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00화 (완)
사생활 존중을 중요시하는 내가 왜 갑자기 누나의 비밀 다이어리를 홀린 듯이 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걸 꼭 열어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첫 장은 별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몇 장 넘기고 나서 충격적인 글을 보게 되었다.
[삶이 반복될수록 기억을 잃어버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뜨문뜨문 기억을 떠올리다 17살이 되고 나서야 모든 걸 기억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건, 내가 몇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삶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살리에르의 일기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문장.
누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시간을 돌리는 회귀자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처음으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것도 내 친동생에 대한 열등감.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 결국 난 비루했던 인생을 스스로 끊어 버렸다.]
일기장을 넘기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난 죽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되돌려져 있었다. 신기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동생은 날 말하는 건가?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나는 남에게 열등감을 느낄 사람이 아니다.
더더욱 나에게는.
그러나 일기장은 전혀 다른 걸 말하고 있었다.
[동생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재능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또 포기했다. 전생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또 다시 난 죽음 속에 몸을 던졌다.]
일기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누나는 또 한번 좌절을 겪고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여전히 내 몸은 멀쩡했다. 또한 시간도 되돌려졌다. 거기서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이 삶이 반복된다는 것을. 그때부터 난 죽음에 중독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생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생의 재능을 뛰어넘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은 더 높이 날아가 버렸다. 내 삶이 반복되면서 동생의 재능도 점점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한번은 동생이 너무나도 미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너 때문에 내가 이 짓거리까지 해야 하냐면서. 그때 날 바라보던 동생의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다음 날 동생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흠칫 거리며 나는 밑의 글을 내려다 보았다.
눈물을 흘린 것일까.
잉크가 번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내 인생에서 없어졌으면 했던 동생이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다시 동생을 되찾기 위해 몸을 던졌으나, 그 다음 생부터는 동생을 만날 수 없었다. 동생의 흔적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땐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동생을 되찾고자 몇 번이고 죽음을 감수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을 반복해도 동생이 나타나질 않았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전생에 대한 내 기억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마지막 죽음도 그랬다. 걸그룹에 데뷔하고 엉터리 같은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내게 동생이 있다는 것과 내 삶이 반복된다는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가 말하는 마지막 죽음.
그건 전생에서의 삶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동생을 팬미팅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였다. 비록 생김새와 목소리는 달랐지만,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가 아는 동생이 저 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동생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보았다. 만약 동생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난 더 이상 삶을 반복하려 하지 않았다.]
누나와의 팬미팅.
나도 기억한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팬미팅이었다.
인기가 없는 그룹에게는 팬미팅조차 쉬이 열수 없었으니 말이다.
근데 누나가 지금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몸일 때 알아봤다는 건가?
거기다 내 뒷조사까지?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동생은 고아로 살고 있었고, 혼자 모든 걸 해야만 했다.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꼭 동생을 되찾자고, 더는 내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동생을 위해 살아 보자고 말이다. 그 아이가 행복을 되찾을 때까지.]
[그러나 삶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기억 상실뿐만이 아니었다. 내 수명도 조금씩 갉아먹히는 게 느껴졌고, 내가 미래를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그 부작용이 심해진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동생을 되찾는 것이 중요했기에, 난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 결심을 한 이후, 난 동생을 되찾았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시간이 생각보다 늦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난 더 이상 동생에게 열등감 같은 걸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동생과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아는 내용들이었다.
JJ가 그룹으로써 성공하고 내가 어떻게 날아오르는지 등등.
누나는 참 자세하게도 그날의 일을 써놓았다.
[오늘은 동생이 콩쿠르 예선을 보는 날이다. 괜히 내가 다 긴장이 돼서 예선장까지 몰래 따라갔다. 기가 막히게도 동생은 내가 뒤따라온 걸 눈치챘다.]
[오늘은 동생의 영화 OST가 나오는 날이다. 제발 세상 사람들 모두가 OST를 들어줬으면.]
[동생이 새로운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몸 상하지 않게 영양제를 미리 사놔야겠다.]
정말이지 자잘한 내용들이었으나, 본인에 대한 글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나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왠지 웃음도 나오고 눈물도 함께 나오는 추억어린 글들이었다.
그런데 말미에 이르러서 내용이 바뀌었다.
[많은 미래가 바뀌었다. 동생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었고, 그 덕분에 나도 유명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았다. 점점 몸에 힘이 없어지고 내 몸의 형체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난 사라지게 되는 걸까?]
[여기서 내가 목숨을 끊는다면 난 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동생은? 난 연욱이가 또 다시 내 곁에서 사라지는 걸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 차라리 내가 사라지는 거라면…….]
