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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XX씨-38화 (38/125)

38화

하준서가 물으며 유혹하듯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섬세한 미남의 유혹에 멍하니 잠겨 있던 꿈의 여운은 금세 멀어져 버렸다.

“갑자기 웬 키스예요.”

“하고 싶으니까.”

“전 안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나는 하고 싶은데요?”

“나는… 싫어요.”

김민석은 몸을 살짝 뒤로 빼냈다. 하준서가 손가락으로 김민석의 입술을 의미심장하게 문질렀다.

“나랑 키스하는 게 진짜 싫은 거예요, 아니면 최상혁이 맘에 걸려서 그러는 거예요?”

이 남자, 오늘따라 자꾸 정곡을 찔렀다.

“…….”

김민석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하준서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곤란한 질문은 안 할게요. 이래서 첩 노릇은 힘들다니까.”

“처, 첩이라뇨?”

“본처가 눈 커다랗게 부라리고 있는 와중에 하윤 씨랑 눈치 봐 가며 붙어먹는 게 첩 노릇이랑 다를 게 뭐겠어요?”

하준서가 자신을 첩 정도의 위치로 비하하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김민석의 눈에 저도 모르게 안타까움이 어렸다. 서하윤을 사랑한다는 하준서니 지금의 상황도, 포지션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 번도 화내거나 따지고 들지 않았다. 물론, 서하윤의 상태가 이러니 화내거나 따지고 들고 싶어도 그럴 상황도 되지 못했다.

“미안해요.”

김민석이 사과하자, 하준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서하윤도 아니라면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요.”

“그냥… 일단 서하윤 몸이니까요.”

김민석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하자, 하준서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지나치게 착해졌다니까….”

하준서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피하려면 피하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준서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 김민석은 차마 그의 입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하준서의 입술은 보드랍고 따스했다. 그에게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드러운 섬유 유연제 향기가 났다.

키스는 가볍고 부드러웠다. 다정하고 상냥한 키스였다. 어쩐지 마음이 보송보송해졌다. 처음에는 가만히 키스를 받고만 있던 김민석은, 어느새 함께 혀를 얽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침대 위를 이리저리 뒹굴며 키스에 몰두했다. 쪼옵- 쫍- 서로의 입술과 혀를 빠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오늘따라 키스가 유난히 부드럽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마음도 따라서 달콤해졌다.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올래요?”

한참 키스하며 뒹굴다 하준서가 물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던 김민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망설였다.

“그건….”

“최상혁이 뭐라고 할까 봐 그래요? 그럴 필요 없어요. 새삼스레 최상혁한테 허락받고 돌아다니는 것도 웃기잖아요. 하윤 씨는 최상혁 애인이지, 감금된 죄수가 아닌데요.”

“음….”

김민석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박혀 있으라던 최상혁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하준서의 집에 놀러 가는 것 정도라면 허락해 주지 않을까? 아니지…. 하준서의 집만은 절대 놀러 못 가게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내연남인데….

“놀러 와요, 응? 내가 데리러 올게요. 같이 우리 집에 가서 맛있는 것도 해 먹고 재밌는 영화도 보고….”

“그건 여기서도 할 수 있는데요.”

“흠…. 우리 집에는 엄청 귀여운 고양이도 있는데.”

“…고양이요?”

귀가 솔깃해졌다.

솔직히 김민석은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시원에 사는 주제라 키우지는 못했지만, 동영상 속 고양이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아르바이트비를 쪼개 고양이 사료를 사다가 길고양이를 챙겨 주기도 했다.

“네. 고양이. 두 마리나 있어요. 얼마나 귀여운데요.”

“두 마리….”

김민석은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는 사이 하준서의 소매를 붙들었다.

“사진 있어요?”

“네. 볼래요?”

“네.”

김민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준서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누워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찍힌 사진이 떴다. 하나는 젖소 무늬 고양이였고, 나머지 하나는 삼색 고양이였다.

“귀엽다아….”

“귀엽죠?”

“네. 너무 귀엽네요. 이름이 뭐예요?”

“철이랑 순이요.”

“철이랑 순이요?”

하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무슨 이름을 그렇게 촌스럽게 지었어요.”

“내가 지은 거 아니에요.”

“그럼요?”

“하윤 씨가 지은 거예요.”

“서하윤이요?”

김민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사진 속 고양이를 유심히 보았다.

“하윤이가 어미 잃은 새끼들을 주워 왔더라고요. 자기는 키울 자신 없다고, 나보고 대신 키워 달래서 우리 집에서 키우고 있어요. 이름도 하윤 씨가 지어 줬고, 철이랑 순이 보겠다고 맨날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얼마나 예뻐했는데요.”

“…서하윤도 고양이를 좋아했나 보군요.”

“맞아요.”

