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42)

“알겠습니다. 저도 유건이와 통화해 보겠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주세요.”

-아이고, 별말씀을요. 혹시나 실마리라도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중호와 매일 반복하는 내용의 통화를 한 후, 강해건을 찾으려고 의뢰해놓은 사설 업체에도 연락을 했다. 하지만 기대한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강해건은 아직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강유건한테 이야기가 들어간 순간부터는 휴대폰까지 꺼둔 상태였다. 추적을 피하기 위함인 듯했다.

날이 갈수록 망가지는 마음과 다르게, 강해건이 없어도 숨을 쉬고 출근을 하며,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흐르고 있었다. 다만 한서림의 마음이 형체도 없이 뭉개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강해건 냄새…….”

한서림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해건의 체취와 페로몬 잔향이 남은 침실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각인은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각인한 사이에 나타나는 페로몬 금단 현상 같았다. 그만큼 강해건의 페로몬 잔향이라도 맡지 않으면 불안해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아…….”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퇴근과 동시에 강해건의 방으로 들어가 그의 침대에 누워 베개를 끌어안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벌써 2주나 지난 탓에, 이제는 미약한 잔향마저 잘 맡아지지 않았다. 매일 밤 강해건의 침대에서 그의 베개를 끌어안고 잔 탓에, 제 수면 페로몬과 뒤섞여서 희석되었다. 아무리 잠들기 전에 애를 써도 무의식중에 흐르는 수면 페로몬은 컨트롤되지 않았다. 그건 자는 동안 숨을 쉬지 않으려고 참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이제 어떡하지…….

어디 있는지라도 알아야 찾아가서 데려올 텐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침실 다음으로 그의 페로몬이 남아 있을 곳을 떠올렸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한서림은 뛰다시피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강해건이 들락날락거리며 드레스룸에 있는 옷들에는 일부러 페로몬을 묻혀 놓고는 했다. 외출하게 되면 불특정 다수의 역겨운 페로몬과 페로몬 향수가 묻는 게 싫다며 습관적으로 해놓는 행동이라고 했다.

“아…….”

드레스룸의 문을 여는 순간 숨통이 확 트이며 살 것 같았다. 한서림은 단정하게 걸려있는 셔츠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페로몬이 온몸에 달라붙어 오자, 마치 강해건에게 안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페로몬은 며칠이나 유지가 될까.

강해건이 페로몬을 이곳저곳에 묻혀 놓고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내일부터는 강해건의 옷을 입고 출근해야겠다는 본능적인 생각을 했다.

“…….”

오늘도 강해건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은데, 그러면 원인 모를 기이한 불안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은데, 강해건은 끝내 숨소리조차 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한서림의 초조함과 예민함이 깊어지는 사이, 강해건이 사라진 지 한 달이 되었다.

***

모주원에게서 얼굴 한번 보자,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둥 여러 번 연락을 받았으나, 한서림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지금 모주원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때는 세상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라고 여겼는데, 불편한 속내를 알게 된 이상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왜 페로몬 학대를 당할 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는지 이유도 알고 싶지 않았다. 모주원이 한서림에게 성적인 의도를 담은 페로몬으로 노골적인 어필을 한 시점으로 관계는 이미 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대표님, 벌써 들어가세요?”

“네.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합니다. 어쩌면 조만간 장기 휴가를 또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짐을 챙겨서 나오자 김 팀장이 따라붙었다.

“신향수 론칭도 뉴욕에서 거의 다 준비됐다고 하니까 염려 놓으시고 푹 쉬세요. 이럴 때 쉬셔야죠. 안 그래도 조만간 저희가 단합해서 대표님 억지로라도 휴가 좀 내시라고 등 떠밀려고 했는걸요. 아니면 강제로 병원에 모시고 가서 링거라도 맞게 하거나.”

한서림은 껄껄 웃는 김 팀장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에서 나왔다. 강해건의 페로몬을 맡고 싶어서 더는 회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페로몬 금단 현상과 닮은 이상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조급증을 닮은 두려움에 질식될 것 같았다.

