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Z 직공 공금..
#현대물 #오메가버스 #후회공 #집착공 #연하공 #개아가공 #절륜공 #미인수 #임신수 #외유내강수 #상처수 #능력수 #계약 #오해/착각 #동거/배우자
*공 : 강해건(28) #개아가공 #도망공 #후회공 #절륜공
서정 그룹의 서자. 문란의 아이콘이자 연기파 배우.
스무 살이 되도록 발현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던 중 한서림의 비정상적인 발정 페로몬에 극우성 알파로 발현하게 된다. 이후 부작용으로 비정기적인 페로몬 폭주가 일어나고, 저를 발현시킨 오메가와 각인해야 페로몬이 안정된다는 진단에 8년 전 오메가를 찾아 헤맨다. 아직 그 오메가를 찾지도 못했는데 집안의 압박으로 한서림과 정혼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 : 한서림(32) #미인수 #능력수 #상처수 #임신수
페로몬 향수 열풍을 일으킨 ‘퍼퓸SR’의 대표.
어릴 때부터 부친에게 페로몬 학대를 당한 탓에 부작용으로 생긴 비정상적인 발정기에 괴로워한다. 8년 전, 강해건과의 섹스로 극우성 알파의 페로몬 샤워를 받은 이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구원자인 강해건의 팬을 자처한다. 그러나 정혼 상대가 된 강해건이 그날의 오메가를 찾고 있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후 죄책감에 시달린다.
01.
강해건은 2층 난간에 기대어 무심한 눈으로 연회장처럼 넓은 1층 거실을 훑어보고 있었다. 서정 그룹의 장남 강유건의 스물네 번째 생일 파티는 호화롭고 화려했다. 말이 강유건의 생일 파티이지, 정기적으로 강 회장이 여는 모임의 일환이었다. 거기에 날짜가 맞물려 강유건의 생일 파티를 얹어 강유건의 지인들도 초대를 한 것뿐이다.
“해건아. 여기 있었구나.”
조용히 있고 싶어서 2층으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강 회장의 눈에 띈 것이 못내 짜증이 났지만, 강해건은 부친의 옆에 선 중년의 남자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윤 사장님.”
“서정 그룹의 막내가 언제 이렇게 컸어. 내 자식 중에 오메가만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식 올려주고 싶네. 부럽습니다, 회장님. 희귀하다는 극우성 알파 아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든든하세요.”
형질을 두고 하는 말에 역겨움이 치밀었지만, 강해건은 언제나처럼 표정 관리를 잘 해냈다.
사실 강해건에게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스트레스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미 형질은 극우성 알파 판명이 났고, 누가 봐도 강건한 알파의 기운을 풍기는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도 발현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과 주치의인 정 박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강 회장은 강해건의 초조함과 조바심을 알면서도 공식 석상에서 매번 뻔뻔한 얼굴로 강해건을 이미 진작 발현한 극우성 알파인 것처럼 포장했다. 그럴 때마다 강해건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열여섯 살 전후로 발현한 또래들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학창시절에는 가끔 페로몬으로 서열 다툼을 하는 유치한 일도 있었는데, 발현하지 않은 탓에 페로몬을 감지할 수 없는 강해건은 부러운 속내를 숨기고 무시로 일관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 의원님.”
강 회장에게 붙잡힌 강해건은 1층으로 내려가 강 회장의 곁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일어나서 같은 인사를 해야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강유건인데, 어째서 제가 이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하는지 점점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강해건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형인 강유건이었다. 강유건이 부디 아버지를 위해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탓에, 사람이 많고 번잡한 것을 질색하는 강해건은 어쩔 수 없이 귀찮음을 감수하며 앉아 있었다.
강해건이 자유를 얻은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도 웃는 인형처럼 굴었더니 안면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인데, 극우성 알파라고 떠받드는 소리를 하도 들었더니 귀가 썩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이 다 후련했다.
파티가 시작된 지도 이미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강 회장이 원하는 대로 웃는 인형까지 되어줬으니, 이 정도의 성의를 보였으면 강유건도 만족할 것이다. 벌써 열 시가 넘었으니까 이제 슬슬 자리를 비워도 되겠지 싶었다.
