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96화 (19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6화

크로노스 재단을 넘겨주겠다는 레비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나와 만남을 끝낸 뒤 곧바로 재단 변호사들을 내 호텔로 보냈다.

톰과 동행한 그들은 정숙한 자세로 앉아 서류 몇 개를 보여 주었다.

"현재 재단이 운용하는 자금은 1조 2천억입니다. 매년 세계 곳곳에 있는 후원자들에게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가입 되어 있는 회원들의 숫자는 500명입니다. 여기 절반 이상은 레비 회장님의 개인 자금이 들어가 있습니다."

회원 숫자에 비해 운용되는 자금이 많았다.

그 이유는 레비 회장이 본인의 많은 재산을 이곳에 넣었기 때문이다.

난 크로노스 재단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의 명단을 살펴보았다.

대다수가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레비 회장님께서는 2년 안에 미스터 장에게 재단을 넘겨 주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동안 세금 문제를 해결하고 인수인계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 보네요."

"금액이 큰 재단이니까요. 하루 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부의 감사도 진행해야 하는 일이라 여러모로 시간이 걸립니다. 거기다 미스터 장께서는 아직 한국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으셨으니까요."

성인이 되는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대학 문제도 사실상 해결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 게, 쇼팽 콩쿠르 우승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버클리 음대도 지원서 하나만 넣으면 곧바로 입학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후원금은 대체적으로 어떤 곳에 쓰이는 건가요? 혹시……."

내 얼굴에서 우려가 드러났는지 변호사들이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혹시 이 재단이 레비 회장님의 비자금 창구가 아닌지 걱정하시는 거겠죠?"

"보통 재단이라고 하면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나요?"

"그런 것도 벌써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이 재단은 정말 순수하게 음악 문화 발전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후원금이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감독을 받게 하고 있고요."

재단의 대표가 된다고 해서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돈을 어디다 쓰는지 감독을 하는 이사회가 존재하고, 만약 이상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는 게 포착되면 이사회를 통해 대표 자리에서 해임될 수 있다.

"이사회 분들이 제가 대표로 선출된다고 하면 반발을 하지 않을까요?"

"이사회는 레비 회장님에 대한 지지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거기다 재단 절반 이상의 운용 자금이 레비 회장님에게 나오는 터라 사실상 그분결정을 함부로 뒤엎긴 힘들겠죠. 하지만…… 불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군요."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재단이다.

그런데 거기 대표 자리를 왠 꼬맹이가 앉겠다고 하니, 이사회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번 레비 회장과의 만남에서 나는 이미 재단을 맡겠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감정적인 것도 있었다.

재단을 맡는 건 이제 죽음을 앞둔 레비 회장의 마지막 부탁과도 같았으니까.

이사회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내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재단이 비자금 창구로 쓰이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제 이 많은 돈이 다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싶네요."

"같이 나가실까요?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톰과 변호인단을 따라 호텔을 나섰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크로노스 본사 옆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다.

레스토랑이 있을 법한 건물이었으나, 그 안은 사무실로 되어 있었다.

1층은 커피나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진가는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었다.

"꼭 전시관 같네요."

영화나 게임에서 보던 지하에 숨은 전시관.

값비싼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보관하는 마피아 보스의 비밀 창고를 보는 듯했다.

"크로노스 재단은 그동안 음악적 가치가 높고 손실 우려가 높은 유물들을 찾아 이렇게 따로 보관 중입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드뷔시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음악가들의 편지와 악보, 개인적인 물품들까지. 발견된 것들은 전부 사들여 보관 중입니다."

톰은 나를 인도하며 진열되어 있는 물품들을 하나씩 소개시켜 주었다.

"이건 베토벤이 썼다는 지휘봉입니다. 그리고 이건 베토벤이 취미삼아 연주했다던 바이올린이며, 그리고 이건 그가 생전 발표하지 않았던 미공개 악보들입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베토벤의 미공개 악보들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워낙 악필로 유명한 음악가인지라 해석에는 애를 먹고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 복원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학계에서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몇 가지는 알고 있으나, 대부분은 재단에서 관리하고 연구 중입니다."

그 말은 외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톰의 뒤를 따라 여러 가지 유물들을 확인하던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살리에르의 일기장과 악보들입니다."

살리에르.

세간에는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태어나 영원히 2인자 콤플렉스를 겪다 죽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모차르트에게 큰 열등감을 느껴 나중에 이르러서는 그를 독살하기까지 했다고 음모론이 퍼졌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그가 모차르트에 밀렸다는 건 부정 못할 사실이긴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서 살리에르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높다.

모차르트는 제자 양성이 최악이라고 불릴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러나 음악 문화의 발전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도 봉사한 살리에르는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마이어 베어 등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스승이었다. 거기다 온화한 성품으로 왕이 여러 번 바뀌어도 궁정 악사 자리를 죽기 전까지 이어갔다.

