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4화
처음에는 내가 뭔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떤 미친놈이 노래 하나 만드는 데에 천억을 건단 말인가. 거기다 천억 뿐만이 아니라 크로노스 지분까지 나눠 준단다.
“미스터 장이 처음입니다.”
“네?”
“천억이 상금으로 걸려 있다는 말을 듣기 전에 먼저 제안을 수락한 사람이 말입니다. 다들 상금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말도 안 되는 의뢰라며 거절했었죠. 하지만 돈 얘기가 나오자 모두 돌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난 모차르트에 대한 흥미를 느꼈을 뿐, 돈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천억이라.
저명한 작곡가들이 충분히 자존심을 버리고 뛰어들만했다.
하지만 난 반대였다.
“이상하게 상금 얘기를 들으니까 꺼려지는군요. 오늘 의뢰는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여유로워 보였던 톰의 얼굴에 금이 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안을 거절하신다는 겁니까?”
“예.”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싫어졌어요. 모차르트에 대한 흥미가 있기는 하나, 꼭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처럼 보여서요. 제가 좀 이상한 거겠죠?”
“무척이나 이상해 보입니다.”
액수에 잠깐 놀라기는 했으나, 오히려 말도 안 되게 금액이 커져 버리니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거절하고 내 자리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톰이 급히 날 붙잡았다.
“미스터 장.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순히 돈 자랑을 하려고 천억이라는 돈을 내건 것이 아닙니다. 회장님의 평생소원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본인 인생의 마지막 소원인데, 그깟 돈이 아깝겠습니까?”
“그만큼 회장님이 절박하시다는 건가요?”
“예.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부디 돈을 보지 마시고 한 영혼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도와주십시오.”
톰의 손이 잘게 떨려왔다.
그가 진심으로 내게 부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을 정말 많이 아끼시는군요.”
“제게는 아버지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한 분이시니까요. 그분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이 아깝지도 않습니다.”
문득 레비 회장이 부러워졌다.
나도 평생을 사는 동안 이런 남자를 곁에 둘 수 있을까.
이런 친구가 하나 있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던데.
수행비서가 이 정도로 레비를 아끼는 것을 보면 그는 필시 인생을 잘못 산 것이 아니리라.
“좋습니다.”
돈이 아닌, 톰의 진심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케이스에 악보를 담아 챙겼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바로 작업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곡을 만들지 않고 의뢰만 수락했을 뿐인데도 톰의 눈가가 글썽였다.
첫인상은 무척 차갑고 무뚝뚝해 보였는데, 의외로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케이스를 가지고 돌아와 널찍한 자리에 누워 핸드폰 플레이 리스트를 모차르트로 바꿨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곡들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 * *
“연욱이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예. 아무 일도 없어요.”
강 대표는 혜나의 눈치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아니지?”
“아니라니깐요?”
“아닌데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장연욱은 광고 섭외와 예능 출연 제의를 전부 다 거절하고 방에 틀어박혀 일주일 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긴 했으나, 이런 일은 처음이라 강 대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으로 찾아가 끌어낼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이 회사의 대표는 본인이었지만, 정작 회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건 장연욱이니 말이다. 만약 장연욱과 GN 엔터테이먼트의 불화설이 뜨는 순간 주가는 바닥을 찍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저도 사실 잘 몰라요.”
답답한 건 강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혜나도 대체 왜 연욱이가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번에는 잠깐 밖으로 나와 먹을 걸 챙겨 가는 연욱을 붙잡고 물어봤다.
대체 방에 틀어박혀 뭘 하냐고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작곡. 좀 난이도가 높은 작곡.’
난이도가 높은 작곡?
뭐든 쉽게 해내고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보여줬던 천하의 장연욱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대체 뭘 만들려고 저러는 것일까.
“난 좀 무섭다, 혜나야.”
“뭐가요?”
“네 말대로 작곡을 위해서 폐관 수련을 하는 거라면 대체 이번에 만들려는 곡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야. 그냥 앉아 있다가 뚝딱 명곡 하나 만들어 내는 게 연욱이의 평소 삶이었잖아.”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아예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곡을 만들려는 건가?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 혜나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대체 연욱이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어떤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 * *
“미치겠네.”
대자로 뻗은 침대 위에서 나는 작게 뇌까렸다.
한숨도 길게 내쉴 만큼 답답했다.
환기가 되어 있지 않은 방 때문이 아니다.
아직도 곡의 첫 마디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네.”
보통 이런 긴 곡을 작곡할 땐 1~3일 안에, 빠르면 몇 시간 안에 윤곽을 잡아 놓고 뼈대를 세워 살을 붙여 놓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대개 일주일 안에는 반드시 완성됐다.
이제까지 그렇게 곡을 만들어 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톰에게서 받은 악보를 이용해 모차르트의 감정과 의도를 파악하고 그가 설계했던 대로 곡을 완성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필체가 담긴 악보를 보고 나서부터 막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서 말이다.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아.”
