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42)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대체 뭐 때문에 제멋대로 굴고 일부러 더 삐딱하게 구는 저에게 다 맞춰주면서 성질을 죽이고 말 잘 듣는 인형을 자처하는 것인지. 입으로 뱉지만 않았을 뿐 오늘 한서림은 저에게 눈으로 쌍욕을 몇 번이나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렇게 걱정된다고 맥주를 마시는 내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앉아 있었던 것인지. 티도 못 내면서 끙끙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30분 정도만 앉아 있으려고 했던 계획이 한 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어느새 강해건은 찾아야 하는 8년 전의 오메가를 잊은 채 한서림과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 이런…….”

샤워를 하면서 아무 의도 없이 한서림을 생각했을 뿐인데 어느새 반쯤 발기한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한서림의 페로몬이 역한데도 왜 그에게 흥분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함께 보낸 두 번의 러트가 몹시 만족스럽긴 했어도 생각만으로도 발기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기도 했고 말이다.

강해건은 느른한 손길로 제 성기를 두어 번 쓸어 올렸다. 가벼운 손길만으로도 성기는 크기를 더 키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주만 건너뛰었을 뿐, 결혼 전부터 계약서 조항대로 주 2회 이상의 섹스는 지켜지고 있었고, 지금은 더구나 신혼여행 중이니 참을 이유가 없었다. 무성의한 손길로 한 번 더 성기를 훑은 강해건이 가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거실로 나가니 한서림도 방에서 막 나온 참이었는지,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출출해서 룸서비스 시킬까 하는데, 생각 있어요?”

어차피 벗을 건데 편하게 가운을 입지, 왜 구태여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었을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눈을 가늘게 뜨며 한서림을 주시하다가 이내 저만 발기했고 저 혼자만 섹스할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닌데.

순진하게도 한서림은 곧 일어날 일도 예상하지 못한 채 차가운 이미지에 걸맞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룸서비스 메뉴를 보고 있었다.

“어제는 도착한 날이라 피곤해서 넘어갔다고 치고.”

강해건은 자연스럽게 한서림의 옆자리에 앉으며 긴 다리를 꼬았다.

“뭐를 말입니까? 치즈 잔뜩 올라간 피자 먹고 싶은데, 혹시 싫어하는 토핑 있어요?”

“섹스.”

“……네? 토핑이 섹…….”

말도 끝맺지 못한 한서림이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메뉴판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것까지는 꽤 빨랐는데 다시 고개를 돌려서 눈이 마주치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멍청한 모습이 왜 귀여워 보이는 것인지 아이러니했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이게 다 한서림의 저 얼굴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41.

“아니. 피자 토핑 말고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룸서비스 뭐 먹을지 얘기하던 거 아니었나요?”

“아닌데. 나는 계속 섹스 얘기 한 건데요. 어제는 도착한 날이라 피곤해서 섹스를 건너뛰었다고요.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주 2회 이상보다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열흘 내내 붙어먹기만 해도 좋은 게 신혼여행 아닌가?”

“……우리는 진짜 신혼여행을 온 게 아닌데요?”

“그럼 가짜 신혼여행도 있어요? 비즈니스든 뭐든, 일단 신혼여행을 왔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강해건은 바짝 말린 한서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페로몬 향이 상당히 역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그 오메가를 찾아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한서림은 꽤 욕심나는 남자였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가볍지 않은 행실과 생각이 깊고 진중한 인성까지. 성격이 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거슬렸던 처음과 달리 그 모습마저 꽤 귀여워 보이니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아니, 이 정도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거다. 빌어먹을 페로몬 폭주만 아니라면 작정하고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그렇지만 연구실에 최소 두세 번은 더 가야 하는데…….”

지금도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는 주제에 입으로는 허락을 구하는 척 고분고분하게 내뱉는 말이 우스웠다. 확실히 한서림은 강해건을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였다. 대체 이 작은 머리통에 뭐가 들어 있기에.

“무슨 말을 못 하겠다니까. 설마 내가 짐승 새끼처럼 열흘 내내 박기만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다행이고요.”

“그 말은 서운하네요. 주 2회 이상 섹스는 계약서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내용인데.”

“열흘 내내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맥시멈도 정했었나요? 몇 회 이상은 안 된다고.”

“그건 아니지만…….”

“그럼요?”

“……그게, 사실 강해건 씨랑 자고 나면 다음 날 걷는 것도 힘들어서요. 아무리 극우성이라고 해도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끝의 끝의 끝까지 몰아붙이잖습니까.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출근 못 한 날도 몇 번 있다고요.”

