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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XX씨-11화 (11/125)

11화

잠시 후 입 속에서 꺼낸 하준서의 손가락은 남은 정액과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준서는 그 손가락을 마치 보란 듯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맛있게 빨아 먹었다. 그 모습에 비위가 상해야 마땅할 터인데, 섬세한 미인이 붉은 입술로 자신의 정액을 빨아 먹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기억을 잃었어도 정액 맛은 똑같네.”

하준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변태 새끼.”

김민석이 중얼거리자, 하준서가 김민석의 빨갛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주무르며 웃었다.

“내가 변태인 건 사실이지만 엉덩이를 맞으면서 좋아서 싸는 하윤 씨도 보통 변태는 아니죠. 안 그래요?”

“…익!”

김민석은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 몸의 반응이 너무나도 적나라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거나 풀어 줘요.”

김민석은 등 뒤로 묶인 손목을 움직이며 말했다. 하준서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왜 풀어요? 좋아하잖아요. 묶인 채로 하는 거.”

“끝났잖아요. 아프니까 풀라고요.”

짜증을 내며 말하자, 하준서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아직도 얼얼하게 아픈 엉덩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누가 그래요. 끝났다고. 우리 하윤이 기억을 잃었다고 너무 귀엽게 구네. 지금부터가 시작인데.”

“시작?”

김민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하준서가 자신의 하체를 김민석의 엉덩이에 갖다 대며 속삭였다.

“그래요. 시작.”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엉덩이에 닿은 것은 딱딱하게 발기된 하준서의 성기였다. 하준서는 발기된 성기를 김민석의 엉덩이 사이에 의미심장하게 문질렀다. 동시에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천천히 골짜기 안쪽으로 향했다. 김민석은 시작의 의미를 깨닫고 저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다. 그것을 느낀 하준서가 작게 웃었다.

“안 돼! 씨발! 하면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이렇게 결박당한 채 뒤를 뚫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김민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거의 목숨 걸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뒤로 단단히 묶인 손목 때문에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체를 움직이지 못하니 남은 것은 하체였다. 자유로운 다리를 들어 하준서를 걷어차려다 발목을 잡혔다. 양손으로 양 발목을 잡힌 자세가 얼마나 치욕적인지 몰랐다. 발목을 쥔 하얀 손은 생각 이상으로 커서, 발목을 빈틈없이 감싸 쥐고 있었다. 손아귀 힘이 얼마나 좋은지 웃으며 발목을 꽉 움켜쥐는 악력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김민석은 진심을 담아 으르렁거렸다.

“그래. 이렇게 반항해야 더 맛있지.”

하준서가 귀여운 재롱을 보듯 말했다. 분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살면서 비참했던 때는 많았지만 이런 치욕은 생전 처음이었다.

하준서가 양 발목을 쥐어 벌리며 다리 사이로 몸을 들이밀 때였다. 진짜 당한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 곤두섰다. 그때였다. 밖에서 희미한 전자음이 들렸다.

삑삑삑삑-

그것은 현관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였다. 누구지? 생각하는 동시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최상혁이었다.

“이런….”

하준서가 아쉽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하지만 여전히 김민석의 발목을 쥐어 벌린 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 김민석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이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모습을 최상혁에게 보인다는 생각만 해도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이대로 하준서에게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최상혁 씨! 최상혁!!”

김민석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목청껏 최상혁의 이름을 불러 외쳤다. 속으로는 최상혁이 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기 전에 하준서가 눈치껏 발목을 놓아주고 이불로 몸을 가려 주길 바랐다. 하지만 하준서는 웃는 낯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고, 최상혁 역시 뛰어오지 않았다.

“씨발, 최상혁! 빨리 좀 오라고!”

사람이 도움을 외치면 달려오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하지만 최상혁은 달려오는 기색이 없었다. 김민석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최상혁의 모습이 안방 문 앞에 드러났다.

그는 아까 집을 나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검은 양복을 빈틈없이 빼입은 최상혁의 무거운 눈이 안방의 상황을 느릿하게 훑었다. 윗옷은 양옆으로 찢겨 벌어지고 아랫도리는 벌거벗은 채 두 손이 뒤로 묶여 있는 상황. 거기에 양 발목을 잡힌 채 성기를 훤히 내비치고 있는 광경을 훑는 눈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뭘 보고만 있어요? 변태 새끼세요?! 빨리 이거 좀 풀어 줘요!”

