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42)

저 배려 없는 자식이……!

타이밍 때문인지 마치 강해건의 성기가 구멍 안을 치받는 느낌이었다. 반 이상 무리해서 머금은 탓에 목구멍이 조여지고 입이 찢어질 것처럼 한계까지 벌어져 고통스러운데도 이상한 포인트에서 흥분한 몸은 오메가 액을 왈칵 쏟아냈다. 뒤에 넣고 있던 손이 흥건하게 젖고, 구멍이 멋대로 벌름거렸다.

“입 잘 벌리고 있어요. 찢어지기 싫으면.”

경고와 함께 강해건이 몸을 일으켜 세웠고, 한서림 역시 허리를 세워야했다. 곧이어 일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6.

목덜미를 잡힌 채 옴짝달싹 못 하고 그의 자비 없는 폭렬한 허릿짓을 받아내야 했다. 제가 스스로 움직일 때와는 압박감의 차원이 달랐다. 어느 타이밍에 숨을 쉬어야 하는지를 찾는 것조차 버거워서 몸이 떨렸다.

“뭐 해요. 손은 계속, 움직여야죠.”

“우읍…….”

“읏……. 이 세우지, 말고.”

날카로운 치아에 성기가 긁힌다고 생각하는 순간 강해건에게서 신음이 터졌다. 곧바로 지적을 들었고 한서림은 반사적으로 입술을 모아 치아를 감췄다. 그러나 그의 요구대로 손까지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만히 입으로 그의 것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구멍 안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저 남은 손으로 단단한 허벅지를 잡고 버티는 것만이 한서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웁, 흐읍…….”

“후우……. 한서림 씨, 나 봐 봐요.”

슬쩍 성기를 물려준 틈을 타서 숨을 몰아쉬며 시선을 들었다. 그에게 사죄하려는 마음으로 점철되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배려 없는 좆같은 섹스매너가 다 있냐며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한서림은 알파가 제멋대로 리드하며 오메가를 휘두르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죄책감이 커서일까. 배려 없는 진행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참을 만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고인 탓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서 강해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불투명해서 확신할 수는 없으나, 눈이 마주치자마자 강해건의 입가가 비틀리는 듯했다.

“하, 씨발.”

짓씹는 듯한 짧은 욕설과 함께 머리카락이 강한 힘에 휘어 잡혔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놀랄 새도 없이 버거운 크기의 성기가 급하게 입안으로 들이닥쳤다. 허릿짓이 더 사나워졌다. 한서림은 무의식중에 구멍에 넣고 있던 손을 빼내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그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금세 오메가 액이 강해건의 트레이닝 바지에 묻으며 흔적을 남겼다.

“윽, 으웁……!”

더욱 농밀하고 밀도가 진해진 페로몬이 쏟아져서 현기증이 일었다. 그 어떤 알파 페로몬에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데 역시나 강해건은 예외였다. 그날의 사고 때문에.

페로몬이 고여 있는 성기가 입에 처박히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성적 페로몬이 유독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들이치는 성기를 버텨내는 버거움이 덜어지지는 않았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한껏 흥분한 강해건의 움직임은 점점 더 거세졌다. 잠깐 숨을 쉴 시간을 줄 때를 제외하고는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마구잡이로 처넣고 있었다. 세게 잡혀 있는 머리카락으로 인해 두피가 아팠다. 가득 차오른 눈물이 시야를 가로막아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흥분하는 몸에서는 쉴 새 없이 오메가 액이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입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뒤에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크읍!”

입안을 통과한 성기가 목구멍까지 깊게 박혔다. 너무 놀란 탓에 뱉어지지 않는 기침을 안으로 하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다. 동시에 강한 악력에 머리가 꽉 눌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통이 틀어 막히면서 고여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멋대로 흐르는 눈물과 타액으로 인해 한서림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산소가 부족해서 뇌가 조여지는데 강해건의 페로몬이 괜찮다는 듯이 저를 컨트롤하는 것 같아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으읏……!”