강해건은 답답하게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며 정원으로 나왔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개운해지는 듯했다. 어차피 발현을 안 해서 저 많은 알파, 오메가들의 페로몬 향도 맡지 못하는데 그와 별개로 꽤 답답했던 모양이다.
공공장소에서 페로몬을 푸는 것은 무례한 일이 아니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자신의 페로몬 향을 은은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베타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과할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만, 정신 나간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공공장소에서 과할 정도로 페로몬을 뿜어대는 사람은 없었다.
본채를 중심으로 서편에 강해건과 강유건의 집이 각각 있었고, 동편에 고용인들이 머무는 별채와 수영장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강해건은 서편인 좌측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갑자기 달려들어 부딪힌 웬 미친놈이 과하게 페로몬을 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하아, 도와주……, 내 차……, 주차, 장……, 흣…….”
넘어진 강해건의 몸 위로 엎어져 있는 남자는 땀범벅에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탓에 누구인지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허벅지에 닿은 단단하고도 뚜렷한 윤곽이 남성형 오메가인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고가 마비될 정도로 당황한 강해건은 정체 모를 오메가를 제 몸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난생처음으로 페로몬 향을 선명하게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흐으, 내 차에, 약…….”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은 강해건의 귓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마치 페로몬에 형체가 있는 것처럼 강해건의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노골적으로 살갗을 애무했다. 밀도가 빽빽하게 뭉쳐진 짙은 페로몬은 두통이 올 것처럼 과하게 달콤하고 황홀했다. 누군지 모를 이의 페로몬에 취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강해건의 몸에서 농축되어 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으, 읏……!”
강해건의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열이 오르고 혈관 안의 세포들이 발작하듯이 요동쳤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짜릿함에 손발이 저리고, 발기한 성기는 아플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본능적으로 강해건은 자신이 발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파의 페로몬을 흡수한 오메가가 허겁지겁 입술을 빨며 달려들었다. 적나라하게 얽어오는 혀에 단전에 힘이 들어가며 온몸의 근육이 꽉 조여졌다. 거침없이 비벼대는 하체는 노골적이었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거세게 요동쳤다.
얼떨결에 입술을 내준 강해건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정원에서 일을 치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누군지도 모를 오메가를 어깨에 들춰 메고 다급하게 제집으로 달려갔다. 저택 본채에서 아직 파티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야외라는 것만이 신경 쓰인 탓이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첫 키스를 이름도 모르는 오메가에게 빼앗겼다는 것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집으로 들어와 곧장 침대로 직행했다. 대부분 발현할 때는 발현통을 겪으며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면서 앓는다고 하던데, 그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례였다. 오메가의 발작 같은 페로몬으로 발현하게 된 강해건은, 당장 이 달콤한 향을 지닌 오메가를 취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처럼 온몸이 타올랐다.
얼마나 급했는지 불도 켜지 못한 캄캄한 방 안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에 딱 맞는 슈트를 성급하게 벗어내고 맨살을 겹치기까지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본능에 지배당한 알파와 오메가는 오로지 삽입만이 목적인 것처럼 아무런 전희도 거치지 않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하아, 빨리…….”
“아, 읏……!”
강해건이 타들어가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괴로운 신음을 흘릴 때, 눈이 돌아간 오메가는 강해건의 허리에 올라타 앉으며 바로 삽입을 시도했다. 꼿꼿하게 선 흉흉한 성기에 질척하게 젖은 입구가 닿았다. 이렇게까지 흥건하게 젖어 있는데도 한계까지 발기한 거대한 성기를 한 번에 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험이 있는 것인지 향긋한 페로몬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오메가는 알파의 성기를 삼키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축축하게 꽉 조이는 내부로 기둥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처박히고 있었으나, 강해건은 반도 넣지 못한 상태로 얕은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퍽 쳐올렸다.
“아흑!”
“읏, 하아…….”
뿌리 끝까지 한 번에 처박힌 것과 동시에 알파와 오메가에게서 아찔한 신음이 쏟아져 나왔고 페로몬의 농도가 진해졌다. 수음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과 조임이 강해건을 낭떠러지 끝으로 떠밀기 직전이었다. 잠깐만 집중을 놓쳐도 오메가의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격렬한 느낌이었다. 미세한 세포 하나하나까지 민감하게 날뛰며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오싹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오메가가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미칠 것 같고 돌아버릴 것 같은 아찔한 쾌감이 정신을 집어삼켰다.
