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정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멍하고 졸리는 기분이었다. 몸이 축축 늘어지니 정신까지도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 힘을 넣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정신만은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전부였다.
“나쁜 새끼….”
김민석은 결국 하준서에게 욕을 했다. 하준서가 낮게 웃었다.
“그러게 내가 심술부릴 거라고 했잖아요.”
하준서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벨트를 한층 더 꽉 조였다.
김민석은 나체가 되어 있었다. 그로도 모자라 팔을 뒤로 완전히 포박당한 상태였다. 다리는 활짝 벌어진 채 오므릴 수 없게 봉에 묶여 고정되어 있었다. 치부를 완전히 드러낸 채 꽁꽁 묶인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이거 풀어 줘요.”
“쉬이- 하윤 씨 입은 말하는 용도가 아니에요.”
“하준서 씨,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김민석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지만 하준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흐음- 귀엽게 우는 거 듣고 싶었는데 오늘은 역시 막는 편이 좋으려나.”
“시, 싫어요.”
김민석은 하준석이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는 이상한 도구를 보고 기겁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동그란 볼에 가죽끈이 달려 있었는데, 아마도 입을 막는 도구인 것 같았다.
“그럼 입 함부로 놀리지 않을 거죠?”
김민석은 똑똑하게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흠…. 역시 이럴 때는 영악하다니까. 대답을 했으면 그 핑계로 입 막아 줬을 텐데.”
하준서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럼 어디부터 귀여워해 줄까나….”
하준서가 까만색 말채찍 끄트머리로 하얀 김민석의 몸을 여기저기 쓰다듬었다. 가죽 특유의 질감과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역시… 제일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죠?”
하준서가 그렇게 말하며 김민석의 몸을 뒤집어엎었다. 팔이 뒤로 포박당한 상태기에 상체를 지탱해 줄 것이 없었다. 결국, 얼굴이 바닥에 처박힌 채 엉덩이만 한껏 치든 자세가 되고 말았다.
“읏….”
“뒷구멍… 아직도 빨갛게 잘 익어 있네요. 상혁이가 많이 귀여워해 줬나 봐요. 질투 나게시리.”
말채찍 끄트머리가 벌어진 엉덩이 사이를 툭툭 건드렸다.
“으읏. 읏.”
말을 하지 못하는 김민석은 옅은 신음만 흘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말채찍 끝이 엉덩이를 툭툭 가볍게 쳤다. 그것이 언제 엉덩이를 후려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거 알아요? 하윤 씨 엉덩이가 얼마나 하얗고 예쁜지. 볼 때마다 새빨갛게 만들어 주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니까요.”
그렇게 말한 하준서가 말채찍을 옆으로 휙 던져 버렸다. 김민석은 조금 떨어진 곳에 떨어진 말채찍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부드러운 손길이 엉덩이를 쓰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입으로 말은 못 하지만, 우는 건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하준서가 손을 휘둘렀다.
철썩-!
“흡-!”
철썩-!
“읍-!”
철썩-!
“읍-!”
연달아 3대를 후려 맞은 엉덩이의 피부가 찡찡 울리듯 아팠다. 가죽 벨트로 구속당한 채 엉덩이를 맞으니 수치스러우면서도 묘한 아찔함이 일었다. 김민석은 이를 악문 채 애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역시 예뻐.”
하준서가 빨갛게 변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때리기 시작했다.
철썩-! 철썩-! 철썩-!
하준서의 손길은 교묘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몸이 떨릴 정도로 아픈데, 비명을 지를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다. 엉덩이를 한 대 맞을 때마다 몸이 징징 울렸다. 그 짜릿짜릿한 아픔은 성기까지 전해졌다.
“아, 벌써 세웠어요? 음란하기는.”
“…읏….”
철썩-!
“읏.”
철썩-!
“으읏.”
반대쪽 엉덩이를 때리니, 또 색다른 아픔이 전해졌다. 하준서의 말이 맞았다. 성기가 아플 정도로 발기하고 있었다. 한 대를 후려 맞을 때마다 성기 끝이 찡찡 울렸다. 너무 짜릿해서 미칠 것 같았다.
“또 질질 흘리기는.”
하준서의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꿀을 뚝뚝 떨어뜨리는 성기를 만지작거렸다. 발기한 성기가 그 손길을 미친 듯이 반겼다. 김민석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였다. 하준서가 어서 성기를 마구 문질러 줬으면 했다.
“하읏. 으읏….”
“문질러 줬으면 좋겠어요?”
“흣….”
김민석은 대답 대신 낮게 신음했다. 하지만 하준서는 곧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꿀로 적셔진 손가락을 뒷구멍으로 가져갔다.
“오늘은 여기, 따먹어 버릴까?”
“아, 안 돼요!”
김민석은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도 잊고 크게 외쳤다.
“오?”