어쩌지 못한 목구멍이 바짝 수축하며 귀두를 강하게 조이는 순간 정액이 쏘아져 들어왔다. 뱉어낼 틈도 매끄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탓에 목젖이 움직이며 그의 성기를 더 자극했다. 너무 숨이 막혀서 이제는 못 버텨서 진짜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를 올려다보며 허벅지를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그제야 한서림의 입에서 성기가 빠져나갔고, 갑자기 들어차는 공기로 인해 기침을 쏟아낸 후 힘겹게 호흡을 갈무리했다.

“하아, 하…….”

입에서 빠져나간 강해건의 성기가 미처 분출하지 못한 나머지 정액을 쏘아대고 있었다. 볼과 입술에 튀어서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쌌네. 언제 쌌어요?”

다소 폭력적이다 싶게 행동한 사람이 맞나 싶게 다정한 음성이었다.

“……네?”

“이거 한서림 씨가 사정한 거잖아요.”

강해건의 턱짓을 따라가니 제 다리 사이에 흩어져 있는 정액이 보였다. 강해건이 분출한 것이라기엔 위치가 맞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한서림이 사정한 거였다. 사정한 순간조차 몰랐다는 것이 당황스러워서 한서림은 멍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강해건은 사정을 하고도 죽지 않은 성기로 정액이 튄 부분들을 문질렀다. 마치 얼굴에 넓게 펴바르려는 것처럼. 혹은 짐승이 영역표시를 하는 것처럼.

몽롱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한서림은 이 자식이 변태인 게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 * *

“후우……. 한서림 씨, 나 봐 봐요.”

한서림이 너무 버거워하는 것 같아서 슬쩍 성기를 뒤로 빼내 그의 입에 귀두만 걸쳐놓았다. 이내 한서림의 시선이 들리며 눈이 마주쳤다. 강해건은 순간적으로 숨을 훅 들이켰다. 아랫배가 확 조여지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꿈틀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몹시 퇴폐적이었다. 오메가들에게 성기를 물렸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갑작스러운 흥분이 최고치를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하, 씨발.”

엉망이 된 얼굴을 보는 순간 느닷없이 들이친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손길이 우악스러워졌다. 한서림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강해건은 그의 입안으로 사납게 허릿짓을 했다. 떨고 있는 한서림을 볼수록 절정의 나락이 가까워졌다. 깊게 퍽 박자 목구멍이 성기를 거세게 조이며 강한 쾌감이 몰려왔다. 밀도가 빽빽한 페로몬이 강해건에게서 터져 나왔다.

“윽, 으웁……!”

한서림이 구멍에 넣고 있던 손을 다급히 빼내 강해건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못 하는 펠라티오는 처음 받아본다. 한서림의 페로몬이 역한데도 멈출 수 없고 더 흥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제 허벅지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젖은 손만 봐도 오메가 액을 흘릴 만큼 한서림이 흥분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제가 찾던 페로몬은 아니었다.

아니, 샤워하고 나왔을 때와 흥분한 페로몬이 같아서 의아했다. 일반적으로는 평상시 페로몬과 발정 페로몬이 다른 게 정상인데, 이런 경우도 있나. 어쩌면 한서림은 샤워하면서 이미 흥분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운을 입고 발개진 볼로 나왔겠지.

아무리 잘하는 사람한테 펠라티오를 받아도 강압적으로 제멋대로 허리를 흔드는 게 취향이긴 했으나, 한서림은 심하게 입을 쓸 줄 몰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껏 흥분한 강해건은 더욱 강렬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잡고 있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쓰며 제 걸 물고 있는 야한 얼굴을 볼수록 가학심이 실체를 드러내며 통제력을 앗아갔다. 절정이 코앞이었다.

“크읍!”

최대한 깊숙이 처넣은 후 목구멍의 조임을 즐겼다. 한서림이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빼려고 했다. 강해건은 반사적으로 뒷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얼굴에 샅을 조금 더 바짝 밀어붙였다. 동시에 한서림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눈물과 타액으로 엉망이 되어 쾌감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순간 목구멍이 성기를 강하게 조이며 압박했다.