“흣, 빠, 빨리…….”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서 스스로 허리를 흔들던 오메가의 몸이 가슴으로 무너져 내렸다. 손끝에 닿는 피부가 지나치게 보드라웠다. 누군지도 모를 오메가의 몸을 끌어안은 강해건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그를 욕심껏 어루만지며 원초적인 본능을 좇아 관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흐, 으응……!”
청각을 어지럽히는 음란한 신음이 그의 페로몬만큼이나 달아서 귀가 녹을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향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으나, 머리 깨지게 달콤한 향이었다. 장담하건대, 강해건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단 향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 페로몬으로 애무받는 피부가 녹아서 흐물흐물하게 흘러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었다. 저를 발현시켜준 것만으로도 이 오메가에게는 분에 넘치는 보상을 해주어도 아깝지 않은데, 이토록 자극적인 섹스라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의 황홀함과 지독한 쾌락 속에서 강해건은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몇 번이나 체위가 바뀌었고, 뿌리 끝까지 집어넣은 성기를 더 깊이 넣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 오메가에게 잡아먹히는 한이 있어도 빨려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성은 부재하고 본능만 존재하는 짐승 같은 섹스였다.
강해건은 이미 녹초가 되어 늘어진 오메가의 입술에 진득하게 입을 맞추며 혀를 빨아준 후, 그의 몸을 뒤집었다. 밤이 깊고, 새벽을 지나, 여명이 밝아오며 침실 안에도 어렴풋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메가의 아랫배에 팔을 넣어 허리를 들게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도 버티려고 하는 몸짓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성기를 욱여넣으려는데 어스름한 빛에 시야를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하……. 뭐 이런 곳에.”
짓씹는 중얼거림이 거칠었다. 강해건은 벌름거리는 입구에 선단을 대고 비비다가,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있는 작은 점을 뭉근하게 눌렀다. 혹시 저에게 변태 성향이 있었던가. 별거 아닌 이 점이 왜 이렇게 야하고 흥분을 고양시키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성기가 엉뚱한 곳을 누르고 비비자 오메가가 허리를 흔들며 손을 뒤로 뻗었다. 거침없는 손길이 기둥을 잡고 구멍으로 이끌었다.
“읏, 씹…….”
이 오메가는 사람 돌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반복적이면서도 은밀하고 원초적인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의 침실은 정제되지 않은 알파와 오메가의 적나라한 페로몬이 뒤엉켜 습한 공기로 가득 채워졌다. 쾌락에 찬 신음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강해건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몇 번의 사정을 했는지도 모른 채, 어느 순간 기절하듯이 정신을 잃었다.
강해건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이틀이 지난 후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메가로 인해 꿈이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틀 내내 의식 없이 고열에 시달리며 발현통을 앓은 강해건은 완벽한 극우성 알파로 발현했다.
“축하해, 해건아.”
강유건의 축하 인사를 들었을 때야 비로소 현실임이 자각되었다. 발정기를 맞은 오메가의 페로몬으로 인해 발현하게 된 것이다. 그 어떤 오메가에게도 반응이 없었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강해건이 자신을 발현시킨 오메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함께였을 때 위태로웠으나, 함께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뒤늦게 깨달은 탓이었다.
02.
* * *
“이미 대표님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이건 론칭 매장에 대해 정리한 파일이고, 이건 마케팅 전략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한서림이 의자에 앉자마자 김 팀장이 클리어 파일에 잘 정리된 보고서 두 부를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아직 정식 출근까지는 며칠 남아 있었으나, 한서림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사무실로 왔다.
한서림이 귀국한 이유는 페로몬 향수를 한국에서도 론칭하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이미 세팅되어 있었고, 론칭 시기도 대략적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대표의 출현에 ‘퍼퓸SR’의 직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도 한서림은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 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직원들은 첫 회의여서인지 긴장한 채로 집중했다.
“광고 회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섭외해뒀습니다.”
사실 미국에서야 정말 운 좋게도 별다른 광고 없이 한서림 본인이 놀랄 정도로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서림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아직도 왜 갑자기 페로몬 향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으나, 그냥 제 예상대로 베타들이 페로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페로몬 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알파나 오메가가 많은가 보다 할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보다 보수적인 한국에서의 반응은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 돈을 들여서라도 광고를 찍는 편이 나을 테다.