눈으로 하는 쌍욕이 더 심해진 게 확연히 느껴지는데 목소리와 말투는 불쌍한 척을 흉내 낸다. 강해건은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서 더 하면 한서림이 눈으로 욕을 하다못해 살기를 띨 기세였다.

궁금했다, 한서림이 말 잘 듣는 인형 가면을 벗어내고 언제 또 처음 미팅 때처럼 성질을 부릴지.

“그래서 싫어요?”

“아뇨. 너무 좋아요, 정말 환장하게 좋네요. 좋아 죽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안 넘어오네.

한서림이 생각보다 잘 버티면 잠깐 즐거웠던 기분이 쉽게 가라앉고는 했다. 강해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감정변화였다.

“눈으로는 나 후려 패고 있으면서 예쁘게 웃기만 한다고 내가 속겠어요?”

“…….”

“연기의 기본은 눈빛 연기인데. 연기를 할 거면 좀 성의있게 해 봐요.”

“…….”

“이제는 변명도 안 하네.”

미팅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성질머리에 이 정도면 한서림이 많이 참았다 싶기도 했다. 자꾸 참고 어울리지도 않는 인형을 자처하는 탓에 강해건은 쉽게 흥미를 잃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컷 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말이야 바른말로, 솔직히 강해건 스스로도 헷갈렸다. 한서림이 성질을 죽이고 지금처럼 고분고분하게 굴길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성질대로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면서 재수 없게 굴길 원하는 것인지. 답을 알 수 없는 난제가 강해건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룸서비스는 나중에 먹고, 섹스나 하죠.”

강해건이 한서림의 손에서 메뉴 책자를 거둬냈다. 한서림은 잠깐 미련이 남은 눈길로 메뉴판에 시선을 두었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방에서 하는 게 편하겠어요?”

“어차피 같은데 어디로 가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아, 그리고 페로몬 풀지 말고요.”

“……네?”

“외출해 있던 내내 후각에 테러를 당했더니 구역질 나서요.”

퍼퓸SR 창립 멤버라고 소개했던 에드워드와 니콜라스는 모난 곳 없는 성격으로 사람은 괜찮게 느껴졌으나, 페로몬이 몹시 역했다. 익숙한 향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광고 촬영 내내 맡았던 그 끔찍한 향들이었다. 얼마나 향수를 쏟아부은 것인지, 앞에 앉은 두 남자에게서는 상성이 맞지 않는 다른 향이 맡아졌는데, 헛구역질이라도 할까 봐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맥주만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남들은 좋다고 칭송하는 향이라고 할지라도 강해건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이 얼마나 독하게 향수를 뿌렸으면 오히려 한서림에게서 나는 페로몬 향은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달콤하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절대 진짜로 달콤하게 느껴진 건 아니었지만.

“발정기에는 제정신이 아니니까 페로몬 제어가 안돼서 새는 게 당연하지만, 발정기가 아니면 흥분했어도 페로몬 컨트롤할 수 있잖아요. 형질이 좋을수록 가능한 일 아닌가? 아니면 서림 씨는 그 정도로 형질이 좋지는 않아요?”

“아뇨. 히트사이클 때가 아니면 흥분한다고 해도 컨트롤할 수 있을 겁니다. 페로몬을 거둬들여도 잔향이 남을 수 있으니 소취제 좀 뿌리고 올게요.”

강해건이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한서림은 재빨리 방으로 사라졌다. 제가 아무리 타인의 페로몬 향을 역하게 느낀다고 해도 이는 개인적인 사정이지, 알파와 오메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이기에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런 지시가 기분 나쁠 만했다. 그러나 한서림에게서는 전혀 그런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페로몬 이야기를 하면 어울리지도 않게 눈치를 보는 것처럼 굴었다. 그건 조금 이상한 반응이었다.

“어때요? 이제 냄새 안 나죠?”

소취제를 뿌리고 온 한서림에게서는 모든 향이 완전히 사라졌다. 피부를 물고 빨고 해야지만 느껴질 정도의 아주 옅은 체향 정도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애무할 계획은 없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섹스하는 도중에도 풀지 말아요.”

한서림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상했다. 한서림은 강해건의 비틀리고 못된 성정을 끌어내는데 묘한 재주가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뭐가요?”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나요? 네 페로몬 향은 얼마나 대단해서 나한테만 풀지 말라고 하냐, 따지면서요. 한서림 씨 성격이면 그럴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닌데요? 잘못 봤어요. 나 그런 성격 아니에요. 강해건 씨가 다른 사람 페로몬 냄새에 힘들어한다는 거 알면서도 그런 거로 화낼 수는 없죠.”