거기서 난 일기장을 덮고 다시 병원으로 뛰어갔다.
"여, 연욱아!"
멀리서 나를 발견한 매니저 형이 헐레벌떡 뒤따라오지 않았다면 이대로 뛰어갔을지도 모른다.
"형. 병원으로…… 병원으로 가줘요."
"아니. 너 분명 대표님이 쉬게 하라고 했는데……."
"얼른요!"
매니저 형은 하는 수 없이 날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과 대표님이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아버지. 왜 그러고 계세요?"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연아……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니? 으흐흑."
"우리 혜나가…… 우리 예쁜 혜나가……."
눈앞의 시야가 어두워지고 굉음을 내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흔들리는 두 다리가 곧 풀려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그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삐- 소리를 내는 기계와 그 옆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누나.
의사와 간호사는 묵념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혜나 씨는……."
"선생님. 우리 누나 아직 안 죽었어요."
난 누나에게 붙어 있는 줄을 다 떼어 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들어 올려 내 품에 안은 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전부 달려들었다.
"보,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는 억지로 그들을 떨쳐냈다.
"연욱아!"
"연욱아. 뭐하는 짓이야!"
부모님도 날 말렸지만, 난 냅다 옥상으로 뛰었다.
사람들 전부 내 뒤를 쫓아왔다.
"연욱아! 대체 왜 그래!"
"보호자분!! 어차피 옥상은 잠겨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열려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응?"
"뭐, 뭐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의사 두 명이 나와 품에 안겨 있는 혜나 누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뒤에는 부모님과 간호사들이 열심히 쫓아 올라오고 있었다.
상황을 눈치챈 의사들이 날 막아보고자 바리 케이드를 치듯 양팔을 벌렸다.
"저기 장연욱 씨 맞죠? TV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어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번 확신을 갖고 뛰기 시작한 몸을 막기에는.
아니. 사실 확신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그것도 감정에 휩쓸린 추측일 뿐이었다.
만약 나도 누나처럼 스스로 몸을 던진다면 생이 반복되지 않을까?
그 증거로 난 전생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 막연하고 감정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누나가 이렇게 떠나 버리면 어차피 살아도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가 살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 안 돼!"
"얼른 붙잡아!"
내가 옥상 펜스 바깥으로 뛰어 내리려 하자 의사들이 나를 붙잡았다.
"미안합니다."
난 그들을 발로 차서 밀쳐낸 뒤 옥상 밖으로 몸을 날렸다.
품에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누나를 안은 채.
"연욱아!!"
콰직-!
***
살리에르는 참 묘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흥미가 생겼다.
거기다 크로노스 재단을 만들고 그곳 대표 자리를 내게 넘겨 준 레비 회장.
그는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 유언을 내게 남겼다.
부디 살리에르의 비밀을 풀어 주기를 말이다.
"아무리 봐도 낚인 거 같은데."
의미를 알 수 없는 일기장의 글과 악보.
나는 펜으로 상을 톡톡 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지라 슬슬 질려갔다.
그냥 나랑 레비 회장이 살리에르에게 속은 건 아닐까?
"잠깐. 근데 나 왜 이걸 해봤던 거 같지?"
데자뷰인가?
이런 데자뷰는 처음이었다.
뭔가 번뜩이듯이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악보와 일기를 조합한다면……?"
데자뷰의 한 장면이 바로 악보와 일기를 조합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는셈 치고 한번 해보았다. 그리고 소름돋게도 이게 정답이었다.
"말도 안 돼."
악보와 일기를 조합해야 나오는 문장이라니.
[이것은 나의 어리석었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살리에르의 어리석었던 삶이라.
흥분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그렇게 다음 장으로 넘기려는 순간.
"어?"
물 한 방울이 악보 위로 떨어졌다.
알고 보니 내 눈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눈물이……."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절대 잊어서는 안됐을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전기 충격을 받은 듯, 한번에 많은 기억이 쏟아져 들어와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
그제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
나는 악보를 던져 버리고 방을 뛰쳐 나갔다.
드넓은 거실과 복도를 지나 마침내 누나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까, 깜짝이야. 야! 노크 좀 하고 들어와"
게임을 하고 있던 누나는 신경질을 냈다.
무사한 누나의 모습을 보자 난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뭐, 뭐야? 너 왜 울어?"
나는 바보 같이 웃으며 달려가 누나를 껴안았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오글거리게. 혹시 악몽 꿨니?"
누나는 과연 기억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어떤 삶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는지.
아니. 이번만큼은 누나가 영원히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마치 모든 게 없었던 일인 것처럼.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