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92화 (192/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2화

5개월 간의 월드 투어 일정.

북미와 남미,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보통 월드 투어 일정이 잡히면 5개월 동안 1~2주 동안 준비 시간을 갖고 무대를 선보인다. 그러나 우린 3~4일 정도로 준비 시간을 갖고 곧바로 무대에 올라갔다.

내 철칙으로 인해 절대 같은 무대를 보여 주지 않았다.

늘 새롭고 신선한 무대를 보여 주는 것에 노력했고, 전세기 안에서 틈틈이 노래 작곡도 했다.

“이 곡을 비행기 안에서 썼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안 믿을 거야.”

랜디는 곡을 새로 받을 때마다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봐도 조금 미친 짓이었으나, 퀄리티는 마음에 들어 무대에 바로 올렸다.

어떤 때는 내 솔로곡을, 또 어떤 때는 혜나 누나나 랜디의 솔로곡을, 아니면 우리 셋이서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연욱아. 언제 정식으로 음원이 나오는 거냐고 다들 난리야.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 전에 녹음은 했겠지?”

강 대표는 월드 투어 무대에서 새로운 곡이 나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제발 내가 녹음을 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네. 녹음은 했어요. 근데 정식으로 한 건 아니고, 그냥 무대에서 한 라이브 무대를 녹음한 거예요.”

“진짜? 정식 녹음한 거 없어? 그럼 곡은 어떻게 발표해?”

“어떻게 하긴요. 라이브 무대만 모아서 앨범 내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도 괜찮을까?”

“감성이 있잖아요. 100% 라이브 무대니까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예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공백 기간을 채울 새로운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강 대표는 만족하는 듯보였다.

이제 월드 투어 일정도 거의 다 끝나가고, 마무리만 잘 맺으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로렌스와 장연욱 핑크빛 열애?]

[미국 틴에이져 슈퍼 스타 로렌스, 장연욱과 데이트 장면 포착.]

[로렌스와 장연욱 단둘이 호텔로?]

“너 이거 뭐야.”

혜나 누나는 도끼눈을 뜬 채로 서 있었다.

“연욱~ 내가 방금 아주 좋은 소식을 하나 듣고 왔는······.”

마침 방 안으로 들어오던 랜디는 혜나 누나에게서 흘러 나오는 살기를 감지했는지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의리 없는 놈.

같이 좀 데리고 나가지.

“이거 뭐야? 어서 말 안 해?”

“그야 당연히 오해지.”

로렌스를 만난 건 지난주에 투어를 했던 시카고였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틴에이져 스타라 할 수 있는 로렌스는 나와 동갑이었고, 예전부터 JJ의 팬이었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팬이었다.

“로렌스가 미국에서 하는 월드 투어를 전부 다 관람했잖아. 그러다 저번에 우리 호텔로 직접 찾아와서 사인도 받아 갔고.”

“그거 한 달 전이잖아.”

“응. 그때부터 조금, 아주 조금씩 연락을 했었어.”

“뭐? 근데 넌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안 했던 거야?”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자랑 연락하는 걸 일일이 보고해야 하는 건가?

“누나도 남자들이랑 연락 자주 하잖아. 내가 언제 그런 거 물어본 적 있어?”

“와~ 그래서 일부러 말을 안 했다고?”

“아니. 내가 굳이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을 안 한 거지.”

그러자 누나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탁!

던지듯 내 앞에 내려 놓았다.

“까봐.”

“뭐?”

“쫄려?”

어이가 없으면서도 왠지 오기가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누나가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홀린 듯이 핸드폰을 내놓다가 마지막에 정신줄을 잡았다.

그래. 까봤자 백퍼 손해는 내가 본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됐어.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야.”

“나도 궁금해서 그래. 로렌스인지 모렌스인지 무슨 얘기를 나눴기에 사람들이 저렇게 난리인 거야?”

“아니야. 다 오해라니깐?”

“그럼 호텔 간 건 뭔데?”

“그거야 걔가 있는 곳에서 만났던 거지. 거기 호텔에 미슐랭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갔던 거야.”

누나는 의심의 눈동자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날름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낚아채려다 실패했다.

“후후. 여전히 느리시군요, 누님.”

“으. 짜증나.”

“내가 누나 남친이야? 나 말고 누나 남친한테나 신경 써.”

그러자 누나가 날 노려보며 하는 말.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 남친을 어떻게 신경 쓰냐?”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 앉았다..

남친?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남친이 있어?

팔짱을 낀 채 도도하게 걸어 나가는 누나를 붙잡고 싶었다.

“노, 농담이겠지?”

남친이 있다는 말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 날 놀래키려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

하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 그냥 서로 핸드폰 까자고 했을 때 바꿔 볼걸.

드르르-

후회할 틈도 없이 핸드폰이 진동했다.

“음-.”

손지연이었다.

저번에 런던에서 했던 월드 투어 무대를 보러왔었다.

일정 때문에 미국에 온다고 했었나.

받지 말까.

그랬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할지 뻔하지.