“대표님, 그럼 들어가세요.”

“네. 연락할게요, 팀장님.”

한서림은 김 팀장이 잡아준 택시에 올라, 집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증상은 정상적이지 않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듯했다.

택시에서도 강해건을 찾아달라고 맡긴 업체 세 곳에 전화를 했으나 전부 같은 소리만 했다.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74.

한서림이 도착한 곳은 서정 그룹 재단의 오메가 전문 병원이 아닌, 규모가 작은 일반 오메가 전문 병원이었다. 혹여 서정 재단으로 갔다가 정말로 제 몸에서 문제라도 발견되어 서정 그룹 사람 귀에 들어가게 되면 곤란한 상황에 놓일 것 같아서였다. 정밀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특정 페로몬, 즉 강해건의 페로몬에만 반응한다는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조심하고 주의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한서림이 의사에게 들은 말은 정말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축하드려요, 임신 4주입니다.”

임신이라니.

대략 날짜를 계산해 보니, 강해건이 회색빛의 젖은 눈동자로 한서림에게 키스했던 그날이었다. 아마 처음으로 개방한 한서림의 발정 페로몬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때 키스했던 것일까.

그것도 그렇게 아프게 울면서…….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라기엔 강해건과 제대로 키스한 게 처음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페로몬 금단 현상이 맞아요. 임신한 상태에서는 한서림 씨나 태아의 건강에 알파 페로몬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그동안 강해건의 페로몬 잔향이라도 맡고 싶어서 그의 침대와 드레스룸에 걸린 옷들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이유 역시, 임신했는데 페로몬을 쏘여줄 알파가 없기 때문에 생긴 불안이었던 것이다. 이상증세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처음 겪는 감정 앞에서 기분이 묘하고 이상했다.

한서림은 홀쭉한 제 배를 만져보았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배 속에 태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고,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면서도 현실감이 별로 없었다. 다만, 이 사실을 빨리 강해건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인데, 과연 기뻐할까.

그럴 리가 없지…….

한서림의 정체를 몰랐더라면 강해건이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이혼과 자유에 가까워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강해건은 한서림의 정체를 아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강해건을 살리려면 각인을 해야 하니 계약서 내용을 깨야 했고, 2세 출산 후 당연히 이혼을 원할 테니 지켜야 했다. 항목별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탓에 계약서 내용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졌다. 그렇기에 임신의 결과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축복받지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배 속의 태아에게 괜히 미안했다. 어차피 출산과 동시에 이혼을 한 후에는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배 속에서 함께 하는 동안만이라도 부족함 없는 사랑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미친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한 회장에게 학대를 받아온 걸로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이용만 당하면서 치를 떨며 혐오해왔는데, 저도 한 회장처럼 제 자식을 똑같이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문득 깨달은 현실이 소름 끼쳤다. 제 상처와 죄악감에 급급해서 아무 죄 없는 제 아이를 저 역시 이용할 뻔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을까.

저와 강해건이 배 속의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닫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아이에게는 저와 같은 아픔을 겪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무슨 짓을 저지를 뻔했는지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병원에서 나오자 현기증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근 한 달간 제대로 먹은 것도 없고 수면도 부족했다. 까맣게 변했던 시야가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잠시 서서 호흡을 추스른 한서림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정보만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이도록 건조하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강해건의 휴대폰이 꺼져 있는 탓에 그가 언제 확인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실은 알려야 했다.

[임신 4주라고 합니다. 메시지 확인하면 연락 줘요.]

출산하자마자 원하는 대로 이혼해주겠다, 나를 보기 싫으면 내가 나갈 테니 집으로 돌아와라, 걱정되니까 각인부터 하자, 그래도 아이에 대한 문제는 다시 이야기 해봤으면 한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꾹꾹 누르며 참았다. 강해건이 괜히 반감을 가지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초음파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강해건에게 전송했다.

흑백으로 된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울컥거림이 넘어올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찌르르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강해건을 설득해서 이 아이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현실이 막막했다.

“어? 서림아.”

