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9화
"너무 빨라."
그토록 바라던 동생의 성공이 이루어져서일까.
아니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동생의 위상이 높아져서일까.
어떤 것이 되었든,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대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죽는 것인지.
"뭐든 이제 상관없나."
원하는 건 모두 이루었다.
여러 삶 중,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동생이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되는 건 이제 시간 문제다.
그 현실이 바뀌는 걸 원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외국에 나가 있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동생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
"그래. 이거였어."
살리에르의 스타일이라고는 보기 힘든 악보들.
그리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잔뜩 쓰여 있는 일기장.
그 비밀이 드디어 풀렸다.
"레비 회장은 사실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악보와 일기가 하나라는 힌트를 준 건 바로 레비 회장이었다.
그 힌트 덕분에 몇 개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살리에르의 속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어와 음표로 글을 만들다니."
힌트의 비밀은 바로 코드였다.
화성학의 천재였던 살리에르는 일기장에 쓰인 글과 음표를 화성학으로 풀이하여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규칙만 알아내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놀라운건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느냐다.
거기다 뭘 숨기려고 이런 걸 만든 것일까?
"레비 회장도 살리에르의 행적이 굉장히 묘하다고 했었지."
왕이 여러 번 바뀔 정도로 그 당시 궁정 안이 개판이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에르는 티끌 하나 다치지 않고 장수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 사람이 만든 암호문이다.
원래 천재들은 암호문 만드는 걸 좋아하나?
다빈치도 자기만 알아볼 수 있게 비밀 암호를 여럿 만들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살리에르도 딱 그 부류라고 볼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음표와 글을 조합해 새로운 글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단번에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영어면 금방 하겠는데, 하필이면 라틴어였다.
고전 클래식에 합창이 들어가면 대다수 라틴어로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클래식 공부를 하면 자연스레 라틴어도 공부하게 된다.
나도 공부를 좀 하긴 했지만, 열심히 한 게 아니라서 인터넷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간신히 해석해나갔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밤.]
첫 문장부터가 자극적이었다.
"아니. 그건 그냥 소설 아니었어?"
[독에 취해 고통스러운 몸부림으로 죽어 가는 모차르트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찢어질 듯한 아픔이 나를 괴롭혔다. 그날 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를 내 손으로 죽이고, 그와 함께 죽는 영광을 택했다.]
"잠깐. 내가 해석을 잘못한 건가?"
모차르트를 죽인 다음에 목숨을 끊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 일기장은 어떻게 쓴 걸까?
혹시 죽으려다 무서워서 포기했나?
[모차르트가 마신 독을 똑같이 마셔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평온하지 않은 최후의 밤을 보낸 뒤, 난 다시 눈을 떴다. 놀랍게도 내 목숨은 지옥이나 천국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얼른 다음 문장을 해독해 보았다.
[이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분명 독을 마셨는데, 목숨은 그대로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갔다. 15년 전의 살리에르로 말이다. 때론 신은 이렇게 기적을 보이는 것일까?]
충격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손발이 떨릴 정도로, 나는 들고 있던 일기장을 떨어뜨렸다.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서 다행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혹시 누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정도로 고급스럽게 장난을 치는 사람이라면 인정해 줄만 하다.
거기다 이건 남 일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나도 살리에르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온 사람이니까.
물론, 내 원래 몸이 아닌 장연욱이라는 새로운 몸으로 눈을 뜬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다. 무엇을? 모차르트에 대한 내 열등감을? 천만에! 난 그를 뛰어넘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또 그를 죽이는 일이 없을 테니. 하지만 15년이란 세월을 되돌려도 결국 난 그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를 또 독살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가 죽이지 않아도 모차르트는 알아서 요절을 해버렸다. 나보다 더 악독한 그의 부인이 모차르트를 서서히 말려 죽인 것이었다.]
뒤에 살리에리가 흐리게 문장을 덧붙였다.
[그가 처음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고 나니, 나 역시 공허함에 삶을 이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신이 주신 비루한 목숨을 다시 끊었다.]
다음 장에서 난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시간이 또 1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알게 됐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시간이 돌아간다는 것을.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모차르트와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인생이 불쌍하게 느껴질 뿐. 그래서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그 어떤 도움을 줘도 모차르트의 이른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를 도우면 도울수록 나 역시 그 수렁에 빠져든다는 걸 알아챘다.]