“혹시 대표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광고 모델이 있으실까요?”
“강해건 씨가 괜찮을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 팀장의 질문에 한서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직원 중 하나가 먼저 조심스럽게 소신 있는 의견을 어필했다.
“어……, 강해건은 이미지가 좀 그렇지 않나요?”
“이미지가 왜요?”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도 기사 또 떴던데요. 이번엔 스타 셰프라던데…….”
“헤드라인조차 식상해요. ‘배우 강해건. 오늘은 셰프 지민호와 호텔행. 이번에도 하룻밤 인연인가.’ 매번 상대 이름만 바뀌어서 같은 기사 나잖아요.”
“그 정도면 남성형 오메가 킬러예요. 괜히 문란의 아이콘이 아니라니까.”
“솔직히 저도 강해건 팬이긴 하지만, 염문설 좀 그만 뿌렸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그렇게 남자 오메가로만 골라서 매일매일 갈아치우는지 능력도 좋다니까요.”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지, 사생활이 무슨 상관입니까.”
회의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찰나, 한서림의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한서림은 아직도 뇌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렬했던 강해건의 페로몬 향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강해건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한서림에게는 은인 같은 존재이기에 강해건이 배우 활동을 유지하는 동안은 지금까지처럼 그를 두둔하며 팬을 자처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이는 건데, 광고는 좀 사생활 깨끗한 배우가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김 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한서림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내 생각에는 페로몬 향수에 강해건 씨의 이미지가 딱입니다. 보편적으로 페로몬 향수가 가지는 느낌이 있잖아요. 페로몬이 아무리 알파 오메가가 가진 고유의 전유물처럼 여겨져도 결국 성적인 의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강해건 씨의 오메가 편력 정도면 완벽하죠.”
확신을 가지고 하는 한서림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대표의 권한 때문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문란의 아이콘인 강해건의 이미지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광고에서 강해건 만큼이나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후보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강해건 씨는 광고 찍는 것마다 전부 완판이라던데, 강해건 씨만큼 저력 가진 배우가 또 있습니까? 있다면 후보 리스트업 하세요. 그러면 재고해 보겠습니다.”
한서림이 기회를 줬으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깨달은 직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제는 강해건이 이 광고를 수락하느냐에 대한 것만 남아 있었다.
* * *
아직 시차 적응을 못 한 탓에 한서림은 오후 네 시가 거의 다 돼서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게 차단하는 암막 커튼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푹 잤다.
귀국 당일,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본가에는 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귀국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긴 해서 부친에게 전화를 했다가 얼굴도 안 비친다고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라는 말만 들었다.
어쨌든 가장 친한 친구인 모주원에게 부탁해서 미리 구해놨던 아파트로 들어온 덕분에 마음이 편했다. 집을 구할 당시, 모주원은 전세와 매매 가격이 크게 차이나지 않으니 아예 사라고 하면서 한국에 정착하기를 은근히 종용했지만, 한서림은 전세를 고집했다. 한국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제 명의의 집은 필요하지 않았다.
기지개를 켠 후 리모컨을 조작해 암막 커튼을 걷어내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살짝 눈이 부셨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포근한 이불의 느낌이 좋아서 더 파고들며 여유로움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인에 ‘아버지’라고 뜨는 이름을 보자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으로 내리쳐졌다. 받지 말고 자고 있어서 몰랐다고 나중에 변명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고개를 내저었다. 얄팍한 핑계를 대면 지금 이 순간은 피할 수 있지만, 용건이 있어서 전화한 걸 테니 어차피 결국에는 통화를 해야 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나을 듯했다. 통화 버튼을 터치하는 손길이 사뭇 더디게 움직였다.
“네, 접니다.”
-임 실장한테 듣자 하니, 한국 론칭하면서 광고를 찍는다고?
임건우 실장은 한 회장의 끄나풀이라고 했던 모주원의 정보가 정확했다. 모주원의 조부까지는 조폭 집안이었다. 세상이 변해가면서 조폭이었던 무리에서 쓸만한 놈들만 골라내 사설 경호업체로 회사를 키운 것이 모주원의 부친이었다. 경호업체 ‘동행’은 정·재계 인사들의 의전과 연예인 경호를 주로 담당하며 꽤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정보 브로커로도 활동하는 모주원의 정보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혹시 몰라서 확인하기 위해 광고 건을 직접 처리한 터라, 임 실장에게는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공유하지 않았다. 한서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미 광고 회사에 넘겼습니다.”
