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5화
“톰. 무슨 일이지?”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한 곡 더 들려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레비 회장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또 들려줄 게 있다고?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자네 뜻이 그러하다면 한번 틀어 보게.”
오늘도 벌써 5곡이 넘게 들었지만 제대로 된 걸 건지지 못했다.
슬슬 레비 회장도 지겨워지는 참이었으나, 톰이 애써 가져온 걸 쳐낼 만큼은 아니었다.
톰은 장연욱이 보내 준 음원 파일을 재생시켰다.
부디 이번에는 애타게 염원하는 레비 회장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물론, 별로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음?”
도입부에서부터 레비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레퀴엠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거 모차르트 레퀴엠이 맞는 건가?”
역시 레비 회장에게도 그렇게 들리는 모양이다.
톰은 난색을 표하며 물었다.
“예.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지금이라도 끌까요?”
“아니. 잠깐만. 그래도 놔둬 보게.”
그런데 레비 회장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보통 때였다면 인상을 팍 쓰고 노래를 끄게 만들었을 텐데, 지금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총 8곡으로 제작되어 있는 레퀴엠에는 곡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다.
그것도 합창단의 목소리가 말이다.
그런데 장연욱이 보내 준 레퀴엠에는 합창단이 없었다. 전부 다 솔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이미 원곡을 파괴하고도 남는 설계였다.
제 1곡, 인트로이투스.
레퀴엠에 대해 질릴 정도로 찾아봤던 톰이기에 곡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주여 이 영혼에게 안식을 주소서’라는 노래 가사와 함께 슬프고 무거운 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장연욱이 들려주는 제 1곡의 인트로이투스는 많이 달랐다.
‘무겁지 않고 오히려 가볍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다양한 작곡가들에 의해 리메이크가 되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곡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했다.
특히 솔로곡을 부르는 저 여성 성악가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도저히 어두운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음색이 아니다.
대체 장연욱은 무슨 생각으로 곡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걸 과연 레퀴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장송곡이 아니라 이건 마치······.
‘찬양을 하는 것 같다.’
어둡고 칙칙한 레퀴엠이 지금은 마치 희망을 노래하는 듯 보였다.
제 1곡이 끝나고 2곡이 시작되었다.
제 2곡, 키리에.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알토와 베이스가 만나 중후한 음색을 내는 것이 2곡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번 2곡은 달랐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무리 작곡가마다 레퀴엠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1곡부터 8곡까지 구성된 루트는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이 정석이기에 함부로 그 곡의 특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연욱은 과감히 곡의 구조를 바꿔 버리고 장르도 색다르게 변화를 주었다.
더군다나 이번 2곡에서는 남녀가 같이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절대자에게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노래를 말이다.
“톰.”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톰은 레비에게 큰 꾸중을 받을 각오로 대답했다.
“예, 회장님.”
“이 레퀴엠을 작곡한 사람이 누구지?”
처음이었다.
곡을 만든 사람을 물어보는 것은.
“장연욱입니다.”
“장연욱? 아-. 저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던?”
“맞습니다. 이번에 랜디와 콜라보 앨범을 내면서 월드 투어도 성황리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래. 요즘 언급이 자주 되는 아티스트지. 역시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군. 이렇게나 과감하고 당돌한 레퀴엠을 만들어내다니.”
8곡 중에 이제 2곡밖에 듣지 않았으나, 레비 회장은 더 이상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 이 젊은 친구를 말이야.”
“곡이 마음에 드신 겁니까?”
“그래. 내가 생각해 왔던 레퀴엠과는 사뭇 다르지만, 내가 죽는다면 꼭 이 음악을 틀고 싶은 심정이야.”
레비 회장이 드디어 만족할 만한 곡이 나왔다.
톰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난 이 음악을 끝까지 들으면서 잠을 자야겠군. 이만 나가 보게.”
“예.”
레비 회장은 모든 걸 다 이룬 얼굴로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기존 레퀴엠과는 차원이 다른 마법 같은 음악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 * *
크로노스 회장이 사는 곳은 과연 얼마나 좋은 곳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회장들 같이 저택을 하나 짓고 사는 수준일 거라 추측한 내 자신이 멍청했다.
여긴 단순한 저택 정도가 아니다.
그야 말로 궁전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수행비서 톰을 비롯해 레비 회장의 궁전에는 수많은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된 대형 박물관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돈이 참 많이 들어간 곳 같았다.
눈을 사로잡는 미술품이 잔뜩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마에스트로~!”
레비 회장의 첫인상이 궁금했다.