“충분히 그런 거로 화낼 사람 같은데요. 아닌 척 안 해도 돼요. 어차피 우리 둘만 있는데.”

“그래요? 그럼 차라리 화를 낼까요? 씨발, 너도 똑같이 페로몬 냄새 풍기는 알파 주제에 왜 나한테만 지랄인데, 너 새끼도 페로몬 냄새 진짜 좆같거든?”

망설임 없이 터져 나오는 욕설에 강해건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잠시 충격을 받았다. 제가 예시로 들었던 말에서 업그레이드 된 말이 한서림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나는 지금 강해건 씨의 말 잘 듣는 인형이라는 설정인데. 그렇죠?”

한서림은 눈까지 확 접으며 욕 나올 정도로 몹시 예쁘게 웃었다. 역시 그 성깔이 어디 갈 리가 없었다. 이런 성격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짓누르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

잠시 멍하게 있던 강해건은 이내 피식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한서림을 어깨에 들춰 메고 제 침실로 향했다. 이제 한서림이 엉망진창으로 무너져 내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엉엉 울면서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 *

“으응, 읏……. 하읏……!”

강해건의 것을 머금고 있는 안이 파르르 요동쳤다. 그의 성기가 느릿하게 빠져나가며 내벽이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귀두만 걸쳐놓은 그는 언제 여유를 부렸냐는 듯이 빠르고 거세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흑!”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처박을 때마다 전립선을 정통으로 때리는 탓에 격한 신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엎드린 채로 지탱하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길들여진 몸은 아무런 전희도 없이 그저 삽입만 하는 건조한 행위에서도 착실하게 흥분을 하고 쾌감을 좇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혼을 결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후 지금까지 강해건과 꽤 여러 번의 섹스를 했음에도 키스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자들에게 사진 찍힐 목적으로 볼이나 입술에 가볍게 뽀뽀한 적은 몇 번 있지만, 강해건의 섹스는 불필요한 접촉을 전부 배제시키고 오로지 임신만을 목적에 둔 의무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서운하다거나 섭섭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 아쉬웠을 뿐.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즐기고 싶으니 말이다. 한서림은 삽입보다 키스나 애무를 더 좋아했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딴생각할 여유도 있고.”

“네? 아, 흐, 으응!”

“나랑 하는 거, 이제 지루한가 봐요?”

“그, 그런 거 아니, 아, 하윽……!”

“자존심이 상하네.”

강해건은 갑자기 거칠게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한번에 확 안을 짓뭉갤 것처럼 처박더라도 빼낼 때는 내벽이 감싸는 느낌을 즐기려는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였는데, 이제는 가만히 버티고 있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안을 짓찧었다. 침대를 받치고 있는 후들거리던 팔이 결국 접히며 한서림의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42.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

거친 숨과 함께 말이 뚝뚝 끊겨서 들렸다.

“하, 아……! 아, 아아!”

“꼭, 나만 발정 나서, 날뛰는 꼴 같잖아요.”

한서림의 입장에서는 애무도 없이 제멋대로 허리만 놀리는 강해건을 감당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여러 번의 섹스로 길들여진 탓인지, 강해건의 페로몬 향에 취하면 체력이 못 따라가서 힘든 것과는 별개로 금세 쾌락에 취하곤 했다. 특히나 오늘은 페로몬 향수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강해건이 평소보다 더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아, 자, 잠깐……! 흐윽, 조, 조금만 천천……!”

“뒤로는 내 거 물고 질질 싸면서, 읏…….”

“제발, 흐읍, 천천……, 흐응!”

“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그래요.”

강해건은 속도를 줄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강하게 안을 때려 박으면서 거친 숨을 뱉어냈다. 느끼는 곳만 셀 수 없을 만큼 짓찧어진 탓에 한서림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연신 신음만 쏟아냈다. 다리 사이에서 빳빳하게 세워져 덜렁거리는 성기가 꿈틀거리며 더는 버틸 수 없음을 예고했다. 강해건의 두껍고 뭉툭한 귀두가 전립선을 때려 박을 때마다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눈앞이 하얘졌다가 까매졌다.

“아니, 나 진짜, 흣, 갈 것……! 아, 아흑!”

한서림의 성기가 파르르 떨리더니 백탁 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정이었다. 정액을 배출하는 동안 꽉 조여진 내벽으로 인해 강해건도 한서림의 등을 으스러트릴 것처럼 끌어안으며 한껏 몸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강해건의 첫 번째 사정이었다. 이대로 노팅까지 가서 이만 끝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체력이 따라 가주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으…….”