김민석은 묶인 손목을 열심히 내보이며 외쳤다. 이게 합의가 아닌 강제적인 상황이었음을 어필하는 거였다.

“이런 걸 좋아해서 그 새끼랑 붙어먹은 거였나?”

최상혁이 느릿하게 말하며 묶인 손목과 빨갛게 변한 엉덩이를 훑었다.

“아니거든요?! 손 묶여 있는 거 안 보여요?!”

김민석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수치심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놔줘.”

최상혁이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준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김민석의 헐벗은 몸을 훑는 눈길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김민석은 알아차렸다. 만약 최상혁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지 않았으면, 정말로 하준서에게 그대로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쉽네.”

하준서는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중얼거리며 꽉 움켜쥐고 있던 김민석의 발목을 놓아주었다. 김민석은 그대로 몸을 꿈지럭거려 침대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았다. 양다리로 치부를 가리려 애쓰고 있자니 왠지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왜 이런 꼬락서니를 보여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남자에게 희롱당한 주제에 또 울기까지 해서야 사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김민석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눈물을 참았다.

하준서가 느릿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거벗은 몰골인 김민석과 달리, 하준서는 옷가지 하나 흐트러짐 없이 깔끔했다. 김민석은 그런 하준서를 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준서가 최상혁과 마주 섰다. 둘 다 장신인지라 키가 엇비슷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사람이지만 둘 중 누구도 꿀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나 하준서는 멋대로 김민석에게 손을 댄 주제에, 조폭 비슷한 거라는 최상혁 앞에서 한 치의 스스럼도 없었다. 그도 역시 평범하진 않았다.

둘은 잠시 시선을 맞댄 채 서 있었다. 김민석의 시야에는 하준서의 뒤통수만 보여서 둘이 어떤 눈빛을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충 분위기는 느껴졌다. 상당히 살벌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솔직히, 최상혁이 하준서를 적어도 한 대쯤은 후려칠 거라 생각했다. 둘 다 서하윤의 애인이라지만, 아무튼 그 입장에서야 자신의 애인에게 멋대로 손을 댔으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최상혁은 하준서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병원에 보호자로 불려 왔다가 애인이 양다리 걸치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 남자도 만났다. 그런데 둘의 얼굴에는 싸움의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겉보기에는 다정하고 상냥해 뵈는 하준서야 그렇다 치지만, 최상혁은 그런 일을 그냥 넘어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준서에게 손을 대지 않는 걸까?

“저기…. 일단 이거부터 좀 풀어 주시죠.”

김민석은 무거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손목이 풀려야 이불로 몸을 가리든, 옷을 주워 입든 할 수 있었다.

등을 보이고 서 있던 하준서가 돌아서더니 침대 위로 올라왔다. 절로 몸이 움찔 굳었다. 하준서는 그 기색을 뻔히 알아차렸으면서도 모른 척 상냥한 얼굴로 묶인 손목을 풀어 주었다.

풀려고 별짓을 해도 풀리지 않던 매듭은, 우습게도 하준서가 끄트머리를 살짝 잡아당기자 대번에 흘러내렸다. 김민석은 하준서가 이런 유의 결박이나 매듭에 대단히 능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변태 새끼가 틀림없었다.

“저런…. 혹시 아팠어요?”

하준서가 발갛게 변한 손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 변태 새끼야!”

김민석은 잡힌 손목을 거칠게 빼내고는 바로 주먹을 쥐고 하준서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퍽 소리가 났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후려갈긴 주먹이 얼얼했다. 김민석은 하준서를 때린 손을 허공에 탈탈 털며 아픔을 삭였다.

“우리 하윤이 손 매운 것도 여전하네.”

하준서가 피식 웃으며 터진 입꼬리를 혀로 핥았다. 그 모습이 은근히 선정적이었다.

김민석은 얼른 이불을 끌어다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외쳤다.

“나가요! 둘 다!”

물론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민석은 손에 잡히는 베개를 들어 하준서와 최상혁에게 집어 던졌다.

“나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두 사람이 몸을 돌려 방 밖으로 사라졌다. 김민석은 그제야 서둘러 속옷과 잠옷 바지를 주워 입었다. 상의 단추는 모두 뜯어져 있어서 회생 불능이었다. 밖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김민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남자들의 시선을 피해 가까운 드레스 룸으로 달려가 셔츠를 하나 꺼내 입고서야 헐벗은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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