-강해건이 데리고 찍어라.
이게 한휘 건설의 아파트 광고도 아니고, 한 회장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 사업인데 왜 간섭하는 것인지. 한서림은 순간적으로 욱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뉴욕에서 페로몬 향수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한 회장은 오메가 따위가 뭘 하겠느냐고 무시하며 십 원 한 푼 투자해주지 않았다. 한 회장의 페로몬 학대와 폭력은 한서림이 알파가 아닌 오메가라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당시에 한서림은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고생도 많이 하고, 모친에게 상속받은 얼마 안 되는 개인 재산까지 털었으며, 지금은 다 갚았으나 모주원에게도 돈을 빌렸었다. 그렇게 무시하고 괄시했던 사람이, 청춘을 바쳐 성공시킨 제 사업을 이제 와서 간섭하려는 행태가 꼴사납게 느껴졌다. 어차피 강해건 말고는 다른 모델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도 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 까불지 말고 애비 말 듣거라. 이번에 강해건이랑 관계 돈독히 만들어 둬야 나중에 너도 편할 테니.
“…….”
-강해건이 앞에서 경박한 행동으로 밉보이지 말고 처신 똑바로 해.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기분이 몹시 더러워졌다. 부친의 이런 행태를 한두 해 겪은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독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 회장이 한 번도 제 사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기에 갑작스러운 간섭이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한서림이 한 회장의 발언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릴 때야 페로몬으로 압박을 당하며 피부가 타들어가며 찢기는 고통과 숨쉬기도 힘든 끔찍한 괴로움을 느끼는 탓에 반감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두려움에 떨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한 회장은 모르고 있겠지만, 베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호르몬의 변화를 겪은 한서림은 더 이상 부친이 페로몬으로 학대하더라도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게 다 강해건 덕분이었다. 그는 한서림에게 새 인생을 선물해주었다.
* * *
강해건과의 미팅은 예상보다 빠르게 잡혔다. 한껏 멋을 부리고 한국 론칭에서 메인으로 내세울 향수를 뿌렸다. 한서림이 귀국 전, 직원들이 먼저 시행했던 리서치용 시향 행사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향수였다.
한서림은 변호사와 임건우 비서실장, 그리고 담당 직원인 김 팀장을 제 사무실에서 미리 만나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전화를 받은 김 팀장이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통화내용을 전달했다.
“대표님, 그, 강해건 씨 매니저한테서 온 전화인데요. 강해건 씨가 계약 전에 대표님하고 둘이서 잠깐 얘기 좀 하고 싶다고 룸에는 혼자 들어오시라는데요.”
문득 회의실에서 강해건이 남성형 오메가 킬러라고 했던 직원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굳이 회의실에서 듣지 않았더라도 미국에 있을 때부터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강해건의 기사를 찾아보는 것이었기에 강해건의 오메가 편력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김 팀장은 말을 아꼈으나 표정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오늘 밤에는 강해건 스캔들에 우리 대표님 이름이 올라가겠구나.’
듣지 않았는데도 속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임 실장과 변호사의 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서림은 강해건이 설마 저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기대감으로 설레기까지 했다.
03.
강해건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정 그룹 계열사 카페였다. 김 팀장이 말하기를, 서정 엔터테인먼트의 강유건 대표가 소속 연예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카페인데, 여러 개의 룸이 마련되어 있어서 연예인 인터뷰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귀국했는데 강유건에게 연락도 못 했다. 엄청 막역한 사이는 아닐지라도 나름 대학 동기라고 강유건은 뉴욕에 올 때마다 연락을 주어서 매번 얼굴을 봤었는데 말이다. 오늘 그의 동생인 강해건과 미팅을 하니, 끝난 후에 겸사겸사 연락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카페로 들어가자, 창가 테이블에서 다가온 한 남자와 김 팀장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을 강해건의 매니저인 이중호 실장이라고 소개했다.
“해건이가 원래 경우 없고 그런 애가 아닌데, 갑자기 대표님하고만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