“으읏……!”

타의에 의한 사정이 시작되었다. 사정을 하는 동안에도 목구멍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자극을 더했다. 저절로 이를 악물게 되었다. 한서림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벅지를 조급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서야 그의 입에서 성기를 빼낼 수 있었다. 미처 다 분출하지 못한 정액이 콜록대며 기침하고 있는 한서림의 볼과 입술에 튀었다.

“하아, 하…….”

비슷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감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흥분했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었다. 형질이 우성이라고는 해도 한서림은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오메가 중 한 명일뿐인데.

강해건의 시선이 한서림의 얼굴에서 점점 아래로 향해갔다. 꼿꼿하게 발기했던 한서림의 성기가 반쯤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 아래에는 정액이 고여 있었다.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쌌네. 언제 쌌어요?”

“……네?”

“이거 한서림 씨가 사정한 거잖아요.”

당황스러운 얼굴로 멍하게 눈만 깜빡이는 얼굴이 꽤 귀여웠다. 반응을 보아하니 자기가 사정한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어설퍼도 이렇게 어설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어설픈 오메가한테 제대로 흥분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페로몬 폭주가 일어난 후부터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한서림의 저 얼굴이 문제인 것 같았다. 직접적인 흥분보다 시각적 자극이 강해서 성감이 고조되었었나 보다. 얼굴은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상당히 취향이었으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붉은 기가 도드라져 야한 입술로 제 걸 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는데 이상한 가학심이 생겨났으니까. 어쩐지 꾹꾹 눌러두었던 성벽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나 제가 분출한 정액으로 얼굴이 범벅된 모습은 가히 절경이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비위생적이라고 혐오할 만한 짓이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강해건은 사정을 하고도 위용이 줄지 않은 굵은 기둥을 붙잡고 한서림의 얼굴에 문질렀다. 정액이 튄 부분을 골라서 그의 얼굴에 넓게 펴 바르듯이.

“잘 어울리네요. 후우……, 예쁘기도 하고.”

제가 시각적 자극에 약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볼 만큼 느낌이 환상적이었다. 말랑하고 뽀얀 뺨에 문지를 때는 반들반들한 귀두가 녹는 기분이었고, 입술 위에 정액을 펴 바를 때는 먹이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타인이 제 정액을 받아먹는 걸 막은 적은 없지만,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는 짓 중 하나인데 말이다. 한서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절대 먹지 않겠다는 것처럼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아. 이러면 어떻게든 더 먹이고 싶어지는데.

가학심을 닮은 뒤틀린 욕망이 씨앗을 움틔웠다.

27.

다음번에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라고 해서 그 위에 정액을 싼 뒤, 삼키는 걸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성기를 다시 볼 쪽으로 가져갈 때였다.

“끝난…… 겁니까?”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고 있는데 선정적인 입술이 열리며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기가 식지 않아 상기된 얼굴과 다르게 한서림의 눈동자에는 읽기 쉬운 혐오와 거부감이 깃들어 있었다. 당장 좆을 치우라는 듯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기의 기본은 눈빛인데.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저렇게 숨기지도 못할 거면서 왜 말 잘 듣는 인형이 되겠다고 한 건지 가소로웠다. 고작 이 정도에 저렇게 다 보여줄 거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꼬집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느낀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아서 강해건은 순순히 성기를 물려주었다.

성기가 마르긴 했어도 타액으로 범벅이 되었었고 정액까지 묻었으니 다시 샤워를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어차피 한서림이 구멍에 넣었던 손으로 허벅지를 잡은 탓에 오메가 액이 묻은 바지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일단은요. 한 번 빼내서 그런가, 지금 컨디션으로 보면 몇 시간은 괜찮을 거예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성기를 물티슈로 대충 닦고 바지 안에 집어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서림도 가운을 걸치고 자기가 싸놓은 정액을 휴지로 닦았다. 물티슈로 다시 한번 꼼꼼하게 바닥을 닦는 모습이 단정했다. 바닥을 정리한 후에 물티슈를 한 장 더 꺼내서 아무렇게나 얼굴을 닦는 손길은 투박하고 성의가 없어 보였지만.