“나랑 비슷한 점이 있긴 있네요. 생년월일이랑 고양이 좋아하는 거.”

김민석은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모를 서하윤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보러 올 거죠?”

하준서가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김민석은 사진 속 고양이들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서가 잘됐다는 듯 빙긋 웃었다.

❖ ❖ ❖

띠릭-

전자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김민석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넘어 있었다. 늦은 퇴근이었다.

“맨날 이렇게 늦게 퇴근해요?”

김민석은 최상혁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야 들어오는 길이건만 딱히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밥은?”

최상혁이 다짜고짜 물었다.

“먹었어요.”

김민석의 대답에 최상혁의 시선이 부엌으로 향했다. 뭘 해 먹은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부엌 모습에 최상혁의 눈매가 살짝 굳어졌다.

“그 새끼가 놀러 왔었나 보군.”

“…하도 벨을 눌러 대니까….”

김민석은 핑계를 중얼거렸다. 최상혁은 말없이 상의를 벗어 소파에 던졌다.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만들고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 모습이 괜스레 섹시해 보였다. 김민석은 살짝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일 하준서 씨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네가 언제 내 허락받고 돌아다녔나?”

최상혁이 다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최상혁 씨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잖아요. 하준서 씨가 데리러 오고 데려다준대요. 혼자 안 움직여요.”

“…….”

최상혁이 말없이 소매 단추를 풀었다.

“일찍 올게요.”

김민석은 서둘러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역시 허락 안 해 주는구나.

김민석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바람 상대 집에 놀러 가겠다고 허락받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바보 같은 짓을 해 버린 것이다.

“서하윤.”

최상혁이 불렀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그가 갑자기 뒷머리를 낚아채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으음….”

잡아먹을 것 같은 키스는 강렬하고 짧았다. 입술이 떨어지자 최상혁이 눈을 가까이 맞댄 채 말했다.

“그 새끼랑 붙어먹었다가는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돌아오면 확인해 볼 테니까 엉덩이 함부로 놀릴 생각 하지 마.”

그렇게 말한 최상혁이 의미심장하게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 나름의 허락이었다.

“알았어요.”

김민석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혁이 그대로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김민석은 그의 등에 대고 소심하게 외쳤다.

“고마워요!”

최상혁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그렇게 묻는 최상혁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서하윤은 아마도 좀처럼 고맙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네. 하준서 씨 집에 놀러 간다는 게… 최상혁 씨 입장에서는 기분이 안 좋을 텐데도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요.”

“…정말 고마워?”

“네.”

김민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혁이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이리 와.”

김민석은 순순히 최상혁의 앞으로 갔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욕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어… 어어? 최상혁 씨?”

“아직 안 씻었지?”

“네, 그렇기는 한데….”

“벗어. 같이 씻게.”

명령조로 말한 최상혁이 자신의 옷을 마저 벗기 시작했다. 김민석은 같이 씻자는 말에 기함하며 닫힌 욕실 문을 힐끗거렸다. 도망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사이 옷을 몽땅 다 벗어 나체가 된 최상혁이 샤워기를 켜며 물었다.

“내가 벗겨 줘야 해?”

“아, 아뇨!”

“그럼 처녀처럼 굴지 말고 얼른 벗어.”

“…네….”

김민석은 결국 옷을 느릿느릿하게 벗기 시작했다. 애인 사이에다 볼 장도 다 봤으니 같이 씻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끄러웠다. 겨우 며칠 사이에 최상혁과 이런 깊은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 희한하기도 했다.

마지막 속옷까지 벗고 나자 최상혁이 손목을 잡아 샤워기 아래로 끌어당겼다. 둘의 머리 위로 따뜻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빨아.”

최상혁이 흠뻑 젖은 몸으로 갑자기 명령했다.

“네?!”

“고맙다며. 그러니까 빨라고.”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요?”

“고마운 거 아니었어?”

“고맙긴 하죠.”

“그럼 고마움을 표현해야지. 어서 빨아.”

“…….”

김민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이미 물줄기에 몸은 흠뻑 젖어 있는 데다 둘 다 나체 상태였다. 샤워기 아래 우뚝 선 최상혁은 살짝 발기한 상태였다. 왜인지 그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서하윤. 고맙다는 거 빈말이었어?”

“아니에요. 그런 거…. 그냥…. 여기서 갑자기 그런 걸 하라고 하니까….”

거기까지 말한 김민석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다 씻고 침대에 가서 하면 안 돼요?”

“안 돼.”

최상혁이 단호하게 말하며 손으로 김민석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읏….”

단순히 한 손으로 어깨를 누르는 것뿐인데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김민석은 결국 힘에 굴복해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굴 바로 앞에 살짝 발기된 최상혁의 성기가 있었다. 김민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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