사정을 하고도 크기를 줄이지 않은 강해건의 성기가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벽이 그의 성기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야무지게도 달라붙었다. 그제야 한서림이 온몸에 힘을 빼고 침대로 몸을 축 늘어트렸다.

“아. 노팅을 안 했네.”

거칠어진 숨을 갈무리하려는 탓에 한서림의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제멋대로 쏟아진 눈물 때문에 불그스름하게 변한 눈가가 따끔거렸다.

“아깝게.”

강해건의 변태 같은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안을 헤집었다. 뭐하는 짓인가 하고 슬쩍 고개를 돌렸더니 흘러나오려는 정액을 도로 집어넣는 중이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강해건은 정말 변태새끼였다. 잦은 설렘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변태 같은 짓들마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일어나서 내 위로 올라와요.”

그간 강해건과 섹스를 하면서 한서림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강해건은 한 번 시작하면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들쑤시고 끝을 모르게 날뛴다는 것이었다. 러트사이클이 아니어도 그랬다. 남의 페로몬 향은 역하다고 하면서, 섹스는 몹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오로지 삽입만 하는 단순한 행위였지만.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친 건 아니죠?”

야살스럽게 눈을 접으며 하는 말에 한서림은 굳은 얼굴에 어색한 억지 미소를 만들어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얼핏 상기된 강해건의 눈가가 몹시 선정적이고 매혹적이었다.

“그럴 리가요. 원하는 만큼 해요. 버틸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팠으나 섹스가 끝나기 전까지는 룸서비스조차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서림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인 후 힘이 빠져버린 몸을 움직였다. 섹스의 끝은 언제나 노팅이었다. 물론 노팅을 했어도 풀리고 나면 또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노팅을 하기 전에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강해건은 침대 헤드에 베개를 세워둔 채 눕듯이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처음 해보는 체위도 아닌데 얼굴이 보이고 눈이 마주치자 어색했다. 한서림 역시 차라리 후배위가 편한 이유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해건이 흥분해서 쾌락에 녹아내리며 느끼는 모습을 눈에 담으면 알 수 없는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저로 인해 만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꽤 황홀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사랑이라니.

이건 아마도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일 테다. 한서림은 떠오르는 상념을 지워내며 다리를 벌리고 그의 몸 위로 올라타 흉흉한 그의 것을 잡고 입구에 맞추었다. 뭉툭하고 매끈한 귀두로 느릿하게 주름을 비비다가 슬쩍 힘을 주어 끝을 조금 머금었다.

“하으…….”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하려고.”

“아, 자, 잠깐……, 흐윽!”

강해건이 허리를 위로 튕기는 순간, 지금까지 그의 것을 오물거렸던 구멍이 쉽게 벌어지며 폭력적인 크기에 맞도록 길을 터주었다. 배를 가득 채운 압박감에 척추를 타고 쾌감이 기어 올라가며 턱 끝이 발발 떨렸다. 오늘의 섹스는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밤은 길었다.

* * *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던 정사로 인해 한서림이 눈을 뜬 것은 오후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눈만 떴을 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근육통에 시달리며 끙끙대느라 한 시간 정도는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머무는 방의 깨끗한 침대에서 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노팅을 하는 순간 기어코 기절했던 것 같은데, 강해건이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한 침대에서 잤는지, 옆자리에 강해건의 페로몬 잔향이 남아 있었고, 베개도 움푹 패어 있었다.

문이 닫혀있는 방 안에 강해건의 페로몬과 섞여서 미약하게 퍼져있는 제 수면 페로몬 냄새가 맡아졌다. 노팅을 하는 순간까지 잘 갈무리한 채로 버텼으니 자는 중에 샌 모양이었다. 이건 강해건이 맡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강해건이 부작용을 겪게 된 것은 비정상적인 발정 페로몬 때문이었으니, 발정 페로몬만 아니면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평상시 페로몬과 수면 페로몬, 발정 페로몬은 향도 다르니까.

“여기서 언제부터 살았어요?”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강해건이 한서림을 현실로 소환했다.

한서림이 맨해튼에서 살던 집은 센트럴파크 근처에 있었다. 호텔에서도 산책하는 겸 걷는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다만, 걸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도 택시를 타기는 애매한 거리라서 걷는 것을 택했다. 한서림과 다르게 강해건은 아주 개운하고 말끔한 모습이었다. 약이 오를 정도로.

“퍼퓸SR 론칭하고 손익분기점 넘어서서 돈 생겼을 때부터요. 그때도 가진 돈에 비하면 정말 잘 구한 집입니다.”

“생각보다 허름한 아파트네요. 한 회장님이 돈을 다 끌어안고 사시나?”