90살이 넘은 나이이기 때문에 과연 목소리는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런 우려와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세월의 흔적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악수를 나누는 손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 목소리도 애써 힘을 낸 듯 보였다.
“너무 바쁘신 분이라 제 초청에 응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천억에 크로노스 지분까지 준다는 분과의 만남을 거절할 사람은 아마 없겠죠.”
“하하. 솔직하시군요.”
레비 회장이 내가 만든 레퀴엠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가 내걸었던 천억과 크로노스의 지분이 내게 상금으로 주어지게 되었다.
“놀라운 음악이더군요. 매일 당신이 작곡해 준 레퀴엠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이것이 정말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상금을 받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은 건가.
하긴. 내가 만든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누가 들어도 특이했을 것이다.
“제가 드린 건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내 레퀴엠이 모차르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들어왔던 레퀴엠과는 많이 다르던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모차르트가 의도했던 바이니까요.”
모차르트의 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음악가들은 각자의 악보에 본인의 감정과 의도를 고스란히 남겨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후손들이 찾아내어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저도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레퀴엠을 장송곡에 걸맞게 해석했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제게 주신 모차르트의 원본 악보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죠. 사람들은 그의 레퀴엠이 미완성곡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건 미완성된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미완성곡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작곡에 임했기 때문에 애를 먹었던 것이다.
“그럼 레퀴엠이 완성곡이었다고요?”
“예. 모차르트 입장에서는 그게 완성곡이었던 겁니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군요. 어딜 봐도 그건 미완성곡일 텐데······.”
그건 맞다.
원본 악보만 보면 빠진 곳이 너무 많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미 모차르트가 틀을 전부 다 만들어 놓고 나머지 부분은 자유롭게 넣을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수학이라는 말이 있죠. 완벽하고 정밀한 계산이 들어가야만 최고의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성학이라는 걸 공부하는 것이고요. 모차르트의 레퀴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레퀴엠에 치밀한 설계를 해놓았어요.”
레퀴엠은 장송곡이다.
그리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모두에게 통용되는 곡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곡이 꼭 같아야 하는 것일까?
그 사람의 성격과 살아온 세월에 맞게 레퀴엠도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문득 들자마자 꽉 막혀 있던 벽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모차르트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모두를 위한 레퀴엠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의 유지에 따라 저 역시 회장님만을 위한 레퀴엠을 만든 것이었고요.”
“그래서 그랬던 것이군요. 톰한테 들었습니다. 내가 즐겨 듣는 노래 리스트를 달라했다고 말이에요.”
“예. 회장님이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고, 또 어떤 세월을 살아오셨는지 자세히 알아본 뒤, 그에 맞춰 레퀴엠을 완성시킨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궤변이라고, 혹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게 맞을 수도 있다.
내가 전혀 맞지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중요한 건 레비 회장이 내가 만든 레퀴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것만으로 성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레퀴엠이라······.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모차르트의 마지막 모습이었군요.”
“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정말 맞을 수도, 아니면 틀릴 수도 있죠.”
“아니. 저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 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장송곡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뭔가 회상에 젖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비 회장이 톰에게 손짓했다.
“톰. 가져오게.”
“예.”
이윽고 톰이 검은 케이스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세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세금 처리를 완료한 천억의 돈을 입금해 놓은 통장이에요. 거기 있는 카드와 인증키만 있으면 언제든 돈을 꺼낼 수가 있을 겁니다.”
무려 천억이 들어가 있는 통장이었다.
지금도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한꺼번에 천억이란 큰돈이 생기니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당신 이름으로 크로노스 기업의 지분도 곧 들어갈 겁니다. 현재 그에 대한 문제는 처리 중에 있으니, 톰이 보고를 해 줄 겁니다. 마지막으로······.”
레비 회장의 선물은 여기가 끝이 아닌 듯했다.
“마에스트로에게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노래를 또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미 난 원하는 걸 모두 이루었어요. 모차르트의 비밀까지 알아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일을 소홀히 할 순 없죠.”
레비가 눈짓하자 톰이 케이스 안에 있는 서류를 하나 꺼냈다.
“나는 앞으로도 위대한 음악이 꾸준히 나오기를 원합니다. 음악은 신의 선물이니까요. 그래서 재단을 운영하며 다양한 음악 산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크로노스 재단은 음악계에서, 특히 클래식 쪽에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고 있다. 그들이 운용하는 자금만 수조 원이 넘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단 얘기는 왜 꺼내는 것일까?
레비는 힐끗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 재단의 운영을 이제 당신에게 맡기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