마음을 추스르고 택시를 잡기 위해 휴대폰 앱을 실행시키던 차였다. 익숙하지만 피해온 목소리가 한서림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제야 이곳이 모주원의 경호회사 근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리자 통화 중인 모주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 회장님한테 보낼 애는 따로 있어. 걔는 홍콩이랑 싱가포르로 돌려. 적당한 애 붙여서 보내고.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서림아,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급하게 전화를 끊은 모주원이 반갑게 물었다. 한서림은 조금 과하게 풀어놓은 모주원의 페로몬이 거북했다. 학창 시절에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준 페로몬인데도.

“미안한데, 페로몬 좀…….”

“아. 러트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잔향이 좀 세지?”

아무리 러트가 끝난 지 얼마 안 됐어도 이 정도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주원은 페로몬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불쾌한 감정이 한서림의 안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어서 주머니에서 페로몬 향수를 꺼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제 몸에 잔뜩 뿌렸다. 그제야 강해건이 말했던 타인의 페로몬은 전부 역겹다고 했던 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너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밥이라도 먹자.”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

“그럼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 만날 바쁘다고 해서 얼굴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냥 가면 서운하잖아. 내가 너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데.”

막무가내로 손목을 쥐고 걸음을 옮기는 모주원이 낯설었다. 원래 이렇게 강제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솟아났다.

“차 마시고 갈 테니까 이건 좀 놓고 가.”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차라리 제 손으로 명확하게 끊어내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한서림은 모주원에게 잡혔던 손목을 빼내고 두어 번 털어냈다. 순간적인 악력이 얼마나 셌는지, 금세 살갗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안. 너 피부 약한 거 아는데 내가 실수했다.”

“됐어. 멀리 가지 말고 그냥 여기로 가자.”

한서림은 대로변에 있는 대형 체인점 카페로 먼저 들어섰다. 멀리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다. 아무래도 정말 휴가를 내고 체력을 좀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강해건을 찾아내서 그의 페로몬을 한껏 뒤집어쓰고 잠들면 소원이 없을 듯했다.

“안 그래도 너한테 연락 한 번 하려고 했어.”

주문한 음료를 받아온 후,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의외로 한서림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으니 그 시일이 오늘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증조부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라 할지라도 비틀리고 어긋나면 끊어지기 마련이다.

“아직 내 집에 네가 살고 있지?”

“어. 그건 왜?”

“나 조만간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으니까 집 비워줘.”

“정말? 강해건이랑 이혼하는 거야? 아, 잠깐……. 그럼 너, 설마 임신했어?”

반색하던 모주원의 얼굴이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아이를 낳으면 이혼할 거라고 말했었으니 모주원의 짐작이 놀랍지는 않았다. 급격하게 변하는 표정에 담긴 감정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 방금 병원에서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야. 4주 됐대.”

평균적으로 열 달 동안 태아를 배에 품고 있는 베타와 다르게, 남성형 오메가는 신체 구조상 6개월에 접어들기 시작할 때 수술을 하고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야 했다. 벌써 4주가 되어 한 달이 지났으니 5개월 후에 출산을 하면 이혼이었다. 저를 보는 것마저 견딜 수 없어서 폭주를 멈출 수 있는 각인조차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 강해건의 행동만 봐도 이혼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각인을 하게 되더라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페로몬 교환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혼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혼하고 싶지 않은데, 강해건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이토록 보고 싶고 그립고 사랑하는데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매달려볼까. 비열하고 무식하게 애를 볼모로 잡고 협박이라도 해 볼까.

아니. 절대 못 할 짓이었다. 강해건의 경멸은 지금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서 더 그의 미움을 받을 자신은 없었다. 평생 혼자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사는 인생이 되더라도 강해건이 원한다면 이혼하는 게 옳다. 그게 강해건을 기만하고 속였던 것에 대한 또 다른 속죄가 될 테니까.

“네가 몇 달 후에 이혼할 수 있게 된 건 축하할 일인데, 차마 임신한 건 축하하지 못하겠다.”