[운명의 흐름은 내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도와 그가 요절하지 않고 대성하는 음악가로 만들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모차르트의 운명을 그가 바꿀 수 없었다. 억지로 그걸 해내려고 했다가는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는 모차르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쪽에 눈을 돌렸다. 신께서 이 운명을 허락하신 건 분명 목적이 있을 테니까. 그래. 내가 잘하는 건 남을 가르치는 일이니, 그거에 내 모든 걸 쏟아부으리라 결심했다.]
그제서야 나는 살리에르가 왜 죽는 날까지도 제자 양성에 힘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이 음악을 발전시키는 거라 믿었던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은 수백 번째의 삶에서 내 제자였던 베토벤이 일기장을 몰래 보게 됐다. 말해도 믿어 주지 않을 일을 해명하는 게 귀찮아 다음부터는 나만의 암호를 만들어 썼다.]
악보와 일기장이 왜 암호로 되어 있는지 밝혀지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살리에르가 어떻게 위기를 벗어나고 재능 있는 제자를 찾아 양성을 했는지 전부 다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이것이 과연 내 마지막 장이 될 것인가. 그동안은 계속해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이제 나도 쉬고 싶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영겁의 삶도 끝이 나게 되는 것일까?]
그의 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결국 그가 원하는 영겁 속에서의 해방을 얻은 것이었다.
나는 일기와 악보들을 내려 놓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꼭 판타지 소설 하나를 읽다가 밤을 샌 기분이 랄까.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잠깐. 그럼 나도 설마 살리에르랑 똑같은 건가?"
나도 목숨을 끊으면 시간을 반복시키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난 목숨을 끊지 않았다.
그냥 자고 일어나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그렇다고 시범 삼아 목을 매달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드르르르!
그때 이 늦은 밤에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레비 회장의 부고 소식인가?
그렇지 않아도 레비 회장이 위독하다는 얘기를 어제 들었다. 그래서 언제라도 뛰쳐 나갈 수 있게 상시 대기 중이었는데, 번호를 보니 톰의 전화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네~ 엄마."
-여, 연욱아!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돌아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혜, 혜나가, 혜나가 쓰러졌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달려갔다.
***
"죄송합니다. 저희도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누나가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니요!"
"저희도 몇 번이나 검사를 해봤지만, 대체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벌써 병원을 3곳이나 옮겼다.
그런데도 누나가 왜 갑자기 힘을 잃고 쓰러져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안 되겠어요. 당장 미국에 있는 병원이라도 가야 할 거 같아요."
"환자의 상태를 보건데, 미국으로 가는 건 힘이 들어 보입니다. 차라리 미국에 있는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앓는 소리를 내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
"누나………. 괜찮아. 조금만 참아."
누나는 사경을 헤매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다문 채로 간신히 비명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환자의 통증이 너무 심하니, 억지로라도마취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추가 검사를 해보겠습니다."
의료진이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누나를 잠재운 뒤 검사실로 데려갔다.
나는 망연자실하며 저 멀리 사라지는 누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욱아. 너도 집에 잠깐이라도 다녀와."
"그래. 여긴 엄마랑 아빠가 지키고 있을게. 옷이라도 갈아입고 와. 공항에서 바로 온 거잖아.
대표님이 좀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부모님 못지않게 아까부터 눈물 콧물 다 빼고 있던 강 대표가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인마. 혜나 괜찮아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자. 너까지 쓰러지면 난리 난다."
"……."
강 대표는 퉁퉁 부은 얼굴로 날 차에 태운 뒤 집까지 운전해 주었다.
"같이 들어가 줄까?"
"……아뇨. 병원에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그래. 매니저한테 너희 집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올 일 있으면 매니저 차 타고 와. 일단 가서 좀 씻고 쉬고 있어. 혜나는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병원에 있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강 대표가 억지로 날 집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다.
일단 씻는 게 우선이었으나, 그럴 힘이 없었다.
외국에서부터 잠 한숨 못 자고 달려와서 그런지 더더욱 그랬다.
"아……."
나는 거실을 지나다 누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지금이라도 문을 열면 누나가 게임을 하다 멈추고 해맑게 나를 맞아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저 어두컴컴한 빈방이었다.
난 누나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여기서 쓰러졌던 건지, 주변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잠그고 다니는 서랍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열쇠가 반만 돌아간 것을 보아하니, 잠그다가 통증이 몰려와 쓰러진 듯했다.
나는 서랍을 천천히 꺼내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다이어리가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