뒷말은 혼잣말처럼 이어졌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가 대부분 그렇죠. 그래도 위치가 좋아서 연구실이랑도 가깝고, 센트럴파크 근처라서 산책하거나 피크닉하기에 좋습니다.”

20평대의 허름한 아파트였지만, 한서림은 이 집을 꽤 좋아했다. 집이라는 곳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페로몬 학대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서 늘 긴장한 채로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던 곳을 집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집의 안락함과 편함을 처음 깨달은 곳에 강해건과 함께 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둔탁하게 움직이는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두꺼운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환기가 되지 않아 매캐하고 숨 막히는 냄새가 코끝에 닿아왔으나 한서림에게는 익숙한 냄새라서 이마저도 반가웠다.

니콜라스는 창단 멤버 중에서도 가장 깔끔한 녀석이니 평소에도 깨끗하게 해두고 살 터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화답이라도 하듯 한서림이 살 때보다 더 깔끔해진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신발 벗고 이 실내화로 신어요.”

문 바로 옆에 있는 신발장에 있는 실내화 네 켤레도 그대로였다. 니콜라스와 제이든, 에드워드와 넷이 집에서 가끔 맥주를 마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 구비해둔 거였다. 내준 실내화를 신고 거실로 들어선 강해건의 미간이 조금 좁혀졌다.

“되게 좁네요. 어쨌든 구경할 목적으로 온 거니까 구경해도 되죠?”

한서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구경은 채 2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따로 현관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좌측으로 작은 주방과 냉장고가 있었고, 정면이 거실이었다. 거실에 있는 거라고 해봐야 좌측에 있는 침실 벽에 붙어있는 소파베드와 우측 벽에 4인용 식탁이 전부였다. 좁은 침실에도 붙박이장을 제외하면 작은 책상과 침대가 전부였고 말이다. 예상대로 강해건의 집 구경은 2분도 걸리지 않았다.

“별로 볼 것도 없죠?”

침실 붙박이장에서 한쪽에 정리해둔 여름옷을 챙기며 물었다. 벽에 기대고 서서 팔짱을 낀 강해건은 한서림이 야무지게 챙기는 양을 보고 있었다.

“고작 그런 거 가져가려고 여길 오려고 했던 거예요?”

“저번에 한국 갈 때 여름옷을 하나도 안 챙겨서요. 다시 사자니 짐만 늘 것 같고.”

“됐으니까 챙기지 말아요.”

“네?”

의아함에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자, 강해건이 무릎을 굽혀 한서림의 옆에 앉으며 손에서 옷을 빼앗아 있던 자리에 다시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43.

“신혼여행 끝나면 내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알죠?”

“네. 한국 가면 내 짐도 아마 다 옮겨져 있을 거예요. 짐이 얼마 안 돼서 옮길 것도 없겠지만요.”

아들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 한 회장이 임건우 비서실장을 시켜서 강제 이사를 하도록 했다. 알아서 하겠다는 한서림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으로 고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인간이었다. 고작 3개월밖에 살지 못한 한국의 집은 모주원에게 부탁해서 전세 들어올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모주원이 자기가 살겠다고 해서 그냥 그러라고 했다.

“계절별로 옷들 준비시킬게요. 이건 두고 가요.”

“아뇨, 사도 내가 살게요. 그래도 이 옷들은 가져가고 싶…….”

“한서림 씨. 지금 다른 알파 페로몬이 덕지덕지 묻은 옷을 내 집에 들여놓겠다는 거예요?”

이 정도면 진짜 억지 아닌가.

강해건이 페로몬에 민감하게 구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니콜라스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었다. 출근하기 전에 집 안 구석구석에 소취제를 뿌려주면 고맙겠다고. 니콜라스 역시 절대 오해받고 싶지 않다면서 한서림이 말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고 답장해서 한서림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약속한 것처럼 소취제를 얼마나 잔뜩 뿌리고 갔는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어떤 페로몬 향도 맡을 수가 없었다. 강해건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하고 미약한 향을 제외한다면.

“나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

한서림은 일부러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3개월 전에 정리해둔 옷에서는 그 흔한 섬유유연제 냄새마저 나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니콜라스가 옷을 가지러 온다는 걸 알면서 붙박이장 안에 있는 옷들에만 소취제를 뿌리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는 건 강해건이 또 성격이 못돼져서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냄새가 안 난다고 다른 알파 페로몬이 묻었던 사실이 없는 일이 되나요?”

눈웃음을 치면서 상냥하게 말하는데 이상하게도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아까 함께 걸어올 때까지만 해도 나름 데이트하는 느낌도 나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니지. 혹시 정말로 질투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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