아마 누나랑 똑같은, 아니. 더 심한 말들을 할지도 모른다.

“여, 여보세요?”

- 응. 연욱아. 잘 잤니?

의외로 목소리가 차분했다.

혹시 아직 소식을 못 들은 건가.

- 어머! 내가 설마 방해한 건 아니지? 옆에 로렌스랑 같이 있어? 어떡해!

“······.”

그럼 그렇지.

지연이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사람을 사귈 거면 자기한테 언질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가 네 베프가 아니었냐며 등등.

기관총처럼 우다다 쏘아 버렸다.

누나에게 했던 해명을 지연이에게 반복하고 그렇게 1시간 가까이 통화를 한 뒤에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아. 덤으로 약속도 잡았다.

- 그럼 이틀 뒤에 봐~

그래도 다행인 건 마지막에 지연이가 산뜻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그제야 숨을 좀 돌리려고 하는데.

드르르르-!

세게 울리는 진동 소리가 마치 내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수신인은 제니 웨이든이었다.

- 장연욱!!

전화를 받자마자 제니의 찢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누구랑 통화하고 있었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아~ 로렌스랑 전화하고 있었구나?

“제니. 진정해요. 로렌스랑 통화한 게 아니니까.”

- 아무튼 여자인 건 맞지?

“어······ 그건 맞는데.”

-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깐? 너 아직 미국이지. 딱 기다려. 내가 지금 비행기 타고 그쪽으로 날아갈 테니까.

누나와 지연이에게 했던 해명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왜 이걸 설명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안 그랬다가는 정말 제니가 당장이라도 날아올 것처럼 보였다.

- 그랬구나.

내 해명을 다 들은 제니의 목소리가 아까보다는 낮아졌다.

- 아무튼 여자랑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네. 그것도 지연이라고? 지연이가 미국에 있었어? 나도 거기 가야겠다. 이따 봐.

“네? 여보세요? 제니?”

제니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 싶었는데, 불쌍한 내 핸드폰은 쉬질 못하고 있었다.

드르르-!

이번에 또 누군가 했더니, 강 대표였다.

······받지 말까?

* * *

“톰.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아. 아니. 사실 이제 돈이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 돈을 전부 주더라도 내 마지막 염원을 이루고 싶군.”

97살에 이르러 이제 거동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노인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거라고는 넘치는 부유함 뿐이었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대충 후보가 잡혔다는 건가?”

“예.”

40년 동안 자신을 옆에서 보필해 온 톰이다.

크로노스라는 기업을 세우고 그것을 거대하게 키우면서 톰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회장직을 넘겨주고 싶었지만, 톰이 완강히 거부하기도 했고 본인도 톰을 끝까지 옆에 두고 싶은 욕심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본인은 50살에, 톰은 20대 중반에 처음 만났는데, 어느새 톰도 백발이 들어선 노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죽는 날까지도 자네를 부려 먹기만 하는군.”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일이지 않습니까.”

“고맙네. 그리고 조금만 서둘러 주게. 점점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지는 것 같으니.”

“예.”

그 말대로였다.

톰도 회장의 안색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잠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둘러야 했다.

톰은 회장의 서재로 이동했다.

서재에는 온갖 LP판과 음악 CD들이 컬렉션으로 모여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지휘자들의 오케스트라 공연 LP는 물론, 희소 가치가 굉장히 높은 음악가들의 편지들과 오리지널 악보들도 서재에 가득했다.

크로노스 기업의 전 회장, 레비.

그는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인간이었다.

서재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사업을 하기 전, 그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하게도 없는 재능으로 인해 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거기서 번뜩이는 재능을 찾았다. 그리고 여전한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돈으로 표현했다.

“이 작곡가라면 괜찮을까?”

톰은 값비싼 목재로 만든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을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이 태블릿과 노트북에 사업적인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면, 지금은 현재 활동 중인 지휘자들의 이름과 작곡가들의 명단만 저장되어 있었다.

거기다 명단별로 폴더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해당 음악가에 대한 기본 정보와 영상들, 그리고 음원 파일들이 들어 있었다.

“아니야. 너무 소프트해. 그렇다고 이 작곡가는 너무 리듬이 강하고.”

20살 때는 클래식에 ‘클’자도 몰랐던 사람이 레비 옆에 있으면서 지금은 클래식의 도사가 됐다. 또한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고 있었다.

그런 톰을 보고 레비는 자기보다 듣는 귀가 좋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레비와 톰만 알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

하지만 재벌 회장의 마지막치고는 뭔가 소소해 보이는 프로젝트였다.

“이 작곡가라면······.”

이런 저런 아티스트들을 살펴보던 레비의 손이 한 가운데에 멈췄다.

그의 손끝 아래에는 장연욱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폴더가 있었다.

“좋은 작곡가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

장연욱이 작곡한 악보들을 주욱 나열해 보던 톰이 작게 읊조리듯 말했다.

“하지만 너무 장르가 다양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자유분방함이.”

그렇다고 섣불리 최종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레비는 각 명단을 뽑아 각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을 섞어서 말이다.


0