“괜찮아요?”

“네.”

“좀 봐요. 헐었을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혹시 자다가 새벽에 시작되더라도 깨워요. 그것 때문에 온 거니까.”

눈빛이나 어떻게 좀 숨기고 말하던가.

한서림은 입술을 건드리는 강해건의 손길을 피했다. 그다지 배려 있는 행위가 아니었는데도 일방적으로 저에게 맞춰주려는 한서림의 행동에, 강해건은 의아함이 짙어졌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본인이 그러겠다고 자처했고, 입에만 물려줬는데도 언제 사정했는지 모를 정도로 한서림 역시 흥분했던 건 사실이니까.

복잡한 건 버리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속 편했다. 본인이 원한다는데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들쑤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어디 한번 언제까지 되도 않는 연기로 버티는지 보자 하는 고약한 심보는 조용히 숨겼다.

“한서림 씨가 한 말이니까 자고 있는데 덮쳐도 놀라지나 말아요.”

“……이왕이면 깨워주면 고맙겠는데요.”

“러트 와서 눈 돌아가면 그럴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

멍청하게 ‘아…….’ 하는 건 이제 한서림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표정 관리를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는 바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보는 맛이 있었다. 왜 자꾸 저 멍청한 표정이 귀여워 보이는지는 황당할 노릇이지만. 얼굴을 밝힌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역시 얼굴이 취향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이 되도록 저녁도 안 먹었네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어……, 미안한데 내가 요리를 못 해서요. 혹시 요리 잘하는 사람이 취향이에요? 배우라고 하면 시간 내서 배워볼게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사정이라 마음이 유해져서 배려 아닌 배려를 뱉어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질문에 저런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건지 황당했다. 의욕적으로 순하게 구는 건 좋은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걸까.

“요리하라고 안 해요. 결혼해서도 그런 건 할 필요 없고요. 나는 주로 배달시켜 먹는데, 배달음식이 별로면 요리해줄 사람을 고용하면 되고.”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배달음식 좋아합니다.”

“그래요. 뭐 시켜줄까요.”

“으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별로 가리는 음식은 없으니 강해건 씨가 먹고 싶은 걸로 시켜도 됩니다.”

음식 취향은 까다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페로몬 배출과 사정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억제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지금쯤이면 러트의 발열로 흥분에 허우적거려야 하는데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한서림 역시 언제 엉망이 되었었냐는 듯 단아하고 우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저 얼굴이 망가졌을 때를 떠올리자 묘하게 단전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내가 먹던 대로 시킬 테니까 씻고 와요.”

“편하게 입을 옷 좀 빌리고 싶은데요.”

“내 옷은 한 대표님한테 클 것 같은데. 오늘은 가운 입어요. 욕실 수납장 안에 새 가운 있을 겁니다.”

“나만 가운 입고 있는 건 좀 그래서요. 불편하기도 하고. 커도 상관없으니 빌릴게요.”

“어차피 이따가 벗을 거잖아요.”

“그래도요.”

“고집은. 알았어요. 욕실 앞에 둘 테니까 씻고 나와서 입어요.”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을 부리는 게 귀여워 보이는 걸 보니, 컨디션이 좋아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나 보다.

강해건은 한서림이 욕실로 들어가는 걸 본 후 드레스룸으로 갔다. 어떤 옷을 빌려줘야 하는지 쭉 둘러보다가, 태그도 제거하지 않은 새 티셔츠와 반바지를 선택했다. 어림짐작으로 저와 키가 15cm는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였으니 긴 바지는 불편할 것이다.