모차르트의 의도에 따라 곡을 완성시키려 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곡을 전부 다 듣고 그 스타일을 따라 레퀴엠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난 모차르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다 이 레퀴엠은 지금껏 모차르트가 보여 준 스타일과 너무나도 달랐다.
모차르트만의 강점이 단 한 톨도 들어 있지 않은 곡이었다.
이 악보는 사실 모차르트가 쓴 게 아니라 다른 놈이 쓴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고 있을 때쯤.
“혹시 내가 핀트를 잘못 잡고 있었나?”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
어쩌면 내가 모차르트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이 번지면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르르 녹아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영감의 홍수가 몰아치며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얼른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메일을 하나 썼다.
* * *
“톰. 이번에는 부디 성공했기를 바라겠네.”
“예, 회장님.”
병상에 누워 있는 레비를 위해 톰은 방금 전 도착한 음원을 재생시켰다.
레비를 간호하기 위한 의료 장비들이 즐비해 있는 침실이었으나, 곳곳에 스피커가 달려 있어 입체감 넘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으음-.”
레비는 어떤 작곡가가 만든 레퀴엠을 듣고 있다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서 톰은 직감했다.
이 곡이 주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톰. 이게 아니란 말일세!”
“죄송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작곡가의 곡을 재생시켜 보겠습니다.”
두 번째 곡이 재생되었으나, 여전히 레비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쯧. 이것도 아니로군.”
험한 말을 쏟아내려는 걸 간신히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귀를 만족시킬 만한, 완벽에 가까운 레퀴엠은 오늘도 재생되지 않았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내 의뢰를 받고 곡을 만든 사람들은 전부 저명한 작곡가들일 텐데, 어떻게 레퀴엠을 완성시키지 못 하는 거지? 혹시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아닙니다. 회장님의 귀는 틀림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하지만 완벽한 레퀴엠을 얼른 가져다줬으면 좋겠어. 내가 언제 갈지 모르니 말일세.”
“······예.”
“나가 보게. 난 좀 쉬어야겠어.”
톰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장의 침실에서 나왔다.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작곡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하. 어떻습니까? 회장님께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았나요?
자신감이 충만한 목소리였다.
“회장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셨습니다. 다시 작업을 하셔야 할 것 같군요.”
그러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 뭐, 뭐라고요? 내가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고?
“조금 더 보완을 해보시죠.”
-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혹시 나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천억을 준다는 건 역시 거짓말이었군. 사실은 회장이 크게 만족을 했는데, 당신이 천억을 가로채려고 이러는 게 분명해. 맞지?
“······더는 말할 가치도 없으니 끊겠습니다.”
- 이봐! 감히 누구 전화를 끊······.
톰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윽고 다른 작곡가에게서 전화가 왔고, 상황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다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군.”
두 번 통화했을 뿐인데 벌써 기진맥진해진 기분이었다.
이름 있는 작곡가들이라서 그런지, 본인의 노래가 실패할 거라는 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띠링-.
“음?”
조금 숨을 돌리고자 위스키를 한잔 들이켜고 있던 톰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장연욱이었다.
의뢰를 맡긴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원래 이 프로젝트는 몇 년 전부터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레비 회장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톰은 더 실력 있는 작곡가를 찾다가 최근에 장연욱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저번에 이상한 요청을 했었다.
레비 회장이 좋아하고 즐겨 듣는 곡 리스트를 전부 보내 달라고 말이다.
그게 며칠 전이었는데, 다시 이렇게 메일이 왔다.
그것도 완성본이!
“2주밖에 안 됐는데 벌써 곡을 완성했다고?”
혹시 잘못 보낸 건가.
아니면 완성본이 아닌 샘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일 내용은 확실했다.
보낸 파일은 완성본이고 회장이 그토록 원하는 레퀴엠이라고 말이다.
“으음-.”
긴가민가하며 톰은 완성본을 한번 재생시켜 보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들어왔던 레퀴엠과 전혀 다른 도입부에 화들짝 놀랐다.
“잠깐. 원곡이랑 너무 다르잖아.”
초반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껏 수많은 작곡가가 보낸 레퀴엠과 결을 달리하는 곡이었다. 물론, 모차르트가 만든 레퀴엠의 중후한 음색이 살아 있기는 하나 뭔가 많이 달라 보였다.
이걸 과연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 장연욱은 무슨 생각인 거지?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듯, 장연욱이 보낸 메일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직 레비 회장님만을 위한 레퀴엠입니다. 곡이 다르게 들릴 순 있어도, 레비 회장님은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저번에 비행기에서 봤을 때 이런 걸 가지고 장난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속는 셈 치고 회장에게 이 곡을 들려줘야 하는 걸까?
톰은 장연욱이 작곡한 레퀴엠이 들어 있는 USB를 만지작거리다 회장이 있는 침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