하준서가 묘한 소리를 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구멍 위를 매만지고 있었다.
“최… 최상혁 씨가, 나중에 검사하겠다고….”
“…아하…. 그 새끼가 뒷구멍은 내주지 말래요?”
“읏….”
김민석은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준서가 잠시 구멍을 문질문질 만지며 침묵했다. 김민석은 혹시나 그가 그대로 손가락을 찔러 넣을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하준서는 곧 손가락을 떼어 냈다.
“뭐, 좋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처께서 뒤는 쓰지 말라고 했다니, 첩 주제에 건드리면 안 되지. 하윤 씨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하준서가 조용히 말했다. 분명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묘한 싸늘함이 느껴졌다.
“그럼 대신 나는….”
하준서가 말끝을 흐리며 김민석의 몸을 돌렸다. 이제 하준서와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김민석은 하준서의 얼굴을 보고 찔끔했다. 그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다소 서늘해 보이는 미소였다.
“나는 그럼 이 구멍이나 가지고 놀아야겠네요.”
하준서가 여태 발기해 있는 김민석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김민석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그 표정을 본 하준서가 낮게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한쪽에는 큰 서랍장이 있었다. 말채찍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랍을 연 하준서가 속에서 무언가 납작한 상자를 꺼내 가지고 돌아왔다.
“이게 뭔 줄 알아요?”
하준서가 물었다. 김민석은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준서가 짙은 눈웃음을 지으며 납작한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빨간색 벨벳 천이 깔린 상자 안에는 은색의 금속 막대 여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마치 커다란 바늘 같았는데, 바늘과 달리 끝부분이 뭉툭해서 잘못 만져도 다칠 일은 없어 보였다. 뭉툭한 쪽의 반대편에는 손가락을 걸 수 있을 법한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었다.
세부적인 모양은 가지각색이었다. 끝이 뭉툭한 뒤로 어떤 것의 기둥은 매끈했고, 어떤 기둥은 마치 구슬끼리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길이는 거의 비슷했으나 굵기는 모두 달랐다. 오른쪽 것이 가장 얇고, 왼쪽으로 갈수록 점점 굵어졌다.
김민석은 흐릿한 눈으로 그것과 하준서를 번갈아 보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대관절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준서가 상자의 금속 막대 중 가장 가늘고 매끈한 것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요도 스틱이라는 거예요.”
“요도…? 설마….”
김민석이 경악하자, 하준서가 빙긋 웃었다.
“시, 싫어요. 그건 싫어요.”
김민석이 기겁해 고개를 휘저었다.
“이런. 입을 자꾸 놀리네.”
하준서가 말하며 옆에 던져 놓았던 동그란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김민석의 입을 벌리게 한 다음, 그 구체를 입에 물리고 가죽끈을 머리 뒤로 묶었다.
“으, 으으!”
입이 막혀 버렸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입가로 침이 고였다. 김민석은 몸에 힘이 빠진 와중에도 고개를 휘적휘적 저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하준서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 뿐이었다.
“플레이는 다 잊어버렸을 테니까…. 혹시나 어설프게 반항하다 다칠까 봐 약을 탄 거예요. 몸에 힘이 없죠?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대로 얌전히 따라요.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으, 으.”
하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김민석은 구속구를 물고 있는 상태로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약 기운에 몸이 흐물거리는 와중에, 꽉 막혀 있는 입이 제대로 된 소리를 흘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벌어진 채 고정된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발기한 성기를 드러낸 자세가 수치스러운 것은 이제 뒷전이었다. 하준서가 발기된 성기를 부드럽게 펌프질하더니 곧 요도 스틱의 뭉툭한 끄트머리를 요도 입구에 가져다 댔다. 꿀이 고여 있는 입구에 차가운 금속이 닿자 김민석은 겁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상혁이 하윤 씨 입이랑 뒤는 써 봤겠지만, 이 구멍만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걸요. 난 그래서 너무 좋네요.”
하준서가 즐거운 듯 말하며 요도 스틱을 꾸욱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게 되자, 김민석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으… 으으….”
절대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금속 막대가 천천히 요도 속으로 들어섰다. 뭉툭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그것은 요도를 망가뜨리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대신 기묘한, 정말이지 기묘한 감각을 선사하며 점점 속으로 파고들었다. 발가락이 저절로 잔뜩 오므라들었다. 범해지지 말아야 할 곳을 깊이 범해진다는 생각에 척추가 찌릿찌릿해졌다.
“흐으… 으….”
김민석은 어느새 옅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고통 섞인 신음은 아니었다. 미약한 흥분과 두려움, 그리고 쾌감이 뒤섞인 신음이었다. 놀랍게도 김민석은 요도를 범해지는 와중에도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하윤이는 어떤 구멍으로든 잘 받아먹는다니까. 타고나길 음탕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