욕실 문 앞에 챙긴 옷을 놔주고 제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세탁실로 갔다. 티셔츠를 먼저 벗어서 세탁바구니에 던져 넣고 바지도 던질 때였다. 찰나의 순간 뇌를 찌르는 아찔한 향기가 코를 스쳤다. 문득 8년 전의 그 밤이 떠오르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럴 리가…….”

강해건은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세탁바구니 앞에 다가가 트레이닝 바지를 집어 들었다. 오메가 액이 묻어 색이 진해진 부분이 시야를 가로챘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얼룩진 부분을 코앞으로 가져왔다.

“…….”

그러나 괜한 짓이었다. 조금 전 스쳤던 향기와는 다른, 한서림에게서 풍겼던 불쾌한 페로몬 냄새만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강해건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지를 빨래바구니 안으로 내팽개쳤다. 후각을 스쳐 뇌를 관통했던 향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 페로몬 향을 찾으려고 너무 혈안이 되어 애쓰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나 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미친 건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벌써 몇 년이나 맹목적으로 찾아 헤맸던가. 강해건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또래 남성형 오메가는 다 만나겠다는 말도 더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더 중요했다. 선택권이 없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그 오메가를 찾아내서 각인해야만 좆같은 페로몬 폭주를 멈출 수 있다는데.

지금껏 관리를 철저하게 해 온 덕분에 통제할 수 없는 페로몬 폭주에 다친 사람은 강유건 한 명뿐이었어도 그 끔찍했던 절망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마저 전전긍긍하며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살 자신이 없었다. 페로몬 폭주를 멈추고 싶은 소망은 그 오메가에 대한 복수심에 비례했다.

그러고 보니 정체 모를 흥분에 취해서 이전과 달리 다 벗은 몸을 보고도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점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그 어떤 오메가를 만나더라도 언제나 가장 먼저 확인했던 절차인데. 아니, 그건 곧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상관없었다.

강해건은 미련 없이 세탁실에서 나와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로 향했다. 개운한 컨디션과 별개로 머리를 맑아지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벌써 배달이 왔어요?”

샤워를 마치고 나와 음식을 받은 후 식탁에 꺼내놓고 있는데, 한서림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다가왔다. 순간 포장용기를 꺼내던 강해건의 손이 멈칫했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있더라도 옷이 저렇게까지 큰 게 묘한 감상을 일으켜서.

아. 그러고 보니 이중호 실장과 함께 쇼핑할 때 아무렇게나 집었던 티셔츠 중 하나인데 사이즈를 확인 안 해서 잘못 샀던 옷이었다. 교환이나 환불이 귀찮아서 그냥 뒀었고. 하필이면 왜 저 옷을 줬는지 모르겠다.

“…….”

강해건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멀거니 한서림을 응시했다. 한서림이 왜소한 체격이라고 해도 저한테도 큰 티셔츠를 입혀놓으니 이상한 상상이 들면서 음습한 생각이 피어났다.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흰 사람이 큼지막한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는 탓에 시선이 절로 갔다. 더구나 생각 없이 반바지를 준 탓에 루즈한 셔츠에 가려져서 더 야해 보였다. 아까는 한서림이 앉아있는 데다가 제 흥분에 취해서 몰랐는데, 곧게 쭉 뻗은 다리가 매혹적이었다. 아무리 오메가라고 해도 남성형 오메가가 저렇게 예쁜 다리를 갖고 있는 건 처음 봤다. 한서림의 은근히 무심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따로 관리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도 타고난 것일 테다. 문득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 강해건은 헛웃음을 흘렸다. 변태도 아니고 남의 다리를 보면서 만져보고 싶다니. 아무리 알파와 오메가가 운명적인 상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타인을 만지는 게 싫고 귀찮아서 웬만하면 애무도 건너뛰고 전희 없이 삽입만 하는데 말이다.

대체 한서림이 뭐라고.

깊게 자리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서.

28.

“왜 욕을 하고 그럽니까. 같이하자고 하면 되지. 나머지는 내가 뜯을 테니 그냥 둬요.”