"살리에르가 그동안 작곡한 음악들입니다. 아쉽게도 음악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키워낸 음악 문화가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에 레비 회장님께서 별도로 보관을 하고 계셨습니다."

살리에르가 남긴 악보들이라.

비록 그가 대단한 제자들을 배출해냈다고는 하나, 음악적 재능에 있어서는 확실히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살리에르가 발표한 곡들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학계에 발표가 안 된 곡들이죠?"

"예. 그나마 발표된 것도 관심이 없어서 거의버려진 수준입니다. 그것이 안타까워 레비 회장님께서 특별히 수집을 하신 것도 있고요."

레비 회장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말 음악 문화를 지키고자 위함인 것인지 모르겠다.

"악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니지. 원본을 가져가서 보는 건 안 되니, 가능하면 사본을 챙겨가고 싶은데."

"외부에 유출을 하지 않으시겠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일기장도 같이 가능할까요?"

"예. 따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상하게 호기심이 동했다.

살리에르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는데, 막상 악보를 보고 있자니 한번 그 속을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가 대표가 되면 여길 쭉 관리해야겠네요."

"예. 음악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곳에 돈을 쓰고, 보관이 필요한 유물은 이곳에 보관을 하면 됩니다.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또한 정기적으로 유물 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쓰고 있어 소실이 되진 않을 겁니다."

재단 대표의 할 일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음악 발전에 돈을 쓰고 오랜 유물을 찾아 보관을 하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유물이라고 할지언정 음악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었다.

"몇 개월 안에 대표 선출 가닥이 잡히게 될 겁니다. 그럼 재단 이사회와도 만남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이사회에서 미스터 장을 마냥 좋게만 보지 않을 겁니다."

그 돈 많은 양반들의 견제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봐도 레비 회장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경험이 충분하지도 않은 애송이를 대표 자리에 앉히다니.

"전 레비 회장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이제껏 사람을 보는 눈 하나만큼은 틀린 적이 없으시니까요."

그렇지만 톰은 레비 회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부디 그분의 유지에 따라 재단 대표직을 잘 수행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성심성의껏 제가 옆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치 베트맨처럼 나이 많은 수행 비서를 옆에 두게 될 것 같았다.

***

"어땠어? 우리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 하셨어?"

나는 나와 혜나 누나의 목소리로 레퀴엠을 녹음했다.

다른 것도 아닌, 레퀴엠을 녹음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들어 했던 누나는 막상 노래가다 녹음되고 나서부터는 꽤 마음에 들어했다.

그리고 내가 이 곡을 재벌 회장에게 가져간다.

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이 과연 이 노래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쭉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난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혜나 누나에게 전부 말해 주었다.

"뭐, 뭐라고? 재단 대표?!"

"응."

"그걸 하겠다고 한 거야?"

"응. 안 될 거 있나?"

"아니. 운용 자금만 1조 2천억이라면서. 왜 그렇게 덤덤해?"

지금이야 덤덤한 거다.

미국에서는 하루종일 심란했었다.

"아무튼,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야. 인수인계 받으려면 시간이 꽤 걸려."

빠르면 몇 개월

늦으면 2년.

대표 자리를 당장 받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부터 조금씩 일을 수행해 나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나 오늘부터 볼 게 많아. 거기서 넘겨 준 자료가 산더미거든."

"그 말은 얼른 꺼지라는 거지?"

"같이 보고 싶으면 같이 봐."

"좋아. 그게 뭐가 어렵다고."

라고 말을 한지 30분.

누나는 어느새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톰이 넘겨 준 자료들을 조심스레 살펴봤다.

그러다 그가 마지막에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요청하신 살리에르 자료입니다.]

살리에르가 남긴 악보와 일기.

사본이기는 하나, 원본과 내용은 똑같았다.

[외부로 유출을 주의해 주시길 바라며…….]

톰은 걱정이 많았다.

난 일기부터 눌러 확인해 봤다.

[모든 걸 바로 잡을 시간. 그리고 시간은 충분하다.]

이탈리아 사람이라 당연히 그가 쓴 글을 내가 이해할 순 없다. 다행히 톰은 번역본을 따로 내게 보내주었다.

그런데 예술가라서 그런가, 아니면 번역이 이상한 건가 일기에는 종종 알아듣기 힘든 말로 가득했다.

"번역이 잘못된 걸수도 있고 내가 감성을 못따라가는 걸 수도 있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악보를 확인해 보았다.

"……?"

그런데 악보를 보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확 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정말 살리에르의 악보라고?"

모차르트에 밀린 2인자의 악보라고는 보기 힘든 수준의 악보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