모주원의 축하를 바란 적은 없으나 기분이 가히 좋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한서림의 임신과 이혼에 대해 축하할 일이고 아니고 논할 자격이 없었다. 당사자인 강해건을 제외하고는. 한서림은 모주원의 별거 아닌 한마디 한마디에 반발심이 들었다. 확실히 무뎠던 신경이 많이 예민해졌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모주원이 아니었다. 눈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한서림의 머릿속은 온통 강해건뿐이었다. 당장 강해건을 찾아야 했다. 확률적으로 계산한 폭주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가 원했던 아기를 배 속에서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알파의 페로몬이 필요하기에 강해건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늦기 전에 각인해서 곧 있을 폭주부터 막아야 했다.

또 한 번 무너지는 강해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5.

“……그래서, 어차피……, ……어떨까 싶은데. 서림아, 네 생각은 어때?”

하지만 작정하고 숨은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사설탐정과 흥신소에도 따로 의뢰해 뒀으나 해외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모주원이 정보 브로커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임건우 실장이 한 회장의 끄나풀이었다는 정보고 모주원이 물어오지 않았었나.

그런데 어쩐지 모주원에게 강해건이 지금 연락 두절 상태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모주원의 속내를 어림짐작하고 있기 때문인지 정체 모를 기묘한 불안감이 요동치고 있었다.

“서림아. 한서림.”

“……어?”

강해건을 찾을 궁리만 하고 있다가 모주원의 말을 전부 놓쳐 버렸다.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러 와서 제대로 집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 안 듣고 있었어?”

“아, 미안.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고. 무슨 얘기 했지?”

뒤늦게 반응한 한서림을 보며 모주원이 서운한 기색을 비쳤다. 어째서 모주원의 표정 하나하나가 전부 계산된 것처럼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너무 예민해지다 못해 과민반응까지 하고 있었다. 이 또한 페로몬 금단 현상의 일종이라고 했으니 강해건의 페로몬만 있다면 전부 사라질 증상이었다.

“너 이혼한 후에 일 때문에 뉴욕 왔다 갔다 할 거고, 한국 집은 비는 날 꽤 있을 테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같이 살면 어떨지 물어봤어.”

“같이…… 산다고? 누가?”

“누구냐니. 당연히 너랑 나지.”

“뭐? 아니, 잠깐만. 무슨 얘기를 하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왜 너랑 같이 사는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주원아. 지금 네 페로몬 너무 노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강해건의 생각을 하면서 무시하려고 애쓰고 있었으나, 이쯤 되면 도무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이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의도치 않게 알게 된 모주원의 마음도 분명하게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는 감출 생각조차 없는 것인지 모주원은 정곡을 찔린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페로몬도 조금 더 농도가 짙어졌다. 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스치는 알파나 오메가는, 모주원의 페로몬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구애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나라한 감정의 페로몬이었다.

짐승도 아니고 페로몬으로 하는 구애라니…….

찰나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한서림은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로 강해건과 몸을 섞으며 진짜 짐승의 발정기처럼 지냈던 날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거부감은 지금 상황에서만 나타났다. 어쩌면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래 조금 더 숨기려고 했어. 그 새끼가 갑자기 나타나서 채가지 않았으면. 이혼의 조건이라는 걸 아니까 참아보려고 해도, 네가 그 새끼 애를 가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본심을 드러낸 알파는 위협적이었다.

“그 말은 좀 기분 나쁜데. 내가 물건도 아니고. 나도 생각할 줄 알고 마음이라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이야. 네 마음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면, 설마 너도 아버지처럼 오메가를 전유물로 생각하는 거야?”

“서림아, 내가 너를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 평생을 너 하나만 사랑해 왔는데. 당장 받아달라는 거 아니야. 애 낳을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미 일전에 모주원의 성적 페로몬을 감지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주원은 전혀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한서림을 에워싸고 있는 페로몬은 언제든지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고백보다는 차라리 협박에 가까웠다. 모주원이 이렇게 강압적인 사람이었나, 지금까지 정말로 제가 정한 기준에 맞춰서 모주원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서림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차가운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강해건 씨 애를 임신하고 있다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너는. 아무래도 사랑과 집착을 헷갈려 하는 것 같다.”