한서림의 나지막한 음성에 강해건은 자신이 언제 욕을 했나 싶어서 눈썹을 올렸다. 어느새 수건을 의차에 걸쳐둔 한서림은 야무진 손길로 꺼내놓은 음식용기의 포장을 뜯고 있었다. 손가락도 참 가늘고 길다. 곧게 뻗은 손가락의 유려한 움직임을 보고 있는 사이 밥과 찌개, 반찬들까지 전부 세팅이 완료되었다. 아무래도 정말 뭐에 홀렸나 보다. 이런 반응은 자기중심적인 강해건에게 몹시 낯설고 생경했다.

“잘 먹겠습니다.”

먼저 식탁 의자를 빼서 앉은 한서림이 수저를 들며 인사했다. 강해건에게 한다기보다는 버릇처럼 뱉어내는 듯했다. 저답지 않은 상황이 낯설어서 강해건은 턱을 매만지며 느릿하게 맞은편에 앉았다.

“결혼하고도 집에서 음식을 계속 시켜 먹을 거면, 그 돈은 내가 냈으면 합니다.”

“왜요? 내 집에서는 한 대표님이 돈 쓸 일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경제적인 부분을 강해건 씨가 혼자 감당하면 좀 그렇잖아요.”

한서림은 지금 자기가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발언이었다.

“이거 시켜 먹는데 몇 푼이나 한다고.”

“한두 끼도 아니고 매번 시켜 먹을 텐데. 나 팔려오는 거 아니고 내 자의로 강해건 씨와의 결혼 선택했습니다. 돈도 있고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내가 할게요.”

“한 대표님한테 돈 없다고 안 했어요. 더 있는 내가 낸다고 한 거지.”

“이거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고집 센 거는 이제 알았으니 정 그러면 같이 먹을 땐 한 대표님이 사요.”

이 별거 아닌 게 뭐라고 한서림은 옅게 웃으며 눈을 휘었다. 누가 보면 돈을 못 써서 안달 난 사람인 줄 알겠다. 한서림의 향수 사업이 아무리 성공했어도 저처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강해건의 모친인 윤성아 대표는 세상을 떠나면서 강해건에게 유산을 전부 물려주었다. 친자식인 강유건에게는 십 원 한 푼도 안 남겨주고.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강해건은 몹시 당황했으나, 강유건은 아무런 불만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어머니와 다 얘기가 된 거라고, 어머니께 너는 정말로 소중한 아들이었다며,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은 형용할 수가 없었다.

“왜 안 먹어요?”

아주 짧은 찰나 상념에 빠졌던 강해건이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정액으로 범벅이 되었던 뽀얀 얼굴이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한서림의 외모가 지독할 정도로 제 취향이라는 사실을 불필요하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쩐지 좀 짜증이 나려고 했다.

“입맛이 없어요?”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요.”

“얼른 먹어요. 이 집 음식 잘하네요. 매일 여기서만 시켜 먹어도 되겠어요.”

아주 잠깐 생각에 빠졌을 뿐인데 한서림은 벌써 밥을 반 공기나 비워낸 상태였다. 정작 강해건은 아직 한 숟가락도 맛보지 못한 상태였다. 첫 미팅 때도 따로 권하지 않아도 자기가 마실 음료는 알아서 주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안 그래 보이는데 꽤 무심한 성격인 듯했다.

“나는 주로 여기서만 시켜 먹어요. 여기가 한식을 잘하는데 웬만한 종류는 다 해주고요. 원래 배달을 해주는 집은 아니라서, 따로 전화해야 준비해서 가져다주거든요.”

강유건과 친분이 있는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강유건과 한 번 갔다가 강해건은 음식 맛에 반해서 사장을 설득했고, 배달인력을 강해건 측에서 준비하는 쪽으로 어렵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배달해줄 사람은 강유건이 고용해서 한정식집에 상시 대기시켜주었으니 강해건에게는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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