 씨를 때리고 욕하고…. 그거 혹시 내가 우는 거 봐 버려서 그런 거 아니에요?”
용감하게 말하면서 김민석은 생각했다. 이게 정말이라면 최상혁의 사랑은 그야말로 진짜라고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물 가져다줄 테니까 그거나 마셔. 약 기운 빨리 빼야 할 거 아니야.”
“…네.”
최상혁이 김민석을 침대에 내려놓고 부엌에 다녀왔다. 그의 손에는 생수 두 병이 들려 있었다. 김민석은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민 손이 옅게 바들바들 떨리는 걸 본 최상혁이 뚜껑을 따서 생수병을 입에 대 주었다.
“마셔.”
“고마워요.”
감사 인사를 한 김민석은 마치 병시중을 받는 환자처럼 얌전하게 그가 기울여 주는 생수를 꿀꺽꿀꺽 받아 마셨다. 한참 우느라 그랬는지 마침 목이 말라 생수 한 병을 금세 비워 버렸다. 최상혁이 한 병 더 따려는 것을 고개를 저어 말렸다.
“약 기운 빠지게 일단 한숨 자.”
최상혁이 말했다.
“네.”
고개를 끄덕인 김민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음에도 얼굴 위로 떨어지는 시선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