“뭐?”

“네가 정말 나를 사랑했다면, 네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한두 번쯤은 내 의심을 샀을 거야.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아예 모르지는 않았겠지.”

“그만큼, 네가 전혀 모를 정도로 내가 마음 숨기고 친구인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라고 해도 내 마음을 매도할 수는 없어.”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재단할 자격은 없어. 그런데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강해건이 한 회장의 페로몬 공격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멍청하게도 아직까지 모를 뻔했다. 모주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강해건의 페로몬으로 제대로 보호받은 날부터였다.

“모주원. 네가 정말 날 사랑했으면, 내가 페로몬 학대를 당하면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구경만 하면 안 됐던 거였어.”

“그건……!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림아. 그때는 나도 어렸어. 아저씨는 너무 거대하고 무서운 분이셨고, 내가 감히 어떻게 아저씨한테 대들 생각을 하겠어.”

“적어도, 단 한 번이라도, 숨넘어갈 듯이 괴로워하면서 쓰러진 채 발작하는 나를 데리고 도망치는 척이라도 했었더라면, 정말 단 한 번 시도라도 했더라면 내가 네 마음까지 의심하지는 않았을 거야.”

만약 정말 사랑이었더라면, 사랑하는 이의 지옥과 재앙을 몇 년이고 지켜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해도, 한서림은 강해건을 사랑한다고 깨닫는 것과 동시에 강해건을 지옥에서 꺼내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너는, 그럼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네 옆에서 친구 자리를 지켰는지 알기나 해?”

“네 사랑을 부정하는 건 아냐. 그냥 내가 믿을 수 없을 뿐이지.”

“……그럼 지금부터라도 네가 믿게끔 할게. 그러니까 생각이라도 해 봐. 아직 몇 달 시간이 있으니까.”

“아니. 주원아, 미안하다. 제대로 거절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나는 너를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강해건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든. 평생 강해건만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거절할게. 미안하다.”

“……어떻게, 나한테는 기회조차 한 번을 안 주냐.”

짓씹는 듯한 말과 함께 공격성 짙은 알파의 페로몬이 모주원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주변 테이블에 있던 알파나 오메가가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한서림은 다급하게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어지럽고 현기증이 몰려오며 속이 메스꺼웠다. 이러면서 어떻게 사랑한다고 지껄일 수가 있는 것인지 믿기지 않았다.

“아…….”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본능에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몸이 기우뚱거리며 비틀거렸다. 강해건이 아닌 다른 사람의 페로몬에는 반응하지 않는 몸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도 임신한 데다가 수면 부족과 체력 저하가 원인인 듯했다. 아까 의사의 말로는 오메가가 임신을 하면 평소와 다른 반응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차로 모시겠습니다.”

모주원이 비틀거리는 한서림을 잡으려는 순간, 정체 모를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다가와서 한서림을 보호하듯이 둘러쌌다. 당황해서 시선을 보내자, 옆에서 부축한 베타 남성이 친절하고 예의 있게 설명했다.

“서정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위급한 상황인 것 같아서 결례를 범하고 끼어들었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서정 그룹에서 나왔다는 말에 한서림은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언제부터 저를 경호하고 있었는지 눈치도 채지 못한 걸로 봐서는 실력 있는 이들임이 분명했다. 강유건의 오지랖 넓은 배려가 고마웠다.

경호원들 중 알파들만 남아서 모주원과 대치했고, 한서림은 베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무사히 카페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은 한서림이 뒷좌석에 타자마자 매끄럽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자택으로 모실까요?”

운전하고 있는 경호원의 물음에 한서림은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든 강해건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강해건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강유건이라면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강유건에게는 이미 이중호가 연락했기에 런던에서도 강해건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강해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렇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남지 않는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어떤 정보라도 손쉽게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 층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

“서정 그룹 본가로 가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해건을 찾아낼 수 있는 정보력과 재력을 갖춘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배 속에 태아를 품고 있는 이상 한서림을 배신하지 않고 지원해줄 사람.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그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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